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기 아리랑 6......雲霧가 춤추는 小白山 國望峰
황진이 이경진
비로봉에서 국망봉을 거쳐 초암사로 내려온다는 산행 코스를 귓등으로 흘러들었다.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뭐, 가다보면 가겠지 했다. 간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있는가. 뒤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바로 곁에 살 때는 눈길도 안주다가 시간 걸리고 돈 써야 하는 거리에 살게 되니 왜 그리 보고 싶고 알고 싶은지. 옆집 총각 장가간다니까 그제야 섭섭하고 야속해지는 얄궂은 처녀 맘처럼 그립고 그리운 대상이 되어버린 내 고향이다. 늦바람이 단단히 들긴 들었다.
흐린 날이다. 물먹은 솜이불처럼 구름이 무거워 보인다. 눈의 궁전, 바람 공장의 진원지인 겨울 비로봉을 다녀온지 6개월, 소백산 철쭉제도 훌쩍 지나버린 그 곳에 여름이 둥지를 틀었으리라. 세모시 적삼 입고 훌쩍 들어서면 단숨에 초록물이 들어버릴 그런 짙푸름을 펼쳐놓고 ‘자 가져가라! 맘껏 가져가봐라’ 하며 천지에 목향을 내뿜고 있겠지. 상상하며 산에 오른다. 오르면서 생각한다. 퇴계 이황 선생도 소백산을 올랐다고? 멋지다.
자네, 아시는가?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숲을 만나게 된다네. 그들은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있지. 수많은 생명체가 내뿜는 들숨과 날숨이 그네를 타면서 바람을 만들고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태고의 전설을 유지하기 위해 태양을 향해 뻗어 있다네.
‘그래서요?’
자네는 굽어지고 휘어지고 뒤틀어진 그들의 생명력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질 것이오. 그런 그들의 장엄한 침묵을 마주친 순간 그 상념의 바닥에서 무언가를 볼 것이네.
‘상념의 바닥?’ ‘그게 무슨 뜻인가요?’
다녀오시게.
경치를 보기 위해 산에 오르지 말고 자신을 만나기 위해 산을 올라야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야.
‘선생님이 쓴 소백 산행 일기에 그런 말은 언급이 없던데 그 어려운 숙제를 왜 하필 저에게 내 주는 거지요?
허허, 자네는 초입에서부터 줄곧 나를 생각하지 않았는가. 내가 무엇을 봤는지 느꼈는지 그리고 자네 역시 같은걸 볼 수 있을까 없을까, 과연 내가 소백산을 둘러보고 무엇을 얻었을까도 아주 궁금해 하던데, 아닌가?
‘맞아요. 그 유명한 퇴계 이황님이 풍기 군수였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소백 산행 일기를 보니 괜히 우쭐해지기도 하고, 같은 곳을 내가 밟는 다는 게 신기하고 경이롭기도 했지요.’
죽계계곡에서 그를 만나고 싶다.... 그랬지?
‘네!’
하면서 나는 히 하고 웃었다. 모르는게 없군! 하면서.
자네가 나를 부르니 내가 자네를 찾아 올 밖에. 안 그런가?
‘오가는 길목에서만 스쳐 바라보던 소백산을 40년 만에 가마 타고 유람 하셨다더니 이제 선생님은 육신의 무거움에서 탈피하지 않으셨나요? ’
당연히 그렇지!
‘그런데다가 우린 초면도 아니잖아요. 금양정사에서 준량님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러니 저랑 함께 끝까지 동행해 주시면 안되나요? 왜 혼자 다녀오라하나요?’
자네의 생각을 방해하기 싫어서야. 나를 내려놓고 온전히 혼자 만나보고 오게. 반드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네.
상념의 바닥에서 끌어 올릴 것이 있다? 과연 그게 무엇일까. 내가 지어 낼 풍기아리랑에 과연 그 해답을 찾아 적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저기 좀 봐!”
그 순간 누군가가 소리쳤고 그 즉시 1550년도에 재직했던 풍기 군수님은 사라졌다.
바로 앞, 좁은 등산로를 감싸고 있는 수많은 나무들 사이로 한줄기 빛살이 비집고 들어서면서 안개 같은 운무가 숲을 통과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잡힌다.
촘촘하고 투명한 물 고물들이 마치 서로를 의지하면서 짠 그물망을 던져 놓고, 숲의 모든 것을 걷어 올릴 작정을 하듯 신비한 춤사위를 숲속 전체에 펼치고 있다. 빛의 눈이 닿지 않는 그 너머에 깔려있는 어두움은 그래서 그들의 움직임을 더욱 환상적으로 연출시킨다. 그것을 차마 뚫지 못하고 걸음을 멈춘 일행 중의 그 누군가가 우리의 발길을 세우게 한 것이다.
어쩌면 저 너머엔 온 몸에서 광채를 내뿜는 산신령이 희디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지팡이를 짚고 서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미색의 여인으로 둔갑한 천년 여우가 나그네를 기다리며 숯 돌에 칼을 갈고 있는 낡은 기와집이 있을 것도 같다. 아름답지만 안을 감추고 있는 진중한 어두움이 괴괴한 느낌까지 뿜어내어 가슴이 서늘해진다. 다들 그러지 않는가. 산중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벗어 날 수 없다고.
