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매운맛을 특히 좋아한다. 《단군신화》 속 마늘부터 시작해 김치, 육개장, 매운탕 등 다양한 매운 음식이 우리 역사와 함께해 왔다. 하지만 매운 음식은 사람에게 그리 쾌적한 기억을 주지 않는다. 머리를 띵하게 하고, 땀이 나게 하면서 자극적이다. 먹고 난 후에는 속도 쓰리다. 그런데도 매운맛을 즐기는 사람은 “매운맛 없이는 못 견디겠다”고 말한다. 과연, 매운맛의 정체는 무엇일까. 건강에는 괜찮은 것일까. 매운맛에 대해 알아봤다.
- ▲ 매운맛은 ‘중독성’이 있다. 자극적이고 고통스러우면서도 왜 매운맛을 찾게 되는 것일까?(사진=김범경 St.HELLo)
#1 매운맛의 정체가 궁금하다
혀에는 기본적으로 단맛, 신맛, 짠맛, 쓴맛의 네 가지 미각이있다. 여기에 매운맛은 포함되지 않는다. 매운맛은 미각신경자극이 아니라 촉각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일종의 통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운맛은 혀가 아닌 입안 전체가 느끼는 맛이라고 말한다. 매운맛은 매우 주관적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춧가루 맛을 맵다고 하는 반면, 서양 사람들은 고추를 ‘타오르는 맛’이라고 해서 ‘핫(Hot)’이라고 말한다. 대신 후추를 ‘맵다(spicy)’고 말한다. 매운맛을 내는 성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매운맛을 내는 대표적인 성분 4가지는 다음과 같다.
◇ 캡사이신
매운맛 하면 가장 먼저 캡사이신이 떠오른다. 주로 고추에 들어 있는 식물 영양소다. 교감신경을 활성시켜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 주고, 엔도르핀을 분비시켜 스트레스를 해소해 준다. 캡사이신 농도는 스코빌(SHU) 지수로 측정할 수 있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피망은 ‘0 스코빌’, 청양코추는 ‘1만 스코빌’, 타바스코는 ‘3만~5만 스코빌’ 정도다.
◇알리신
마늘과 양파에 들어 있는 매운맛이다. 알리신은 강력한 살균 및 항균 작용으로 각종 세균성 질환에 효과 있고, 혈액순환과 소화를 돕는다. 하지만 피부나 위 점막을 자극하므로 위가 약한 사람은 삼가야 한다.
◇피페린
후추의 짜릿한 매운맛은 피페린 때문이다. 이는 위액 분비를 촉진시키고, 위나 장 속 가스를 제거한다. 최근에는 피페린이 몸에서 지방 세포 형성을 막아 주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다이어트를 위해 모든 음식에 후추를 넣어먹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시니그린
겨자나 고추냉이를 먹을 때 코를 톡 쏘는 알싸한 매운맛이다.
- ▲ (사진=김범경 St.HELLo)
#2 매운맛 궁금증 풀이
매운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 흔히 특정한 과일 음료(쿨피스)를 함께 파는 것은 이 음료가 매운맛을 효과적으로 달래 준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매운 냉면을 먹은 후에는 찬 육수가 아닌 뜨거운 육수를 마시라고 한다. 너무 매운 음식을 먹고 병원에 실려간 사람도 있다. 매운맛과 관련한 여러 가지 속설이 많다. 과연 맞는 말일까? 궁금증을 풀어 봤다.
Q1. 매운 음식을 먹으면 왜 얼굴이 빨개질까?
이는 캡사이신 성분 때문이다. 캡사이신은 휘발성이 있어 화끈한 느낌을 주고, 혈관을 확장시켜 피가 몰리게 한다. 또 매운 음식은 카테콜아민류의 호르몬 분비를 자극하는데, 이는 열을 발생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매운 음식을 먹으면 체온이 높아지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이다. 안면홍조가 있거나 피부가 민감한 사람이 매운 음식을 먹으면 증상이 악화되는 이유다.
Q2. 스트레스 받을 때는 왜 매운맛을 찾을까?
스트레스 받을 때 매운맛이 당긴다는 사람이 많다. 이는 바로 매운맛의 중독성 때문이다. 매운 음식을 먹을 때는 뇌에서 통증을 완화시키는 호르몬인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엔도르핀이 분비되면 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런 반응이 반복되면 스트레스 받을 때 매운맛을 느끼지 못하면 허전하고 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동시에 뇌 속에 있던 매운맛의 경험이 자꾸 매운맛을 먹도록 명령한다. 매운맛의 중독성은 몸에 해가 되지않는 선에선 즐겨도 된다.
