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
1,마음속으로 고향을 바라본다면
인생의 발원지는 고향일 수 밖에 없다.
미궁이 무엇이고, 요령이 무엇인지 알수도 없는 하늘나라였다.
거무룩한 섣가래가 처마 밑을 받치우고, 사이 좋게 칠해 놓은 듯 황토 빚의 정렬을
한 천정 이 보이고, 마루바닥 사이만큼의 소박한 규모 였지만,
어릴 때 나는 그곳에서 궁전처럼 살았으리라.
마당을 나와 지붕을 보게 되면 누런 볏단을 감은 새끼줄 마져
하늘을 향하여 반짝 반짝 빚 나고 있었다. 그뿐이던가,
마당 한켠 에 돌맹이로 쌓여진 동구란 성 안에 이끼가 푸른 희망처럼 파릇하게 솟아나와 속삭이듯 하였고 ,
내 얼굴을 담은 우물 물은 나를 보곤했다.
나는 그와 대면하면서 내밀한 이야기와 상상을 건네곤 했었던 영혼의 발상지였다.
그러나 한때는 고향이 멀어질 때 도 있었다.
내게 등을 보이면서 작별의 인사도 나누기를 거부했던 고향!
하지만 세월의 비늘을 줄줄이 달아가며, 머나먼 강따라 흘러가듯
지느러미를 세우고자 인생을 가를수록 고향은 내가 작별한 것이지 ,
내 고향은 애미 처럼 항상 그 자리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고향을 벗어나면 고향이 보인다 했다.
지리멸멸한 세상들의 거죽과 샅바를 잡고 있어도
속살처럼 하이얀 향기가 솟고, 깊어진 내면이라도 후비듯이 파 보아도
어머니의 치맛속 처럼 따스한 내음은 항상 고향에서 불어오곤 했다.
나의 아버지도 고향이 있었다.
"내 아들아! 애비는 돈을 벌면
이북에 있는 자식 생각해가면서
고향에 갈 생각만 했다" 군대 시절 면회 오시어 돈 벌어
땅사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시며
아직은 어린 나에게 장남이라고 당신의
고향 말씀을 해주셨다.
"내가 죽어도 나의 고향을 찾아라"
그 이후 6년가을 더 사시다가 돌아가셨지만, 그것이
유언이신 줄을 몰랐던 아버지의 고향 이야기였다.
나 역시 지금은 내 아비의 심정으로
고향생각이 닮아가고 있다.
내 부모는 풍기를 나의 고향으로 만드셨다.
지남철처럼 달라붙는 자식을 붙잡고 우시던 어머니의 모습도 보인다.
생애의 분량이 어디 당신들이라고 행복만을 주었겠는가?
그러나 허리를 바짝 졸라 메고 강단을 내세워야 했던
그 이유는 풍기에 뿌려놓은 여섯 남매를 둔 애미였기에..
그래야만 했던 전부였으리라.
그 심금 속에 우러나오는 한탄의 옥타아브마져 어쩔 수 없이
희망이 되었던 나의 부모와 부모 같은 나의 고향을
내 속에서 지금 꺼내고 있는 것이다.
남자로 태어나 불문율이 있다면 ,
세상과 맞서 폭풍이 불어와도 버텨야하는 것이 인생! 이고
울음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은 세번이라 하지 않던가.
그러나 고향 앞에서는 무릎을 끓어도 억울하지 않은 대상이다...
인생이란 모두에게 적용되는 용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각자의 의미에 있어서는 골 도 생기고 틈새처럼 벌어지는 분열의 아픔도 있겠으나.
고향이란 성곽은 누구나 함께 피어나는 정서적 느낌은 동감할 수 밖에는 없다.
고만 고만한 나이 되어 친구되고 선배도 되고
내 앞에서 자라나지 않아도 후배 되고 자식 같은 어린 새싹에도
풍기라는 따뜻한 마당가의 우물 앞에서는 우리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고향이라는 유,무형체에는 사랑 없는 자에게도 눈물을 준다.
고향이라는 유,무형체는 세상을 향해 진격할 수 있는 버팀목의 성 이요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단 하나 남은 배수진이다.
출발점을 모르고서야 방향이 어디에 있고, 인생의 축적된 함량을 어찌 잴수가 있으며,
그 거리감 마져 출발점을 잊고서는 인생의 저울이 없어진,
가늠 할 수 없는 망혼이 될 수 밖에는 없으리라.