뭐가 있든지 마냥 서 있을 수만은 없다. 죽계계곡은 아직도 멀리 있다.
이윽고 걸음을 옮겨 그 안으로 들어서자 마치 조명을 받은 무대 위에 인조 구름 퍼지듯이 느리게 진행하는 운무의 촉촉함이 내 얼굴을 쓰다듬는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구름 세숫물.
숲은 그렇게 우리와 함께 젖기를 바랐다.
잎 새를 부비고 날아오르는 저 산새의 깃털도 젖었을까? 투명한 유리 바닥에 구슬이 구르듯 청아한 그들의 노래는 낭랑한 소프라노인데, 구름 세수를 한 사람들 마음의 변화를 꿰뚫어 볼 작정인 듯 노장의 소나무가 굽어보고 있다.
우리는 운무에 젖어 더욱 진해진 숲속의 향기에 취해 그만 입을 다물어 버리고, 깊은 숨을 토해 내면서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이런 숲길을 걸을 때 무엇을 느낄까 궁금하지 않다. 모두들 한결 같은 마음으로 걷고 있으리라.
세속의 물질을 향한 욕망과, 틀에 짜 맞추어져 벗어나지 못하는 생활과, 긴장과 불편한 마음을 어색한 웃음으로 위장해야 하는 관계들과, 숱한 제도에 벗어나면 낙오자가 될까 봐 앞인지 뒤인지 분간도 못하고 나아가기만 하는 인생길을.... 좀 털어버리고 싶겠지.
본디 인간과 자연은 일체였음을 자각하면서 그렇게 잠시 잠깐이라도 잊고 싶겠지. 라고 짐작할 뿐이다.
한 번도, 정말이지 단 한 번도 비로봉에 바람이 없는 걸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바람이 없다.
바람공장이 휴업을 하다니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없어요!” 소리쳤다.
소녀같이 말간 얼굴에 보조개를 예쁘게 구부리며 김밥을 내미는 선배 언니가 웃는다.
“나도 처음 봐”
사방을 둘러봐도 그 거세고, 당차고, 매혹적인 바람이 보이지 않는다. 바람의 물결을 기대했던 간절한 소망이 낭패를 보자 온 몸에 맥이 빠진다.
‘그렇다면?’
바람의 프로펠러가 작동하지 않을 땐 풍기에도 바람이 없었나?
기억해 보니 그런 거 같다. 사시사철 씽씽 바람이 분 거 같지는 않다. 여름엔 무덥고, 바람 한 점 없이 쨍쨍한 날들이 우리들 등짝을 빨갛게 태웠던거 같다.
그랬구나, 비로봉 바람 공장도 철 따라 수위에 맞춰 풍속계를 조절했구나. 왜 그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풍기의 겨울바람만 뇌리에 새겨져 소백산 바람 공장은 연중무휴 인줄 알았는데 아! 이렇게 작동을 멈출 때도 있구나 그랬다.
산은 올 때마다 얼굴이 다르고, 산은 오른 만큼만 속살을 보여준다더니 소백을 이루는 모든 봉우리를 구름 장막으로 뒤 덮은 최고봉이 오늘은 운무의 운치만 보고 감상문을 제출하란다.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비에 젖은 밥을 먹으면서 사람들은 웃는다. 휴대용 우산이 하나 둘 펼쳐지고, 발길을 재촉하듯 동행을 불러 모으는 사진기 주인의 목소리가 급하다.
신기하기도 하지. 산 정상엔 늘 사람들이 많다. 비 오고 눈 내리고 바람이 불어도 정상엔 늘 산중보다 사람이 많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을까. 세상살이 정상에 오르지 못한 보통 사람들의 하소연과 소리 없는 아우성을 이 산은 얼마동안 지켜봤을까.
퇴계 선생은 어떤 염원을 내뱉었을까. 지금 정상의 자리에 있는 정치인들은 과연 몇 명이나 큰 산을 찾아다닐까. 다들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다고 하겠지. 찾아와도 더 높은 꼭대기만 바라보는 건 아닌지.
저 굽이쳐 흐르는 산맥들의 위대한 불변함에 겸손해지고, 소리 없이 천지를 감싸안은 자연의 위용에 자신을 낮춘다면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좀 알텐데.
그 많은 바람이 어디쯤 숨죽이고 있는지를 상상하며 다음 코스를 위해 일어설 때까지 비와 구름은 듀엣을 이루며 말없이 산천을 적시고 있었다.
“저기가 국망봉이야”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가며 바라보니 뽀송한 흰 이불을 덮고 빼꼼히 머리만 내밀고 앉아 있는 봉우리가 보인다.
