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홍해(Red Sea)
홍해는 출애굽 행로의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먼저 이스라엘 민족의 애굽땅에서 홍해까지 이르는 출애굽 경로를 살펴보고자 한다.
430년 동안 애굽의 학정에서 신음하던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의 인도로 드디어 출애굽을 하게 되었다.
출애굽의 출발점은 나일강 북동부 델타에 위치한 라암세스 였다(출12:37).
라암세스는 요셉이 바로에게 청하여 그의 아비, 형제 족장들에게 주었던 곳이며(창47:11) 이스라엘 노예들에 의하여 건축된 국고성중 하나이다(출1:11).
이곳은 요셉의 가족이 처음 머물던 고센 지방보다 북방 지역으로 델타의 비옥한 땅이다.
이 때 애굽의 수도는 룩소르였다.
● 출애굽의 시기
그러면 출애굽의 시기는 어느때 이었을까?
왕상 6:1에 의하면 솔로몬이 성전건축을 시작한 해가 출애굽 사건 이후 480년이 지난 솔로몬 즉위 제4년(BC 971년에 즉위)이라 하였으므로 BC(967+480) = BC 1447이 된다.
이러한 계산에 근거하고 스핑크스 발 앞 땅속에서 발견된 꿈의 비석이라는 작은 비문에 기록된 아문호텝 2세의 장자의 죽음 사건으로 미루어 보아 모세가 출애굽 할때의 애굽왕은 아문호텝 2세 때가 분명하다.
출애굽 날짜는 유월절 다음날이니 아빕월 15일이 되며 우리나라 절기로 보면 3월 하순쯤에 속하는 날이다.
출발시간은 초저녁 해질 때(신16:6)이었다.
유대인의 하루는 저녁 해질 때부터 다음날 해질 때 까지 이므로 하루의 시작은 저녁 해질 때 부터이다
● 출애굽 경로
이스라엘 민족이 라암세스에서 막바로 지중해 해안도로인 호루스의 길(Horus)이라는 군사도로(약 4일길)를 택하지 못한 1차적인 이유는 이곳에 강력한 불레셋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더 큰 이유는 하나님이 모세와 맺은 시내산 언약을 이루기 위함이었다(출3:12)
라암세스를 출발한 이시라엘 민족의 처음 야영지는 숙곳이었다.
이곳은 라암세스에서 동남쪽으로 52㎞지점인 현재의 텔 엘- 마스쿠타 지역으로 확인되고 있다.
다음날 숙곳에서 발행하여 에담에 장막을 친다.
에담을 광야 끝이라고 하였으므로(출13:20) 이곳은 수르광야가 시작되는 수에즈 운하의 연결 호수였던 『쓴 호수』 곁이라 추정한다.
에담을 떠난 이스라엘은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진을 친다.
이곳은 나일 델타지역에 있던 바알신전을 보고 그 맞은편이라 하였을 것이며 비하히롯 앞이라 함을 볼 때 나일 델타 동쪽 끝 부분 홍해 바닷가 지역으로 판단된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곳에서 병거 600승을 포함한 애굽 군대의 추격을 받았고 홍해를 건넌 것이 출애굽후 6일째 저녁이었다.
그러면 비하히롯 앞 홍해는 어디 이겠는가?.
홍해가 갈라진 위치를 보는 견해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쓴 호수(Bitter Lake)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리라 본다.
홍해(Red Sea)는 히브리어로 얌숩(Yam-suph)을 번역한 말로서 이는 갈대바다(Reed Sea)라는 뜻이고 실제로 히브리인들은 아직도 홍해를 갈대바다라 부르고 있다.
홍해를 붉은 바다라고 부른 것은 마카비 시대 이후 부터이다.
고로 출애굽 당시는 [갈대바다]라 부르는 수에즈만 홍해를 건넌 것이 된다.
이 Bitter Lake는 해수의 농도가 바다보다는 낮았을 것이기 때문에 파피루스가 자라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을 것이다.
쓴 호수 남북으로는 이보다 작은 멘잘레(Menzaleh Lake)호수, 소르보니스(Sorbonis Lake)호수가 있었다.
이들 호수 주변에는 갈대가 우거져 있었을 것으로 판단 되며 하룻밤 사이에 출애굽 한 이스라엘 민족 약 250만-300만명이 홍해를 건넌 것을 상상하면 횡으로 약 5,000명이 한줄로 서서 건너야 하는 데 이 때 홍해가 갈라져야 할 넓이는 약 5㎞ 이상의 광활한 바다가 갈라 져야만 한다는 계산이다.
이것이야 말로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요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리라.
나는 지나번 선지순례 여행시에 이곳을 둘러 보앗다.
우리는 그 홍해를 자동차로 몇 분 사이에 싸분히 통과할 수 있었으니 그때 모세의 심정을 헤아릴수 있었겠는가?. 자문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