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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2:5-8 막2:27-28 3:4 눅4:16. |
눅23:56 마28:1 막16:1 |
행13:42-44 16:13 17:2 18:4 |
사56:1-2 마24:20 계14:7 |
사66:23 |
이제까지 복습을 겸하여, 신, 구약 성경을 기초로 안식일의 역사적 기원과 성경 적인 근거를 간단히 살펴보았다. 이토록 분명한 상경의 증거를 확인하면서, 제칠 일 안식일 곧 오늘날의 “토요일을 안식일로 고수하는 것은 성경 해석의 잘못에서 왔고... 안식교의 토요일 예배는 역사적 증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성경적 근거도 없는 것이다” 라고 비평한 박영관 씨의 비평이야말로 참으로 역사적 근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성경적 근거도 없는 허구(虛構)한 논증임을 안타까움을 느끼며 지적 할 수밖에 없다.
2. 안식일 준수와 율법주의
비평 박영관 |
안식일의 역사적 기원과 성경적 근거는 앞서 밝혔거니와, 안식일 준수하는 것은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따르는 것이라는 비평을 따로 떼어 변증하는 것이 좋겠다.
사람들을 위한 안식일
변 증 이상과 같은 비평은 안식일은 유대인의 안식일이고, 일요일은 그리스도 인의 성일 이라는 잘못된 전제에 기초한 것이다. 안식일은 창조와 동시에 제정되어, 아담 때부터 존속된 제도 이므로, 범죄와 상관 업고, 의식적인 율법이나 십계명과도 시대적으로 상관 없어, 안식일을 어느 시대에나 어느 민족에 국한시키려는 시도는 비 성서적이다.
“안식일에도 주인”(막2:28) 이신 예수께서도, 안식일이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막2:27)이라고 천명하셨다. 창조와 동시에 안식일과 함께 제정된 결혼 제도가(창2:21-24) 유대인 만을 위한 제도가 아닌 것과 같다. 결혼 제도가 안식의 공간(空間)인 가정을, 제칠 일이 안식의 시간(時間)인 안식일을 제공하므로 이 시간과 공간의 만남 속에서 인간이 피조물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고 하나님께 의존하며, 사람 끼리 함께 사는 행복을 경험하게 하신 창조의 기본 질서인 것이다.(출20:8-11)
이미 구약 성경에도 안식일을 유대인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만민의 안식일, 이방인의 안식일, 심지어 육신 적인 미래가 없는 불구자(鼓子)의 안식일 등으로 규정하여 안식일의 시대성이나 민족적 제한을 철폐하였다(사56:3-7).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리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사56:2)
그리하여 이방인이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유대인만을 위한 의식법(儀式法)인 할례는 폐지시켜 결코 요구되지 않았지만, 안식일은 유대인과 그리스 도인들이 이의 없이 공유했음을 사도행전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율법주의 에 대한 오해
박영관 씨의 비평이 사실이라면, 유대인의 안식일을 지킨 사람은 모두 율법주의자가 되는 셈이다. 그 가운데는 어린 시절부터 돌아가시기까지 평생을 “자기 규례대로 안식일”을 지킨 예수님(눅4:16)을 비롯하여, 역시 유대교 모태 교인으로 “자기의 규례대로”(행17:2) 평생 안식일을 지킨 사도 바울도 율법주의자이고, 안식일을 준수하고 강조한 모든 노독들과 선지자들도 모두 율법주의 자가 된다는 빗나간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단정은 두 개의 전제로부터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 내는 추리 논법인 삼단논법을 잘못 적용한 착각의 결과 일수 잇다. 즉,
대전제: 그리스도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행함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율법주의자였다.
소전제 : 바리새인들은 모두 철저한 안식일 준수 자였다.
결론 : 그러므로 오늘날도 안식일을 철저히 준수하는 사람들은 바리새인들과 같은 율법주의자이다.
만약 이와 같은 잘못된 논리 전개가 사실이라면 걷잡을 수 없는 엉뚱한 결론들이 속출하게 된다. 복음서에 보면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이외에도 십일조, 헌금, 구제, 금식 기도 기도 등에도 철저한 사람들이었다.(눅18:11.12)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논리가 전개될 수 있을까?
대전제 : 그리스도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율법주의 자였다.
소전제 :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철저한 십일조와 헌금 구제 금식 기도를 실천했다.
결론 : 그러므로 오늘날도 십일조와 헌금 구제 및 금식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바리새인들과 같은 율법주의자이다.
십일조와 헌금, 구제와 기도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당연한 의무가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이러한 엉뚱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가? 추리의 착각이다. 안식일이나 십일조, 헌금, 구제가 사람을 율법주의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그 대답이 있다. 곧,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23:23)
진상이 뚜렷해졌다. 십일조와 헌금, 안식일 등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율법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를 삼을 때는 결과적으로 그리스도 의를 거절하게 됨으로 결국 행함으로 구원받으려는 율법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율법을 준수하되 율법의 정신에 어긋나게 지키는 사람들은 율법주의자가 되지만, 의의 표준인 율법을 무시하고 고의로 범하는 사람들은 “무법한 자”(벧후2:7, 3:17), 혹은 “불법을 행하는 자”(마7:23, 13:41; 딤전1:8,9)가 되어 심판을 받게 된다. 편견 때문에 판단의 논리가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비 평 “안식교는 토요 안식일 성수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개신교가 주일을 안식탁명환 일로 지킨 것은 예수의 부활 사건과 관련지어 율법적인 토요 안식일 대신에 안식 후 첫 날 예수의 부활의 날을 기념하여 지키게 된 것이다.”10
탁명환 씨는 오늘날의 토요일에 해당하는 성경 상의 제칠 일 안식일을 율법주의 적인 안식일로 규정하고, 안식일 교회가 안식일 준수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다고 비평하고 있다. 그리고 일요일은 부활을 기념하는 그리스도 인의 주일로 옹호하고 있다.
율법주의와 무법 주의
변 증 “앞에서 밝힌 대로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 율법주의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섯째 계명에 따라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 여덟째 계명대로 도적질하지 않는 사람, 둘째 계명을 범하지 않으려고 신사 참배를 거절함으로 목숨까지 빼앗긴 순교자들을 율법주의자라고 비평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넷째 계명에 따라 성경 적인 제칠 일 안식일을 준수하는 사람들만 율법주의자가 되는가?
율법주의자란 율법을 지킨 자신의 선행을 의로 삼아 스스로 구원을 이루려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만큼이나. “무법한 자”나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 역시 율법주의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없다(마7:23 ; 벧후3:17 ; 살후2:3,7,8).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것이나,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행위도 결국 율법을 준수하려는 일임에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안식일 준수와 구원
안식일 준수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운다는 비평 역시 옳지 않다.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가? 이러한 질문을 구태여 안식일에만 국한시킬 성질의 것이 아니다. “부모를 공경해야 구원을 얻는가?” “도적질을 하지 말아야 구원을 얻는가?” 모두 같을 성질의 질문이다. 이런 질문들에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우리는 부모를 잘 공경하고 도적질을 하지 않았어도 구원받지 못할 많은 사람이 있을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다”고 대답하기를 망설인다. 마찬가지로 무법한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갈5:19~21 ; 딤후3:2~5)임을 명시한 성경 말씀을 기억할 때, 우리는 “아니라”고 대답하기도 꺼린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고 대답은 무엇인가?
앞에서 밝힌 대로 안식일은 창조와 구 속의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날로서 개천절과 광복절의 의미가 포개진 경우이다(신5:12~15).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가?”라는 질문은, “광복절을 지켜야 해방되는가?”라는 질문과 같아진다.
논리적으로 틀린 질문에는 바른 대답이 있을 수가 없다. 태어난 사람에게는 생일이 있고, 해방된 민족에게는 광복절이 있듯이 창조와 구속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경험한 사람에게는 안식일의 존재와 필요가 절실해진다.
창조 때부터 존재한 안식일이 실제로 도덕의 법칙일 십계명 함께 성문화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후인 시내 산에서였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포함한 십계명이 구원의 근거가 아닌 것은 틀림없다. 구원의 근거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상징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곧 십자가이다(고전5:7). 하나님께서도 “나는 너를 애굽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로라”(출20:2)고 전제하신 후 안식일을 포함한 십계명을 지키도록 명하셨다. 안식일의 경우는 이 사실이 더욱 강조되었다(신5:15).
구원의 결과인 안식일
분명해 졌듯이, 십계명이나 안식일 준수는 구약에서나 신약에서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결과로 명시되었다. 그것은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 받은 구원을 보존하고 경험하는 방편이다. 한국에 살면서 미국의 헌법을 준수하고 독립 기념일을 철저히 지켰다고 미국의 영주 이민을 허락 받는 것은 아니다. 비록 그런 것들을 알지도 못하고 지키지 않았어도 미국이 호의로 발급한 사증(査證.비자)을 이민 자격을 얻는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율법을 지킴으로서가 아니라, 시민(市民)의 자격과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이다. 영주권 자나 시민권 자가 되고도 고의로 법을 범하거나 무시하면 추방되거나 시민의 권리를 법에 따라 제한 당한다. 천국 시민의 특성과 자격을 선포한 산상설교에서 예수께서도 십계명의 중요성과 의의를 확대하였음을 주목할 것이다.(마5:7-40, 7:12-27).
현재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성실한 그리스도인 이였으면서도 안식일을 준수하지 않은 사람들이 허다하지 않은가? 그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는 구약성서에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비롯한 노독들이 일부다처(一夫多妻)의 관습을 따랐음을 본다. 그랬기 때문에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들에게도 축첩(蓄妾)이 죄가 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이혼 등 이러한 도덕적 표준들에 의하여, 예수께서는 그 세대의 완악함과 어두움을 지적하신 후에 성경의 원칙을 제시하시고,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마19:3-10) 고 단언하셨다.
성경은 각시 대의 각사람이 처한 환경이나 받은 빛이나 특권에 대하여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였다.(마11:20-24, 25:24-28; 요9:39-41; 룸2:12-23). 사도 바울도 “알지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 치 아니하셨”음을 상기시키고 “이제는 어디든지”라는 표현을 통하여 심판의 시의성(時宜性)을 강조했다(행17:30.31). 그것은 또한 계시록에 나타난 심판의 시대적 배경이기도 하며 (계14:6-12), 로마서에 제시된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을 강조한 심판의 문화적 배경이기도 하다.(롬2:1-12)
여하튼 안식일을 포함한 십계명은 구원의 근거가 아니라, 은혜로 거저 베푸신 구원에 대한 인간의 반응인 믿음의 진실한 여부를 드러내는 열매, 곧 행실(마7:16-21)을 심판하는 표준임에는 틀림없다.(약2:8-13) 십계명의 기능은 죄인을 의롭게 하는 일이 아니라(롬3:20), 십자가의 은혜로 의롭게 된 사람을 죄로부터 보존하여 거룩하게 하는 성화(聖化) 의 방편이요, 표준이 된다.(롬7:7,13). 특별히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즐 알게하려하여 내가 내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겔20:12)음을 주목해야 한다.
마지막 심판에서 (계14;6-11), 의롭게 석게될 참다운 그리스도 인의 특성이,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계14:12)라고 명시된 것도 그 까닭이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심판은 믿음의 결과인 행실(行實)을 판별하는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마16:27; 계22:12)
그러므로 안식일을 비롯한 십계명을 비평하려 할 때는, “자유의 율법(십계명) 대로 심판받을자 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약2:12)는 권면을 명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약2:9)는 기능과 불변의 권위를 여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은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롬3:31)운다는 사실을 복음의 구조에서 이해해야 한다.
부활의 기념과 안식일
비평에 나타난 대로, 오늘날 일반 교회들이 제칠 일 안식일 대신 첫째닐인 일요일을 준수하는 이유로 부활의 기념일임을 강조하고 잇다. 일요일을 부활의 기념으로 지키는데 대한 성경 적인 근거는 있는가?
가. 실제의 날짜는 아니지만, 성탄절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여 지키고, 부활절은 부활을 기념하여 지킨다. 일년에 한 번씩 부활절로 부활을 지킨다면 왜 또 일요일을 지켜 부활을 이중으로 기념하는가? 창조는 였새동안에 이루어 졌음으로 제칠 일마다 안식일을 지켜 창조를 기념하는 것은 기념일로서의 논리가 서지만, 부활이 일요일에 있었다고 매 일요일을 부활의 기념일로 삼는 것은 논리가 부당하다. 만약 예수 님의 탄생하신 날이 월요일이라 해서, 성탄절과 함께 매 월요일을 틴생기념일로 지킨다면 얼마나 이상한 기념 방법이 되겠는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나.첫째날인 일요일에 예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 날을 기념하여 거룩히 지킨다면,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돌아가신 여섯째 날인 금요일도 기념할 만한 날이 아닌가? 실제로 십자가와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가 되는 역사적 사실(史實)이므로 기념해야 할 가치가 있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 두 사건을 기념하는 특별한 방법을 친히 제정하시고 준수하도록 명령하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재림 때까지 기념하라고 제정하신 의식이 성만찬 예식이다(고전11:23.24; 마26:26-29) 돌아가신 여섯째 날인 금요일이나, 성력 1월 14일 유월절을 날짜로 기념하라고 아니하시고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고 하셨다(고전11:25.26) 십작가에 죽으심을 언제나 어디서나 성만찬 예식을 행함으로 기념하게 된다.
다부할은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
“물은ㅡ예수그리스도의 부할 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침 레)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O 아가는 것이라”(벧전3:21)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침례)를ㄹ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 니...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 한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 한 자가 되리라” (롬6:4.5)
예수께서 친히 받으심으로 모본을 보이신 침례가(마3:13-17)곧 부활을 기념하는 예식이 된 것이다.
라 .그런데 중생과 부활의 기념인 침례를 성만찬처럼 자주 기념할 수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예수께서 성만찬을 집전 하시기전 이미 침례를 받으므로 “중생의 씻음”(딛3:5; 행22:16; 히10:22)을 경험한 제자들에게,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요13:10)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침례를 반복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세족(洗足)예식으로 대신하신 후, “내가 주와 성령으로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려 하여 본을 보였느니라”(요13:14.15)고 하셨다. 이처럼 세족 예식의 의미와 목적이 분명할 뿐더러 행하도록 모본까지 보이시며 명하셨는데 왜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이 예식을 등한히 하면서, 명하시지도 않은 일요일 준수로 중생과 부활을 기념하려고 하는가?
이처럼 십자가에 죽으심을 성만찬으로, 부활의 중생과 침례를 세족 예식으로 기념하도록 에수께서친히 제정하시고 또 준수하도록 명하셨다. 이리하여 세족 예식을 겸한 성만찬과 침례는 그리스도교 기초가 되는 십자가와 부활을 기념하는 두 성례전(聖禮典)으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존속되고 있는 것이다. 부활의 기념으로 일요일을 성수(聖洙) 하는 것은 성경에 아무 근거가 없을쁜더러 논리에도 맞지 않는 일이다. 시간 곧 날짜와 연관시켜 기념하도록 명하신 것은 창조와 구 속의 기념일인 제칠 일 안식일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비평 박영관 |
비평 박영관 |
박영관 씨는 17세기(1646~47)에 채택된 장로교의 기본 교리인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에 근거하여, 안식일은 굳이 일곱째 날일 필요가 없고, 칠일중 아무 날이나 하루일 수 있다고 단정한다. 그리고 그 하루가 그리스도의 부화 전까지는 일곱째 날인 안식일이었으나, 부활 이후에는 첫째 날인 일요일로 바뀌었다고 거듭 강조한다.
제칠일과 칠일 중 하루
변 증 고정된 제칠 일이 아니라, 칠일 중 아무 하루를 안식일로 정하여 지키도록 명하셨다는 말은 성경에 아무 데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궤변이다. 그것은 1643년 영국의 의회가 소집한 웨스트민스터 종교 회가 제정하고 1648년 의회가 이를 인준한 장로교의 신앙고백에 근거하고 있다.12
종교회의의 결의를 성경의 권위보다 더 존중하면,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마15:7, 9) 것으로 간주된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출신의 조직 신학자로 자신이 주일 성수론 자인 쥬이트도 박영관 씨가 일요일 준수의 근거로 인용한 상기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아래와 같이 노골적으로 비평하고 있다.
증 언 “이 고백 문에 대하여 원칙적으로는 비판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나 그 안에는 거짓된 신학
주이트 적 기교가 들어 있다고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은.....적극적이고 도덕적이고 항구적인 계명으로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명령하여 이레 중 하루를 안식일로 택하여’ 라고 한 이 부분을 분석하면 그러한 점이 똑바로 드러나게 된다. 이 부분의 논증은 유지된 수 없다. 칠일 중 한 날을 택한 적극적이고 도덕적이고 항구적인 계명이란 없기 때문이다. 제 4계명은 명백히 칠일 중 하루를 지정한 것이 아니라 ‘이레 되는 날’을 지정하였을 뿐이다.“14
위에 인용된 비평에 적힌 안식일 계명 조항인 출애굽기 20장 8절의 문맥을 자세히 읽어만 보아도 비평에 대한 충분한 대답이 된다. 8절에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하신 후에 세칙을 설명하는 9절에서는, 다른 “엿세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라고 부칙을 설명한다. 그리고 10절에서는, 8절의 “안식일”(히브리어 욤 하. 솨바트)에 덧붙여, “제칠 일은 안식일이니”(욤 하. 쉐이비 솨바트- 영문으로는, the seventh day is a sabbath)라고 문법적으로 밝혀 놓았다. “제칠 일”을 제외한 다른 여섯 날은 안식일이 될 수 없는 힘써 일해야 하는 날들임을 강조했음도 주목해야 한다.
안식일 제도의 기원이 명시된 창세기 2장2, 3절에서는 안식일이라는 명칭 대신, “일곱째 날에 안식하” 셨다고 밝히도,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다고 거듭 확인하고 있어 칠일 중 아무 한 날이 안식일이 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하필 일곱째이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창 2: 1)신 것이다.
본래 기념일이란 그 날에 일어난 역사적인 사실을 기념하는 시간적인 의미를 가진다. 누가 광복절을 8월 15일이 아닌 일년 365일 중 하루를 정하여 지키자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어느 부부가 자신들의 결혼 기념일을 일년 중 아무 날로 정하여 기념하겠는가?
칼빈주의 개혁 교회도 받아들인 헬베티아 신앙고백(Helvetic Confession)에도 일요일은 안식일을 대신하여 지키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인정했다.15 기념일을 옮기거나, 아무 날이나 기념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상식에도 어긋난다. 지구가 존속하는 한 창조가 기념될 것이요,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통하여 창조에 근거한 경배를 받으실 것이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권위로 그것을 속되게 할 수 없다. 안식일을 속되게 하는 것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신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그분의 명예를 욕되게 하는 것임을 아래의 말씀에서 확인하자.
“그제 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협으며,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별치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겔22:26)
신분이 어떠하든지 간에, 종교 지도자들이 백성들로 하여금 안식일을 무시하고 유린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두러 운 불경(不敬)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 교회들이 받아들인 헬베티아 신앙고백(Helvetic Confes-sion)에는 안식일의 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비 평 “우리는 한날이 모든 날보다 더 거룩하다거나 그날에 휴식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기 신 조 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위리는 안식일이 아닌 우리 주의 부활일인 일요 일을 준수한다.
앞에서의 성경 말씀에 전적으로 위배되는 말이다. 남의 것을 주인의 승낙 없이 가져가거나 없애 버리면 잘못이다.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막2:28) 신데, 에수님의 명령이나 승낙 없이 안식일을 없애 버리거나 다른 날로 바꾸는 일은 분명히 크게 잘못된 일이다. 누가 안식일을 마음대로 바꾸거나 없앨 권리가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와 통치권에 대한 두러 운 도적이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 수도의 허락 없이 안식일 대신 일요일을 성일로 준수하면 어떠한 무순에 빠지는가? 영국 회중교회 지도자 데일(R. W. Dale) 의 논증이다
증언 데일
“우리가 아무리 엄격하거나 경건하게 일요일을 지킨다 해도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안식일은 특별히 주어진 거룩한 명령에 기초한 것이다. 우리는 일요일을 지켜야 할 의무에 대해여 그러한 명령에 호소할 수가 없다. ...신약 성경에는 일요일의 거룩함을 범할 때 어떤 책벌이 이른다는 것을 제안하는 하나의 구절도 없다.”17
칼빈도 그의 [그리스도 강요]에서 넷째 계명인 안식일이 지니고 있는 권위나 준수 의무를 일요일과 같은 특정 일에 적용시키는 사람들을 오히려 율법주의자라고 책망하고 있다. 그리고 일요일에 모이는 까닭도, “믿음이 시들거나 쇠하지 않도록 부지런히 모이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돕는 외적인 방편”18 정도로 규정하고 있어 일요일을 성일로 준수해야 할 성경 상의 근거나 이유를 일체 제시하지 않고 있다. 또한 주일 옹호자인 쥬이트도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면서 다음과 같은 문헌들을 인용하고 있다.
증언 쥬이트
“그러므로 주일 첫날을 어느 날보다 더 잘 지켜야 할 도덕적 의무나 그날이 가진 무슨 거룩함에 대하여 넷째 계명이나 기타 다른 성경을 통해 알고 잇는 것이 하나도 없다.”19
“날은 어느 날이나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이 일에 매여 있기 때문에 매주 마다 이 의무를 위해 모일수잇는 어느 한날을 구별하지 않을 수 업다. 주일에 모이는 관습은 모든 사람의 동의를 얻은 것이다.”20
결국 위의 모든 진술은, 제칠 일 안식일과 는 달리 일요일은 , 하나님에 의하여 거룩하게 된 날도 아니고, 축복이 약속된 날도 아니며, 따라서 준수해야 할 성경 적인 근거나 의무가 전혀 없는 또하나의 인간 전통(傳統)에 불과한 날임을 자인한 셈이다. 이런 정도의 의의라면, 굳이 일요일을 주일로 주장할 까닭도없고, 준수를 요구해 야할 근거도 없음이 자명해진 것이다.
그것은 결국 “장로들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대신한 예수님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의 처신에 불과한 것이다.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 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마15:3, 8, 9)
4. 일요일에 관한 성경의 진술
비평 박영관
“더욱이 신약성경 여러 곳에서 안식일이 예수님의 부활 후에 첫째 날로 지킨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요한복음 20:1은 예수님께서 일주일중 첫날에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고, 이 첫날을 안식일로 지켜야할 것을 말씀 하셨다.”21
변 증
박영관 씨는 부활이후 제칠일 안식일이 첫째날인 일요일로 바뀐 증거가 요한복음 20장1절을 비롯하여 신약성경 여러곳에 있다고 말한다. 신약성경 여러 곳이란 다음에 인용되는 여덟 군데인데 일일이 찾아보며 그 말이 참된지를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첫째날인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는 주장은, 성경어디에서나 일언반구(一言半句)도 ?O을길이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별도의 설명을 부연하지 않는다.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안식후 첫날인 일요일 새벽에 처음으로 무덤에 온 이 여인들은, “계명을 쫓아 안식일에 쉬”(눅23:55.56)었던 바로 그 여인들이다. 그들은 다음날 새벽 예수께서 부활하신 줄도 모르고 시신(屍身)에 바르기 위해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막16:1.2)무덤에 갔을 뿐이지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
마가복음16장 1,2절
역시 마태복음의 기사처럼 “ 안식일이 지나매,” 위에 언급한 여인들이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두었다가, 안식후 첫날 매우일찌기 해 돋는 때에 무덤으로 간” 이야기이다.
마가복음 16장 9절
“안식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셨다는 앞 이야기의 반복에 불과하다.
누가복음 24장 1절
“안식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을 가지고 무덤에” 갔다는 이야기 이다. 이들은 같은 누가복음 23장55,56 절에 언급된 대로,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인데, 예비일인 금요일에 “향품과 향유를 예비” 한후 “게명을 ?i아 안식일에 쉬”었던 여인들이다. 안식일을 지켰다는 증거이지 첫째날인 일요일을 성별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요한복음 20장 1절
“안식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떼에” 역시 위에 언급된 여인들이 무덤에 왔다가 비여잇는 것을 보고 놀라서 제자들에게 보고했다는 기사이다. 요한복음은 사복음서 가운데 가장 뒤늦은 서기 90년 이후에 쓰여진 것으로, 부활 이후 수십년이 지난 이후에도, 안식일은 여전히 안식일로 여전히 “안식후 첫날”로 부르고 있어, 1세기가다 할무렵까지 일요일을 주일이라거나, 부활을 기념하는 성일의 의미가 일체 부어되지 않았음을 드러내고 있다.
요한복음 20장 19절
“안식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우하여 모인곳에”부활하신 예수께서 나타나셨다는 기사이다.이곳의 저녁은 헬라어 “오프시오스”(opsios)로 “늦은”(late)이란 뜻인데 해가지기전인지 후인지인지는 문맥을 통해 결정하게 된다.22 그러나 위의 성경 본문에 비추어 볼 때에 제자들이 모인 것은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다. 부활하신줄도 모르고 그저 “유대인 들을 두러워 하여” 한데 모여있었음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일요일 성수(聖守)와는 상관업는 기록이다.
“안식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튼날 떠나고자하여 저희에게 강론?l세 말을 밤중까지 계속” 하였다는 내용인데 사도 바울의 마지막 전도 여행중 드로앙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삿ㄹ을 들어 박영관 씨는 아래와 같이 주장하고 있다.
비평 박영관
“드로아 시에사는 기독교인들중 첫날에 예배하기 위해 모였고, 바울은 그들에게 말씀을 증거하였다,...이것은 그들이 주님의 만찬을 먹고 기념하는 정기적인 모임임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23
변 증
가. 정확한 역사가로 정평을 받고있는 이방인 누가는 부활후 30여년이 지난 서기 63년경 까지의 사고교회 역사를 기록한 사도행전에서 적어도 84회이상 안식일이 준수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반면, 첫째날인 일요일에 관한 언급은 이곳 한군데 박에 없다. 그것은 예수님처럼, “자기의 규례대로”(행17:3)드로아에서 안식일을 보내고 난 “안식후 첫날” 그 것도 낮에 열린 정규집회가 아니라, 밤 시간에 모였다. 그 까닭은,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하여” 특별히 모인 성만찬을 겸한 송별을 위한 집회였다.
나.
그런데 이 집회가, “안식후 첫날” 로 밝혀져 안식일이 지났음을 분명히 했으나. 앞서의 요한복음20장의 기사와는 달리 시작된 시간을 정확히 알리지않고 그저 한 밤중까지 계속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그런데 이 밤중(Midnight) 집회가 실제로 어느날에 속한 집회인가?
표현이 불분명할 떼에는 문맥을 통하여 결정해야한다. 유대인의 날짜게산 법으로는 오늘날 금요일 해질때부터 토요일 해질때까지가 안식일이고(례23“32), 토요일 해질때부터 일요일 해질때까지가 첫째날이다. 그러나 로마인의 계산법으로는 금요일 자정부터 토요일 자정까지가 안식일이고, 토요일 자정부터 일요일 자정까지가 첫째날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표현은 토요일 밤이 될 수도잇고 일요일 밤이 될 수도 있다.
다.
그런데 박영관씨는 사도행전의 기자인 누가는 로마인의 계산을 따랐으므로 그것은 일요일 밤이라고 단정하고 있다.24 그러나 그러한 단정(斷定)에는 무리(無理)가 있음을 알게된다. 누가는 누가복음에서, 예수께서 돌아가신 날인 금요일 오후 해질무렵을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눅23:54)는 표현을 씀으로서 자신이 이방인 이면서도 ?㎢育括? 게산법을 ?㎱습? 드러?T다.
또한 사도행전 2장15절 에서도“때가 제3시” 라는 표현을 ?㎢쨉?, 이는 오늘날의 오전 9시로 유대인의 계산법이다.25 그러므르 누가가 로마의 계산법을 따랐다는 주장은 일관성이 없다. 우리말 새번역 성경 에는 아예 “토요일밤” 으로 번역한 까닭도 문맥이 요구하는 당연한 이유 때문이다.
설사 그 시간이 일요일 밤이라해도 그것 때문에 첫째날의 성수(聖守)가 입증되는 것도아니다. 성경 어디에 그러하 방법으로 부활을 기념하라는 말씀이 있는가? 그것도 한 밤중에...........
라
“떡을 떼려하여모였” 다는 것이 꼭 정기적인 예배와 연관된 성만찬이 아님을 같은사도행전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초대교회는 실제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 ?㎢쨉?, 초기에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집에서 떡을떼며 음식을 먹” 었다(행2:46) 이것이 대개의 경우 교제의 식사인 애찬(愛粲. love feast)을 겸한 성만찬 이였다. (고전11:20-22),26 이러한 모임이 꼭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첫째날에만 행해졌다는 근거를 성경에는 한 곳도 ?O을 수가 없다. 성만찬과 침례는 처음부터 시간에 관련하여 주신 예식이 아니다. (고전11:23-26).
마.
사도 바울은 당시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려는 계획에 따라 급히 여행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안식후” 곧 토요일밤에 다시모여 성만찬을 겸한 애찬을 나누며,사도의 말씀을 자정(子正)이 넘 도록 들엇는데, 이렇게 밤늦게 까지 모인 까닭은 이튼날 날이 새면 바울이 떠나기 때문에 특 별집회로 모인것었다.(행20:7.8)
?그다음날 사도는 육로로 80리 길을 걸어서 앗소로 가서, 뱃길로 먼저 가 기다리던 누가 일행을 만나 여행을 게속하여, 미둘레네→사모→밀례도에 수요일에나 목요일쯤에 이르렀다. 거기서 사 도는 예베소 장로들을 초청하여 특별집회를 가저 심금을 울리는 설교를 했다.(행20:14-38).
바
이와같은 문맥을 이해할 때, 금한 여행길의 사도는 안식일에는 결코 길을 떠나지 않고, 자기 규례대로 신자들과 함께 예배하며 보냇다. 그리고 그다음날 곧 “안식후... 이튿날 떠나고자하여 ”(20:7)밤중까지 특별집회를 가졌고, 밀례도에서는 주중인 수요일이나 목요일인데도 다시 에베소의 장로들을 위해 특별집회을 가진 것이다. 이두 집회가 모두 그렇게 촉박하고 간절했던 이유는, 그것이 사도 바울의 마지막 여행으로 다시는 얼굴을 볼수없을 것임 을 알았기 때문이였다.(행20:37.38), 그러므로, 문맥에서 분명해진 대로, 사도 바울이 여행중에도 철저히 지킨 날은 안식일이며, “안식후 첫날” 인 일요일은 여행을 떠나는 평범한 날이였음이 분명해진다.
자신이 일요일을 준수하는 탁월한 교회사가인 네안더(Augustus Neander)도 위에 적은 사도행전 20장의 사건이 일요일을 성수했음을 입증하는 근거가 될 수 없음을 아래와 같이 솔직히 인정하고 있다.
“이 성경 구절은 전적인 확증을 주지않는다. 왜냐하면 사도의 촉박한 출발이 이 작 은 교회로 하여금 형재애가 넘치는 송별식사를 위해 모이게 했을 것이고, 이 경우 일 일의 특별한 축제가 아니였을 지라도 사도는 이 떼에 그의 마지막 말씀을 전달하였을 것이다.”27
비평 박영관
“ 사도바울의 서신에 단 한 번 나오는 첫째날에 관한 기사이다. 박영관 씨는 이 기사를 근거로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사람이 이를 얻은대로 저축하여 두여서 내가 갈때에 연보를 하지않게 하라“ 고 한 바울의 지시를 따라 ‘그들은 안식후 첫날에 헌금을 드린 것” 이므로 이것이 일여일을 준수한 증거라고 한다.
변 증
가 위의 표현은 자칫 곡해(曲解)하여 “헌금은 주일중 첫째날인 일요일에 하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본문에 크게 어긋난다. “매주일 첫날에 너희각사람이 이를 었은대로 저축하여두” 라고 하였지, 어디에, 헌금을 교회로 가지와 드리라고 했는가? 헬라어 본문에 충실한 여러번역서도 분명해지는 내용이다.
현대어신약: “각사람은 자기집에서 한쪽에 따로 두어 저축하게 하라”
새 아메리카 성경:“각사람은 저축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따로 떼어놓으라”‘
시라아-페시토역: “ 각 사람으로 따로 떼어 저축하게 하라”
본문의 뜻이 분명하다. 요사이처럼 매 일요일 교회에 가서 헌금하라는 뜻이 전혀없다. 명목도 일명 정규헌금이 아니다. 당시 이방 교회들이 대거 참여했던 예루살렘 모교회(母校會)를위한 기근 구제 의연금(義捐金)이였다.(롬15:25-27, 행24:17)
나.왜 매주일 첫날에 따로 저축하라고 했을까?이 특별헌금 계획은 “일년전에”(고후8:10)이미시작한것이였다. 바울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줄 생각”(고후9:5)했는데,이유는 자신이 갈 때 한꺼번에 힘겨운 헌금을 하려고 하지말고, 매줄일의 수입에서 얼마씩 정기적으로 따로떼어 집에 저축하므로 넉넉하고 성의있는 연보를 드리게 한 것이다.
제칠일 안식일을 준수했던 사도시대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한주일의 수입을 대개 안식일이 지난 후 첫날에 정리한 배경을 였볼수있다.29 성공회 성직자들이 편찬하여 캠프리지 대학이 출판한 성경주석도,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 매주 첫날에 모엿다는 증거를 “이 구절로부터 끌어낼수 없다”고 지적한 후, 참뜻은 “스스로 저축하라. 즉 공중집회에서 가 아니라... 집에 쌓아두라”는 것이라고 밝혔다.30
자체증언들
이상으로 신약성경에 언급된 첫째날에 관한 여덟 곳의 기사를 모두 살펴보았지만, 단 한군데도 일요일을 부활의 기념으로 성수(聖守)하거나 그렇게 했다는 일체의 증거가 없다. 그런 까닭으로 리뎀토리스트 대학(Rede-Mptorist College) 학장을 역임한 엔라이트(T. Enright)신부는 “누구든지 성경만을 가지고 일요일이 우리가 꼭 지켜아?l 구속력을 지닌 날임을 증명하는 사람에게 1000불을 주겟다”31 고 재안햇지만 아무도 그 상금을 ?O아가는이가 없었다고 말한적도 있다. 십만불이나 백만불의 상금을 건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자신도 일요일을 지키는 루터교 신자인 교회사의 대가 네안더(Augustus Neander)도 아래와같이 증언했다.
“일요일 출제도 다른 축제일과 마찬가지로 인간 제정한 의 식이며, 사도들이나 초대교회가 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경시켜 거룩한 계명을 삼으로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32
교부들의 신앙의]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추기경 기본(Gibbon)도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
“당신이 성경에을 창세게에서부터 요한계시록 까지 읽어불지라도, 일요일을 거룩하다고 인정한 단 한구절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성경은 토요일을 성실히 준수하도록 명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날을 거룩한 날로 구별한 적이 없다.”33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어느종교 지도자라도 신자들에게 일요일을 주일로 거룩히 지키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 없는 명령을 인간의 전통을 따라 하는 것이다. 루터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한 선임교수 카알스타트(Carls-tadt)도, “일요일은 사람이 만든 제도임을 염두에 두게되면 불안해진다.”34 고 ?㎢?. 참으로 불안해 질 수밖에 없는 신앙의 논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요일 준수를 합리화 하려는 게속적인 노력을 아래의 몇 비평들에서 다시 일별하게된다.
비평 박영관
“ 사도요한 은 요한계시록 1장10절에서 ‘주의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뒤에서 나는 나??소리간은 큰 음성을 들의니’ 라고 했다. 여기의 주의날(en te kuriake hemera)은 주께속한날을 의미한다. ...초대 기독교회는 안식후 첫날에 예배하기 위하여 정기적으로 모였다.”35
변 증 사도행전등 신약성경에 나타난 초대 그리스도 교회가 주일중 첫날인 일요일에 예배하기 위햐여 정기적으로 모인적이 업음은 이미 앞에서 확인 되었으므로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이곳에서는 요한계시록 1장10절의 “주의날”이 박영관 씨의 말대로 정말 오늘날 관습에 따라 주일로 통용하는 일요일인지를 확인하려 한다.
가. 비평에서 처럼 서기 96년겨에 기록된 요한계시록의 “주의날”이 일요일이였다면 거의 같은때 기록된 요한복음에는 왜 “주의날”이란 표현을 한 번도 쓰지 않고 여전히 “안식후 첫날” 이라는 본래의 표현을 ?㎱뺑??(요20:1, 19). 게다가 요한계시록은 소아시아의 여러교회들에게 보내는 회람편지인데 (계1:11) 요한이 그 당시 신자들이 알지도 못하는 새로운 용어를 씀으로 혼란을 일으키려 했을까?
용어는 공인을 요하는 일종의 문화 계약인데 요한은 혼자만 아는 용어를 ?㎱? 리가 없다. 일요일을 주의 날로 부른 기록은 요한 계시록보다. 훨씬 나중인 2세기 후반에 그것마저도 사도 베드로의 이름을 도용(盜用)하여 쓴 신약위경인 "베드로의 복음"(GospelAccor-ding to Peter)에 처음 나타난다.36 그후에 알렉산드리아의 교부였던 클레멘트(clement . 160-215)와 라틴교부 터툴리안(Tertullint. 155-225) 도 쓴 기록이 있다.37 그러므로 요한 이 자신의 규레를 깨고 남들이 모르는 용어를 써서 일요일을 주일로 불렀을 리가 없다.
나. 요한자신은 물론 독자에게도 익숙했을 "주의날" 의 개념은 무엇인가? 구약 성경에서 안식일은 "여호와의 안식일"로 불렸는데 바벨론 포로 이후 "여호와이신 하나님의 성호를 직접 쓰거나 부르지 않이하려는 보다 경외(敬畏)하는 방편으로 "아도 나이(Adonai) 즉 "주.lord) " 라는 칭호를 대신하여 ?㎢?. 그리하여 구약의 안식일은 실제로 "주의 성일(the holy day of the lord혹은Sabbath to the Lord) 주의 성일(the holy day of the Lord)이였으며 (출20:10; 사58:13) 대부분의 경우는 "나의 안식일" 로 불렸다.(출31:13; 겔20:20 ;사56:4)
다. 신약 성경에서도. 예수님 자신을 "안식일의 주"(Lord of the Sabbath. kurios tou sabbatou)라고 자칭((自稱) 하심으로써 (마12:8;막2:28) 구약의 "여호와의 안식일"과 뜻을 같이 하고 있다.
라. 요한이 계시록에서 "주의날" 일란 표현을 쓴 까닭은 무었일까? 당시의로마 황제 도미시안 (Domician)은 자신을 신격화하여 황제 예배를 강요 하였으며 이를 거절하는 그리스 도인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요한처럼 유배를 당하였다. 도미 시안은 습관적으로 자신을 "주와 하나님(Lord and god)으로 칭하도록 했다. 그리고 황제가 어떤 도시를 방문 하게 되면 그날은 공휴일이 되었으며 동시에 황제 예배일이 되었다. 그리하여 실제로 "주의날"(imperial day) 에 맞서는 표현으로 이해되었다.39
마. 이러한 배경에서 요한 은 창조와 구속으로 자신의 주(Lord)가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안식일에 ,당세에 통용되었던 그러한 표현을 빌어 황제 예배가 아닌 창조주 예배를 강조했을 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40 이러한 가능성은 그가요한 계시록을 써 내려가면서, 우상 숭배를 단호히 거절하고 (14:9-11)"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이를 경배하라"(14:7)는 단도직입적인 호소를 출애굽기에 기록된 안식일 계명에서 직접 인용한 사실과 연관짖게 된다.(출20:11) 그리고 마지막 성도의 두 특징 가운데 하나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로 거듭 강조한 데서 엿 볼 수 잇다.(12:14; 14:12) 이곳의 하나님의 계명은 하늘 성소의 지성소에 여전히 자리잡은 언약궤 속의 옛 십계명을 계시로 확인한 요한 이(11:19) 느닷없이 넷째 계명 안식일을 졔처놓고 일요일을 주일로 불렀을 리는 만무하다. 저명한 주석 학자 밀리건 도 그 당시 "주일중 첫째 날이 주의날 이라는 명칭을 아직 받았었는지에 증거가 결핍돼 있다.41 고 시인하고 있다.
5. 안식일과 초기 교부 문서
비 평 “그러나 사도 요한 이 기록한 계시록 1장 10절 ”주의 날“은 주후 95년경에 기록하였고,
박영관 주후 107.년에 기록된 이그나티우스(Igna-tius)의 서신 '마그네시아인들에게' 제9항[장]에서, ‘그러면 만일 구습을 따르던 사람들이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의 날을 지키는 새로운 소망에 이르게 되었다면 우리의 삶도 주님을 통하여 새로워진 것이다’라고 했다.“42
해 설 박영관 씨는 요한계시록 1장 10절의 “주의 날”이 일요일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요한계시록보다 15년쯤 뒤인 서기 115년경43 안디오 감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가 순교 당하기 위하여 로마로 잡혀가는 길에 서머나에서 마그네시아 교회 선지자들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을 찾아볼 수 없는 일요일 준수를 정당하게 해 줄 수 있을까?
변 증 가. 로마 황제 트라얀(Trajan . A.D. 98~117) 당시 안디옥교회의 감독이었던 이그나티우스가 순교를 앞두고 쓴 것으로 알려진 일곱 개의 편지가 세 가지 형태로 분류되는 여러 개의 사본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내용이 바르게 보존된 것을 확인할 수가 없고 대부분 4세기 이후에 가필한 것들이다. 그 외에도 가짜 편지도 여럿이 있어, 상당수의 학자들은 아예 모든 편지를 믿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44 편지들의 골자는 교회의 권위에 복종하여 분열을 막으라는 것과 예수께서 육식으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당시의 이단인 가현설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또한 골로새 교회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사도 바울의 편지처럼, 그리스도를 제쳐놓고 자신이 율법을 지킴으로 이룬 선행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는 유대 주의자들의 가르침을 논박했다.
나. 이러한 배경에서 비평에 인용된 구절의 참 뜻을 보다 분명히 알기 위해서는 앞뒤의 문맥을 주의 깊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다음은 바로 앞의 문장인 8장의 내용이다.
“만약 우리가 아직도 유대교 신앙을 따라 살고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
아들이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거룩한 선지자들은 예수그리스도와
일치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 역시 핍박을 받았다.....“45
그리고 다음 장인 9장에서는 이토록 구약 시대에 살았으면서도 계시된 말씀의 빛을 따라 장차 오실 그리스도와 일치하게 거룩한 생애를 살았던 옛선지자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이그나티우스 당시의 유대 주의자들처럼 형식적인 율법주의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율법의 영적인 원칙에 따라 살았음을 상기키시고, 그들을 본받도록 마그네시아 교회 신자들을 권면하는 내용이 9장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박영관 씨가 인용한 [마그네시아인들에게]보낸 편지서의 그 “구습을 따르던 사람들” 이란 다름 아닌 예수그리스도와 일치하게 거룩한 생애를 살았던 구약의 선지자들인 것이다.
다. 비평에 인용된 9장의 다음 장인 10장에서도 이그나티우스는, 예수그리스도의 영적인 복음을 저버리고 육신 적인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내세우는 유대주의적 신앙을 아래와 같이 계속 논박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면서도 유대주의적 신앙을 실천하는 것을 괴이한 일이다. 왜냐 하면 크리스트교 신앙이 유대교 신앙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라, 유대교 신앙이 그리스도 교에 기초했기 때문이다.....”46
이와 같이 비평에 인용된 편지의 앞 뒤 문맥을 이해할 때, 이그나티우스감독이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 분명해진다.
라. 그런데 박영관 씨가 인용한 것과 같이 “주의 날”에서 “날”이란 말이 가장 근본적이고 잘 보존된 헬라어 원문 사본들에는 없다. 그것이 일요일을 가리키는 “주님의 날”이 되자면, 여성 명사인 “날”의 대격을 삽입해야 하거나, 그것이 문법에서 동족목적어 구문에 함죽되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이그나티우스의 모든 편지들에는 이런 구문을 쓴 예가 한 번도 없다.47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본들의 모체가 되는 가장 오래된 헬라어 사본등에는48 “주님의 생명”이라고 쓰여 있어, 여성 명사를 필요로 하는 문법에도 맞고, 같은 문장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대조시킨 문맥에도 적절히 어울린다.49
마, 또한 비평에서 인용된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에서도 안식일은 명사가 아니고 헬라어 원문에는 현재분사를 써서 뜻을 달리하고 있다. 영어로는 “ no longer sabbatizing"으로 번역되는데, 이 뜻은 실제로 문맥에도 나타났듯이 유대교 방식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빗나간 율법주의를 경계한 것임이 다음의 문헌에서도 분명해진다. 즉, 같은 편지를 4세기에 가필하여 확대 설명한 사본의 같은 9장에 아래와 같은 해설이 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유대 인적인 방식을 따라 안식일을 지키지 말고, 나태한 날들을 즐기 지 말자. 왜냐하면,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분 모 두는 영적인 방식을 따라 안식일을 지킬 젓이니, 곧 육체를 느즌하게 하지 말고 율법을 명상하는 일을 즐기고, 하나님의 지으신 것들을 찬양하며, 전 날에 준비한 것들을 먹거나 미지근한 물을 마시는 일들을 하지 말 것이며, 제한된 지역만 걷거나 아무 뜻도 없는 춤 이나 박수 갈채에서 기쁨을 찾으려 하지 말라.”50
바. 마지막으로, 박영관 씨의 비평이 결정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입증하는 단서가 있다. 즉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의 날을 지키”게 된 것으로 표현된, 그 “구습을 따르던 사람들”이란 앞에서 본문 문맥을 가지고 지적했듯이 다른 사람이 아닌 “가장 거룩한[구약의] 선지자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언제 안식일 준수를 그만 두고 주일 중 첫날인 일요일을 지킨 적이 한번이라도 있는가?
문맥을 바로 아는 일이 중요하고, 주어로 쓰인 대명사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그나티우스는 당시의 마그네시아교회 신자들에게, 율법주의에 빠져 안식일의 영적 의미는 상실한 재, 전 날에 준비한 음식이나 먹으면서 게으름으로 안식일을 보내는 역겨운 유대교 방식의 안식일 준수를 논박하고, 구약의 옛 선지자들을 본받아 말씀을 통하여 미리 깨달은 예수그리스도의 영적인 교훈을 따라 영적인 그리스도 인의 삶을 살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그나티우스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주일 중 첫 날이 아니라, 일곱째 날을 준수한 것을 확 실히 알았다. 그렇다면, 이곳의 대조는 [일곱째 날과 첫째 날과 같은] 그러한 날들에 관한 것 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형식적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같은 방식의 생활과 그리스 도인에 게 있어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상징된 새로운 삶의 방식에 관한 것이다.”51
그러므로 비평에서 인용된 [마그네시아인들에게] 보낸 이그나티우스 감독의 편지는 안식일 대신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이유가 될 만한 아무 근거가 될 수 없음이 편지 사본의 원문만 편견 없이 읽어보아도 자명해진다. 원문에는 없는 “날”을 삽입하여 편지의 본 뜻을 크게 왜곡시킨 신학적 편견은 위험한 것이다. 문장을 문법과 문맥에 맞추어 바르게 이해하는 일은 본 뜻을 바르게 깨닫는데 필수적인 것이다.
6. 안식일과 장래일의 그림자.
비평 칼빈 의식적(意識的)인 속성을 가진 모든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초림에 의하여 의심없이 폐지되었다. 그는 진리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임재로써 모든 상징들이 사라졌다....그는 안식일의 참된 성취라고 나는 말한다....“안식일은 장래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2:16.17)고 사도는 말했다...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미신적으로 날들을 준수하는 모든 일에서 떠나야 한다.52
해 설 칼빈은 [그리스도 강요]에서 골로새서 2장16 17절을 인용하여, 안식일은 장래일의 그림자와 같은의식적인 법이므로 초림과함께 폐지되었다고 강조하고, 네째계명에 따라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을 미신적(迷信的)인 행위에 포함시키고 있다. 칼빈의 이러한 성경 해석은 옳은 것인가? 도덕의 법칙인 십계명 가운데 안식일만이 유독(惟獨) 의식적인 법인가? 예수 님과 사도들의 본을 따라 안식일을 준수하는 일이 미신적인 행위인가? 아래에 기록된 본문을 다시 읽으며 대답을 찾아보자.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런 것들은 장래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6.17).
위의 본문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왜 이러한 권면이 하필이면 골로새 교회에 주어졌는지 그 배경과 앞뒤 문맥을 아는 일이 필수적이다.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서 이 편지를 쓸 당시(A. D.62년경). 소아시아의 골로새교회는 “골로새 이단”(The Colossian Heresy)으로 알려진 특별한 이단으로 알려진 특별한 이단에의하여 어려움을격고 있었다.53 고로새서에서 발견되는 특별한 표현들 즉 “철학과 헛된 속임수”(2:8)“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2:8.20)“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2:18)“자아적 숭배와 몸을 괴롭게”(2:23)함등은 그 이단의 내용을 어느 정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헬라와 페르시아의 이원론에 기초를 두고 동양의 신비 사상을 혼합한 일종의 종교 철학으로 “영지 주의” 로 불린다. 이 거짓된 가르침이 일찍이 유대교에 침투했음을 사해 사본을 통해서도 학인 하게 되었고 후에는 그리스도교로 파고들어 그리스도교 영지 주의 하나인 “골로새이단”으로 나타나는 등 강력한 영향력 을 행사했다.54
그들은 예수그리스도 이 에에도 각급 천사들을 높은 하나님과 낮은 사람을 연결하는 창조와 구원의 중보자로 소개하고, 그리스도의 충만한 신성과 성육신을 부인하였다. 또한 십자가로 이루어진 구원을 무시하고 자기 학대와 엄격한 금욕(禁慾)을 실천하여 충만(充滿)에 이르려고 노력하는 한편, 할례등 구약의의식을 구원의 방편으로 소개하고 자신들이 물려받은 은밀한 영적 지식(gnosis)에의한 구원을 전파했다.55 이러한 이단에 맞서 바을은 예수께서 창조주 시요, 교회의 머리 시며, 유일한 중보이심을 확신시키고 있다. [골1:16.18.20] 또한 예수그리스도의 충만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강조하고 (2:9)십자가로 말미암는 속죄의 완전함을 논증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을 염두 에 두고, 칼빈이 안식일 폐지의 근거로 인용한 본문(2:16,17)을 바로 이해 하기 위하여 바로 앞의 문맥을 살펴보자.
의문에 쓴 증서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레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 에 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슬리고 우리를 대적하는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 하시고 제하여 버리자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2:13.14]
위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사람의 죄에서 구원 하신 것이 영지 주의 종교철학이 아니요 할례와 같은의식적인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할 레인 침례와의문에 쓴 증서를 실례로 들고 있다.(2:11-14).
십자가에 못박으셨다는의문에 쓴 증서는 무엇인가?의문(疑問)은 헬라어로 “도그마”인데 고시된 일반 법규나 종교적인 제도나 규정으로 모두 법적인 책임을 내용으로 한 것이다.56 유대인들이 스스로 만든 여러 가지의식적인 법규를 가리킬 때도 이 말이 쓰였다[엡2:15] 그런데 “증서”라는 말은 성경 전체에서 이곳에 한 번 박에 쓰여지지 않은 특별한 용어인데 고대 문서의 연구를 통해
근년에야 그 참뜻이 밝혀졌다. 이 “증서”가 헬라어로 “카이로그라폰”인데 손으로쓴 것. 뜻하고 실제로 쓰일 때는 채무자가 자신의 채무를 인정하고 직접 날인한 “빛문서”를 가리키는 전문용어 였다.57
그러므로 14절의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 하시고”....의 참뜻은 흔히 하는 대로 “모세의 율법을 패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셨다는”은 뜻이 아니고 .모든 개정역 성경에서 바로 번역했듯이 “법적인 요구를 가지고 우리를 맞섰던 법적인 [죄의]채무 증서를 끄집어내 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폐기하셨다.”58 는 “본뜻이 나온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희생으로 죄의 빗을 갑아 주셨기 때문에 죄의 채무 증서가 폐기된 것이다.
불의한 율법이 아니라면 율법을 없애므로 죄인을 무죄하게 만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불의이다. 예수께서 그런 불의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 을 리 없다. (롬3:25.26)오히려 죄인을 대신하여 율법의 정당한 요구를 채우시기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죄의 빗진 기록을 말소하신 것이다.[롬3:23.벧전 2:24] 14절의 이와 같은 설명이 맞는 것은 13절의 끝말이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로 되어 있어 14절에서는 빛문서를 예증으로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죄의 완전한 용서를 확신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갈라디아서나 로마서에서 복음이 나오면 논법상의례히 등장하는 율법이란 말이 골로 새서 에는 한마디 도 없어 사도 바울이 골로 새서에서 취급하고 있는 주제가 율법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59 2장 20절에 쓰여진 “의문에 순종하느냐” 라는 참뜻도 21절의 이하의 냉용을 보면 쉽사리 알게 된다. 동사형으로 쓰여진 20절의의문(疑問)이란, 곧 “붙잡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는 금욕을 강조하는 영지주의적 유대교의 가르침을 경계한 것이다[2“22.23]60
이러한 문맥의 흐름을 볼 때 16절의 “그러므로” 로 연결되는 말씀의 내용이 분명해진다. 즉 십자가를 통하여 베풀어지는 용서로 죄의 빛을 청산함으로서의롭게된는 확실한 길이 마련되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다른 길을 제시하는 그릇된 가르침을 쫓음으로 왜 십자가의의의와 효력을 저상(沮喪)시키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의지에 근거한 노력을 내세우는 “자의적 숭배”(will worship.골2:23]와 금욕을 실천하는 영지 주의 적인 유대주의 자들이 16절에 나오는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의의미를 왜곡시키는 그릇된 준수 방법을 부과하여 자신들의 목적에 맞추어(골2:23)가르침으로서 십자가로 이루어진 구원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61
이에 대하여 바울은 “누구든지[거짖교사들] [16절에 언급돼 행사들에 관하여] 너희[골로새교회]를 [함부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이렇다 저렇다] 폄론[판단]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라“ 는 것이다.62 사도는 지금 절기 자체를 정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절기의의미와 준수를 왜곡시키고 있는 거짖교사들을 경계시키고 있는 것이다.63 그런 다음에 이런 것들은 장내일의 그림자이나 몸[실체]은 그리스도이니라“는 말로 그러한 제고의 참뜻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장래 일의 그림자는 무엇이고 몸은 그리스도의것“ 이라는 말은 무엇인가? 같은 내용을 다룬 다른 곳의 평행 절을 찾아 그 대답을 찾는 것이 성경이 보증하는 가장 확실한 해석이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와 같은 제사로는 나아 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이는 황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히10:1.4.)
골로 새서(2:17)의 “장래일의 그림자” 가 무엇임을 히브리서는 같은 헬라어인“그림자”(skia)“장래일”(ton rnellonton)을써서 정확히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장래일의 그림자인 율법은 어떤 율법인가? 문맥에 나타난대, 장차 오셔서 십자기에 돌아가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던 구약의 제사 제도인 것이다
그것을 보통 구약(舊約.old covenant)이라고 부르는데, “첫 언약”(first co-venant. 히9:1)혹은 “첫것”(히10:9)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제사가 성소의 규정에 따라 드려졌기 때문에 구약의 성소 제도와 같은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히8:9)그러므로 “장래일의 그림자”(골2:17)는 구약에 나타난 표상 적인 제사 제도인 것이다. 그렇다면 “장래일”은 무엇이고 “그림자”의 실체가 되는 “몸"(soma)은 무엇인가? 같은 평행 절이 그 대답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 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셧도다. 전제로 번제함과 속죄 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책에 나를 가리켜 기룩한것과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이뜻을쫓아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
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10:5-10)
대답은 모두 주어졌다 예비된 “한몸”은 예수그리스도의 몸이며 “장래일”이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이루어진 위대한 구속과 그 결과인 것이다. 이리하여 예수그리스도를 표상(type)한 그림자(shadow)였던 구약의 제사 제도는 그것의 원형(antitype)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몸 곧 실체를 만난 것이다. “그 첫것을 폐하려 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히10:9)위의 설명은 "이것들은 장래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는 골로 새서2:17절의 확실한 뜻이다
먹고 마시는 것 ......................
히브리서 8. 9. 10. 장에 나타난 대로 그리스도의 몸을 표상 하는 그림자가 되는 구약의 재사제도는 성소[제도와 현장] 와 제물[제물] 제사장[봉사]- 절기로 이루어진다. 성소 자체도 성육신 하실 그리스도를 가리꼈고 (요2:21)제물은 물론 (히10:5)제사장도 그리스도를 가리켰다(히9:11.12)
그런데 골로 새서에 언급된 “먹고마시는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2:16)은 어떻게 몸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그림자가 될 수있을까?
먼저 먹고마시는 것은 무엇인가? 성소에 드린 제물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피흘림이 있는 희생 제물과 피흘림이 없는 희생 제물[sacrifice)과 피흘림이 없는 예물(otte-ring 이였다(단9:27)피흘림이 없는 제사는 곡식(가루나 빵)을 기름과 소금 향과 함께 드린 소제가 포함되었다.(레2:2-7)누룩이나 꿀을 석지않은 곡식 가루, 나 빵은 밀할것도 없이 생명의 양식(요6:5)이신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것으로 일부는 제사장이 먹었다.(레2:3,10)
또한 소제처럼 번 제와 함께 드린 예물은 포도주를 드린 전제인데 [민15:4-11] 이것은 성만찬의 포도즙과 같이 그리스ㄱ도의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 였다.(마26:27.28)골로세서에 먹고 마시는 것은 이 소제와 전제를 가리켰음이 같은 내용인 “예물과 제사를 “언급한 히브리서의 ”이런 것은 먹고마시는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유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라.[히9:9.10.)는 말씀에서 확실해 진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골로 세서의 말씀을 오해하여, 그리스도인 은 구약 성경에 [레11.신14장]
언급한 건강에 해로운 식품도 이제는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는 가르침은 옳지 않다.
다음으로 “월삭과 절기와 안식일은 어떻게 구 속의 실체이신 그리스도의 몸을 드러내 “장래일의 그림자”가 외는가? 골로새서 2:16절의 절기는 레위기 23장에 준수하도록 명시된 유월절, 무교절, 요제절, 오순절, 나팔절, 대속제일, 초막절등 일곱 절기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 절들과 연관되어 제칠 일 안식일이 아닐지라도 일하지 않고 성회로 모이는 국경일과 같은 일곱 번의 절기 안식일 이였다.(레23장).
이 절기에의미를 준 것은 절기가 지켜지는 정확한 시간에 예정된 구원의 계획을 정확히 성취시키는 예수그리스도를 그림자로 표상 하는 제물과 예물 이였다. 유월절인 1월14일 해질 때에 잡은 양은 그 시간에 돌아가신 흠업는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냈고, 1월15일 무교절 안식일을 시작으로 한 주간 먹게 되는 누룩 없는 떡[무교병] 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드러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신 그리스도의 몸을, 1월16일 요제절에 바친 처음 익은 곡식 한 단은 유월절 이후 삼일만에 부활의 첫열매로 살아나실 그리스도를 놀랍도록 정확히 예표한 것이다.
제물이 없는 절기는 신랑이 없는 잔치처럼 무의미한 것이다. 그래서 골로 새서의 “장래일의 그림자” 였던 이러한 절기들이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구속의 핵심으로 가장 적절하게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먹고 마시는 것 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 ”의 참된의미는, 이러한 상용구(常用句)의 기본이 되고 있는 민수기28장과 29장에서 거기에 상응하는 제물과 예물을 자세히 언급함으로서 확실해 지고 있는 것이다.66
마지막으로 “먹고마시는 것과 절기와 월삭” 과 함께 “장래일의 그림자” 가된 “안식일” 은 어떤
날인가? 그리고 그것은 칼빈의 주장처럼, 실체(몸)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서 그림자처럼 없어져야 하는 것인가? 이곳의 안식일은 복수형(속격,sabbaton)이여서 제칠일안식일이 아니고 구약의 일곱 절기의 안식일 을들을 가리킬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당시의 구어(口語)였던 아람 어의 안식일(단수,shabbetha)울 헬라어로 음역 [音譯] 한 것이 (sabbata)공교롭게도 헬라어의 안식일 (sabba-ton)의 복수형(sabbata)과 같아지는 바람에 혼란이 생겼다. 즉 아람 어의 단수 안식일이 헬라어의 복수 안식일과 같은 철자를 가지게 되어 단수 안식일을 잘못 변형시켜 쓸 수도 있다는67 가능성이다.
한편 골로 새서 2:16절의 "절기"(horte)와 "월삭"(neomenia)이 실제의 내용은 모두 복수인데 표현은 단수로 하고 있어 서, 여기에 나오는 용어들이 비록 단수로 쓰여졌다 해도 실제로는 복수 일수 있는 문법 상의 근거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68 왜냐하면 제칠 일 안식일에도 절기 안식일의 경우처럼 지정된 예물을 드렸기 때문 에 제물 목록에 안식일이 포함된 것이다(민28:9.10; 대하8:13 ;레24:8)제물로 상징된 그리스도가 없이는 절기가 성립될 수 없듯이, 그리스도가 없는 안식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안식일에도 그리스도인 그림자인 제물을 드린 것이다.
