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는 스페인 서북단 갈리시아 지방과 라 코르냐현에 있는 종교도시로 현도 라 코르냐 남쪽 64㎞, 표고 264m의 언덕 위에 있다.
이곳에는 예수의 12사도의 한 사람인 성 야고보(스페인명 산티아고)가 이베리아 반도에서 전도하다 순교하였다는 설과 예루살렘에서 처형당한 후 해로를 따라 갈리시아 지방, 살 하구 근처의 엘 바두론까지 운구 되었다는 두 설이 전해진다. 유해의 행방이 묘연하던 중 별이 나타나 매장된 장소를 알려 주었다는 전승에 따라 그 장소를 '별의 자리'라는 뜻으로 Campus Stellae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같은 유래로 지명이 정해지고 야고보이 무덤 위에 대성당이 건축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 산티아고 대성당 (Santiago de Compostela)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스페인의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에 있는 종교 도시로서 12사도(使徒)의 한 사람인 성(聖)야곱(에스파냐어로 산티아고)의 순교지로 알려져 있다.
알퐁소 2세에 의하여 1078년에 기공된 성당 건축공사는 1124년에 최종 적으로 신랑부(新郞部)가 완성되었다. 이 성당 지하에 성 야고보 사도의 무덤이 있어 11세기 이래로 세계 각처에서 순례자가 모여들었으므로 오늘날 성도(聖都)라 불리게 되었다. 산티아고 대성당은 프랑스에서 피레 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가는 여러 갈래의 순례로를 따라서 있는 일군(一群)의, 이른바 순례롤 양식의 성당의 기준이 되고 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최번영기인 12세기에는 예루살렘과 로마에 비견할 만한 위세를 떨쳤는데, 그 명성은 산티아고의 대주교가 한때 교황을 자칭하여 로마의 비위를 거슬렸다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산티아고는 11 세기경부터 레콘키스타(국토회복전쟁)에서의 이베리아 그리스도교도에게 전승을 약속하는 국민적 수호성인의 성격을 띠어 왔다.
산티아고(성 야고보)는 본디 갈릴래아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였으므로 고기잡이를 상징하는 조개 껍데기는 그를 상징하는 표지이기도 하다. 그는 예수가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신 일과 부활하신 후 하느님 오른편에 살아 계심을 증거하였을 것이다.
교황 레오 3세가 이 곳을 성지로 지정함에 따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유럽 3대 순례지의 하나로 번영하였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은 1078년 알퐁소 2세에 의하여 기공되어 1128년 미완성인 채 헌당식을 가졌다.
라틴 십자 플랜의 5랑식(廊式) 바실리카 건축으로 툴루즈의 생세르낭성당과 비슷한 로마네스크의 순례로(巡禮路) 양식을 취한 전형적 성당이다. 좌우의 커다란 종탑 사이에 끼여 있는 모양의 서쪽 정면은 카사스 이 노보아가 설계하여 18세기 중엽에 건조한 것이며, 에스파냐 바로크의 추리게레스크 양식이다. 또한 서쪽 정면 전실(前室)의 ‘영광의 문’이라고 불리는 출입문을 장식한 조각군은 12세기 말의 거장 마테오의 작품으로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의 이행을 나타낸 에스파냐의 채색조각을 대표한다.
대성당은 갈리시아 지방의 화강암으로 지었는데, 좌우에 있는 두 개의 탑의 높이는 각각 70미터이다. 대성당 앞의 마름모꼴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면 오브라도이로 문이 있고, 그 안으로 들어서면 영광의 문이 나타난다. 그 문에는 12세기 초에 거장 마테오가 신약 성서의 요한 묵시록을 근거로 조각한 200여개의 상이 조각되어 있다. 대성당의 금빛 찬란한 중앙 성단에는 산티아고의 좌상이 있으며, 천장에는 샹들리에와 향로가 달려있다. 대성당의 지하묘소에는 순은을 입혀서 조각한 산티아고의 유골함이 안치되어 있다. 대성당의 후면에는 면죄의 문이라고도 불리는 거룩한 문이 있고, 성당의 탑에서 울리는 시종(時鐘)소리는 사방 20㎞까지 들린다고 한다.
■ 산티아고의 묘
대성당 지하묘소에 안치된 산티아고의 유골함이다. 순은을 입혀 조각한 것으로 가톨릭 미술의 걸작으로 꼽힌다. 전승에 의하면 9세기경 천사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신비스런 별빛이 숲속의 동굴에 비치므로 따라가 보니 대리석으로 된 산티아고의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교황 레오 3세가 성지로 지정함에 따라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3대 순례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