순흥에 살았던 배순이라는 사람의 효심이 지극하고, 저 봉우리에 올라 임금님의 명복을 빌었다하여 국망봉(國望峰)으로 불리게 되었다지. 500년 전 유림사회에서 일개 대장장이였던 사람이 교육을 받았으면 얼마나 받았고, 형편이 좋다면 또 얼마나 좋았겠는가.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알아야하는 인간의 도리가 충효이긴 하지만 아무리 가르쳐도 실천하기 어려운 게 또 그것일 수 있다. 이황 선생이 직접 불러다 극진히 칭찬할 정도로 그 본보기가 훌륭했다하니 그저 지어낸 설화는 아닌것 같다. 그 사람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을 배점이라 짓고 그 미담의 전설이 오백 추야 길이 남았으니 양반 불변의 시대에 보기 드문 상민의 공적이다. ‘전설의 고향’ 시나리오로 채택되기엔 밋밋하고 ‘내 고향 사랑방’ 소재로는 그럴 듯하다. 그렇지만 대장장이 라는 그의 직업은 참 맘에 든다. 아....대장간에서 들려오던 아련한 망치소리. 그립다.
처음 가는 길이니 설렘이 앞장서고 함께 가는 길이니 든든함이 뒤따른다. 능선을 따라가서인지 깊숙한 비탈길이 아니고 좁은 오솔길의 연속이라 발걸음이 가볍다.
한 달에 두 번은 국망봉을 오른다는 대선배님들이 생각난다. 짱짱한 노익장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다.
다 진줄 알았던 철쭉이 군데군데 철늦은 과시를 하는데 홀로 피었으니 애처롭고 고귀하다. 한 무더기 철쭉의 잔해가 길에 깔려 있어 그걸 즈려밟고 가자니 발끝이 조심스럽다. 철쭉은 진달래와는 다른 꽃이건만 속절없이 32세에 요절한 김소월님이 떠오른다.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 된 것은 한국 사람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한의 정서를 읊었기 때문이라지. 아깝다. 죽기 전에 소백산을 다녀갔다면 또 하나의 역작이 나왔을 텐데. 무섬마을의 사계를 천상의 언어로 표현한 강문숙 시인님이라면 소백의 사계를 어떻게 그려낼까. 그녀라면 분명 내가 보지 못한 걸 볼테지.
옛날엔 산을 두려워했다. 아니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깊은 산은 꼭 가야 할 사람만 갔다. 맹수가 살고 귀신이 홀리는 곳이라 나 홀로 등반은 엄두도 못 내던 곳이었다.
나 어릴 때만 하더라도 어린애가 산에 가면 진달래귀신이 피를 쪽 빨아먹고 껍데기만 버리니 절대 가면 안된다는 소릴 들었다. 진달래꽃이 붉은건 아이의 피를 빨아 먹어서라고 누가 그랬다. 물론 사실은 그게 아니다. 그 녹진녹진한 봄 햇살의 애무를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화다닥 붉어진 것이리라.
조선시대엔 매를 잡는 매사냥꾼이 기거하고, 산을 일구어 굶주린 허기를 채우는 화전민들이나 산을 찾았다. 일부러 산수를 즐기자고 험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던 산이 언제부턴가 일부러라도 찾아가야 할 장소로 열려졌다.
배고픔과 허기진 인생살이의 종점지로 선택되었던 이곳을 이제는 배고픔은 채워졌지만 또 다른 무엇인가가 상실된 사람들의 위안지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산은 수많은 사람들을 맞이하면서 정다운 친구들을 잃어버렸다. 바람을 타고 멋지게 창공을 가르던 솔개를 잃어버리고, 덩치 큰 동물들을 떠나보냈다.
언제부턴가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대상이 되어버렸고 인간과 분리된 상품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시공을 달리하고 태어난 서양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동양의 공자 맹자도 천지인(天之人)을 부르짖으며 인간은 자연과 동일하다고 의견일치를 보았는데, 후손들이 그들을 민망하게 만든다. 자연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아직은 침묵하고 있는 산. 느리게 그러나 조금씩 그들은 분노하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몰려 살고 있다. 도시 인근 산의 정상에 오르면 가장 먼저 아파트 숲이 등장한다. 어마어마한 그들의 군락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무엇을 소망할까. 나는 그것들을 볼 때마다 저 많은 아파트 중에 내 아파트가 한 채도 없다는 사실만 부각되어 그만 기가 죽곤 했었다. 그러나 그걸 알까? 인간은 언제나 자연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걸. 그 누구도 죽어서 59평 아파트에 묻어 달라거나 자기가 갖고 있는 빌딩 지하에 묻어 달라 하지 않는다. 산에 바다에 흙에 그것도 아니라면 나무 밑에 뼈를 묻어 달라한다. 아! 그것도 힘들겠다구요? 그렇다면 산천에 뿌려주세요 한다. 아파트와 화폐를 이고 저승길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산은 그걸 깨우치게 하지만 사람들은 늘 망각하고 산다.