도연맹의 귀거래사를 읊고 싶은 염원의 원처가 되는
한가로운 울타리로 에워싸 진 고향을 생각하는것,
그곳은 치매환자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화면일 것이다.
질리지 않는 내 정신의 밥이요. 안식처이다.
과년한 딸을 둔 애비로 되어지고도 나는 항상 고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2,나의 고향 풍기를 지리적으로 바라본다면....
해발 700메타 준령에서 뻗어가며 좌 우 의 둔산을 갈라 놓고
한 복판으로 바람을 쏟아 남으로 흘러가게 했다.
바람은 금 이 일어서며 잠을 재워야 완성된다.
나의 고향 풍기는 좌 가 西이다.
그곳은 西(金)胎를 몰아 움직한 기운을 꿈꾸고자 닭이 알을 품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금계! 알이 깨지는 새벽녘이면 닭이 울리라..
풍수실학의 대가 남사고가 죽령에 머물러 큰절을 올린 이유를 나는 이제야 안다.
단양 이북한강 상류 지형과 죽령이남의 지층이 뒤틀리어 금덩어리가 융기된 곳이 금계바위이다.
때를 기다리며 개벽의 기운을 쥐고 있는 곳이 우리고향이다.
그러므로 우리고향은 금 의 기운이 성성한 곳이 되고
금을 제련하고져 불 기운이 몰려드는 현상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금의 땅을 좋아하는 열성식물이 몰려들기 때문에
고향의 인삼은 적절한 것을 넘어 최상의 경작지가 되는 이치다,
인삼뿌리는 음 의 식물이나 그 속에는 열기를 가득담고 있다.
이 열기를 火氣라고 하고 피 라고도 하고 정신이라 표상한다.
그러므로 금기운을 가득담은 우리의 고향에는 정신이 맑은 지사가 모여드는 곳이고.
피를 맑게 해주는 식물이 많이 자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페 (金) 가 강한 사람은 정신 또한 맑음을 유지하는 원리이니
인삼도 피를 맑게 해주므로 정열과 건강에 좋은 식물이 되는 것이다.
피가 맑지 못한 사람은 풍기에서 나는 물과 음식을 먹어야 한다.
다만 금 기가 너무 성한 풍기인들의 신체적 특징은 피부가 거칠고
검은 형상을 많이 표현하고 있다. 인삼은 예외지만 물을 덮혀서 먹는 것이 좋다.
그것은 우리고향의 물이 철이 많아 수질이 억세기 때문이다.
이를 중화하는 것이 열기이니 인삼도 때로는 따사한 물에 타서 먹는 인삼차가
최고의 홍보가치로 우선시 할 수 있는 종류라고 하겠다.
태극인삼이란 명칭이 누가 제안한지는 모르지만 영원한 상표로
거듭 나리라는 것은 의심할 필요도 없겠다. (체질마다 다름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우리고향의 지명은 대부분 금기운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표현되는 것이 많다.
금계동은 두말 할나위도 없고, 금선정이 있고 욱금(郁錦)동도 있다
욱금이란 비단의 문체 를 편다는 의미인데 이 역시 금의 기운을 말하는 것이다.
서부동은 금계바위가 있는 서쪽을 향하는 것으로 지명되었고
그반대는 동부동이 되는 것은 합리적인 배열일 것이다.
백신(白新) 역시 힌백을 어두에 놓았는데 흰것은 금 을 표상하므로
이역시 금의 기운을 이야기 하는 것이리라, 백동 역시 마찬가지이다.
달밭골 은 금이 본체라는 것을 가리키는 지명이다
月은 물 이니. 물은 금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금계동에서
북쪽의 물의지형을 말하는 것이다 물은 靈 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지형에는 종교적인 의미가 강한 터전이되므로
여러 신 을 상징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널리 이용될 것이다.
토성이란 동네 역시 흙의 단단함이 이루어져 완성되어진 금을 말한다.,
이 역시 금의 기운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수철동은 물이흐르는 곳에 단단한 쇠 를 놓았다는 의미로 비추어 지는데
어쨌든 금 의 기운을 말하는 지명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창락 도 궁상각치우 오음중 치(齒)음이니 금을 표현하고
즐거음이 번성한다는 의미로 되새길 수 있겠다.
성내동도 어간이 금성으로 이루어져있다.