문제는 골로 새서 2:16의 안식일이 제칠 일 안식일인가. 절기 안식일인가 에 있는 것이 아니다 먼저 “장래일의 그림자” [골2:17.히10:1]인 절기를 포함한 구약의 재사제도가 몸이신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심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확 인 하는 것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거져 올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짖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
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오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1.12)
옜언약[그림자] 새언약[실체]
성 소: 지상 성소 → 하늘 성소 [히 8:5. 9:11]
제사장: 인간 제사장 → 대제사장인 그리스도 [히8:1.2]
제 물: 짐승의 피 → 예수그리스도의 피[ 히9:12]
십계명: 돌 비에 새김 → 마음에 기록함 [히8:8-11]
예시한 대로 “장래일의 그림자” 인 구약의 제사 제도가 실체[몸] 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심 을로서 외형적인 그림자는 없어졌으나 실제로는 더욱 완전해 졌음을 알게 된다. 그림자인 옜언약의 지상 성소 제도에서는 돌 판에 새겨져 법궤에 보관되었던 언약의 조문인 십계명이 언약의 실체이신 예수께서 오신 후 어떻게 되었는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집으로 새언약을 세우리라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
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8:8.10]
돌판 대신에 마음에 기록되고 법궤대신에 생각 속에 보관된 인간의 표준 도덕법인 십계명 가운데 언약의 인(印)인 안식일만 (출31:16.17)그림자처럼 없어졌다고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에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 인줄 알게 함이라“(출31:13)는 선언이야말로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히8:10)새언약의 진수인 것이다.
비평 주이트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논하지 못하게 하라,...(골2:16.17)... 아무도[절기를 지키는] 문제로 그[바울]를 판단할 수 없엇다.안식일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였다. 그리스도 인들은 더이상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안식일의 완성이신 분을 예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70
변 증
구속의 역사를 예표(豫表)하는 지정된 시간에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물을 드림으로서 성립되는 “장래일의 그림자”인 절기는 실체(몸)이신 예수께서 오심으로 써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가? 칼빈의 말처럼 ‘“의심 없이 폐지되어” 흔적도 업이 사라졌는가? 그리하여 안식일 준수조차도 미신적인 일이 되어서, 비평에 인용된 주이트 말처럼, 그리그도인들은 “더이상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이” 되었는가?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기 때문에 동시에 없어져야 한다는 뜻인가?
십자가로이루어진일
실체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서 그림자인 절기에는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앞에서 언급한 세 절기를 예증으로 하여 대답을 찾아보자.
유월절--[1월14일] 실체이신 예수 님께서 유월절 양을 잡는 같은 시간에 유월절 양처럼 뼈도꺽이지 않은 채 [출12:5-8. 46] 십자가에 돌아가심 을로서 그림자는 몸[실체]으로 바뀌었다 [마27;45~)그러나 예수 님께서는 유월절 양으로 돌아가신 (고전5:7)당신의 이러한 희생을 재림하실 때까지 기념하도록 성만찬 예식을 친히 제정하셨다.(마26;26-29, 고전11:23)뿐만 아니라 성만찬의 절정으로 “아버지 나라에 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짜인(마26:29)하늘에서의 “어린양의 혼인 잔치” (계9:7)를 약속하셨다 그리하여 구원의 첫단게인 십자가로 말미 안는 칭의[稱義]를 드러내는, 롬(3:23-26)이 사건은 유월절→십자가→ 성만찬→어린양의 혼인 잔치로 절정에 이른다.
무교절안식일-[1월15일] 유월절 양이신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날은, 동시에 첫 번째 절기 안식일이기도 했다.(레23:6-8)이날부터 한 주간 먹게 된 누룩 없는 빵은 “새덩어리가 되기 위해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고전5:7.8)는 성화를 가능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몸이 였다.
십자가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아의롭게 된 [稱義] 사람은 다시 죄에 빠지지 않도록 거룩하게 살아야 할 요청을 받고 있다 (롬6:17-19; 벧전1:14-16)그런데 유월절을 통하여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 십자가 이전에 하나님이 주신 첫 번째 명령은 안식일 준수였다.[출16:23-29] 왜냐하면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 인줄 알게하려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사이에 표징을”(겔20:12)삼기 위해 출애굽 즉시 안식일을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겔20:10)안식일은 죄인을의롭게 하는 날이 아니라. 십자가로의롭게 된 죄인을 거룩하게 하는 성화의 보증으로주신 것이다.(출31:13)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유월절은 여섯째날 곧 예비일 이였으며 .다음날인 무교절 절기 안식일은 동시에 제칠 일 안식일 이여서 두 안식일 이 포개짐으로서 “그 안식은 큰날”[요19:31)이 된 것이다.
여섯째날 오후3시경 “다이루었다”(요19:30)는 선언과 함께 운명하심으로써 구속을 끝내시고 해 가지면서 안식일을 무덤에서 쉬신 것은 여섯째날 오후 창조를 마치시고 “다 이루니라”(창2:1)는 기록과 함께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창2:2)신 창조의 완성과 일치하는 사건이다.
이리하여 유월절 십자가로의?怜鍍? 사람은 성화의 표상인 무교절을 대신한 안식일을 통하여 성별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토록 제칠 일 안식일과 무교절의 일치한 관계는 안식일에 누룩 없는 빵[무교병]을 드린 성소 봉사에서 확인하게 된다.“항상 매안식일에 이 떡[빵]을 여호와 앞에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을 위한 영원한 언약이니라”(레24:8)십자가를 상징한 번 제단이 있는 성소의 뜰은 칭의[稱義]의 상징 이였다. 그리고 말씀을 통한 성령의 역사를 상징한 촛대와 그리스도의몸을 상징한 떡과 중보의 기도를 상징한 향단이 차려진 성소의 첫째간은 성화[聖火]의 상징이 였다 그리스도의 몸이요 말씀을 상징한 [요6:51.63]누룩없는빵 열두 덩이가 안식일마다 새것으로 구워져[대상9:32]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를 삼도록[레24:7] 상위에 진설되었다 그리고 일주간 진설되었던 무교병은 제사장들이 성소 뜰에서 먹음으로써 “지극히 거룩함”[레24:9]에 참여하게 하셨다 안식일의 목적과 일치하는 무교절의 영적의미이다.
이 빵이 누룩 없는 것[무교병] 이였음은 그것이 화제(火祭)에 포함된 소제의 예물이기 때문이다(레2:5.11; 5:14-18)이와 같이 성화의 보증이 되는 두 번째 단계는 무교절안식일→무덤에서 쉬신 안식일→제칠 일 안식일→신천신지의 영원한 안식일 (사66:22.23)로 이어지는 극치를 보게 된다.
요제절 (1월16일)여섯째 날인 금요일 오후에 십자가에서 운명하심으로 구속을 이루신 주님께서는 제칠 일 안식일을 무덤에서 안식하셨다. 무교절 안식일 다음날인 1월16일 아침에는 처음 익은 보리 단을 흔들어 예물을 삼았는데 바로 이 “안식일 이튿날인” [레23:11] 1월16일 요제절 아침 곧
“안식후첫날 이른 아침”(요20:1)에 예수께서 땅과 무덤을 힘있게 흔드신 후 부활의 첫열매로 살아나심으로써(고전15:20)그림자는 실체를 만난 것이다.
이러한 부활은 예수께서 친히 참여하신 침례와 세족 예식에의하여 기념되고 있으며 (롬6:5.벧전3:21.요13:9.10,딛3:5)마침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의인이 참여할 첫째 부활로 극치에 이르게 될 것이다(고전15:22.23.)이와 같이 썩을 몸이 썩지 않을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는(고전15:42-44)영화의 경험은 칭의와 성화를 경험한 사람들이 누릴 최고의 경험이다. 이리하여 요제절→부활→침례→세족→첫째 부활에 이르러 요제절의 표상은 극치에 이르게 된다.
이상과 같이 구 속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기본적인 세 절기의 실체를 일목요연하게 예시해 보자.
구 속의 그림자인 기본 절기와 십자가로 성취된 실상.
유월절 무교절 요제절
[상징] 1월14일 1월15일 1월16일
어린양의피 누룩없는빵 처음익은열매
(출12:6.7)(레23:6.7)(레23:10.11)
[성취]여섯째날 십 제칠 일 안식일 안식일 이튿날
자가에 죽으심. 일치되어 안식하심. 부활하심.
(마26:2;눅23:54)(요19:31)(레23:11 눅24:1)
[기념]성만찬 안식일 침례[세족예식]
(고전11:23-26)(레24:8;눅23:56)(벧전3:21;요13:10-15)
[의미]의롭게 하시는 거룩하게 하시는 영화롭게 하시는
그리스도[칭의] 그리스도[성화] 그리스도[영화]
[극치]어린양의 혼인 신천신지의 안의인의 첫째 부할
잔치 식일
(계19:7)(사66:22.23;히4:3.4)(고전15:22.23)
이리하여 “장래일의 그림자”(골2;17)였던 유월절은 실체(몸)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성취됨으로써 없어졌지만 성만찬으로 기념되고 있으며 요제절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성취됨으러써 없어졌지만 침례로 기념되고 있다. 무교절은 십자가에서 찢겨진 그리스도의 몸이 안식일에 드려진 누룩 없는 빵이 되셔서인 류를 위한 생명의 양식이 되심으로 성취되었지만 본래 창조의 기념일 이였던 제칠 일 안식일은 성별의 체험과 함께 십자가로 이루어진 구속의 기념일로 확증된 것이다.(신5:15)
이와 같이 그리스도교의 신앙의 기초가 되는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는 그것을 기념하는 두 성례인 성만찬과 침례로 확정되었고 한가운데는 안식일이 확립되어 창조와 구 속의 주체로서 이 모든 일을 이르신 예수그리스도를 안식일의 주인(마12:8 막2:28)으로,창조와 구 속의 하나님으로 확신시키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로 이루어진 구속 |
창조와 구속을 이루신 예수그리스도 |
부활로 보증이 된 새생명 |
성 만 찬 |
안 식 일 |
침 례 |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막2:28) |
이와 같은 것은 신학적인 상식에 속하는 일로 자신들이 일요일을 지키는 성경주석 학자인 감리교의 클라크(Adam Clarke)장로교의 반스(Albert Barnes)그리고 대중적인 개신교 성경 주석(Jamieson, Fausset, Brown)에도 다음 과같이 증언하고 있다.
“(골로 새서2장16)에는 그리스도교가 소개됨으로써 안식일이 페지되엇다거나 안식일의 도덕적인 적용이 다른 것과 바뀌어졌다는 위협이 없다.71
“십계명 가운데 한 계명이 인간을 구속하는 일을 고쳤다고 사도바을이 가르쳤을 최소한의 이유도 없기 때문에 [골2:16절]에서 사도바울이 아무 거룩한 시간을 준수할의무가 없다고 가르친 증거가 없다....도덕률의 어떤부분, 십계명의 어느 하나도 “장래일의 그림자로” 불리울수가 없다.이 계명들은 도덕률의 속성에 따라 영원한 것이요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72
제칠일 안식일은 엿새 동안 천지창조가 마쳐진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에덴낙원에서 제정된 것으로서 보다 영속적인 기초 위에 서 있다.73
지금까지 성경 적인 표상의 원칙에 서서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그림자였던 제사 제도와 거기에 포함된 절기의 깊은 뜻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장래일의 그림자”인 “월삭과 절기와 안식일”(골2:16)이 실체이신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폐지된 것은 업어지기 위함이 아니라 새로운의미와 형태를 입고 완전해지기 위함이었음을 확인했다. 더군다나 창조와 구 속의 기념이요 성화의 보증인 안식일을 그 사라져 버린 그림자 속에 포함시켜 일소하려 한 것은 심대한 과오이다.
만약 사고 바울이 골로새서(2:16, 17)에서 뜻한바가, 칼빈의 생각처럼 그림자의 시효(時效)만기에의한 안식일 무효선언 이였다면 어떤 반응이 일어 났겠는가?
십계명에 포함되지도 안이한의식인 할레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페지되엇다고 가르친것 때문에 일어났던 소동을 생각해보라. 결국 예루살렘 총회까지 개최하기에 이르렀고(행15:1.2), 바울은 유대인 율법주의 자들에의하여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재판에 넘겨지기 까지 햇다(행21:21, 30-34)
“유대인 중에 믿는자 수만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이 있는자”(행21:20)였던 당대의 분위기에서, 만약 바울이 감히 안식일을 할레처럼 무효라고 갈르쳤다면 어떤 반응이나 소동이 일어났겠는가? 바울에 대한 수만은 비난이나 고소가운데, 그가 안식일을 무시했다가거나 페한것으로 가르쳤다는 내용은 일체 없다. 바울은예루살렘 결의내용 안에서 가르치고 있었으며 안식일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의 기정 사실로 문제조차 되지 않았음을 기억할 것이다.
7. 안식일의 개인적 확정
비평 일반교회.
“안식일은 폐지 되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시작된 신약 시대에는 모든 날이 다 같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로마서 14장 5,6절에서 언급하고 있다.”74
해 설
제칠일 안식일 준수를 부인하는 사람은, 안식일은 굳이 제칠일로 고정하여 지켜야 할 이유가 없고 주일중 아무 날이나 하루를 구별하면 되는 것이므로 첫째 날인 일요일도 상관없다고 한다. 그러한 근거로 아래의 로마서를 인용하고 있다.
“혹은 이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난님께 감사함이요, 먹지않는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함이며 하나님 께감사하느니라. (롬14:5.6)
비평 주이트
주이트(Paul E. Jewltt)는 이상의 성경 구절을 언급하면서,“ ... 사도 바울은 이방인 신자들이 안식일을 지킬 의무가 조금도 없다는 것을 명백히 말해 두는 것”75 이라고 결론을 짖고 있다. 이상과 같은 사도 바울의 권면이 주이트의 말처럼, 참으로 십계명에 언급된 제칠일 안식일 준수가 십자가와 함께 끝났음을 선언하는 것인가? 신약 시대에는 성별(聖別) 된 하루가 일요일등 아무 날이나 될 수 있음을 뒷받침하는 말씀인가?
믿음이 강한 사람과 연약한 사람
변 증
비평의 본문이 속해 있는 로마서는 확연히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부분(1장~11장)에서는 구원의 기본 진리인 믿음으로 의롭게 됨, 인간의 죄됨,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등 교리 적인 면을 취급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12장~16장)에서는 사도 바울의 서신들에서 그랬듯이 앞서 깨달은 진리를 실새활에 어떻게 적용하여 실천해야 하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문이 속해 있는 14장의 성격은 어떠한 교리를 정립(定立)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깨달은 진리의 실천 방안에 속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본문인 14장 5, 6절은 동떨어진 구절이 아니라 1절부터 시작된 문맥의 연속이기 때문에 올바른 성경 해석을 원칙에 따라 이를 확인하여야 한다.
“믿음이 연약 한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 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 한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 를받으셧음이라.” (롬14:1-3)
이렇게 음식을 먹는 문제로 시작된 14장 5, 6절에서 어떤 날에 관한 문제를 잠시 언급한 후, 끝절까지 계속하여 음식 문제로 형제를 판단하지 말라는 주제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제가된 음식에 관한 문제를 먼저 이해하는 일이, 날에 괸한 문제의 해답을 얻는 일에 도움을 줄 것이다.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고 믿음이 강한 자는 고기와 포도주 등 (21절) 모든 것을 먹는다는 1절의 뜻은 무엇인가? 육식가(肉食家)와 음주 가는 믿음이 있고 채식가(菜食家)는 믿음이 없다는 뜻일까?
먼저 이 음식 문제가 구약 성경 (레11장; 신14장)에 기록된 식품위생에 관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레위기의 음식 법칙은 육식 가운데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언급했지.(레11:2,9 13, 29) 육식과 채소를 구분 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레위기에 자주 쓰여진 “부정”(不淨. impure)이 라는 말은 로마서(14:14)의 “속(俗) 되다” 는 뜻의 헬라어(koinos) 도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롬14:14) 는 말씀을 적용하여, 이제는 구약 성경에 명시된 식품위생법을 무시하고 아무것이나 먹을 수 있다는 표현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로마 교회에 말하고 있는 참뜻은 무엇인가? 그런데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집필 한곳인 고린도 에도(롬16:23. 1)비슷한 문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로마서보다 몇개월전 먼저쓴 고린도 전서에도 바울은 같은 문제에 대해 같은 교훈을 같은 표현으로 취급하고 있다. 문제가 된 음식 곧 육식(肉食)은 “우상 제물”에 관한 것이 였다. (고전 8:1)
당시 로마제국 전역에 편만 했던 이교적(異敎的) 우상 숭배와 관련되어 거기에 드러?병? 시장에 쏟아져 나와서 시민들이 피할 수 없는 식품이 된 것이다.76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요 제물도 음식이므로 먹어도 상관이 업다 는 믿음을 가진 개??적인 신자가 있는가 하면(고전8:4-6) “우상의 재물로 알고 먹음으로 그들의 양심은 약하여 지고 더러워지”(고전8:7)는 보수적인 신자들도 있어서 피차의 양심을 판단하는 경우가 된 것이다.(고전 10:29)
이에 대한 대답으로, 사도 바울은 불신자의 차려진 것이나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 그것이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인지 여부를 묻지 말고 먹으라는 권면을 한다(고전 10:25-27). 그것이 우상의 제물인 것이 밝혀지거든 피차의 양심을 위해 먹지 않는 것이 교회에 덕을 세우는 일이라고 가르친다. (고전 10:28, 29; 8:9)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고전8:13)라라고 입장을 밝힌다.
이러한 배경에서 “고기를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는 로마서(14:21)의 원면과 “너희가 주의잔[포도주] 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상[포도주]과 귀신의 상[우상의 제물] 을 겸하여 참여치 못하리라” 는 고린 도전서(10:21)의 권면은 같은 배경 일수 있다.
단지 로마서는 그것이 우상의 제물이라는 직접적인 언급이 없어서, 그것이 당시 에 이미 존재한 것으로 알려진 금욕적인 유대교 분파의 가르침(Essenism) 이 침투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77 어느 경우이든 그것이 성경에 근거한 가르침도 아니고 정통적인 유대교의 가르침도 아닌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개인의 판단에 맡겨진 날
이처럼 로마에 있던 초대 교회에 물의가 된 음식 문제에 곁들여 잠깐 스치고 지나간 “이날 저 날”(14:5.6)에 관한 참 뜻은 무엇인가? 로마서가 쓰여진 서기 57년경, 안식일 준수에 관한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없이 확고한 분위기 속에서, 남의 판단에 따를 것 없이,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롬4:5)는 권면에 해당하는 날은 어떤 날일까? 그날에 대한 이해가 안식일처럼 공적인 예배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개인적인 확신에 따라 개별적으로 처신하라는 권면을 받을 날이고 보면 개인 신앙에 연관된 행사임을 알 수 있다.
당시에 이러한 특성을 지닌 날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가? 1세게 전후에 초대 교회를 위한 교회 요람으로 알려진 디다케 (the didache)라는 문서를 살펴보면 어떤 단서를 ?O을만하다. 유대교신앙에 기초를 두고서 복음서의 내용을 인용한 이 교훈 집에는 성만찬과 물에 잠기는 침례(浸禮)와 함께 금식과 기도에 관한 교훈 등을 담고 있다.
그런데 금요일을 유대인처럼 월요일이나 목요일에 하지 말고 수요일과 금요일에 하도록 권하고 있다. “이레에 두번씩 금식” (눅18:11)했던 유대의 전통이 초대 교회에 전승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금식과 같은 개인적인 신앙 실처문제에 대하여 외적인 규정보다는 개별적인 판단에 맡기는 일은 합당한 일이다. 오랫동안 계속된 금식과 같은 신앙 관습을 부정하는 대신 각자가 자유를 가지고 처신하되 다른 견해를 가진 형제를 용납하도록 권면하는 것이다. 79
이상과 같은 금식 일과 연관되어 유대 그리스도인 들이 십자가 이후에도 상당 한기간 동안 준수해 온 절기에 관한 날들이 이상의 문제에 포함될 여지가 있다. 사도 바울은 이미 그러한 것들은 “장래일 의 그림자”(골2:16)로 선언했지만, 할례처럼“ 정죄하는 대신 위의 경우와 같이,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골2:16)고 권고한 바있다.
자신도 후에 이러한 절기 행사에 참여한 예가 있다. (행20:16). 이러한 절기들은 단순한 종교 의식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는 민속(民俗)명절이기 때문에 표상은 십자가로 성취되었지만 그후에도 상당기간동안 존속된 것이다.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면 시간의 경과와 함께 그림자처럼 없어지게 될 이러한 문제로 형제를 판단하고 비평하는 일은 하지말로록 권면할수 있다.80
이상과 같은 로마서 14장의 현실을 종합해 볼 때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 하라는 날이 안식일이나 일요일 날짜에 관한 것임이 아님은 확실하다. 그 당시 그러한 문제는 있지도 않았다. 자신도 철저한 안식일 준수 자였던 바울이(행17:12) 당시의 분위기에서 할레이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킬 제칠일 안식일 준수를 무시하고 아무 날이나 상관없으니 개의치 말고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하여” 준수하라는 원칙을 제시하였을 리는 만무하다.81 그것을 장차 있을 예루살렘 멸망을 앞두고 안식일 준수를 강조하신 예수 님의 말씀에도 어긋나는 것이다.(마24:20)
사도 바울의 이러한 권면에 대해 아무런 소동도 일어나지 않은 까닭은 그것이 안식일에 관한 문제가 아니었음을 침묵으로 확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금식이나 우상제물등 다른 사람의 신앙 양심을 존증해야하는 범주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을 취급하는 문맥에 넣어 간단히 언급한 데 불과하다,. 잘 아려진 개신교의 주석에는 로마서 14장 5절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증언 주석
“안식일이 확실히 유대교 보다 더 오랜 제도라면, 안식일이 유대교 아래서도 십계명의 영원한 존엄 가운데 모셔졌던 것이려면, 유대교의 어떤 부분도 언급된 바없는 시네산의 두려움 속에서 안식일이 [하나님에 의하여]언급되었다면, 입법자 자신이 이 땅에 계실 때 친히,‘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2:28)고 말씀하셨다면, 사도 바울이 로마서14장 5절에서 그의 독자들로 하여금 없어져 버린 유대인의 절기 가운데 안식일을 포함시키도록 했다는 사실을 보이는 일은 어려울 것이다.” 82
8. 일요일 준수의 기원과 역사.
증언 주이트
“왜 그리스도인들이 첫날에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가는 아직도 문제로 남아 있다. ???모든 학자들은 한가지 점에서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즉 첫날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부활의 기념일로 축하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일요일을 지키는 것은 부활사건에다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발생 과정을 정확히 설명하기란 용이하지 않다. 옛부터 인정되고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일요일 예배와 간은 관습이 일요일 예배와 같은 관습이 그 정확한 기원에 대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83
일요일을 주일로 옹호하는 대표적인 현대 신학자인 쥬이트(Jewett) 자신이, 자신이 주일로 옹호하고 있는 일요일이 왜, 어떻게, 그리고 언제 주일(主日)이 되고 예배일이 되었는지 근거와 기원을 알 수 없다고 한 증언은 정직한 증언이다. 그러나 참으로 그의 말대로 그것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모르면서 지키고, 모르면서 옹호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한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거의 온 세상 사람이 일을 쉬거나 예배하는 일요일이 까닭 없이 그렇게 되었을 리가 없다. 다음에 그 이유와 과정을 성경과 역사에서 살펴서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부당한 부활의 기념
주이트가 제시한 궁색한 이유처럼 그리스도의 부활이 일요일 예배의 근거라고 하지만 앞에서 언급 한대로 그것은 성경 적으로 인정될 수 없는 논증이다. 그 이유를 복습을 겸하여 아래와 같이 다시 요약해 본다.
가 신약 성경에는 매주[일요일] 혹은 매년[부활절] 단위로 부활을 기념하라는 말씀이 일체 없다. 새로운 제도인 성만찬, 침례, 세족 예식에 관하여 명백한 명령이 있다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나. 신약성경에는 일요일을 “부활의 날”이라고 부른 적이 결코 없고, 언제나 “안 식후 첫날” 혹은 “매주일 첫날” (고전16:2)로 불렀다. 그리스도교 문서에서 일요일을 “부활의 날”로 명명(命名)된 것은 3세기 뒤의 일로서 매주 일요일을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정착시키는 일일 부자연스러웠음을 알려준다.85
다. 부활은 그리스도의 지상 봉사를 끝낸 사건이 아니었다. 돌아가시기 적전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요19:10) 는 선언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지상 봉사의 끝을 알리셨다. 또한 하늘에서의 봉사 시작은 오순절로서 부활하신 당일이 아니었다. 성경은 부활을 날짜로 기념해야 할 아무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다.
라. 부할 하신 날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은 “나의 부활을 축하하기 위하여 모두 와서 함께 예배하자” 는 말씀이 아니었고,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마28“:10)는 활동을 촉구하는 말씀으로 일체 예배나 거룩함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셨다.
마. 부활을 성만찬과 연관하여 일요일의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데, 일요일에 성만찬을 거행할 신학적이고 역사적인 이유도 없고, 시작부터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마26:20-29 ; 고전11:18-23). 성만찬은 부활의 기념이 아니라.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고전11:26)이다.
바. 부활절-일요일 발단이 된 유월절도 본래는 부활하신 일요일에 기념한 것이 아니라. 그해 1월[Nisan]14일이 해당되는 어느 날이나 준수했다. 그것은 본래 그리스도의 수난(受難) 의 기념 이였지 부활을 기념한 것이 아니었다.86
사. 일요일 준수에 관한 초기의 기록들인 서기 135년경의 바나바 서신이나 거시 150년경의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 의 기록에 보면, 일요일이 부활의 기념이기보다는, “여덟째 날”로 “또 다른 시작”87 을 대표한 창조의 첫날88 임에 의미를 두었음을 보게 된다.
아. 십자가에 죽으심은 성만찬으로 기념하듯 (고전11:26), 부활은 침례로 기념하도록 성경에 명시되어 있다.(벧전3:21; 롬6:5).
이상의 몇 이유들을 보더라도 일요일 준수가 부활에 기초했다는 논증은 성경 적인 것도 아니고 역사적인 것도 아니며 논리적인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디에 그 기초와 근거가 있는가? 주지(周知)된 대로 성경에는 그 기원과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일요일 예배 외에도 성탄절로 일컬어지는 크리스마스나 부활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이 성경에서 기원(起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의 이방 선교로 야기된 교리 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소집된 제1차 그리스도교 세게 총회 격인 예루살렘 회의의 결의 사항을 살펴보자. 이방인이 그리스도인 이 되는데 장애가 된 할례등 의식들은 폐지하기로 결의했어도 안식일 준수 여부는 처음부터 문제로도 거론되지 않았다.(행15장). 같은 성전이나 회당에서 같은 안식일과 같은 성경(구약)을 사용하여 예배한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 사이의 차이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여부와 침례, 성만찬등 의식 외에는 두드러진 것이 없었다.
안식일은 이방인과 유대인,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를 구별하는 조건이 결코 아니었다. 총회의 의장이었고 초대 교회 지도자인 야고보와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은 훨씬 후인 서기 58년경, 사도 바울에게 그리스도교로 개종 한 유대인 중에 “수만 명이.........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행21:20)고 확인 하였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본부였던 예루살렘 교회가 안식일 대신 일요일을 준수에 앞장섰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89
구약(단9:26. 27)과 복음서 (마24:15. 16)에 다음과 같이 예언된 예루살렘의 대 파멸이 참으로 안식일을 폐지하고 일요일을 준수하게 된 계기가 되었는가? 예루살렘에서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24:20)는 예수 님의 권고에 따라 유대 그리스도인 들은 예루살렘을 빠져나와 요단동편 펠라(Pella)지방에 정착했다는 사실이 4세기 역사가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 315-430)에 의하여 확인되고 있다. 그들은 “본래의 예루살렘 신앙 공동체의 직계 후손”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예루살렘 멸망 이후 오랫동안 안식일을 비롯하여 할례까지 준수했음이 보아, 예루살렘 멸망이 안식일 준수에 특별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음을 확인 시켜 준다.90 예루살렘 멸망 이후 로마 황제 베스파시안 (Vespasian . 69-79) 은 산헤드린 회의와 대제사장 제도는 폐지하고 성정에서 예배는 금했으나, 91 안식일 준수 자체를 법으로 금하지는 않았다.
바르-코게바 반란(A. D132-135)이후
예루살렘 멸망 이후로도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 회당에 참석하여 안식일에 예배한 사실과 이들을 색출하기 위해 회당의 기도문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을 저주하는 문구까지 첨가한 실 레가 있다.92 그러나 서기 132년 로마 황제 하드리안(Hadrian . A. D. 117-138)이 예루살렘에 로마의 주신인 주피터(Jupi-ter)의 신전을 건립하려는 계획에 항거하여, 자신을 메시아로 자처하는 지도자 바르-코게바(Simeon- Kokeba)가 주동이 되어 일으킨 대 반란은 안식일 역사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일개 군단의 전멸 등 로마 군단의 막심한 손실과 함께 유대인만도 58만 명의 인명 피해를 내면서93 135년까지 3년간 계속된 이 반란으로 예루살렘은 다시 한번 폐허가 되었고 유대인 은 예루살렘에서 완전히 축출되어 출입조차 금해졌다. 유대인들에 대한 로마인들의 증오는 극에 달하였으며 유대교를 불법화하고 그들의 종교의식 자체를 사형의 법칙으로94 엄금하였음을 유대인의 고전 [탈무드]에 서 찾을 수 있다.
“로마 정부는 칙령을 발하여 그들이 토라[모세 오경 등 구약 성경]를 연구하지 못하게 하였고, 자식들에게 할 레를 베풀지 못하게 했고 안식일을 모독하도록 했다.95
로마 정부는 서기 70년의 반란 이후 유대인들에게 는 특별 과세를 부과했고,96 반유대문서들이 쏟아져 나왔으며,97 특별히 유대인의 안식일 준수와 할례를 미신 행위로 간주하고 혹평했다.98 이런 상황에서 지금까지 유대교의 한 분파로 알려져 온 초기의 그리스도교가 유대교로 오인되어, 무고한 증오와 핍박의 대상이 되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바르 코케바 반란 사건으로 상황이 극도로 악화된 이러한 여건에서 그리스도교가 취할 수 있었던 자구책은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와 다르다는 것을 변증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사명을 의식하고 나선 이방인 출신의 그리스도교 지식인들이 2세기에 대량으로 출현한 그리스도교 변증 교부들인 것이다. 그들은 로마제국에 그리스도교를 변호하는 변증 서를 써서 상신 하는 한편,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유대인들의 신앙과 문화를 경멸하고, 안식일과 할례를 정죄하는 활발한 활동과 변론을 계속했다.99
그리하여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와 다르다는 것일 강조하기 위하여, 이미 예루살렘 총회에서 사도들이 폐지한 할례는 물론, 사도들과 초대 교회가 의심 없이 준수해 온 안식일까지도 유대교의 관습으로 돌려 거기서 벗어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되어,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의 회당 참석을 금지했고, 그들을 모함하고 당국에 고발하는 등 적대 행위가 증가되었다.100
유대인들에 대한 로마 제국의 증오가 더욱 피부로 느껴진 곳은 역시 수도인 로마였다. 동시에 이방인 신자가 다수였던 로마의 그리스도 교회는101 핍박을 피하고 살아남기 위하여는 유대교에서 철저히 분리되어야 할 강박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괄목할 만한 두 사람이 비슷한 때 로마 교회에 등장했다. 하나는 순교자로 알려진 교부 저스틴이요, 또 다른 하나는 영지 주의 이단자로 낙인찍힌 마르시온이었다. 그는 자신의 부도덕한 과거 때문에 구약과 구약의 하나님, 유대인과 안식일을 증오하였다.
유대인을 미워하던 당시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심각한 영향을 미쳤던 그의 이단 작인 가르침 가운데는 “안식일에 관하여 하나님의 작정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이날에 금식”102 하라는 강조도 있었다. 로마 교회는 그를 이단으로 출교시키기는 했지만, 그의 가르침에 일치하게, 본래 즐겁게 잔치하던 안식일을 슬프게 금식하는 날로 정하여 역대의 감독[교황]들은 이를 법으로 강행했다.103 아무리 엄격한 유대 종파들도 안식일에는 절대 금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좋은 음식일 넉넉히 장만하여 잔치를 즐겼었다.104
초기의 그리스도인들도 유대인의 전통을 따라 안식일을 즐겁게 잔치하는 날로 보냈으며, 실제로 안식일에 금식을 강요한 로마 교회의 처사에 대해 동방의 교회들과 암브로스감독, 당시의 밀라노 교회 등 서방의 중요한 교회들도 이를 적극 반대했다.105 안식일을 금식 일로 만든 로마 교회는 그 날에 행하던 성만찬이 금식을 깨뜨린다는 명목으로 그것마저 금함과 동시에 종교적인 모임도 제하기에 이르렀다.106
“잔칫날이요 기쁨의 날이며, 종교적인 축제일이었던 안식일을 금식하는 날이요 슬퍼하는 날이요, 종교적인 아무 집회도 없는 날로 바꾸어 버린 것은 그리스도 인들로 하여금 안식 일에 대한 숭경심을 버리도록 강요하기 위해 로마 교회가 취한 구체적인 방편들을 드러내 는 것이다. 반면에, 이러한 실천 사항은 안식일의 금식이 지난 후에 일요일을 기쁨과 축제 의 날로 드높여 지게 했다.”107
19세기 루터교의 교회사가인 네안더(Augustus Neander)는, “동방 교회에서는 안식일에 금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규칙이었다.”108고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서방 교회의 여러 교회들 특히 로마 교회와 스페인 교회는 유대인과 유대 주의자에 대한 적대감 때문에 안식일을 금식하는 날로 지키도록 이끌어 나갔다.”109 로마 교회의 이러한 적극적일 노력으로 안식일은 점점 어두운 그늘 속에 가려지고 일요일은 각광을 받는 축제일로 부각된 것이다.
쥬이트(Jewett)의 말처럼 2세기의 교부 저스틴(Justin Martyr)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억지로라도 그의 군주인 황제(Antonius Pius)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110 로마제국이 혹성 신들 가운데 최고신으로 높이기 시작한 태양을 위해, “태양의 날”[일요일 . the day of Sun)이라는 명칭을 그의 변증 서에서111 제일 먼저 사용한 그리스도교의 저자112 가되었다.
그는 자신의 저작에서 안식일을 철저히 부정하고 경멸하는 한편 일요일을 그리스도 인의 예배일로 격상(格上)시키는 일에 적극적으로 추진시킨 최초의 사람이기도 하다. 113 아래에 인용된 일요일 성수론자 주이트의 설명은, 그전까지 이교도의 숭배 대상 이였던 태양이 어떻게 그렇게 쉽사리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에 중심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지 일면을 보여주고 잇다.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Sunday)이란 말을 사용하게 되자 그리스도교 신학은 그 말이 빛을 상징하는 표현이라는 입장에서 해석하기 시작하였다. ... 창조 기사를 설명하는 데 도 일요일이란 말을 가지고 하나님일 주일 첫날에 빛을 만들었다는 것과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라는 것을 상징시켰던 것이다. 찬란한 영광 중에 승천한 후 그리스도는 지금 그의 진리로 우리를 비치고 잇고 영원토록 우리의 빛이 되기 위해 재림할 것이라 고했다. 그리스도가 일요일에 재림한다는 전통일 세워지자, 그리스도인들은 그날에 서 서 기도를 하되 동쪽과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했다. ... 기원 4세기이래 일요일이 란 명칭은 그리스도교의 용어가 되어 있었다.”114
이러한 주이트의 설명은, “밤의 어두움을 쫓는 ...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기도를 드려진다” 115. 는 2세기말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클레멘트(Clement . A. D 150-215)의 진술로 뒷받침된다. 그리고 “해뜰 떼에 그리스도의 부할 을 기념하기 위해 기도하고...해질 때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도할 것”116 을 권면한 3세기의 칼타고의 감독 키프리안(Cyprian .d A. D.258)의 기록도 잘 어울린다. 일반 자연신교에서 태양을 숭배하게 된 과정과 흡사한 우상 숭배적인 예배 현상이다.
로마 교회와 부활절- 일요일
초대 교회 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성력(聖曆)1월[니산. Nisan)14일 곧 유월절(諭越節. Passover) 을 그리스도의 수난 기념과 무교절의 영적 의미를 (고전5:6-8)새언약에 연관시켜 오랫동안 준수해 왔다. (고전11:23-26). 그러나 유대인의 제1차 반란(A. D70)과 제2차 반란(A.D. 132-135)이후 유대인에 대한 로마제국의 증오가 심각해지고 마침내는 유대교가 불법 종교가 되자. 안식일 준수와 함께 이와 같은 유월절 수난 개념도 그리스도인을 유대인으로 오해시키는 구실이 되어 여기에서 벗어나려는 심리가 크게 작용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안식일 대신 일요일 준수에 앞장선 것이 로마 교회였듯이, 유월절 수난 행사 대신 부활절을 확립시키는 일에도 로마 교회가 앞장을 섰다. 그리하여 2세기 중엽에 이르러 1월 14일 유월절 수난 기념일 대신에 유월절 다음에 오는 일요일을 부활절-일요일(Easter-Sunday) 로 날짜를 바꾸어 준수하려는 시도가 노골화되자 이를 반대하는 동방의 교회와 큰 충돌을 빚게 되었는데 이것이 이른 바 부활절-일요일 논쟁(Easter-Sunday Controversy) 이다.117
부활절-일요일을 반대한 편은 주로 사도 요한 이 죽기까지 봉사한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들로서 요한 의 제자로 순교자가 된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카프를 (Polycarp . A.D.155)를 118 비롯하여 에베소의 이름난 감독 폴리크라테스(Po-lycrates. A.D 130-196) 등이 있었다. 이에 맞선 로마 교회의 감독은 식스투스를(Sixtus . 116-126) 시작으로,119 아니케투스(Ancietus. 154-165), 빅토르 1세 (Victor 1 . 189-199) 로120 이어졌다.
논쟁은 계속되었으나 유대인에 대한 로마인들의 증오심 때문에 시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서 서게 된 로마는 오랫동안 준수되어 온 안식일과 유월절 수난 기념일 대신 매주 일요일과 매년 부활절-일요일을 그리스도교의 예배일과 명절로 확립시키는 일을 쉽사리 수행할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321년 로마 황제 콘스탄틴(Constantine) 의 주재로 개최된 역사적인 니케아 종교회의(the Council of Nicaea) 칙령에 포함된 감독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하여 동방에 있는 교회들도 유대인과 함께 하지 말고, 로마 교회와 같은 날을 부활절로 기념하라고 명령함으로써 오랜 부활절-일요일 논쟁에서 로마 교회가 승리했음을 공인했다.121 이러한 일련의 배경 때문에 부활절을, “로마 교회-부활절”이라고 부르기에 이른 것이다.122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교의 최대 명절이 된 부활절의 진상은 무엇인가? 영어로는 “이스터(Easter)”, 독일어로는 “오스턴(Osterm)” 으로 불리는 이 명절은 그 근원을 전혀 성경에 두고 있지 않음을 교부들의 기록과 부활절-일요일 논쟁 역사를 살펴보면 당장에 알 수 있다. 다음은 5세기의 교회사가 소크라테스
(Socrates . d 450)의 증언이다.
“이스터[부활절] 축제가 준수되었다는 지적이 신약 성경이나 사도 교부들의 기록 어디에도 없다. ... 주님이나 그의 제자들이 이것[부활절]이나 다른 축제를 명하신 적이 없다. 이스터[부활절]도 만은 다른 관습이 그렇게 수렵된 것처럼 교회가 [이교]의 옛 용어를 바꾸어 영구하게 한 것으로 돌려진다.”123
고대 앵글로?색슨족들이 봄의 여신으로 섬겨 온 “오스타라”[Ostara 혹은 Eostre)를 위하여 베풀어졌던 다산(多産)을 비는 붐의 축제(祝祭)가 “이스터” 이다. “동쪽(Ost) 에서 태어나 땅의 새생명을 가져오는 봄의 태양”124 을 상징하기도 한 이 여신은 “부활절 달걀”이나 “부활절 토끼” 가 드러내듯 왕성한 생식(生殖) 과 다산(多産)을 약속했다.
그런데 이 봄의 여신 “오스타라”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고대 가나안의 다산의 여신 아스다롯(Astarte) 125 과 흡사한 비교종교학 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삿2:13 ; 10:6 ; 삼상7:3.4; 왕상11:5,33) 가나안의 여신 아스다롯은 고대 앗시리아와 바벨론의 사랑과 다산의 여신인 “이슈타”(ishtar)와 같은 존재임이 밝혀졌다.126 “여하튼 그리스도교의 부활절은 크리스마스처럼, 고대 이교의 축제를 대신한 것임이 분명한 것으로 여겨진다. 127
부활절과 함께 그리스도교의 최대 명절이 된 크리스마스 역시 앞서의 일요일이나 부활절-일요일처럼 태양숭배와 연관된 이교의 축제일이었음이 이교의 고대 문헌에서 확인된다. 크리스마스의 근원이 된 이교의 절기는 라틴어로 “디에스 나탈리스 솔 리스 인비크티”(dies natalis solis invicti) 였는데 그 뜻은 “정복할 수 없는 태양의 생일” 이였다.128
“동지(冬至)가 지난 후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고 정복할 수 없는 항성[태양]이 다시 흑암을 이길 때인 ‘새로운 태양’ 의 생일인 12월25일을 축하하도륵 매우 일반적인 준수가 요청되었다.”129
다수의 학자들에 의하여 거듭 확인되듯이. 예수 님의 탄생일을 “12월25일로 선택한 것은 이교의 행사였던 “정복할 수 없는 태양”의 축제가 그 당시 대단히 화려하게 축하되고 있었기 때문이었음이 점차적으로 확실해 졌다.”130 그리하여 4세기의 달력[Philocalian . A.D 354]에는 12월 25일이 아예 “정복할 수 없는 자의 생일”로 명명(命名)되어 있었으며, “로마 카톨릭 교회는 [패르샤의 태양신 교인] 미드라 종교(Mithraism)와 겨룰 목적으로 12월 25일을 택한 것으로 믿는다.”131 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실제로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축하한 것이 로마 교회였음을 밝히는 달력도 발견되었고,132 로마 카톨릭 교회의 의식(儀式) 학자에 의해서도 거듭 확인되고 있다.
“평화가 이룩된 후 로마 교회는 이교도들이 믿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용이하도록 하기 위해, 그들이 이교의 축제에서 돌아서도록, 흑암의 정복자인 ‘무적(無敵)의 태양’ 미드라(Mithras)를 영광스럽게 하는 같은 날인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임시적인 생일로 제정하는 것이 편리한 것을 발견했다.”133
로마제국과 태양 숭배
일정한 종교가 없던 로마 사람들에게 태양은 자연숭배의 대상으로 걸맞았다. [옥스포드 교회사 사전]에 의하면, 로마에서 공식적인 태양숭배가 시작된 것은 기원전 67년 페르시아의 태양신인 “미드라가 소개되면서 부터였으며, 2세기 말에는 콤모두스(Commodus . A.D. 180-192) 황제에 의하여 황실의 종교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아버지"(father)로 불리우는 제사장들에 의해 집행되는 태양 신교(Sun Cult)의 의식이 그시스도교의 성례 전들과 너무도 흡사하여, 당시의 교부 터툴리안(Turtullian)은, 사단이 그리스도교의 성례 전을 그들이 모방하도록 미리 알려줬다고 할 정도였다.134
이토록 2세기에 들어서면서, 특별히 황제들과 군인 및 고관들의 사적(私的)인 종교 가된 페르시아의 태양신은 “무적(無敵)의 태양”(Sol lnvictus Mithra)으로 불리우며 로마제국의 국교로 발돋움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공적(公的)으로는 “엘라가발루스(Elagabalus . 218-222)황제가 국교의 대상으로 드높인 태양신 (Sol lnvictus Elagabal)을 장엄한 신전에서 숭배하고 있었다.135
예수 님께서 탄생하시기 전 로마는 이미 혹성신(惑星神)의 이름을 딴 오늘날의 요일 명칭을 쓰고 있었음이 고대 문서들에 의해 밝혀졌다,136 2세기에 이르러 이 혹성 요일의 명칭은 더울 확신되었고 당시는 혹성에 포함되어137 토성일[토요일 . the day of Saturn] 다음인 둘째 날에 배정되었던 “태양의 날”곧 일요일(the dat of Sun) 이 2세기 초엽138 토성 일을 제치고 첫자리로 나오게 된 것은139 태양숭배가 고조되던 시대의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교도들은 일요일에 공식적인 태양숭배 의식은 행치 않았지만 목욕을 금하고 휴식하고 잔치하는 날로 보냈음을 2세기의 교부 터툴리안 (Tertullian . 160-225)의 기록에서 찾게 된다.140
2세시 중엽에는 이마 태양의 날 (日曜日)을 첫째 날로 하는 오늘날과 같은 일[태양] 월[달] 화[화성]수[수성]목[목성] 금[금성] 토[토성]등 혹성 요일이 확립되어 있었다.141 그래서 로마 초기 교부였던 저스틴(Justin Martyr)이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과 다르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하여 서기 155년경 로마 황제 [Pius)에게 변증 서를 올리면서, 세번씩이나 “태양의 날”을 거론하면서 이 날에 그리스도인 들이 한 데 모여 집회하는 습관에 관한 말을 하여 태양을 숭배하던 황제의 환심을 사려고 한 배경을 알게 된다.142
로마 교회와 일요일 준수와 태양숭배
이상과 같은 역사적 증거를 통하여 확실하게 된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즉 서기135년에 끝난 바르-코게바(Bar-Kokeba)의 반란을 계기로 유대교가 하드리안 황제에 의하여 불법 종교가 된고 구약 성경 [토라]연구와 할 레와 안식일 준수가 금지되자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와 구별되기 위하여 안간힘을 다했다. 특히 로마 교회는 이 일에 앞장서서.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일을 시작했다.
○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이 그 때까지 함께 준수해 오던 안식일을 로마 사람들이 선호(選好) 한 “태양의 날”인 첫째 날로 옮기기 위해 동방 교회들의 반대를 외면하고 안식일에 금식을 강요하고 성만찬을 금하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였다.143
○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유월절 수난과 새 언약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켰던 1월[니산]14일 대신 날짜를 무시한 채. 유월절 이후 첫 “태양의 날”[일요일]을 부활절- 일요일로 제정하고 동방 교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를 관철시켰다. 일요일과 함께 부활절 [이스터] 자체가 태양과 관련된 이교도의 축제였음이 명백한 사실이다.
○당시에 이미 민족 신앙이 된 “무적의 태양”의 생일인 12월 25일을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일컫는 크리스마스와 일치시켜 태양신이 누리고 있던 영광을 그리스도에게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삼았다.
이토록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일요일 준수가 이교의 태양숭배와는 전적으로 무관하다는 아래와 같은 주이트의 변명은 어떤 면에서도 진실하지 않다.
증언 주이트
“ 태양 숭배는 먼 태고로부터 있었던 일이며 그리스도교 시대가 시작되었을 때 유대인의 일주일중 첫날이 태양을 숭배하는 이교의 어떤 특별한 관계를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이 일요일에 예배 드릴 때 그들은 그날을 ‘일요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144
변증
실제로 그리스도교 신앙이 당시의 시대적 분이기에 편승하면서, 태양을 향해 기도하는 등 그리스도인의 각종 종교의식이 태양숭배와 직접 관련되자, 그리스도인들은 “태양 숭배자”(Sun-worshiper)라는 비난을 받기에 이르렀다. 2세기말의 서방 라틴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은 이에 대해 변명을 해야 했으며 145 5세기초의 로마 교황 레오1세(Leo 1 . d 461)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태양숭배를 하고 있는 것에 공격을 가하기에 이르렀다.146 또한 6세기초의 알렉산드리아 교부였던 유세비우스(Eusebius. c. 500)도 이 사실을 기록에 남기고 있다.
증언 교회사
“나는 태양을 숭배하고 그것을 향해 기도하는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다. 해가 뜰 때 그들은 기도하면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라고 말한다. 이런 일이 태양숭배자들이나 이교도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도 믿음을 떠나서 이교도들과 어울려 이 일을 한다.”147
콘스탄틴 황제의 일요일 휴업령(A. D 321)
앞에서 언급 한대로 2세기에 들어서면서 로마인들의 태양숭배 열이 높아지고 혹성 요일의 둘째 자리에 있던 “태양의 날” [일요일 . dies Solis)이 “토성의 날”[ 토요일. dies Saturni)을 제치고 첫째 날이 되는 등 148 분위기가 한창 고조되었다. 바로 같은 때에 유대인의 제2차 반란으로 로마제국에 의하여 불법 종교 가된 유대교와 구별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던 그리스도교, 특히 로마 교회가 앞장선 서방 교회는 동방 교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로마의 태양숭배 분위기를 수용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음을 확인했다.
때마침 동서로 나뉘었던 로마제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콘스탄틴(Constantine . d. 337)대제가 313년 밀라노 칙령(the Edict of Milan) 을 내려 종교 자유를 허용하는 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잇달아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 온갖 특전을 제공하는 일련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의 더할나위없는 환심을 사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황제는 321년 3월7일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칙령을 내렸다.
“존경스러운 이 태양의 날에 모든 판사들과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장사하는 모든 사람들은 휴업하도록 하라 그러나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하늘이 마련해 준 혜택을 상실하지 않도록 씨를 뿌리거나 포도나무를 재배함에 있어 그토록 적절한 때가 없는 수가 있으므로 적기(適期)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 날에 완전히 자유롭게 농경(農耕)에 종사하도록 하라.”149
큰스탄틴 황제가 휴업하도록 명령한 날의 대상인 “존경스러운 태양”은 예수그리스도가 아니라, 황제 자신을 포함한 로마 사람들이 섬겨 온 “무적의 태양” 곧 “미드라”(Mithras) 태양신이었다.150 국내에서 발간된 [기독교 대백과 사전]에도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증언 대백과
“그리스도교 시대 초기에 로마 제국에서, 특히 로마 군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수많은 동방 종교들 가운데 하나가 페르시아로부터 수입된 미드라 종교였다. 미드라는 태양신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미드라 종교는 일요일을 성일로 간주했다. 이러한 이교적인 종교의 추종자들이 이 날을 숭배한 것은 콘스탄틴 황제가 일요일을 제국의 휴일로 선정하는 데 공헌하였다.151
*[대영 백과사전]에도 일요일이 세계적인 휴일이 된데 대해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증언 대백과
“유세비우스(Eusebius . 260-340)에 의하면 일요일을 합당하게 준수하도록 하는 법을 최초로 제정한 사람은 콘스탄틴인데, 그는 전 로마 제국이 일요일을 규칙적으로 축하하도록 명령하였다.”152
“서기 321년 그 [콘스탄틴]가 일요일을 일반적인 공휴일로 선포했을 때, 그는 그리스도인과 이교도를 함께 마음에 두었다.”153 “태양의 날은 이교도 추종자들에 의하여 숭배를 받았고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도 영광을 받았으므로, 이로써 이교와 그리스도교의 상충하는 관계를 연합시킨 것이 황제의 정책이었다.”154
“[콘스탄틴] 황제의 견해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그리스도께 예배하고 이교도들 은 그들의 태양신을 섬기는데, 두 종교의 예배의 대상이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었다.”155
콘스탄틴의 정책과 일요일 휴업령의 진상
콘스탄틴의 개종(改宗)은 명목적(名目的)이었으며, 그는 평생 태양숭배자였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뒤에도 고대 희랍과 로마의 태양신인 아폴로(Apollo)를 높이기 위해 주화(鑄貨)를 만들어 냈으며 죽기까지 이교[태양신]의 대제사장의 칭호[Pontifex Maximus]를 썼다. 그는 그리스도교와 이교를 동시에 유지하려는 정책을 썼다.156 이러한 콘스탄틴 황제가 휴업하도록 명령한 날은 부활을 기념하는 그런 성일(聖日. holy day)이 아니라, 운동경기나 오락을 즐기는 세속적인 휴일(休日. holiday)에 불과했다.
태양의 이름으로 휴식을 명령한 이교적인 정책을 교회 지도자들이 오히려 추진하고 환영한 까닭을 무엇인가? 처음에는 불법 종교가 된 유대교와 구별되기 위하여, 로마 제국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 저의(底意)였다. 그러나 313년 밀라노 칙령에 따라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고, 명목적인 개종을 거친 콘스탄틴 황제는 성직자들에게 병역과 납세의 의무를 면제하고 사법상의 특혜, 하사금 지급 등 엄청난 특권을 부여하고, 교회의 사유재산과 유증(遺贈)까지도 허락하는 등 정치적 배려가 깊어지자 그리스도교는 금새 현실에 눈이 어두어진 퇴폐적인 정치 종교로 탈바꿈하고 말았다.157 성직 매매가 시작되고, 성직 쟁탈을 위한 정치적 수단이 동원되어 366년 로마 교회 감독 다마수스(Da-masus)를 선출할 때는 폭력배들이 동원되었고, 415년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성직에 나섰던 히파티아(Hypatia)가 폭력배에게 맞아 죽는 일까지 벌어졌다.157
일요일을 주일(主日)로 옹호하는 주이트(Jewett)도, “콘스탄틴이 일요일을 휴일로 지정한 것은 여기[일요일]에 대한 이교도들과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을 기술적으로 결합”시킨 것임을 인정하고, “그의 칙령은 주일(主日) 성수의 발달 과정에서만 획기적인 사건이 되지 않고, 그의 정치적 영특성을 기념하는 기념비도 될 수 있”159 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것이 참으로 주일(主日) 성수(聖守)의 발달 과정인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는 하나님의 명령은 외면하고, 속(俗)된 휴일로 지정한 콘스탄틴의 명령에 따라 일요일을 성수(聖守)하는 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 인의 양심일 수 있을까?
그리스도교 제1차 세계 총회인 니케아 종교회의(A.D.325)도 콘스탄틴 황제의 재정적인 지원으로 화려하게 열렸고 황제 자신이 임석하여 개회사를 하기에 이르렀다.160 그리고 동서 교회가 부활절-일요일의 날짜 문제로 이견을 보이자 황제는 즉시 로마 교회를 편들어, 모든 교회로 하여금,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의 고대 교회” 의 관습을 따르도록 명령하는 등161 세속의 황제가 교회 위에 군림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결국 200년이상 계속된 로마제국의 픽박을 “죽도록 충성”(계2:10)함으로써 이긴 그리스도의 교회는, 종교의 자유와 온갖 호의를 베풀면서 타협을 시도한 콘스탄틴 황제의 정책에 쉽사리 넘어간 것이다. 이것이 일요일이 안식일을 대신한 역사적 반증이다.
“콘스탄틴은 이 때에 옛 신앙과 새 신앙의 예배 자들을 한 종교로 연합시키기 위해 지칠줄 모르고 일했다. 그의 모든 법령과 고안들은 두 종교의 혼합을 촉진시키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합법적이고 평화스러운 방법으로 순화된 이교와 온건한 그리스도교를 함께 녹이려 했다.... ‘태양의날’ 이 일반적인 휴일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명령은 그의 입장을 대표한 것이다. ...그리스도와 이교를 뒤섞고 혼합한 그의 일을 가장 쉽게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일요일 휴업령인 것이다.”162
오늘날처럼 거의 온 세상이 일요일에 쉬게 된 것은 이상과 같은 역사적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에 휴식하며 예배한 경위에 대하여 자신이 일요일 성수론자인 주이트는, “일요일에 일을 하지 말고 쉴 것을 제일 처음으로 분명히 언급한 저자는 [2세기말의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 서기.200년경)이”라고 밝힌 후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증언 주이트
“이야기는 이미 언급한바 있는 콘스탄틴의 칙령과 함께 시작된다. 그 칙령일 공포되자 많은 사람들은 주일날[일요일]의 꽤 많은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것을 알았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게으름이란 과중한 노동과 같이 정신적 수양에 해로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의식적인 행위만 증가시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 대해 구약 성경이 규정하고 있는 엄격한 금령들을 빙자하여 쉬라는 요구에다 종교적 열성과 의무를 지우려 하였다. 그리고 일요일의 휴식에 대한 이 법은 시민법의 지지까지 호소하였다.”163
그리스도교회의 공식적인 일요일 준수
주이트의 솔직한 증언대로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에 공식적으로 쉬게 된것은 전적으로 콘스탄틴의 일요일 휴업령 때문이며, 쉬는 시간적 여유를 이용하여 그 때 그 때 이런 저런 종교 행사들을 덧붙여 온 것이 오늘날의 일요일 예배의식인 것이다.
이러한 경향에 부채질한 사람이 바로 가이샤랴의 감독으로 콘스탄틴 황제와도 가깝게 지낸 교회사의 비조(鼻租)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 . c. 260-340)였다. 예수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유세비우스는 안식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음을 다음의 인용에서 보게 된다.
“우리[교회]는 안식일에 관한 모든 의무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다 주의날[主日]로 옮겼는데, 이는 이날이 유대인의 안식일보다 더 권위가 있고, 높이 존경을 받고, 순서에서도 첫번이고 더 영예롭기 때문이다.”164
이토록 참람하고 모독적인 뒷바침을 통하여 촉진되어 온 교회 내에서의 일요일 준수가 마침내 364년경에 열린 “라오디게아 종교회의”(Council of Laodi-cea)에서 공식적으로 인준되기에 이른다.
“그리스도인들은 유대화하여 안식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하며, 그날에 반드시 일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주의 날[일요일]을 특별히 존중히 여겨, 그리스도인으로서 가능하면 이 날에 일하지 말라. 그런데도 만일 그들이 유대화한다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를 받을 것이다.165
이상과 같은 사실은 1910년 1월 25일 교황 피우스10세(Pius x)로 부터 “사도적인 축복”(Apostolic Blessing)을 받은 [회심자를 위한 가톨릭교리 문답서]에서 아래와 같이 확인되고 있다.
문 : 어느 날이 안식일인가?
답 : 토요일이 안식일이다.
문 : 우리는 왜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는가?
답 : 카톨릭 교회가 라오디게아 종교회의에서 그 존엄성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옮겼기 때문이다.166
진상이 분명해졌다. 로마 황제 [콘스탄틴]는 제국 내의 이교와 그리스도교를 정치적으로 연합시키는 일을 위해 일요일을 활용하였고, 로마 교회는 정치적인 권익을 제공하는 일요일을 발판으로 회심하지 아니한 이교도들을 그리스도교에 입문(入門)시켜 마침내 중세기를 지배하는 로마 카톨릭의 입지를 확보한 것이다.
이리하여 일요일에는 일하지 말라고 제안한 최초의 교부인 터툴리안 (Tertu-llian . d. 225)의 말과,167 안식일에는 일하고 일요일에는 쉬라고 결의한 최초의 회의인 라오디게아 종교회의의 결의와, “존경스러운 태양의 날”에는 일하지 말라는 최초의 법인 콘스탄틴의 칙령을168 따르기 위해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 아무일 도 하지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니라” (출20:11)고 이유까지 밝혀 말씀하신 하나님의 계명은 유린해도 되는가? 그것이야말로, “너희 유전(傳統)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마15:3)하는 경우가 아닌가? 이에 관한 로마 카톨릭의 직설적인 증언을 아래에 인용한다.
증언 카톨릭
“만약 당신이 성경만을 따른다면 당신은 토요일[안식일]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그날이야말로 하나님께 거룩히 지키도록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특별히 지시하셨기 때문이다. 일요일을 지킴으로서 비가톨릭신자들은 1800년간 성경의 제도가 아닌 카톨릭의 전통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 신자들처럼 토요일[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은 이점에서 그들의 덜미를 잡고 있는 것이다. 성경만을 신앙의 유일한 지침으로 주장하고 있는 개신 교회는 일요일 준수에 대한 아무런 보증이 없다 이점에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만이 일관성 있는 개신 교회이다.”170
9. 사도 시대 이후의 안식일 준수 역사
앞에서 살펴 본 대로, 창조와 동시에 제정된 안식일은 기나긴 구약 시대를 통하여 단절 없이 기억되고 준수되어 왔음을 보았다. 애굽의 종살이와 바벨론의 포로 등 안식일 준수를 불가능하게 하는 극한 상황은 구속을 통하여 참 안식일을 주시는 안식일 주(主)가 되신 여호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개입으로 극복되어 회복을 거듭하면서 신약 시대로 접어든다.
신약 시대 이후 현금(現今)까지의 안식일 준수 역사는 어떠한가? 앞서 살펴 본 일요일 준수의 역사적 기원이 불분명한 데 반하여 안식일의 기원과 준수의 역사는 이미 신, 구약에서 확인되고도 남았다. 이제는 아주 간단히 신약 성경을 벗어난 이후의 역사에서 이 사실을 확인하고자 한다.