안으로 가두고, 단절시키고 폐쇄시키는 그 아파트가 사람들의 영혼을 쥐고 흔든다. 농촌은 텅텅 비었는데, 나부터 도시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어느 순간 좁은 철쭉 터널을 벗어나자 탁 트인 들판이 나타난다. 코앞에 국망봉을 떠받치고 있는 능선 사이로 거짓말처럼 햇살이 비춰지고 일시에 산맥들이 꿈틀거리듯 시야 속에 잡히자 나는 그만 환호성을 질렀다. 감정의 기복이 저 산의 높낮이를 꼭 닮은 한 여자의 비명 같은 환호성은 “사랑해!” 이다. 두 손을 입가에 모으고 뱃속의 기를 한껏 끌어당기고 온 힘을 다해 내질렀다. 야호! 보다야 훨 낫지 않은가.
사랑해!
나도 모르게 튀어 나간 생뚱맞은 이 낱말의 진의가 궁금했는지 뒤에 오던 한 선배님이 묻는다.
“경진씨, 누구를 그렇게 사랑해요?”
뭐라고 대답했는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 순간 정확히 기억 할 수가 없다.
“모두 다요!” 라 한 것 같기도 하고
“이 산을요” 라고 한 것 같기도 한데 내가 얼마나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여자인지 증명해 보이는 대목인 건 틀림이 없다.
다만 지금 이 순간 그 때를 반추해보니 그 장엄한 광경에 잠시 혼이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해발 1500미터도 되지 않은 산꼭대기 풍경에 가슴이 터진다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면 졸도하겠구나 비웃을지 몰라도 어쩌랴, 나는 그랬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기어이 갔으니 감격해서 그랬고 이 아름다운 산이 내 고향을 품고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그랬고 이 오묘한 풍경을 글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이 그랬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자괴감에서 벗어 날 수 있다는 게 또 그랬다.
국망봉 봉우리에 걸터앉은 암석에 올라서서 물기 쭈욱 빼고 온 산천을 휘감으며 떠 있는 구름밭을 바라보는데 한줄기 바람이 젖은 몸을 스친다. 짜릿하다. 드디어 긴 구름 터널을 뚫고 태양이 국망봉을 비추고 소백을 밝힌다. 마치 연리지(連理枝)처럼 한 뿌리에서 연결되어 솟아 오른 듯한 산맥의 감춰진 골들이 속속 드러난다. 저게 모두 한 덩어리다. 일제히 등을 구부리고 앞산에 기대고 뒷산을 이끈다. 나는 기껏 살아도 2060년대를 살 수 없지만 저들은 3060년을 살아도 끄떡없으리.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다.
떠오르는 대로 보이는 대로 시를 짓는다.
아! 향수(鄕愁)에도 색깔이 있다면
여름은 청록이리라.
애한의 물줄기 품고 앉아도 청록이리라.
심중의 폐수 같은 오욕의 한숨 다 내뿜어도
흔들림 없는 내 고향의 여름은 청록이리라.
나를 벗겨 놓고 재물로 삼아도 좋으니
국망봉이여! 너는 천만년 청록으로 살아라.
-국망봉에서 황진이-
내가 나에게 물었다.
‘정말 벗어났지?’
그래.
‘힘들었지?’
그래.
‘스스로 벗어나지는 못 했어 그치?’
맞아.
‘많은 사람들이 나를 도와줬어. 그들은 잘 모르겠지만 난 알아’
맞아.
‘조금만 늦었어도... 못 빠져 나왔을 거야.’
그래.
‘나 같은 사람들... 세상에 많겠지?’
너무 많아.
‘나도, 누군가를 도우며 살아야 해’
그래.
‘가진 게 없는데도 왜 이리 행복할까?’
흠.......또, 충동적이군.
사실, 또 충동적일까 싶어 겁나하며 얼른 생각을 멈추고 굽이굽이 이어져 한 덩어리인 그들에게 시선을 준다.
깊고 깊은 저 골짜기를 뒤져 산삼을 캐 올리는 심마니들의 거친 숨소리가 아직도 남아있는 곳. 신라 때부터 왕에게 진상품으로 올렸던 산삼의 효능이 너무 강력했던가. 진상품이 공물로 변하고 수탈로 이어져 극심한 백성의 고통을 보다 못한 주세붕 원님이 산삼을 재배하다 발견한 것이 풍기 인삼의 기원이라지. 일승지가 된 것도 소백의 지형 때문이요. 사과 맛이 명품인 것도 소백이 우리 고향을 감싸 안은 덕분이라지. 저 산이 잉태하고 분만하면서 시작된 내 고향의 역사를 다들 얼마나 알고 있을까. 무지했던 여인이 뒤늦게 고향 공부 좀 했다고 넋두리 같은 찬사를 늘어놓아도 쉽사리 동요하지 않는 큰 산. 그래서 결코 소유할 수 없고 절대 망가뜨리면 안되는 큰 산이요, 죽을 때까지 짝사랑해도 억울할 거 하나도 없을 장군산이다.