이와 같이 우리 고향은 모두가 금의 기운이 강하여
용단이 세고 결단력이 강한 일면을 가지고 있고
정신마져 그 뜻이 높은 곳이다.
선비의 고장이라는 의미는 정확하게 표현한 사실인 것이다.
삼가동 이란 동네는 어간이 그 또한 치음이며 셋이란 의미는 개체생성이니
금의 향에서 완성된다는 열매의 의미가 있으므로 이 역시 금성이다.
또한 남으로 향하는 원래의 물줄기라는 남원천 곁 동쪽지향에는
봉현이 나온다. 鳳峴! 봉황이 고개에 나타난다는 뜻으로 봉황은 서쪽에서 날아온다.
그러므로 금의 기운을 받은 지기임을 알수있는 것이다
세간을 비교하여 우리고향은 국가라는 신체부위에 허파를 담당하고 있으며
그것은 곧 정신을 만방으로 보내는 역활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고향에는 문사 와 지사 들, 그리고 용장의 기 가 숨을 쉬고 있는 곳이다.
그런고로 우리의 고향은 대외적으로 세상에 한 획을 그을수있는 가능성이
많은 곳으로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나라의 국운에 대하여 조그만 이변에는 풍기인이 있었다.
금계포란형 의 지위를 받은 이 지세의 영향은 웅지라는 것을 항상
품어가며 숨을 죽여 있을수록 그 부피와 양이 커지는 법이 아니겠는가.
북서풍의 강한 죽령의 바람을 살짜기 흘려보내고 앉아 있어
금 기운을 흩어지지 않게 모우고 있는 이치가 서려있는 것이다.
금성대군의 정축변란 역시 금성대군의 금성의 아호와 아이러니한
역사적 전류가 교통되고 있는것이며, 제 4공화국 때의 금계역시
이를 암시하는 미동의 파장이 주어지고 있는 것으로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다 금기운의 표출 양상인 것이다. 후세에 그 진실을 걸어나올 것이지만...
또 한가지는 우리고향 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은 신라천년 세월동안
마지막 지혜의 교두보인 의상조사의 출현이다.
도선선사의 법맥에는 지리를 관하는 눈 이 있었으니 자연 이러한
기풍을 이어온 의상조사는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비기 란 형 이 나오기 전의 감지력의 충만인 직관에 의한 상을
표현하며 배후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
풍기를 밟은 순간 서향의 부석사를 위하여 금의 기운을 기르는 화기의 터전을 만들어 창건하고,
이전에 풍기준봉 서역에 법계의 진원으로 비로봉을 명명한 것도 이 시대였음을 당연히 추측할 수가 있겠다.
비로사 와 함께 창락 근처에 있는 유석사 는 의상조사가 넒은 돌에서 머물렀다는
큰돌이 있다고 하여 유석사라고 전해지는 설이 있으며.
기쁜 향을 주었다고 희방사 를 세운 것도 이 시대였으리라.
영전사 역시 금계동 근처에서 조성한 의상대사의 의지를 보며는
우리고향의 정신과 기백은 그 웅지를 기리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그렇다면 내가 이러한 지명의 유래를 밟아보지도 않고 이렇게 설명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실학의 토대가 되는 지명은 이치가 모두 그러하기 때문이고
그것은 특정한 지형의 연역적인 역사가 분명하게 부수되어 따라오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호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선대 들의 지혜는 법칙에의한 언급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보면은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은 나의 자해의 의미가 전부라 할 수 없다.
이처럼 나의 고향은 세월의 세가닥을 진중하게 잡고 내려 뻗는
훌륭한 장소 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곤륜산을 기초하여 백두산 천지의 정기를 받고 태백준령의 맥을 이어 내려오면서
이곳 풍기에서 소백의 정기를 내주었다.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정기의 초두이며 기원이 우리고향의 터전부터 시작 된 것이다.
현세초기부터는 모든 일거준량과 국가의 초석을 내 디딜 수 있는 맥의 형성은
언제나 소백산의 역사로 부터 시작되고 있다.
금기운이 성성한 이 고향에서는 북쪽의 문화도 포용하고 있다.
금은 물을 낳는다. 물은 북쪽이며 이북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풍기는 이북 피난민들도 자연스럽게 포용하고 활성화를 이루게 해준 것이
바로 이러한 현상에서도 찾을 수가 있다..