제1세기 예루살렘 멸망 전후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설교인 감람산 설교에서 서기 70년 있게 될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시며,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이 되지 않게 기도하라”(마 24:20)는 말씀을 통하여 십자가 이후까지 계속될 철저한 안식일 준수를 확증하셨다. 마태가 서기 60년을 전후하여 마태복음을 쓸 당시까지 안식일이 지켜졌음이 논리적으로 분명하다.171 십자가 직후에 안식일이 지켜진 기록과(눅 23:54, 55), 사도행전이 쓰여진 서기 61~63 년경까지 안식일이 철저히 지켜졌음은 사도바울의 행적에서 뚜렷해진다(행 17:2; 13:14; 17:2; 18:4 등).
예루살렘 멸망 이후인 1세기말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과 함께 회당에서 안식일을 지켰음을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쉐모네 에스레”(She-moneh Esreh)라는 유대인 회당의 기도문 가운데, 회당에 참석한 그리스도인을 색출하는 저주가 들어있음을 보아 확실하다.172 또한 4세기 팔레스틴 출신의 감독 에피파니우스는 예루살렘 멸망시 도망쳐 나온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그 때까지 계속하여 안식일을 준수했음을 증언하고 있다.173
제2세기 바르-코케바 반란 이후
서기 70년의 예루살렘 멸망과 135년의 바르-코케바 반란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과 구별되기 위하여 안간힘을 다하던 때 쓰여진 교부들의 문서들에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면서 일요일에도 모이는 습관이 있었음이 바나바의 서신(The Epistles of Barnabas), 저스틴 마터의 글, 도마의 복음서(The Gospel of Thomas), 폴르카프의 순교(Mart-yrdom of Polycarp) 등에 예시되어 있다.174
제3세기 이후 제10세기까지
서기 321년 콘스탄틴 황제의 일요일 휴업령이 반포된 후에도 안식일 준수가 계속 되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동방의 많은 교회들은 일요일처럼 안식일을 아직도 지키고 있는 반면에, 대부분의 서방교 회들은 유대인의 제도를 반대하는 방법으로 그 날에 금식을 실시했다.”175
364년경에 개최된 라오디게아 종교회의가 비록 안식일에는 일하고 일요일에는 휴식하라는 반 성서적인 결의는 했어도[29항], “안식일에는 복음서와 다른 성경을 소리내어 읽어라”[16항]고 규정하고, “사순절 동안에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빵을 드리지 말라”[49항]고 한 것을 보아 안식일을 지키는 당시의 분위기를 신중히 고려했음을 알게 된다.176
서기 386년과 387년에 동방의 교부 크리소스톰(John Chyrsostom)이 행한 설교 내용과,177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아다나시우스와 (Athanasius . d 373) 키릴등(Cyril)178 여러 교부들이 계속하여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신자들이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5세기의 교회사가인 소크라테스(Socratrs Scholasticus . d450)와 소조멘도(S. H. Sozomen)179도 안식일을 준수하는 습관이 로마와 알렉산드리아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그 때까지 계속되고 있음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전하고 있다.
“세상의 거의 모든 교회가. 안식일에 그 거룩한 신비를 축하하고 있는데도,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고대의 관습 때문에 그런 일 하던 것을 그쳤다.”180
8세기의 마지막 동방 교부 다마스커스( John Damascus . d. 749)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해 들어오는 유대인들의 안식일을 경고하는 글을 남기고 있으며,181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과 함께 안식일을 준수한 고백들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182
단속이 심했던 서방 교회에서도 안식일을 금하는 규제가 종교회의와 교황들에 의하여 계속 강화되었음을 볼 때, 안식일을 준수하려는 끈질긴 노력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교황 그레고리1세(Gregory the Great . 540-604)는 그의 교서에서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왜곡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의 거룩한 신앙에 전적으로 반대되는 가르침, 곧 안식일에는 모든 일을 중지해야 한다는 그런 하찮은 교리를 여러분들 가운데 유포시키고 있다는 보고가 내게 접수되었다. 나로서는 그들을 적그리스도의 설교자들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지 않는가?” 183
서기 97년 [혹은 797년]에 북아프리카에서 개최된 종교회의 (the Council of Friuli)의 결의 제 13항에는 안식일을 지키는 농부들을 정죄하고 있다.184 10세기에는 방금 개종한 불가리아인들이 교황 니콜라스1세(Nicholas 1)에게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지 여부를 묻고 있어, 안식일 준수의 관습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185
제11세기 이후 제 15세기까지
서기 1054년 로마 가톨릭 교회와 희랍 정교가 갈라질 때 논쟁이 된 문제 가운데 하나가 안식일에 금식을 강요하는 로마교회의 태도였다.186 교황 피우스 9세의 사절이었던 추기경 험버트(Humbert)는, “[안식일에 금식을 반대하는] 동방 교회 신자들은 유대인과 더불어 안식일을 준수하기로 선택했다.”187고 비난했다. 직후에 콘스탄틴 노플의 대주교 케루랄리우스(Mi-chael Cerualrius)는, “그래서 우리는 주일[일요일]과 꼭같이 안식일을 영화롭게 하고 지켜 그날에 일하지 말도록 명령을 받았다.”188 고 썼다.
12세기쯤에는 일요일이 안식일을 거의 대신하기에 이르렀다. 교황 알렉산더 3세(Alexander 3)때 쯤에는 일요일을 일몰부터 일몰까지 엄격히 준수될 것과 범할 경우 벌칙까지 부과되었다.189 그러나 이 깊은 중세기의 암흑 속에서도 진리의 등불은 아주 꺼진 것은 아니었다.
12세기를 전후하여 북 이태리와 남 프랑스 일대를 중심으로 알프스를 요람으로 삼고 열렬한 성서 위주의 개혁 운동을 전개한 왈덴스인들(the Waldenses)은 로마 교황권이 주도한 십자군과 종교재판의 표적이었다.190 그런데 이들이 활동한 지역에서는 놀랍게도 안식일 준수가 다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12세기와 13세기에 걸쳐 북이태리 지방에는 파사기니(Passgini)로 알려진 신앙 집단이 형성되어 안식일 준수를 계속했으며191 북부 프랑스 일대에도 안식일을 지키는 무리들이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처형된 역사적 기록들이 보존돼 있다. 192 이쯤 저 멀리 스칸디아 일대에도 안식일 준수 운동이 일어나자 놀웨이 감독 볼트(Aslak Bolt)는 1453년 종교회의를 열어 이를 저지하기에 이르렀다.193
제 16세기 종교개혁과 안식일 회복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때 루터의 선임교수요. 그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한 칼 스타트(Andreas Carlstadt)는 안식일에 관한 논제를 발표하고 루터에게도 안식일 준수를 강조했으나 종교개혁의 다른 주제에 여념이 없었던 그는 이를 거절하였다.194 곳곳에서 로마 가톨릭의 학자들과 종교 개혁자들 사이에 열띤 토론일 벌어지곤 했는데, 이때에 일요일과 안식일의 준수의 정당성이 거론되었다.195
1543년 칼빈의 동료 파렐(William Farel)은 솔본느 대학의 로마 가톨릭 학자인 퍼르비트(Guy Furbety)와 토론하는 자리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가 인간적인 제도들을 교회에 끌어들였다고 공박했다. 이에 대해 로마 가톨릭 교회를 대표는 “[가톨릭]교회는 그에게 주어진 권세로 주님의 부활 때문에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꾸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 때문이 아니라 교회의 명령과 법규에 따라 일요일을 지킨다”고 전제하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려거든 “토요일에 안식하여야 한다”196 고 응수했다. 이에 대해 파렐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든 날이 다 거룩하기 때문에 한 날 일요일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휴식한다고 답변했다. 이에 대해 가톨릭 학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아무 날이나 휴식한다면 큰 혼란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반박하고, 성경은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시했는데 일요일 준수는 “오직 성경” 만을 신앙의 규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선언한 종교개혁의 원칙은 이렇듯 일요일 준수에 부딪혀 신학적인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재세례파 운동과 안식일 진리를 위한 최초의 순교
이와 같이 모순되고 일관성이 없는 종교개혁은 마침내 칼빈에 앞서 스위스를 중심으로 열렬한 종교개혁을 추진하던 재세레파(Anabaptists) 개혁자들에 의하여 진리를 ?O게 된다. 재세레파의 여러 분파 가운데 16세기 후기부터 안식일을 준수하는 독특한 그룹이 생겨났다.198
이들 가운데 본래 가톨릭 사제들이었다가 후에 루터교로 개종했던 글레이트(Oswald Glait)와 피숴(Andreas Fisccher)는 성경을 깊이 연구한 후에 재세레파로 개종했다. 그리고 성경을 더욱 깊이 연구한 끝에 안식일을 변경할 수 없는 십계명에 속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인간이 교회의 권위로 바꾸어 버린 것은 다니엘서(7:25)에 예언된 대로,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한 작은 뿔인 교황권의 역사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199
그들은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꾼 것은 콘스탄틴 황제와 교황 빅토르라고 선언했다.200 피숴는, “성경은 안식일에 대하여 그토록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만약 일요일에 관하여 그만큼 말한 구절들이 있다면 나는 안식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겠다.”201고 선언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내용의 논증을 폈다.
“십계명은 안식일을 포함한 열 가지 조항의 언약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계명을 깨뜨리는 것이다. 모세와 선지자들과 신약 성경은 십계명의 준수 를 명령하고 있으므로 안식일도 포함되어야 한다. 야고보나 바울에 의하여 율법이 언급되었을 때, 그 율법은 안식일을 포함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믿음은 율법을 세우기[롬 3:31]때문에 안식일도 세우는 것이다. 바울과 다른 사도들은 안식일에 모임을 가졌으며, 그리스도와 사도들, 초대교회의 교부들도 모두 안식일을 거룩히 지켰다. [로마교회 감독] 교황 빅토르(Victor)와 콘스탄틴 황제는 일요일을 지키도록 명한 첫번째 사람들이다. 십계명은 영원한 것이다.“202
피숴(Fisher)의 동료인 글레이트(Galit)의 논증도 반박할 수 없도록 조리정연했음을 당대의 기록에서 찾게 된다.
“글레이트의 가장 강력한 논증은 십계명의 수(數)에 있었다...그는 하나님께서 여덟이나 아홉 계명이 아니라 열가지 계명을 주셨으며[신 4:13 ; 10:4], 모든 사람이 그것들을 모두 지켜지기를 원하신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도록 고수했다... [그는]안식일도 함께 지켜 지든지 아니면 다른 아홉계명도 모두 거절하든지 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기를 원했다.”203
이러한 가르침은 당시의 로마 가톨릭 교회나 일반 개신교 모두에 대한 일대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피숴 부부는 1529년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받고, 부인은 그 당시 재세례파를 처형하던 방법대로 산채로 물에 빠뜨려 죽였고, 남편은 피신했다가 잡혀서 1539년 그의 집 성곽에서 떨어뜨려 죽게 했다.204 글레이트는 1545년 잡혀서 1년 이상 옥에서 갇혔다가 밤중에 끌어내어 손발이 묶인 채 다뉴브강에 던져졌다. 목숨과 바꾼 안식일의 진리였다.205
이토록 국가와 교회의 가혹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영국을 비롯하여 지금의 루마니아 서북부인 트랜실바니아(Transylvania)를 비롯하여 보헤미아. 러시아, 독일, 프랑스, 네델란드, 스위스, 모라비아, 놀웨이, 스웨덴, 핀랜드,206 스페인 등207 각처에 안식일 준수가 끈질기게 대두되었음이 역사에서 확인되고 있어 어두움이 빛을 이길 수 없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제17세기 청교도 운동과 제칠일 침례교의 탄생
종교개혁이 성숙해 가던 16세기 말 영국에 뿌리를 내린 개혁 교의 신자들 가운데 보다 철저한 성서적인 신앙을 추구하는 청교도(Puritans)들이 일어났다. 그들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모든 제도를 철저히 배격하고, 일요일도 십계명에 나오는 안식일처럼 거룩히 구별하여 지켰다.
17세기 들어서면서 이러한 영적 분위기가 더욱 고조된 가운데 이들 청교도 가운데 실제로 일요일 대신 제칠일 안식일을 준수하는 무리들이 나왔다. 1616년 런던의 밀 야드(Mill Yard) 교회에서 부흥 집회를 개최하던 청교도 목사 트래스크(John Traske . c. 1583-1636)와 교사였던 아내(Dorothy Traske)는 잭슨(Hamlet Jackson)의 도움으로 회중과 함께 성경적인 안식일을 깨닫게 되고 다음 해인 1617년에는 최초로 제칠일 안식일로 지키며 물에 잠기는 성인(成人)침례를 베푸는 제칠일 침례교(Seventh-day Baptist) 가 같은 곳에 세워졌다.208
그들은 직전에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한 후 트래스크는 해상 감옥에 갇혀 모진 고생을 겪다가 신념을 굽혔으나 그의 아내는 신앙을 굽히지 않고 16년간 옥에 갇혀 온갖 수난을 겪다가 끝내 옥사하고 말았다.209 그녀의 너무나 아름다웠던 옥중생활은 같은 때 정치범으로 수감되었던 시인 러브 레이스(Ri-chard Lovelace)로 하여금 불후의 시를 쓰게 했다.210
이렇게 세워진 제칠일 침례교 밀 야드 교회의 초기 목사 제임스(John James)는 1661년 10월 19일 안식일 설교하던 중 체포되어 같은 해 11월 26일 두번이나 찰스 2세에게 애걸한 그의 아내의 탄원도 묵살된 채 교수형에 처해졌다. 당국은 그의 목을 잘라 장대에 꽂아서 그가 시무 하던 교회 뜰에 전시하여 안식일을 준수하는 결과가 무엇임을 신자들에게 경고했다.211
같은 때인 1662년 국교의 목사였던 뱀필드(Francis Bamfield)는 신앙 문제로 투옥되었는데 옥중에서 개인적으로 성경 연구를 하던 끝에 안식일을 깨닫고 9년 형기(刑期)동안 부단히 안식일을 가르쳐 옥중에서 안식일을 준수하는 “제칠일 침례교 도르체스터 감옥 교회”를 세우기 이르렀다.212 출감 후 또 다른 제칠일 침례교를 세웠으나 안식일을 가르친 죄목으로 세 차례에 걸친 투옥 후에 70세 때인 1684년 2월 18일 춥고 습한 뉴게이트 감옥에서 안식일 진리의 고상한 댓가를 목숨으로 치뤘다.213 진리를 위해 바쳐진 순교자의 생명은 씨앗이 되어 다시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마련이다.
뱀필드 목사가 목숨을 바쳐 세운 “그의 교회로부터 지칠 줄 모르는 신자였던 멈포드(Stephen Mumford) 가 안식일 진리를 심기 위하여 미국으로 갔다.241 그리고 멈포드에 의하여 미국에 전해진 안식일 진리는 초기의 재림 신자들에게 전달되어 마침내 안식일을 준수하는 재림 교회인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의 탄생을 보게 된 것이다.215 뱀필드 목사는 생전에 안식일 준수를 옹호하는 두 편의 글을 남겼는데, 아래와 같은 대목도 있다.
“제칠일 안식일에 관한 율법은 시내산에서 율법[십계명]이 선포되기전, 창조당시 아담에게 주신 것이요,... 아담안에서 온 세상에게 주신 것이다...주 그리스도께서 매주일 제칠일 안식일로 평생동안 준수하심으로써 네째계명에 순종하신 것은...온전한 모든 신자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될 수 있도록 자신에게 적용해야 할 완전한 의의 일부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신자들은 십계명에 순종하신 그리스도의 모든 행하심에 있어 그분과 일치해야 한다.”216
그의 형제 토마스 뱀필드(Thomas BampField)는 크롬웰 의회의 대변인으로 안식일을 옹호하는 글까지 썼다. 그러나 후에 그러한 그의 신앙때문에 투옥되었다.217
엿새동안 일하고 다시맞는 안식일
이토록 생명까지 요구사는 희생과 수난속에서 시작된 제칠일 침례교는 중세기 동안 무참히 짓밟혔던 안식일의 회복을 위해 피와 고난의 비싼 값을 치르며 역사적인 사명을 수행해 나갔다. 영국의 세 국왕, 제임스1세, 찰스1세와 2세와 왕후들의 궁중 의사요, 수치료(水治療) 개발등 의학 사에 빛나는 업적을 남긴 챔블린(Peter Chamberlin . d. 1638),518은 주이트의 인용대로, “1651년부터 개인적으로 안식일을 지키기 시작하여” 죽기까지 32년간 안식일을 준수했다. “후에는 안식일에 예배하는 교회[밀 야드 제칠일 침례교]219 에서 [두 번째] 목회 하였던 챔블린은 다니엘서 7장 25절이 ... 참 안식일 예배가 일요일로 바뀌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는 해석을 지지하였다....
챔블린은 이 본문이 네째계명[안식일]을 뒤엎은...교황권에 대한“220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안식일과 물에 잠기는 성인 침례를 옹호하는 논문들을 썼다.221
당시의 어려운 상황에서 안식일을 제창한 또 다른 명사는 죠셉 스테네트(Jo-seph Stennett . d. 1713)로 신학 박사였던 그는 뱀필드 목사가 몸숨을 바쳐 세운 제칠일 침례교 피너스 홀(Pinner.s Hall) 교회에서 목회하며 신학 논문과 찬송과 작사로 신앙을 북돋았다. 그의 손자인 사무엘 스테네트의 이름으로 잘못 소개되고 있는 아래의 안식일 찬송은 그가 작사한 것으로223 그의 마음에 사무친 안식일의 거룩함과 기쁨이 잘 드러내고 있다.
나 엿새 동안 일하고
1.나 엿새 동안 일하고 안식일 다시 맞으니
이 세상 생각 버리고 신령한 복을 누리네.
2.내기도 향기 같아서 주 앞에 올라갑니다
내주께 받는 안식을 못 받는 자는 모르네.
3.내맘을 주관하시니 겁날 것 아주 없도다
구주께 속한 사람은 다 안식복락 얻겠네.
4.이 날은 주에 날이니 일하지 말고 지키세
이같이 주일 지키면 영원한 안식 얻겠네
그의 손자인 사무엘 스테네터(Samuel Stennett . d. 1795)도 신학 박사 였는데 3대를 거처 제칠일 침례교 목사로 봉직하며 물에 잠기는 성인 침례를 옹호하는 책들을 저술하고,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주 예수 얼굴 영광이 해 같이 빛나네” 등 여러 편의 찬송가를 써서 개혁을 밀고 나아갔다.224
신대륙 미국에 옮겨진 안식일 진리
1664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 미국으로 이주한 제칠일 침례교인 멈포드(Stephen Mumford)는 안식일에 관한 진리를 전파한 결과로 1671년에는 로드 아일랜드에 최초의 제칠일 침례교가 세워??다.225 그리고 1802년에는 9명의 목사와 1.130명의 신자로 구성된 총회가 조직되기에 이르렀으며, 후에는 80교회와 8천명의 신자로 불어났다.226
1700년대초 초반 펜실베니아 주에 정착한 모라비아 형제회 신자들 가운데도 안식일을 준수하는 사람들이 일어났다. 그곳을 방문했던 모라비아 형제회 창시자인 진젠돌프(Zinzendorf) 백작도 그들의 영향으로 안식일을 지키기 시작했다.227 이리하여 신대륙 미국에 안식일의 진리가 착실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1843년 제칠일 침례교 총회에서는 11월 1일을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당신의 거룩한 안식일을 위하여 역사하시도록 금식하며 기도하는 날로 정했다. 이 간절한 기도가 어떻게 응답되었는가?
재림 운동과 연결된 안식일 진리
제칠일 침례교의 신실한 신자인 라헬 오우크스(Racher Oakes)부인은 뉴욕에서 뉴햄프셔 주의 와싱톤으로 이사했다.228 때마침 침례교 신자인 윌리암 밀러(Willimm Miller)가 주도한 초교파적인 재림 운동이 미주 전역에 고조되던 때여서 오우크스 부인은 쉽사리 재림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는 자기가 깨달은 안식일 진리를 자신이 출석하던 재림교회의 감리교 출신 휠러(Frederick Wheeler) 목사에게 전하였으며,229 1844년에는 이 교회의 ?p 신자가 별도로 안식일에 예배함으로서 최초로 안식일을 지키는 재림교회가 형성되기에 이른다.230 이렇게 제칠일 침례교회를 떠나 안식일을 지키는 최초의 재림교회가 신대륙에 출현한 것이다. 이러한 기반을 통하여 안식일의 진리는 같은 해 재림 교회의 뉴햄퓨셔 침례교 출신 프레불(T. M. Preble) 목사에게 전달되었다. 감격을 가지고 진리를 받아들인 프레불 목사는 다음 해인 1854년 2월에, 안식일이 일요일로 변경된것은 그리스도나 사도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예언된 대로(단7:25) 교황권의 배도(背道)에 의한 것임을 밝히는 소책자를 써서 보급하기 시작했다.231
결과는 즉각적이어서 안식일의 진리는 재림운동에 참여했던 침례교 신학자요 목사인 쿡(J. B. Cook)과 경건한 퇴역 선장 베이츠(Joseph Bates)에게 전달되었다.232 1846년에 베이츠 선장은 승천하신 예수께서 하늘에 있는 성소에서 계속하고 있는 성소 봉사의 참다운 의미를 깨닫게 됨과 동시에(히4:14-16; 8:-10:), 성소의 정결에 관한 진리를(단8:14) 아울러 이해하게 됨으로서 1844년에 있은 대실망의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깊은 연구로 확신에 도달한 그는 “제칠일 안식일, 영원한 표징” 이란 소책자를 써서 보급하기 시작하여 수 많은 회심자를 얻었다. 이 소책자는 재림운동의 유능한 지도자 가운데 하나였던 화이트(James White) 목사 부부에게 깊은 감명을 주어 같은 해 그들 역시 안식일을 준수하기 시작했다.233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 형성과 안식일의 완전한 회복
침례교 지도자 윌리암 밀러가 주도했던 예수 재림의 대각성 운동은 1844년 실망으로 막을 고한 듯했으나, 이 과정을 통하여 새롭게 발견된 성소와 안식일의 진리는 마침내 인류의 유일의 소망이요 구원의 완성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관되는 대단원(大團圓)에 이른다.
1848년 4월, 성소제도에 관한 심오한 진리와 안식일과 재림 신앙의 확신에 도달한 일단의 신자들이 코넥티컷 주의 록키 힐(Rocky Hill)에 모여 최초의 총회를 개최하였다.234 그리고 그들은 이 땅에 존재하게 될 마지막 시대의 교회에게 일찍이 약속하신 성령의 은사 가운데 하나인 “대언의영”(the Spirit of Prophecy . 계19:10; 12:17; 엡4:7-13)이 감리교 출신의 엘렌 G.화잇(Ellen G. Whity) 여사를 통하여 주신 바 되었음을 모든 증거에 기초하여 확인하게 되었다.
이처럼 성경상의 제칠일을 안식일로 준수하며, 임박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온 세상에 전파할 사명을 가진 무리가 1860년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Seventh-day Adventist)의 공식 명칭을 채택함으로써,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을 마무리짓는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계 12:17)로 마지막 구원의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이리하여 종교개혁의 주류를 타고 정통적인 성서적 신앙의 역사적으로 계승한 청교도적인 회중교회, 거기서 다시 진취(進取)한 침례고, 거기서 또 다시 진취한 제칠일 침례교를 통하여 회복된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영원한 언약의 표징인 안식일(출 31:13, 17)이 중세기의 암흑을 벗어나 마침내 옛자리, 본래의 영광을 회복한 것이다. 그리고 이 진리는 예언된 재림 운동을 통하여(계 10장) 소개된 구원의 완결이요 성경의 결론이며 예언적 신앙의 궁극인 예수 재림의 진리와 극적으로 만남으로써 구원의 역사를 종결시킬 “성도”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계 14:12)의 역사적 출현을 실현시킨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공평을 지키며 의를 행하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가 쉬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은즉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리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사 56: 1, 2).
회복된 즐겁고 존귀한 날
창조의 기념일 뿐만 아니라 영원한 구속(救贖)을 약속하는 참으로 복된 안식일의 복음이 아닌가? 이토록 축복된 안식일을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범(犯)함으로써 축복을 상실했고(겔 20:10~14 ; 느 13:17,18 ; 렘 17:20~27), 신약의 유대인들은 안식일의 주인이신(마 12:8 ; 막 2:28)그리스도를 거절하고 형식만을 고집하는 율법주의에 빠짐으로써 축복은 저주로 바뀌었다(마 23:23, 12:1~13).
그리고 사도들이 모두 떠나간2세기 이후의 교회는 핍박을 모면하고 현실에 맞추어 살아남으려는 궁색한 방편으로 성경의 안식일을 이교적인 일요일로 대치함으로써 중세기를 암흑으로 채운 배교(背敎)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이 일에 앞장선 것이 신앙의 원칙보다는 정치에 몰두했던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의 교회였으며, 그것은 교회들의 머리가 되기 위한 중세기 교황권(敎皇권) 확립의 계기가 되었다.
전술 한대로, 321년 콘스탄틴 황제가 최초로 일요일 휴업령(Sundey Law)을 반포하던 당시의 로마 교회 감독[교황]은 실베스터(Sylvester . A.D.314-335)였는데 “일요일”의 명칭을 “주의 날”로 공식화하려는 집요한 노력과 함께,235 어떻게 콘스탄틴의 정책을 내조(內助)했는지 다음과 같은 그의 선언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매주 일요일이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기쁨으로 준수되어야 한다면, 매주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장사 때문에 유대인들에 대한 저주로 간주되어야 한다....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의 부활하신 날에 그들[사도들]과 함께 기뻐하려면, [안식일에는] 주님의 장사 때문에 슬퍼해야 한다. 사실, 유대인의 관습 때문에, [안식일에] 음식을 소모하고 유대인의 의식을 치르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236
이교의 축제인 일요일에 “감사를 드리며 빵을 먹기 위하여”237 하나님의 안식일을 배고픔에 시달리는 우울하고 슬픈 날로 만드는데 성공한 로마교회의 상반(相反)된 시도에 맞서 안식일을 끝내 기쁨고 존귀한 날로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이 마침내 이루어질 것임이 다음의 말씀에서 얼마나 분명해지는가?
“네게서 날자들이 오래 황페된 곳들을 다시 세울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데를 수보(修補 )하는자라 할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하는 자라하리라. 만일 안식일에 네발을 금하여 내성일에 오락을 행치아니하 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으로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사 58:12-14)
10 일요일 준수와 진정한 예배
뿌리칠수 없는 의문들
이상과 같이 안식일과 일요일 준수의 기원과 역사를 확인하면서, 마음에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어찌하여 이교에 근원을 둔 배도의 상징인 이러한 일요일이 여전히 그리스도인들의 꺼리낌없는 예배일이 될 수 있을가? 일요일에 예배드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날이나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는 것처럼,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도 그래도 상관이 없다고 하실까?
예배는 드리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제사와 예배에 대하여 참으로 철저한 순종을 요구하신 하나님이 아니신가?(창4:3-5; 레10:1-3; 삼상13:8-14).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행17:30) 모든 것을 밝혀 주신 때에 기대하시는 바는 무엇인가?
살펴본대로 오늘날처럼 일요일이 안식일을 대신할 무렵, 태양을 숭배하던 이교도들과 함께 떠오르는 태양을 향하여 기도드린 이교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처신은 어떠한가? 그리고 그것을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바른 태도인 것처럼 합리화한 당시의 교부들이나238 현대 주일성수론자 들의 견해는239합당한 것인가? 아무 날이나 하루 예배하면 된다는 통념(通念)으로 이 모든 역사적 현실을 간과(看過)할 수 있을까?
특별히, 이러한 혼합적인 예배의 개념은,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예배]하라(계14:7)는 하나님의 마지막 호소이자 경고인 세천사의 기별과 (계14:6-12) 상관이 없는 것인가? 이러한 의문들과 심판과 연결된 예배의 시의성(時宜性)을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이에 대한 대답으로 에스겔서에 소개된 다음의 기별을, 지금까지의 내용을 다시 한번 요약하면서 심사숙고 하고자 한다.
에스겔에게 공개된 진상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 각각 그 우상의 방안 어두운 가운데서 행하는 것들을 네가 보았느냐...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기로 보니 거기서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보니 여호와의 전 문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25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낮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태양에 경배하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겔8:12-17)
본래 태양신을 높이던 날인 일요일(Sunday)이 안식일을 제치고 그리스도인의 예배일로 소개되던 당시 교회 지도자들이 취했던 태도와 얼마나 흡사한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처하던 예루살렘 여인들이 위하여 눈물을 흘리던 담무스는 누구이며, 그들은 왜 울고 있었는가? 그리고 장로[제사장]들은 왜 낮을 동으로 향하고 태양을 향하여 경배하고 있었는가?
전설에 의하면 최초로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을 반역했던 노아의 증손자인 니므롯(창10:8.9)의 부인 세미라미스(Semiramis)는 죽은 남편의 영이 태양으로 들어가 태양신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후에 세리미스는 니므롯의 영이 재탄생한 것으로 믿게 된 사생아 담무스(Tammuz)를 낳았는데 그가 멧돼지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후 그의 영은 지하세계로 들어갔다는 신화가 생겨났다.240 이러한 유의 담무스 신화가 기원전 3500년 전부터 존재했음이 역사적으로 확인되었다.241
농축신(農蓄神)이된 담무스는 바벨론 달력의 네째 달에 해당하는 오늘날의 6월경 풀이 마르는 여름이 되면 매년 반복하여 죽기 때문에 바벨론 사람들은 그들의 네째 달을 “두무지”(Dumuzi)로 불렸으며 바벨론에 포로되어 갔던 유대인들도 이 관습을 배워서 그들 종교력의 네째 달을 “담무스”(Tam-muz)로 불렀다.242 담무스가 죽는 네째 달이면 고대 앗시리아나 바벨론 사람들에게는 이슈타(lshtar)로 알려진, 담무스의 어머니도 되고 연인도 되는 사랑의 여신은 지하로 ?i아 내려가 슬피우는데 이 때 여인들도 함께우는 가증한 의식을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봄이 되어 태양이 따슷이 비칠때 담무스는 이슈타의 애도와 애정으로 다시 부활하여 농작물과 초장을 푸르게 한다는 것이다.243 이 때 그 해의 다산(多産)을 위하여 담무스와 이슈타를 위한 음난하고 난잡한 봄의 축제를 벌인 것이다.244
고대 가나안에서는 아스다롯(Astarte), 헬라에서는 아프로티테(Aphrodite), 로마에서는 비너스(Venus)로 불렸던245 이슈타 숭배가 예레미야 당시의 배도한 유대인 여자들에 의하여 계속되고 있었으며 (렘44:15-19),246에스겔에게 보여진 바 유대여자들이 행하던 “가증한 일”(겔8:13-16)도 247 여신 이슈타의 연인인 담무스의 부활을 위해 슬피우는 이교의 의식인 것이다.248 이토록 농경에 관계된 고대의 태양을 비롯한 천체숭배가 얼마나 엄증히 경고되었는지 깨닫게 될 때 (신4:19; 17:3; 왕하23:5.11; 욥31:26).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는 여인들에 걸맞게 감히 하나님의 전에서, “낮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태양을 경배”(겔8:16)한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처신은 더 큰 “가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되풀이 된 배도의 역사
신,구약 성경에 걸처서 일관되게 준수되어 온 예배일인 “여호와의 안식일”을 제쳐놓고 “무적의 태양신 ”을 숭상하던 이교도의 날인 일요일을 그리스도교의 예배일로 대치한 3, 4세기 교회지도자 들은 에스겔 당시의 지도자들의 배교와 무엇이 다른가? 미국의 사학자 하이드(Walter W. Hyde)와 [가톨릭세계](The Catholic World)에 게재된 이상의 역사를 확증해 보자.
증언 하이드
“제4세기의 그리스도교가 그의 적대 세력이였던 [로마의 태양신교]에서 채용한 두 가지 제도에서 투쟁의 잔재물을 발견하게 된다. 즉 [페르시아의 태양신인 ]미드라(Mithlas)의 두 성일 (聖日)인데, 12월 25일은 “디에스 나탈리스 솔리스”(dies natalis solis)로 부르는 “태양의 생일”이였던 것을 예수의 생일로 삼은 것과, 서기 321년 콘스탄틴 황제가 그것을 “존경할 만한 태양의 날” 이라고 부른 “일요일”을 [그리스도교의 예배일로] 삼은 것이다.249
증언 가톨릭
“교회는 이교(異敎)의 일요일을 취하여 그리스도교의 일요일로 만들었다. 교회는 이교(異敎)의 이스터(Easter)를 취하여 그 기간을 우리의 축제인 [부활절을] 만들었다. 일요일과 부활절의 유래를 살펴보면 그것들은 서로 같은 것이다. 사실 모든 일요일들은 단지 부활절을 매 주일마다 부분적으로 되풀이 하기때문에 일요일들(Sundays)인 것이다... 태양은 이교도들의 세계에서는 최고의 신이었다.”250
“[그리스도교에 끼친] 이교의 영향에 대한 적절한 한가지 예를 찾자면 그들이 기도를 드리는 동안 태양이 떠오르는 곳인 동쪽을 향하여 돌아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습관을 조사 해 보면 된다.”251
간과 할 수 없는 배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알지 못하고 지키는 일요일이나 서구의 성속(聖俗)명절이 된 크리스마스. 부활절을 뜻 깊게 보내는 것을 결코 우상숭배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까닭이 있는 역사를 깨닫게 될 때, 적어도 십계명에 명시된 성일(聖日)인 “여화와의 안식일”을 제쳐놓고 이교의 성일이었음이 분명한 일요일 예배하는 것은 문제가 전혀 다르다. 그것은 하나님을 올바르게 예배하려는 신앙 양심을 가진 그리스도인에게는 간과(看過) 할 수 없는 큰 일이다.
하나님께서 질투와 분노를 가지고서 에스겔에게 진상을 공개하신 바, 하나님의 성전뜰 안에서 “약 25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겔8:16)한 사실은 참으로 “적다 하겠느냐”(8:17)고 반문하셨다. 성전 안뜰에 가장 거룩한 곳에 있던 이들 25명의 신분은 레위 지파의 제사장 전체를 대표하는 24반열(班列) 의 제사장들과(대상24:1-19)대제사장을 포함한 숫자로 생각된다.252 여하튼 이들이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 임에는 틀림이 없으며. 그들이 행한 의식은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섬기던 페르시아의 태양숭배와 같은 것이다.253
하나님의 성전이나 성소의 정문은, 범죄로 닫혀진 “에덴의 동편...생명나무의 길” (창3:24)이 예수그리스도의 속죄로 다시 열리게 되었음을 표상하여 언제나 동편을 향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출27:13;민3:38;겔47:1)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성전을 정면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언제나 동편의 해를 등지게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들 25명의 종교지도자 들은 반대로 동편 태양을 향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낮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게 경배”한 것이다.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던 유대 여자들이나 동방 태양을 경배하던 25명의 종교지도자 들이 그러한 이교의 의식을, 나름대로 하나님에 대한 예배의 개념으로 행하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면 구태여 하나님의 전에서 경배하지 않았을 것이니까?
그러나 “호렙산 화염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태양을 비롯한 “일월성신(日月星辰) 하늘 위의 군상...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을 경배하며 섬길까”(신4:15.19)염려하신 하나님께 그것은, “투기와 우상 곧 투기를 격발케 하는 우상의 자리”(겔8:3)였음을 기억할 것이다. 신앙에 관한한 백성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지도자들을 따르기 마련이다. 신자들은 목사들을 따르기 마련인 것이다.
예배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분변치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으로 분변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그 눈을 가리워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았”(겔22:26)음을 모든 종교지도자 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결코 적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겔8:17)
정직한 부정거래- 짧아진 자
여러 대를 이어 포목점을 경영하던 어떤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 부인이 그 상점에서 십 야드의 천을 사가지고 가서 선택한 패턴에 맞춰 옷감을 재단했는데 예상외로 천이 약간 모자랐다. 이상하게 생각하여 얼마 전에 새로 사온 자로 재어 보니 한치가 모자랐다. 부인은 즉시 옷감을 말아 쥐고서 다시 포목점 주인에게 가서 칫수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몇 대째 정직한 상거래로 신용을 쌓아 왔는데요. 틀림없이 칫수대로 드렸습니다. ” 주인은 의아한 듯 언제나 사용해온 대자를 집어들고 천을 펼친 후 자질을 했다. “보십시오. 정확히 십야드입니다” 어리둥절해진 부인은 급히 가서 집에 있는 새 자를 가져왔다. 다시 재어보아도 틀림없이 한치가 모자랐다. 이번에는 부인이 가져온 새자와 포목점의 대자를 맞추어 재어 보았다. “보십시오 쓰시는 자가 한치가 짧습니다.” 참으로 한 치가 짧았다. 그럴 수 없는 일이었다. 얼마나 당혹스러운 일인가.? 규격(規格) 미달의 불량(不良)자를 써 왔으니 얼마나 잘못된 상도덕(常道德)인가?
그러나 사연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고조, 할아버지 등을 거슬러 대를 물린 이 포목점에서 써온 자가 오랜 세월을 경과하는 동안 규격보다 조금씩 닳아서 결국 한치나 짧아진 것이다. 포목점 주인은 물론 선대의 어른들도 모두 정직하고 신용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그 동안 규격보다 조금씩 짧은 옷감을 재어 준 것이다. 잘못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것에 대해 하등의 책임을 지울 수 없는 일이다. 정직하게 몰랐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행17:30)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그 동안 모르고 짧은 자를 써온 주인이 이제는 어떻게 해야하겠는가? 한치나 짧은 자를 계속하여 쓴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것은 명백한 도량형(度量衡)변조(變造)에 의한 불공정 거래가 될 것이다.
심판의 기별과 합당한 예배
위폐(僞弊)가 아닌 진짜 돈을 진폐(眞弊)라고 하듯이 위경(僞經)이나 외경(外經)이 섞이지 않은 참된 성경을 정경(正經)이라고 부른다. 정경을 영어로 “캐논”(canon)이라고 하는데 헬라어“카론”(kanon)에서 나온 말로 모두 매듭이 있는 “갈대”와 같은 “자 막대기”를 뜻하는 “규준”(規準), “규례(規例)(갈6:16)로 통용되고 있다.254 그렇다. 성경은 그리스도인 신앙의 유일한 표준이요 옳고 그름을 가름하는 척도(尺度)이다. 225 더더구나 십계명이야말로 올바른 신앙 생활을 위한 표준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의 행실을 판단하는 척도로 선언되었다.(약2:8-12;마19:16-19;롬13:8-10). 열 마디[節]로 된 신앙의 척도인 십계명 가운데,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본분인 예배를 명시한 척도중의 척도인 안식일 계명이, 예언에 나타난 영적인 배후를 가진 세력에 의하여 변조된 채(단7:25;살후2:3-12), 중세기를 거쳐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다.
일요일은 결코 안식일을 대신 할 수 없다. 어두움의 세력과 인간의 오랜 전통에 시달려, 닳아서 거의 눈금마저 없어질 뻔한 네째계명이 지닌 영적 의미는 심각하다. 그것은 인간역사가 마쳐지게될 마지막 날의 심판에 결부되어 인간의 본분에 관한 순종의 시금석으로, 심판의 불가결한 척도로 제기되었다. 그래서 오랜 역사동안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 배도와 불순종으로 일관 해온 땅위의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보내시는 복음이요. 경고인 요한 계시록의 세천사의 기별에 불가피하게 포함된 것이다. 다음에 기록된 성경의 마지막 기별을 주시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인간의 본분인 예배에 결부되어 안식일 계명에 포함되었는지 확인하기 바란다.
안식일 진리와 마지막 기별
*아래서 좌. 우편에 표시된 같은 기호는 동일한 의미임을 나타냄
마지막 세 천사의 기별에 포함된 복음 |
이 기별에 포함된 인간의 본분과 창조주 하나님의 관계 |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 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A 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B 그에게 영광C 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D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E 을 만드신 이F 를 경배[예배]하라G 하더라...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H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요한 계시록 14:6.7.12) |
“내가 복음A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A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C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F 를 오게 하라 그들은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사43: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G... 이는 엿새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E 만들고 F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20:8-11
“하나님을 경외하고B 그 명령[계명]H 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D" (전12:13,14.; 히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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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과 결론
이제까지 안식일 제도와 일요일 준수의 성경적 근거와 역사적 배경을 함께 살펴보았다. 이제는 이를 요약하여 정리하는 의미에서, 아래에 이 두 날에 관하여 성경이 말하고 있는 51개 사항을 대비(對比)하면서 이해와 판단을 분명히 하는데 도움을 사고자 한다.
성경일 말하는 제칠일 안식일과 첫째날 일요일에 관한 51개 사항 대비(對比)
제칠일 안식일 |
첫째날 일요일 |
1.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의 창조를 마치시고 안식하심으로 시작된 창조의 기념일이다.(창2:1-3;출20:110 2. 하나님께서 다른 여섯 날과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신 날이다.(창2:3;출20:11) 3. 하나님께서 다른 여섯 날과 달리 특별히 축복하신 날이다.(창2:3;출20:11) 4. 죄짓기 전 하나님에 의하여 에덴 동산에서 제정된 날이므로 인간의 범죄이전부터 존재한 날이다,(창2:1;히4:4) 5. 여섯째 날에 창조된 아담이 뒤늦게 창조된 하와와 가정을 이룬 뒤 맞이한 첫날로 인간 역사가 시작된 날이다.(창1:26-31. 2:1) 6. 범죄 전에 인류를 위하여 제정된 날로, “사람을 위하여” 있는 날이지 한낱 유대인을 위한 안식일이 아니다.(막2:27) 7. “여호와의 안식일”로 불리워, 그날이 하나님께 속한 날임을 명시하고 있다.(출20:10) 8. 범죄전에 제정?渦該? 때문에, 범죄이후 마련된 의식제도에 속한 그림자가 아니다.(히10:1) 9. 창조의 범죄와 고통당하는 계급과 심지어 동물의 복지까지도 고려한 범세계적, 인류적, 동물계인 특별한 의미를 가진 날이다.(출20:10. 11) 10.“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음성으로 발해진 것이다.(출20:1;신4:12.13) 11.“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지키라”는 명령은 하나님께서 친히 손가락으로 쓰신 내용이다.(출31:18) 12.“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은 새언약에 포함되어 마음에 기록하신 내용이다.(렘31:33; 히8:10) |
1. 하나님께서 창조를 시작하심으로 안식할 날이 아니라 일하는 날이다.(창1:3-5;겔46:1;출20:9) 2. 첫째 날은 다른 여섯 날과 구별된 거룩한 날이라는 언급은 한마디도 없다. 3. 첫째 날에 축복이 약속된 기록이나 암시가 일체없다. 4. 하나님의 의도나 구속의 역사에 관계없이, 인간이 자의적으로 제정한 순수한 인간적 전통에 불과하다. 5.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물질의 창조가 시작된 날에 불과하다. 6. 인류나 유대인 을 위하여 제정된 아무 제도도 포함되지 않은 평범한 하루다. 7. “여호와의 첫째 날”은 상상할 수 없는 개념이다. 8. 인간의 구속에 관련된 하등의 상징이나 의의가 일체 주어진 바 없는 날이다. 9. 안식일이 지닌 범세계적, 범인류적, 범동물계적인 의의가 전혀 포함되지 않은 물리적인 하루에 불과하다. 10.기억해야할 하등의 이유가 주어진 바 없는 날이다. 11.지켜야할 하등의 이유가 주어진바 없는 날이다 12.옛언약이나 새 언약에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날이다. |
제칠일 안식일 |
첫째날 일요일 |
13.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은 불변의 도덕법칙인 십계명에 포함되어 가장 거룩한 지성소의 법궤속에 보관함으로서 그 신성성이 극도로 강조되었다.(신10:1-5)
14. 안식일 계명의 위치나 내용은 그것이 언약체결 형식인 종주(宗主)조약에서 종주이신 하나님이 인(印)의 역할임이 분명하다.(출31:13.17)
15. 농사철 등 바뿐 때에도 지키도록 명하신 절대적인 명령이다.(출34:21)
16.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당시 광야에서 멸망당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안식일을 모독한 것이다.(겔20:12.13)
17. 예루살렘이 멸망당한 이유가운데 하나가 안식일을 범한 것이다.(렘17:27)
18. 안식일을 바르게 지켰더라면 예루살렘은 멸망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보증이 포함되어있다.(렘17:24.25)
19. 유대인이 바벨론에 포로되어간 이유 가운데 안식일을 모독한 것이 포함되었다(느13:17.18)
20.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함으로서 다른 거짓 신들과 구별하는 기준이다.(겔20:20)
21. 하나님을 죄의 속박에서 해방시켜주신 구속주(救贖主)로 인정하는 날이다.(신5:15; 출20:1)
22. 우리를 죄에서 속량할 뿐 아니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날이다.(출31:13; 겔20:12)
23.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 이방인들도 준수의 의무와 축복이 약속된 날이다.(사 56:6.7)
24. 안식일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하나님이 존귀하게 하시겠다고 보증하신 날이다.(사58:13.13)
25. 육신적으로 희망 없는 불구자까지도 준수함으로 축복이 약속된 날이다.(사56:3-50) |
13. 도덕률인 십계명에 부여된 신성성이나 영속성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
14. 하나님의 신분이나 권위나 영광이 일체 상관이 없는 날이다.
15. 구태여 일하지 말아야할 이유가 없다.
16. 범한데 대한 아무런 징책이 언급된 바 없는 날이다.
17. 이스라엘 역사와는 상관이 없는 날이다.
18. 첫날을 준수의 근거로 어떠한 보증도 주어진바 없는 날이다.
19. 첫째날 [일요일]을 범한 결과로 징벌이 실시된 사례가 일체없다.
20. 일요일이 준수된 역사적 기원에는 분명히 태양신 숭배의 전통이 포합되어 있다.
21. 창조의 기념이 아닌 것처럼 구속의 의의도 포함된 바 없는 날이다.
22. 성화의 아무런 의의가 주어진 바 없는 날이다
23. 이방인이나 유대인을 포함시켜야 할 명령이나 약속이 주어진바 없다.
24. 하나님께서 친히 첫째 날에 대해 언급하시거나 관심을 표명한 경우가 한번도 없다,
25. 인류에게 어떤 미래의 축복을 가져다 줄 날로 언급된 바가 없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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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일 안식일 |
첫째날 일요일 |
26. 하늘의 영원한 즐거움과 안식을 약속 받은 날이다.(사56:6; 58:14; 66:22. 23) 27. 오랫동안 짓밟힌 후에라도 다시 회복될 것이 약속된 날이다.(사58:12.13) 28. 안식일을 속되게 가르친 종교지도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이 부과된 날이다,(겔20:26) 29.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임을 선언하신 진정한 의미의 주의 날 이다(막2:28; 마12:8) 30.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안식일을 체험하는 날이다.(마11:28; 히4:10). 31. 이 날의 주인이신 예수께서 지상생애 동안 습관적으로 준수하신 날이다.(눅4:16) 32. 예수님께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친히 올바른 준수의 방법을 보여주신 날이다.(마12:1-15;요5:10-18) 33. 적어도 일곱번 불치의 병을 고치신 날로, 안식일의 본래 목적을 메시야의 사명과 연결시키신 날이다.(눅4:16-19; 마12:10-13) 34. 예수께서 친히 십자가와 부활 이후에도 계속 준수되어야 할 날임을 천명하셨다.(마24:20 35. 십자가 때문에 단절되지 않았음이 확인되었다.(눅23:56) 36. 부활 후 30년이 지난 후에 쓰여진 사도행전에도 여전히 안식일로 불리웠다.(행13:44) 37.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기별을 전파한 날이다.(행13:14, 30, 42.43) 38.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이 평생동안 습관적으로 지킨 날이다.(행17:2) |
26. 장차 있을 하나님의 나라와 연관되어 기록된 바가 없다 27. 짓밟히거나 회복되어야할 의의가 주어진 바가 없는 날이다. 28. 첫째 날을 속되게 가르쳤다고 죄책을 지게될 종교지도자는 아무도 없는 날이다. 29. “인자는 첫째 날의 주인”이란 의미의 주일(主日)을 예수님께서 전혀 의중에 두신 여지가 없는 날이다. 30. 첫째 날에 연관된 안식의 개념은 일체 없다. 31. 예수님 자신은 한번도 첫째 날에 대하여 언급하시거나 관심을 표명하신 바가 일체 없다. 32. 첫째 날을 어떻게 준수해야 할지 언급도 모본도 주신 바가 없다. 33. 첫째 날에 관련하여 아무런 영적교훈을 주시거나 행적을 남기신 바가 없다. 34. 첫째 날이 부활의 기념이 되어야 한다는 일체의 언급을 예수님 자신이나 사도들이 하신 바가 없다. 35. 신약성경에 여덟번 기록된 첫째 날의 기사 가운데 성만찬등 성례를 이날에 행해야할 아무런 지시도 주어진바 없다. 36. 복음서나 사도행전에 “안식후 첫째 날”로 기록된 것밖에 다른 명칭이 없다. 37. 첫째 날에 연관시켜 부활의 기별이 전파된 기록이 전혀 없다. 38. 첫째 날에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일로 준수한 확고한 사례가 성경 어디에고 없다. |
제칠일 안식일 |
첫째날 일요일 |
39. 서기 49년에 열린 예루살렘 총회에서도 준수자체를 기정 사실로 한 날로 언급하고 있다.(행15:21) 40. 사도 바울이 회당이 없는 이방지역에서도 이방인과 함께 예배한 날이다.(행16:13.14) 41. 사도행전에만 적어도 84회의 준수 기록이 있는 초대교회의 예배일이었다.(행13:14.44; 16:13,; 17:2; 18:4. 11) 42. 사도 바울이 할례등 유대인의 의식을 폐했다는 이유로 일일이 고소당했으나 안식일 문제는 거론도 되지 않았다. 철저히 준수했기 때문이다.(행25:8) 43.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행20:27)다 고 말한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은 안식일이 일요일로 변경되었음에 대해 일체 언급한 바가 없다. 44. 신구약 성경에만 59회 언급된 안식일은 항상 존중되어야 할 날의 의의를 지닌 구약의 명칭[안식일]을 그대로 쓰고 있다.(막2:28등) 45. 성경 어디에고 안식일에 일해도 된다는 허용이 누구에게도 주어진 바가 없다. 46. 부활 이전은 물론 이후 성경 어디에고 그리스도인들 이 안식일에 평일처럼 일했다는 기록이 없다. 47. 그리스도인 들과 이방인 사이에 안식일 준수 여부로 논란을 일으킨 예가 없다. 48.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구속을 “다 이루”시고 안식일에 무덤에서 안식하심으로 구속의 기념이 되게 하신 날이다(요19:30) 49. 가정을 안식일에 포함시킴으로써(출20:10),범죄이전 에덴의 진정한 안식과 행복을 지금 경험하게 하는 복낙원의 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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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첫째 날 준수 여부에 대해 논란하거나 결의한 일체의 기록조차도 없다. 40.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이 일요일에 관하여 친히 언급하거나 특별한 관심을 보인 사례가 없다 41. 첫째 날이 사도행전에 언급된 것은 한번(행20:7)뿐인데 여행 중에 밤늦게 송별을 겸한 애찬의 자리에 불과했다. 42. 첫째 날이 안식일을 대신 해야할 하등의 근거나 이유가 성경에는 전혀 언급된 바가 없다. 43. 첫째 날이 이방인과 관계된 특별한 의의를 지녔다는 일체의 암시나 가르침이나 행적이 기록된 바가 없다. 44. 신구약 전체에서 “첫째 날”이란 명칭 이외의 어떤 명칭도 부여된 바가 없다(계1:10은 비평 본문을 참조 바람) 45. 성경은 오히려 첫째 날을 “힘써 일해야”할 날들 가운데 포함시키고 있어 휴식은 비성서적인 개념이다. 46. 부활을 매주일 기념한다는 것은 기념의 논리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부활의 기념은 침례이다. 47. 첫째 날로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을 구분할 수 있는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다.
48. 첫째 날인 일요일 준수는 창조와도 무관하고 구속과도 무관한 날로 인위적으로 의미가 부여된 일반 축제일에 불과하다. 49. 첫째 날에는 과거에 뿌리를 둔 역사적 의도도 없고 미래에 대한 약속을 간직한 소망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평범한 날이다. |
제칠일 안식일 |
첫째날 일요일 |
50. 안식일은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아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시험하는 척도와 시금석으로 제시되었다.(출16:28)
51. 무엇보다도 창조의 기념일인 안식일은 창조의 목적과(사 43:7) 인간의 본분인 예배를 이 날에 드리는 지성적인 예배는 창조의 이상을 실현하는, 인간의 가장 고상한 표현이 된다(계 4:7). |
50. 첫째 날의 준수는 하나님께 의하여 명령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준수 여부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시금석이 되지 아니한다.
51. 창조와 무관한 첫째 날의 자의적(恣意的)인 예배는 진정한 예배를 구성하는 성경적인 근거와 신학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이교적(異敎的)이요 비성서적인 예배일이다. |
잡초 밭을 지키는 근위병
이상에 열거한 51개 사항을 통하여 성경이 말하는 제칠일 안식일과 첫째날인 일요일을 대비(對比)하여 그 준수의 의의와 타당성을 살펴 보며 다음과 같은 사화(史話)를 상기하게 된다. 제정 러시아 시대의 한 젊은 황제가 어느 날 왕궁 밖의 정원을 거닐다가 볼품없는 들판에서 외롭게 보초를 서고 있는 근위병을 목도했다. 보잘 것 없는 가시덩굴로 덮인 이 들판을 지키는 이유를 묻자 초병은 모른다고 대답했다. 젊은 황제는 궁중 사관(史觀)에게 그 이유를 찾도록 지시했다. 사유인즉 한 때 캐더린 황후가 이 곳에 널따란 장미 정원을 가꾸게 하고 이를 시민들에게도 공개했는데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장미 넝쿨이 있는 한 지점에 근위병을 세워 지키게 한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 황후도 타계하고 장미 정원도 무관심속에서 폐허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전통을 맹목적으로 따라온 왕실 근위대에서는 보초를 세워 이 장미 없는 잡초밭을 뜻도 모르고 지키게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예배를 위한 날로 친히 지정하시고 친수(親手)로 쓰신 불변의 도덕률인 십계명에 포함시키신 특유한 안식일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이해(利害)관계에 얽매인 종교지도자들의 고의적인 무관심과 냉대에 의하여 짓밟히고 쇠퇴된 십계명의 장미인 안식일을 대신한 잡초가 무성한 빈들을 뜻 없이 지키고 있는 러시아의 근위병과 무엇이 다른가? 계발된 신앙 양심과 냉철한 지성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마음이 편한 수가 없는 일이다.
양심을 자유롭게 하는 진리
판 단 지금까지 진행된 안식일제도와 일요일 준수에 관한 비평과 변증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된 독자는 어떤 판단에 이르렀는가? 안식일 준수를 이단의 조건으로 삼아 비평한 분들을 비롯하여, 신분이 성직자이든, 장로, 집사 등 제직이든, 일반 신자이든 상관없이 지금은 “믿어 순종케”(롬 1:5, 15:26) 되어 구원에 이르러야 하는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여할 할지 심사숙고해야 할 때이다.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마 15:3). 안타깝게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의미를 찾아야 할 시간이다. 어느 교과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보증이 성경에는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 4:19)는 사도들의 담대한 신앙의 한층 마음에 사무치는 것이다. 진정한 예배는 인간의 본분이며 사람이 존재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스스로 원하시는 방법에 의하여 예배를 받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셨다(레 10:1~3). 그러므로 예배에서 인간적인 모든 요소는 배제되어야 한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것이며,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요 4:23)고 계신다.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예배]하라”(계 14:7)는 기별은 진정한 예배를 요청하는 하나님의 마지막 탄원이다.
안식일은 창조와 구속의 기념일이라는 사실 때문에 예배의 불가결한 요소가 되었고, “나의 구원이 가까왔고 나의 의가 쉬 나타날 것”이므로 “안식일을 지켜”야 할 까닭도 더욱 분명해진 것이며,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사 56:1,2)는 보증은 확실한 것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참으로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는 말씀은 진리이다. 진리 앞에서 괴로워하는 신앙 양심은 진리에 의해서만 영원히 자유롭게 될 수가 있음을 우리 모두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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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Clrke, 444.
253. Ibid.
254. F. F. Bruce, The Books and the Parchment(London: Pickering and Inglis Ltd., 1963), 95.
255. Ibid.
1. 인간의 본성과 불멸
비평 훼케마
“안식일 교회는 [죽음과 더불어] 영혼이 멸절된다고 가르친다. 그들에 의하면, 영혼(soul)은 단순히 한 개체 전부를 의미하기 때문에 죽은 후에는 살아남아 있는 영혼이 없다는 것이다. 죽은 뒤에는 아무것도 살아남아 있지 않으므로 사람은 죽음과 함께 온전히 비존재(非存在)가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든 사람의 부활이 있다고 가르친다. ”1
사람의 사후 상태
해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가 개신 교회나 카톨릭 교회와 다른 점은 앞서 언급한 제칠일 안식일 준수와 함께 사람의 죽은 후의 상태의 관한 신앙이다. 일반 교회들은, 사람의 영혼은 본래부터 불멸(不滅)의 속성을 가졌다고 믿는다. 그래서 죽을 때에 몸을 떠난 영혼은 의식을 가지고 생전에 행한 선과 악에 따라 곧바로 천당[천국]이나 지옥, 혹은 카톨릭교회의 경우 연옥으로 간다고 믿고 가르친다. 이상의 모든 가르침에서 영혼은 불멸이기 때문에 의인이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처럼 악인은 지옥 불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한다는 “영원지옥설(永遠地獄說)”을 필연적으로 가르친다. 이것이 사실인가? 이에 반하여, 제일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는 성경에 쓰여진 대로 아래와 같이 믿고 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그러나 홀로 불멸이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구속받은 백성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부여하실 것이다. 그 날까지 죽음은 무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무의식 상태이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활한 의인들과 살아있는 의인들은 영광스럽게 되어 그들의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끌어올려질 것이다 불의한 사람들의 부활인 둘째 부활은 그후 천년이 지난 다음에 있게 될 것이다.” 2
.
이리하여 부활하고 승천한 의인들의 영생하는 것처럼 둘째 부활 때에 육신으로 부활한 불의한 사람들은 심판의 불에 사루어 짐으로써 영원히 멸절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혼불멸 대신 영혼멸절을. 영원 지옥 대신 악인 소멸을 믿는다. 같은 하나님을 믿고 똑같은 성경을 보면서 어떻게 이토록 상반된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한 교리는 여럿이 있을 수 있어도 올바른 대답은 언제나 그렇듯이 한 가지 밖에 있을 수 없다.
죽음의 진상은 무엇인가? 죽은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참으로 엄숙한 문제들이다. 죽음의 진상을 모르고 사는 것은 종착지를 모르고 여행하는 것과 같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만이 죽음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답을 가지고 계시다. 이토록 중요한 사후문제에 대해 크게 상반된 신앙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고하고, 안식일 교회를 혹독하게 비평한 박영관씨나 탁명환씨 등 국내 인사들의 저서에는 이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고 지나친 것은 오히려 의아스러운 일이다. 그리하여 인용되는 대부분의 비평은 현대 칼빈주의 신앙을 대표하는 훼케마(Anthony Hoekema) 씨의 저서에 근거하고 있다.
비평 탁명환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인간도 육(肉)은 죽어도 영(靈)은 영원하다.3
변 증
훼케마 씨와 탁명환 씨 모두 이구동성으로 영혼은 불멸(lmmmorta-lity of the Soul)임을 강조하고 그렇게 믿지 않는 안식일 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참으로 성경적인 가르침인가?
하나님의 속성인 불멸
성경은 분명히 불멸이란 하나님만의 속성이며 인간의 어떠한 부분[영혼]도 불멸이라고 말씀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죽음에 반대되는 뜻의 불멸, 곧 불사(不死)란 말의 신약의 원어는 “아다나시스”(athanasis)인데, “오직 그 [하나님]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딤전 6:16)다고 선언되었다.4 그리고 예수재림시 의인들이 썩지 않을 몸을 입고 부활할 때에 비로소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고전 15:53. 54)것이라고 천명했다.5 썩거나 파괴되어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의 불멸을 가리키는 신약 원어는 “아프다르시스” (aohtharsis)인데, 역시 “만세의 왕 곧 썩지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딤전1:17; 롬1:23)께만 속한 속성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예수 재림 시에 부활한 의인들과 홀연히 변화된 살아 있는 의인들이 누리게 될 상태라고 분명히 밝혔다.(고전15:52. 54.)