소백산에 오르거든 그들이 꿈꾸는 우주와 직접 대면해보라. 자신이 품고 있는 우주와 충돌하는지, 화합하는지 확인해보라. 황폐해진 묵은 꿈의 수레바퀴가 어쩌면 작동을 시작할 수도 있다. 이 혼란스러운 시대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저 지조 높은 소백산이 그렇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수치심을 주지 않으며,
두려움을 가라앉히며,
나긋나긋한 위로까지 덤으로 얹은 희망의 빛줄기를 줄 수 있으리라.
그런데 여기까지가 다였다. 산을 걷는 내내 온갖 상념이 떠오르기는 했고 갇혀진 생각이 물꼬 터지 듯 쏟아져 나오기는 했다.
깊은 산중에서 생명을 얻기 위해 굽어지고, 휘어지고 뒤틀어진 초목을 유심히 바라보며 그들이 향해 있는 것이 태양이라는 것도 알았지만, 단순한 교훈만이 상념의 언저리만 긁어댈 뿐 이황 선생이 얻어 오라는 해답이 뭔지는 모르겠다. 그들의 장엄한 침묵을 한껏 긴장하며 노려보기까지 했지만 내 상념의 바닥에서 튀어 나올 거라는 그 무엇은 그들처럼 침묵했다.
내가 무슨 도를 깨우치기 위해 정진하는 성현도 아니고, 진리를 구현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선각자도 아닌데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나중에 혼자 와서 돗자리 깔고 명상에라도 잠겨보면 어떨까 했지만 것도 가당찮다. 혼자서는 마을 뒷산에도 겁 많아 가지 못하는 주제에.
어쩌면 나의 망상이 그런 환영을 만든 것은 아닐까?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 삶의 갈등을 소백산에 기대어 은근슬쩍 답을 구해보려는 심산에서 삐져나온 것. 어쨌든 하산 길이 남아 있으니까 산을 내려가다가 발견할 수도 있겠지. 그 곳에서 이황 선생의 숙제를 풀 수 있음 다행이고, 아님 말고 하면서 초암사 내려가는 길로 접어드는데.....
초암사 내려가는 그 길이 죽계계곡인줄도 모르고 내려가는데...
나는 그 곳에서 금양정사를 만났다.
맨 처음 금양정사를 발견한 환희와 놀라움과 신비로움에 떨렸던 그 때의 나를 만나고 말았다.
보물은 언제나 이렇듯 깊숙이 숨어있다.
상념의 바닥에서 뭘 건져 올리지도 못한 채, 이황 선생도 까맣게 잊은 채, 나는 죽계에 취해버려 몽롱해졌다. 술에 취한 이태백의 몽롱함을 끈질기게 상상했다.
그래서 결국 죽계계곡은 또 다시 단독으로 아리랑 고개를 넘게 되었다.
한번 본 것으로 성이 차지 않아 한 달 후 다시 한번 선배님들의 배려로 죽계를 찾아 갔다. 억수 같이 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금양정사를 보자마자 ‘꿈꾸는 금양정사’ 가 단숨에 떠오른 것처럼 죽계계곡에 들어선 그 순간 바로, 그에 어울리는 제목이 떠올랐다.
제목만큼 멋진 글이 나와 주길 소망하지만......
늘 그렇듯 자신은 없다.
이어서 竹溪九曲편을 쓰고 있습니다
풍기 아리랑으로 고향의 아름다움과
자랑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시는
황진이 이경진씨
몇 달만에 선배님 얼굴 뵜지요. 겉으로야 그 모습 그대로이더만..선배님 기수들의 협동, 단결, 사랑...모두의 표본입니다. 그리 되기까지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그럼에도 유지 시킴 또한 만만치 않겠지요..선배님은...고치령, 국망봉을 거침없이 달리는 무사로 살 재목인데...고마워요..
야속한 퇴계선생님... 황진이랑 등산을 계속 좀 같이 하시지..^^. 가까이 있을 땐 그 존재가 너무도 당연하여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는 내용에 주변을 돌아보게 됩니다.
어제, 나그네님이랑 구곡을 둘러보고 내려오면서 금계 계곡 수문장님들을 쳐다보며 제가 그리 말했답니다. 죽계 구곡의 맑은 물에 감탄은 했지만 저 소나무가 수문장으로 계신 금선정을 따라 올 수가 없다고...아! 그런데..강풍에 그리 됐는지, 폭우에 그리 됐는지 쓰러져 있는 소나무님을 보는 순간...너무 안타깝고 속상해서...'일어 나. 일어 나 소나무!' 그를 일으켜 세울 방법은 없는 건지..그 아린 마음 끝에 문여님이 속절없이 떠 올라서..
제처이 나 석분이 (닉)어진으로 찿아갈께~
글 자알 읽었어요. 세상을 잘 조각하는 님 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합장-
ㅎㅎㅎ 오라버니..무슨 가당찮은 말씀을 그리 하시나요..지 인생 하나도 조각하지 못해 비틀거리는 어리석은 누이에게..