풍기만큼 이북사람들과 의 동주 골짜기에서 골이 생기지 않은 곳은 풍기밖에는 없다.
타 지방에서는 큰 도시 아니고는 이렇듯 원융한 친목을
기대 할 수가 없었던 것을 알면 이를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우리고향에 대하여 애향심을 가진다는 것은 자부심을 내세우는 것과 다름이 없다.
고향의 후배와 자녀들을 위하여 걸출한 인재를 생산하고 풍기의 작물하나만을 활용하더라도
큰 경제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한 것이라는 것이
우리 고향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만큼 살아오면서 고향에 대하여 조그만 섬돌도 되어주지 못한
나로서는 우선 고향을 향하여 고개를 숙일 일이다.
맹춘에 기약한 동화사 방문일인 오늘을 놓쳐야 했습니다.
대신 고향의 그리움과 . 한 우자가 고향의 윤곽을 묘사해보고
고향을 알자는 취지에서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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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축하드립니다. 정성껏 지성으로 한자한자 써 내려간 글솜씨! 과연이십니다. 아버님을 많이 닮으셨네요. 화목한 가족의 모습! 그 옛날에 사진관에 가야만 찍을 수 있었는데 아주 귀한것이지요. 형제들 모두 빼어난 글솜씨로 이곳을 아주 감동해주시네요. 지기님의 분위기 잡는 빼어난 솜씨도 과연이십니다.!
고향의 향기로운 내~음새 우! "풍기" 우리 모두 귀한 인연줄이시네요. 행복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삽잡거리 앞에 앉아 시내에서 장 보러 가신 아버지가 무척이나 기다려 지곤 했지요. 왜냐하면 풍기시내에서 유명한 찐빵집에서 찐빵을 기다린것입니다. 그 무서운 아버지의 용안보다 찐빵의 그 맛스러움에 더욱 용감했던 그날이 묻어지고 지금을 봅니다. 오늘은 보름달이 유난합니다.
나의 자긍은 없으나 아버지의 인생행적을 존경하는 아들이였음을 제일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고향의 후배에게 항상 빗질을 해주시네요.. 감사합니다. -합장-
저는 이두창님의 아버님을 , 황진이님의 아버님을 기억합니다! 제 장인 어르신이신 古 고가현님(이북에서 단신 월남 하신 분)과도 친밀하셨던것으로 기억되며 저도 기억하는 어르신이십니다!!! 시보네님께서 수고해 주신 사진을 뵈오면......님의 아버님은 확실히 기억되고......샛별 같은 여동생들 눈을 보느라면 ...............
저도 기억이 납니다. 저는 못난 아들이였읍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어도 울지를 못했읍니다. 아버지 영전 앞에서 입어야 할 상복을 끝내 입지 못하였고. 아무도 없는 밤중에 달과 함께한 야중! 홀로 아버지 앞에서 곡 을 했던 이력이 있읍니다. 감히 나는 슬픔을 뱉지 못했읍니다..
존경하는 아버지의 아들로서는 어울리지 않았던 황량한 길로 가는것밖에는 아버지에게 보여주지 못했지요. 망향의 한으로서 살으신 아버지는 평시에도 따뜻한 마음을 표현하시지를 못했으며. 아픔을 침묵으로 간직했으나. 아들되어진 저는 슬픔을 표현하는것이 난감한 업을 받은것은 아닌지 모르겠읍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강건하시기를 ,...
시보네 선배님께서는 애향의 지사 이십니다. 왜람을 바로 펴시고 향토의 경제와 문화의 화폭도 크게 스케치 하시는 분이십니다. 일련의 애증이 묻은 난간으로고향을 바라볼수밖에 없는 안목의 후배인 저의 굴곡도 지면을 펴게하시니 난감하기도 하고 감사함을 느낌니다. 못난 후배지만 고향의 어귀에서 삽질이라도 할수있다면 하는 마음은 앞섭니다. 고향선배님의 사랑으로 기억하겠읍니다. 곧있으면 소백산녘에 철축이 만발하는 지절이 될것입니다. 선배님의 노고로 숨을쉬고있는 고향의 발전과 행사가 더욱 바쁘게 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찾아뵙지못하더라도 우연히 뵙게 될때에는 박카스 응원이라도 하는 후배가 되겠읍니다.