그러므로 이상에 언급된 썩지 아니하고 죽지 아니하는 그러한 불멸 성은 사람이 날 대부터 타고난 속성이 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조건으로(요3:16. 36. 11:25), 예수 재림 시에 (요일5:11.; 고전15: 51-53), 비로소 인간에게 부여하시는 선물인줄로(롬2:7; 딤후1:10) 믿는 것을 조건적 불멸(Conditional lmmortality)이라고 하는데 안식일 교회는 성경 말씀의 확증에 따라 이 사실을 믿고 있다.6
성경은 인간 전체를 가리키는 영혼(soul)이 죽을 수 있는 준재임을 거듭거듭 확인하고 있다.(겔18:4;마10:28). 너무나 분명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는 조건적 불멸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부정하면서 이를 믿는 안식일 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비평 훼케마
“안식일 교회는 조건적인 불멸을 믿고 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타고난 불멸성을 소유하지 않았고 불멸의 영혼을 지니지 않았다고 한다. 엄격한 의미에서 불멸성은 하나님만 소유하신 것이라고 한다. 상대적인 의미에서 이러한 불멸성은 어떤 부류의 사람 곧 믿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고 믿는다.”7
변 증
이상에 기록된 비평은 정죄받아야 할 이단의 교리가 아니라, 옹호되어야 할 정통 진리임을 적어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모든 사람은 확연히 깨닫게 될 것이다. 이 문제는 선입관에 좌우되거나 한 두 마디 논증으로 다루어서는 안될 중대한 관심사이므로 신, 구약 성경을 망라한 철두철미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를 바르게 이해하자면, 사람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이에 대한 분명한 기록이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生氣)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이 된지라”(창 2:7)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인간 창조의 재료로 쓰여진 이 곳의 흙은 히브리어 “아파르”(aphar)로 흙덩이가 아니라. 땅의 미세한 입자(粒子)를 가리키는 “땅의 티끌”(dust from the ground)을 의미한다(욥 38:38 ; 34:15 ; 시 103:14 ; 창 3:19).8 사람을 비롯한 동식물의 생명의 기본 단위는 세포인데, 이 세포는 원형질(原形質)로 이루어져 있고, 단백질이 주성분인 원형질은 탄소, 수소, 산소, 질소, 유황, 인, 카리, 칼슘, 마그네시움 등 실제로 흙을 구성하고 있는 원소(元素)들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흙과 동일한 원소들을 취하여 창조의 지혜로 세포를 조성하시고 몸의 각 부분을 친히 고안하여 구성에 있어서 완전한 인간을 만드셨다.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이렇게 완전한 형체를 갖춘 인간이 생체(生體)활동을 하자면 세포에 생명력(生命力)을 제공하는 “생명의 호흡”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생기”(生氣)를 그 코에 불어넣으심으로써 세포에 생화학(生化學) 작용을 시작하셨다. 이 일은 몸의 조성과 동시에 일어난 현상이다. 이 곳의 “생기”는 히브리어의 “니슈맛 하임”(nishmat chayyim)인데, “호흡”이란 뜻의 “네솨마”(neshamah)와 “살아 있음”(living)을 뜻하는 “하이”(chay. 복수는 “하임”)가 합쳐진 “생명의 호흡”(breath of life)인 것이다.
같은 뜻의 표현으로 창세기 7장 22절에는 “니슈맛 루아흐 하임”이 쓰였는데,9 앞의 말에 덧붙여진 “루아흐”(ruach) 역시 호흡을 가능하게 하는 바람, 공기를 뜻하며, 노아 홍수 때에 죽은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 곧,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寄食)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창 7:22)는 표현에 쓰여졌다.
구약 성경의 생기-“루아흐”
“호흡”,“바람” “기운” 의 뜻을 가지고 사람에게 생명력을 제공하는 이 “생기”는 주로 히브리어의 “루아흐” (ruach)로 구약 성경에 389회가 쓰였는데,11 성령을 가리킨 것을 비롯하여 (94회), 번역하는 사람의 주관과 문맥에 따라. “호흡” “생기” “기운” “정신” “마음” “신”(神.SPirit)“영” 등으로 번역되어 히브리어의 배경이 없는 사람들을 자칫 혼란에 빠트린다.
예를 들면, 전도서 12:7에,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 간다고 했는데. 이곳의 “ 신” 이란 창세기의 “루아흐” 인데 어떤 “영”이나 한자가 뜻하는 “정신”이나 “귀신”같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 당시 불어넣으신 “생기” 또는 “호흡”인 것이다. 시편146편 4절에서는, 같은 “루아흐”를 “호흡”으로 번역하여,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 한다고 바르게 변역했다. 에스겔37장 5절에서는 “루아흐” 를 마른 뼈에 들어가 부활시키는 생명소인 “생기로” 번역했고, 시편104:3절에서는 “호흡”으로 번역했다. 예로, 욥기27:3에서 욥은 자신이 아직도 살아 있음을 묘사하기 위해, “나의 생명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기운이 내코에 있느니라”고 했다, 이곳의 “기운”은 다름 아닌 “루아흐”인데 “신”으로 번역했더라면 “하나님의 신이 내코에 있” 다는 우스꽝스러운 표현이 될 뻔했다. 코로 드러나는 것은 호흡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으면 몸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루아흐”를 “신”으로 번역하였다고 하여 그것을 의식을 가진 “영(靈”)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그것은 성령으로 번역될 경우에만 그렇다. 단지 창조시에 하나님에 의해 긍곱되었던 생명소(生命素)인 호흡 곧 생기(生氣)가 하나님께로 되돌아간다는 표현인데, 그것은 일반 짐승에게도 일어나는 동일한 현상이다. (창7:22. 23. 전3:19-21)
신약 성경의 생기-“프뉴마”
“호흡”, “바람” “생기” “성령”을 뜻하는 구약의 “루아흐”를 신약에서는 헬라어 “프뉴마”(Pneuma)로 표현하고 있다. 이 말은 신약에 385회 쓰였는데,12 성령이나 악한 영으로 번역한 것을 비롯하여, 번역하는 사람의 선택에 따라 “영"(spirit), “마음(심령)”, “정신”, “바람” 등으로 표현했고, 심지어 “영혼”으로 번역하기도 하여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즉 마태복음 27장50절에서는,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라고 했고, 사도행전7장59절에서는,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라고 하여, 이곳의 영혼은 마치 사람이 죽을 때 몸에서 떠나가는 혼백(魂魄) 같은 것으로 오해하게 한다. 이곳의 “영혼”은 히브리어 “루아흐”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인데, 사람이 죽을 때,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돌아가는 생명의 근원인 생기, 호흡 혹은 생명 자체를 뜻하는 말로 우리말 성경에서 영혼이라고 번역함으로써 마치 의식을 가진 혼백이 떠나는 것처럼 오해시키고 있다. 이와같은 성경의 표현은 하나님을 자신의 생명의 근원으로 믿는 신앙에 기초한 것으로 (욥33:4), 전도서(12:7)의 경우처럼 “신(루아흐)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 간다는 표현과 같은 것이다.
이렇듯 구약에서 389회 쓰여진 “루아흐”나 신약에서“385”회 쓰여진 “프뉴마”가 비록 “신”이나 영, 때로 “영혼”으로 번역되기는 했지만 그것이 성령을 가리킨 경우를 제외하고, 인간과 연관되어 쓰여졌을 때, 불멸이라거나 죽은 뒤 문을 떠나 의식을 가진 것으로 표현된 곳은 단 한군데도 없다. 이렇듯 확고한 성경의 확증 때문에, 굴지의 구약 학자인 카일(C, F. Keil)과 델리취(F. De;itzzsch)도 그들의 창세기 주석에서, 때로 “신”이나 “영”으로 번역되는 “르아흐”가 사람을 다른 동물과 다르게 만드는 그런 영(靈)이나 영혼(靈魂)이 아니며, 단지 사람이나 일반 동물의 생명소(生命素)로서 필요한 “생명의 호흡”(Bewafh of life)일 뿐임을 확인하고 있다13 (창6:17.; 7:15,22; 왕상17:17),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생기 자체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데 있는 것이다.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앞서 말한 과정을 거쳐 흙과 같은 성분으로 구성된 생체조직에 하나님께서 공급하신 생명소인 생기가 작용하면서, 인체는 각가지 생화학작용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람은 두뇌의 활동을 통하여 의식(意識)을 가지고 사고(思考) 하는 생명체, 곧 생령(生靈)이 된 것이다.
구약 성경의 생령-“네페슈”
창세기 2장7절의 “생령”이란 말은 히브리어로는 “네페슈하야”(nephesh chayah)인데 살아 있는 존재를 가리키는 “하야”와 “숨쉬다”는 동사 “나파슈”(naphash)에서 나온 명사인 “네페슈”가 합쳐져, 숨쉬며 살아 있는 존재(fi-ving being), 곧 생명체를 뜻한다.
그래서 새 국제 번역 (NlV)이나 개혁 표준역(RSV)성경 등은 그것이 무슨 몸이 없는 혼 같은 것으로 오해되지 않도록, 예전처럼 “생령”(living soul)으로 번역하지 않고 “산 존재”(living being)로 바꾼 것은 잘한 일이다. “생령” 혹은 “영혼”등으로 표현된 히브리어 “네페슈”는 구약에 무려754회나 나오는데 그 중에 22번은 새, 물고기, 짐승등을 가리켰으며, 7번은 사람과 짐승을 동시에 가리켰다.14 영혼[네페슈]을 불멸의 혼백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아래의 성경 절에서 확인 해보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레17:11)
“...피는 그 생명인 즉 네가 그 생명을 고기와 아울러 먹지 못하리니”(신12:23)
이상에서 “생명”으로 표현된 밀은 히브리어로 “네페슈‘인데, 자주 ’영혼”으로 잘못 오해되는 말이다 ‘네페슈“를 불멸의 영혼으로 생각하고 “생명”대신 “영혼”을 넣어 말을 만들어보라. “육체의 영혼은 피에 있다” 든지, “피는 그 영혼인즉 네가 그 영혼을 고기와 아울러 먹지 말라” 는 희한한 말이 된다. 피가 생명일 수는 있어도 영혼일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영혼‘으로 번역된 이 “네페슈”를 일반이 오해하는 대로 그런 불멸의 혼백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어떻게 되는가? 도살장에 죽어 넘어진 소나 밥상에 오르는 물고기, 석쇠에 걸려 구어 지고 있는 닭들에게도 불멸의 영혼이 있다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실제로 믈고기,새, 퍄충류와 육축들이 인간과 동일한 “네페슈”로 불리기 때문이다. 창세기1장20, 21, 24, 30절의 “생물”은 모두 네페슈의 번역이다.15.
그런데 역시 번역하는 사람의 판단이나 문맥에 따라, “네페슈” 는 “사람”,“생명”, “생물” “짐승”“마음”, 죽은 사람으로 표현되었고, 절반 이상 은 “영혼”으로 번역하여, 마치 죽은 후에도 존재할 수 있는 비물질적인 혼백이 있는 것처럼 오해하기 십상(十常)이게 만들었다. 참 뜻인 “생명”(life)으로는 119번 번역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영혼”으로 대부분 번역되어 불멸의 혼백으로 인상을 가리키는 것이지, 인간 속에 있는 어떤 독립적인 본질로 죽을 때 몸을 떠나 존재하는 무슨 귀신같은 불멸의 혼백이 결코 아니라는 결론이다.
신약 성경 의 생령-“프쉬케”
살아있는 생명체를 가리키는 구약의 히브리어 “네페슈”에 해당하는 신약의 헬라어는 “프쉬케‘(psuche)인데, 신약 성경 전체에 105번 쓰여졌다. 이 말 역시 번역하는 사람의 판단에 따라, “생명”으로 40번, “마음”으로 3번 표현되고, “영혼”으로는 58번이나 번역되었다. 16 이러한 말의 혼동(混同) 때문에 다음과 같은 혼란(混亂)을 일으키는 비평이 나오게 마련임을 실례로 든다.
비평 훼케마
“신약 성경에는 최소한 두번 ”프쉬케“가 사람이 죽은 후에도 계속 존재하는 인간의 어떤 양상임을 지적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 첫번 예가 마태복음10장 28절이다. “몸은 죽여도 영혼(프쉬케)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프쉬케)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이 구절에서 “프쉬케”는 [안식교회의 가르침처럼...] 한 인간 전체(全人)를 뜻하는 명칭일 수가 없다. 그렇다면, 몸이 죽을 때 “프쉬케”도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17
변 증 말 뜻의 혼동과 함께 선입관이 가져오는 혼란이 단순한 말씀을 복잡하게 만드는 실례이다. 이 말씀을 계속 설명해 내려가는 문맥인 마태복음 10장 39절에 의미가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자기 목숨(프쉬케)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프쉬케)을 잃는 자는 있으리라.” 앞 절인 28절에서 “영혼”으로 번역한 같은 말을 39절에서는 “목숨”, 즉 “생명”(life)으로 바르게 번역하여 본 뜻을 바르게 드러내고 있다.
참 뜻이 무엇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을 받아 육신의 생명을 빼앗아 갈지라도,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골 3:3)음을 기억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주어진 그 영원한 생명(요 5:24 ; 요일 5:11, 12)은 핍박자들이 빼앗지 못할 것이므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잠시 뿐인 육신의 생명을 버리는 일까지도 두려워 말라는 격려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골 3:4)날 것이며, 생명을 잃었을지라도 다시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10장 28절 말씀이 몸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는 뜻이 아님을18 같은 내용의 말씀인 누가복음 12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4, 5절).
오히려 마지막 심판 때에(계 20:12~15).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반대의 뜻이다. 왜냐하면, “범죄 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겔 18:4)고 선언되어 있어 영혼은 불멸이라는 생각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죽은 후에도 영혼이 있다는 두 번째 증거로 훼케마 씨는 다시 다음의 예를 들고 있다.
비평 훼케마
“두 실례 가운데 두 번째 것은 계시록 6장 6~11절에 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프쉬케의 복수인 프쉬카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19
제단 아래 있는 영혼
변 증 훼케마 씨는 위에 묘사된 영혼들이 순교 당하여 죽은 사람들의 영혼들로 죽은 후에도 의식을 가진 채 부르짖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 말이 참이라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을 잃은 각시 대 모든 순교자들의 형체도 없는 허다한 영혼들이 성전에서 제물을 드리는 좁은 제단 아래 오글오글 밀집(密集)해 있으면서 원통함을 참지 못하여 소리지른다는 뜻인가? 그러한 일이 실제로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라.
주지하는 대로 요한계시록은 심오한 영적인 진리를 주로 상징을 통하여 드러내고 있다. 실례로 앞장인 5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 어린양이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5:6)는 것을 계시에 나타났다. 모든 것을 통찰하시는 완전한 지성의 상징인 일곱 눈과 누구라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인상깊게 상징한 일곱 뿔이다. 분명히 상징적 의미인 것이다.
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는가? 제단은 성소의 뜰에 있던 것으로 제사장은 희생 제물의 피를 제단 사면에 뿌렸다(레 1:5 ; 3:2 ; 17:6). 그래서 억울하게 죽은 순교자들의 희생의 피도 제단 아래 있는 것으로 적절히 상징되었다. 또한 같은 레위기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17:11) 속죄하는 것으로 표상되어 있다. 피는 희생제물의 생명을 상징한 것이다. 제단 아래 뿌려진 희생제물의 피는 제물의 생명(프쉬케)이 희생된 것을 상징하기 때문에, “우리 피를 신원 하여”달라고 부르짖고 있다. 결국 피가 부르짖는 것이다.
어떻게 피가 부르짖는가? 하나님께서도 아우를 죽인 가인을 향하여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 4:10)로 말씀하셨다. 이른 바 문학에서의 의인법(擬人法)이다. 예수 님의 피는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한다고 표현되었다(히 12:24). 부르짖음에 대한 응답으로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6:11)셨다고 했는데, 육신의 실체도 없다고 상상들을 하고 있는 영혼들이 어떻게 두루마기를 입을 수 있는가?
상징과 실제를 구별하지 못하면 이상과 같이 해석상의 혼란을 겪게 마련이다. 훼케마 씨가, 신약에서 “영혼”으로 번역된 “프쉬케”가 사람이 죽은 후에도 의식을 가지고 존재하는 어떤 본질이라는 증거로 제시한 이상의 두 경우가20 모두 성경과 상식에 일치하지 않는 모순된 주장임을 밝히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신, 구야 성경에 “생기”, “호흡”, “신”, “영”, “영혼”, “생명”, “목숨”, “생물”, “마음”등 여러 가지로 번역된 구약의 히브리어와 신약의 헬라어가 아래와 같이 분포되어 있다.21
구약.히브리어: 루아흐(ruach) 389회
네피쉬(nephesh) 754회
네솨마(neshamah) 25회
신약. 헬라어: 프뉴마(pneuma) 385회
프쉬케(psuche) 10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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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1.658회
그런데 이토록 1,658회나 쓰여진 말들이 때로 “영”이나 “신”, “영혼”으로 번역되기는 했어도 그것 자체가 불멸이라거나 죽은 뒤에 몸에서 분리되어도 의식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말이 단 한군데도 없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한 두 군데라도 분명히 적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영혼이 불멸이요 결코 죽지않는 지 1,700(1685)번 물어보라 한결같이 압도적인 대답은 단 한번도 없다는 사실이다! 수백번 사용되면서도 단 한번 어디에서고 영혼은 본질적으로 죽지 않는다든지 영이 불멸이라고 말하는 데가 없다. 불멸이 영혼이나 영의 본질적인 속성이라면 이런 일은 이상하고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22
2 죄의 결과인 죽음의 진상
비평 훼케마
“안식일 교회는 역사적인 기독교가 가르쳐 온 지옥의 교리를 부인한다. 그러나 그들은 형별의 결과가 영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영원한 형벌, 곧 멸절(滅絶)을 믿는다.”23..
해 설
훼케마 씨가 대표하는 일반 개신교회들과 카톨릭교회가 믿는 바는, 구원받지 못한 죄인은 영원한 지옥불에서 불에 타 없어지지도 않고 산 채로 영원히 고통을 당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은 불멸이기 때문에 의인의 영혼이 영원한 것처럼 악인의 영혼도 소멸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안식일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다음과 같이 믿는다.
예수 재림시 의인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여 변화된 새 몸 입고 승천한 (살전4:15-18; 고전15:51-54),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동안 하늘에서 악인을 심판하는 권세를 받고 왕노릇할 것이다(계20:4-6). 천년 후에 그리스도를 수반하여 새 예루살렘과 함께 이 땅에 내려올 때 모든 죽은 악인들이 참여하는 둘째 부활이 있을 것이며 그 때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 하여 영원히 멸절시키는 “둘째 사망 곧 불 못”이 있을 것임을 믿는다(계20:7-15). 결국 예수 재림 천년 후에 이 지구 자체가 불 못인 지옥이 될 것이며(계20:8.9) 죄와 죄인이 영원히 사루어진 후에는 지구가 새롭게 창조되어 구원받은 성도들이 영원히 거할 새 땅이 될 것임을 믿는다(계21:1-5). 이러한 사실을 조목을 들어 아래에 변증한다.
죄의 결과인 죽음-둘째 사망
변 증
하나의 거짓을 합리화하기 위하여는 또 다른 연쇄적인 거짓이 필요하다. 사단이 에덴 동산에서 인간을 안심하고 죄짓도록 유혹할 때 사용한 첫 번째 거짓말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3:4)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는 선언이었다. 하와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죽지 아니하리라”는 사단의 거짓말을 믿었다. 지금도 사람의 영혼은 불사불멸(不死不滅)이라고 믿는 것이 합리적으로 생각되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단언하신다.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 다음의 말씀들을 비교하며 죄의 결과는 사망임을 확인해 보자.
o 창2:7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o겔18:3 “범죄 하는 그 영혼(네페쉬)이 죽으리라”
o요3:16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o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o고전15:56 “사망의 쏘는 것은 조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o게20:14 “사망과 음부[무덤]도 불못에 던지 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죄의 값은 사망임을 일관적으로 확언하고 있다. 영원히 사는 것이 영생인 것처럼 영원히 죽는 것이 사망이다. 만약 죄인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 당한다면. 그것이 고생이지 사망이 아니다. 그것은 “죄의 값은 사망”대신 “고생”이라는 뜻으로 성경을 바꾸어 놓는 일이다.
위에 인용된 계시록20:14절의 둘째 사망이란 무슨 뜻인가? 신, 구약 성경은 의인이건 악인이건 한번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죽게 마련인 생물학적 죽음을 무의식적인 “잠”이라고 했다. (신31:16; 왕상11:43) 등 열 왕기, 역대기에만 35회 이상 표현됨: 단12:2 ;욥14:12; 요11:11; 행7:60; 살전4:15, 16; 벧후3:4). 이처럼 의인이나 악인이나 부활의 날까지 무의식 상태로 무덤에 머무는 것을 첫째 사망이라고 한다.
자는 사람은 비록 이식은 없지만 분명히 깨어나는 것처럼 의인은 예수 재림 시에 “생명의 부활” 곧 “첫째 부활” 떼에 육신으로 부할 한다.(요5:29; 계20:5,6)그러나 악인은 예수 재림 천년후(계20:5) “심판의 부활”(요5:29)곧 둘째 부활에 참여하여, 영원한 죽음인“둘째 사망”(계20:6,14) 에 이르게 되는데 그것이 “사망과 음부[무덤]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이 “둘째 사망”인 지옥불 인 것이며 이 둘째 사망 데에 사망도 사망(死亡)하여 사망의 영원한 끝이 이르는 것이다. 지옥불에서 영원히 고통 당한다는 말은 아직도 사망이 끝나지 않았다는 비 성경 적인 주장이다.
지옥의 진상.
비평 훼케마.
“신약 성경에 12회 나타나며, 보통 ‘지옥’(hell)으로 번역되고 있는 헬라어 ‘게헨나’(gehenna) 를 살펴보자. 안식일 교회는 이 말이 악인을 영원히 불살라 없앨 파멸의 불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마태복음 18장 9절의 ”영원한 불과 같은 표현으로 쓰였다. 그러므로 지옥불은 일시적인 불이 안이요 끝없이 영원한 불이다.”24
해 설
훼메마씨는 안식일 교회가 악인은 영원한 지옥불에서 영원히 고통 당한다는 일반 교회들의 가르침을 부정하고 악인은 격국 사루어 없어진다는 악인 소멸(消滅)을 믿는 것을 반박하는 근거로 “지옥”을 뜻한다는 성경의 “게헨나”가 영원한 지옥불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다시 계시록14장의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 간다는 표현을 들어 지옥불 속에서의 악인의 고통도 영원하다는 논거를 삼고 있다.25
변 증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는 지옥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다. 문제는 지옥이란 무엇이며, 어디에 있고, 언제 있을 것이며, 얼마나 오래 있을 것인가에 있는 것이다. 먼저 지옥(地獄)의 본래 뜻부터 확인하여 볼 필요가 있다. 지옥을 영어로는 “헬”(hell)이라고 하는데, 흠정역(KJV) 구약 성경에 31번 신약 성경에 23번 나타나는 말이다. 그런데 “지옥”으로 번역된 이상의 표현들은 아래와 같은 네 가지 말에서 나왔다. 그것들을 면밀히 점검하며 참으로 성경에 말하는 지옥의 진상을 확인 해 보자.
구약 셩경 의 음부-“스올”
구약 성경에 65변 쓰여진 “승올”(Sheol) 일라는 히브리어는 “보이지않는 세계”(the unseen world)를 뜻하는말인데,26 우리말 셩경에는 주로 “음부(陰部)” 로 번역하여 죽은ㄴㄴ사람의영혼이 가는 곳으로 잘못 샹각하는 “저승”을 연상시킨다. 17세기의 영어번역인 흠정역(1611년 , KJV)에는 ?w은말을 자신들의 주관에 따라 31번은 “무덤”으로 31번은 “지옥”으로 3번은 “구덩이로”번역하여 혼란을 일으키고있다. 그러자 20세기에 들어와서 더많은 연구를 거쳐 번역된 영어 성경들은 “지옥”이 문맥과 신학에 맞지 않게 되자 미국 표준역(ASV)은 대부분“지옥”대신 “무덤”으로 전역하여 신학적 양심을 되?O고 있다. 성경의 본문을 읽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음부”로 번역된 이 “스올”이란 곳은 사람이 죽으면 의인이나 악인이나 모두가게 마련인 유택(幽宅), 곧 “무덤”을 뜻했음을(욥7:9; 시30:3; 전9:10) 다음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
o 신실하게산 야곱도 자신이 죽으면 갈 곳이라고 했고(창37:35; 42:38, 44:29,31)
o 의로운 욥도 죽으면 그리로 내려 간다고 했으며 (욥14:13; 17:13-16).
o 하나님이 사랑하시던 다윗도 죽으면 갈 곳으로 기대했고 (시18:4,5 ; 30:3; 49:15)
o 선한 히스기여 왕도 그리로 간다고 믿었을(사 38:10)뿐만 아니라,
o 예수 그리스도도 돌아가신 뒤 잠시 머무실 곳도 음불고 예언되었다(시16:10→행2:27,31)
o 또한 반역한 무리들도 음부에 삼키웠다고 했고(민 16:33).
o 애굽 사람과 앗시리아 사람도 죽으면 가는 곳이고(겔 32:18~23).
o 바벨론 왕도 가고(사 14:9).
o 결국은 모든 사람, 모든 악인이 가는 곳이다(시 9:7 ; 계 20:13).
“구약 성경에서의 “스올”을 주제로 박사 학위의 논문을 쓴 월터(Raalph Walter)는, 구약 성경에 쓰여진 “스올”(sheol)에 대한 거의 모든 묘사는 “무덤”과 정확하게 같은 뜻으로 적용할 수 있다.”27 고 연구의 결과를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히브리어“스올”이 구약 성경에서 “지옥”이나“음부” 등으로 잘못 번역되기는 했지만, 그 곳이 악인이 죽은 뒤 불 속에서 고통 당하는 지옥의 뜻으로 쓰인 적는 다 한번도 없다. 다시 말하면 구약 성경에는 악인을 영원히 불태우는 그런 지옥은 용어마저도 없다,28. 신약 성경에는 어떠한가?
신약 성경의 음부- “하데스”
신약 성경에 지옥(hell)이라고 번역된 말이 모두23번 나오는데 그 가운데 10번은 “하데스”에서 ,12번은 “게헨나”(gehenna) 에서 , 1번은 “타르타르스”(tartatus) 등 세 가지 헬라어에서 나왔다.
먼저 “하데스” 는 구약 성경의 히브리어“스올” 에 해당한 헬라어임을 시편16편 10절을 인용한 사도행전2장27절에서 곧바로 알 수있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다윗이나 예수 님이 장사된 무덤임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행2:29,31). 소아시아 무덤들 앞에 『0 0의 무덤』이라고 쓴 묘비(墓碑)에도 무덤을 뜻하는 헬라어인 “하데스”를 썼음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다. 자주 “지옥”으로 번역된 신약 성경의 “하데스”는 죽은 악인들의 영혼이 고통 당하는 불타는 지옥이 아니라. 죽으면 무두 가게 되는 “무덤”이나 “죽음” 자체를 뜻했음을 성경 본문만 주의 깊게 읽어보아도 쉽사리 아 수 있다.
그리하여 17세기 영어 번역 성경인 흠정역(KJV)emd "하데스“를 대부분 ”지옥“으로 번역했던 옛날 성경과는 달리 , 20세기 새 번역 성경들은 그것을 ”무덤” 혹은 원어 그대로 “하데스”를 써서 지옥으로 번역할 때 생기는 문맥과 신학 상의 혼란을 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 신학교를 대표하는 훼케마 씨는 칼빈의 가르침을 뒤바침 하기 위해 “스올”이나 “하데스”가 지옥도 아니고 무덤도 아닌 곳으로, 의인과 악인의 영혼들이 최후 심판이 있기까지 예비적인 평안이나 고통을 겪는 임시 휴게소 격의 준간 상태라는 무리한 주장을 펴고 있다. 이것은 칼빈주의 신앙의 교과서인 웨스트민스터 교리문답서의 정설(定說)에도 어긋나는 자체 모순임을 뒤에서 다시 언급하고자 한다.29
본래 영어의 지옥인 “헬(hell)”도 “덮다”(to cover), 혹은 “숨다”(to hide)라는 뜻의 앵글로-색슨어인 “헬란”(helan)에서 나온 것이다. 30 수백년 전에는 그 낱말이 앞에서 살펴본 히브리어“스올”이나 헬라어“하데스”처럼 죽으면 누구나 가는 “보이지 않는”(unseen) 곳인 무덤을 뜻했다.31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단어 [hepsn]는 악인들이 형벌 받는 곳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래서 현대 영어 ”지옥“은 성경의 단어 “스올”이나 헬라어“하데스”와는 다 른뜻이며,...그리스도 게서 죽으셧을때 그는 분명히 지옥으로 가시지 않았다.32.
어두운 구덩이 -“타르타루스”
지옥을 가리키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는 또 다른 헬라어인 “타르타루스”(tar-tarus)는 신약 성경(벧후2:4)에 단 한번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다는 말씀에서 “지옥에 던져”로 번역된 헬라어의 동사형(tartaeoo)으로 나타난다. 명사인 “타르타루스”는 “어두운 구덩이” (a daek adyss)의 뜻으로 쓰였는데 유다서 에도, “지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유1“6)다고 썼다.
그러면 범죄한 악한 천사들을 심판의 날까지 가두어 놓은 이 흑암의 구렁텅이는 어디인가? 요한계시록에 그 대답이 있다. 범죄 함으로 하늘에서 추방당한 사단과 그를 따르는 악한 천사들은 “하늘에서 있을곳을 얻지 못한지라...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어 좇기니라”(계12:8, 9, 12, 13).
실제로 이 땅이 재림 후 최후의 시판이 집행되기까지 쳔년동안 사단이 갇혀 있을 혼돈(混 沌)상태인 “무저갱”( 無低坑)으로도 묘사되었다(계20:1-3). 그러므로 비록 지옥으로 번역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악인이 영원히 불살라지는 그런 뜻의 지옥일 수 없음이 분명하다.
신약 성경의 지옥-“게헨나”
신약 성경에 “지옥” 으로 가장 많이 번역된 “게헨나”(gehenna)는 12번이나 나타 나는데 헬라어로 는 “게엔나”로 불리운다. 히브리어로 골짜기를 뜻하는 “게”(ge)와 인명인 “힌놈”(Hinnom)이 합성된 “힌놈의 골짜기”란 뜻의 지명이다(수18:16) 12번 가운데 9번은 “지옥”이란 명사로, 3번은 형용사로 쓰였는데 한번(약3:6)을 제외하고는 모두 예수께서 친히 하용하신 특이한 표현이다. 이 “게헨나” 만이 불타고잇는 성경적인 백경의 “지옥”을 묘사하는 용어이다. 그렇다면 “게헨나”는 어디이며 타오르는 불은 언제 그리고 언제까지 타오를 불인가?
지옥의 주소로 소개된 “게헨나” 는 다름 아닌 예루살렘 남쪽 비탈 아래의 계곡이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에 빠져 타락이 극도에 달했을 때, 이곳에서 자식들을 몰렉 신에게 불살라 제사하기까지 한(대하28:1-3,33:1-6;왕하23:10) 배도의 현장 이였다. 예레미야는 이 골짜기를 “살육의 골 자기” 라 칭할 것임을 예고하고, 배도한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 가없을 것” 이며 “땅이 황폐하리”라고 예언했다(렘4; 19:2, 6; 32:25)
실제로 요시아 왕은 그 골짜기를 그렇게 만들었다(왕하23:10). 후에는 처형당한 죄수들의 시체와 죽은 짐승들의 사체를 바리고 온갖 오물을 버리는 곳이 되어, 이를 불태우는 연기가 밤낮 타오르고 있었으며. 구더기와 온갖 벌레들이 서식하고 악취가 풍기는 불쾌한 곳이 였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힌놈의 골짜기”, 곧 “게헨나”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 악인들이 최후의 형벌을 받을 곳을 상징하기 에 이르렀다.
예수께서도 이러한 역사적, 지리작 배경을 적용하여 당신의 말슴을 한사코 거역하는 바리새인들과 완고한 인간들을 질책하새며, 그들이 마지막 심판 날에 “살육의 골짜기”곧 “게헨나” 에 던져질 것이라고 경고하셨다(막9:43-47). 그러므로 예수께서 묘사하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이나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막9:43, 48)는 지옥블은 곧 “힌놈의 골짜기”의 쓰레기와 시체를 태우는 불이었다.
이 “게헨나”가 신약 성경에는 모두 “지옥”으로 번역되어 있다(마5:22, 29, 30; 19:8; 23:33). 그러나 이러한 지옥은 사람이 죽은 뒤 몸을 떠난 영혼이 불 가운데서 고통받는 곳으로 표현된 경우는 한번도 없고 , 장차 있을 재림과 연관된 심판의 때에(마5:22; 25:41) 몸이 함께 사루어 없어질 곳으로 분명히 언급되었다.(마10:28; 5:29,30) 그 대와 장소는 앞에서 밝힌 대로 예수 재림이 있은 지 천년 후에 볼 못으로 화할 이 땅인 것이다(계20:7-10, 13, 14; 벧후 3:10-13).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구약의 “스올”(65번), 신약의 “하데스”(11번), “타르타루스”(1번), “게헨나”(12번) 등 사람이 죽은 뒤 가는 곳으로 언급된 표현이 89변이나 나오지만 어느 한 곳도 죽은 뒤 몸을 떠난 영혼이 가서 영원히 고통 당하는 곳으로 소개된 곳은 없다. 단지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쓰레기를 태우는 불이 밤낮 타오르던 “힌놈의 골짜기”를 뜻하는 “게헨나”를 연상하여, 신약 성경은 마지막 심판 날에 악인을 태울 불을 “영원한 불”(마 25:41)로 표현한 것이다.
오늘날의 힌놈의 골짜기의 쓰레기는 모두 타 버렸거나 치워지고, 시체들도 모두 썩어 버려서, 지옥을 상징했던 그 “게헨나”는 깨끗하게 정리되어 더 이상 불도 타오르지 않고 벌레도 득실거리지 않는 아름다운 성지의 일부가 되어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이러한 “힌놈의 골짜기”의 역사적, 지리적 배경을 깨닫지 못하고, 이상과 같은 성경의 표현을 악인이 지옥불에서 당하는 고통은 영원하다는 영원지옥설(永遠地獄說)의 논거로 삼는 것은 학문적으로 신중하지 못한 가르침이다. 다음이 비평이 그런 것이다.
비 평 “만약 지옥불이 영원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 불이 상징하는 형벌 또한 영원한 것이라는
훼케마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마지막 사람이 그 불에 의해 타 없어진 후라면 무엇 때문에 지옥불이 계속 타고 있어야 하는가?33
이상과 같은 영원지옥설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18세기의 이름난 신학자요 설교 가인 요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의 설교의 한 토막을 들어보자.
“오래 전에 사망한 악인들의 영혼은 지옥에 가서 아직도 그 곳에 머물러.....끊임없는 고통 을 받아 왔다. 이 고통받는 일 외에는 그들이 그 곳에서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이 한 목적을 위하여 그 곳에 갇혀 있다.”34 “불의 큰 파도가 그들의 머리 위에 넘실대면 그 머리와 눈, 혀바닥, 손과 발과 허리와 그들의 활력이 영원히 벌겋게 녹아 흐르는 불꽃, 바 위라도 녹이는 불꽃 속에 휩싸여 가장 예민한 감각으로 괴로워할 것이다. 단 한 순간, 단 하루, 단 한 세대 혹은 두 세대, 혹은 일 백년, 아니 수억 년을 두고 영원히 끝도 없이 그 들은 결코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35
“꺼지지 아니하”고(막 9:43, 48). “세세토록”(계 14:11, 20:11) 타오르는 “영원한 불(마 18:8)등의 몇 가지 표현을 근거로 이상에 묘사된 것과 같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영원 지옥설을 함부로 주장할 수 있을까?
신약 성경의 “영원”과 “영원한 불”
변 증 먼저 신, 구약 성경에 쓰여진 “영원한”(everlasting)이라든지 “세세토록”(for ever)이라는 말이 보통 생각하는 그런 끝없는 영원을 뜻하는 말이 아님을 어학적으로, 성경 적으로 확인하여야 한다. 신약 성경에 “영원한”, 혹은 “세세토록”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아이오니오스”라는 형용사인데, “아이온”이라는 명사에서 나왔다. 이 말은 성경에서 다음과 같이 쓰여지고 있다.
“추수 때는 세상[아이온] 끝이요”(마 13:39)
“이 세상[아이온]뿐 아니라”(엡 1:21)
“너희는 이 세대[아이온]를 본받지 말고”(롬 12:2)
“하나님이....만세[아이온]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아이온]의 관원이 하 나도 알지 못하였 나니...”(고전 2:7,8)
“네가 영원히[아이온]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히 5:6).
이상에서 본 대로 보통 “영원”으로 번역된 헬라어 “아이온”은 분명히 시작과 끝을 가진 이 “세상” 이나 한 “세대”나 “시대”를 표현했음을 단번에 알게 된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2장 7절에서는 “아이온”을 “만세”(萬歲)로 번역했다가, 8절에서는 “세대”로 바꾸어 번역했다. 히브리서 5장 6절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은 실제로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최후의 심판으로 세상에서 죄가 소멸되면 제사장 직분도 그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경이 뜻하는 “영원”은 끝이 없는 그런 영원히 아니라, 한 “세상”이나, 한 “세대”를 뜻할 수 있음을 다음의 실례에서 확증할 수 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영원한[아이오니오스]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 었느니라”(유 7).
구약의 아브라함 당시 남색(藍色)으로 특징이 된 호모섹스(同性愛)를 공공연히 자행하던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벧후 2:6) 한 사실을 “영원한 불의 형벌”이라고 했다. 그 때의 유황불은 그 도시들을 재로 만든 후 꺼져 버렸으며 형벌도 함께 끝났다.
구약 성경의 “영원”과 “영원한 불”
신약 성경 헬라어의 “영원”인 “아이온”에 해당하는 구약 성경 히브리어의 “영원”은 “올람”이다.36 그런데 출애굽기 12장 24절에 보면 유월절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올람] 지킬 것”이라고 명하셨다. 그러나 유월절은 십자가와 함께 끝났다.(히 9:24~26). 또한 아론의 아들들에게 기름을 부어 “영원히 제사장이 되게 하”(출 40:15)며 “영원토록” 분향하며 섬기게 되었다고 했지만(대상 23:13), 이 모든 것 역시 십자가로 끝이 났다(히 7:11~14). 히브리인 출신의 남종은 자신이 선택하면, “영원히[올람] 그 상전을 섬기”(출 21:6)게 했다. 제한된 수명을 가진 종이 어떻게 제한된 수명을 가진 상전을 끝없이 영원히 섬길 수 있는가?
권위 있는 헬라어 표준 사전들과 성서 주석 학자들은 일치하게 “영원”, 혹은 “영원히”를 뜻하는 헬라어 “아이온”, “아이오니오스”. 히브리어 “올람”이 모두 “인간의 한 평생”, “세상의 한 시대”를 가리키는 데도 쓰였음을 밝히고 있다.
이 말들이 실제의 “영원”을 가리킬 때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그것이 수식하는 주어(主語)가 영원하신 하나님이거나 하나님의 속성처럼 영원한 것일 때만 그렇다. 즉 “ ‘영원한’이라는 형용사는 주어의 속성이 허락하는 것만큼 오래 가는 기간을 표한다”37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원한 공의”나 “무궁한 사랑”(렘 31:3)은 하나님만큼 영원한 것이다.
“나아만 의 문둥병이 네게 드러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올람] 이르리라”(왕하 5:27)고 선언한 엘리사 선지자의 저주는 본인의 게하시와 그의 자손이 존속하는 동아만 계속되는 것이다.
안식일을 공공연히 범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예레미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이렇게 선언했다.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케 아니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 으로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 하리라”(렘 17:27).
과연 예루살렘은 예언 그대로 바벨론 의 침략을 받아 성전은 불타서 잿더미가 되었으며(대하 36:19~21). 타던 불도 꺼졌다. 불이 꺼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태울 것을 태우기 전에는 꺼지지 않는 심판의 불리요 그 결과가 영원함을 강조한 것이다(유 7). 이러한 뜻으로 쓰인 “꺼지지 않는 불”(사 66:24), 곧 심판의 불의 개념이 그대로 신약 성경에 옮겨서 “세세토록” 타오르는 “영원한 불”로 표현한 것이다.
요한계시록에는 악인의 마지막 운명에 대하여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계 14:11)가리라고 기록되었다. 이 표현은 이사 야가 34장 8~10절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하시는 남 에돔 땅이 역청과 유황의 늪이 되어 밤낮 꺼지지 않는 불이 붙고 “그 연기가 끊임없이”오를 것이라고 했다. 이 곳의 “끊임없이”는 히브리어 “올람”이다. 그런데 11~17절을 계속 읽어보면 그 땅에 다시 새들과 들짐승이 거하게 된다고 하셨다. 만약 유황불이 계속 타고 그 연기가 영원히 오른다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겠는가? 요한계시록의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결과가 영원한 것이지 시간이 영원한 것이 아니다.
꺼지는 영원한 불
성경은 실제로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악인은 초개같이 사루어 져서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말4:1)이라고 했으며, “여호와의 원수는 어린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되어 없어지리”(시37:20)라고 선언되었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심판의 결과로 유황블못, 곧 불덩이의 지옥으로 화했던 지구는 (게20:7-10 ; 벧후3:12, 13) 불로 정결케 된 후에는 “새 하늘과 새땅”이 될 터인데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21:1)질 것임을 명시했다. 그리 허여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오직 은유 한자는 땅을 차지하”(시37:10)리라는 예수 님의 산상 보훈의 허락이 마침내 성취될 것이다(마5:5)
자신의 선택으로 태어난 것도 아닌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어리석은 선택으로 범한 죄악 때문에 천년, 수백 만년, 수백억년, 아니 영원한 세월 동안 죽지도 못하고 펄펄 끓는 유황에서 고통받아야 한다는 영원 지옥설은 자비롭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속성에도 어긋나고 잔인 무도(殘忍無道)한 일이다.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하고 생에 에서 체험한 하나님은 그러한 하나님이 결코 아니시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영원히 타는 유황불 못에서 고통 당하는 것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시는 그런 하나님을 상상할 수 잇는가? 우주 한구석 어디 펄펄 끓는 유황 불못 구덩이에서 영원히 고통 당하는 구원받지 못한 부모행제, 혹은 남편과 아내, 자식들이 있을 환경에서 누리는 하늘의 영생복락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이처럼 부르짖음이 과연 그 무한한 사랑이신 하나님의 귀에 음악이 될 수 있을 것 이가?....이 영원지옥설은 바벨론이 온 세게 주민에게 마시게 한 ”진노의 포도주“라 고 하는 거짓 교리 중의 하나이다.”38
영원 지옥 설의 기원
이토록 비 셩경적인 영원지옥설의 근원은 어디인가? 중세 로마 카톨릭교 회의 기초를 놓은2세기말의 라틴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 3세기초의 키프리안(Cyprian), 4세기말의 어거스틴(Augustine)등은 모두 북아프리카 출신의 교부들로 알렉산드리아 를 중심으로 한 이집트와 헬라의 혼불멸사상에 깊이 젖어 있었다.
서방 교회에 영원한 형별, 영원지옥설 을 소개한 것은 터툴리안 으로 자신의 가르침이헬라의 철학자 플라톤의 영혼 불멸 사상에 근거했음을 천명했다.39 이러한 터툴리안의 가르침은 어거스틴에 의하여 신학적 체계를 갖추었으며,40 중세 로마 카톨릭교 회로 하여금 영원 지옥과 연옥에 관한 신앙을 굳히는 기초를 놓았다,41 이러한 터툴리안 과 어거틴의 사상이 어떻게 16세기의종교개혁자 칼빈의 영혼 불멸과 영원 지옥 사상에 영향을 미쳤는가를 뒤에서 구체적으로 밝히고자 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을 하신다면 그분은 사랑과 공의 의 하나님이라 불릴 수 가없다,...그것을 가증한 교리이며, 무신론자나 회의론 자들의 총에 탄환을 제공해 준 엄청난 폐해를 끼친 교리요 하나님을 성실히 찾으려 한 많은 사람들을 돌아서게 한 교리이다. 죄인은 사망에 처해질 것이지, 고문(顧問)에 처해지지 않을 것이다....왜냐하 면 죄의 형벌은 사망인데 영원한 고통은 사망이 아니기 때문이다” 42
3. 오해되고 있는 성경의 표현 해석
비평 훼케마
“안식일교회는, 이 성경구절[빌1:21-23]이 바울이 육신의 부활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될 것을 언급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만약 그것이 바울의 마음에 있었던 생각이라면 그에게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살아있는 것보다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좋겠다고 했다.”43
해 설
사도 바울이 제1차 투옥시 로마에 갇혀 있으면서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아니한 미결수로 석방의 희망을 가지고 빌립보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이는 네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었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니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1:21-24)
훼케마 씨는 위의 말씀을 근거로 바울이 죽자마자 그의 영혼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될 것을 기대했다고 해석함으로써 영혼불멸을 뒷받침하려 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의 의미
변 증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것”(being with the Lord)을 기대한 것에 대해서는 복음서와 그의 서신 여러 곳에서 언급했다. 그러므로 여러 차례 반복된 이러한 표현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일관성 있는 대답을 찾아야 한다. 언제, 어떻게 함께 있을 것을 기대했는가?
?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살전4:16-18)에서,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격려한 말씀은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쫓아 강림하”신 후, “그리스도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 다음의 일이라고 본문이 밝히고 있다.
또한 훼케마 씨의 말대로, 먼저 죽거나 나중까지 살아남아 있는 것이 주님과 함께 있게 되는 데에 선후(先後)를 정하는 조건이 결코 아님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살전4:15). 성경 본문이 모든 것을 대답하고 있다.
?골로새교회에 보낸 편지(3:4)에서도 바을은,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는 말씀으로, 함께 있게 될 그 때가 예수 재림 시임을 확인하고 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이별을 앞두고, 예수께서 남기신 마지막 약속을 살펴보자. “…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2,3) 예수님과 헤어지는 제자들이 다시 주님과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는 때는 다시 오시는 재림 때임을 약속으로 분명히 밝히셨다.
?사도 바울자신도 같은 빌립보서에서 자신의 마지막 소원을 진술하면서,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빌3:0, 11)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3:20)린다고 거듭 밝힘으로써, 죽는 즉시 주님과 함께 있겠다는 소망이 아니라 재림 시에 있을 부활만이 유일한 소망임을 확인했다. 이 소망을 위하여 그는 자신의 죽음도 불사한다고 고백한다.(2:16, 17)
?바울은 고린고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재림의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전15:52)것을 강조했으며, 만약 이러한 부활의 소망이 없으면 “너희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고전15:17, 18)라고 말씀하심 으로서, 부활을 거치지 않고 죽은 직후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소망의 여지를 조금도 남기지 않았다. 이러한 확신은 그가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쓴 편지인 디모데후서에서도 확인되고 있다(4:7, 8)
훼케마 씨가 인용한 빌립보서 1장 21-23절의 말씀을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할 때, 육신을 “떠나서 ”라는 표현은 죽음을 가리킨 것이요(딤후4:6),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 은 재림의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부활의 날까지 그리스도안에서 쉬고자 하는 진솔한 표현인 것이다. 실제로 자신이 죽음과 부활의 아침까지는 무의식이기 때문에 그 사이의 기간은 순간처럼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가깝게 표현된 서로 먼 사건
실제로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건이면서도 한 문맥 안에서는 서로 연속된 것처럼 표현된 사례들이 성경에 얼마든지 있다. 베드로후서 3:3-13절은 언뜻 읽어보면 재림과 동시에 지구가 불에 풀어져 불못이 되는 것 같이 표현되었으나 실제로 재림과 지구가 불못이 되는 때 사이에는 천년간의 기간이 끼어 있는 것임을 요한계시록 20장을 읽어보면 쉽사리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고향 나사렛에서 안식일에 이사야 61장 1, 2 절을 본문으로 설교하신 내용이 누가복음4장 14-21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당신의 초림으로 이루어질 일만 인용하신 후,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말씀하셨으나, 재림 때를 가리키는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사61:2)에 관한 내용은 일부러 제외하셨다. 성경 본문의 내용을 언뜻 보면 한 사건의 연속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초림과 재림 사이의 넒은 간격이 끼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두 성경 구절로 어떤 교리의 기초를 삼으려고 하는 시도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 다음의 비평 역시 성경 한 곳에 기록된 말씀을 근거로 잘못된 가르침을 옹호하려 함으로써 전체에 드러난 일관성을 깨뜨리는 사례가 된다.
비평 훼케마
“안식일교회는 이 성경 분문(고후5:6-8)이 우리가 내린 결론처럼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이 ‘몸을 떠난’ 즉시 일어날 일임을 정당화하는 내용이 아니라고 주장한다.”44
해 설
훼케마 씨는 아래에 적힌 고린도 후서 5장 6-8절의 내용이, 죽자마자 육체를 떠난 자신의 영혼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원하는 사도 바울의 기대를 나타낸다고 주장함으로서 영혼 불멸을 뒷받침하려 하고 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후5:6~)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
변 증
바로 앞의 비평에서 살펴본 빌립보서1장 21~24절의 경우처럼, 훼케마 씨는 “몸을 떠난다”는 것을 죽을 때 영혼이 육신을 가지고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것으로 전제한다. 그러나 먼저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게 표현한 사도 바울 자신의 진의(眞意)가 무인지를 알 수가 있다. 문맥(文脈)이 시작되는 5장 1절부터 4절까지를 살펴보며, “몸을 떠난다”는 것과 “주와 함께 거한다”는 말의 참 뜻을 편견이나 선입관 없이 본문 그대로 살펴보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나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은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 라”(고전5:1-5).
“땅에 있는 장막 집이 무너진다”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죽음을 의미한다. 베드로도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면서,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것이 임박한 줄”(벧후1:14) 안다고 표현했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곧 “하늘로 부터 오는 우리 처소”는 무엇인가? 4절에 보면, “죽은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는 때인 재림의 날 부활시에 입게 될 썩지 않을 신령한 몸을 가리킨다. 이러한 사실을사도 바울의 다른 서신들인 로마서와 고린도후서 에서 확인해 보자.
고린도후서 5:1-8 |
로마서 8:22-24 |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것같 이 탄식하는 것은........(4절)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 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5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 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 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2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23절) “이 뿐 아니라 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23절)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救贖)을 기다리느 니라“ (23절)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24절) |
같은 내용인 것이 틀림없는 이상의 두 성경 본문을 비교할 때, 같은 내용의 문맥으로 이어지는 고린도후서 5장 6-8절의 의미는 자명(自明)해진다. 죽음에 부딪히면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는 장막과 같은 임기 거처(居處)인 육신을 가지고, 괴로움과 탄식으로 가득찬 짧은 일생을 사는 우리가 간절히 사모하고 바라는 것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이루어질 몸의 구속인 것이다.
그것은 육신의 장막 집이 무너지는 때 벗은 상태가 되는 죽음을, 하늘의 영원한 집이요 입은 상태인 부활의 신령한 몸으로 바꿀 것이다. 그것이 “참으로 기다”(롬8:25)려야 하는 재림과 부활의 소망인 것이다. 다소 바울을 비롯한 성도들 이 바라는 것은 괴로운 이 세상과 육신의 삶을 벗어나는 죽음(벗음)이 아니요, 신령한 새몸을 입고 (입음)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거하게 되는 재림과 부활의 소망인 것이다(고후5:4)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는 때
이와같이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고후5:4)는 때는 언제인가? 또한 “몸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그것”(5:8)이, 훼케마 씨처럼, 죽는 즉시 몸을 떠나 영혼이 그리스도 곁으로 간다는 말인가? 문맥이 모든 답을 가지고 있다. 다음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후5:10). 신령한 모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게 되는 일은 마지막 심판이 치러진 후(히9:27, 28) 그것이 집행되는 재림의 때 곧,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랑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고 말씀하신 때인 것임이 틀림없다(마16:27 ; 25:31-33)
이 사실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사도 바울의 다른 서신에서도 재확인된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이요 마지막 나팔에 수식간 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 을 입을때에 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전 15:51-54).
참으로 분명해진 논증이 아닌가? 훼케마 씨가 자신의 영혼불멸설을 뒷받침 하기 위해 인용한 고린도후서5장6-8절의 내용은 죽는 즉시 몸을 떠난 영혼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요. 그리스도 재림 시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때 겪는 경험임을 로마서와 고린도전서의 평행 절을 비교함으로써 확증했다. 성경분문을 앞뒤 문맥을 무시하고 ?D어내어 인용하는 일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딤후4:14)라는 원칙에 어긋난다. 성경은 성경에 의하여 해석되어야 한다.
낙원의 소재
비평 훼케마
“예수께서 회개한 강도에게 하신 다음의 말씀을 살펴보자. ‘예수께서 이르시되,’…우리는 회개한 강도에게 바로 그 날에 그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행복 가운데 있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고 결론을 짖는다.”45
해 설
영혼불멸설을 옹호하고 안식일교회를 비평하는 그의 논증에서, 훼케마씨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시는 동안,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라는 말로 탄원하는 회개한 강도에게 하신 위의 약속이, 죽는 즉시 영혼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겠다는 보증이라고 결론을 짓는다. 참으로 그렇게 속단(速斷)해도 되는 일인가?
변 증
먼저 예수께서 죽어가는 강도에게 약속하신 “낙원(樂園)이란 어디며 언제 가는 곳인가? ”낙원“으로 번역된 헬라 원어는 ”파라데이소스“(paradeisos)인데 고대 페르샤어인 ”파이리다에자“(pairidaeza) 에서 유래한 말로서, 나무도 있고 짐승도 있는 공원(park)이나 정원(garoend)을 뜻했다.46 구약에 세번 쓰여진 이 용어는 ”산림”(느2:8) “과원”(park. 전2:5).“과수(아4:13)로 번역되었다. 신약에서도 세번 쓰였는데, 모두 ”낙원“(Paradise)으로 번역되었는데, 사도 바을은 하나님이 계시는 “셋째 하늘”을 “낙원”이라 하였고(고후12 : 2-4), 요한계시록에는 승리한 그리스도인들이 장차 누리게 되는 보상으로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2:7)고 약속하고 있다.
성경에서 생명나무가 있는 낙원은 다른 곳이 아니라 범죄하기 이전의 에덴 동산이며(창 2:8~15),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생명강이 흐르고 생명나무가 자라는 하늘의 새예루살렘인 것이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생명과를 먹고 생명수를 마시게 되는 때는 재림으로 세상의 역사가 끝난 뒤 하늘에서와, 새로 창조될 새 땅에서인 것이다(계 21:1~3, 10; 22:1~5). 신, 구약 성경이 어디에고 낙원이 몸도 없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가는 곳으로 암시된 적이 결코 없다. 예수님께서도 믿는 사람들이 이러한 보상을 받고 당신과 함께 있게 되는 때는 세상 끝, 곧 재림하신 이후라고 거듭거듭 천명하셨다(요 14:1~3 ; 마 16:27 ; 25:31,34 ; 살전 4:16,17).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렇다면 죽어 가는 강도에게 하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신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불행하게도 본래 구두점(句讀點)이 없는 헬라어 원문을 후에 번역하면서, “오늘”이라는 부사 앞에 쉼표(,)를 잘못 찍어 넣은 결과로 생긴 문법상의 혼란이다. 헬라어 원문은 아래와 같다.
Αμ?ν σο? λ?γω α?μερον μετ? ?μου ?μο? ?αη ?ν τ? παραδε?α?
“아멘(진실로) 소이(네게)레고(내가 말하노니) 셰메룬(오늘) 메트에무(나와 함께) 에세(네 게있을 것이다. 엔토 파라데이소(그 낙원 안에).”
그런데 편견을 가진 번역자들이 숨표(,)를 “레고”(내가말하노니)와 “세메론”(오늘) 사이에 찍어 넣은 결과, “오늘”이라는 부사가 그 다음에 오는 동사를 수식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보다 가능한 문법상의 이해를 가지고 살펴보면, “오늘”(세메룬)이란 부사는 바로 앞에 있는 동사인 “내가 말하노니” (레고)를 더 자연스럽게 수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오늘 네게 말하노니,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본래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상의 해석이 성경적인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성경에 단서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금요일 오후 세시 경에 돌아가셨고 두 강도는 좀 더 후에 죽었다(마27:45-50 ; 요19:30,33). 그러므로 본문의 “오늘”은 돌아가신 금요일이므로 그 날 예수님은 하나님께 가셨어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날 하늘에 가시지 않았으며, 그 다음 날인 안식일에는 무덤에서 쉬셨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 이른 새벽 무덤에 왔던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뜻밖에 만났을 때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만지지 말라 내기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의어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요20:17).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뵙기 위하여 숭천하신 날은 그 다음 일요일이었으므로 금요일 강도와 함께 하늘에 계실 수가 없으셨다.
같은 문법적 구성을 가지고 같은 내용을 함축한 스가랴서(9:9-12)에서도 이러한 경우를 엿보게 된다.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으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12), 십자가의 강도처럼 “물 없는 구덩이에 갇힌 자”들이 (11) 놓여나서 돌아오는 일은 장래의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오늘날 확약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평의 글에서, “우리는 회개한 강도에게 바로 그 날에 그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행복 가운데 있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고 결론”을 지은 훼케마 씨의 결론은 결코 성경적인 결론이 아니라고 결론을 지을 수 밖에 없다.
비 평 훼케마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눅16:19-31) 우리가 이 비유를 상세한 점까지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우리는 이 이야기의 요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이 부자는 세상에서 사치를 누렸고 나사로는 가난했지만, 죽은 뒤 부자는 고통을 당하고 있었고 나사로는 평안을 누리고 있었다. 만약 사람이 죽은 뒤 그저 무의식이나 비존재의 상태로 돌어가 버린다면 이 비유는 전혀 무의미하게 된다.... 비유에서 상징적으로 묘사된 부자와 나사로의 다양화된 의식적인 존재는 중간상태 동안의 상태를 반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47
해 설
현대 칼빈비주의 신앙을 대표하는 훼케마 씨는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가 사람이 죽는 때로부터 부활할 때까지의 중간기간 동안 몸을 떠난 영혼이 의식을 지닌 채 실제로 겪는 중간상태(lnternediate State)라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이 기간동안 의인의 영혼은 낙원(hades)에서 예비적인 행복을누리고, 악인의 영혼은 음부(hades)의 불 속에서 예비적인 고통을 당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훼케마 씨의 이러한 가르침은 도대체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가? 칼빈의 가르침이다. 칼빈은 로마 카톨릭의 중세 신앙을 뿌리치고 공식적인 개신교 신앙으로 돌아선지 겨우 2년 만인 25세 때(1534), 최초로 쓴 글이 바로 혼수론(魂睡論. Psychopnnychia)으로 알려진 신학 논문이다.48 죽음에서 부활까지 사람의 영혼은 잠과 같은 무의식 상태에 들어 간다고 가르친 당시의 열심있는 개혁자들 이었던 재세례파(Anabaptist)들을 공박하기 위하여 민망스러운 거친 표현과 개신교 신앙의 연조처럼 미성숙한 논리로 특징을 이룬 이 논문에서 칼빈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있는 이야기로 영혼이 “몸을 떠나 자유롭게 된” 49 때의 상태라고 진술했다. 이러한 칼빈의 가르침을 그대로 신봉하는 훼케마 씨는 그것을 다른 목적으 가진 비유라고 가르치는 안식일교회를 이단시하고 있다. 이러한 그릇된 주장의 역사적 배경과 신학적 근거를 확연하게 규명해보자.
있을 수 없는 현실
변 증
이상에 기록된 칼빈의 가르침이훼케마 씨의 주장이 참말이라면 아래의 몇 질문에 대해 성경 말씀과 상식에 근거하여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 신, 구약 시대에 죽은 모든 의인의 영혼들이 죽는 즉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다면, 기원전 거의 2천년 전에 살았던 아브라함 이전의 영혼은 어디에 있었을까? 의인이 죽으면 아브라함의 품으로 간다는 어떠한 암시라도 성경에 있는가?
? 의인의 영혼이 머문다는 아브라함의 품과 악인이 영혼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당한다는 음부(陰部)가 아주 가까와, 비유에서처럼 마주 보면서 대화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구원받지 못한 부모, 부부, 자식, 형제나 친구, 이웃이 불 속에서 아우성치는 소리를 듣고 그 참상을 눈으로 보며 몇 년, 혹은 몇 천년을 지나는 아브라함 품안의 의인들은 그런 환경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 낙원은 없어야 하며, 만약 있다면 그것은 생지옥일 뿐이다.
? 죽은 의인의 영혼은 아브라함의 관할 아래 있고, 고통받는 악인들도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자비를 탄원해야 한다는 말인가? 비유에서처럼 죽은 의인의 영혼이 고통당하는 악인의 영혼을 위해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인가? 성경 어디에 이러한 기상천외(奇想天外)한 가르침이 있는가?
? 칼빈이나 훼케마 씨는 비유에 나타나는 아브라함, 부자, 거지 나사로가 모두 죽은 뒤 몸을 떠난 사람들의 영혼들이라고 했는데, 성경 분문에는 그들이 영혼이라는 표현은 전혀 없고 오히려 품, 눈, 손가락, 혀 둥 육신을 가진 존재로 표현되지 않았는가?