Q3. 왜 점점 더 매운맛을 찾게 되는 것일까?
매운 짬뽕이나 카레를 파는 음식점에 가면 매운맛 등급이있다. 처음에는 1~2단계도 잘 적응하지 못하던 사람이 자주먹다 보면 5단계 매운맛도 너끈히 소화해 내기도 한다. 매운맛의 내성 때문이다. 매운맛에 내성이 생기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매운것을 찾게 된다.
Q4. 매운맛이 다이어트에 효과 있나?
캡사이신이 활발한 대사작용을 해 지방을 태우기 때문이다. 단, 같은 양의 식사를 할 경우라는 전제가 붙는다. 매운맛 때문에 식욕이 자극을 받아 식사량이 늘어난다면 다이어트에 전혀 효과 없다.
Q5. 온도에 따라 왜 매운맛에 차이가 나는가?
혀에는 통각 수용체가 있는데, 이를 자극하면 매운맛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된다. 뜨거우면서 매운 음식을 먹으면 자극이 더 커져 더 맵다고 느껴지는 반면, 차가운 매운맛은 혀의 자극이 덜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맵다고 느낀다. 하지만 먹고 난 후에는 반대다. 매운 음식을 먹고 나서 따뜻한 물을 마시면 매운 자극을 뜨거운 자극으로 상쇄시키기 때문에 매운맛을 덜 느낀다.
Q6. 매울 때는 왜 우유를 마시라하는가?
우유는 매운맛을 가라앉혀 주는 효과가 있다.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 성분을 우유가 녹여 주기 때문이다.
Q7. 매운 음식을 잘 먹는 사람과 못 먹는 사람의 차이는?
같은 음식을 먹어도 매운맛의 차이가 나는 이유는 민감성 때문이다. 맛, 온도 등에 민감한 사람은 매운 음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또 다른 이유는 생각에서 온다. ‘내가 이것을 먹으면 속이 쓰릴까?’, ‘매운 음식을 잘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실제로 속이 쓰리고 매운 음식을 잘못 먹을 수 있다. 유태우 원장은 “마음가짐에 따라 몸에 증상이 나타나는데, 한국 사람들에게 그런 경향이 강하다”며 “생각이 몸에 작용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Q8. 매운 음식을 먹으면 쓰러질 수도 있다?
간혹 너무 매운 음식을 먹고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이는 매운맛 때문이 아니다. 불규칙한 식사와 영양 불균형 등 때문에 이미 자율신경의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 매운맛이 혈관을 확장시키면서 신경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극히 드물다.
[More tip]
매운맛과 함께 먹으면 좋은 음식 궁합
- ▲ 매운맛과 함께 먹으면 좋은 음식 궁합(사진=김범경 St.HELLo)
매운 음식을 먹고 속 쓰릴 때 함께 먹으면 좋은 음식이 있다. 보통 매운맛 때문에 자극을 받은 점막 조직을 보호하거나 몸을 안정시키는 데 효과적인 음식들이다. 반면 술처럼 점막을 부어 오르게 하는 음식은 매운 음식과 나쁜 궁합이다. 매운낙지볶음이나 불닭 등을 술안주로 먹는 것은 불에 기름을 붓는 셈이다.
연근 연근은 염증완화·소염 작용을 한다. 연근의 타닌, 뮤신 성분은 위 점막을 보호해 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매운음식과 함께 먹으면 위를 보호해 준다. 브로콜리 브로콜리에는 베타카로틴이 풍부하기 때문에 매운맛으로 항진된 식욕이나 자율신경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양배추 《동의보감》에는 양배추가 맛이 달고 독이 없으며 냉성이라고 써 있다. 양배추는 열을 내는 매운 음식의 열성을 중화시키기 때문에 함께 먹으면 좋다. 꿀 속이 쓰리고 아플 때 가장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꿀이다. 독소를 제거하고 소화에 좋은 효과가 있다. 천연 꿀에 따뜻한 물을 타서 먹으면 속쓰림에 도움이 된다.
월간헬스조선 10월호(124페이지)에 실린 기사임
/ 노은지 기자 nej@chosun.com
사진 김범경(St.HELLo) 도움말 원장원(경희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유태우(닥터U와함께의원 원장), 임점희(국제조리전문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