전병렬 시집 [금산 장날] 발간
전병렬 시인이 두 번째 시집 [금산 장날]이 2014년 8월에 오늘의문학사에서 발간되었다. 시인은 충남 금산군 군북면 호티리에서 출생하여 한맥문학 신인상, 시와정신 신인상을 받아 등단하였다. 이 시집은 1부 아버지의 모닥불, 2부 눈물꽃, 3부 장마중, 4부 태극기 휘날리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시집 [억새도 꽃을 피운다]에 이어 [금산 장날]은 두 번째 시집으로, 이메일 haejo46@hanmail.net 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 저자 전병렬 시인의 서문은 다음과 같다.
궁핍하게 살던 시대의 생활상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따뜻한 인간애, 그리고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이웃과 소통하며 살던 정다운 이야기들을 서정적 서사시로 묘사하였다.
노래를 즐겨 부르고 소설책을 좋아하던 18세 문학소녀 앞집 누나가 있었다. 허물어진 울타리 건너와 떨어진 교복 단추 달아 입혀주며 빙긋 웃던 초승달 같은 그 눈빛,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의 시는 그녀의 눈빛이며 숙명이다.
나는 오늘 삶의 굴곡, 미완성 그림 한 점 그렸다.
미완의 완성은 독자 여러분의 몫이다. / 2014. 7. 28 / 저자 씀
* 리헌석 문학평론가의 해설 일부를 소개한다.
전병렬 시인은 1945년 4월 6일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출생한다. 출생 몇 달 후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 독립국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성장한다.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나, 해방이 된 공화국 시대나 서민의 생활이 어려운 것은 매일반이었을 터, 일부 계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우리 겨레는 가난을 업보처럼 살아낸 체험을 추억하며 산다.
전병렬 시인도 그러하다. 그가 나고 자란 충청남도 금산군은 산자수려(山紫水麗)한 곳이다. 영약(靈藥)으로 알려진 인삼의 시배지(始培地)로 자긍심이 높은 곳이다. 그렇지만 가난한 서민들의 고단한 삶은 어느 지역에서나 비슷하였을 터, 시인 역시 성장기에 겪은 간난신고(艱難辛苦)를 작품에 반영한다. 특히 금산 사람들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서사적 기법을 통하여 형상화한다. 스토리가 있는 시를 ‘이야기시’ ‘담시’ ‘서사시’ 등으로 부르는데, 그의 시들은 콩트적 구성으로 되어 있어 이에 해당된다. 담시는 정서보다 스토리를 중시하므로 표현상 서술을 다용(多用)한다. 콩트는 간략한 스토리에 반전의 묘미를 보이는데, 그의 작품 다수(多數)에서 이를 통해 서정적 묘미를 담아낸다.
-----생략-----
광복이 되기 전에도 우리 겨레 서민들의 삶은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겠지만, 광복 이후에도 그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울 엄마」에서 시인의 어머니는 금산 특산품인 인삼 행상을 한다. 두 살배기 막내를 업고 경상도 부산으로 행상 나간 어머니를 기다린다. 그 어머니는 한 장(5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 어머니 대신 열다섯 살 누이가 절구에 보리쌀을 갈아 ‘멀덕국’을 끓여 주지만 동생들은 울먹거리며 먹지 않는다. 시인이 동생들을 윽박지르자 그들은 숟가락을 팽개치고 ‘삽작거리’로 달아나며 운다. 그들은 ‘빨가동이’였고 모두 ‘맨발’이었다. 이와 같은 구체적 상황이 1950~60년대 서민들의 모습이다.
-----생략-----
전병렬 시인의 시집에서 ‘새롭게 생명을 얻은 사람들’ ‘과거지만 현재화된 생활들’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겪으며 살아온 사람들’의 삶이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잊을 정도로 오랜 세월이 지난 것도 아닌데, 우리들은 서민들이 겪었을 그 사실들을 과거에 묻어두고 살았다. 그래서 전병렬 시인이 추억하는 생활들은 우리가 대부분 경험한 것들인데도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땜쟁이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마력도 만난다. <헌 냄비 주전자 양은솥 때워요. 우산 고쳐요!> 외치며 다니던 모습을 추억하게 한다. 또한 그가 지은 대부분의 작품은 말미(末尾)의 문학적 수사(修辭)로 작품성을 확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