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르 4,26-34
그때에 2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27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3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32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34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지네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아마 발이 많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네 다리 수는 보통 15~20쌍이지만, 어떤 것은 170쌍까지 되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발이 많은데도 서로 꼬이지 않고 절도 있게 움직인다는 것이지요.
하루는 개미가 그 모습을 보고서 지네에게 물었답니다.
“나는 발이 여섯 개밖에 되지 않지만 발이 교대로 척척 나가는 것이 신기할 때가 있네. 그런데 자네는 발이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헷갈리지 않고 차례대로 내디딜 수 있나?”
개미의 질문에 지네가 생각해보니 정말로 그런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발이 왜 꼬이지 않은지, 이제까지 어떻게 걸어 다녔는지가 의문이었지요. 그래서 걸을 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 발이 나갈 때 다른 발은 어떻게 하더라? 또 다음 발은 어떻게 하지?’ 그러다보니 지네의 스텝이 꼬이면서 더 이상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모르고 다닐 때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지만, 알려고 하니까 더 이상 꼼짝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우리 사는 모습이 그렇지 않을까요? 모든 것을 다 알아야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또 몰라도 불편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지금 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십니까? 내 머리로 어떤 명령을 내리면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고, 또 피는 어떻게 흐르는지 알아야 제대로 움직일 수가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런 것 몰라도 내 몸은 잔 고장 별로 없이 24시간 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알 수 없는 게 너무나 많습니다. 미래 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지요.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 불안해서 걱정으로 가득할 대도 많습니다. 그러나 알 수 없다고 해서, 미래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절망하고 도저히 못살겠다고 인생을 포기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미래를 모른다고 해서 시간이 멈추지 않습니다. 또 미래를 모른다고 해서 불행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스스로 자라는 씨에 비유해서 설명하십니다. 농부가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농부는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씨에서 싹으로 움트게 하는 힘이 무엇이고,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농부는 모릅니다. 또 하루에 얼마큼씩 자라는지, 그 장면을 지켜볼 수도 없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밤낮으로 자고 깨다보면 어느새 자라있고 결국 추수할 때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 나라도 천천히 다가온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즉, 하느님 나라가 오지 않는 것 같고 그 때문에 답답하지만, 씨가 자라는 것을 알 수 없는 농부의 비유처럼, 하느님 나라는 분명히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모습은 미래에 대한 걱정만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대신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주님의 뜻에 맞게 생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아주 작은 겨자씨가 자라나 큰 나무를 이루듯, 커다란 하느님 나라를 나도 모르는 순간에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행복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행복 이외의 어떤 다른 목적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일이다.(존 스튜어트 밀)
북극곰(‘좋은 글’ 중에서)
창조주가 눈 덮인 북극곰의 모양을 만들어 놓고 마지막으로 곰의 털을 무슨 색깔로 할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흰털을 입힐까 생각했더니 그렇지 않아도 추운 곳이니 아무래도 햇볕을 잘 빨아들이는 검은 털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검은 털의 곰이라면 다른 동물의 눈에 잘 띄어 위험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조주는 북극곰을 아주 힘이 센 놈으로 만들어 북극에서는 아무도 북극곰을 잡아먹을 동물이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창조주는 만족스러웠습니다. 북극곰은 검은 털을 가지고 있어 따뜻하게 지낼 수 있으면서도 힘이 장사라서 다른 동물에게 잡혀먹을 염려가 없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북극곰은 늘 배가 고팠습니다. 먹잇감이 눈에 띄어 사냥을 하려면 다른 동물들이 먼저 검은 곰을 알아보고 멀찌감치 달아나버렸으니까요.
창조주는 결국 북극곰의 털을 다시 하얗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흑곰이 되어 따뜻하게 살 것인가? 백곰이 되어 배부르게 살 것인가?
첫댓글 신부님 감사 합니다....건강 하십시요*^&^*
+평화 기쁨! 컴에 마주할수 있다는 것만으라도 감사한 하루를 시작하렴니다.작은것을 만족하고 어떤것도 작은것의 시작임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감사합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행복 가득하소서 *^^*!!
신부님은 유머러스하시고 참 좋으신분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신부님 오늘도 감사 합니다
심부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 인내를 가지고, 굳이 파고들어서 생기는 확신을 얻는 과정에서 믿음을 까먹고 있기보단, 하루하루의 일상에서 자연스레 알아가는 것들에 만족하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모두들 방긋 웃는 하루 되십시오.
자연의 섭리에 맞게 물 흐르듯이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생각만해도 기분좋은 신부님
순수한 모습의 환한 웃음이 생각납니다

가톨릭회관에서 뵈었지요(꾸르실료 
저는 여성 144찬데 
다음 여성 기수에 지도신부님으로 입교하셨을껍니다

^─^*이 카페가 저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건강관리 잘하시는 한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정말 의심이 드는 순간엔 잘 하던일도 꼬이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믿음의 씨앗은 오히려 우리가 아무것도 의심지 않고, 순진하게 잠자는 것처럼 고요할때에 자라서 열매를 맺게되는 것이었어요. 불신과 확신사이에서 우리는 북극곰처럼 무언가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요.. 자주 내 자신이 강하고 유능해서 척척알아서 잘하기를 바라곤하죠. 하지만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예수님께 바짝 붙어서 살 수 있어요. 의심이 사라지게 하는 방법은 소박한 일상에 열중하는 것일거예요. 신부님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고맙습니다,
빠신부님 좋은비유의 글들 감사합니다.
흑곰으로 살것인가? 백곰으로 살것인가? 가 과제입니다. 커다란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할 수 있도록 저에게도 겨자씨 만한 믿음이지만 굳게 믿고 나아갈 용기를 주소서!! 항상 새로운 말씀속에 머물수 있도록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오늘은 봄을 제촉하듯 비가내렸습니다. 신부님 늘 영육간 건강 하소서..
감사합니다 ..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