막내 명진이 뺀 일곱 식구 얼굴이 튀어 올라 얼마나 놀랐는지..내가 제일 많이 닮은 아버지 얼굴이 또 나를 울립니다. 어찌 저리 선하디 선한 눈매를 가지셨는지..얼마나 징그러웠으면 ..그리 일찍 가셨나..싶다가.. 언제나 미소 띤 엄마 얼굴 생각하면서 딸년도 따라 웃다가도..입매 끝에서 일그러지는 혹독한 그리움..고향엔 그저 아지랑이 추억만 있으니..오빠..우리 다 어디서 죽을까요? ..
워매! 아즉 똥차도 잘 굴러가는데 ...die 를 우째 내미는고? 아버지 한테 욕 묵겄다 ㅎㅎㅎ .가족사진 올려주신거 ...고마우신 자리아닌가베..고향을 생각하자고 풍기아리랑 을 속에 품으면서 상실과 회복도 그리는 고 맛있는 질감을 더 보여줄 생각만 하시게나.. 동생은 아마 고향을 놓지못하고사연이 그대로 앉아지겠지요. 뿌리에 가지가 있는법! 그렇게 흘러가겠지요...열심히 살아주어 늘 감사합니다. 부모님도 항상 아우님곁을 지키고 계시다는것을 아울러 잊지마세요. 아우님 아기일때 이 오래비 가 업어주곤했어요. 등짝에 오줌 마이 쌌어요.ㅎㅎㅎ 생색내는 오빠가 굴러갈때 까지는 아우님은 아직은 어린동생일것입니다.
이렇듯 풍기에 대한 해석을 명쾌하게 해주시다니...정말 많은 것을 새삼 알게되었네요^^ 우리 친구의 글만큼, 마음만큼 웅숭깊은 곳이기에 오래도록 잊지못하는 건가봅니다. 이제 그곳으로 귀향하는 일만 남았겠습니다~. 마음으로 천만번 달려가는 곳...멀리 있어서 더욱 잘 보이는 곳...
어느곳에 서 있는가.. 에 반하여 마음속에 서려있는 극점의 오로라는 푸른 안광이였읍니다. 따스함과 포용을 사랑으로 수놓는 시인께서 칭찬해주시니 항송합니다. 통찰에 시성까지 곁드신 친구라 이 우자를 이해해주시는가 봅니다. 고향을 단장할 나름대로의 힘은 없으나 고향을 바라보는마음만 섭니다. 강시인은 고향의 마당에서 분류된 친구이지요. 미망의 여분이 있다면 고향마당을 정갈하게 챙겨주세요. 대지위의 여자가 되시길.....
고우시던 어머님 모습을 뵈니 가슴이 저려 오네요...우리 어무이를 찾으러 절에 갔을때 반겨주시던 모습이 생각나고....친구의 고향 이야기에 나역시 마음으로 달려가고 있네여~~집안 내력인가?..글도 무지 잘 써서 답글 달기가 어려울 지경입니다요~~~건강하세이~~
ㅎ ㅎ 영란아! 우리가족사진은 네 아버지가 컷 하신 불후의 명작 아니냐. 정지된 저 사진에서는 어린 너 도 한참 초등생일것이고..네 오빠와 고교선후배시절 자취방의 풍부한 먹거리에서 한꺼번에 라면 12개를 묵었었지.. 고 1학년때 네 오빠지시로 오빠와 같은 계급 고 3 뺏지 달고 세운상가의 삼풍분식당가서 이문여고 고 삼과 미팅하다가 고삼다른선배 만나 핵교가서 억시기 맞아부렀다 ㅎㅎ 또한 네 아버지가 권투좀 하셨잖나.. 권투는 방어가 우선이다 하시던 말씀이 기억도 나고.... 혼자서있는듯한 기분이 나역시 오래동안이 였지.. 세상 왜 요따구로 살았는지 모르겄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영란이 같은 친구가 있잖나.. 고마워
경진님을 알기전에 두창님을 알았고, 두창님 전에 아버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투박한 평안도 사투리는 아버지와 같아서 친근감을 주었습니다. 족답기 직물공장시 부터 동업종으로 가까이, 고향의 정에 대해서 어찌 優劣을 가리리오. 통일의 길이 멀어짐을 보며 때가 되셨던지 이상한 증상까지 보이시기를 1년여, 정확하게 36년 전 66새를 일기로... 그 연세가 곧 나에게 옵니다. 고롬 고롬(그럼 그럼) 맞장구를 잘치셨던 우리들의 아버지! 보고싶습니다. 잠시 아버지를 상기시켜 주셔서 감사. 고향의 글 장 읽었습니다. 만나서 더 듣고싶습니다. 경진, 두창 나 셋이 " 아! 통일은" 웅변 제안, 아직도 목소리는 지고 싶지 않답니다.