? 성경에는 아브라함도 다른 노독들과 함께 약속된 영생과 본향은 받지 못한 채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죽었고, 하나님께서 는 그들을 위해 세상 끝날 하늘에 있을 곳을 예비하신다고 했는데(히11:8, 13-16, 39. 40), 어떻게 아브라함만이 마지막날 있을 부활도 거치지 않고 육신도 없는 영혼의 형체로, 성경에는 유례(類例)가 없는 이상한 낙원에 홀로 나타났다는 말인가? 이와 같은 가정은 성경은 물론 상식에도 벗어나는 일임을 쉽사리 알 수 있다.
이 비유에서 부자가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그런데 이 곳에서 음부(陰部)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하데스”(hades)로, 히브리어의 “스올”(aheol)과 같은 것인데 그곳은 의인이건 악인이건 사람이 죽으면 모두 가게 되는 무덤임을 앞서의 연구에서 밝혔다.50 하데스 곧 음부에서 온갖 고통을 당하고 불꽃 가운데서 태워진다는 이야기는 성경 어디에고 기록된 바가 없다. 죽어 무덤에 있는 사람들을 등장시킨 풍자적인 비유이기 때문에 그렇게 묘사한 것뿐이다.
실제로 성경에는 이솝의 우화(寓話)처럼 어떤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쓴 경우가 있다. 즉 여러 나무가 사람같이 말하는 것처럼 쓴 경우가 그것이다(삿9:8-15, 왕하14:9). 그것이 비유인지는 문맥을 보면 알 수 있고, 상식으로도 알 수 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기록된 누가복음 16장은 예수님의 여러 비유 설교 가운데 한 부분임을 다음의 요약에서도 일목요연해진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눅15:3)” 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신 후 이어서 ,
(녹15:4-7)잃은 양의 비유
(눅15:8-10) 잃어버린 은전의 비유
(눅15:11-32) 잃어버린 아들[탕자]의 비유
(눅16:1-13) 불의 하나 지혜로운 청지기 비유
* 재물에 관한 바로 앞의 비유를 듣고 이를 비웃는 바리새인들을 견책하는 말씀을 하신 후 이어서,
(눅16:19-31)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하심.
그리하여 누가복음 15장은 잃어버린 자를 주제로한 비유들, 16장은 현세의 재물과 내세의 운명을 주제로한 비유들임을 한 눈에 보게 된다. 그런데 이상의 여러 비유들 을 소개하는 문형(文型)이 모두 비유를 시작하는 특유한 것이어서 그것이 일련의 비유임을 문학적 감각으로도 알 수 있다.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한[‘어떤’ 과 같은 원어임] 부자가 있어...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거지가...”
누가 보아도 비유인 「부자와 나사로」의 기사를 굳이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고집한 칼빈의 판단은 어리둥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을 비유라고 가르친 당시의 재세례파 신자들을 향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연기(煙氣)로 대낮의 빛을 꺼보도록 하게 하라”51고 질책했다. 그런가 하면 그의 다른 저술인 공관 복음서 주석에서는 “영혼이 무슨 입나 혀나 눈을 가지고 있을 수 없다고 말하여 이것은 윤리적 의미를 가르치는 것”52이라는 정반대 되는 말을 하여 또 다시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하고 잇다.
그런데 이 비유의 출처는 예수님 당시 민중들이 익히 알고 있던 이집트의 민속 설화(民俗說話)였음이 금세기에 들어서 밝혀졌다. 즉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틴으로 옮긴 이야기인데 시-오시리스(Si-Osiris)라는 사람이 사후에 지하세계를 여행하는 이야기에 포함되어 있다.53 이러한 이집트 민속 설화가 유대 판으로 변형되어, 바르 마잔(Bar Majan)이라는 한 부자 세리와 한 가난한 서기관이 죽어 장사되었는데, 이 서기관의 친구가 꿈 가운데서 이 두 사람의 내세의 형편을 보았다는 것이다. 즉 가난했던 서기관dms 광활한 낙원을 거닐고 있었고 부자였던 세리는 냇가에 서 있었는데 목이 말라 애쓰면서도 물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54
마치 부정 축재로 거부가 된 재벌들과 성실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빗대어 고발하는 오늘날의 풍자문학(諷刺文學)이나 사회 만평(社會漫評)과 같은 것으로 「부자와 나사로」이야기 역시 예수님의 풍자적 비유인 것이다.
이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드러내시고자 한 교훈은 무엇인가? 이미 문맥에 나타났듯이,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눅16:14), 이에 대한 대답으로 19절 이하의 풍자적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다. 즉,
? 이 세상에서 누리는 재물의 축복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부하면서 자신들의 의를 자랑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정하신 바 현세와 내세의 운명에 대한 보증이라는 그들의 통념을 여지없이 분쇄하셨다.
? 부자는 자신들에게 맡겨진 재물을 자신의 쾌락과 안위만을 위해 사용함으로서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고 그들의 필요를 외면하는 것을 엄연한 죄임을 지적하셨다.
?생전에 형성한 성품은 건널 수 없는 “큰 구렁”[26절]처럼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고, 사후에는 구원을 위한 두 번째 기회가 없으므로 생전에 구원을 이루고 선을 행하라는 교훈을 주셨다.
?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씀 곧 구약 성경의 권위를 재확인하시고(16:31), 어떠한 이적도 성경 말씀의 권위를 대신할 수 없으며, 성경 말씀만이 진리의 표준이요 구원의 방편임을 재천명하셨다.
다시 말하면, 이 비유의 목적은 교리적이 아니라 윤리적인 것임을 알 수 있으며, 한 두개의 비유를 가지고 교리의 근거로 삼으려는 시도는 신학적으로 금기(禁忌) 사항임은 이미 신학적인 상식이 되어 있다.55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개인의 이름을 붙여진 경우는 이곳 뿐이다. 무슨 목적에서였을까? 비유에 나타난 교훈이 실제로 적용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후에 예수님과 평소에 친숙했던 베다니의 마르다 와 마리아 자매의 오빠 나사로가 병들어 죽어 장사된지 나흘이나 된 것을 예수님께서 다시 살리신 최대의 기적을 행하셨다(요 11:1~44). 그 때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낙원이나 지옥에서 불러오지 않으시고, 직접 이름을 부르시고 무덤에서 불러내셨다. 만약 나사로가 낙원에 이르러 행복에 겨운 몇 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고통과 죽음이 기다리는 이 세상으로 다시 호출되어 내려왔다면 얼마나 어이없는 이야기가 되겠는가?
비 평 “비록 우리가 이 비유[부자와 거지 나사로]로 부터 중간 상태[죽음에서 부활 때까지
훼케마 의 상태]에 관한 자세한 진술을 찾아내도록 허락된 것은 아니지만, 만약 신자가 죽는 즉시 의식을 가지고 행복속에 존재하지 않거나, 불신자가 의식을 가지고 고통을 겪지 않는다면 이 이야기는 전적으로 요점이 없어지고 만다.“56
해 설 훼케마 씨는 앞서의 비평에서처럼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들어 그것이 사람이 죽은 후부터 부활할 때까지 겪는 중간 상태(The Intermediate State)의 묘사라고 무리하게 주장한다. 그리고 앞서의 이유로 그것을 반대하는 안식일 교회를 이단시하고 있다. 도대체 대부분의 교회들이 믿고 가르치는 이 중간 상태(中間狀態)란 무엇이며, 그것이 올바른 가르침인지 심각히 규명해 보자. 어리둥절한 사실은 현대의 칼빈주의 신앙의 대변자로 칼빈의 가르침을 따라 중간 상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나선 훼케마 씨 자신이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 술 “물론 성경은 사람이 죽고나서 부활할 때까지의 소위 중간 상태에 대해 많이 말하고
훼케마 있지 않다는 것과 미래의 생명에 대한 성경의 기별은 육신의 부활인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성경은 이러한 중간 상태의 성격에 관한 어떤 이론적인 해석을 우리에게 주지 않고 있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57
변 증 자신도 성경에 의하여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다고 자인한 비성경적인 교리를 왜 굳이 주장해야 하며, 그것이 성경에 어긋나기 때문에 반대하는 안식일 교회를 오히려 이단이라 하는가? 훼케마 씨의 주장과는 달리 성경은 사람이 죽은 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부활할 때까지의 상태를 자세히, 분명히 그리고 풍부히 밝히고 있다.
? 다윗을 비롯한 모든 노독들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다(행 2:34 ; 히 11:13~16). 살아서 승천한 에녹과 엘리야, 부활하여 승천한 모세는 예외이다(유 1:9 ; 마 17:1~5).
? 자식이 잘 되고 못되는 것도 전혀 알지 못하는 현실과는 완전히 단절된 상태이다. (욥14:21)
? 일체의 감정과 의식이 없다(전9:5, 6, 시 146:4).
? 아무“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전9:10)는 무활동 상태이다.
? 고통도 느끼지 못할 뿐더러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없는 무감각한 상태이다.(시6:5; 30:9; 88:10; 115:17; 사38:18, 19).
이러한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완곡한 표현이 곧 “잠”이다. 왜냐하면 잠은 죽음처럼 시간과 공간과 주변 사물에 대하여 의식이 없으며, 언젠가는 잠에서 깨어나듯 부활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죽음을 잠과 동의어로 쓴 경우가 성경 17책에 걸쳐 66회나 기록되어 있다. 58 아래에 이 사실을 중거하는 성경 상의 증언들을 열거한다.
* 욥(3:13; 7:21; 14:12; 17:16)
* 모세(신31:16)
* 다윗(시13:3; 삼하7:12;왕상1:21; 2:10)
* 솔로몬(왕상11:43)
* 여로보암(왕상14:20, *이하 모두 왕상) 르호보암(14:31)
* 아비암(15:8)아사(15:24)...
* 아합(22:40)등 선하거나 악한 모든 왕들.
* 예레미야(렘51:39, 57)
* 다니엘(단12:2, 13)
* 예수 그리도(마9:24; 막5:39; 눅8:52; 요11:11)
* 마태(마27:52)
* 누가(행7:60, 13:36)
* 바울(고전7:39; 11:30; 15:6, 18, 20; 살전4:13, 14, 15,; 5:10)
신. 구약 성경은 이토록 분명히 죽음에서 부할때가지의 중간 상태를 철저한 무의식으로 확인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비롯한 구약의 노독들, 선지자들과 일반 왕들, 신약의 사도들 모두가 한결같이 죽음을 의식이 없는 “잠”이라고 했는데, 정반대로, 칼빈은 혼수론(魂睡論)이라는 비성경적인 논문까지 써서 “죽음의 온 밤을 통하여 영혼은 행복을 즐기기에 필요한 의식과 감각을 가지고 깨어 있다”59고 강변(强辯)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반대한 재세례파 등 개혁자들을 이단으로 정죄 하였으니 어떻게 된 영문인가? 칼빈의 혼수론에 현저히 위배되게 가르친 예수 그리스도를 비롯한 사도들, 노독들도 모두 이단시되어야 하는가? 도대체 이토록 황당무계한 가르침의 기원은 어디인가?
훼케마 씨가 교수로 몸담고 있었던 미시간주 그랜드 래피즈에 소재한 칼빈 신학교에서 38년이나 가르친 벌코프(Louis Berkhif) 씨의 대표적인 저서인 [조직신학]은 현대 칼빈주의 신학의 대본(貸本)격이다. 이 책에서 벌코프 씨는 죽음에서 부활까지 몸을 떠난 영혼들이 예비적 행복이나 고통을 겪는 다는 중간 상태에 관한 교리는 성경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초대의 교부들이 고안해 낸 가르침임을 밝히고 있다. 60
훼케마 씨 자신도 칼빈의 중간 상태에 곤한 가르침이 북아프리카 출신 교부인 어거스틴에게서 연유했음을 그의 다른 저서에서 인정하고 있다.61 그런데 이러한 사상은 고대 이집트의 영혼 불멸 사상의 중심지였던 북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활동한 교부들에 의하여 카톨릭교회의 연옥에 관한 교리로 발전했음을 아울러 밝히고 있다.62 아래는 이에 간한 카톨릭교회의 교리를 요약한 것이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교화와 더불어 화평하게 죽은 모든 사람은 연옥(煉獄)으로 알려진 중간 영역(intermediate realm)에 처하여 형벌적이며 정결하게 하는 고통을 당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상태에 도달한 신자만이 즉시 천국에 간다. 침례[영세]받지 아니한 모든 어른들과 침례[영세]받은 후 중죄를 지은 사람은 즉시 지옥으로 간다. 교회와 교제를 가지면서도 어느 정도의 죄를 짊어지고 있어 부분적으로 성화된 그리스도인들은 연옥으로 가서 모든 죄가 정화(淨化)될 때까지 장단(長短)간에 고통을 받은 후에야 변화되어 하늘로 간다.”63
죽은 후 영혼이 정화(淨化)될 가능성을 배제한 것을 제외하고는, 칼빈이「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근거로 주장한 중간상태나 로마카톨릭 교회가 고안해 낸 연옥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칼빈은 카톨릭의 연옥을 마귀의 고안이라고 했지만, 다음에 인용된 전경연씨의 결론처럼 칼빈의 그릇된 주장은 결국 또 다른 개신교의 연옥인 오늘날의 중간 상태라는 엉뚱한 교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와 같이 칼빈이...몸과 영혼의 분리, 불경건한 자의 영혼이 받는 고통 같은 것을 말 함으로 카톨릭적 표상[연옥]이 침입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영혼이 부활 때까지 깨어 기다린다든지 불경건한 자의 영은 예비적인 징벌을 곧 받는다고 설명함으로써 중간 상태에 대한 사변의 길을 열어 놓은 것은 사실이다. 그는 그 시대의 아들로서 그 시대의 사람들의 의문을 풀 책임을 지고 그러한 논의에 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으나 그의 교설(敎說)이 모든 시대의 표준은 아니다.64
전경연 씨의 말대로 칼빈은 “그 시대의 아들이”었다. 뒤에서 밝히겠지만, 칼빈의 예정론과 영혼 불멸 신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초기 교부 어거스틴은 그러한 영혼 불멸 사상을 고대 헬라의 철학자 플라톤에게서 받았으며. 플라톤은 그것을 이집트에서 지원 받은 것이다. 결국 칼빈의 영혼 불멸 신앙이나 중간 상태에 관한 사상 역시 성경이 아닌 헬라의 사상이었음을 다음의 인용에서도 확인된다.
“그[칼빈]는 사람이 죽음으로 혼은 육을 떠나 본향으로 간다고 하였다. 죽음은 외국에서 방랑생활을 하던 영혼이 아버지 집에 돌아가고 불멸을 분깃으로 받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영혼의 본향은 ‘아브라함의 품’ 이다. 이것은 헬라적 영혼불멸의 관념을 그리스도교 신앙에 옮겨 놓은 것이다.”65
칼빈주의 신앙의 기본 신조인 웨스트민스터 교리문답서(rhe Westminster Catechism)도 그릇된 영혼 불멸설을 옹호하면서도 “이 두 곳[천국과 지옥] 외에는 몸을 떠난 영혼이 갈 수 있는 어떤 곳도 없다고 성경은 인정한다”66 고 했다. 그런데도 실제로는 제 3의 장소로서 개신교의 연옥인 중간 상태를 믿고 있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금세기에 들어 킬빈주의 중간 상태가 비성경적임에 대해 안팎으로부터 심각한 비평을 받고 있는 것은 성서 신앙의 회복을 위한 훌륭한 진전이다. 그 중에는 금세기 대표적인 개혁 주의 신학자인 화란의 벌카워(GC Berkou-wer). 루터교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알트하우스(Paul Aithaus)등도 포함되어 있다.67 올바른 양심과 성숙한 지성은 서로 어긋날 수가 없다. 오늘날까지 가르쳐지고 있는 칼빈주의 중간 상태는 중세 카톨릭 신앙에서 개신교 신앙으로 공적으로 돌아선지 2년밖에 안 된 25세의 젊은이 칼빈이 아직도 영혼 불멸에 관한 중세 교회의 영항을 채 벗어나지 못한 형편에서 처음으로 쓴 미성숙한 신학 논문「혼수론」에 기초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모든 면에서 성장했고 또 성숙해진 오늘날의 신앙 지성인들은 칼빈이 중세기의 짙은 암흑이 겨우 걷히기 시작한 새벽 미명(未明)에 불과한 “그 시대의 아들”이었음을 기억하고 방금 펼쳐지고 있는 대낮의 광명(光明)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5 .장사된 삼일만의 그리스도
비평 신 구교 일부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시기까지 그리스도께서는 옥(獄)에 내려가셔서 거기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벧전3:18-29). 이 사실은 죽을 때에 몸을 떠나 존재하는 비물질적인 영 (靈)이 있다는 증명이다.”68
해 설
이상의 주장은 모라 카톨릭교회를 비롯하여 일부 교회들이 나름대로 영혼 불멸의 근거로 삼고 있는 논증이다. 특히 로마 카톨릭교회는, 예수께서 돌아가신 직후 영으로 음부(陰部)에 내려가셔서 거기에 갇혀 있던 구약 시대의 의인들의 영혼을 해방시켜 부활과 함께 하늘로 이끌어 가셨다고 가르친다.
의인의 영들이 있던 곳이 지옥의 한쪽 가장자리에 있는 어른들의 림보(Libus Patrum)이고, 다른 쪽에는 어린아이들의 림보(Limbus onfantum)도 있다고 가르친다. 어른의 림보가 누가복음16장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품”이고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약속된 “낙원”(눅23:43)이라고 한다. 이렇게 의인의 영혼을 위한 림보가 있는가 하면 지옥의 다른 가장자리에는 악인의 영혼을 위한 림보[*라틴어로 가장자리라는 뜻]도 있다는 것이다.69
놀랍게도 위의 설명은 칼빈의 「부자와 나사로」비유 해석이나 훼케마 씨의 주장과 대단히 유사한 배경이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킬빈의 영혼 불멸 사상이 카툴릭교회의 연옥을 가능하게 했다는 현실적인 논증이 나온 것이다.70 그것은 또한 큰 혼란과 말성을 일으키는 사도 신경의 한 구절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지옥에 내려가셨다가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71의 문제점이다.
우리말 사도 신경에는 이 구절을 기술적으로 뺐지만, 원문대로는 있어야 하는 표현이다. 그래서「사도 신경 해설」에서도, “우리가 사도 신경을 고백할 때마다 이 사실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 의심스러운 마음이 생긴다”72 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칼빈도 자신의 영혼 불멸 사상의 교과서인 「혼수론」에서 영혼 불멸을 주장하며, “사도 베드로가 그리스도께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셨다(벧전3:19)고 말할 때, 죽음 후에도 영혼이 존재하고 살아있음을 못지 않게 분명히 제시했다” 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몇 절의 經外書(경외서)까지 인용한 뒤,74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가 절대로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단정한다. 75 참으로 아래에 기록된 베드로전서의 말씀이 그와 같은 뜻으로 쓰인 것인가?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벧전 3:18- 20).
변 증
우리말 성경에 기록된 것을 언뜻 잘못 읽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직후에 영으로 연옥이나 지옥 어디에 내려 가셔서 노아 당시에 구원받지 못한 채 고통 당하는 사람들의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될까? 연옥 같은 곳이 정말 있어서 죽은 뒤에도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있다는 말이 된다. 성경 어디에도 그렇게 언급한 데가 없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9:27)는 말씀을 비롯하여, 죽을 때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도 함께 끝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마16:27; 롬2:6; 겔18:24; 계22:12) 또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가 주는 교훈 가운데 하나도 , 하나님 말씀을 듣고 새사람이 되는 기회는 생전 뿐이라는 것이다(눅16:26-31). 또한 죽은 후에는 일체의 의식이 없다는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에도 전적으로 어긋난다(시146:4; 전9:5,6). 만약 두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면 왜 하필 노아 당시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만 그런 특권이 주어져야 하는가? 모두 있을 수 없는 가정들이다.
그렇다면 이상의 성경 본문의 참뜻이 무엇인가? 먼저 기자인 사도 베드로가 분문에서 무엇을 말하려 하고 있는지 문맥을 살펴야 한다. 사도 베드로는 이 편지서에서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이미 온갖 고난을 겪고 있으며 더 큰 시련을 눈앞에 둔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면서,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라 고난을 견디고, 가정과 사회에서 양심에 거리낌없는 모범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살도록 권면하고 있다.
이미 2장(18-25)에서 한 차례 이와같은 권면을 한 뒤, 같은 내용을 3장 14절 이하에서 강조하며 반복하고 있는 중에 문제가 되고 있는 위의 내용이(18,19) 포함되고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같은 교훈을 4장(1-6)에서 거듭반복하고 있어, 본문의 뜻을 다시 밝혀주고 있다.
그러므로 문제가 된 3장 18, 19절을 다른 평행절들과 비교하면서, 14절부터 시작되어 22절에서 끝나는 전체 문맥에 맞추어 읽고 이해해야 한다. 사도는 16절에서 시련 중에도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강조하고 21절에서 또 다시 노아가 겪은 홍수와 같은 경험인 침례를 통하여 정결케 된 “선한 양심” 을 가지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께 담대히 나아가도록 권면하고 있어 주제를 분명히하고 있다.
이러한 개요에 따라, 17, 18절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선을 행하면서도 애매히 고난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극심한 고난의 길을 먼저 걸어가신 그리스도를 모본으로 제시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베드로전서의 세 개의 평행절들을 비교하여 공통된 뜻을 확인해 보자.
?2장21, 24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
?3장18, 21절: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았으니..., 곧 세례[침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4장1, 6절: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이를 인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이상의 세 평행 절을 비교하면 문제된 내용의 참 뜻이 분명해지고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예수님 자신에게 일어났던 놀라운 변화와 결과가 주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도 그대로 재연된다는 사실이다. 죽음의 고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 살리심을 받으셨으니”(3:18).
이 말씀의 뜻을 자칫 오해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신분의 변화를 의미했음을 다음의 성경 말씀으로 확인할 수가 있다.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롬 1:3,4).
이 곳의 육(肉. flesh)과 영(靈. spirit)은 몸(body)과 영혼(soul)으로 구분하는 헬라적인 이원론적 표현이 아니라, 연약한 인간의 속성과 신령(神靈)한 하나님의 속성을 대조시킨 것으로, 부활 전까지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땅에 속한 육신의 상태와 부활 후에 입으신 하나님의 영적인 속성을 가리킨 것이다(딤전 3:6 ; 고전 15:45~49 ; 고후 13:4).
부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게 일어난 이와 같은 변화는 그의 고난에 동참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그것이 위에쓴 베드로전서 안에 있는 평행절들에 드러난 아래의 공통된 결과들이다. 즉,
?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2:24)
?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3:21)
?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4:6)
이상과 같은 사도 베드로의 표현은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표현에서도 재확인된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0.11).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이러한 결과에 이르는 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가? 그것이 곧,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롬 6:5)가 되게 하는 신령한 의식인 물에 잠기는 침례(浸禮)의 영적 의미인 것이다(롬 6:1~4). 바로 이러한 영적 의미 때문에, 문제가 된 본문(벧전 3:18, 19)을 잇는 문맥인 21절에는 “물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세례]라”고 단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침례의 영적인 의미가 실제로 과거의 역사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경험이 곧 영적인 침례였다고 논증했다(고전 10:1~4).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노아와 그의 식구가 홍수 때에 겪은 경험이 곧 침례의 표상(表象)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소개하기 위해 베드로전서 3장 20, 21절에서 언뜻 보면 무관한 것 같은 노아 홍수 이야기와 물 속에서 구원받는 여덟 식구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21절에 쓰인 “구원하는 표”라는 표현에서 “표”는 헬라어로 “안티튜포스”(antitupos)인데 영어의 “원형(原形)”이다. 즉 침례는 원형이고 홍수는 표상(表象.type)이라는 신학적인 표현이다.
신약 시대에 예수께서 제정하신 침례에 해당하는 구약의 노아 홍수는 어떤 면에서 침례의 의미를 지녔는가? 침례를 베풀기 전에 먼저 있어야 할 일은 복음을 전파하여 믿고 회개하고, 순종하도록 하는 일이다(롬 10:13~15, 행 2:38).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시기전 신령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시고 성령의 역사로써 “의를 전파하는 노아”(벧후 2:5)를 통하여 120년간 홍수전의 사람들에게 이 복음 전하는 일을 계속하셨다. 19절의 “영으로”가 헬라어 원문에는 관계대명사(en ho. in which)로만 표현돼 있어 그 앞 절에 나오는 선행사(先行詞)의 상태나 영역을 가리켰을 가능성을 문법적으로 가장 많이 지니고 있다.76 그러므로 앞서 밝힌 대로 18절의 “영으로”(in spirit)나 19절의 “영으로”(in which)가 신성(神性)에 속한 예수 그리스도의 신령한 속성이나 성령을 가리킬 수는 있어도 몸을 떠난 영혼의 뜻은 결코 지닐 수가 없다.
그렇다면 19절의 “옥에 있는 영들”은 누구이며 “옥”은 어디인가? 이 곳의 “옥”은 감시를 통하여 속박받는 뜻의 감옥(phulak?)을 뜻한다. 또한 “영들”이란 히브리서 12장 23절의 “의인의 영들”이나 12장 9절의 “모든 영의 아버지”, 또는 민수기 16장 22절이나 27장 16절의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에 나타난 것처럼 살아 있는 사람을 선악간에 하나님과 연관된 영적인 존재로 표현할 때 쓰는 성경의 용법이다.77 전술한 “영”이나 “생명” 모두 하나님의 생기나 성령을 뜻하는 헬라어의 “프뉴마”(pneuma)이거나 히브리어의 “루아흐”(ruach)이다.
이러한 개념에 따라, 신, 구약 성경은 죄에 속박되어 영적인 흑암에 갇힌 인간들을 복음을 통하여 해방시키시는 메시아의 사명을 표현할 때 이러한 표현을 자주 썼다.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間)에서 나오게 하리라”(사 42:7).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서”(시 142:7).
같은 표현이 그리스도의 사명과 연관되어, 이사야 61장 1절과 49장 24, 25절 그리고 누가복음 4장 18~21절에도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 침례 받으신 후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으시고, “흑암에 앉은 백성”과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마 4:15,16) 복음을 전하셨듯이(행 10:36~38), 과거인 노아 당시에도, “의를 전파하는 노아”(벧후 2:5)를 통하여 죄에 속박되어 영적인 암흑에 갇힌 “옥에 있는 영들”인 당시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히 11:7).
이 “옥에 있는 영들”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같은 본문의 다음절에 분명한 설명이 있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벧전 3:20)인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하여 창세기에는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원문에는 사람과 더불어 다투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는 그들의 육체가 됨이라”(6:3)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하여 본문에 나타난 대로, 예수께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복음을] 전파하”신 일이 과거 노아 때의 일이었음을 확실히 하고 있다. 또한 평행 절인 베드로전서 4장 6절에서도, “죽은 자들에게도 [과거에] 복음이 전파되었”다고 재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복음을 듣지 못했더면 변명의 여지가 있겠지만(행 17:30, 31), 이토록 구원의 복음을 듣고도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벧전 3:20)에게는 준엄한 심판이 적용되는 것이다(벧전 4:5,6 ; 벧후 2:5~10).
홍수 전의 사람들이 “노아와 그 일곱 식구”처럼 회개의 복음을 받아들여 순종하고, 육신에 속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켰더라면, “육신[육신적으]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영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벧전4:6)되었을 것이다. 이 곳의 “육체로는”(in flesh . sarki)이나 “영으로는”(ihspirut . pneu-mati)등의 표현이 모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의 경험을 묘사한 평행절인 본문(벧전3:18)에서의 “육체로는(in flesh)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inspirit) 살리심을 받으셨” 다는 말씀과 꼭 같은 것임을 확인해야 한다.
이와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경험이, 그것을 표상하는 침례를 영적으로 경험하는 사람의 생애에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롬6:6-9; 갈2:20). 이러한 경험을 노아는 홍수를 겪으면서 역사에서 체험했기 대문에 노아 홍수는 침례의 영적 표상(表象.type)이 된 것이다(벧전3:21) 그러므로 침례는 단순한 졍결 의식이 아니라, 죗된 몸을 지니고 사는 인간이 성령의 지배를 받는 “선한 양심” 을 가지고 육에 속하지 아니하고 영에 속한 삶을 살기 원하는 간절한 소원과 서약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벧전3:21; 롬6: 8-13 ; 골3:1-10) 이것이 본문의 참된 뜻이요 의도인것이며, 동시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간절한 소원인 것이다.
종교의 차원을 넘어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절대 다수의 신앙이 되어 온 영혼불멸 사상의 근원은 어디이며 그것이 오늘날까지 전수되어 온 역사적 배경은 어떠한가? 일반 종교는 물론 로마 카톨릭 교회, 희랍 정교 그리고 대부분의 개신교와 기타 종파인 몰몬교, 크리스챤 사이언스, 통일교, 낯선 바하이교, 심령 과학으로 불리는 강신술(降神術), 자연신교(自然新敎) 및 무당까지도 공유(共有)하고 있는 이 뿌리 깊고 가지 많은 영혼불멸 신앙의 근본은 어디인가?
“한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히 9:27)음을 대전제로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혼불멸 신앙의 전말(顚末)을 확인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광범위한 자료와 확인을 거쳐 별첨의 도표를 구성했다. 지면을 고려한 간단한 해설을 통해 모든 사람의 영원한 장래와 직결된 이 중대 관심사를 뿌리가 뽑히기까지 숙고하기 바란다.
최초의 치명적인 거짓말
사단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요 8:44)이다.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범죄하도록 유혹할 때 그는 놀랍게도 인간의 본성과 운명에 대한 거짓말로 시작했다. 인간의 귀에 들려 온 최초의 거짓말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는 사단의 속삭임이었다. 이에 앞서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6)는 말씀으로 경고하셨다. “죄의 값은 사망”(롬 6:23)임을 선언하시고, “범죄 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겔 18:4)는 사실을 천명하신 것이다.
죄의 결과인 죽음을 부정하고 인간의 본성을 오해시킴으로 사단은 두려움 없이 죄짓는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사형수가 자신의 생명이 사형장에서 그렇게 비참하게 끝나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다면 그런 끔찍한 범죄를 감히 저질렀을까? 범죄할 경우의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이 말씀과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사단의 거짓말은 인간이 스스로 판단해야 했던 첫번째 운명의 퀴즈였다.
불행하게도 하와는 거짓말을 믿기로 선택했다, 왜냐하면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그의 이성은 죽음을 부인한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그 많은 죽음을 보고도 죽음은 여전히 믿기 어려운 실감나지 않는 현실로 느껴지기 대문이다. 그래도 나만은 죽지 않을 본질을 지닌 것 같은 그 이성의 속임수가 인간의 운명을 영원히 그릇친 것이다
죽음과 인간의 본성에 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무조건 신뢰하지 않고, 단순히 이성의 판단을 따른다면 모든 사람은 오늘날도 여전히 하와처럼 인간이 불멸의 본질을 가진 영적인 존재로 믿게 되는 속임수에 빠진다.
거짓은 믿기가 쉽다. 그리하여 이러한 영혼불멸의 착각은 인류의 보편 신앙이 되어 힌두교, 불교, 자연신교 조상숭배 ,무속신앙둥 고대 동양의 모든 종교와 영혼의 타고난 불멸과 환생(還生)을 믿은 고대 이집트 종교, 그리고 세계 와 우주를 서로 대립하는 두개의 영원한 세력으로 설명한 고대 페르샤의 이원론의 기초를 이루게 된다. 거짓이 진실처럼 보편화된 것이다.
이러한 영혼 불멸의 보편 신앙이, 철학과 문학의 민족인 헬라[희랍]인들에게 전달되면서 새로운 체제를 확립하게 된다. 이미 기원전 9세기의 서사시인인 호머(Homer)와 8세기의 서사시인 헤시오드(hesiod)의 작품에는 몸을 떠난 영혼이 의식을 가지고 활동하는 것으로 소개되어 민간 신앙의 틀을 잡아갔다. 동시에 도표에 열거된 각종 신비 종교의 의식 가운데 몸을 떠나 존재하는 영혼과 윤회(輪廻) 와 환생(還生)사상이 만연하기 시작했다.78
기원전 6세기의 철학자 피타고라스(Pythagoras)는 영혼불멸에 기초하여 윤회 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했다.79 이렇게 철학의 옷을 입은 영혼불멸 사상은 기원전 5세기에 이르러 이집트를 답사하며 이를 확인한 소크라테스(Socrates)의 개인 신앙이 되기에 이른다. 그는 죽음을 감옥과 같은 육신에서 불멸의 영혼이 해방되어 영원한 “이데아”(idea)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으로 가르쳤고 자신이 그것을 실증하듯 평화롭게 독배를 들고 죽었다.
소크라테스 인상적인 죽음에 심오한 충격을 받은 젊은 수제자 플라톤(Platon . 427-347 BC)은 마침내 영혼불멸 사상의 가장 열렬한 주창자가 되었으며, 그의 논집(論集)인 파에돈(Phaedo)은 영혼불멸 사상의 교과서가 되었다. 그는 10년간 이집트를 비롯한 국내외 각지를 여행한 후 정립한 지신의 철학적 신념을 가르치기 위하여 중세 대학의 원조(元祖)가 되는 최초의 학원, 곧 “아카데미”(Older Aavademy)를 세워 자신은 고대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가 되었다. 그의 “아카데미”는 서기 529년 동로마 황제 저스티니안(Justinian)에 의하여 폐쇄되기까지 서방세계의 정신문화를 좌우하는 요람이 되었다. 인간의 영혼에 간한 플라톤의 사상은 성경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집트의 영혼불멸 신앙과 고대 헬라의 신비주의에 기초를 둔 이교 사상임을 「유대 대백과 사전」은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영혼불멸의 신앙은 헬라 사상, 특별히 바벨로니아와 이집트 사상을 이상하게 혼합한 오르픽(Orphic)과 엘루시안(Eleusian) 신비종교를 통하여 그것을 받아들인 주창자인 플라톤의 철학과의 접촉에 의하여 유대인에게 도입되었다.”80
이러한 사실은 기원전 5세기 헬라인으로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투스(Herodotus)에 의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이집트인들은 사람의 영혼은 불멸이라고 주장한 첫번째 사람들이었다...이 견해는 각각 다른 때에 걸쳐 어떤 헬라인들에 의하여 자신들의 사상으로 채택되었다.”81
이렇게 플라톤에 의하여 철학을 종교적 신앙으로 자리를 굳힌 영혼불멸 사상은 플라톤의 제자요, “학문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에 의하여 견해의 차이를 일으켜 여러 갈래의 반응이 나타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렉산더 대왕이 북아프리카에 이룩한 최대의 헬라 문화의 중심지인 알렉산드리아에는 고대 이집트 종교를 흡수한 플라톤의 철학에 동양의 신비 사상을 혼합한 신플라톤철학(Neoplatonism)이 기원전 3세기경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로마제국 전역을 풍미(風靡)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당시 유대인들의 최대 해외 본거지였던 알렉산드리아에 거주한 유대인들은 이러한 헬라 사상과 문화의 거센 조류에 휩쓸려 구약 성경에 뿌리박은 조상들의 신앙을 서서히 포기하고 제설 혼합(諸設混合)의 종교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이러한 영향은 유대들의 신앙 전반에 미쳤으며, 영감 받은 성경(正經)이 아니라 인간의 작품들인 외경(外經)과 위경(僞經)이 이 때에 쏟아져 나왔고, 말썽의 근원이 된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등의 빗나간 신앙도 이 때에 형성되었다.82
몸과 영혼을 분리시킨 이원론(二元論)과 영혼불멸 사상에 근거한 플라톤의 헬라 사상을 신 플라톤 주의의 형태로 유대교에 끌어들이는데 앞장선 사람이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 철학자 필로(Philo . 20B.C -A.D 47)였다. 그는 플라톤의 헬라 사상과 구약 성경의 가르침을 뒤섞어 헬라 철학에 물든 이교적인 유대교로 분장시켰다.83 최대의 유대 역사가인 1세기의 요세푸스(Jese-phus . A.D 37-100)도 이미 그의 영향 아래 있었다.
헬라의 문화와 철학, 종교까지도 그대로 저수한 로마제국은 이미 헬라의 영혼불멸 사상에 젖어들어.철학자요 정치가인 키케로(Cicero . 106-43 B.C)는 영혼의 선재를, 시인인 버질(Virgil . c, 70-19 B.C)과 정치가요 철학자인 세네카(Seneca . 4 B,C-A.D 65 )등도 영혼불멸 사상을 말과 글로 보급했다.
로마 제국 헬라 문화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는 유대교의 해외 본거지였을 뿐만 아니라 초대 그리스도의 오본산 (五本山)중의 하나로 최대의 신학교까지도 그곳에 있었다. 이 신학교에서 교장을 지낸 3세기초의 천재적인 교사 오리겐(Origen . c. 185-254)은 헬라 사상을 신플라톤주의 형태로 받아 들여 이를 그리스도교에 소개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하나님 자신이 영원하고 불멸인 것처럼 [인간의] 영혼도 불멸이다.”라고 선언하고 자신은, “영혼불멸을 믿는 진정한 플라톤 주의자”라고 자처했다.84 그는 영혼의 선재와 이교적인 윤회사상까지 받아들여, “전생에 지은 죄 때문에, 선제한 영혼이 물질적인 몸에 갇혀서 형별을 받는 것이며,85 행위에 따라 천사들도 사람이나 악령이 될 수 있고, 다시 사람이나 천사로 올라갈 수 있다”는 해괴(駭怪)한 주장까지 내놓았다.86
오리겐과 같은때, 같은 북아프리카의 칼다고 출신의 라틴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 . c. 160-240)은 오리겐의 성경 해석법은 반대했으면서도 플라톤의 영혼불멸은 주장하고,87 한 걸은 더 나아가 의인의 영혼이 영원한 복락을 누림같이 악인의 영혼은 지옥불에서 영원히 타기만 하고 사루어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영원지옥(永遠地獄)”을 최초로 주장하고 나셨다.88 따라서 죄의 결과인 사망이란 “영원한 불행”을 뜻하고 성경이 말한 “파멸”이나 “소멸” 이란 말은 “고통”이나 “고뇌”를 뜻하는 것이고, 지옥은 죽어 없어지는 곳이 아니라 영원히 죽어 가는(Perpetuallly Dyihg) 장소라고 가르치기 시작했다.89
그러므로 오늘날 영혼불멸을 전제로 영원지옥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그들의 주장이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터툴리안의 이교 사상에 의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터투툴리안과 같은 라틴 교부로 역시 같은 복아프리카의 히포 출신인 최대의 신학 교부 어거스틴(Augustine . 354-430)은 여러 면에서 최대의 교부였다. 그의 가르침은 천년 이상 계속된 교권주의적인 중세 카톨릭 교회의 교리적 기초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33세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까지 9년간은 페르샤의 이원론과 영지주의를 혼합한 마니교(Mnichaeism)신자였고, 그후 신플라톤주의를 열렬히 신봉했던 어거스틴은 평생 그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플라톤의 영혼불멸 사상을 철저하게 신봉하면서도 그것을 성경과 일치시키려는 무리한 시도를 함으로써 혼란을 일으켰다.
“그는 여기에서 그 이후의 칼빈처럼 일관성이 없다. 하나님 앞의 인간을 말할 때 는 사람의 불멸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유래되며 의존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후의 형벌에 관하여 말할 때 그는 마치 영혼불멸을 그이상의 비평이나 논란의 여지가 없는 기점(基点)인 것처럼 논증한다.90
그는 플라톤의 “영혼불멸” 사상과 터툴리안의 “영원지옥설”을 확증하는 한편, “개개인의 영혼의 운명은 죽는 즉시 결정됨과 내세에는 정결케하는 고통이 있음이 절대로 확실함”91을 가르쳤다. 어거스틴의 이러한 연옥의 개념은 “플라톤의 그치지 않는 고통의 처소의 개념을 따른 것”92이다.
이로 인하여 중세 카톨릭 교회의 연옥에 관한 교리의 기초가 놓였고, 대교황 그래고리(Geroge the Gerat)에 의하여 서기 582년경 교리로 인정되어, 기상천외(奇想天外)한 연옥의 신앙이 생겨난 것이다.93 이상에 기록된 영혼불멸의 주창자들, 즉 터툴리안, 오리겐, 어거스틴등이 모두 헬라의 영혼불멸 사상의 본거지인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한 북아프리카 지방의 교부들임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처럼 플라톤의 사상에 한껏 물든 어거스틴에 의하여 확인된 영혼불멸 사상과 영원지옥, 연옥의 신앙은13세기 스콜라 철학자요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 1225-1274)에 의하여 중세 카톨릭교회의 확고한 교리로 집대성되었다.94 그리고 50년후 단떼(Dante Ahighieri. 1265-1321)는 그 유명한 신곡(神曲)을 써서 이러한 영혼불멸 사상에 입각한 지옥, 연옥, 천국을 민속 신앙으로 소개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처 성경에는 전혀 근거가 없는 한낱 이교의 철학 사상에 불과했던 영혼불멸 신앙이 그리스도교안에 넓고 깊게 뿌리를 내리게 되자, 종교개혁 직전에 열린 제5차 라테란 종교회의의 제8회기와 연관시켜 1513년 12월19일 교황 레오10세(Leo X)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교서(敎書)를 반포하기에 이르렀다.
“어떤 사람들이 이성적인 영혼의 속성에 관하여 그것이 [죽음과 더불어] 죽게 된다 고 감히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는 거룩한 공회의 동의로서, 영혼은...불멸이라고 한 교황 클레멘트 5세(Clementv) 종규(宗規)에 따라, 지성적인 영혼은 죽게 된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정죄하고 배척하여, 이와 같은 그릇된 주장에 집착하는 모든 사람을 멀리할 것과 이단으로 징벌하여야 할 것임을 명하는 바이다.”95
이 때부터 이교적이요 비성서적인 영혼불멸을 반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공식적으로 이단이 된 것이며 가혹한 책벌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영혼불멸을 반대하고 조건적인 불멸 신앙을 고수하는 안식일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느 편에 속해 있는지를 놀라움을 가지고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이교적인 영혼불멸 사상이 중세 교회의 공식적인 신조가 된 분위기에 젖으며 성장한 “그 시대의 아들”이었던 프랑스의 젊은 카톨릭 신자 칼빈은 개신교 신앙으로 공식적인 개종을 한지 2년만인 1534년 25세 되던 해 영혼불멸을 반대하고 죽음을 잠과 같은 무의식으로 가르친 재세례파 그리스도인들을 신랄히 비평하고 이단으로 정죄하는 최초의 신학 논문인 「혼수론」(魂睡論)을 써서 오늘날 일반 개신교회들의 영혼불멸 신앙을 정립시키는 불 행한 계기를 만든 것이다.
아직도 더 깨달을 것이 많았던 나이와 시대의 제한을 극복하지 못한 형편에서 있을 수 있는 인간적 과오이기는 하지만, 그 결과와 영향은 참으로 회복이 불가능할 만큼 심대(甚大)한 것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칼빈의 가르침은 개신교 용어로 표현된 중세 교회의 이교 적인 신조를 약간의 수정을 거쳐 확인한 셈이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칼빈에 앞서 성서에 입각한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교수 위클리프(John Wychiffe), 틴데일(William Tyndale), 독일의 루터(Martin Luther)등이 이미 중세 교회의 영혼불멸설 교리가 이교적인 사상임을 공공연히 지적하고 나선 이후임을 생각할 때, 종교개혁의 주역인 칼빈이 취한 이교적이요 비성서적 입장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것이다.
칼빈의 이러한 영혼불멸 사상은 도대체 어디에 그 연원(淵源)을 둔 것인가? 대답은 분명하다. 신학적이 천재로 꼽히는 칼빈의 역작이요, 개혁 교리의 골격인 「그리스도교 강요」(the lnstitutes of te Chrisfistisu Religion)에는 다음과 같은 진술이 있다.
진술 칼빈.
“이교도 철학자들로부터 영혼의 정의(定義)를 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들 가운데 거의 예외적인 한 사람 인 플라톤은 영혼은 불멸의 본질이라고 바르게 단언했다”96.
상기한 「그리스도교 강요」[제1권 제15장 6항]의 “영혼과 그 기능”을 다룬 부분에서 칼빈의 진술이 거의 플라톤의 사상에 근거했음을 출처(出處)를 밝힌 난하주(欄下註)를 살펴보고 확인해 보기 바란다,97 헬라의 영혼불멸 사상을 종교적 신념으로 정립시킨 플라톤의 「파에돈」(Phaedo)과 「파에드러스」(Phae-drus)등이 성경을 대신했음을 한 눈에 보게 된다. 다음은 칼빈의 영혼에 대한 정의이다.
진술 칼빈
“사람의 신(神. spirit) 혹은 영혼(soul)은 몸과 구분되는 본질이다....몸이 죽은 후 영혼은 감각과 지성을 갖춘 채 살아 있다. 여기에서 내가 영혼의 불멸 외에 어떤 다른 것을 단언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98
짧은 표현 속에 칼빈의 영혼불멸에 대한 헬라적인 신앙이 너무나 뚜렷이 드러나 있다. 다음은 「파에돈」(Phedo)에 표현된, 죽음에 대한 플라톤의 사상이다.
진술 플라톤.
“죽음이란 몸이 영혼으로부터 분리되어 몸 따로 존재하고, 영혼이 몸에서 분리되어 영혼 따로 존재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99 우리가 몸에 의해 방해를 받고 있는 한, 그리고 우리 영혼이 그토록 큰 악에 의하여 더럽혀져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충분히 얻을 수가 없다...만약에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한 분명한 지식에 도달해 보고자 한다면, 우리는 몸에서 분리되어야 한다. .. 만약 살아 있는 동안 지식에 보다 가까이 이르기를 바란다면 보다 많이 육신과 연관된 것을 피하여 ... 신이 우리를 그 영향에서 풀어 줄 때까지 육신의 더럽힘에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100
이상에 기록된 바 죽음에 대한 플라톤의 사상과 「혼수론」에 표현된 칼빈의 그것을 다음의 인용문에서 읽으며 대조해 보자.
“만약 몸이 영혼의 감옥이라면, 만약 땅위의 거처가 일종의 속박이라면, 영혼이 이러한 감옥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때 이러한 속박으로부터 풀려날 그 때의 영혼의 상태가 어떠하겠는가? ...그런 다음에야 이모든 더러움을 떨쳐 버린 영혼은 참으로 신령하게 되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게 되고, 더 이상 육신의 폭군에게 굴복당하지 않게 됨으로써 모든 생각을 하나님께 고정시키고 고요한 중에 거하게 되는 것이다.”101
칼빈의 이러한 진술을 검토한 복음주의 학자는, “칼빈의 마음은 갑자기 궤도를 바꾸는 듯하여 빌립보서에서 시작한 것을 [플라톤의] 「파에돈」에서 끝낸다.”고 말한 후 “손은 칼빈의 손이지만 목소리는 플라톤의 목소리이다.”102 라고 개탄하고 있다. 근원이 같기 때문이다.
칼빈의 영혼물멸 신앙과 영원지옥 신조, 그리고 개신교의 연옥에 해당하는 중간 상태에 관한 사상은 플라톤의 사상을 이어받은 터툴리안이나 어거스틴의 신학을, 성경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칼빈 자신의 말대로, “전통에 의하여 전수된 것”103 임을 쉽사리 확인할 수 있다, 그리하여 영혼불멸에 관한 플라톤의 사상은 어거스틴에게 전수되고 그것은 또 다시 중세 카톨릭 교회와 칼빈에게 그대로 전수되어 결국 영혼 문제에 관한 한 값비싼 종교개혁은 무효가 되고 만 것이다.
“어거스틴은 중세기 서구 신학의 아버지로 중세 교회 중말신앙의 창시자이기도 한데, 여러 면에서 칼빈의 종말신앙도 여기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104
“칼빈은 어거스틴의 전통 위에 단호하게 섰으며, 사람, 죽음, 불멸에 관한 그의 견해에서 더욱 그랬다.”105
살펴본 대로, 칼빈이 중세 교회의 영혼불멸과 연옥을 강력히 부인하고 나선 위클립. 루터. 틴데일, 제세레파 개혁자들의 깨우침을 무시하고 어거스틴을 통하여 이어진 플라톤의 이교 적인 영혼불멸 사상을 개신교 전반에 계승시킨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만약 칼빈만 이들과 협력했더라며 영혼불멸, 영원지옥, 그리고 영혼이 간다는 천당, 지옥, 연옥에 관한 중세 교회의 가르침은 종교개혁과 함께 성경의 참 빛을 찾았을 것이다.
“어느 다른 사람 이상으로 칼빈은 영혼과 지옥에 관한 전통적인 이해 위에 개신교의 인가(認可) 도장을 찍었다. 그의 영향력을 그후의 신학 역사에서 보게 된다.106
분장 서두의 비평에서 탁명환씨는 이단 판별 기준을 설정하기 위해 정통 기독교 진리의 기준을 세우면서 아래와 같이 정통 신조를 진술하고 있다
진술 탁 명환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인간도 육은 죽어도 영혼은 영원하다.”30
이것이 참으로 이단을 판별하는 정통 신조가 될 수 있는가? 영혼불멸 사상의 뿌리를 확인한 지금 이러한 진술의 연원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다음은 초기 그리스도교에 헬라의 영혼불멸 사상은 몰론 영혼 선재(先在)와 이교적인 윤회사상까지 소개한 3세기초의 알렉산드리아 출신 교부 오리겐의 진술이다. 다시 인용하여 비교하고자 한다.
진술 오리겐
“하나님 자신이 영원하고 불멸인 것처럼 [인간의] 영혼도 불멸이다.”108
그것은 자신을 “영혼불멸을 믿는 진정한 플라톤 주의자”109로 자처한 오리겐의 이교 신조이지 성경에 입각한 정통 신조는 결코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극소수의 개신교회와 신학자들을 제의한 절대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선택의 기회나 재고의 여지도 없이 바벨론의 독주(계17:1-5)인 영혼불멸의 신앙을110 무심히 마시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 영혼불멸의 취하게 하는 술잔은, 도표에 명시된 대로, 심령 과학으로 자처하는 강신술 사들과 무속 신앙을 태연히 행사하는 무당들, 무든 이교도들까지 분별없이 함께 나누고 있는 비성서적이고 반 그리스도교 적인 혼미(昏迷)하게 하는 그릇된 가르침인 것이다
7. 조건적 불멸과 악인 소멸 신앙의 전말
인간의 종말에 관한 두 가지 신앙
고대 이집트 사람들과 플라톤으로 대표되는 헬라 사상, 어거스틴으로 이어지는 중세 교회, 그리고 칼빈에 의하여 정립된 개혁 신앙은 다같이 영혼을 몸을 떠나 존재할 수 있는 불멸의 본질로 간주했다, 따라서 구원받은 의인이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것처럼, 구원받지 못한 악인은 지옥 불 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한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방금 이러한 영혼 불멸이나 영원지옥 신앙이 성경에 근거한 진리가 아니라, “거짓의 아비”(요8:44) 인 사단의 최초의 거짓말(창3:4)에 기초한 것임을 성경과 역사적 증거로 확인했다.
우리는 앞서의 연구를 통하여, 인간에게는 처음부터 불멸의 속성이 주어진 바가 없고,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조건으로 영생이 보장되었음을 성경에서 확인했다. 따라서 불순종으로 인한 범죄는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여“죄의 삯은 사망(롬6:23)임을 경험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조건으로(요3:16, 36; 11:25), 예수 재림 시에야(요일5:11; 고전15:51-53) 비로소 썩지 아니할 생명을 부여받을 것(롬2:7; 딤후1:10)임을 약속 받았다. 반대로 끝까지 복음을 거절하고 불순종을 고집한 사람들은 마지막에 있을 심판을 거쳐, 재림후 천년 뒤에 있을 둘째 부활로 주어진 육신의 몸으로 그 결과가 영원한 심판의 불에 사루어져 없어짐으로 영원히 소멸된다는 사실도 아울러 확인했다(계20:12-15; 말4:1, 2; 시37:9-11; 롬6:23). 이러한 조건적 불멸과 악인 소멸의 신앙의 근원은 어디에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전수되어 왔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그 기초를 확인하는 것은, “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마7:24)의 신앙을 드러낼 것이다.
“정녕 죽으리라”- 구약 성경의 가르침
조건적인 불멸과 영혼 멸절의 신앙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6, 17)는 하나님의 말씀에 드러나 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범죄하지 않으면 불멸의 영생을 보장받게 된다는 조건적 불멸인 것이다.
반대로 불순종하여 범죄하면 죄의 값은 사망에 이른다는 악인 멸절(滅絶)의 선언인 것이다. 이러한 신앙은 구약의 모든 부조들과 선지자들에 의해 확고하게 옹호되었으며, 구약 성경의 일관된 신앙이다. 이에 관하여 「유대 백과사전」에는 이렇게 진술하고 있다.
“육신이 해체된 뒤에도 영혼은 계속 전재한다는 신념은 단순한 신앙이라기 보다는 철학적이나 신학적인 사변(思辨)에 불과한 것이며, 따라서 성경 어디에도 분명히 가르쳐진 데가 없다.”111
영혼 불멸 사상이 구약 성경에 결코 용납될 수 없었음이 같은 책에 다음과 같이 진술되어 있다.
“[죽은 후에도] 영혼이 계속적인 생명을 누린다는 신앙은 원시적인 조상숭배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도 실패한 바 있는 강신술(降神術. 삼상28:13; 사8:19)의 기초를 이루었던 것인데, 생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믿는 믿음에 적대(敵對)되는 것으로 선지자들과 치리자들에 의하여 좌절당하고 억압을 당했다.”112
다시 말하면 구약 성경은 영혼 불멸 신앙을 사단의 역사로 간주하고 이단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장 혹독한 방법을 써서 근절시키도록 촉구했다(례19:31; 20:6, 27; 삼상28:9; 대상10:13; 사8:19)
몸의 부활-신약 성경의 가르침
이미 살펴본 대로, 신약 시대에 이르러 예수님은 물론 모든 사도들과 신약 성경 전체는, 당시에 편만했던 헬라의 영혼 불멸 사상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으며, 유대교 내부까지 깊이 침투해 있던 그릇된 내세관을 정면으로 배척했다.(마22:23-33; 행4:2; 23:8).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할 전함을 인”(행17:18)하여 변론이 일어났음을 주목하라. 예수님과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마지막 심판 후 재림 때에 있을 몸의 부활로 인한 불멸이었지, 영혼의 불멸이 아니었다(사26:19 ; 요11:25, 26; 고전15:52-54; 살전4:16). 「영혼 불멸과 죽은 자의 부할」이란 논문을 발표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20세기를 대표하는 스위스의 신학자 쿨만(Oscar Cullmann)은 그의 논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초대 기독교적 부활 신앙은 영혼 불멸에 대한 헬라적인 관념과 조화될 수 없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신약에서는 언제나 죽음을 궁극적인 원수라고 생각함으로 죽음에서 친구를 찾았던 헬라 사상과는 극적인 대립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바울은, ‘오 죽음아 네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 쓰지 않았는가?”113
죽음을 친구처럼 다정하게 대했던 소크라테스나 환희에 찬 영혼이 해방으로 받아들인 칼뱅의 사상은114 모두 신약 성경의 가르침에 전적으로 위배된다. 쿨만은 자신의 깊은 연구를 통해 이렇게 단언하고 있다.
“...초대 그리스 도인들에게 있어서 영혼은 본질적으로 불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서만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이, 불멸의 것이 된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115
초대 교부들의 조건적 불멸 신앙
이러한 사도 교회의 정통적인 부활 신앙. 곧 조건적인 불멸 신앙은 사도들의 뒤를 이은 사도 교부들에 의하여 거의 일관성 있게 유지되었음을 보게 된다. 사도 바울과 직접 친교를 나눈 것으로 알려진 로마 교회의 감독 클레멘스(Clement of Rome), 베드로의 후계로 알려진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lgnatius), 요한의 제자로 알려진 서머나의 감독 폴리카프(Polycarp)를 비롯하여, 당시의 문서들인 디다케(Didache)라는 교훈집, 바나바(Barna-bas)서신, 헤르마스(Hermas)의 목양서 등에는 영혼의 불멸이 아니라 육신의 부활을 강조하고 악인의 영원한 소멸을 진술하고 있어 영혼 문제에 관한 한 사도들의 신앙이 속(續)사도 시대에도 애써 유지되고 있음을 엿보게 된다.116
서기 150년부터 325년 역사적인 니케아 세계 종교회의가 열리기까지의 시대를 니케아 전(前)시대(Ante-Nicene Period)라고 하는데, 이 시대의 시작과 함께 로마제국에 편만했던 헬라의 영혼 불멸 사상이 본격적으로 그리스도교안으로 침투하기 시작한다. 이 기간 동안 사도 바울도 경계했던 거짓된 종교철학인 영지주의(靈知主義)가 들어오고(딤전 4:7; 6:20), 어거스틴이 몰두했던 신플라톤 사상도 넘쳐 왔다.
“점차적으로 그리스도인 학교들 안에 헬라의 영향이 압도했으며, 교회안에도 영혼 불멸의 사상이 오랫동안 내세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대신했다.117
이러한 와중에서도 믿음을 위해 순교한 저스틴 마터 (Justin Martyr . c. 106-165)는 조건적 불멸과 악인의 소멸을 성경에 일치하게 논증했으며,118 그의 제자인 타티안(Tatian 110-172), 폴리카프의 제자인 안디옥의 데오필러스(Theophilus d. 180사망)도 같은 신앙을 고수했다.119
특히 지금의 프랑스 남부 고을 지방의 감독이였던 이레니우스(lrenaeus . 130-202)는 탁월한 종말 신학을 가지고 영지주의와 플라톤의 영혼 불멸의 사상, 영원 형벌 신앙을 논박하여 조건적 불멸 신앙의 2세기 챔피온이 되었다.120
헬라 철학의 본거지가 된 북아프리카 출신의 교부들, 즉 터툴리안과 오리겐 등의 영향과 그리스도교 신앙에 깊은 뿌리를 내린 신플라톤 사상이 영혼 불멸과 영원 지옥의 신앙을 공고히 하는 분위기에서 역사적인 니케아 종교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옹호하여 정통 신앙의 기수가 된 아다나시우스(Athanasius 297-373) 감독이, 이미 시대의 분위기의 영향을 받은 듯 훨씬 약해진 논증으로 성경에 입각한 조건적인 불멸을 옹호한 것을 마지막으로 대세는 기울어졌다.121 이러한 때에 나타난 탁월한 신학 교부 어거스틴은 플라톤의 영혼 불멸 사상과 터툴리안의 영원 지옥 신앙, 그리고 이교 적인 연옥 신앙을 정립시켜 중세기 교회에 전수함으로써, 그 이후 거의 천년간 진실을 밝히는 소리는 거의 잠잠했다.
중세기 조건적 불멸 신앙의 기수들
12세기에 접어들면서 다시 성경적인 조건적 불멸을 옹호하는 음성이 가냘프지만 다시 들리기 시작한다. 12세기의 가장 탈월할 신학자로 알려진 메돈(Methone)의 헬라 감독 니콜라스(Nicholas)가 일어나 신플라톤 사상을 공박하기 시작했고 , 중세기를 대표하는 몇 유대인 학자들. 곧 마이몬(Moses Beu Miemon . 1131-1204), 킴치(David kimchi . 1160-1232), 아브라바넬(Judah Abravanel. 1437-1508) 등이 영원 지옥을 반대하고 나섰다.122
12세기 이후 성경이 진리를 고수하며 알프스 산중에 칩거하던 종교개혁의 선구자들인 왈덴스인(the Waldenses)은 연옥의 교리가 이교 사상임을 지적하고 죽은 자들을 위한 미사들을 반대함으로서 혹독한 핍박을 받았다.123
14세기가 밝아오자, “종교개혁의 새벽별”로 불리우는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교수 위클리프(John Wycliffe . 1324-38)가 과감히 일어나 연옥의 거짓됨과 죽음은 잠과 같은 무의식 상태임을 성경을 근거로 강력히 논증했다.124
종교 개혁과 조건적 불멸 신앙의 부할
마침내 16세기에 접어들면서, 오랫동안 중세 교회에 의하여 억눌렸던 신앙양심은 폭발하여 1517년 독일을 시작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난다. 종교개혁의 큰 별 루터는,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과 은혜로 받게 되는 구원을 선포했으며, 인간의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만이 신앙의 기준이 됨을 선언했다. 이교적인 거짓에 불과한 연옥의 교리로 사람을 위협하여 면죄부 판매로 수익을 올리던 중세 교회의 타락이 모두 거짓된 영혼불멸과 영원형벌 신앙에 근거했음은 명심할 일이다.
루터는 1520년 11월 29일에 발표한 그의 41개조 신조에서, “영혼이 불멸이라는 신조는 터무니없는 다른 견해들과 함께 로마교회의 교령집 쓰레기 더미에서나 별견되어지는 것”125 이라고 논박하고 있다.
“루터는 성경적인 근거로써 영혼의 잠을 신조로 삼았으며, 그것은 연옥과 성자 숭배를 반박 하는 데 썼고, 그 신조를 죽는 순간까지 유지했다.”126
루터는 죽음을 잠으로 비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잇다.