우리 어머니가 초암사에서 지극정성으로 아들을 원했더니 내가 태어났다나 ㅋ 까마득한 옛날에 가 보았던 국망봉 자네의 감칠맛 나는 글 솜씨 덕분에 젊은 시절 그 좋았던 때를 함 댕겨왔내그려. 그 때 그시절 그 친구들과 다시 한번 자네글을 손에들고 읽으면서 다녀오고 싶어지는군. 더운데 좋은글 써서 읽어볼 수 있도록 해줘서 넘 고맙내 항상 건강도 잘 챙기게나. 요즈음 독서실 명품 만드느라 오랫만에 들려서 좋은 글 잘 읽고 가네그려
존경하는 스승님..오늘도 변함없이 어린 제자의 등을 두드려주십니다. 저는 또 작아져서 그 넓은 사랑에 안깁니다. 초암사 입구를 지키고 있는 천년 바위를 감싸고 올라오는 덩쿨잎사귀를 바라보며 얼마나 감회에 젖었는지..울 쌤의 출생 비밀을 그 천년바위님은 알고 계셨겠지요..스승의 어머님도 어제 저처럼..그 바위를 어루 만지며 간절히 염원하셨겠지요..두 여인네의 소망은 다르지만 닮았겠지요..한 분은 옥동자를..또 다른 여인은 초암사 풍경 소리같은 죽계계곡의 단아한 아리랑의 탄생을...사랑합니다..선생님^^
풍기아리랑 읽을때마다 내가 참 좋은곳에 살고 있구나를 새삼 절실히 깨닫습니다..아무래도 저는 복받은년인가 봅니다.
풍기에서 좋은사람들과 더불어 이렇게 살고있는것도 참으로 큰복인가 싶습니다.
걱정마십시오~~ 풍기 아무데도 못가게 제가 꼭 부뜨러 매고 있겠습니다...좋은글 맘편히 잘읽었습니다..
이런, 어여쁜 세실님이 제 방에 머물다 돌아갔군요..철쭉꽃타래 줄로 꿰어 목에다 걸어주고픈 고운 후배님..좋아서 어쩔 줄 몰라 헤벌쭉 웃고 있는 나를 상상해줘요^^이렇게..겁도 없이 흔적을 남기고 살다가..혹여 잘못되면 어쩌나..실망을 주면 어쩌나..걱정이 팔자가 된 나..너그러운 선배님들이야,,그렇다치고..이리 고운 후배들께 질타 받고 살면 안되는데 말이예요*^^* 세실님은 잘 모르지요? 님을 바라보기만 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지, 흐뭇해 하는지..절대 떠나지 말아줘요. 부탁해요^^
세라복 원피스를 입고 나풀거리던 예뿐 아가야가 그케 컸었구나~~동문에 가서 언니인 경애한테 소개받고 생각이 않났었는데 오는길 다시 생각하니 아~~어쩜 예쁘게두 자라고 이쁜 모습 그대로에 글까정 감탄을 짓게하네 고향사랑 구구 절절이 내려가는 소백산이야기에 가슴 뭉클하게 하네~~
전, 언니를 한 눈에 알아봤지요^^ 같은 골목에 나란히 붙어 살았으니 같이 찍은 사진이 뭐 필요하겠어요^^ 저처럼 언니도 고향을 떠나 살고 있네요..소식도 모른채 수십 년이 지나고 모습이 좀 달라져도 결국엔 우리 고향이 자리를 마련해주었네요..어여어여 늦기 전에.. 가슴 한 구석 실팍한 정들 느끼며 살라고*^^* 예쁘게 봐 주어 고마워요 언니..자주 보면서 우리 엉겨 살아봐요***
미안하고 또 ~~~그러나 넘 이쁜아씨 ~~넘 좋아요 그케 엉겨서 사라보면서 존 야기 슬픈야기 주고 받으면 함게 살자구나요 언제나 언제/가지 고향의 청취를 느끼며 사랑해 또 사랑하면서 ~~~~
경진~ 전언을 받고도 일주일만에 들어왔네~ 미안해요^^ 개강을 했고, 또 문화행사가 시작되는 계절이라 그런가 바빴어요. 여전히 활달한 필체에 이야기꾼의 재질을 발휘하니 보기 좋아요. 아마도 풍기 아리랑은 진이의 끝나지 않는 사랑노래가 될 것 같네^^ 그리고 은근슬쩍, 말없는 말로 나에게 더 좋은 글 쓰라 채근도 하시고~~^^ 정말 소월의 시처럼 우리 정서에 꼭 맞고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네요. 정진, 또 정진합시다. 함께. 건강도 잃지 마시고~^^
맡으신 일..진행 속도는 어떤가요? 내면의 밀도가 저랑은 비교가 안되니..정말 멋진 대본이 탄생되리라 믿어요..기회가 된다면..이제껏 미룬 대구행..오페라 개막에 맞추어 가 봤으면..아름다운 음악을 입힌 언어의 예술을 감상했으면..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간 김에 사랑하는 내친구 곰순이도 만나고, 나만다리님도 만나고 왔으면..*^^*
