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의 「마중물」감상 / 이혜원
마중물
송재학
실가지에 살짝 얹힌 직박구리 무게를
으능나무 모든 잎들이 하늘거리며 떠받들듯이
펌프질 전에 펌프에 붓는 마중물로
내이內耳의 비알에 박음질하듯 우레가 새겨졌다
마중물은 보통 한 바가지 정도
그건 지하수의 기갈이었지만
물의 힘줄로 연결되었으니
물에게도 간절한 육체가 있다
물의 몸이 가져야 할 냉기가 우선 올라오고 있다
정수리에 물 한 바가지 붓고 나면 물의 주기가 생긴다
마중물 아니라도 지하수 숨결은 두근거려서
마중물 받아먹으려는 물의 짐승들이 붐빈다
물의 손을 잡아주니 알몸의 물이 솟구친다
물의 등 뒤에 부랴부랴 숨는 알몸이다
물이 물을 끌고 오는 활차와
물이 물을 생각하는 금관악기가 저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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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이라는 말 참 다정하다. 펌프질로 물을 퍼 올릴 때 압력 차이로 새물이 올라오도록 하기 위해 한 바가지 정도 퍼붓던 물이라 한다. 새물을 맞이하기 위한 물이어서 마중물이라는 것이다. 실가지에 얹힌 직박구리와 나뭇잎들의 균형 감각처럼 서로가 받치고 있다가 힘이 쏠리는 순간 콸콸 시원한 소리와 함께 물이 쏟아진다. 펌프 밑으로 낮게 흐르던 지하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마중물을 부어 물의 육체가 지닌 간절한 힘줄을 이어주면 기어이 물과 물이 들러붙으며 솟구쳐 올라온다.
물의 육체가 눈에 보일 듯 선명하게 그려진다. 물이 지닌 힘줄과 숨결, 손, 알몸이 기운찬 짐승처럼 움직임을 드러낸다. 손만 대면 저절로 흘러나오는 수돗물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물의 활력이 싱싱하게 느껴진다. 활차와 금관악기의 역동적인 느낌과도 잘 어울린다. 활차의 연동장치처럼 긴밀하게, 금관악기에 고여 있던 공기를 밀어 올릴 때처럼 박력 있게 마중물은 물의 몸을 이끌어낸다.
이혜원 (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