“성경은 성도들의 죽음을, 마치 그들이 쓰러져 잠들었다가 아버지에게로 모여들듯이, 그들이 그리스도안에 있는 믿음과 위로로 죽음을 정복하고 죽음으로 그들보다 앞서간 성도들과 함께 부활을 기다리는 것으로 말하고 있으며 성경은 어디에서나 이러한 위로를 베풀고 있다.”127
때마침 스위스와 독일 등지에서는 영아세례를 비성서적인 것으로 반대하고 성경적인 중생과 물에 잠기는 성인 침례를 강조한 재세레파(Anabaptists) 신자들이 일어나 종교개혁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은 대개 다섯부류로 구분되었는데 이들 중에는 광신적이거나 극단적인 부류도 있어 지탄을 받았으나 다수는 성경적인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건전한 재세례파 신자들은 철두철미한 성서적인 신앙을 실천하면서 영혼불멸을 반대하고 죽음을 무의식적인 잠으로 확신하고 부활을 소망으로 강조했다. 이들은 신구교 모두에 의하여 가혹한 핍박을 받았으며, 특히 칼빈은 「혼수론」이란 논문까지 써서 이들을 이단으로 공박했다. 아이러니칼한 것은 칼빈의 아내 이델레타(ldelettade Bure . 1503-49)는 재세례파 출신이었는데, 임종시 칼빈이 가르쳐온 아브라함의 품이 아니라 끝날에 있을 부활의 소망을 고백하면서 죽었다는 인상깊은 사실이다.128
부활 신앙과 영혼 불멸 사상의 대결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출신이 탁월한 언어학자요 영국을 대표하는 종교 개혁자인 틴데일(Willism Tyndale . 1490-1536)은 최초로 헬라어 신약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까닭으로 화형을 당한 위대한 순교자이기도 하다. 신, 구약 성경을 해박한 원어에 대한 지식을 통하여 깊이 이해한 텐데일은 다니엘서와 요한 계시록을 근거로 중세 교황권을 적그리스도로 단정함과 동시에 중세교회가 가르쳐온 영혼불멸, 죽은 뒤 영혼이 간다는 그런 천국, 지옥, 연옥을 모두 부인하고, 재림시에 있을 부활을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소망으로 확인했다, 그는 반대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논리적으로 반문했다.
“그대들은 몸을 떠난 영혼들을 천국이나 지옥, 연옥에 둠으로써 그리스도와 바울이 입증한 부활의 논증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참된 믿음은 부활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것을 매시간 바라보도록 깨우치고 있다. 이교의 철할자들은 이것을 부인하고 영혼은 언제나 살아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영적인 교리와 철학자들의 인간적인 교리를 함께 결합시켜 놓았으나 이것들은 서로 어긋나기 때문에 일치할 수가 없고 그리스도인 한 사람 안에서 성령과 육신이 더이상 역사 할 수가 없다... 내게 다시 말해주시요, 만약 영혼들이 하늘에 있다면 그들이 왜 천사들의 경우와 같지 못한가? 그런 뒤에 [새삼스럽게] 부활이 있어야 할 까닭이 무엇인가?”129
결국 영혼불멸 사상과 부활의 신앙은 논리적으로 공존할 수 없다는 결론이며 서로 어긋나는 교리를 동시에 유지하려는 무리한 시도 때문에 이 엄청난 모순과 혼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죽는 즉시 영혼이 천국이건 지옥이건, 게다가 연옥까지 모두 가버리고 나면,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때인 재림은 무슨 소용이 있고 부활은 무엇 때문에 있어야 하는가? 솔직히 반문해보라. 1532년 루터는 전도서 주석을 써서 사람이 죽으면 절대 무의식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강력히 논증하고 (전9:4-6; 3:19-21), 이를 근거로 중세 교회의 연옥 교리와 죽은 성자 숭배를 논박했다. 그러나 2년후인 1534년 칼빈은 「혼수론」이라는 논문을 써서, “죽음의 온 밤을 통하여 영혼은 행복을 누리기에 필요한 모든 의식과 감각을 가지고 깨어 있다”120 는 비성경적 주장을 내놓음으로써 모처럼 재상하고 있던 성서적인 조건적 불멸 신앙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리고 죽음을 무의식적인 잠과 같은 것으로 가르치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정죄함으로서, 심지어 루터의 제자들까지도 “자신들이 이단이 될 것에 대한 어리석은 염려” 때문에 오히려, “자기 선생의 가르침을 옹호하는 대신, 자기 선생님은 결코 그런 교리를 고수하지 않았던 것으로 증명하려는 입장에 자신들을 두었다.”131는 18세기의 성공회 학자요 사제인 블랙번(Francis Blackbu-rne)의 안타까운 진술이다.
칼빈은 자신이 주도한 그 이후의 종교개혁 과정에서, 플라톤과 어거스틴의 영혼불멸 사상과 영원 지옥 신앙을 끝까지 고수하였다. 그리고 중세 교회의 연옥을 대신하여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해석에서 드러난 것과 간은 애매한 중간 상태의 교리를 소개함으로써 실제로 영혼문제에 관한한 종교개혁을 무용하게 만들었다.
부활 신앙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
이러한 종교적 분위기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로마카톨릭 교회와 결별한 영국교회는 오히려 개혁 교리의 영향을 받으며,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을 따라 영혼불멸을 부인하고 조건적인 불멸을 고수하는 다수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투옥하거나 화형에 처했다. 그들 가운데 엘리자벳 여왕(Elizabeth 1) 때인 1575년 7월 테르우르트(Hendrik Terwoort)와 피터스(Jan Pieters)가 화형에 처해졌고, 제임스 1세(Jaames I)때인 1611년 4월 레가트(B. Legatt)와 위트만(Edward Wightman)이 역시 같은 이유로 화형을 당했다.132 앞의 두 사람이 죽기전에 엘리자벳 여왕에게 재가해 주기를 요청했으나 거절 당한 13개조의 신앙고백 가운데 하나인 제12조의 신앙고백은 아래와 같다.
“우리는 이사야 26장19절, 요한 복음11장 25절, 다니엘12장2절, 요한복음5장 25절, 고린도전서 15장 22절, 데살로니가 전서 4장16절에 기록된 대로 죽은 자의 부활을 믿습니다. 우리는 그의 천사들과 함께 구름을 타고 오실 때 죽은 자로부터 자신의 몸으로 일어날 것이며, 욥기19장25절, 아사야26장 19절, 고린도전서15장, 그 후에는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34절, 로마서2 장6절.133
이토록 고결한 성서적 정통 신앙이 어째서 화형에 처해질 이단의 신조가 되었는가? 종교적 편견에 사로잡힌 다수(多數)는 참으로 참으로 맹목적이기 때문에 더욱 무서운 것이다.
빛을 이기지 못한 어두움
17세기초에 이르러 재세례파의 교리와 회중교회의 조직을 겸한 침례교회가 영국과 화란에서 형성되었다. [일반 침례교]로 알려진 이들은 칼빈의 예정설 대신 아르미니우스(Arminius)의 예지 예정을 믿고, 인간의 타고난 불멸을 부인하고 부활 때까지는 무의식임을 믿었다.134 1660년 2만명 이상의 침례교인들이 서명한 25개조 신조에는 이러한 조건적인 불멸 신앙이 뚜렷이 반영되어 있었다.135
이와같이 재세례파와 연결된 [일반 침례교]의 신조를 통하여 다시 불붙기 시작한 조건적 불멸 신앙은 “실낙원”(失樂園)의 저자이기도 한 위대한 학자 시인이요, 정치가인 밀톤(John Milton. 1608~74)과136또 다른 청교도 학자 시인인 위더(George Wither. 1588~1667)에 의하여 번져 나갔다.137 이와 같은 신앙은 의학적으로 세계적인 공헌을 한 학자요, 제임스 1세, 찰스 1세와 2세 등 3대를 이은 영국 왕실의 궁중의사며 신학자요, 목사이기도 한 챔벌린(Peter Chamberlen .1601-1683)에 의하여 아름답게 고수되었다. 그는 재세례파 출신의 침례교인으로 궁중의사를 지내면서 한 때 목사직까지 수행하였다. 깊은 성경 연구 끝에 성경상의 참 안식일은 제칠일인 것을 깨닫고 1651년부터 죽기까지 32년간 제칠일 안식일을 준수하였고, 4년간은 안식일을 준수하는 제칠일 침례교의 목사직을 맡기도 했다.138 안식일 준수와 함께 죽음을 무의식적인 잠으로 믿으며 부활을 소망으로 삼은 것이 그의 글과 말에 역력했다.139
같은 때에 나타난 독일의 학자로 헬라어 신약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스테그만(Joachim Stegmann), 청교도 학자인 홈즈(Nathanael Holmes), 캠브리지 대학의 이름난 학자인 바로우(lsaac Barrow), 당대를 대표하는 그리스도인 철학자 록크(John Locke)등이 모두 17세기를 장식하는 조건적 불멸을 옹호한 지성적 투사들이었다.140
18세기에 들어서서도 오류를 제치고 인간의 영원한 운명에 관한 진실을 파헤치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성공의 목사요, 역사가인 블랙번(Feances Blackbuene . 1704-87)은 캠브리지 대학 출신의 탁월한 학자로 15세기로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죽음에서 부활까지의 중간 상태에 관하여 벌여온 논쟁을 책으로 써서 그 진상을 파헤쳤다. 이 책에서 그는 칼빈의 경우처럼, 개혁자들이 전통에 얽매어 영혼 불멸을 고수함으로써 종교개혁을 완성시키지 못한 것을 크게 나무랐다.
“최초로 죽음 사람[아담]으로부터 마지막 사람의 부활이 있기까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살 아서 의식하고 활동하며 행복과 불행을 능히 경험한다고 가정하고서, 이것을 이성과 철학으로 과시하려 드는 것은 분명히 그리스도교의 모든 제도를 뒤집어 엎는 일이다.141
양심과 지성으로 지켜진 진리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후 교조주의(敎條主義)에 얽매인 성직자들을 제쳐놓고 각분야의 학자들과 전문 지식인들이 진리를 회복하는 일에 앞장선 것은 괄목할 일이다. 영국계 미국인 과학자로 산소를 발견한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 . 1733-1804)는 영원 지옥을 적극 부인하고 나셨으며, 만유인력의 법칙을 찾아낸 뉴톤(Sir lsaac Newton . 1642-1727) 경이나 그를 뒤이은 캠브리지의 수학자 휘스톤(William Whiston . 1667-1752) 등은 과학자요 신학자로서 성경에는 물론 이성에도 어긋나는 영혼불멸을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142
영국 찬송가의 아버지요, 신학자인 아이삭왓츠(lsaac Watts . 1674-1748)는 초기에 지녔던 칼빈의 영혼불멸 사상을 버리고 성경의 진리로 돌아섰으며,143 의사요 신학자인 스코트(JosePh N, Scott), 성공회의 감독이요 학자인 로(Ed-mund Law), 캠브리지 교수요 성공회 목사인 페카드(Peter Pecard) 등도 18세기가 다하기까지 조건적 불멸을 옹호한 기수들이었다.144
불란서 혁명과 그 여파로 장식된 18세기가 지나고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종말 신앙에 대한 관심은 더욱 고조되었다. 혁명을 통하여 모순과 오류가 낱낱이 드러난 로마 가톨릭교회의 진상은 지금까지 교권(敎權)에 억눌렸던 양심을 일깨웠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성직자들과 학식을 갖춘 지도자들이 소속한 교파의 전통적인 입장에 도전하며 영혼 문제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를 촉구했다. 프룸(L, E, Froom)씨는 그의 저서에서 19세기 동안 이 일에 앞장선 128명의 대표적인 증인들을 열거하고 있다.145
그 가운데는 네 차례에 걸쳐 수상을 지낸 영국이 자랑하는 최대의 정치가요 저자이기도 한 그래드스톤(W. E. Hladstone . 1809-98)도 있다. 광범위한 지식을 토대로 한 그의 저서에서 그는 플라톤의 영혼 불멸의 사상이 오리겐과 어거스틴을 통하여 초대 교회에 침투했음을 밝히고,146 그것이 성경에 입각한 그리스도인 신앙에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이면서도 조용한 과정을 거쳐 뒷문을 통하여 교회안으로 숨어들어왔다.147고 지적했다.
오늘날까지 굴지의 성경주석 학자로 꼽히는 루터교의 히브리 학자 델리취(Feanz Delitzsch. 1813-1890)는 그의 고전적인 구약 성경 주석에서, “전체 성경은 영혼의 속성에 기초한 불멸에 관하여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다”148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영혼은 죽음에 이를 수 있다. 그것은 죽는 것이다.”149라고 단언하고 있다.
침례교 신학자요 언어학자로 현대어 신약 성경을 낸 웨이머드(R, F, Wey-mouth . 1822-1902) 는 그의 번역 성경 해설에서, 고린도전서 15장 18절, 히브리서 9장 28절, 계시록 14장 11절, 20장 10절 등에 나타난 표현들이 모두 끝이 있는 고통이나 파멸을 뜻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다.150
조건적 불멸 신앙의 보루-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어거스틴 이후 거의 천년간 계속된 중세기의 영적 암흑 속에서 독버섯처럼 마음놓고 자란 영혼 불멸 신앙의 거짓됨을 고발하는 양심의 소리가 종교개혁을 전후하여 다시 드높아지기 시작했으나 조직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중, 1877년 11월 11일 유서 깊은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당대에 가장 존경받던 성공회 지도자요, 후에 캔터베리 책임자까지 된 파라르(Canon F. W. Farar. 1831-1903) 사제가 강당에 서서, 사원의 역사 6백년 만에 처음으로, 중세 교회가 천 5백년간 가르쳐 온 교리, 즉 악인은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한다는 교리가 성경에 어긋나는 거짓임을 엄숙히 선언한 것이다. 그는 이 역사적인 설교에서, “내게 있어 [악인이 끝없는 고통을 당한다는] 지옥에 대한 일반적 가르침은, 어거스틴 사상과 로마 가톨릭 사상, 그리고 칼빈 사상이 지닌 잘못들을 합친 것 가운데 최악의 것으로 이루어진 소름이 끼치는 혼합물로 간주된다”151고 선언했다.
이 혁명적인 설교에 대한 반응은 대단했으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다음 해인 1878년 9월 정식으로 조건적 불멸 신앙을 옹호하는 초교파적인 연구 조직이 이루어져, 침례고, 성공회, 회중교, 감리교, 플리머스 형제회(Ply-mouth Brethren)의 다수의 성직자들과 학식 있는 지도자들이 대거 참여하였다.152 이 조직은 오래 존속하였으며 거의 매년 총회를 개최하고 기관지를 정기적으로 발행하고 각종 서적을 출판하였으며 그 영향력을 국내외로 넓혀갔다.
1789년 일어난 불란서 혁명으로 중세기 교황권은 무너지고 신앙과 양심의 자유가 고조되고 성경연구의 열정이 기어지는 가운데 신대륙 미국에서는 침례교 지도자 윌리암 밀러(William Miller)가 이끄는 초교파적인 재림 운동이 일어났다. 뒤에서 상세히 설명하겠지만 그 결과로 1863년에는 인간적인 전통을 모두 배척하고 성서적 신앙만을 추구하는 여러 교파들의 신자들로 형성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가 구성되기에 이르렀다. 제임스 화잇(Ja-mes White)내외, 베이츠(Joseph Bates). 앤드루스(J. N. Andrews), 스미스(Uriah Smith) 등 각 교파로부터 모여든 지도자들은 재림의 확고한 신앙과 함께 그 때에 있을 생명의 부활을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소망으로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영혼불멸과 영원 지옥, 연옥 등이 모두 성경에 어긋나는 것으로 중세 교회가 이교로부터 받아들인 거짓임을 깨닫고 성경에 입각한 조건적인 불멸과 악인의 소멸을 공식적인 신조로 택함으로서, 안식일 교회는 정통적인 그리스도교 가운데 이러한 진리를 간직한 최초이면서 동시에 유일한 교회가 된 것이다.153
20세기 양심이 거부한 영혼불멸과 영원지옥 신앙
20세기가 밝아오자 더욱 밝혀진 성경 지리의 빛 가운데 조건적인 불멸을 옹호하는 지성과 양심의 소리가 드높았다. 성공회의 선교 책임자인 에이트켄(William Aitken. 1841~1972)을 시작으로 성공회의 최고 지도자인 켄터버리 대주교인 템플(William Temple. 1881~1944)은 영혼불멸이 플라톤의 이교 사상임을 지적하고 부활 때에 부여되는 불멸을 강조하는 한편 연옥과 지옥에 대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 전적으로 어긋나는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154
프룸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20세기에 들어서서 조건적인 불멸을 옹호한 137명의 대표적인 지도자들을 열거하고 있는데, 일별만으로도 그들이 각 교파를 대표하는 신학자들과 지도자들임에 대해 놀라움을 갖게 된다.155(그들 가운데 일부가 첨부된 도표에 포함되었다). 그 중에는 모팻 역(譯) 성경으로 잘 알려진 스코트랜 장로교의 신학자인 모팻(James Moffatt), 스웨덴의 루터교 신학자인 나이그렌(Anders Nygren), 미국의 개혁교회 신학자인 니이버(Rei-nhold Niebuhr), 스위스의 신학자인 브루너(Emil Brunner)와 바르트(Karl Ba-rth), 쿨만(Oscar Cullmann), 독일 루터교의 신학자인 불트만(R. Bultmann), 미국 하바드의 신학자 틸리히(Paul Tillich)와 영국 침례교 신학자인 스크로기(W. G. Scroggie)등은 일반에게도 알려진 근대의 신학자들이다. 특히 화란 출신의 현대 칼빈주의 대표 신학자인 벌카워(G. C. Berkouwer)도 칼빈의 이중 예정과 함께 전통적인 영혼불멸 신앙의 모순을 느끼고 성경적인 조건적 불멸의 신앙으로 전화한 것은 학자의 양심을 가진 신앙인의 떳떳한 태도이다.
부활 신앙의 챔피온-오스카 쿨만
1958년, 현대 신학계의 굴지의 신약 학자로 꼽히는 독일 사람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 1902~)은 세계적인 파문을 일으킨 논문을 발표했다. [영혼의 불멸인가 죽은 자의 부활인가?]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한국에서도 장로교 원로 신약 성서학자요 목사인 전경연(全景淵. 1916~) 씨에 의하여 번역되어 1965년 복음주의 신학총서(5권)에 소개된 바 있다. 이 논문에서 쿨만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소망과 영혼불멸에 대한 헬라사상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156을 성경주석을 통하여 빈틈없이 밝히고 있다. 그리고 “영혼불멸을 믿는 헬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교의 부활 설교를 받아들이기가 가장 어려운 것”157은 당연한 논리의 귀결임을 지적하고 있다. 서로 모순되기 때문이다.
“신약에서는 ‘영혼불멸이냐 죽은 자의 부활이냐’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명백하다. 위대 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가르침은 결단코 신약의 가르침과 일치할 수는 없 다.”158
이 논문에 대한 교계의 비평은 격렬하였으나, “어느 비판자도 본문 주석으로 나를 반론코자 시도하지 않았다는 데 바로 우리 연구의 근거가 사무쳐 있다.”159고 쿨만은 실토한다. 또한 “나는 철학자인, 심리학적인, 무엇보다도 감정적인 막연한 이유로 공격을 받고 있다.”160고 깊은 유감을 표했다. 성경에 어긋나는 신앙은 그리스도교의 신앙이 아니다. 감정이나 심리가 성경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면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행 17:11)았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쿨만의 말처럼 영혼불멸과 부활을 동시에 믿을 수 없는 서로 어긋나는 신앙이다.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성경을 상고하”여 올바른 것을 바로 택하는 것이 신사적인 그리스도인의 줏대있는 신앙이다.
8. 생명이요 부활이신 그리스도
산 사람이 만드는 문제
요약과 결론
미국 독립전쟁의 젊은 영웅이였던 애단 알렌(Ethan Allen)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미혼 중이었던 그는 연인과의 저녁의 데이트를 끝낸 다음에는 습관처럼 동리 공동묘지의 낮으막한 돌담을 넘어 거의 일정한 길을 따라 귀가하곤 했다. 이런 일을 알게 된 뉴잉글랜드의 짓궂은 이웃들은 당차다는 알렌을 한번 쯤 혼내줄 심산으로 계획을 짰다. 담을 뛰어넘으면 발이 닿을 만한 곳에 깊숙한 무덤을 파놓고 밤을 기다렸다. 그날 밤도 데이트를 끝내고 같은 길을 따라 담을 넘던 알렌은 영락없이 흙구덩이에 꿇어박혔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려는데, 전설의 유령처럼 차려입은 이웃사람이 흙구덩이 위에 서서 내려다 보며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단 알렌아, 너는 내 무덤 속에서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 혼비백산한 채 위를 쳐다보던 알렌을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당차게 소리쳤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당신이 지금 거기서 하고 있는 엉뚱한 짓이 진짜 문제요!”
참으로 그렇다. 문제는 무덤 속에 죽어있는 사람의 상태가 아니라 산 사람들이 문제이다. 죽어보지도 않은 무덤 밖의 사람들이,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전 9:5)른다고 수십번이나 확인한 성경말씀은 제쳐놓고, 이교의 가르침과 헬라의 영혼불멸 사상을 좇아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는 거짓말을 철석 같이 믿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처음 거짓말의 목적
모든 거짓말에는 목적이 있는 것이다. 사단의 거짓말을 믿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한 처음 인간은 죽음에 대한 겁도 없이 범죄한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롬 6:23)임을 불신한 것이다. 첫번째 목적을 달성한 사단의 이 유력한 거짓말은 두번째 목적에 또 다시 유효 적절하게 쓰여졌다. 그것이 바로 몸은 죽어도 여전히 살아있는 것으로 믿게 만든 죽은 사람이 영혼으로 위장(僞裝)한 사단이 산 사람들과 교통하는 무서운 접신술(接伸術)이다.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기록을 가진 이 술수는 무속신앙에서 혼을 부르는 무당굿에서부터, 죽은 사람의 혼백에게 물어 점을 치는 각종 점술을 비롯하여, 이래저래 불안한 현대인들이 휩슬려 들어가는 심령과학으로 불리우는 강신술(降神術)과 점성술의 배후이기도 하다. 요사이는 죽은 뒤 영혼이 다녀왔다는 천당 이야기가 여러 갈래로 나돌고 있는데 사람마다 진술이 서로 달라 듣는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성경의 정통적인 계시나 이상은 “뇌(腦)”(단 7:1)로 받는 것이지 몸을 빠져나간 영혼이 어디 가서 보고 오는 것이 결코 아니다(민 24:15 ; 사 6:1 ; 계 1:10). 사울 왕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한 후 신접(新接)한 여인을 찾아가 만났던 이미 죽은 사무엘의 영혼은 사무엘의 영혼이 아니라 사단의 속임수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삼상 28:6~14).
이토록 영혼불멸의 속임수를 통하여 죽은 사람의 영혼으로 위장하여 산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려는 사단의 계교는 언제나 치명적이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이러한 신앙을 행사하려는 술사(術士)나 무당들을 근절시켰으며(출 22:18 ; 레 19:31 ; 신 18:10~12), 백성들은 “너희가 꾼 바 꿈”이나(렘 29:8,9), 거짓을 전달하는 거짓 선지자나 술사에게 미혹되지 말고(렘 27:9 ; 사 8:19~22),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르도록 경고했다. 그리고 이러한 영혼불멸을 통한 온갖 속임수는 마지막 때의 속임수로 등장하여 파멸로 들어갈 것도 엄숙히 예고되었다(딤전 4:1 ; 계 21:8 ; 22:15). 그러므로 영혼불멸을 신조로 믿고 가르치는 모든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앞세우고 “미혹하게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쫓”(딤전 4:1)도록 시도하는 사단의 온갖 속임수에 아무 방비 없이 노출되어 있음을 두려운 마음으로 자각해야 할 것이다.
나사로는 살아났건만...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얼마전 예수님께서는 최대의 이적을 행하셨다.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무덤에서 썩고 있던 베다니 사람 나사로를 부활시키신 것이다. 이 엄청난 이적을 목도한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고 부활을 확신하게 되었다(요 11:45). 그러나 완고한 바리새인들과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 등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권위가 손상당하는 것이 두려워, 잘못이 드러난 자신들의 교리를 바꾸는 대신 부활의 산 증거가 되는 장본인들, 곧 예수님과 나사로를 함께 죽이기로 결정하고 모의를 시작했다(요 11:47~53 ; 12:9~11).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자신들이 대대로 신봉해 잘못된 교리를 바꾸는 것보다 구주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참된 제자인 나사로를 죽이는 일이 훨씬 쉬웠다는 사실이다. 종교적인 편견보다는 더 무서운 것은 없다. 성경을 향하여 1,658번을 물어보아도 한결 같이 부정하는, 성경에는 아무 근거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부활의 진리와 상반(相反)되는 영혼불멸의 신앙을 고수하려는 그릇된 교리적 편견이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 않는가? 부활의 산 증거인 나사로는 살아났어도, 잘못이 입증된 자신들의 교리는 끝내 바꾸지 않았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예외적으로 “나사로”라는 개인의 이름을 비유에 쓰셨던 예수님께서는 비유에 나타난 교훈을 현실로 옮기셨다. 비유중에 불꽃 속에서 고통당하는 부자와 아브라함 사이에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고 갔다(눅 16:27~31).
부 자:“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 [*구약 성경의 증언]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부 자:“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는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아브라함:“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 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과연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비유 속의 인물과 같은 이름을 가진 베다니의 나사로를 살리심으로써 비유 속에서의 부자의 요청을 들어주셨다. 그러나 종교적 편견에 사로잡혀 이성이 어두워지고 판단력이 굽어진 그들에게는 기상천외한 나사로의 부활마저도 아무 효험이 없었다. 나사로는 살아났건만.....
영혼불멸인가 부활의 신앙인가
지금까지 장장 수십 페이지를 차지하며 진행된 부활 신앙과 영혼불멸 사상, 타고난 불멸과 조건적 불멸, 그리고 악인의 소멸과 영원 지옥게 관한 숨가쁜 논증을 접하며 독자는 어떤 선택에 이르게 되었는가? 소속되어 있는 교단의 전통적인 교리를 고수하기 위해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을 외면하거나 부인하게 된다면,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과 아무 다름이 없지 않은가? 비록 종교적 편견이 무서운 것은 사실이지만, 편견에 사로잡혀 엄숙한 판단을 그릇치는 것은 참으로 영원히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서 언급한 금세기를 대표하는 신약 학자인 쿨만 교수의 신앙 양심 선언을 다시 경청해 보자.
“후대의 그리스도교가 이 두 믿음 [영혼불멸과 부활신앙]을 연결지어 놓음으로써 빚어진 사태와 오늘날 일반 그리스도인들이 단순히 이 두 믿음을 혼동하고 있다는 그 사실은 내가 성서주의적에 입각하여 진리라고 믿는 바를 침묵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더우기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소망과 영혼불멸 신앙 사이에 지어진 연결은 실질적인 연결이 아니라, 후자[영혼불멸 신앙] 편에 서서, 전자[부활에 대한 소망]를 부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더욱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부활의 장]은 [플라톤의 영혼불멸 교본인][파에돈](Phaedo)을 성립시키기 위하여 희생되어 버렸습니다. 실제로 아무리 선한 목적이 있다고 치더라도 이 사실을 덮어둘 수는 없습니다.161
참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앙양심을 괴롭히는 곧고 바른 신앙 양심의 선언이다. 그렇다. 이교적인 영혼불멸 사상의 대본(臺本)인 플라톤의 [파에돈]을 세워주기 위해 구원의 완성이요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소망인 부활의 진리를 희생시킬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파에돈]에 드러난 플라톤의 헬라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칼빈의 [혼수론]을 무조건 고수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 신앙의 유일한 규범이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제쳐 놓을 수는 없다. 그것은 지성을 갖춘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신앙양심이다 아니다. 헬라적인 영혼불멸 사상과 성경적인 부활신앙은 결코 서로 어울릴 수도 없고 함께 가질 수도 없는 상반된 신앙이다. 확인한 대로, 가지만 다른 것이 아니라 뿌리부터 다른 전혀 이질적(異質的)인 신앙인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 4:19). 독자는 어떤 선택에 임하려고 하는가? 부활은 교리가 아니라,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그리스도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선택하는 것은 부활과 생명을 자신의 것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영혼불멸인가, 그리스도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 26).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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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Ibid., Appendix 9.
12. Ibid., Appendix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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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칼빈주의 예정론과 이단 신조
1.아르미니우스와 그의 가르침 2. 칼빈주의 예정론의 역사적 배경 3. 칼빈주의 예정론의 허실 4.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 |
비평 박영관
“안식교는 인간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관해서는 알미니안 주의를 따른다...알마니안 주의는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어 구원을 얻는데도 인간의 행위가 따른다고 한다. 이것은 자력구원설(自力救援說)을 말한다, ..알미니안 주의는 칼빈주의의 불가항력적(不可抗力的)인 은혜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안식교는 알미니안주의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회는 알미니안주의를 이단으로 정죄했다.”1
박영관씨는 그의 저서인「이단 종교 비판(1)」에서, 안식일 교회를 아르미니안주의(Arminianism)
로 규정하고, 그것을 칼빈주의 개혁 교회가 17세기초에 열린 도르트 종교회의(Synod of Dort)에서 이단으로 규정했음을 상기시키면서 계속하여 이래와 같이 비평하고 있다.
비평 박영관
“기독교회는 예정, 속죄, 인성.(人性), 은총, 성도의 보존에 대하여 알미니안의 주장을 도르트회의에서 정죄하고 이단으로 추방하였다”2
성서적인 입장
먼저 밝혀 둘 것은, 예정(豫定)에 있어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는 칼빈주의는 아니지만 성경에 입각하여, 창조와(계4:11) 통치와(시135:6; 잠21:1; 단2:21; 4:35) 구속(롬8:29,30; 엡1:4, 11)에 있어서, 하나님이 자유로운 의지 행사에 속하는 주권(主權)을 믿는다.
마찬가지로, 안식일 교회는 아르미니우스주의나 웨슬리주의는 아니지만, 범죄로 인하여 스스로 의를 이루거나 선을 행하기에 무력해진 인간은 (롬3:10-12; 엡2:1-3)구원을 가능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할때(엡2:7-10) 의지로 반응하여 “믿어 순종케”(롬1:5; 16:26) 됨으로서 예정된 구원을 이룰 수 있는(엡1:4-12; 빌2:12) 책임이 있는 존재임을 믿는다. 다음은 이에 관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의 입장이다.
성경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딤전2:4)신다고 분명히 진술하고 있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벧후3:9)신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은 멸망받도록 작정(作定)하셨다 는 증거가 없으며 그러한 작정은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돌아가신 갈바리를 부인하게 한다....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는 구절에서 “누구든지”(Who-ever)는 어떤 사람(anyone)이라도 구원 받을 수 있음을 뜻한다. 사람의 자유의지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를 계속하여 제시하시고, 죄인들로 하여금 순종과 생명을 선택하도록 요청하시는 사실과(신30:19; 수24:15; 사1:16, 20; 계22:17), 한번 은혜를 받은 바된 믿는 사람도 떨어져 나감으로 상실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도 명백해진다(고전 9:27; 갈5:4; 히6:4-6, 10:29). 4
칼빈 무오설(無誤說)이 아닌 이상, 칼빈의 가르침이라도 성경에 비추어 보아 잘못된 것은 바르게 고쳐 믿어야 하며, 아르미니우스의 가르침에서라도 성경에 일치한 것은 기꺼이 용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칼빈주의가 아닌 모든 것은 이단으로 돌리는 신학적인 사고(思考)는 옳다고 생각지 않는다. 오늘날 아르미니우스의 가르침으로 알려진 것 가운데는 그의 후계자들에 의하여 왜곡(歪曲)되고 과장된 주장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아르미니우스 주의를 분별없이 받아들이는 것도 안전하지 않다.
칼빈의 가르침이든, 아르미니우스의 주장이든 상관없이 성경에 일치한 것만이 진리이다. “주의”(主義-srn)에 얽매이는 것은 성경을 편견 없이 이해하는데 최대의 장애라고 생각하며, 박영관씨가 일방적으로, 그리고 전반적으로 이단으로 정죄한 아르미니우스와 그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는 일에도 공정한 기회와 객관적인 이해가 주어져야 한다고 믿어 얼마의 지면을 이에 할애하고자 한다.
먼저 칼빈주의를 대표한 박영관씨가 일방적으로 이단의 교리로 규정한 아르미니안 주의를 올바로 판단하기 위하여는 장본인인 아르미니우스(Arminianism . 1560-1609)와 그의 가르침, 그리고 그를 이단으로 정죄한 도르트 종교회의의 역사적 배경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 장본인인 아르미니우스는 종교개혁의 난류(亂流)가 유럽에 소용돌이 치던 1560년 자유를 애호하던 나라 화란에서 태어났다. 그가 아직 어린 때 그의 홀어머니와 형제들은 카톨릭 신앙을 거부한 까닭으로 그 지방을 점령한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여 그는 고아가 되었다. 그의 뛰어난 능력과 탁월한 신앙을 인정한 국내 칼빈주의 유지들은 그를 칼빈주의 신앙의 본거지인 제네바에 유학시켰다. 거기서 그는 칼빈의 동료요 후계자인 베자(Theodore Beza)에게서 탁월함을 인정받으며 신학을 마친 후 귀국하여 사랑 받는 성직자와 신학 교수로 명성을 떨쳤다.
그 당시 이미 칼빈의 예정설이 성경적으로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유명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아르미니우스는 교회로부터 그들의 주장을 비난하라는 임무를 받고, 이 문제를 성경에 비추어 깊이 연구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오히려 그 자신이 의심 없이 믿어 온 칼빈의 무조건적인 예정론과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예정에 의하여 선택된 사람들만을 위해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예정에 의하여 선택된 사람들만을 위해 돌아가셨다는 제한 속죄론(制限贖罪論)이 성경에 전적으로 어긋난다는 확신에 이르렀다.
아르미니우스의 이러한 신학적인 확신은, 후에 아르미니안 주의로 알려진 그의 가르침의 골자이다. 지금 잘못 소개되고 있는 어떤 내용들은 그의 후계자들이 왜곡(歪曲)시켜 놓은 것도 있다. 아르미니우스의 이러한 역사적이고 논리적인 가르침에 동의하는 성직자들과 학자들과 정치가들이 늘어나면서 당시 칼빈주의 개혁파가 주도하고 있던 화란은 일대 신학 논쟁의 와중으로 휘말려 들어갔다.5
아르미니우스를 특별히 적대한 사람은 같은 대학의 교수로 극단적인 칼빈주위자인 고마루스(F. Gomanus)였다. 고마루스는 칼빈의 후계자인 배자처럼, 하나님께서는 범죄 이전에 얼마의 사람은 구원을 받고,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에 상관없이 멸망당하도록 예정하심으로서 당신의 공의와 사랑을 드러내신다는 타락전 예정설(Suralap-sarianism)을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죄와 인간의 타락도 예정하셨다는 말이 되어,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오해받게 하는 위험한 가르침이다.6
이에 대하여 아르미니우스는, 인간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으로 되는 것이지, 하나님의 일방적인 예정에 따른 무조건적인 선택에 의하여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또한 하나님이 구원을 위해 하신 선택은 예지(豫知)하신 믿음을 전제로 하신 것이며, 이 “믿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천명했다.7 그는 이 은혜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다.
“「하나님의」은혜는 모든 선한 일의 시작이요, 계속이요, 마침이다....그러나 이 은혜는 저항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의하면 많은 사람이 성령을 거역하였고, 제공된 은혜를 거절하였기 때문이다.”8
아르미니우스에 의하면 만약 사람이 이 은혜를 거절할 수 없다면, 사람이란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한 낱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그러한 꼭두각시가 아니라 자녀가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당신의 거저 주시는 은혜가 사람에 의하여 저항받을 수 있도록 용납하셨다고 논증했다. 그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거듭하여 인용하면서, 이토록 확실한 성경의 논증에 기초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는 자율적인 사랑의 관계이지 일방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기계적인 관계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저항할 수 있는 까닭은 은혜의 속성(屬性)때문이 아니라 그 은혜가 역사(役事)하는 방식 때문임을 밝혔다.9 그는 하나님서 범죄까지도 예정하셨다고 가르치는 타락전 예정설이 선택받지 못한 인간은 자신들의 범죄 여부에 관계없이 예정된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간다는 결론에 이르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인간이 범한 죄의 창시자로 왜곡되는 것은 신성모독으로서 무엇보다도 반대하였다.
“하나님에 대해 말해질 수 있는 신성모독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보는 것이다. 죄와 상관없이, 피조물들을 이미 예정된 멸망으로 저주받도록 인도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인간이 범한 죄의 창시자로 설명하는 것은 비난의 정도를 가중시키는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이와 같은 신성모독을 선하신 하나님의 탓으로 돌 릴수 없을 것이다.”10
그의 합리적이고 성경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반대자들은 그를 펠라기우스(Pelagius)의 가르침을 쫓는 이단이라고 비난했다. 펠라기우스는 5세기초 영국의 수도승이었는데. 인간은 범죄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은 선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적인 은혜의 역사가 없이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행할 수 있다는 일종의 도덕적인 자력구원설(自力救援說)을 주장했었다.11
물론 아르미니우스의 견해는 펠라기우스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또한 아르미니우스 자신이 삼위일체에 관하여 성경과 일치하는 확고한 신앙을 가졌음을 거듭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소시누스(Socinus)파라는 무고(誣告)를 당하기도 했다. 12 아직까지도 이러한 진상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의 가르침을 행함에 이한 자력구원설로 규정하고 안식일교회까지 이에 포함시켜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은 역사적인 과오를 되풀이하는 유감스러운 일이다.13.
이렇게 무고를 당한 아르미니우스는 자신의 주장이 성경적임을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밝히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적이 분위기에서 이 문제를 토의할 수 있는 국가적 차원의 종교회의를 열어 주도록 국회에 요청했다.14 그러나 그의 이러한 요청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과로와 병고에 시달리던 그는 1609년 10월. 49세를 일기로 참으로 짧았지만 경건한 일생을 마쳤다.
그의 신학적인 능력과 그리스도인다운 인격은 그의 비평자들에 의해서도 지금까지 인정을 받고 있다 교회사의 대가인 필립샤프도, “그는 유식하고 유능한 신학자였으며, 그의 생애를 쓰디쓰게 만든 논쟁의 와중에서도 그는 온유함과 그리스도인다운 정신을 드러냈다. ... 남들에 의하여 정죄를 받았으나 그는 아무도 정죄하지 않았다.”15고 평했다. 그의 장래식에서 그에 대하여 사람들이 남긴 마지막 말이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그를 모르는 사람은 그를 충분히 존경할 수가 없고. 그를 존경치 않는 사람은 그를 충분히 알지 못했던 그런 사람이 화란에 살았다.”16.
“그가 죽은 다음 해인 1610년 아르미니우스의 가르침을 지지하는 46명의 칼빈주의 개혁교회 목사들은 논증을 성경적인 원칙에 의하여 해결하는 온전한 방편으로 다섯 가지 신조를 공인해 주도록 탄원하는 변증서를 국회에 제출하였다. 이에 대하여 엄격한 칼빈주의 지도자들은 즉시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는 반항변서(反抗辯書)를 제출하였으며, 아르미니우스 지지자들은 칼뱅주의에 항의하는 “항변자” (抗辯者 . Remonstrants)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나중에 소집된 국회에서 다루어진 두 주장을 종합하여 간략하게 대조시켜 보면 아래와 같다.”
칼빈 주의 5대 강령 | |
1. 하나님이 예지(豫知)하신 바에 따라. 사람에 의하여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창세전에 작정하심. (조건적인 선택. Conditonal Election) |
1. 사람의 어떠함이나 행위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창세전에 작정하신 바꿀 수 없는 예정에 따라 구원과 멸망이 각각 정해짐[二重豫定] <무조건적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 |
2.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으심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며, 이것을 제한시키는 것은 각 사람의 믿는 여부임. [보편적 속죄. Universal Atone-ment] |
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예정에 의해 선택된 사람들만의 속죄를 위한 것임 [제한된 속죄.Limited Atone-ment] |
3. 타락한 상태의 자연적인 인간은 스스로 선하게 될 수 도 없고 새로워질 수도 없다. 의지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은혜가 없이는 인간은 자신의 구원에 대해 무력하고 무능함. [자연적인 무력함. Natueao Inability] |
3. 범죄한 인간은 스스로의 구원을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전적으로 타락하였으며, 실제로 중생은 회심보다 우선함. [전적인 타락. Total Deprav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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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나님의 은혜가 선행(先行)됨이 없이는 인간의 구원은 시작될 수도 없고, 진행될 수도, 보존될 수도 없다. 선행적(先行的)은총 . Prevenie-nt Geace) 그러나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의 은혜는 그 역사(役事)하시는 방식에 인간이 악한 의지에 의하여 거부될 수 있음 [저항이 가능한은헤 , Resis-tible Geace] |
4.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선택된 자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지 않을 수 없도록 저항할 수 없는 은헤로 역사하시지만 , 저주가 예정된 자들에게는 이 은혜가 주어지지 아니함. [불가항력적 은혜. Irresis-tible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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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죄와 유혹에서 능히 지키시고 보존해 주지만, 인간의 나태(懶怠)함에도 불구하고, 이 은혜가상실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성경에 의하여 증명되지않음 18 [조건적인 견인(堅忍), Condi-tional Perseverance] |
5. 불가항력적인 은헤로 믿음을 가지게 된 사람은 결코 상실되지 않으며 끝까지 보존됨, 19 [궁극적인 견인. Final Persev-e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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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서로 다른 내용을 가진 두 주장이 쉽사리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논쟁이 가열되자. 화란의 칼빈주의자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했던 당시의 정치 상황을 이용하여 반대파를 제거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우선 열렬한 킬빈주의자로 중앙집권제를 주창하던 총독 마우리스 공(Maurice 公)은, 1618년 7월 졸지에 쿠데타를 일으켜. 그의 정적(政敵)으로 아르미니우스의 가르침을 지지하며 공화제(共和制)를 주창하던 지방자치 주의 국가지도자 올덴바르네벨트(Van Oldenvarneveldt)와 다른 유력한 아르미니우스 지지자들을 투옥하였다.20 그런 다음, 서둘러 같은 해 11월 13일, 이러한 방식의 종교회의를 원치 않은 아르미니우스파의 반대를 외면하고, 국가가 일방적으로 소집한 종교회의가 도르트(Dort)에서 열렸다.
참석한 102명의 대표자들 가운데 18명은 칼빈주의 정부가 임명한 위원이었고, 아르미니우스파 대표의 참석은 처음부터 봉쇄되었다. 13명의 아르미니우스파 대표는 회의가 시작된지 여러 주일후에 죄인의 신분으로 소환되어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받았다. 의장[J. Bogerman)이나 서기[F. Himmius)등 모두가 엄격한 칼빈주의자로 모든 결의는 일방적이었다.21 교회사가(史 家) 필립샤프의 말대로, “그리하여 아르미니우스파의 운명은 사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22 그야말로 사람에 의하여 예정된 예정론의 예정대로 된 승리였다. 6개월간이나 계속된 종교회의는 154번의 회의를 거치며 논란을 계속하다가 이듬해인 1619년 5월9일 막을 내렸다.
결의된 내용은, 예정론의 범위를 그 전까지의 주장이었던 타락 전의 예정에서 타락 후의 예정으로 바꾸어, 타락후 예정설(inttralapsarianism)을 채택한 것 외에는 이전의 칼빈주의 예정설을 그대로 승인하고, 아르미니안의 5개항의 건의는 모두 이단의 신조로 정죄하였다.23 동시에 회의 폐막4일후인 5월13일, 국가를 위한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투옥 중이던 아르미니안 정치 지도자 올덴바르네벨트를 대역죄(大逆罪)의 누명을 씌워 처형했으며, 당대 최고의 학자로 해양법(海洋法)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로티우스(Hugo Grotius)에게는 종신형을 선고했으며, 200명의 아르미니안 목사들을 성직에서 쫓아냈다.24
이러한 무자비하고 강압적인 배경 때문에 역사가 중에는 이러한 도르트 종교회의를 칼빈주의자들이 수행한 로마 카톨릭식의 종교재판이었다고 혹평했다.25 그리고 수준있는 토론에도 불구하고, “신학적인 능력과 배려의 고상한 질서를 배신”하고, “자유를 희생시킨 대가로 정통을 다”졌고, “협소한 신앙고백주의를 재가(裁可)한” 종교회의의 역사적 오점을 남겼다.26
이처럼 혼탁한 분위기에서 형성된 도르트 신조를 지금까지 공적인 표준신조로 인정하고 있는 교회는 화란밖에서는, 미국에 있는 화란 개혁교회뿐이다27.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의 기본 정신과 성경의 원칙을 저버리고, 인권과 양심의 자유를 외면한 도르트 종교회의 결의 사항을 아직까지도 형제 그리스도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은 이 개명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신앙인들이 지성과 정서를 몹시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이성과 지성을 갖춘 신앙이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2. 칼빈의 예정론의 역서적 배경
예정론에 대한 반응
이상과 같은 위압적인 방법으로 확립된 칼빈의 예정론이 한 교파의 신조로 굳혀져 지금까지 고수되기는 하지만, 그것이 시작부터 성경과 이성에 모두 무리(無理)한 논란의 불씨가 되어 왔다. 로마 카톨릭 수도승으로 종교개혁에 가담한 후 제네바로 망명했던 의사 볼섹(Bolsec)이, 예정론은 하나님을 전제군주로 오해시키는 비성경적인 교리라는 의견을 발표하자 격노한 칼빈을 그를 투옥시킨 후 추방하여 결국 그를 옛 교회로 돌아가게 한 것은 슬픈 일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칼빈이 자신의 예정론을 개혁 교회의 고정 신조로 만들려고 했을 때, 그의 옛 신학 동지들이었던 불링거(J. Bullinger)도 자제를 호소했고, 파브리(Pabri)도 유지될 수 없는 교리라고 반대했으며, 멜란하톤(Melanchthon)은 그것이 헬라사상인 스토아철학의 운명론(運命論)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경고했다.28
프랑스 인으로 고전 학자였던 카스텔리오(Castellio)는 로마 카톨릭에서 개종한 뒤, 칼빈에게 와서 배우고 그의 신임을 사서 제네바 고등 학교장까지 지냈으며, 헬라어 성경을 라틴어와 불어로 번역까지 한 박학한 학자였다. 그는 칼빈의 예정론이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만들고, 하나님의 의지(意志)를 서로 상반(相反) 되는 두 개의 의지로 갈라 놓았다.”고 비평했다. 그는 하나님이 미리 아시기[豫知] 때문에 일이 그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이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아시고 예정하신 것뿐이라는 사실을 성경의 실례를 들어 설명했다. 다른 문제도 곁들여 있었지만 그는 결국 파면 당하고 축출되었다.29
스위스의 성서주석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비블리안더(T. Vibliander)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옹호하여 칼빈의 예정론을 거술렀다 하여 취리히 대학의 교수직에서 쫓겨났다.30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베네바 밖의 다른 개혁 교회들도 킬빈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제네바에서 자신이 누리고 있던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여 시정부로 하여금 마지못해 자신의 견해를 수용하게 하였다.
칼빈주의 예정론의 근원
이처럼 성경의 가르침에는 물론 인간의 이성에도 거슬리기 때문에 처음부터 물의를 일으키고 반대를 받아 온 칼빈의 무조건적인 예정론의 근원은 어디인가? 칼빈이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그러한 영향을 받았는지를 간단하나마 서술하는 것이 예정론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칼빈의 예정론은 처음부터 그 출발을 성경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예외적인 회심의 경험을 거쳐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의 신앙관도 주관적일 수 밖에 없었던 5세기의 교부 어거스틴(Augustine . 354-430)의 사상에 기초했다는 사실에 문제의 불씨가 있다. 다음의 명백한 진술은 이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어거스틴은 ?p 가지 전적으로 새로운 견해를 교회 제도 안으로 이끌어 들였다....그 중 ?p가지는, 저항할 수 없는 은혜, 절대적인 예정, 그리고 선택된 자들에게만 베풀어지는 그리스도의 제한된 속죄이다.”31
회심 전까지도 헬라철학에 동양에 신비사상을 가미한 신플라톤사상(Neo . Pltonism)에 깊이 몰두했던 어거스틴에게서 칼빈은 예정론 뿐만 아니라 영혼 불멸 사상도 물려 받았음을 이미 앞장에서 밝힌 바있다.32 칼빈이 제네바에서 신정(神政)을 베풀고 있을 때, 자신의 예정론에 이의를 제기한 수도승 출신의 의사인 볼섹(Bolsec)과 논쟁하면서, 이를 “매우 볼괘하게 느껴’ 언성을 높여 반박하고, 성서와 어거스틴을 인용하면서 예정론이 진실된 교회의 교리라고 변호하였다.”33
어거스틴의 가르침이나 권위로 성경의 진리가 확증되는 것이 아니다. 어거스틴의 가르침이 종교개혁 등 개신교 신앙에 깊은 영향을 끼쳤음과 함께 영혼불멸설을 비롯하여, 그의 그릇된 교회관 이 영향을 받은 중세교회가 극에 달한 교권주의(敎權主義)를 행사했던 불행한 사실도 기억하여야 한다.
성경에 어긋나는 것은 계몽된 이성에도 거슬리게 마련이다.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에 입각한 어거스틴의 무리한 예정론은, 도덕적인 자력구원설을 주장한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에서 어거스틴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 마져도 반감을 갖게 했다. 그들도 타락한 인간의 죄됨과 선을 행하기에 무력한 인간의 의지에 대해서는 어거스틴과 뜻을 함께 했지만, 그의 무조건적인 예정론은 반대했다.
그 이유로는 그의 예정론이, “전도(傳導)의 목적을 파기하고, 도덕적 정신을 약화시키거나 그렇지 않으면 절망으로 이끌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라고 보았다.”34. 그들은 “선언하기를, 은총은 [누구에게나 베풀어지는] 보편적인 것이며, 그리스도는 [택한 자 뿐만 아니라] 만민을 위해 죽으셨으며, 예정은 예지(豫知)에 근거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35.
실제로 어거스틴이 그의 무조건적인 예정론을 발표했을때 벌써 적지 않은 혼란이 야기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경솔한 신념을 가지고 낙관주의에 빠지게 되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양심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절망의 구렁에 빠지게 되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구원에 있어서의 공적(功績)을 인간적 요인으로 돌리는 오류에 빠지게 되었다.”36
이러한 겉잡을 수 없는 부작용 때문에, 죽기 3년전인 427년에 어거스틴은 두 권의 책까지 써서 자신의 무조건적인 이중예정의 교리가 빚어내고 있는 불행한 결과를 막아 보려고 애썼던 역사적인 임상(臨床)의 과오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37
오렌지 종교회의와 예정론
이렇듯 어거스틴의 예정론에 대한 논쟁이 그의 사후에도 계속되면서 가열되자, 당사자들은 529년 프랑스의 오렌지(오량주)에서 종교회의(Synod of Orange)를 열어 이 문제를 종결짓기로 했다. 이 역사적인 회의는 어거스틴의 가르침을 재검토하고 정화(淨化)시켜 이를 옹호하기로 결의함으로써 어거스틴의 가르침에 대한 논쟁을 종결짓는 계기로 삼았다.
이 회의에서는 어거스틴의 예정론 가운데 성경과 이성에 현저히 어긋나는 가르침들, 즉 하나님께서는 선택받은 사람은 구원하시고 그 밖의 사람은 멸망받도록 무조건 예정하셨다는 이중 예정(二重豫定)을 배제하여, 하나님께서 죄와 타락까지 예정하셨다는 오해의 여지를 없앴다.38 또한 거듭난 사람이 타락하게 되는 것은 그들이 진정한 선택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왜곡된 의지(意志)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에(딤전2:4),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공로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 하여 제한된 속죄를 반대했다.39 구원을 위하여는 인간의 자유의지 활용이나 선행에 앞서 하나님의 은혜가 전적으로 먼저 역사해야 함을 확인했다. 아울러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선을 행하는 가운데 인내하며 견디기(忍耐) 위해 서는 열심히 기도 드려야한다는 등 25개조의 신조를 채택했다.40 이리하여 “적질히 표현한다면, 오랜지 종교회의는 어거스틴 사상에 대한 논쟁의 종결을 표했다.”41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이처럼 비(非)성서적이고 반(反)이성적이어서 교회와 신앙에 덕을 끼치지 못한 이중예정, 불가항력적인 은혜, 제한된 속죄 등의 주장을 종교개혁과 함께 다시 들고 나와, 도도히 흐르기 시작한 역사적인 종교개혁의 주류(主流)를 5세기의 어거스틴의 시대로 역류(逆流)시킨 것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칼빈의 무조건적인 예정론을 양심적으로 반대해 온 허다한 그리스도인들은 무조건 이단으로 간주해 버린다면 그 이상의 지성적인 대화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서두에서 인용한 비평에서처럼, 박영관 씨는, “안식교는 알마니안주의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알마니안주의를 ‘도르트대회에서’42 이단으로 정죄하였다”43고 선언했다.
그런데 칼빈의 무조건적인 예정보다는 아르미니우스의 가르침이 더 성서적인 것으로 확신되어 그 중의 일부 혹은 전부를 받아들인 교회들이 적지 않다. 웨슬리의 감리교회를 비롯하여, 찰스1세이후의 성공회,44 오순절교회, 루터교회, 일부 침례교회, 그리고 안식일 교회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45 이 모든 교회들은 엄연히 그리스도교이다. “기독교회는 알미나안주의를 이단으로 정죄했다”는 박영관씨의 말은 아르미니우스의 가르침을 이단으로 정죄한 칼빈주의 장로교회 외에는 아무 교회도 전통적인 그리스도교가 아니라는 어감(語感)으로 전달된다.
우리 모두가 도르트 종교회의를 지배했던 강압적이고 독선적인 정신에서 벗어나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는 형제 그리스도인들의 소신(所信)을 경청하고 이를 성경에 비추어 사려 깊게 판단하는 지성을 함께 계발하는 일이 참으로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안식일 교회의 한 교역자인 필자가, 박영관 씨의 비평에 대하여 변증형식으로, 선택과 예정론에 관한 개인의 소신(所信)을 성경에 근거하여 간단히 밝히고자 한다.
3 칼빈주의 예정론의 허실(虛實)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
성경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바를 제한받지 않고 집행하시는 주권을 가지신 분으로 가르친다.46 그러나 칼빈이 종교개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교회의 절대 권위를 주장하는 중세 교황권에 맞서기 위해, 어차피 강조한 하나님의 의지 행사 곧 주권(主權)이 그것과 “관련이 없는 신학 구조에서도 전체 체계를 지배하는 기본 원리의 위치를 차지하게”47 된 것은 분명히 잘못된 신학적 위상(位相)이라고 생각한다.
칼빈이 잘못 적용한 하나님의 주권은 결국 그의 후계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려는 “목적을 위해 인간을 창조하시고 타락을 허용하기로 [창조 전에] 예정하”48셨다는 타락전 예정설까지 등장시켜, 본의는 아니었을지라도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오해시킨 것은 중대한 신학적인 과오이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무조건적인 예정과 선택에 무리하게 결부시킴으로써 범죄로 손상되었을 지라도 남아 있는 것이 분명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완전히 무시하여, 책임 있게 반응하는 인간의 모습을 지워버리고 말았다. 웨슬레의 말처럼, 인간의 이성과 의지가 죄로 인하여 비록 어두워지고 약화되어, 스스로 선을 택하고 의를 행하기에는 무력하게 되었지만,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선행적(先行的)인 은총(恩寵)이 임할 때 믿음으로 반응할 수 있는 것이다. 49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예정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그의 안에서 자녀가 되고 후사가 되어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도록 창세 전에 예정하셨다고 성경은 가르친다.(엡1:4-2 ; 고전 2:7 ; 롬8: 29; 행4: 27, 28),
그런데 위의 성경 본문에 나타난 “예정하다” 또는 “미리 정하다”라는 표현은 모두 어느 개인의 구원이 하나님에 의하여 무조건 미리 작정되었다는 개인 예정의 문맥에서 쓰여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타락을 미리 아신 하나님께서 이에 대처하여 창조 전에 세워놓은신 구원의 계획이 역사적으로 성취되었음을 강조하는 역사적 예정의 문맥에서 쓰여졌음을 주목해야 한다. 위의 네 성경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창세전에 예정된 것이 어느 개인의 운명이 아니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도록 예정하셨음이 자명해진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나 택하신 자들의 행사(行事)가 모두 하나님의 “미리 아심”(헬라어Prognosis, 동사는proginosko) 곧 예지(豫知)라는 전제에서 이루어졌음이 다음의 성경 말씀에서도 분명해진다.(롬8:29, 11:2; 벧전1:2, 20; 행2:23)
모순된 이중 예정과 제한 속죄
따라서 누가 구원받고 누가 멸망을 받는 여부가 창세 전에 하나님에 의하여 무조건 미리 작정되어 있어 하나님 공의와 자비를 드러내도록 예정되었다는 무조건적인 이중예정은 성경에도 어긋날 뿐더러 하나님의 속성에도 조화되지 않는다(딤전2:4 딛2:11; 벧후3:9; 요3:16).
칼빈의 예정론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은 인간의 구원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일방적이고 기계적인 하나님의 선택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모순에 빠져 버린다.50 또한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가기를 원하시는 길을 예증된 대로 당연히 가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은 성경에 전적으로 어긋난다(겔33:11; 벧후 3:9; 약1:13; 요일1:5).이상의 여러 성경에 입각한 논증을 종합해 볼 때,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오직 택하신 자들만을 위하여 돌아가셨다”51는 칼빈주의 제한 속죄론(制限贖罪論)은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를 크게 왜곡하는 중대한 과오이다. 필립샤프도, “제한된 속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결과로부터 원인을 추론(推論)한다”52고 지적한 뒤에 “그들은 요한복음3장 16절 요한 일서 2장2절, 디모데전서2장4절, 베드로후서 3장9절 등의 성경 말씀에 대하여 만족한 대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53고 진실을 밝혔다. 최근 일부 칼빈주의 학자들이 이상의 두 세 성경 본문을 예정론의 배경에서 설명하려 하지만 모두 무리한 시도임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의 책임과 심판의 당위성
성경은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다(행2:23; 갈6:7-10; 렘6:19; 마12:36,37; 약2:12,13; 계22:12). 행동은 선택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선택은 의지를 행사한 결과이다. 하나님께서 거듭하여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를 알리시고 순종함으로 생명을 선택하도록 촉구하신 사실은 사람이 가진 자유의지를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바르게 행사하라는 요청인 것이다(신30:19; 수24:15; 사1:16, 20; 계22:17).
불의한 이 세상에서도 선택에 필요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한 것에 대해서 책임을 진다. 정신병자나 어린 아이등 선택의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법에 의한 책벌을 받지 않는다. 하물며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미리 적정해 놓으신 결과에 따라 행동한 것에 대해 어떻게 공의로운 심판을 집행하실 수 있는가? 그러한 주장은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의 당위성(當爲性)을 훼손하는 위험한 가르침이다(전12:14; 마25:31-46; 행17:30,31).
이러한 이유와 근거를 가지고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딤전2:4)기 바라시는 하나님의 소원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베푸시는 은혜를 거역하지 말고, 의지를 바르게 행사하여 믿음으로 반응하도록 가르치는 사람들을 행함에 의한 자력 구원(自力救援)을 시도하는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은54 성경에 어긋나는 크게 잘못된 일이다.
상실할 수도 있는 구원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누렸던 사람도 불순종이나 나태(懶怠)함으로 잃어버린 바 될 수 있다고 성경은 가르친다(고전 9:27; 갈5:4; 빌2:12; 히10:26-29). 성경에 기록된 많은 실례들은 인간이 불신과 반역, 고의적인 불경(不敬)에 의하여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성령의 역사가 거절되거나 소멸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55 하나님의 은혜는 거절될 수 없다는 칼빈의 가르침도 어거스틴에게서 불려 받은 사상이다.56 칼빈이 물려받은 바, 선택받은 은혜의 보존 여부에 대한 어거스틴의 논증은 다음과 같다.
“어찌하여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모두 은총에 순종하지 않는가? 어거스틴은 이에 대하여 예정의 교리를 가지고 답변하였다. 영원전 부터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도록 예정되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형벌을 받도록 예정되었다. 이처럼 예정된 자들의 수는 고정되어 있고 변경시킬 수 없으며, 또한 서로 교체될 수도 없다.”57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거나 받아들이는 근거마저도 예정에 돌림으로써, 입증되지 아니한 논증을 다른 논리의 근거로 삼는 순환논법(循環論法)의 모순까지 범하고 있다. 성경에 맞지 않는 것은 논리에도 어긋난다.