시보네 젊은시절 수석에 매료되어 남한강 자락을누비고 다닌적이있습니다. 그시절 분재수석이란 잡지가 있었는데 그잡지 편집장님께 수석에 관한 글을 써서보냈더니 답장이 왔습니다. "님께서 쓰신글은 너무 남에게 자랑할려고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보고느낀대로 읽는사람들이 공감하고 무언가생각을 하게하도록 다듬어 주십시요" 이런내용이였습니다. 그때 나는 짧은 생각에 지가 먼데 하였습니다.경진씨의 "풍기아리랑" 고향의 구석구석을 새롭게보고 몰랐던 우리고향의역사를 께우고 알리는 발전해가는 모습을 봅니다. 정말 대견하시고 휼륭하십시다. 어렵지요 살어야하고 기대에 부응해야하고 그러나 풍기아리랑은 멈추거나 놓을수없습니다
혼자 썼나요? 꼭 저 혼자 쓴 거 같이 말씀하시네요^^몇 번 퇴짜 맞았는지 전 확실히 기억한답니다... 이 것과 저 것을 요구하시면..저도 그랬잖아요..'그럼 시보네님께서 대충 끼워서 쓰시면 안되나요? 너무 힘들어요' ..'어이가 없니더. 이 경진씨 글을 이경진이 써야지 그걸 말이라 하니껴?' ㅎㅎㅎ 지금 생각해도 어이 없는 강짜지*^^* 아!! 그런데 어쩌면 그리도 욕심이 많으신지..새벽 4시가 다 되도록 수정 된 글을 기다리시고..전 쿨쿨 자고..얼마나 죄송하고 민구한지..그래도 잘 썼다 칭찬해 주시고...죄송합니다. 선배님...철딱서니 없는 후배 이뻐해주시니 고맙습니다..칭찬은 혼자 독차지하면서..나중에 보면 내가 더 좋아하면서..
이곳에 걸음 하셨군요~ 앞으로 (닉)어진으로 찿아뵙겠습니다~건강하세요~
아직 소백산아래에는 깨알같은 이야기가 가득 숨어있습니다. 아름다운 고향 모두를 끄집어내어 그깊고 맑은 감성으로 노래불러 주십시요. 고향은 경진씨의 풍기아리랑이 소중하고 자랑으로 빛나도록 만들것입니다. 고향의 이야기가 한권의 책으로 만들어져 풍기를 사랑하는 사람들 가슴에 위안과 잔잔한 감동으로 기억되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충분히 하실수 있는 재능이 있고 고향의 바탕속에 살어 오셨기에 가능합니다. 여섯번째 풍기아리랑 한줄한줄에 담긴 뜻이 고향의 또 다른 자부심을 가지게 합니다. 늘 하는 말이지만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유난히도 더운 여름이 아직 물러서지 않고 심술을 부립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요 시보네님..인삼도 써야지, 사과도 써야지..두번 째 인견 이야기도 써야지..부석사도 쓰고 싶고, 풍기 오일장도 쓰고 싶고, 이 곳엔 공개 못할 사랑이야기도 쓰고 싶고...아- -큰 일이네요..공부도 해야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소설도 써야하고..돈도 벌어야하는데..시간은 갈 줄만 알지 되돌아 오지는 않고..언제 다 하지요? 올해 다 못하면 내년에 해도..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요? 아-- 그래도 언제 다 할까요? 한번 씩 머얼리 머얼리 도망가 숨어 버리고 싶은데...그럼 전 또 패배자가 되겠지요? 아이고....*^^*
이경진 님! 매번 감동하면서도 댓글 하나 못 달아온 이 사람이 이 새벽엔 용기 내어 추임새를 넣어 봅니다. 풍기아리랑을 통해 우리네 출향인들은 머지 않아 돌아가야할 곳이, 아니 적어도 가끔씩은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딘지를 매번 새긴답니다. 풍기가 문재의 원류임을 아는 이가 많지 않을 텐데 경진님의 글을 볼작시면 그걸 어렵지않게 감 잡을 수 있을 테지요. 아들이 요절해 며느리를 재출가시킨 퇴계 선생이 서울 가는 길에 남의 집 며느리가 된 그 며느리의 밥상을 받고 눈물을 감췄다는 옛이야기를 오래전 읽고 가졌던 그 감동 메이커와 산을 오르며 대화를 하는 특권은 어찌 아니 부러울 수가 있겠습니까? ^^* 홧팅!!!