훌륭하신 선배님께 항상 누 만 됩니다. 저는 너무나 철이 없는 자식이였읍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무쇠속에서 달아져 있었음을 몰랐읍니다.너무나 뜨거워 오히려 찬 기운을 느꼈고. 그러므로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 철없는 용렬이 있었읍니다. 선배님의 함이 없는 애향속에서 후배들이 자라고 있음도 압니다. 살아있는 느낌을 지금에서야 상실된 어느 한줄을 잡으려고 하는 후배를 사랑해주시기 바랍니다. 풍기의 터전이 이토록 강건한 정신이 깃들어 있는지를 지금에야 알았고 자부심을 느낍니다. 존경하는 선배님께 이러한 영혼이 내려앉아 있다는것을 압니다. 따라가는 후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댓글감사합니다 .머리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선배님께 의견을 올리고져 합니다. 일학(一學)을 세운것이(立) 있다면, 풍기에서 통일이 나옵니다. 결실의 터전으로 금 의 기운이 뭉친것은 우리고향 밖에는 없읍니다. 결실의 장이며 이북정신마져 풍기에서 자라납니다. 또한 제 4 공화국의 금계의 처신이 없었다면 나라의 국운은 미래를 보장할수 없었읍니다. 우리는 이러한 정신을 잘 모르고 있으며 왜곡으로 묻혀져 갑니다. 5,16혁명 역시 구미의 금계포란입니다. 풍기의 후학들은 정신이 맑고 정열이 뭉처지고 있읍니다. 풍기에는 훌륭한 시인 과 문학인 그리고 종교인 과 함께 세월을 가리는 영웅이 움트는 . 세계를 가르는 업적이 기다리고 있읍니다. 감히 올립니다. 기억해야할것입니
공원산에서 촬영한 풍기시가지 사진에서, 산 아래 좌측 시멘트 기와집이 우리집이었고 1962년 풍기광경일걸세. 그 옛날 아버지께서 새벽신문을 펼치시고 노래처럼 부르던 통일의 기수 정도령은 과연 언제오시려나?
풍수지리설에서 현실과 來世를 예언하는 세월도 산업화의 轟音으로 햋빛 쫒아 나와 버렸으니~
누가 뭐래도 바람과 돌 그리고 물이 이 땅의 주인이기에 우리는 행복한 고향을 가지고 있다네.
정감록의 聖祉도 항상 유지되는 것이 아님을 알겠지?
이 땅을 떠났던 많은 향우들이 다시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그런 고향이 만들어지는 날이 다시 氣가모여지는 때가 되겠지.
선배 노릇 곧 어른 구실을 해야하는데, 미안.
염원의 昌天 은 이미 선배님들께서 일구어 놓았읍니다. 어른이시요.. 대의는 씨앗이 필요하지요 선배님께서는 많은 밭에다 이랑을 하고 다듬질하시는것을 후배는 잘 알고있읍니다. 감사합니다 강건하십시요 -꾸벅-
풍기의 모습에서 풍기의 지명에서 풍기의 에너지가 나라를 평안케 할 수 있다는 말에 가슴 뿌듯하기도 합니다. 별 근거도 없이 단지 고향이란 것만 내세워 깡으로 고향에 대한 자부심을 갖던 제게 말 한 마디라도 더 할 수 있게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포용과 결단의 힘이 베어져 있는 정신이 살고 있지요. 풍기인들의 지각있는 선,후배들께서 고향에 많은 증흥을 이루어 놓을것이며. 여울바닥에
있는 조그만 조약돌 하나라도 아껴야 할것입니다.요즈음 금계 황준량 선생님에 대하여 연구를 하고 있읍니다. 초서 의 필력을 대하게 되면 대륙풍이십니다. 퇴계선생님의 성리 모두를 그 젊은나이에 흡수하고도 여분을 침묵하고 있었읍니다. 이것을 캐내기 위해서는 너무 모자랍니다. 그러나 이분의 맑은 정신과 사랑을 배워야 겠읍니다. 감사합니다 강건하소서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