사명과 역할을 위한 선택
성경에는 언뜻 무조건적인 선택이나 절대적인 예정으로 생각되는 표현이나 실례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칼빈의 예정론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로마서 9장에서 그렇게 보이는 실례들을 ?O을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읽어보면 사도 바을이 열거한 바, 하나님에 의한 일방적인 선택과 포기의 실례들처럼 보이는 야곱과 에서, 애굽왕 바로, 이스라엘 민족, 진흙과 토기장이의 실례들이 전혀 다른 의미를 강조하는 문맥에 나타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즉 하나님께서 누구는 구원하고 누구는 멸망받도록 작정하셨다는 것을 설명하는 개인 예정의 문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정하신 절대적인 구원의 계획을 이르는데 필요한 사람들의 역할과 사명을 설명하는 문맥에서 쓰여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이 남보다 의롭거나 선해서가 아니라 값없이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주권(主權)행사에 의한 것이었다(신7:7, 8; 9:11, 16). 이러한 선택의 목적은 그들이 저항할 수 없는 은혜로 말미암아 불가피하게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 아니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오해한 바 치명적인 잘못된 선민 사상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조건 없이 선택하신 목적은 그들을 도구와 통로로 쓰셔서 창세전에 예정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절대적인 계획을 성취시키기 위함이었다(창12:2,3; 18:18; 22:18; 행3:25, 26; 갈3:8). 곧 “아브라함의 씨”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 게 하려 하신 것이었다(창22:18; 갈3:16)
그러나 그들이 사명을 수행하고 약속된 구원을 받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믿음과 순종을 조건으로 한 것이었다. 바로 이 조건을 이루지 못한 채 불신하고 불순종한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이 버림을 당한 것이다(롬9:30-32; 히4:1-3; 3:19; 신7:9-11).
이처럼 잘못된 선민 사상과 비 성경적인 예정에 의한 선택을 믿는 결과가 모두 구원을 위태롭게 하는 잘못이 될 수 있음을 이스라엘 백성의 경험을 거울삼아 깨달아야 할 것이다(롬9:19-24).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불가결(不可缺)한 사명 때문이 였지 그들의 구원을 불가결(不可缺)하게 하신 것이 아니었음이 이미 역사에서 분명해졌다(사49:6; 42:6; 롬9:4-; 히3:7-19; 4:1-11).
옹기장이와 옹기그릇의 실례들
이와 같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사명(使命)과 역할(役割)이 예정과 선택의 목적이었움을 분명히하기 위해, 사도 바울은 용도(用途)에 적절하게 쓰이기 위해 진흙으로 만들어지는 토기(土器)와 그릇을 자기가 원하는 용도에 맞게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주권(主權)을 가진 토기장이의 실례를 들어 설명한 것이다(롬9:19-24).
사도 바울 자신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을 위해 부름 받은 “택한 그릇”이었으며(행9:15), 이러한 선택에도 불구하고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9:27)고 고백하였다. 사도 바울이 구원을 받은 것은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고 순종하며 사명에 충실한 결과였지 구원받도록 예정된 선택의 기계적인 결과가 아니었다(딤후1:12, 4:7,8). 유대인을 바벨론의 포로에서 해방시킴으로 구원의 계획에 한 몫을 감당한 폐르샤왕 고레스의 경우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즉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너를 지명하여 불렸”다고 하셨다(사45:3,4) 그가 구원을 받도록 예정되었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 아니라, 유대인을 통하여 구주를 탄생시킴으로 온 세상이 구원받도록 예정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시키는 일에 그릇처럼 쓰이도록 부르신 것 뿐이다.
바로 왕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착한 바로를 일부러 강퍅하게 하셔서 당신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시는 연극을 하신 것이 아니라 낮선 사람만 보면 맹렬해지는 토사견처럼, 하나님의 새로운 능력을 목격하면 할수록 꺾이기는 커령 더욱 고집이 세지고 사나워지는 성격을 가진 바로를 통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더욱 드러내신 것뿐이다(롬9:17,18).
쌍동이 형인 에서가 장자이면서도 버림을 받은 것은 그가 예정에 의한 선택을 받지 못한 까닭이 아니라, 그의 망령되고 경건치 못한 처신 때문이었다고 성경은 이유를 밝히고 있다(히12:16; 롬9:12-15).
이상에 열거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구원의 계획을 이루는 역할이나 사명을 위하여 선택하신 “택한 그릇”으로서의 선택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inChrist). “그리스도로 말미암아”(through Christ) 구원을 받도록 “창세 전에 ” 예정하심에 따라(엡1:4.5.)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요3:16)신 구원을 위한 예정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속(救贖)의 은혜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구원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이 곧 창세전에 예정된 계획에 따라 구원받도록 선택된 백성인 것이다(벧전2:9).
4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
하나님의 예지예정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계획하신 구원을 이루심에 있어, 세상의 장래와 사람이 어떻게 반응할 것도 미리 아신다(사41:22-26; 44:6-8; 단2:27-29; 마24:25; 요13:10; 14:29; 행2:23; 벧후3:17). 따라서 구원받을 자들을 “미리 아신 자들 이라고 표현했다(롬8:29; 11:2; 벧전1:2).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도록 계획하신 창세 전의 예정과, 복음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의 예지가 함께 작용하여,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롬8:29)다는 예지예정(豫知豫定)의 가르침은 이단의 교리가 아니라 성경적인 가르침인 것이다. 최근 일부 칼빈주의 학자들이 시도하고 있는 “미리 아심”에 대한 예정론적인 해석은 또 하나의 곡해(曲解)임을 자세히 읽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렇듯 모든 것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의 예지하심이 사람의 자유의지 행사에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은 마치 사진기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찍어 놓지만 그 내용은 바꾸지 않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또한 역사가가 지난 날의 사건과 인물을 상세히 알지라도 그것들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 것과도 같다.58 하나님께서는 인간처럼 선입관(先入觀)이나 편견(偏見)에 좌우되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편벽(偏僻)됨도 없으”(대하 19:2)신 공의롭고 공평한 하나님이심에 대한 확신은 구원을 위하여 절대로 필요한 신앙이다.
요한 웨슬리의 공헌
비록 예정론에 있어서, “칼빈의 전제(前提)는 어거스틴의 결론(結論)에 근거”59했을지라도 그것 때문에 예정론이 초래한 모순과 부작용을 모두 어거스틴이나 칼빈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들이 당면했던 그 시대의 과제와 배경을 고려할 때 더욱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실제로 칼빈 자신도 지금 칼빈주의라고 불리우는 많은 주장들에 대해 무척 생소할 것임에 틀림 없다.60
문제는 오히려 상황에 어긋나게 그것들을 분별없이 발전시키고 적용해 온 그 이후의 극단적인 칼빈주의자들에게 있다. 다행한 것은 이러한 자체 모순이 크게 시정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아르미니우스 사후 약 100년뒤에 나타나 그의 가르침을 확신하고 발전시킨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의 성결 운동에 힘입은 바 크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칼빈주의 대부분은 아르미니안화한 칼빈주의다. 그것은 복음적이고 선교적이다.”61라는 평가에 이르렀다. 특히 “이 나라[미국]에 있는 장로교주의는 아르미니안화 되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칼빈주의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62는 사실은 개인의 견해만은 아니다. “온건한 칼빈주의자들은 구원에 특정한 사람이 선택되는 것을 하나님의 예지(豫知)로 돌리면서 성경적인 부름을 진지하게 취급한다.”63 한국 교계에도 이러한 신학적 분위기의 쇄신이 참으로 필요하다. 한국의 많은 칼빈주의 지도자들은 너무 오랫동안 정통이라는 이름으로, 보다 성경적인 칼빈주의자였던 아르미니우스가 반대한 베자(Beza)나 고마루스(Goma-rus)의 극단주의 옹호해왔음을 앞서 살펴본 가혹한 비평들에서 보게 된다.
극단적인 예정론의 폐해
결 론 이러한 극단주의로 치우친 예정론에 관한 신학이 쇄신되어야 할 필요를 다음에 몇 가지로 요약하면서 결론에 대신하고자 한다.
첫째로, 극단적인 칼빈주의는, 칼 바르트(Karl Barth)의 비평처럼, “그리스도를 그들의 선택[예정]교리에서 제거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64 브로마일리(Bromiley)의 분석에 의하면, “그들은 보다 우선적인 하나님의 작정[예정]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와 거의 상관이 없다. 말하자면, 그리스도는 그 작정(作定)들을 이루기 위한 보조로서 ‘이끌려 간다’는 것이다.”65 그리스도가 기초가 되지 아니한 그리스도교는 없다. “신의 작정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구원의 근원이며 원인이다.”66
둘째로, “구원은 반드시 복음적이어야 한다. 즉,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믿는 믿음에 의해 구원을 받는 것이다.”67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그것은 “오직 은혜로”(sola gratia)와 함께 종교 개혁자들이 모처럼 성경에서 찾아낸 그리스도교의 기본 신앙이다(롬 1:16,17 ; 엡 1:7). 극단적인 칼빈주의에서처럼 이 은혜가 믿음을 삼켜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고 또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은총[은혜]은 모든 사람에게 부여되었다. 이것이 선행적(先行的) 은총으로, 인류로 하여금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 은총에 의하여 인간들은 믿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믿을 수는 없다.”68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와 믿음을 상충(相沖)시켜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엡 2:8)임을 성경은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믿음이 사람의 의지에 상관없이 일방적인 선택에 의해 예정된 사람에게만 허용된다는 것은 인위적(man-made)인 신조이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원칙에 따른 신앙이 아니다. 사람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하여 결정되지, 무조건적인 선택에 의하여 결정되지 않는다(요 3:16).
셋째로, 극단적인 칼빈주의자들이 주장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구원받을 사람과 멸망 받을 사람이 하나님에 의하여 무조건 미리 작정되었다면[이중 예정], 어떤 결과에 이르는가? “만약 하나님께서 구원뿐만 아니라 죄의 창시자도 되신다면, 인간은 왜 자신의 나쁜 행위를 고치려고 노력하는가”69 “그것[예정론]은 하나님이 모든 명령의 목적인 성결(聖潔)을 직접적으로 파괴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70는 웨슬리의 말은 경험적이다.
넷째로, 모든 것은 운명에 맡겨 버리는 운명론(fatalism)적인 생각은 또 다른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을 위협한다.
“이러한 ‘결정된 운명’(fixed fate) 신학에는 복음전도의 긴박성이 결여되어 있다. 거기에는 복음전도 계획이 없다(왜냐하면, 인간들을 초대하는 일은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를 거스리는 반항이 되기 때문이다)....일부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은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초대하므로 ‘아르미나안’으로 생각하여 그에게 협력하기를 거부한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무지가 야기하는 혼란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것을 찾기는 어렵다.”71
“값없이 주시는 은혜”(Free Gracee)라는 제목의 웨슬리의 설교는 이러한 모순을 극대화하고 있다.
“만약 ‘선택’이 옳다면 모든 설교는 헛되다. 선택된 사람에게는 설교는 필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설교의 유무에도 불고하고 필연코 구원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설교의 목적은 그들과의 관련에서 볼 때 공허한 것이다. 그리고 또한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설교는 필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설교의 유무에도 불구하고 필연코 멸망하게 된다. 위와 같은 사실은 예정(豫定)에 관한 교리가 하나님의 교리가 아님을 분명하게 증거해 준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효로 만들기 때문이다.“72
그것은 분명히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는 위대한 사명(Great Commission)을 약화시키는 신학적 요인이 될 수 있다.
다섯째, 무조건적인 예정론은 선택받은 개인의 구원을 영원히 보장하는 신학적인 근거로 강조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무도 자신이 예정되었는지의 여부를 결코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처신에 관계없이 자신의 구원에 대해 언제나 의심스러운 상태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모순에 빠진다.73 그것은,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고후 13:5)할 수 있는 방법과,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롬 8:24)음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마지막으로, 자기중심적이고 독선적인 신학의 극단주의는 언제나 형제 그리스도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이단 사냥’(geresy gunting)의 편협한 신학적 분위기를 조성하기 때문이다. 신학적 견해 차이는 성경에 비추어 활발히 토론하고 연구함으로 바르게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 경우에라도 다음과 같은 요한 웨슬리의 정신은 여전히 유지외어야 한다.
“나의 마음이 당신의 것과 같은 것처럼 당신의 마음도 그러한가요?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습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손을 내게 주시오. 견해나 용어의 차이를 무릅쓰고 우리 복음의 신앙을 위해 투쟁합시다.”74
생각하는 “상한 갈대”
판 단 지금까지 장시간에 걸쳐 진행된 예정론에 관한 비평과 변증을 상고(詳考)하며, 마음으로 참여한 독자는 어떠한 이해에 이르게 되었는가? 인간의 영원한 운명이 어떻게 결정된다고 생각하는가? 범죄한 인간은 이미 부러졌고, 하찮은 바람에도 또 다시 부러지는 “상(傷)한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간은 상한 이성과 꺾인 의지를 가지고도 여전히 “생각하는 갈대”가 아닌가? 이 “상한 갈대”위에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성령을 통하여 이슬처럼 임할 때, 놀랍게도 상한 갈대는 반응한다, 반응하고(respond), 반응할 수 있고(responsible), 또 반응해야 한다. 그것이 반응하는 인간,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책임(responsibility)이 있는 인간의 참 모습인 것이다.
인간의 의지는 죄 때문에 독립할 수 없을 만큼 손상되기는 했어도 인간성의 흔적도 없은 만큼 파멸되지는 않았다. 죗됨에 억눌리고, 연약함에 압도되어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만 겉은 부질없는 숙명론(宿命論)에서 벗어나, 상(傷)하기는 했어도, “생각하는 갈대”가 되어야 한다. 상처를 드러내고 아픔을 호소해야 한다. 그리할 때, 마침내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푸”(사 42:2)시며,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데 이르기를 원하”(딤전 2:4)셔서, “독생자를 주”심으로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신(요 3:16)하나님의 사랑을 누구나 경험할 것이다.
이것이 당신에게 나아오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영원한 예정인 것이다. 이 놀라운 변치 않는 예정이 자신의 운명(運命)이 되도록 지금 믿음으로 반응해야 한다. 그것은 누구나 피해서는 안 될 숙명(宿命)인 것이다. 어떤 운명을 택하겠는가?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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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Ibid., 21.
3. Ministerial Association of General Conference of SDA(Washington, D. C.:Review and He-rald, 198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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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Walker, 399.
6. E. F. Harrison(ed.), Baker's Dictionary of Theology(Grand Rapids:Baker Book House, 1982), 417.
7. James Nichols(tr.), The Writings of James Arminius(Grand Rapids:Baker Book House, 1956), 526.
8. Ibid., 253, 254.
9.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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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Baker's Distionary of Theology, 399, 400.
12. Nichols(tr.), 465.
13. 박영관, 254, 255.
14. G. O. McCulloh(ed.), Man's Faith and Freedom(N. Y.:Abingdon Press, 1962), 21.
15. Schaff, 512.
16. Carl Bangs, Arminius(Grand Rapids:Zondervan Publishing House, 1985), 331.
17. 와인쿱, 58. Schaff, 517~519.
18. A. W. Harrison, The Beginnings of Arminianism(1926), 150, 151.
19. 이상의 칼빈주의 5대 교리는 오늘날 장로교회 신조의 근간을 이루는 것인데, 영어표현의 머리글자만을 따서 “튤립”(Tulip)으로 친하기도 한다.
①전적인 타락(Total Depravity), ② 무조건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 ③제한된 속죄 (Limited Atonement), ④불가항력적 은혜(Urresistible Grace), ⑤성도의 견인[보 존](Perseverence of Saints)등이다 라보도 편저. 칼빈주의 신학과 신앙(서울: 성공문화사, 1981), 217,218.
20. Walker,400.
21. Schaff. 513.
22. Ibid.
23. Ibid. 514.
24. Walker, 400. Schaff. 514.
25. Motley, Life and Death of Barneveld, Vol. II, 309, ckted in Schaff, 515.
26. schaff 515l.
27. Ibid.,514.
28. Ibid., 474, 475.
29. Ibid.,475, 476. 전경연, 45, 46,
30. Schaff, 477.
31. C. G. Wiggers, An Historical Presention of Augustinianism an Pelagianism, 368.
32. John Calvin, Tracrs and Treaties on the Doctrine and Worship pf rhe Church, vol.3. 1958, 468, 469.
33 전경연,46.
34. J. L. 니이브. 서남동역 기독교 교리사(서울: 대한 기독교서회.1965),236.
35. Ibid.,
36. Ibid.,235.
37. Ibid.
38. Bengt Hagglund, History of Theology(St, Louis Concordoa Pblishing House, 1968), 146.
39. 니이브.240.
40. Hagglund, 146.
41. Ibid.
42. 박영관, 21.
43. Ibid., 255.
44. Schaff, 516.
45. Martin, 436.
46. 단 4:35; 계4:11; 시135:6; 잠25:1; 행18:21; 롬15:22. 등
47. 기독교 대백교사전 ( 기독교문사, 1985,) Vol 11, 1068.
48. Ibid.
49. John Wesley, Works, VI, 512, IX, 265, Letter, VI,240.
50. Michols(ed), 230.
51. Schaff, 517
52. Ibid.,521, Footnore, 1.
53,. Ibid.
54. 박영관 254, 255.
55. 사63:10; 행7:51; 살전5:19; 히6:4-6; 고후6:1-2,
56. 니이브,233.
57. Ibid.,234.
58. Seventh-day Adventists Believes., 22
59. 와인콥, 36, 37.
60. Ibid.,39.
61. Ibid.,59.
62. "The Debate over Divune Electkon". H. O. Wioey, Christianity Today(Oct., 12,1959), 와 인콥, 71쪽에 인용됨
63. Ibid.,91.
64. "The Debate over Divine Election" Cneostianity Today(oct.,12, 1959),16
65. Ibid.
66. 와인콥, 50.
67. Ibid.
68. Ibid.52.
69. Ibid. 54.
70. Ibid.32.
71. Ibid 63.
72. Ibid. 32.
73. Ibid, 124, 125.
74. Igid.,12
VI 성서적 재림과 비밀 휴거 1. 정통 종말론과 휴거설 2. 비밀 휴거설의 역사적 기원 3. 비밀 휴거설의 성경적 근거 4. 육신적인 이스라엘과 영적인 이스라엘 5. 성서적 재림 신앙의 위상 |
비평 탁명환
“첫째, 재림에는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의 두 단계가 있다. 먼저 예수께서 공중재림을 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죽은 자들이 부활하고 참된 성도들이 순식간에 영화(榮化)하여(고전15:50-54) 하늘로 들려 올리워진다(살전4:16, 17). 이것을 [휴거]라고 부른다. 그리고 지상은 7년 간의 대환난기에 접어들게 된다. 그 기간에 아스라엘 민족은 두 번 공격을 받는다. 첫째는 소련군과 연합군의 침공이다.... 둘째로 부활한 로마제국이 10개국 동맹군을 이끌고 침공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휴거를 믿지 않는 재림파 신도들도 있다. 안식교가 이런 유에 속한다. 그러나 휴거는 성경에 명기되어 있는 것이다.”1
세대주의 종말론의 시나리오
해 설
탁명환 씨는 그의 책 「기독교 이단 연구」에서 이단의 교리를 가려내는 방편으로 자신이 설정한 소위 정통 기독교 진리의 기준이라는 것 열 한개 조항을 제시했는데 그 중 하나가 위에 인용된 자신의 정통 종말론에 의한 재림론이다. 유감스럽게도 탁명환 씨가 정통 재림론으로 소개한 것이 사도 시대이래 기다려 온 성경적인재림이 아니라 영국 성공회 성직자였던 다르비(John Nelson Darby)가 1830년대부터 가르치기 시작하여 기존의 성경적재림 신앙에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소위 “경륜주의(經綸主義 . Dispensatuonalism) 혹은 세대주의(世代主義)재림설 이라는데 충격을 받는다.2 이 세대주의는 다르비 자신이 1859년과 1874년 사이에 여섯 차례나 미국을 드나들며 열심히 보급한 결과3 19세기말에는 미국에도 깊은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인데, 1909년에는 열렬한 세대주의자인 스코필드(Cyeus I, Scifield)가 편찬한 관주성경(the Scofield Reference Bible)까지 출판되어 세대주의를 한층 체계화했다. 1970년대에 50여 개국에서 31개 국어로 번역되어 3천만권이나 팔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베스트 셀러「대유성 지구의 종말」(the Late Great Planet Earth)도 저자인 할린지(Hal Lindsey)가 이러한 세대주의 종말론에 기초하여 쓴 공상소설같은 내용의 책이다.4 탁명환 씨의 재림론이 바로 이 책의 내용과 일치라고 있다.5
내용을 요약하면, 유대인들에게 할당된 다니엘서 9장(25절)의 70주일 가운데 마지막 70번째 주일에 해당하는 1주일인(27절) 7년을 사이에 두고 그리스도께서 각각 다른 모양으로 두 단계에 걸쳐 재림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땅 위에서는 부활한 로마 제국으로 부터 정체 불명의 적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제사제도의 회복과 함께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에6 않아 자기를 하나님으로 자처하는 가증한 일을 행한다고 한다.7 이에 자극 받은 아랍-아프리카, 세력이 일어나고 러시아와 그 동맹 세력이 개입하여 대결한다. 이렇게 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유대인들이 회심하여 그리스도께 돌아오고, 실제의 14만 4천은 복음 전도자로 나아가, 이방인을 돌이키는 대역사가 전개되는 한편,8 로마 연합군과 동방 세력이 대결하는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 위기가 고조에 달하게 된다.9 이 때에 예수께서 공개적으로 지상에 재림하셔서 전쟁을 끝내시고 다시 유대인 위주의 천년 왕국을 이 땅 위에 세우신다는 시니리오이다.10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 교회와 휴거
이러한 종말의 시나리오는 19세기에 소개된 세대주의의 발상(發想)으로 성경의 대지(大旨)와 예언의 대요(大要)를 이해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리둥절하고 역사적인 개신교 신앙을 물려준 종교 개혁자들에게는 기상천외(奇想天外)한 것이다.
탁명환 씨는 이러한 세대주의 재림설을 이단을 판별하는 정통 신앙의 기준으로 삼고 세대주의를 거부하는 안식일 교회를 이단으로 지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준에 의하면 이단이 되는 것은 안식일 교회뿐이 아니고. 세대주의를 들어보지도 못한 루터, 낙스, 칼빈, 웨슬리 등 19세기 이전의 모든 개혁자들은 물론 세대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보다 많은 현대의 보수적인 그리스 도인들도 모두 이단이 되고 만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는 명칭 그대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복음의 절정이요 인류의 가장 복된 소망으로 믿고(딛2:13) 가르치는 것을 가장 큰 사명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는 교회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가르침대로, 모든 눈이 볼 수 있게(게1:7), 모든 귀가 들을 수 있게(살전4:16), 온 세상이 알 수 있게(마24:27) 오시는 영광스러운 재림은 철석같이 믿지만 , 7년 환난기라는 가공적(架空的)인 시기 직전에 소리도 없이, 보이지도 않게, 비밀리에 오신다는 세대주의적인 공중재림을 결코 믿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스도 재림 시에 있을 첫째 부활 곧 의인의 부활과 살아 있는 성도의 홀연한 변화와(고전 15:50-53) 영광스러운 승천(살전4:16-18)은 믿지만, 아무도 모르게 끌어올려, 감쪽같이 지상에서 사라진다는 공상 소설 같은 비밀 휴거는 결코 인정치 않는다. 그 이유를 역사적 고증(考證)을 통하여 밝히고, 성경적인 증거에 의하여 확인할 것이다. 그럼 어느 것이 이설(異說)인지를 그리스도인 지성과 양심에 비추어 밝힐 것이다 다음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안식일 교회의 공식적인 신앙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교회의 복스러운 소망이며 복음의 위대한 절정이다. 구주께서는 문자 그대로(literal), 개체로(Personal), 눈으로 볼 수 있게(visible), 그리고 온 세계적으로 (worldwide)오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죽은 의인들이 부활할 것이며, 살아있는 의인들과 함께 영광스럽게 되어 하늘로 가게 될 것이지만 불의한 사람들은 죽게 될 것이다. 거의 모두 이루어진 예언들과 현재의 세상 형편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 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재림하실 시간은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도록 권면을 받고 있다.”11
종교 개혁자들과 적 그리스도
중세기의 로마 교회가 성경을 신자들이 읽어서는 안되는 금서목록(禁書目錄)에 포함기켜 소유는 물론 자국어로 번역하거나 전하는 행위 일체를 화형(火刑)등 중벌로 다스렸음은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12 그러나 12세기에 알프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개혁자들인 활덴스인들(the Waldensians)과13 14세기 영국의 개혁자 위클립(John Wycliffe), 16세기 독일의 루터(Martin Luther)와 영국의 틴데일(William Tyndale)등 목숨을 내건 개혁자들의 희생으로 마침내 성경이 영어, 독일어, 등 자국어로 번역되어 읽혀지면서 종교개혁의 불길은 세차게 번졌다.
깊어진 성경 연구를 통하여 영적인 시력을 회복하게 된 개혁자들은 중세 교회의 극도로 타락한 성직 제도와 함께 면죄부 제도, 고백성사와 고행(苦行)에 의한 속죄, 공덕(功德)에 의한 구원, 예배를 대신한 제사인 미사, 유물 숭배와 성상(聖像)예배, 마리아의 중보, 연옥 교리와 죽은 사람을 위한 기도. 성자 숭배, 성찬에서의 미신적인 화체설(化體說), 잔인 무도한 종교재판등 온갖 제도가 그리스도교 신앙에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임을 성경에 비추어 확인했다.15
종교 개혁자들은 이러한 배도(背道)를 주도한 중세 교황권(Papacy) 이 다니엘서(7장, 8장, 11장)와 요한계시록(12장, 13장., 17장), 사도 바울의 데살로니가후서(2장)에 일찌기 예언된 적 그리스도의 세력이라고 규정하고 철저한 회개와 개혁을 촉구했다.16 위클립을 비롯하여 17 루터의 동료 개혁자요 성경학자인 멜란히톤(malancthon),18.그리고 예언 연구에는 소극적이었던 칼빈(John Calvin)도 교황권을 적 그리스도로 규정하는 일에는 적극적이어서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이렇게 밝혔다.
“다니엘과 바울은 적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서방 교회에 있어서 이 저주받은 가중한 왕국의 머리를 우리는 교황이라고 단언한다.”22
최초로 원어에서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배포한 죄로 화형을 당한 옥스포드 출신의 학자인 틴데일(d. 1536)도 “로마의 적 그리스도를 그들은 교황으로 부른다.”23고 썼다. 같은 때의 캠브리지 출신의 학자인 바안스(Robert Barnes . d, 1540) 는 교황권을 성경에 예언된 적 그리스도라고 선언하다가 두 동료와 함께 화형에 처해졌다.24
이렇게 중세 교황권을 성경에 예언된 적 그리스도라고 선언하는데 제일 앞장선 것은 역시 루터였다.25 1534년에 출판된 “루터 성경”(The Luther Bible)에는 요한계시록 17장에 나오는 짐승을 탄 음녀에게 교황의 삼층관을 씌워 적 그리스도의 정체를 삽화로 드러냈다.26
성례전이나 교회관 등에는 심각한 이견을 보여 논쟁을 거듭한 개혁자들이 이처럼 다니엘과 요한계시록등 예언 해석에 놀라운 일치를 보인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들이 모두 예언해석에 있어서 역사주의(歷史主義 . Historicist)라는 공통된 원칙을 따랐기 때문이다. 역사주의 예언 해석이란 다니엘서와 요한 계시록에 계시된 예언을, 그것이 쓰여진 때로부터 세상 끝날까지의 역사에서 계속적으로 일어날 일련의 사건으로 해석하는 입장인 데 그것은 이미 성경 전체에 걸쳐 적용되고 역사에서 타당성이 입증된 성경적인 원칙이다.27
유럽전역에 걸쳐 요원의 불길처럼 번진 종교개혁으로 다급해지고 안?w으로 궁지에 처하게 된 중세 교회는 활로를 찾기 휘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했다. 그리하여 1545년 트렌트 종교회의(the Council of Trent)를 열어 세 차례의 회기를 가지며 18년간을 끌었다. 이탤리 출신의 성직자들과 1540년에 탄생한 제수이트(the Jesuits . 예수회) 신학자들이 주도한 이 회의에서 개혁을 촉구하는강력한 소원을 오히려 거절되고 면죄부제도와 연옥의 교리를 비롯한 이전의 모든 교리를 그대로 옹호할 것을 재천명하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비롯한 루터와 칼빈등 개혁자들의 가르침은 저주받을 이단의 교리로 정죄되었다.28 그리고 로마 교회와 로마 교회의 절대적인 권위를 재확인하는 한편 종교개혁을 철저히 분쇄하는 반 종교개혁(Counter . reformstion)의 입장을 확정했다. 그리고 교회와 교황의 권위에 도전하는 모든 이단자들을 징벌하기 위해 1542년 악명 높은 종교재판을 부활시켰으며 마리아에 대한 절대적인 헌신과 로마 교회와 교황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다짐한 스페인 출신 로욜라(Ignatius of Loyola . d. 1556)가 창설한 예수회[제수이트]에 반종교개혁의 과업을 맡겼다.29 종교 문서 출판과 독자적인 성경 연구를 철저히 통제하기 위하여 1564년 강화된 금서목록(Tridentine Index)을 제정했으며, 그때까지 정경(正經)으로 인정치 않았던 다수의 외경(外經)을 포함시킨 라틴어 성경(the Latin Vulgate)만을 공인(公認)하고 로마 교회가 인정하는 성경 해석 외에는 일체 허용하지 않기로 재확인했다.30 이러한 물리적 대응 외에 근본적인 대책으로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예언에 의거하여 교황권을 적 그리스로 선언한 개혁자들의 변명할 여지가 없는 논증을 침묵시키거나 전복시킬 방안을 찾아야 했다. “카톨릭 백과사전”에도 고민이 아래와 같이 드러나 있다.
“개혁자들에게 있어서 특별히 요한계시록은 로마 교회의 교권에 대해 퍼부을 수 있는 공격 거리를 파내는 무진장의 원천이었다. 로마의 일곱 언덕들, 추기경의 자줏빛 복장, 그리고 교황청의 불운한 악습들은 그 적용을 쉽고 마음이 끌리는 것으로 만들었다.”31
교황권을 예언에 명시된 적 그리스도로 끈질기게 적용하는 개혁자들의 일치된 논증을 피하거나 깨뜨리는 최선의 방편은 그들로 하여금 그러한 결론에 이르게 한 역사주의 예언 해석(Histoticist)방법은 전복시키는 것이였다. 이 일은 제수이트 신학자들에게 맡겨졌으며, 곧 이어 두 가지 대안이 제출되었다. 그것이 바로 현대 교회들의 예언 해석을 주도하고 있는 과거주의(過去主義)와 미래주의(未來主義)예언 해석의 기원이며 여기에 비밀 휴거사상을 탄생시킨 세대주의(世代主義)의 뿌리가 숨겨져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개혁자들에 의하여 일치하게 적 그리스도로 지명된 중세 교황권이 다니엘서와 요한 계시록의 예리한 집중 공격을 피하기 위해 이전에 존재했던 사상들을 참고하고 집대성하여 새롭게 창출한 두 가지 예언 해석법이 제시되었는데, 그 내용이 19세기 주석학자인 태너(Joseph Tanner)에 의하여 아래와 같이 요약되어 있다.
“16세기말에 이르러 이러한 과업에 자신을 바친 [로마카톨릭의] 저명한 두 학자가 나타났는데, 이들은 적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들이 교황제도에서 성취되었다는 인식으로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하여 각자 목적은 같지만 방법이 다른 시도들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제수이트 학자인 알카자(Alcazar)는 과거주의 해석방법을 드러내는 일에 자신을 바쳤는데...이로써 그는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들은 교횡이 로마를 다스리기 이전에 이미 이루어진 것이므로 교황권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을 보이려고 애썼다. 한편 다른 제수이트 학자 리베라(Ribera)는 미래주의 해석방법을 끌어들여 교황권에 관한 예언의 적용을 빗나가게 하려고 시도했다. 미래주의 해석은 이러한 [적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들이 교황권의 행적에 관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어떤 초자연적인 개인이 할 일이며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나타나면 3년 반 동안 권세를 쓸 것이라고 주장한다. ... 그러므로 1580년경에 나타난 제수이트 인 리베라는 현대의 미래주의 해석법의 창시자로 간주된다.”32
설명된 대로 제수이트의 나라 스페인 출신의 학자 리베라(Francisco Ribera. 1537-91)는 1950년 500쪽이나 되는 요한계시록 주석책을 출판하여 계시록의 적 그리스도가 교황권 이라는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그는 계시록의 첫 부분은 요한 당시에 해당되는 예언이지만 나머지는 재림 직전에 나타나 성도를 핍박하고 모욕할 무신론적인 인물인 적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활동하는 3년반 동안 이루어질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간동안 그는 하나님처럼 행사하고 세상을 다스리며 예루살렘에 성전이 재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33 탁명환 씨가 정통 재림론으로 소개한 세대주의 자들의 요한계시록 해석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내용임을 쉽사리 알 수 있다.
또 다른 스페인의 제수이트 학자인 알카자(Luis De Akcazar . 1554-1613)는 리베라의 미래주의 해석이 교황권을 옹호하는데 미흡하다고 생각하면서 40년에 걸쳐 연구 끝에 9백쪽의 분량의 요한 계시록 주석 책을 썼다. 그는 계시록의 전반부를 유대인 거절과 예루살렘 멸망에 관한 것으로 후반부는 이교 로마 의 멸망과 그리스도교 의 개종에 관하 것으로 돌려 중세 로마 교회와는 상관없는 예언으로 만들었다.34 또한 계시록의 (11, 12장) 1260일은 과거에 유대인 그리스도인을 핍박한 기간으로 , 다니엘서의 같은 기간인 “한때, 두때, 반때”(단7:25)는 과거에 시라아왕 안티오커스(Antiochus Epi-phanes)가 유대인을 핍박한 기간으로 돌려 교황권이 다니엘서와 요한게시록의 적 그리스도로 해석될 시간적 소지를 없앴다. 35이것이 오늘날 대부분의 다니엘서 주석에서 발견되는 과거주의 해석의 기원이다.
위에 제시한 역사적 고증은 카톨릭 학자에 의해서 도 아래와 같이 확인되고 있다.
“1591년 제수이트 인 리베라에 의하여 설립된 미래주의 해석 학파는 적 그리스도, 바벨론,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그리스도교 시대 끝에서 찾고 있다. ... 1614년 제수이트인 알카자에 의하여 설립된 과거주의 해석 학파는 요한계시록을 예루살렘 멸망과 로마제국 멸망으로 설명하고 있다.”36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기초를 놓고 종교 개혁자들이 발판을 삼은 역사주의 성경 해석은 제수이트학자들이 창출한 미래주의와 과거주의에 의하여 끝입없는 도전을 받으며17세기와 18세기를 경과했다. 37 19세기에 걸쳐 개신교 신학은 성경의 영감을 부인하는 고등 비평에 문을 열었고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대부분 과거주의(Preterist)로 돌아섰다.38 그리고 복음주의 학자들마저도 미래주의 (Futurist)에 관심을 고조시켰다.39
이러한 신학의 조류에서 영국 성공회 성직자였던 다르비(John Nelson Da-rby)는 미래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고 1827년 성공회를 떠나 “플라머스형제들”(Plymouth Brethren)로 알려진 작은 그리스도인 집단의 지도자가 되어 개신교식 미래주의를 발전시켰다. 그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우신 은혜의 언약이 당연히 지니고 있는 일관된 통일성을 무시하였다. 그리고 구속의 역사를 구속의 경륜이 서로 다른 대략 일곱 세대로 나누어 각각 다른 구원의 조건을 제시하는 현대의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를 창시했다. 40 세대주의자들은 신약의 교회가 구약의 이스라엘을 대신하는 영적 이스라엘임은 부인하고 배도한 유대인이 마지막 때에 회심하여 그들의 본래의 세대로 돌아오기까지 막간(幕間)을 채우는 이질적(異質的)인 세대로 간주하였다.
위에 설명된 세대주의자들의 경륜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임으로써 일시 끊어진 다니엘서 9장(24-27)의 69번째 주(周)가, 세상 끝이 거의되어 교회 세대가 마치게 되는 때, 마지막 남은 1주인 70번째주(周)와 다시 연결되어, 예언 상으로 7일에 해당하는7년간의 역사가 유대인을 위주로 마쳐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구약의 이스라엘 세대에게 할당된 70주 가운데 69번째 주와 70번째 주 사이에 끼여들어 거의 1천 9백년 이상을 지낸 이방인 위주의 신약 교회가 유대인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기 위해 역사의 무대에서 조용히 퇴장하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 비밀 휴거(Secret Rspture)라는 기발한 신학적 발상인 것이다. 결국 세상 끝의 마지막 1주인 7년동안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적 그리스도에 관한 여러 예언들이 문자적인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성취된다고 가르침으로써 중세기 1260년간의 영적 암흑시대를 주도한 중세 로마교황권의 역사와 행적은 예언에서 흔적도 없이 말소된 것이다.
참으로 성경에서 근거를 찾은 종교개혁에 부딪혀 곤궁에 빠졌던 중세 교회가 적 그리스도의 신분을 은폐하기 위해 파 놓은 신학적 함정에 개신교회가 여지없이 빠진 것이다. 적어도 20세기에 들어서 발간된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 주석들을 살펴보라. 거의 하나같이 과거주의나 미래주의[세대주의]해석으로 일관돼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종교개혁 전후의 주석 책들과 비교해보라 어떤 일이 개신교 신앙에 일어났는지 알게 될 것이다. 다음은 19세기말 요한계시록 주석을 쓴 학자인 태너(Joseph Tanner)의 개탄이다.
“오늘날 미래주의 성경해석법을 고수하고 옹호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개신교도들로서 로마교회의 손에 이용되어 교황권이 적 그리스도로 탄로되는 것을 막아주는 일은 돕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래주의는 성령께서 교황권에 찍어 놓은 낙인을 말소시키는 일을 시중들고 있다’ 는 말은 적절하다.”41
현대 미국 개신교계 신약학을 대표하는 학자인 풀러 신학교의 래드(G. E, Ladd) 교수도 세대주의 와 비밀휴거를 19세기에 발생한 비 성경적인 가르침으로 평하는 잘 알려진 책 “복된 소망”(The Blessed Hope)을 써서 20세기 신학계의 정평을 얻었다. 그는 이 책에서, 스페인의 제수이트 학자인 리베라가 중세 교황권을 적그리스도라고 확인하는 개혁자들의 예언 해석에 대항하기 위하여 고대의 미래주의를 끌어들인 첫 번째 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현대의 많은 미래주의자[세대주의자]들은 “충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42 이러한 세대주의를 비성경적이요 개신교 신앙에 전적으로 어긋나는 것으로 비평하는 점에서는 현대의 칼빈 신학을 대변하는 벌코프(Louis Berkhof)나43 훼케마(Anthony Hoekema) 씨도 마찬가지 입장이다.44
보수적인 개신교의 오랜 역사를 가진 한국 교회의 강단에 이러한 역사적 뿌리와 사연을 가진 세대주의 비밀 휴거설이 성경적인 재림신앙을 대신하여 난무(亂舞)하고 있다. 게다가 신자들을 성서 신앙으로 선도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는 개신교 신앙 연구기관 도서가 이러한 세대주의 비밀 휴거설을 그리스도교의 정통 재림론인 것처럼 공공연히 소개하고 있으니 도대체 어찌된 현실인가? 종교개혁의 역사를 망각한 개신교회는 개신교로서의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다. 중세 로마 교회가 엄청난 대가를 치른 종교개혁에도 불구하고 그후 교리적으로 달라진 것을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대하여 개신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강권된 깊은 영적 부담을 느껴야 할 것이다.
비평 탁명환
“재림에는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의 두 단계가 있다. 먼저 예수께서 공중 재림을 하면 그리스도안에 죽은 자들이 부활하며 참된 성도들은 순식간에 영화(榮化)하여(고후15:50-54) 하늘로 들려 올리워진다(살전4:16-17). 이것을 [휴거] 라고 부른다. 그리고 지상은 7년 간의 대환난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휴거는 성경에 명기되어 있는 것이다(살전4:17).”45
두 단계의 재림 설과 성경의 표현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비밀 휴거가 있게 되면 실제로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조종석에서 예고 없이 사라진 조종사들과 운전하던 중 값지기 없어진 운전자둘, 함께 있다가 졸지에 자취를 감춘 부부와 자식 등으로 빚어지는 대 혼란과 경악은 전율을 느끼게 하는 영화로 제작되기까지 했다. 참으로 이러한 공상영화같은 비밀 휴거가 성경에 근거한 올바른 가르침인가?
변 증
가, 다시 인용한 탁명환씨의 비평에도 두번씩이나 표현되었듯이 세대주의자들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 17절의 말씀을 근거로 비밀 휴거를 주장하고 있다. 이 성경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 17).
이 말씀 속에 비밀“휴거”를 뒷받침한다는 “공중” 이라는 표현과 휴거(携去)를 암시하는 “끌어 올려”라는 말씀과 “강림(降臨)”이라는 표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대주의자들에 의하여 새로운 뜻으로 쓰이는 “휴거”(rapture)라는 말은 성경의 용어가 아니라 중세 로마 교회의 공인(公認) 성경 라틴어 성경(the Latin Vulgaie)의 번역(rapiemur)에서 유래했을 뿐이다.46
나, “강림”이라는 말의 헬라 원어는 “파르시아”(parousia)인데, “오심”(co-ming), "도착“(arrival), ”임재“(presence)를 뜻한다.47 그런데 세대주의자들은 이 용어가 7년 환난기 직전에 있다는 휴거 때의 비밀 공중 재림만을 뜻하고 7년 환난기 끝인 있다는 공개적인 지상 재림은 다른 용어들인 “나타남”(reve-Lation)을 뜻하는 “아포칼립시스”(apokalypsis)나 “출현”(manifestation)을 뜻하는 “에피파네이아”(epiphaneia)로 구별하여 쓴다는 무리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같은 교회에 보낸 서신인 데살로니가전서 3장13절에는, “그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파루시아]하실 때에”로 쓰여 있어 “파루시아”가 오히려 그들이 말하는 7년 환난기 끝에 “성도들과 함께” 오시는 공개적 재림을 뜻하는데 쓰이고 있다. 또한 데살로니가 후서2장 8절에도,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파루시아]하여 나타나심[에피파네이아]으로 폐하시리라”고 쓰여졌다. 즉 적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불법 한자” 가 죽임을 당하는 것은 예수님이 “강림” 하실 때라고 했는데 세대주의자들에 의하면 이런 일은 첫 번째의 비밀 강림[파루시아]하실 때라고 했는데, 세대주의자들에 의하면 이런 일은 첫 번째의 비밀 강림[파루시아]때가 아니라 두 번째의 공개적 재림 때에 일어나야 한다. 뿐만 아니라 만약 이렇게 적 그리스도가 예수께서 비밀리에 “강림”[파루시아]하실 대 죽게 된다면, 그 다음에 오는 7년 환난기 동안 적 그리스도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로 되어있는 세대주의 종말의 시나리오는 망쳐질 것이다. 게다가 같은 사건인 “강림[파루시아]하여”와 “나타나심[에피파네이아]” 사이에 7년의 기간이 걸리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다, 세대주의자들은 “강림”[파루시아]은 비밀 휴거시의 공중 재림을, “나타나심”[아포칼립시스]은 7년끝의 지상 재림을 가리킨다고 구분한다. 그러나 마태복음 24장 37절에서 우리는,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파루시아]도 그러하리라”는 말씀을 본다. 그런데 똑같은 내용의 말씀이 누가복음17장 26, 30절에는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나타나는[아포칼립시스]날에도 이러하리라” 고 쓰여 있다. 누가 보아도 같은 사건이다. “임함”과 “나타남” 사이에 7년 간격이 있을 수 없다.
라, 세대주의 자들에 의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다리고 소망으로 삼아야 할 것은 , 7년환난기 끝에 있을 지상 재림이 아니라 부활과 휴거가 있게 되는 7년 환난기 전의 “강림”[파루시아]이다. 그러나 디도서 2장13절에 소개된 “복스러운 소망”인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은 “에피파네이아”이다. 디모데전서6장 14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고린도전서1장7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심을 기다림이라” 하셨는데 이 곳의 “나타나심”은 “아포칼립시스”이다.
이 모든 예증에서 분명해진 사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표현하는데 쓰여진 이러한 세기지 용어가 모드 동일한 재림을 묘사하는 동의어(同義語)인 것이다.48 절망에 빠진 인류의 하나밖에 없는 소망인 재림을 두개로 쪼개어 초점을 흩어놓는 것은 너무나 큰 신학적인 과오요 불행이다.
가, 세대주의자들이 비밀 공중 재림과 비밀휴거의 근거로 삼고 있는 데실로니가전서 4장15-17절에는 비밀이 있을 여지가 없다 래드(Ladd)의 말대로.
“[살전4:15-17]. 이성경 구절에서 그리스도의 비밀 재림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호령“(號令. shout)을 수반할 것이다. 어떤 사람의 말처럼 그 호령과 나팔 소리는 죽은 사람도 깨울 만큼 큰 소리일 것이다.”49
들리지 않는 호령은 호령이 아니고 소리나지 않은 나팔은 나팔이 아니다(마24:31).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15:51, 52), 죽은 의인들이 부활하고 살아 있는 성도들이 변화되어 승천하는 일은 비밀리에 소리 없이 이루어질 일이 아니고 “나팔 소리”가 날 때 일어날 일들이다. 비밀 강림이 아니라 극도로 “떠들썩한 ”재림이될 것이며 비밀 휴거가 아니라 가장 떠들썩한 승천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에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파루시아]도 그러하리라”(마24:27) 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강림[파루시아]은 온 세상이 묵도할 수 있는 공개적인 사건임이 분명하다.
나, 비밀 휴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께서 “밤에 도적같이”(살전5:2; 눅12:39) 오신다는 말씀들을 비밀 재림과 비밀 휴거의 표현으로 강조한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벧후3:10)라고 표현된 말씀에서 “도적같이”의 뜻이 “소리없이” “아무도 모르게”의 뜻이 아니라“갑자기”라는 뜻인 것을 알게 된다.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 알았더면”(마24:43)이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서도 그것이 시간에 관계된 표현임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성경에는 도적이 오는 것처럼 때를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재림은 강조되었어도 소리없이 이루어지는 비밀 재림이나 비밀 휴거는 언급된 적도 없다.
비밀 공중 재림과 비밀 휴거를 주장하는 세대주의자들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마24:40, 41)이라는 말씀을 자주 인용한다. 이 말씀의 뜻이 두 사람이 함께 있다가 한사람은 상대방이 모르게 비밀리에 사라진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까지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아무 구분없이 한데 어울려 살지마는 홀연히 재림하실 때에는 준비 여부에 따라 운명을 달리하는 영원한 분리가 이루어짐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 말씀의 문맥이 시작되는 바로 앞 성경절과 끝난 다음의 성경절에서 그 뜻이 분명해진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 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24:37-39). (40,41절 본문).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42,43절).
이 모든 표현이 그리스도의 재림과 노아 홍수의 유사점을 직접 비교하는 문맥에서 쓰였음을 쉽사리 알게 된다. 믿음으로 준비되어 방주에 들어간 사람은 홍수에서 구원을 받았듯이, 믿음으로 재림을 준비한 사람도 마지막 파멸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다. 방주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버려진 사람들은 홍수로 파멸되었는데, 재림하실 때 준비되지 못하여 휴거 때에 “데려감을 당하지” 못하고 “버려둠을 당”한 사람들은 비밀 휴거론자들의 말대로라면, 다시 7년 동안을 땅에 머물며 재차 구원을 준비할 수 있는 집행유예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말인가? 같은 문맥이 계속되는 51절에는 이렇게 준비를 게을리한 종에게 “생각지 않은 날 알지못하는 시간에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율(律)에 처하” 겠다는 마지막 선고가 내려졌다. 간은 내용이 쓰여진 누가복음 17장에는 “바려둠을당”한 사람의 운명을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 님께서는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 가 모이느니라”(34-37절) 고 대답하심으로써 그들의 종말을 밝히셨다. 재림 후에 적어도 7년간은 구원받을 수 있는 은혜의 집행유예가 계속된다는 가르침은 성경에 전혀 근거가 없는 철저한 거짓이다(그후6:1,2)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에서,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2:3), 곧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2:4)이라고 주장하는 적 그리스도라 “나타나기 전에는” “주의 강림(파루시아)하심”이절대로 먼저 있지 않으므로,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童心)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말고 이러한 말에 미혹되지오 말라고 엄중히 권고하였다(2:2). 그런데 세대주의 휴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의 적 그리스도가 비밀 공중 재림이라는 “강림”(파루시아)후 7년 환난기 동안에 나타난다고 가르치니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뿐말 아니라, 이러한 적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때에 관하여, 그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살후 2:7)고 표현함으로써 적 그리스도가 사도바울 시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나타날 것을 암시했다. 만약 휴거론자들의 말대로 거의 2천년 후인 마지막 7년 환난기에 나타날 적 그리스도를 바울리 그렇게 표현했다면 그것은 성경의 문맥에 어긋나고 이치에도 전혀 맞지 않는 말이다.
비밀 휴거를 주장하는 세대주의자들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대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지상에서 옮겨짐으로써 환난을 모면한다는 이른바 전 환난설(Pretribulationism)을 주장하고 있다.50 그러나 성경 어느 곳에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말씀이 없다. 예수님의 감람산 설교에도 오히려 성도들이 환난을 당할 것이나 하나님께서 도움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고(마 24:9, 21, 22),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에서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요 16:33)고 말씀하신 것은 마지막 날에도 적용된다.
비밀 휴거를 믿는 세대주의자들은 이러한 전 환난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다음의 요한계시록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免)케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계 3:10). 이 말씀을 잘못 적용하여 성도는 마지막 7년 대환난 전에 휴거하여 땅을 떠남으로써 환난을 모면(謀免)하게 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지키어...면케 하리니” 번역된 헬라어(t?reoek)가 그러한 뜻이 아님을 같은 말이 쓰인 요한복음 17장15절에서 확인하게 된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않게 보존하시기를(t?reo...ek)위함이니이다.” 악한 세상에 설 수박에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죄와 악의 세력에서 지키신단는 말씀이다. 지키시는 반법은 무엇인가? 계시록에는,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켰음즉 ” (3:10)이고, 요한복음에는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진리니아다”(요17:17)로 표현되어, 결국 같은 내용이다.
또다시 요한계시록에서도 힌옷을 입고 잇는 구원받은 큰 무리를 설명하면서,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자들”(7:14)이라고 언급했다, 휴거론자들은 이들이 마지막 7년 대 환난을 겪은 뒤에 구원 을 받게 되는 유대인들을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성경 구절과 같은 문맥인 9절에는 이들이,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범세계적이요 범민족적인 무리라고 밝힘으로서 휴거론자들의 주장에 여지를 주지 않는다.
비밀 휴거를 주장하는 세대주의자들의 종말의 시간표는 다니엘서 9장24-27절에 언급된 70주일에 관한 예언에 모든 기초를 두고 있다. 디니엘서에 언급된 70주일 기간은 70년간 의 바벨론 포로(렘29:10)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다시 한번 허락된 마지막 은혜의 기간이다.(9:24) 70주일이 실제의 날수 계산으로는 70×2=490일 이 되지마는, 이와 같은 상징적인 예언 상의 1일은 1년으로 환산되는 성경 해석의 입증된 원칙에 따라 (민14:34 ; 겔4:6) 실제는 490년이 된다. 이러한 70주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먼저 무너진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단9:25) 시작되어 처음 7주일인 7×7=49년은 예루살렘을 중건하는 일에 쓰이고, 그 다음의 62주일인 62×7=434년은 일직이 구약 성경에 약속된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25절)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준비하고 가다리는 가간으로 배정되어다. 이모든 일들은 그후의 역사에서 그대로 성취되었다.
실제로 기원전 4년경에 탄생하신 예수께서는 51“30세쯤”(눅3:23)되신 서기 27전 가을에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셨다.52 이때 “성령이 형체로 비들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눅3:22)하셔서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행10:38)심으로 예수께서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단9:25)를 뜻하는 히브리어의 “메시아”, 헬라어의 “그리스도”의 일을 시작하신 것이다(행10:36-38)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은 다니엘서 9장25절에 예언된 메시아의 “때가찼”(막1:9, 15)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이제 다니엘서 9:25에 언급된 70주 가운데 남은 한 주일인 (70-7-62=1) 7년간 동안에 무슨 일이 이루어 질 것인가?
가. 다니엘서 9장26절에서 “62주일 후”인 서기 27년 이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고 언급된 후, 27절에서 이 사실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개략(槪略)을 먼저 소개하고 뒤에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 논증을 마무리 짓는 “해설적인 반복”(re-petition with elaboration)은 히브리 문학의 특징으로 53 예언서에 특별히 적용되고 있다. 그리하여 27절에는 서기27년 가을에 침례를 받으심으로 메시아의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께서 하실 일이 이렇게 예언으로 설명되어 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래[1주일]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 이레(1주일)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이레의 절반”은 7÷2=3.5로 곧 3년반이 된다.
나. 그렇다면 침례 받으시고 메시아의 공생애를 시작하긴 서기 27년 가을부터 3년반이 되는 서기 31년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인간이 범죄한 이래 장차 오실 약속된 메시야를 상징하여 드려 온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는 사건이 발생한다는 예언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르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왔나이다”(히10:5-7)라는 말씀에서 그 뜻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이 말씀대로, “이[구약]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히10:12) 심으로써,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히10:18). 얼마나 분명한 사실인가? 과연 예수 님께서는 성만찬과(마26:28) 십자가로 구원의 “언약을 굳게 정하”(단9:27)사 자신의 피로써 비준(比準)하셨고, 돌아가실 때 성전 휘장이 찢어짐으로써 “첫것[제사제도]을 폐하심”(히10:9 ; 마27:51)을 확인하셨다.54
다. 그리고 돌아기신지 3년 반 후인 서기34년 , 새언약의 복음을 끝까지 거절한 유대인 지도자들을 향하여 언약 위반 소송(covenant lawsuit)을 제기하던 스데반이 산해드린 공회의 판결에 다라 돌에 맞아 죽음으로서(행7:51-60) 유대인을 위한 70주일[490년]의 기간이 끝나고 곧 이어 일어난 핍박과 함께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다.(행8:1~
라. 이리하여 택한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은혜의 기간은 아주 끝나게 되었고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민족으로서는 더이상 택한 백성이 아니 였다.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십자기에 못박아 죽인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기”(마21:43)게 되었고,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마23:38)고 선언 되었으며, 이러한 이스라엘의 운명을 미리 바라보신 예수 님은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고 우”(눅19:41)신 것이다.
과연 서기 70년 예루살렘은 다니 엘서 9장26, 27절에 예언된 대로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는 일이 일어났다. 반역을 거듭한 유대인들을 징벌하는 로마 제국의 군대들에 의하여 성전은 불타서 잿더미가 되고 110만명 이상의 유대인이 포위된 예루살렘 성안에서 참혹한 최후를 맞았다.55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24:3)는 예수 님의 말씀은 물론 예루살렘 멸망에 관련된 다니엘서의 여러 예언들(8:11-13; 9:26,27; 11:31)이 졸지에 성취된 것이다.
지금까지 제사한 다니엘서 9장의 70주에 관한 예언과(25절) 마지막 1주인 7년에 관한 해석이(26, 27)확실하고 참되다는 최후의 확증(確證)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분명히 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 의하여 그렇게 확인되고 있다. 지상 생애의 마지막 주간, 서기 70년에 이르게 될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면서 다니엘서 9장27절의 예언을 이렇게 직접 인용하셨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 진저],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 지어다”(마24:15,16). 다니엘서에 언급된 “멸망의 가증한 것”도 당시의 예루살렘 멸망에 직접 적용되어 분명히 확인되었다.(눅21:20) 예루살렘 멸망이 온 세상의 멸망을 예표(豫表)한다는 점에서 이차적인 적용은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이 구절에서 예수 님께서는 로마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될 당시의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는 일에 다니엘서 9장26, 27절의 예언을 직접 적용하신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동시에, 유대인 에게 할당된 70주에서 69번째 주와 마지막70번째주 사이에, 거의 2천년에 가까운 이방인 교회 시대를 끼워 넣은 뒤, 마지막 1주일인 7년에 “7년 대환난” 기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7년 환난기의 앞과 뒤에 있다는 “비밀 휴거 강림”과 “공개 지상 재림”등 두 단계의 재림 설까지 창출(創出)해낸 휴거론 곧 세대 주의는 얼마나 허구(虛構)한 인간적인 착상(着想)인가? 게다가 메시아의 공생에를 시작하신 지 정확히 “이레의 절반”(단9:27)인 삼년반만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인간을 위한 구속(救贖)을 이루시고 구약의 “제사와 예물” 을 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유한 자리에 천부당 만부당하게도 적 그리스도를 세우다니 이 무슨 이변(異變)인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엿도다. ”(마22:29) “너희가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눅10:26).
현대의 세대 주의를 대표하는 저자로 “대유성 지구의 종말” 을 써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할린지(Hsl Lindsey) 는 1970년 세대주의 종말론이 만들어 낸 시나리오에 따라. 이러한 비밀 휴거가 현대 이스라엘이 형성된 1948년을 기점(基點)으로 “40년 이내에 일어날 수 있다”56는 국적인 예언을 발표했다. “40년”이란 기간은 마태복음의 “무화과나무 비유”에서 “이 세대가 지나가기전 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마24:34)는 말씀에 군거하여, 한 세대를 40년으로 잡고 1948년에 “비밀휴거”를 경혐할수 있는 마지막 세대가 시작되었다고 선언했다.57
그러므로 1948+40=1988년에 서 7년 환난 기를 감한 1988-7=1981년쯤에는 “비밀 휴거” 가 있어야 할 것으로 계산하였다. 58 이러한 계산과 확신은 그의 또다른 책 “1980년대: 초(秒) 읽기에 들어간 아마겟돈”(The 1980S : Countdown fo Armaeddon) 에 드러나 있다.59 그러나 이 연대들은 이미 지나갔고 1988년도 악간의 흥분을 일으키며 별 일이 없이 지나 같다. 1983년에 출판된 또 다른 책에서 그는 한층 풀이 꺾인 막연한 표현으로 “이 책을 읽고있는 사람들은 살아서”휴거가 환난 전에 있을지 도중에 있을지 혹 후에 있을지 에 대한“ 대답을경험할수 있을 것이다.”60
라고 썼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순이 드러나는 휴거설의 허망(虛妄)함을 깨달은 많은 세대주의자들이61 근년 에 들어 성경의 본래 재림 신앙으로 급속히 복귀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62
그런데 국내외의 한국 교회는 시효가 지난 때늦은 휴거설을 뒤늦게 수입하여 분별없이 휩쓸리고 있으니 어찌된 영문인가? 보수 개혁 신앙을 표방하는 모 교단의 총회 장과 신학교 학장을 역임한 것으로 소개된 교계 인사가 인도하는 “7년 환난과 휴거-종말론 대 부흥회”를 알리는 전면 광고가 일간 신문을 채우고 1992년을 비밀 휴거의 역사적인 해로 에고하고 있다.65 또다른 교단의 선교회에서는 몇주째 계속되는 신문광고 특별 연재를 통하여, “성도가 휴거가 무엇인지 모른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64 이러한 휴거가 일어나면 , “남아 있는 가족들은 실종 신고하느라 정신없을 것이며, 전 세게 가 떠들썩하게 될 것”66 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이 모든 오해와 이 모든 혼난 에 대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참으로 “너희가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눅10:26).
이렇게 성경에는 군거가 없는 두 단계 재림과 비밀 휴거 등 기상천외(奇想天外)한 착상이 어떻게 나왔는가? 그것은 분명히 미래주의 예언 해석의 새순인 세대 주의가 낳은 기형(畸形) 신학으로 다음과 같은 성경 해석의 기본적인 원칙을 알지못했거나 이를 무시한 까닭이다.
가 .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들은 그들의 순종을 조건으로 하는 조건적(conditional)인 것이 였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Ifyou woll obey...), 너희는 열국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도리라”(출9:5), 신명기7, 8장과 27-30장등 의 말씀은 이러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렘18:6-10)
나, 고대의 이스라엘은 불순종 함으로서 이러한 조건에 응하는데 실패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박음으로서 택하신 나라와 백성의 신분을 상실했다(마21:29. 43; 23:38). 그것이 유대인에게 배정된 마지막 은혜의 기간인 다니엘 9장의 70주의 의미였다.
다, 신약의 교회는 구약의 “육신적인 이스라엘” 을 대신하여 들어선 “영적 이스라엘” 이 되어, 구약의 모든 약속을 물려받은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벤전 2:9)가 된 것이다 (갈3:29; 롬9:6-8; 2:28, 29).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구분은 영원히 없어졌으며(엡2:8-22; 갈3:28; 롬10:12). 그들이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으나 국가적으로나 민족적으로는 더이상 택한 백성이 아니 였다(행13:46; 롬4:13,16; 골2:11; 빌3:3).