이렇게...만났네요 선배님*^^*아리랑 고갯길 넘어가는 황진이 발걸음이 선배님 추임새에 신명이 날 판입니다..문재의 원류인 우리 고향의 정기가 어디로, 어떻게 뻗쳤는지 두고 볼 요량입니다. 제 아리랑이 풍기 사람을 모이게 하는 역활을 한다고..어떤 친구도 말했지요..그 말을 듣는 순간 겸손 떨며 사래짓도 못하고..당연하다는 듯 교만도 못 떨고..아!! 이 일이 내게 보람을 가져다 주는구나..싶어서 정말 행복했었지요.저는.. 우리 고향인들의 자긍심과 그들의 아쉬운 염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그런 날이 온다고 확신합니다..고향 마당에 베이스 캠프를 치고,,고향을 빛내고 나라를 빛 내 줄 큰 꿈을 품고 계신 분이길.... 소원해봅니다
하얀 인견이불 덮어씌워 소백산 바람공장에서 불어오는 시원한바람 침실속으로 불러들여 더위를 물려내듯.... 하얀 천에 형형색색 물감으로 물들여 맞춤옷 만들듯 쥐락펴락하는 님의 필체속 대화들이 수세기동안 잠자던 소백산 신령님의 잠을 깨워놓은듯합니다... 황진이의 글이 새삼 위대함을 실감하며 글 잘 읽고갑니다
윗 글보다..이번 답글이 더 난감하네요..위대하다니요..가당찮은 절찬에 황진이는 당혹스러워...어이하나 이 일을.^^ 처음보다, 세번째 보다,,그 어떤 글 보다 나중에 나오는 글에 고행의 기도 시간은 길어만 지는데..바닥이 드러날까..고민이 깊어 가는데..어이하면 좋을까나.......그래도 ..고맙습니다^^
천상 여자! 많은 재능을 부여받은 사랑받는 여자! 인기는 하늘을 찌르는 여자! 애교만점인 여자! 그 비결을 나만 살짝 가르켜줄 수는 없을까...?.........닉이 황진이여서일까...?ㅎㅎㅎㅎ 9월의 약속은 기억하고 있겠지요........................?
뜨거웠던 한여름, 우리네 거랑가와 닮은 물을 끼고 앉은 어울림에 분주함이 땀방울 꽤나 흘렀겠네요..오랫동안 거동이 없으시길래 뭔지 모르지만 거동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있나보다 짐작만 했지요..여자는...거기서 거기고, 남자는 저기서 저기지요^^ 재능이 많고, 인기가 많고,애교가 많아도..날 끼워 맞출 갈비뼈 주인을 잘 만나야하거늘..언니한테 그 비결까지 주고 나면..에고, 황진이 뭔 맛에 살아요^^9월의 약속! 담주중에 지킬 생각인데요..불편하게할까 봐, 폐만 끼치고 올까 봐 걱정이네요..시보네님 모시고 갈게요..제 친구도 갈 수 있다면 함께 갈게요..귀찮아하면 안돼요 언니*^^*
우~와 그립던 國望蜂... 태백의 해풍를 맞으며 수백년 세월속에 감추어진 小百山 실타래의 專機를 황진이가 수놓을 것이야!! 과연 황진이 로소이다~ 인삼.사과.인견. 부석사~줄줄이 바닷가 모래알처럼이나 수많은 사연들의 노래까지도~♪~♬ 만나서 반가웠네 이제서야 어진언니로 소개하게되어 기쁘다후배. 앞으로 진료에 기대할께 황진이 파이팅~~
비 내리는 저녁 나절 컴을 켰다가..갑자기 늘어난 댓글 수에 깜짝 놀랐어요*^^* 두루두루 아시는 분들께 인사를 다 하셨네요..제 댓글 구경 하러 오시는 분들도 놀라시겠어요^^ 어진이라...경자로 이십년 살고, 경진이로 25년 살고, 황진이로 몇 년을 살게될지 모르지만..전 늘 그 분께 송구스럽답니다..기생이 아닌 문학가이자, 멋진 열정과 뚜렷한 소신을 가진 황진이를 닮아야 한다고..생각은 하지만...어진언니, 어진 누이의 멋진 어감처럼 오랫동안 불리우시길...고마워요^^
이리도 잘 쓴 글에 어설픈 답글을 달 수가 없어 몇번을 망설이다 지금에야 글을 쓴다.......역시 황진이 답다~~~~
언니..안 쓰셔도 괜찮아요*^^* 제가 언니 글에 댓글 안달면 괘씸해요? 이 댓글이라는게...참 묘하긴 하지만..주객이 전도 되면 안되니까..초월하려고 늘 애쓴답니다. 어쩌다 저를 알아 보시고 얘기들을 하세요..댓글은 못 달지만...꼭 읽어본다고..감동의 물결이 두둥실 춤추게 한답니다. 보이지 않는 그 분들이..절 더욱 겁나게 하면서 겸손하게 만들어 주는 걸요.. 아직도 언니 글을 읽으면 눈물이 맺혀요..지나간 상처가 언니를 할키고 있는 걸 느끼기 때문일 거예요....주위 분들의 응원 소리가 언니를 일으켜 세우네요..저를 세운 것처럼*^^* 화이팅!!
선배님 글은 항상 청산 유수네요, 같은 곳을 다녀왔는데 난 왜 느끼지 못했을까?????
오랜만이네요^^ 청산유수라하니 칭찬이라 받아야할지...청산유수같이 읽히려니 그 고갯길 다듬기 오죽이나 힘들었겄소*^^* 바둥바둥 악을 쓰지요..별고없으시고, 무탈하지요? 다음에 한 번 더 다녀와 보시지요..마음 먹기 나름이라 하더이다..같은 자리 같은 형상 내 맘 먹기에 달린 게 아닌지...목각인형 같은 대장군 부부..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