라. 따라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스라엘도 역시 영적 이스라엘인 신약의 교회를 가리킴이 분명해야 하는데, 요한 은 이 사실을 처음부터 인정하여 베드로나(벧전2:9) 바울처럼 당시의 교회들을 구약의 이스라엘의 개념으로 부르고 있다(계1:6; 5:10). 또한 그것이 사도 교회의 통일된 원칙 이였다.(행2:16-22; 13:47; 15:13-17). 따라서 바벨 론도 고대 바벨론이 아니라 영적 바벨론이 되었고 (17:5), 바벨론이 그 위에 건설된 유프라테스 강도 영적인 의미임을 확인하고 있다(16:12-17:1,5,15). 물론 예루살렘도 고대 예루살렘이 아니고 하늘에 잇는 새에루살렘이 된 것이다(21:2, 30; 12:22,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대주 의자들은 세상 끝날 까지 하나님의 모든 약속과 계획이 육신 적인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신약 시대에 끼어 들어온 이방인 중심의 교회는 돌아오는 유대인에게 지라를 내어 주기 위해 비밀 휴거를 통하여 조용히 퇴장시키는 연출(演出)을 필요로 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은 천년 왕국 기간은 물론 그이 후의 영원한 왕국에서도 존재한다고 하니 참으로 곤혹스럽다.67
마. 그리하여 고대 이스라엘에게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도록 계획하셨던 약속들이 성격에 따라서 영적으로 혹은 실제적으로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를 통하여, 어떤 것은 이 세상 역사에서, 어떤 것은 다가올 새땅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동의 예루루살렘이 아니라. 새 예루살렘에, 유대인이 아니라, 그 자리를 대신한 그리스도의 교회에 사랑과 충성을 다할 것이 기대되는 것이다.
재림의 진상과 경고
결 론
지금까지 우리는 한국교회의 재림 신앙에 일대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현대판 미래주의 예언 해석에 속하는 세대주의 재림론의 창작인 비밀 휴거설의 역사적 뿌리와 성경적 근거를 확인했다. 무엇보다도 의미라 분명하고 초점이 뚜렸해야할 인류의 유일한 희망인 그리스도의 재림이 어느 때보다도 임박한 지금 이러한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은 진정한 그리스도인 들에게는 참으로 불행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렇게 될 상황에 대하여 미리 말씀하신 예수님의 경고와 진상(眞相)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파루시아]도 그러하리라. 주검이 이 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이느니라....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24:25-31)
이것이 재림하실 주체이신 예수께서 당신의 재림에 대하여 친히 하신 말씀이다. 세대주의 자들이 주장하는 비밀 휴거 때의 임하심[파루시아]과 용어는 같지만, 방식과 내용은 전혀 다른 재림이다. 믿지 말아야 헐 거짓 재림이 있기 때문에 믿어야 할 참된 재림을 “미리 말”씀하신 것이다. 다음은 마지막에 사는 성도들이 환난을 겪은 후에야 맞이하게 될 성경 적인 재림의 진상이다.
?승천하신 때처럼 실제로(literal) 개체를 가자고(personal) 오심(행1:11;요14:3)
?모두가 눈으로 볼 수 있게(visible) 공개적(open)으로 오심(마24:27; 계1:7).
?구름을 타고 공중에 임하심 (설전4:17; 마 24:30).
?찬란하고 영광스럽게(glorious)오심 (마16:27; 24:30),
?갑자기(sudden), 예기치 않았던(unexpected) 때 오심(살전5:4-6 마24:38, 39, 43).
?하늘과 땅에 엄청난 격변(激變)을 일으키며(cataclysmic) 세계적으로(worldwide) 오심(계 6:14; 벧후3:10; 계16:18).
어느 한곳, 어느한 표현에서도 비밀 휴거의 암시나 두단계 재림의 개념이 깃들인데다가 없다. 비밀 휴거나 비밀리에 공중에 재림하신다는 주장은 성경에 발붙일 대가 없다 한 치도 없다.
유일한 복된 소망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마24:3)/ 지상 생애의 마지막 주간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인 감람산 설교의 주제는 마지막에 관 한것이였다. 마지막에 관 한 올바른 이해는 호기심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다. 그처럼 졸지에 홍수가 이르러 세상이 끝날 줄 알았다면, 홍수가 이르기 직전까지 사람들이 분별없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잡가”(마24:38)는 일을 계속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 마지막에 대하여 잘못된 믿음과 지식을 가지고 종말의 실상을 바로 “개 닫지 못”(39절)한 까닭이다.
종말에 관한 진상을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24:4)는 말씀으로 대답하셨다. 그리스도의 나타나심과 연관된 마지막에 대한 사건이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5절]는 말씀은 참으로 경각심을 일으킨다. 영혼불멸설을 믿게 함으로서 개인의 종말에 관해 속임수를 쓴 사단은, 여호와의 증인들의 공중 재림, 세대주 의자들의 비밀 강림과 비밀휴거, 지상의 천년 왕국 등 오도된 종말론으로 인해 재림 신앙에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편견 없이 깨닫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책임을 가진 우리 교역자들은,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딤후2:14)하지 않도록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15절)하는 일이 절실하다.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기초를 놓고 그후 개혁자들이 공든 탑을 쌓은 역사주의(歷史主義)예언해석은 종교 개혁을 일으키고 개신교 신앙을 탄생시킨 위대한 역사적 유산(遺産)이다. 과거 주의와 세대 주의를 탄생시킨 미래주의 예언 해석은 종교개혁을 역전(逆轉)시킨 반종교개혁의 신학적 수단이었씀을 우리 성경 학도들은 상기해야 할 것이다. 뿌리를 저버린 가지는 자포자기(自暴自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차제에 동호(同好)성경 학도들에게 간원(懇願)하기는 이제라도 성서 신앙의 뿌리를 다시 찾아 “오직 성경”의 기치 아래 함께 말씀을 탐구함으로써 적어도 진리 안에서는 일체감(一體感)을 나누는 종교개혁의 성숙한 후예들이 되어 보자.
세상은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불안에 떨고 있으며 사람들은 심상치 않은 현실을 실감하고 절망에 빠져 있다. 이러한 때에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2:12,13) 얼마나 감사란 일인가! 위기에 처한 인류에게 하나밖에 없는 희망이요. 마지막 남은 기대인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르게 깨달아야 올바로 준비할 수 있지 않은가?
세계적인 전도자요 저술가로 한국 교계에도 익숙한 이름인 스미스(Oswald J. Smith)도 한때 비밀 휴거를 믿는 사람 이였다, 그는 그의 초기 저서에서(1926), “나는 휴거는 재림보다 7년쯤 앞서 있고 , 따라서 교회는 환난을 통과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고수해 온다”68 고 썼다. 그러나 그는 후에 쓴 다른 책에서, 자신이 스스로 성경을 연구해 본 결과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하는 말씀이 성경에 한 구절도 없음을 발견했다고 말한 뒤, “나는 이것이 진리가 아님을 발견했다....이 이론은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다. 한번 연구해보라. 성경의 단 한 구절도 그런 언급이 없다”69고 도전했다. 그리고 그의 또다른 책에서(1952), “그러나 당신은 ‘교회가 환난을 통과해야 하느냐?, 고 묻는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이것이다. 교회가 준비되어 있는가?”70
독자의 견해는 어떠한가?
전(前)환난설을 주장하는 휴가 설에 따라 그리스 도인들은 환난을 겪기 전에 휴거함으로 안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써라”(벧후3:14). 이러한 재림 신앙을 올바로 깨달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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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Ibod., 153.
8. Ibid., 111.
9. Ibid,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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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Froom, 112, 113.
20. Ibid.,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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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Dowley(ed,) 417-422.
30. Ibid,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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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Ibid,.,510.
39. Ubid., 511. Feoom, vol. III, ch. 28, 34.
40. Bacchiocchi, 202.
41. Tanner,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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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탁명환, 63. 64.
46. Hoekcma, 164, Footnote 3.
47. Iadd, 62.
48. Hoekema, 165-167.
49. Ladd,62.
50. Dave Macpherspn, The Incredible Cover-Up(Mecford, OR.:Omega Publications, 1980),49-50;Hal Lindsey, The Raptute: Truth of Consequenes(New York, 1983), 169-172.
51. 기원전 5년 가을에서 4년초에 걸친 어느때로 생각된다.(SDABC, vol.5. 242). Josephus, Antiquities XV. 5. 2. ;XVII, 8. 1. 등에 기초한 혜롯대왕의 사망 연대와 연관시킴.
52. SDABC, vol. 5. 242. 228. 229.
53. Bscchiocchi,233.
54. Ibid.,233.
55. Josephus, The Wars of the Jews, Bk. V, ch. II-Bk. VI, ch. X.
56. Lindsey, The Lte Gerat Planet Eaerh, 54.
57. Ibid.
58. Bacchiocchi, 223.
59. Hal Lindey, The 1980: Countdown to Aemageddon(New York: Bantam Books,1981)1.
60. Lindsey, The Rapture: Truth or Consequence, 1, 23.
61. Dace Macpherson, 125.
62. 1950년이래 상당수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전환난설을 버리고 본래의 후 환난설의 신앙으로 복귀하고있다.이 일에는 G.E. Ladd의 Ceucial Questions About the Kingdom of God(1952), The Blessed Hope(1956), The Laast Things(1978)등의 영향이 컷다.
63. 한국일보 시카고. 1990년 10월 2일자 7면
64. 상동, 1990년 10월 6일자 1면.
65. 상동, 1990년 9월21일자1면.
66. 상동, 1990년 10월 6일자 1면.
67. Lindsey, The Late Great Planet Earth, 175-179.
68. Is the Antichrist at Hand(1926), Ladd, 56.
69. Joe cerws, The Secret Rapture(Frederick, Md:Amazing Facts, leaflet)
70. Ldd, 57.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기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와 전(前) 천년
비평 탁명환
“안식교는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는 천년 기간이 있고 그 후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한다. 이것은 기독교회의 후(後) 천년설(Postmillennialism)과 흡사하다. 그러나 그들은 천년 기간이 마칠 그 때에 그리스도와 성도들이 땅위에 내려오고 , 새예루살렘이 땅 위에 내려오며, 악인들이 모두 부활하고, 사단이 해방되며 마귀와 악인들이 영원히 멸망당한다고 한다.”1
변증
안식일 교회는 초창기부터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기점으로 천년 기가 시작된다고 믿는 전(前)천년설(Premillennialism)의 기수였다.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낙관적인 세게 관이 편만 해지면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어 평화롭고 번영된 천년 왕국이 도래한다는 후(後) 천년설이 번져 내갔다. 그러나 이러한 세대의 부위 기에도 아랑곳없이, 안식일 교회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불가피한 심판과 임박한 재림을 전파하는 일을 고유한 사명으로 여겨 온 것은 국내와 그리스도교계에 주지(周知)된 사실이다. 그런데 박영관 씨는 이것이 교회사의 상식에 속하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논거(論據)를 제시하지도 않은 채,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고 고대하는 제칠 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화가 이 재림을 천년 후로 미루는 후천년설을 믿는 교회로 비평하고 있어 사뭇 의아해 마지않는다. 다음은 천년 기에 관한 안식일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천년기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성도들과 함께[재림시에있게 되는]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 사이에 하늘에서 천년 동안 다스리는 기간이다. 이 가간 동안 죽은 악인들은 심판을 받을것이며, 지구는 살아 있는 거민이 없이 완전히 황폐되고, 사단과 그의 천사들만 거 처할 것이다 이기간에 마칠 때 그리스도 게서는 당신의 성도들과 거룩한 성과 함께 하늘로 부터 이 땅으로 내려오실 것이다. 그 때에 죽었던 불 의한 사람들이 부활하여 사단과 그의 천사들과 함께 그 성을 에워쌀 것이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내려온 불이 그들을 소멸하고 지구를 정결케 할 것이다. 이리하여 우주는 좌와 죄인들로부터 영원히 자유롭게 될 것이다.”2
세대 주의와 전 천년설
비평 탁명환
“전(前)천년설이란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 왕국 전에 있다는 설로서, 교회 시대→그리스도의 공중 재림→ 죽은 성도들은 부활하여 살아 있는 송도들과 공중으로 휴거→ 모든 성도들이 어린양과 더불어 7년 혼인 잔치를 하며 그 동안에는 지상에 7년대환란(전 3년반 후 3년반의 대환난)이 있으며 이기간에 이스라엘이 성지를 회복→아마겟돈 전쟁→그리스도의 지상 재림(성도들과 함께)→인류를 심판하고 사단을 결박하고 적 그리스도를 파멸→환난 기에 죽은 성도들의 부활, 이스라엘을 중심한 천년 왕국 시작(유대인의 왕국)...(중략).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래 정통적인 교회는 전 천년설을 올바른 것으로 인정하고 믿고 있다.”3
변 증
탁명환씨는 안식일 교회가 자신이 정통 재림론으로 설정한 세대 주의에 의한 휴거를 믿지 않음으로 이단의 범주에 넣은 바 잇다. 그는 이어서 천년기에 관련된 정통 천년 왕국을 제시하고 그것을 종교개혁 이래의 정통 그리스도교의 전(前) 천년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전 천년에 관한 신앙은 앞에서 변증 한대로 성경에 근가가 없는 세대주의 의 착상으로 루터, 칼빈등 종교개혁 자들에게는 전혀 생소한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이와 같은 허구(虛構)한 설명은 16세기의 종교 개혁자들을 19세기에 발생한 세대 주의로 만드는 역사적 과오로서 신학에 익숙지 않은 일반 신자들을 일방적으로 혼동시키고 있어 다시 한번 기준도 없이 표류하는 한국 교계의 난감(難堪)한 현실에 대하여 다시 한번 곤혹(困惑)을 금치 못한다. 대중적인 신학 사전에도 , 이러한 세대주의 전 천년설을, “최근형(recent form)전 천년설”4 이라고 밝힐 뿐더러, 벌코프(berkhof)는 그의 [조직신학]에서 이것을 “세대 주의에 결부된 전 천년설”로 규정하고, 다르비(darby)등의 영향으로 “19세기 2/4분기에 소개된 새로운 형태(a new form)의 전 천년설”5이라고 밝히고 있다.
“천년”(millennium)이란 표현은 요한계시록 20:1-7절에 6번만 언급되고 있는 특수하면서도 범위가 국한된 주제로서 이 성경 구절과 앞뒤 문맥에서 그 의미를 찾는 것이 가장 안전한 해석 방법이다, 특별히 계시록19장과 20장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내용임이 확실하기 때문에 분 문을 그대로 읽어보면 그 윤곽을 쉽사리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추측이나 선입관을 버리고 본문을 한자리에서 주의 깊이 읽으며, 스스로 천년 기를 전후하여 일어나는 사건들을 개략해 보라, 다음의 도표는 요한 계시록의 이러한 체재와 내용에 근거하여 본문에 기록된 그대로 사건의 배열하고 이에 상관된 평행절(平行節)들을 찾아 설명을 부과한 것이다.
재림으로 시작되는 천년 기 전후 사건들
특별히 염두에 둘 것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떼에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마당에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러 간 곳이 없”(단2:35)다고 말씀하셨고, 재림 직전에 마지막 재앙으로 “만국의 성들이 무너지”고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계16:19, 20)어진다고 기록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림의 떼에 승천하지(살전4:16,17)못한 땅위의 거민 들은 모두 죽임을 당할 것이 명시되어 있다.(계19:17,18, 14:14-20 ; 눅17:34-37). 도한 지구는 완전히 황폐하게 되어 사람 살 곳이 되지 못한다(계16:1-21, 20:1-3; 렘4:23-28; 사24:1-6, 21,22).
그런데 어떻게 이러한 땅위에서 성도들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할 수 있는가?6
예수께서 재림하실 대 부활한 의인들과 살아 있던 성도들이 홀연히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여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7)고 말씀하셨다. 재림과 승천 직후 어디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될 것인가.? “재림의 약속”으로 알려진 요한 복음14장1-3절에서 예수께서는 그 장소를 “내 아버지집”이라고 밝히셨고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또한 천년 기가 지난 후에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계21:2) 온다고 말씀하셨으니 그 예루살렘은 당에 있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며(히12:22)승천했던 성도들이 그 동안 하늘에 있었음이 분명하지 아니한가?
7년 환난기 동안 땅위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고 “이스라엘을 중심한 천년 왕국이 시작(유대인의 왕국),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예루살렘 통치...”7를 나열한 세대주의 휴거설에 입각한 설명은 얼마나 논리에도 어긋나는 비 성경 적인 것인가?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계20:6)하게 된다는 말씀은 ,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 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 에게 붙인바 되”(단7:27)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왕의 주건 행사에 속하는 “심판하는 권세”(계20:4)를 왕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행사함을 뜻한다. 즉 천년 기 끝에 있을 “둘째 부활”(계20:5, 6, 13) 때에 일어나 유황 불 못에서 “둘째 사망”(계20“6)을당하게 될 악인뿐만 아니라(고전6:2)사단과 악한 천사들의 죄까지도 (고전6:3;벧후2:4; 유6) 사실함으로서 우주 앞에 서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를 확중하는일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은, 다음과 같은 주님의 말씀에서도 잘 드러나 고있다. “또 인자 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7, 28). 예수께서는 이와 같은 “심판하는 권세”를 성도들과 함께 행사(行事)하실 것을 제지들에게 이미 약속하셨고 (마19:28, 눅22:30) 이것이 마침내 실현되는 것이다(계20:6)
다시 한번 일체의 선입관과 편견을 제쳐놓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 앗던 “신사적”인 베뢰아 신자들의 모습을 따라 야 할 필요가 지금 의 한국 교회처럼 더 절실한 데가 어디 다시 있겠는가 ?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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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탁명환,56.
7. Ibid.
성소 제도와 구속의 계획
비평 김순명
“하늘 성소는 기독교에서 들어보지도 못한 생소한 소리다. 안식교는 구약의 제사를 잘못 알고서 성전 정결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의 성소는 첫 장막과 둘째 장막이 있는데(히9:6, 7). 첫 장막은 영의 장막을 뜻하고 둘째 장막은 성소로서 이는 하늘에 계신(?) 하늘 성소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지 결코 하늘에 성소, 지성소를 분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1
해 설
본서의 부록에 간단히 소개했듯이, 그 자료의 신빙성 때문에 변증의 대상에서 조차 제외한 김순명 씨의 저서인 “이단 종파들의 정체”라는 책에서 인용한 한 구절이다. 하늘 성소와 정결에 대한 오해는, 박영관씨나2, 탁명환3 씨의 경우도 정도 차이이지 마찬가지이다. 이 여러 인사들은 성소에 기초한 이러한 가르침이 성경에는 근거가 없는 환상적인 것처럼 나타내고, 위의 비평에서 보는바 와 같이 백안시(白眼視)하는 표현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비평의 가장 많은 부분을 안식일 교회의 성소 제도에 관련된 가르침에 할애하고있는 인사들의 저서들을 대하는 것은 크나큰 고통이 되고 있다. 성소제도를 참으로 이해하고 나서 하는 비평 인지의 여부 때문이다.
1. 성소의 목적과 역사.
변 증
성소와 성소 제도에 대하여, 비평들에 나타난 바와 같은 피상적인 인식과 이해를 가진 현실에서, 성소 제도에 관련된 여러 비평들에 대해 간단히 변증하는 일은 또 다른 피상적인 시도가 되고 만다. 최선의 해결은 성경에 나타난 성소 제도 자체를 바르게 이해하는데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성소와 성소 제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성경과 구원의 계획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이처럼 성서 신앙의 중추(中樞)요, 구원의 계획의 청사진(靑寫眞)인 성소 제도를 이 제한된 설명에 대하여 이해를 구하며, 차제에 별도의 진지한 연구를 촉구한다.
성소의 중요성과 역사
성소(聖所)의 역사는 범죄한 인류의 역사와 그 시작과 끝을 함께 하고 있다. 그것은 창세기에서 시작되어 요한계시록에서 그 끝을 찾게 되는 긴 줄로 신. 구약 성경의 중심을 관통(貫通)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창3:21)신 사실에서 이미 인간의 구속(救贖)을 위한 희생 제도가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또한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창3:24)신데서, 성소의 동편문을 찾게 되며, 속죄소의 그룹 사이에 좌정하셔서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과(출25:19-22) 거기에 나타난 임재의 영광인 쉐키나, 곧 화염검의 형체를 본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 시비에서,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린 ”(창4:4) 아벨의 제물이야말로 성소의 내용인 제사 제도가 그때 이미 확립돼 있었음과 함께 올바른 제사, 곧 성소 제도의 이해와 실천이 인간의 구원에 얼마나 필수적인가를 보여준다. 이렇게 범죄 즉시 시작된 성서 제도는 시대의 발전에 따라 형태만 을 바꾸며 이래와 같이 계속되어 나갔다.
원시 성소 (아담 이래 노아 때까지)
제단 성소 (노아 이래 모세 때까지)
성막 성소 (솔로몬 이래 예루살렘 멸망까지)
하늘 성소 (그리스도의 승천 직후부터 재림 때까지)
이렇게 볼 때 성경의 역사는 성소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소 제도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 그것은 범죄로 인하여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을 하나님과 화목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이 “그들 중에 거”(출25:8)하시며, 친히 제정하신 제사장의 봉사와 희생제도, 성소의 기구들과 구조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구속의 내용과 과정을 확연히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속죄의 원리가 낱낱이 설명된 구속의 계획의 청사진이며, 십자가로 드러난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가장 만족스럽게 설명한 위대한 교과서이다.
지상의 성소와 하늘의 성소
노아가 쌓았고(창8:20), 아브라함이 쌓았던(창12:7, 8) 제단(祭壇)성소시대가 지나, 모세 때에 이르러 성막(聖幕) 혹은 회막(會幕) 성소 시대가 시작될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式樣)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으라”(출25:8)고 명하셨다. 그런데 모세에게 그렇게 짓도록 보여주신 지상 성소의 원형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신약 성경에서 그 대답을 분명히 찾게 된다.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 (copy)과 그림자 (shadow)라 ”(히8:5). 즉 땅의 성소는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copy)”(히9:23)이요, 원형(原形)은 하늘에 있는 성소라는 사실이다. 그림자(shadow)는 실체(reality)가 있어야 생기고, 모형은 원형이 있어야 존재하는 것이듯, 지상성소는 하늘에 있는 성소의 모형이요.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 성소 제도는 하늘 성소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편인 것이다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인간을 위한 대제사장이시다(히4:14-16)
그러므로 하늘에 어떤 형태이든 성소가 있음이 틀림없는 이유는,“대제사장이 있는 곳에 또한 성소가 있어야하고, 성소가 있는 곳에 거룩한 봉사(奉祀) 사역이 수행되어야 한다”4 는 논리에 잘 드러나 있다. 지상성소 봉사에 나타난 국면과 내용이 하늘성소 봉사에 어떻게 드러나 있는지 대비(對比)를 통하여 살펴보자.
지상의 성소와 하늘의 성소의 대비
지상성소(옛 언약) 하늘성소(새 언약) ??????????????????????????????????????????????????????? 출25:8 땅의성소-하늘성전 계11:9 출26:1 성소(첫칸)-7금촛대사이의 봉사 계1:2 출26:33 지성소 - 증거 장막 성전 계15:5 출26:33 증거궤- 언약궤 계11:19 출30:1-10 향단- 중보의 금단 계8:3 출25:37 성소의 일곱등잔-일곱영이신 일곱등불 계4:5 레16:12-13 향로- 기도의 향로 계8:5 레21:10 대제사장- 대제사장 그리스도 히8:1 대상23:3-5 24반열-24장로 계4:4,5:8 레16:4 세마포 옷-세마포 옷 계15:6 레16:5 수양과 수염소-어린양 그리스도 계5:12 레16:21,22 아사셀 염소 -천년기의 사단 계20:1-3 히9:12 짐승의 피-그리스도의 피 히9:12-14 히9:22,23 지상성소의 정결-하늘성소의 정결 히9:23,11-14 |
이처럼 명백한 성경의 대비(對比)에도 불구하고, “하늘 성소는 기독교에서 들어보지도 못한 생소한 소리”라는 표현은 성경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참으로 생소한 소리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성소를 지을 때에,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저가 본 그 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행7:44)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히8:5, 9:23).
서기 96년경에 쓰여진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 요한은 계시 가운데, 승천하신 후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시는 예수께서(히4:14), 땅위의 교회를 대표한 일곱 금촛대 사이에서 봉사하시는 모습을 목도했다(계1:12, 13, 4:5) 일곱 금촛대[등대]는 성소 첫 칸에 있는 기구이다(출26:35). 또한 그리스도의 증보를 나타내는 향단과 향로의 기능도 목격했으며 (8:3-5). “하나님의 일곱 영” 으로 표현된 “일곱 등불 켠 것이 있”(4:5)다고 했는데, 이것들 역시 첫 칸인 성소에 속한 기구들이다(출30:1-10).
요한은 계시록 11:장에서 십계명이 들어 있는 언약궤가 보관된 둘째칸, 곧 지성소가 열리는 장면을 생생히 목도했으며(계11:19), 15장에서는 지성소 봉사가 끝나는 장면을 또 다시 목도했다. 성소 제도가 지니고 있는 심오한 상징을 영적으로 적용하는 일에 성경의 청사진을 따르지 않으면 결국 무너지는 집을 짓게 될 것이다(마7:27). 건물이 설계도(設計圖)에 의하여 지어지듯, 구속 사업도 그 청사진인 성소 제도에 일치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2. 성소의 구성과 기능
성소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그리스도의 의(義)를 나타내는 세마포 포장 울타리로 둘러싸인 성소의 뜰과, 성막의 첫째 칸인 성소, 그리고 둘째 칸인 지성소(至聖所)로 구분된다. 제시된 도해를 참조하며 그 특별한 의미를 새겨 보자.
성소의 뜰 (출 27:9-19, 38:20)
? 입구
그리스도의 흠 없는 의를 상징하는 흰 세마포 포장으로 둘러쳐진 성소 뜰의 동편에 하나의 입구가 있었다. 그것은 범죄로 인하여 닫혀진 “에덴 동산 동편”(창3:24)의 입구가, “생명나무의길”(창3:24)이시며 (요14:6), 구원의문(요10:9)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열렸음을 보증하고 있다.
?번 제단
뜰에서 잡은 제물의 몸은 뜰 중앙에 있는 놋으로 만든 제단 위에서 사루어??고, 피는 번제 단 밑에 쏟았다(레4:7, 18, 25). 성소의 뜰은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 동안의 봉사를 드러내는데, 정방향의 [바깥]뜰 중앙에 있는 번제단이 상징하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인간을 위한 속죄와 화목 제물로 온전히 불사루셨으며 그 모든 피를 남김없이 쏟으셨다.
?물두멍
번제단 을 지나면 “회막과 단 사이에”(출3:18) 놋으로 만든 물두멍이 있었다. 회막에 들어갈 때나 제단에서 봉사하기전 제사장들은 여기에서 수족을 씻어 정결하게 해야 했다(출30:17-21). 이것은 십자가를 통하여 얻은 속죄와 함께 경험해야 하는 “중생(衆生)의 씻음”(딛3:5)인 침례(浸禮)와 세족(洗足)예식(요13:7-15)을 적절히 상징한다.
?칭의
이리하여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지정된 제물을 마련하여 성소에 들어온 사람은 뜰에 준비된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불로 사루어지며 물로 씻겨져,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벧전1:19)로 의롭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칭의(稱 義.Justification) 의 경험이요,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고 회개한 사람이 즉시 경험하게되는 십자가로 말미암는 구원인 것이다.
?지상생애
성막의 뜰에서 행해진 봉사는 모두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를 통하여 이루어진 일들이다. 전 방향을 이루는 이 [바??]뜰의 한 가운데 번제단이 있었듯이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의 중심은 번제단으로 상징된 그리스도의 십자가인 것이다. 거기서 예수께서는 인류를 위한 속죄제물과 화목제물로 온전히 바쳐졌으며, 창에 찔린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요19:34) 흐름으로써 죄악을 씻는 샘이 열린 것이다.(슥13:1) 그것이 물과 불과 피로 이루어진 지상생애 동안의 그리스도의 봉사이다.
성소 [첫째칸] 출25:23-40, 37:10-28)
?등대
성막의 첫째 칸이 되는 성소(聖所)에 들어가면 왼편 곧 남쪽에 순금을 쳐서 만든 등대가 감람나 무의 기름을 태우며 빛을 내고 있었다(레24;2). “주의 말씀은 내발의 등이요 내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그것은 기름이 상징하는 성령(슥4:2-6)의 능력이 성경말씀을 통하여 역사할 때, “불로 연단한 금”(계3:18)같이 변화된 성품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신자요, 교회이다(마5:14-16).
?떡상
성막에 들어서면 오른편인 북쪽에 “생명의 떡” 곧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요6:48, 51)게 되는 그리스도의 몸을 나타내는 열 두개의 누륵없는 빵을 두 줄로 나란히 차려 놓은 진설병 상이 있다. 그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요1:14)신 그리스도, 육신이 말씀으로 표현된 성경 말씀을 신비하게 상징하고 있다(요6:48-51, 63)
?분향단
첫째 칸의 서편 휘장 앞에는 정금으로 입힌 분향단이 있어 아침 저녁 등불을 손질할 때 함께 향을 사루었다(출30:7,8).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계5:8, 8:3)인데, 향이 지성소로 넘어가 온 방을 채우듯 그리스도의 끊임없는 은헤의 중보(中保)로 성도들의 탄원이 하나님께 가납되고 있는것이다.
?성화
이처럼 말씀을 통하여 마음을 밝히시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날마다 새 힘을 공급하는 그 리스도의 몸이 되는 말씀과, 성령의 감동하심과 그리스도의 증보로 드리는 기도를 통해, 이미 십자가로 의롭게 된 성도는 그 상태를 유지하며, 그리스도안에서 변화와 성숙을 계속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성화(聖化. Sanctification)의 과정이다(엡4:13-15; 벧후3:18)
?천상봉사
성막의 첫째 칸인 성소에서의 봉사는 승천하신 직후부터 시작된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에서의 봉사를 적절히 나타내고 있다, 지상생애를 상징한 성막 뜰의 봉사를 통하여 마련하신 물과 불과 피로서 죄인을 의롭게 하신(稱義) 그리스도께서는, 오순절부터 시작된 하늘의 성소봉사를 통하여, 의롭게 된 사람들을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되도륵 진리의 성령을 통하여 “거룩하게하”(요17:15,17)시는 성화(聖化)봉사를 계속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경험임과 동시에 구속사(救贖史)의 과정인 것이다.
성화에 필요한“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딤전4:5)와 그리스도의 중보가(히7:25)모두 첫째 칸에 차려진 등대와 떡상과 향단의 상징으로 적절히 상징되고 있는 것이다. 성화는 성령의 사역(使役)이기 때문에 하늘 성소에서의 봉사가 시작된 오순절은(출29:1-37; 시113:) 감람의 기름으로 상징된 성령의 강림으로 시작된 것이다. 실제로 요한이 1세기말의 계시 가운데 목도한 그리스도도 일곱 금촛대 사이에서 봉사하시는 성소에 계신 그리스도였다.
지성소[둘째칸](출25:10-22, 37:1-9)
?언약궤
성막의 둘째칸인 지성소(至聖所) 중앙에는 십계명의 두 돌 판이 간직된 언약궤라 부르는 법궤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안팎으로 금을 입힌 법궤의 뚜껑은 정금판으로서 이것을 속죄소(贖罪所), 혹은 시은좌(施恩座)라고 불렀다(출25:17-21)
?그룹들
그리고 뚜껑인 속죄소의 금판에 연접하여, 양편에서 날개를 마주 대하여 펼친 두 그룹 (cherub) 천사가 하나님의 율법에 얼굴을 향하여 지극한 경외심을 자아내고 있었다.
?쉐키나-임재의 영광
두 덮는 그룹 사이에는 하나님의 임재(臨在)를 나타내는 영광의 빛이 드리워 있었다. 이러한 빛의 임재를 “쉐키나”(shekinah)라고 불렀는데 “거하다”(shakan)는 히브리어 동사에서 나온 말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은 십계명이 보관된 언약궤 뚜껑인 속죄소위에 마주 서 있는 “그룹사이에 좌정(座定)하”신 분으로 알려졌다(히80:1 ; 99:1).
?속죄소
율법 위에 차려진 하나님의 보좌는 공의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속죄일의 특별 의식을 통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레16:15)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희생제물의 피가 뿌려질 때, 그것은 죄를 속하는 속죄소(贖罪所)가 되고 구속의 은혜를 베푸시는 시은좌 (施恩座, mercy seat)가 되는 것이다. (출25:22) 그것은 온 인류가 범한 율법이 요구하는 공의의 대가를 십자가의 대속(代贖)으로 넘치게 치르신 하나님의 은혜가 법궤 위를 덮을 때, “의와 공의가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시89:14)게 하신 구속의 섭리인 것이다(시85:10)
?영화
이리하여, 뜰에서 십자가의 구속을 통하여 의롭게 되고(稱義), 첫째 칸인 성소에서 말씀과 기도를 통한 성령의 사역으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12:2) 거룩하게 됨 (聖化)을 경험한 성도들은 마침내 영화롭게 되어(榮化) 하나님 앞에 이르는 영광의 경험에 참여한다. 그것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 되어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고전15:51,43)게 되는 구원의 극치요 완성이다.
3. 성소 봉사와 구속의 과정
매일의 봉사와 연례 봉사
살펴본대로, 성소의 뜰에서의 봉사는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봉사를 예시했고. 첫 칸인 성소에서의 봉사는 승천하신 이후 대제사장과 중보자로, 하늘에서의 그리스도의 봉사를 예시했다, 뜰에서의 봉사를 거친 후에야 성소[첫칸]에서의 봉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러한 봉사는 365일 날마다 계속되었으므로, 날마다의 봉사(daily service)라고 불렀다. 그러나 둘째 칸인 지성소(至聖所)에서의 봉사는 일년의 단 하루인 7월10일 대속죄일에만 수행되었기 때문에, 해마다의 봉사(yearly service)로 부른다(레16:7-31). 승천하신 이후 대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역할은 신약성경 히브리서에 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이미 구약 성경 레위기와 출애굽기 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반복을 피하기 위해.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히9:5)는 표현으로, 구약성경에서 그 전모를 찾도록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구약 성경에 의하면, 365일 계속된 매일의 봉사는, 7월10일 대속죄일에 수행되는 지성소의 봉사와 연결되면서 끝을 맺게 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서 죄의 값을 단번에 치루셨음에도 불구하고 왜 아직도 구속사업이 끝나지 않고 있는가? 그것은 성소봉사가 뜰에서의 봉사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그것이 첫째칸의 성소 봉사, 곧 “매일의 봉사”로 이어져야 하고, 그것은 또다시 둘째 칸인 지성소의 “해마 다의 봉사”로 이어져 완성된 후에야 종결되는 데서 그 분명한 이유를 찾게 된다.
십자가의 속죄와 성소의 봉사
예수께서 이미 십자가에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죄된 세상의 역사가 계속되는 이유는 십자가에서 이루신 속죄가 불완전하기 때문인가? 결코 아니다. 죄를 자각한 죄인이 믿음으로 드린 속죄 제물의 피로서 그는 즉시 용서를 받아 의롭게 되었으며 온전히 속죄(贖罪)된 것이다(벧전1:18,19). 이것이 성막뜰에서의 경험이다. 그것은 충분하고도 완전한 속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째칸[성소]과 둘째칸[지성소]의 봉사가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은 그 이유를 두 대상, 곧 사람과 성소의 온전한 정결에 두고 있다. 먼저 구속의 일차적인 대상인 인간의 정결을 살펴보자.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피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게하고(淨潔)[카타리조]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겠느뇨?(히9:11-14)
성막뜰의 십자가에서 베풀어진 온전한 속죄를 받아들임으로서 의로운 신분(身分. status)에 이르게 된 인간의 상태(狀態. stste)는 계속적인 의로움과 변화를 요구한다.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를 드리”(롬12:1,2)는 첫째칸[성소]의 경험인 성화(聖化)가 필요한 것이다(갈5:22, 23). 이리하여 마침내 하나님 앞에 친히 나아가 섬길 수 있는 영광에 이르는 영화(榮化)가 둘째 칸[지성소]의 경험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십자가의 속죄가 불완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죄인에게 영원히 유효(有效)하게 하시기 위한 후속(後續)과정인 것이다. 이처럼 주도면밀한 성소 제도에 나타난 구속의 윈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과 같은 피상적인 비평이 나오게 된다.
비평 박영관 .
“안식교의 교리문답 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贖罪)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음으로 그의 구속 사업이 시작이 되었지 속죄가 충분하지 못함을 뜻하고 있다.”5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완전한 속죄가 이루어졌지만, 사람과 세상을 죄와 그 결과에서 영원히 회복하는 구속(救贖)의 과정이 끝난 것이 아니다. 성소에는 회생제물이 죽임을 당하여 피를 흘리는 뜰만 있지 않고, 첫째 칸과 둘째 칸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실제로 속죄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도 죄인이 의롭게 되는 것은(레4:4, 14,15, 24, 29) 제사장이 그 피를 “성소 장(帳) 앞에 일곱 번을 뿌리”(레4:4-7, 16-18, 25)는 과정 등을 전제로하고 있다(레4:20,26, 31,35).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완전한 속죄가 구속의 과정(過程)마저 끈낸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랬다면 이 죄된 세상의 역사도 동시에 끝났을 것이다. 구속의 과정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과 십자가의 속죄가 완전하지 못하다는 말은 오해의 여지도 없는 전혀 다른 뜻이다.
성소의 정결과 구속의 과정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에 근거한 구속의 과정은 첫째 칸과 둘째 칸의 봉사를 통하여, 인간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히9:11-14) 하는 외에, 성소 자체를 죄의 더러움으로부터 정결하게 하는 또다른 국면을 가지고 있음이 성경에 분명히 밝혀져 있다.
?구약의 지상 성소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不淨)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 같이 할 것이요...수송아지의 피와 염소의 피를 취하여 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不淨)에서 단을 성결케 할 것이요”(레16:16-19)
?신약의 하늘 성소
“율법을 쫓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지상의 성소]은 이런 것들[짐승의 피와 우슬초등] 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의 있는 것들[하늘의 성소에 속한 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할지니라”(히9:21-23.)
이 말씀에서 분명해지는 것은, 하늘에 있는 신약의 성소도 구약시대의 지상성소처럼, 죄에 의하여 더럽혀졌기 때문에, 짐승의 피가 아닌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오해의 여지가 없는 말씀이다.6 이처럼 명백한 사실을 성경에있는 그대로 이해하여 그 깊은 뜻을 밝히려는 진지한 노력에 대하여, 놀랍게도 이래와 같은 민망스러운 비평에 접하게 된.다.
비평 김순명
“안식교는 구약의 제사를 잘못 알고서 성전 청결 이란 밀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신 하늘 성소에 무슨 죄가 있어서 정결케 해야 되는가? 그 곳에 죄가 가득하다면 거룩한 곳이 아니다. 안식교는 잘못된 해석과 무지에서 이런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7
부질없는 종교적 편견이 가져오는 지적 폐해에 대하여 함께 개탄하면서, 성경에 명시된 성소의 정결이 무었을 의미하는지 살펴보자. 그렇다면 성소는 어떤 이유로 더럽혀지는가? 성경은 적어도 두 가지 경로로 성소가 죄로 더럽혀진다고 가르친다.
첫째는,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레16:16) “지성소와 회막과 단”(레16:20) 등 성소의 모든 것들이 더럽혀진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더럽혀졌는가? 죄를 자각한 사람은 속죄 제물을 성소로 가져온 후,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어 안수(按手)했다(레4:4; 15, 24,28,33). 이러한 안수는 특권이나 사명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때나 (민27:22, 23). 죄의 책임을 묻거나 신원을 확인할 때(레24:14), 특히 성소 봉사에서 죄를 남에게 전가(轉嫁)할 때 그렇게 했다(레16:21).
이렇게 하여 죄인이 고백한 죄를 넘겨받고 죽임을 당한 제물의 피는 제사장에 의하여 성소 내부의 법궤를 가린 휘장 앞에 뿌리거나 단의 뿔 등에 칠해졌다(레4:6, 7, 17, 18), 이리하여 죄인이 회개한 죄는 의식상(儀式上)으로 제물에게 옮겨졌고, 그것은 다시 제물의 피를 통해 성소로 옮겨지거나, 제사장이 속제제물의 고기 일부를 먹음으로써, 자신의 몸으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레10:17)게 하여,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벧전2:24)신 그리스도의 속죄를 표상 했다.
이리하여 일년 365일 동안 계속된 매일의 봉사를 통해 회개로써 전가된 이스라엘 백성의 죄로 의식적인 더럽힘을 받은 성소는 7월10일 대속죄일 연례 봉사를 통해 정결함을 입게 된다. 그리하여 성소로 전가(轉嫁)되었던 죄가 영원히 제거(除去)됨으로써 구속의 모든 과정이 끝나게 된다. 제거되는 원리와 과정이 레위기16장에 서술돼 있다. 이처럼 지정한 회생 제물을 통해 죄를 전가시켜 죄인은 온전히 속죄되고 성소는 더럽혀지는 것은, 대속죄일에 합법적으로 정결함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합법적인 더럽힘(legal contamina-tion) 이라고도 한다.8.
이상과 같은 합법적인 절차에 의하여 죄를 전가시킨 경우 외에, 다른 방법으로 성소가 더럽혀지는 경우가 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과 언약을 무시하면서 회개하지 않고 반역하며 가증한 우상 숭배를 자행하거나 (레20:2, 3; 겔5:11, 23:38,39, 7:30-34, 8:18),9 부정한 일을 하고도 고의로 정결하게 되는 적절한 절차를 따르지 않은 채, 거룩한 사물에 분별없이 접촉할 때이다(레15:31). 이와 같은 과정으로 성소가 더럽혀진 경우는 그 백성들의 진멸하심으로써 성소를 정결하게 하였다(겔5:11,12; 렘7:30-34). 대속죄일에 그러한 사람들은, “백성 증에서 끊쳐질(cut off)것이라”(레23:29)고 언급되었다. 그것이 또한 다니엘서7장의 작은 뿔(7:25)이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힌 방법이며(8:11-13) 그 결과로 대속죄일의 조사심판을 통하여 정죄된 후 파멸을 당하게 되는 배경이다(단7:26, 8:35)
4. 지성소 봉사와 조사 심판
비평 탁명환 “구약에 대제사장이 1년에 한번씩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이 안식교의 조사심판 교리를 위한 예시인가, 혹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위한 예시인가 살펴보자. 이것은 조사심판을 위한 것임이 아니라 예수의 몸을 단번에 드린 십자가 사건을 의미하고 있으며(히 10:10~21)....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대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실 것을 나타낸다(히 9:1~7, 9:11, 25, 26).10
대속죄일과 지성소 봉사( I )
변 증 성소의 구조에서도 드러나 있듯이 성소의 봉사는 엄격히, (1) 성소 뜰에서의 봉사, (2) 첫째 칸인 성소에서의 봉사, (3) 둘째 칸인 지성소에서의 봉사로 나뉘어져 있다. 또한 세 부분에서의 봉사 내용과 목적도 서로 크게 달랐음을 이미 확인했다. 또한 논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도 뜰→성소→지성소로 봉사의 순서가 되어 있었다.
탁명환 씨의 비평처럼 1년에 한번씩 들어가는 지성소에서의 봉사를 단순히 “십자가 사건” 하나로 돌려버리면, 성소 뜰에서의 봉사와 첫 칸인 성소의 봉사는 무슨 의미를 갖는가? 그리고 간단히나마 십자가만의 사건인지 아니면 십자가의 구속과 연관된 심판의 국면이 드러나 있는지 다음의 성경 말씀을 읽으며 생각해 보라.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火祭)를 드리고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중에서 끊어질 것이라”(레23:27-29)
지금도 유대인들이 옛날 이름인 “욤 키푸르”(Yom Kippur)로 부르며 아직도 지키고 있는 이 대속죄일(the Day of Atonement)은 일곱 절기 가운데 가장 엄숙한 날로, 유대인들은 이 날을 전통적으로 심판의 날(the Day of Judg-ment)로 불려지고 있다,11 아침저녁 드리는 정규적인 제사(출29:38,39)는 “날마다의 봉사”와 같았지만 다음의 절기 의식은 특별히 대속죄일만을 위한 것이었다.
? 일년에 한번 이날 하루는 대제사장이 둘째 칸인 지성소에 들어가 법궤위에 차려진 속죄소에 이르러 봉사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감(레16:13, 14)
? 제사장과 가족의 죄를 위해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잡아 그 피를 속죄소 위와 앞에 뿌려 속죄함 (레16:3, 6, 14).
?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의 죄로 더러워진 지성소와 회막과 단 등 모든 것을 정결하게 하기위해,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뽑힌 염소를 속죄제로 죽여 그 피를 속죄소에 뿌리고 열거한 기구에 발 라 속죄함(레16:8, 15, 16), 이로써 모든 백성과 성소 전체가 죄와 그 더러움으로부터 완전히 정결하여짐
? 대제사장은 네 번에 걸친 지성소 출입을 통하여 백성과 성소 전체를 위해 “속죄하기를 마친후 에 산 염소를 드리되,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 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 고 무인 지경에 이르거든 그 염소를 광야에 놓”(레16:20-22)게 한 특별한 의식을 행함.
속죄제로 먼저 죽임을 당한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힌 염소는 말할 것도 없이 인류를 대신하여 일찍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그리스도이시다. 또한 “여호와를 위하여” 라는 표현에 상대적으로 맞서는 반대 표현인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힌 산 염소(live goat)는 누구를 예시하는가?
아사셀 염소와 사단
비평 훼케마
“죽임을 당한 염소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죄악으로부터 구속하기 위해 피를 흘리게 된 사실을 그린 것인 반면, 광야로 보내어진 염소는 그리스도가 속죄사업에 의해 우리에게 우리의 죄를 없애 준 사실을 그린 것이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도들이 하는 식으로 둘째 염소가 사단을 나타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업을 어둠의 왕자에게 전가시키는 일이 아닌가?”12
변 증
“아사셀을 위하여” (la 'Aza zel) 뽑힌 염소가 누구를 가리키는가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사셀”의 본 뜻이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을 “도망가다”(escape)는 뜻의 영어 축약형인 “스케입”(seape)과 “염소”(goat)를 합성하여, “쫓겨가는 염소”(scapegoat)의 뜻으로 번역한 흠정역(KJV)은 물론 어원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그것을 근거 없이 “속죄양”으로 번역하고 있는 일반 사전의 뜻은 더욱 더 잘못된 것이다. 사단을 상징하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속죄의 염소가 될 수 없는 이유를 살펴보자.
?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의 의식을 통하여 백성과 성소를 정결하게 하고, “속죄하기를 마친 후”(16:20), 속죄의식과는 전혀 관계 없이 등장하고 있다..
? 대속죄일의 모든 속죄 의식을 마친 대제사장이, 모든 속죄 의식을 마친 대제사장이, 아사셀을 위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레16:20)었는데 성소제도에서 안수하는 것은 죄책(罪責)을 전가(轉嫁)시키는 기본 의미를 지녔다, 그것이 만약 속죄제물이라면, 죄가 전가된 후 대속의 죽음을 죽어 피를 흘려야만 속죄가 된다(레17:11; 히9:22). 그러나 이 염소는 그렇게 죽임을 당하지 않은 “산 염소”임을 강조하고 있다.
? 죽임을 당한 것은 , “여호와를 위하여” 먼저 뽑힌 그리스도를 표상한 염소인데, “아사셀을 위하여” 라는 표현 자체가 “여호와를 위하여”와 상반된 대조(對照)를 이루고 있다. 또한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죄는 없”(히4:15)으나 대속의 죽임을 당하신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반면, “아사셀을 위한 ” 염소는 끝까지 죄를 지니고 끌려간다는 점에서, 죄의 장본인인 사단을 적절히 표상하고 있다((시94:23, 7:16)
? 대속죄일의 행사가 끝나는 순간 죄책(罪責)이 부과된 직후, 타의(他意)에 의해 “무인지경”의 광야로 끌려나가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의 운명은(레16:22) 예수그리스도의 행적에는 전혀 조화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동시에 황폐하게 된 땅위에 악한 천사들과 함께 천년을 보내게 될 사단의 예정된 운명에 적절히 어울린다.(계20:1-3).
? 아사셀을 위한 염소에게 죄를 전가시킨 후 사람을 시켜, “광야로 보낼지니”(레16:21)라 명령되었다. 그런데, 이곳의 “보낼지니”는 “쫓아 보내”거나(expel) “제거하”(put away)는 등 강력한 표현으로 관계를 끊고 헤어지는 경우에도 쓰였다(신 21:14; 22:19, 22; 렘3:8),13 죄의 장본인인 사단은 영원히 내어 쫓겨 우주에서 제거될 것이다.
? 대속죄일의 의미와 의식에 익숙한 고대 유대인들이나 초대 그리스도인 학자들도 “아사셀”을 사단적인 존재로 이해했다.14 그리고, 감리교(Abingdon Bible Commentary),15 장로교(S. M. Zwemer),16 루터교(E. W. Hengsten-berg),17 성공회(J. R. Howden)18 등 여러 교파의 학자들도19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조심할 것은 성소제도에 익숙지 아니함으로써, 그리스도와 사단의 역할을 혼동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20 결국 죽게 될 아사셀을 위한 염소를 죽이는 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은 그것을 속죄제물이신 그리스도로 혼동할 여지를 없애기 위한 사려 깊으신 하나님의 의중으로 사료(思料)된다.
대속죄일과 지성소 봉사( II )
대속죄일의 특별 의식과 관계된 “아사셀을 위한 염소”의 행적에서도 보았듯이, 대속죄일에 수행되는 의식을 탁명환 씨의 비평처럼 단순한 “십자가 사건”이 아니라, 십자가로 이루어진 속죄를 구속(救贖)의 역사에서 종결시키는 구속의 마지막 단계로서의 심판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성소의 뜰과 연결되어 첫째 칸의 성소에서 수행된 매일의 봉사에서는 제물의 피를 흘려 회개한 죄인에게 완전한 속죄, 곧 용서를 베풀어 온전히 의롭게 하였고, 제물에게 전가된 죄는 피와 제사장을 통하여 성소로 옮겨졌다.
그러나 대속죄일에 수행되는 연례 봉사에서는, 상기한 경로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부정(不淨)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레 16:16), 그리고 속죄제물의 피가 묻혀진 성소의 각 기구와 지성소를 위하여, “그 피를 그 위에 일곱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단을 비롯한 모든 것을 “정결(淨潔)케”[레 16:19]하는 특별한 의식을 매일의 제사에 추가했다. 그리고 나서 사람과 성소를 부정하게 한 모든 죄를 죄의 장본인인 아사셀에게 전가시켜, 죄에 대한 궁극적 책임을 지운 후에 영원한 “분리의 땅”으로 사라지게 한 것이다.21
이와 같이, 날마다의 봉사는 개인을 위한 봉사였으며, 대속죄일에 수행된 해마다의 봉사는 성소 자체와 백성의 정결을 위한 특별한 봉사였다. 전자는 죄를 전가(轉嫁)함으로 이루어진 속죄의 절차였고, 후자는 죄 자체를 제거(除去)함으로써 구속(救贖)을 끝내는 과정이었다. 또한 속죄제물로 드려졌던 여러 희생 제물들의 시체를 진영 밖으로 옮겨 불태워 속죄의 제물마저 재가 됨으로써 범죄 직후 마련된 제사제도와 함께 시작된 구속의 계획이 모두 마쳐졌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네 번 지성소를 출입하는 데 그 마지막인 네번째에는, 지성소에 옮겨 놓아 온종일 향연을 올리던 향로를 다시 성소로 옮겨 온다. 이리하여 그 날 마지막으로 향연이 온 성막을 채우게 된다. 바로 이 장면이 하늘 지성소에서 진행 중인 대속죄일의 봉사가 끝나는 때, 요한에게 계시로 보여주신 생생한 내용이다(계 15:5~8). 십계명이 보관된 언약궤가 든 성전, 곧 지성소가 보였고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모습도 나타났으며,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계 15:8)는 장면이 목격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증보를 나타낸(계 8:3, 4) 향로가 밖으로 옮겨졌다. 마침내 은혜의 시기가 끝났으며, 그리스도의 자비로우신 중보도 마쳐진 것이다. 이제 “성전에는 능히 들어갈 자가 없”(계 16:8)게 되었고, 중보자가 없어진 세상에는 자비의 향로 대신 마지막 7재앙을 담은 금대접의 재앙이 부어지기 시작했다. 선과 악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는 하늘의 대속죄일 행사가 마쳐지는 참으로 생생하고 엄숙한 장면이다.
대속죄제일에 수행된 지성소 봉사를 단순한 십자가 사건으로 국한시켜서는 안된다, 그것은 십자가가 중심이된 구속의 역사, 곧 세상의 역사가 마쳐지는 과정이다.
대속죄일과 재림전 심판
그 뿐이 아니다. 지성소 봉사가 수행되는 대속죄일은 구속의 역사를 표상(表象)으로 드러낸 고대 이스라엘의 일곱 절기(節期.feasts) 가운데 여섯번째 절기이다. 주지된 대로, 레위기23장에 기록된 다음과 같은 세 봄절기는 그리스도의 초림(初臨)을 드러냈다.
? 유월절인 1월14일 [성력] 예수께서는 유월절 어린양이 되셔서 (출12:1-10) 예언된 표상을 시 간과(단9:25-27 ; 출12:2-6) 구체적인 사항까지(출12:46)성취시키며 십자가에 돌아가심(마27:45, 46;요19:33-36)
? 무교절인 1월 15일 예수께서는 창조의 안식일처럼(창2:1), 구속의 기념일이 된 안식일 시작 대 에, “다 이루었다”(요19:30)는 말씀과 함께 무덤에서 안식하심.(눅23:54-56)
? 요제절인 1월16일 구약 성경에 예언된 대로 “안식일 이튿날”(레23:11) 아침 처음 익은 보리 단을 흔들어 제사함같이 첫날 아침 부활의 “첫 열매가 되”(고전15:20)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
? 오순절인 3월5일에는 정확히 이른 비 성령이 임하심으로 교회가 탄생함(행2:1-4)
길고 가문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시작되는 성력7월, 곧 티스리(tishri)월이 되면 마지막 새 가을 절기가 잇달아 다가와 7일 동안 창조를 끝내신 하나님께서 성력 7월로 구속의 역사를 마치시는 표상을 확인하게 된다. 레위기 23장(23-44)에 기록된 가을의 세 절기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관되어 구속을 마치는 내용임을 알게 된다. 우선 두 절기를 소개한다.
? 나팔절인 7월 1일에는 전국에 나팔을 불어 십 일 후에 다가올 대속죄일을 사전에 예고될 것임 을 표상함.
? 대속죄일인 7월 10일은 다른 절기들과 달리 두렵고 엄숙한 절기였다. 그 까닭은, “하나님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레23:28,29)는 엄숙한 명령을 받았다. 십자가의 속죄로 나타낸 유월절에서 시작된 구속의 역사는 마침내 대속죄일에 이르러, 마지막으로 “여호와 앞에 속죄할” 엄숙한 문제를 놓고 백성들은 저마다 진정한 통회(痛悔)로 “스스로 괴롭게” 해야 했다.
대속죄일과 법궤와 번 제단
십자가의 희생을 드러내는 희생제물이 제단에 드려진 것으로 구속의 과정이 모두 끝났다면, 이처럼 엄숙한 심판의 과정이 왜 다시 필요한가? 대속제일에 대제사장은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보좌가 그 위에 놓인 법궤 앞에 서게 된다. 그 속에 들어 있는 십계명은 하나님의 통치의 기초가 되는 공의(公義)의 표준이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의 행하나니 죄는 불법(不法. lawlessness)이라”(요일 3:4). “불법”의 헬라어인 “아노미아”(anomoa)는 하나님의 거룩한 법에 불순종함을 의미한다.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약2:9-12). 결국 죄는 율법과 상관된 문제로, 율법에 불순종하는 것이 죄며,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다, 사망은 생명을 빼앗기는 것을 의미하는데,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 생명을 위하여 속(贖)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17:11). 그것이 율법을 범하여 죄지었을 때마다 희생제물의 피를 흘리게 한 이유이다.
그것이 대속(代贖)이다. 범죄한 사람의 생명을 요구하는 율법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서는, 자신은 죄가 없는 희생제물의 피가 필요했다. 그래서 구약의 희생제물 흠(欠)이 없어야 했고(출12:5), 신약의 참 희생제물이신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셔야 했다(요일3:5).
지성소의 법궤속에 든 십계명이 요구하는 법의 공의(公義. Justice)를 지키기 위해 성소 뜰에서는 희생제물이 피를 흘렸고 뜰, 중앙(中央)에 있는 번제단 아래에 피가 부어졌다(레4:). 그리고 그 위에서 제물은 불에 사루어졌다. 그것이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지상봉사의 중심이요, 핵심이었다. 십자가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유일한 대답이다.
성소 뜰에서의 봉사, 곧 지상봉사를 십자가로 끝내신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성소]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히9:11,12)신 것이다. 확인한 대로 하늘 성소에서의 봉사는 첫째 칸[성소]과 둘재칸[지성소]이 봉사로 이루어지는데, 앞에서의 성소 도면에 나타났듯이, 지상 봉사 의 중심은 성소 뜰의 번제단인 십자가였고, 하늘 봉사의 중심의 지성소의 법궤였다. 인간의 범죄로 공의가 손상된 십계명은 그것을 회복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십계명의 공의와 십자가의 구속(救贖)이 마침내 서로 만나는 날이 왔다. 그것이 바로 지성소의 법궤앞과 위에 성소 뜰에서 죽임을 당한 희생제물의 피가 일곱 번이나 뿌려지는 대속죄일 봉사의 내용인 것이다(레16:15, 16). 십계명의 공의와 십자가의 사람이 서로 입맞춘 것이다. 이리하여 범죄로 손상된 하나님의 공의[율법]도 만족되었고, 정부의 기초인 영원한 율법의 공의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범죄한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영원한 구속의 사랑도 만족된 것이다. 바로 그것이 복음의 내용인 것이다(롬3:23-26).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하감하였도다” (시85:10,11).
이렇게 법궤의 뚜껑에 십자가의 피가 뿌려질 때 그 곳은 합법적으로 죄를 용서하시는 속죄소(贖罪所)가 되고, 구속의 은혜를 베푸시는 시은좌(施恩座)가 되는 것이다(출25:19-22). “의와 공의가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시89:14). 법궤의 뚜껑인 정금판의 속죄소는 히브리어로, “카포레트”(kaporeth)라고 하는데 “덥다”, “가리우다”(cover), “속죄하다”는 뜻의 동사인 “카파르”(kphar)에서 나왔다. 즉 속죄소는 법궤의 뚜껑으로 율법도 보호하고 죄인도 구원하는 합법적인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인 것이다.
율법과 복음과 조사 심판
율법과 십자가는 각각 공의와 사랑을 요구함으로써 상반(相反)되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롬7:7)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에 드러나듯이, 율법이 마음에 없으면 자신이 죄인인 것도 깨닫지 못하여(롬7:9) 십자가가 베푸는 진정한 속죄를 체험하지 못하게 된다. 사고 바울처럼 인간의 의(義)에 대하여 절망하고 (빌3:5-9) 십자가의 은혜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사람은 율법이 요구하는 엄청난 의를 스스로 이룰 길이 없어 결국 율법에 의하여 정죄(定罪) 를 당하여(약2:8) 멸망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 언약에 속한 백성들의 마음과 생각에는 하나님의 법이 기록돼 있으며(히8:10), 마지막 때의 성도는, 진정한 복음의 내용인 (롬3:19-26)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계14:12)인 것이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3:31) 이처럼 지성소의 율법과 성소 뜰의 십자가가 조성하는 심령의 거룩한 긴장(緊張. tension)을 느끼는 사람은 뜰과 지성소 사이에 있는 첫 째칸 [성소]의 의미를 경험할 것이다.
그는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기도와 말씀에 동화(同化)됨으로써 자신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영적 예배”를 경험하게 되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롬12:1,2)게 된다. 그것이 구원의 필수 요소인 성화(聖化)의 경험이다.
이렇게 율법의 의에 대한 심령의 부담을 십자가의 은혜로 날마다 대답해 가는 사람은 마침내 지성소에서 베풀어지는 대속죄일의 심판을 통하여 심령의 지성소의 정결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법이 마음에 기록됨으로 새 언약궤가 된 그의 마음에 십자가의 피가 넉넉히 뿌려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속죄일의 심판은 결국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제공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가 그에게 참으로 유효(有效)했는지의 여부를 심판의 척도가 되는 율법을 통하여 확인하는 구속의 마지막 과정이다.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며”(레 23:29) 진정한 회개와 속죄를 경험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대속죄일에 베풀어지는 속죄소의 심판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다.
그것이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에 초청을 받아 참석은 했으나 혼인잔치가 시작되기 직전,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마 22:11, 12) 진상을 조사한 뒤 합당치 않음이 판명되어,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져진” 재림 전 심판인 조사 심판의 이야기인 것이다. 문제가 된 혼인예복은 무엇인가? “어린양의 혼인기약이 이르”러, “그에게 허락 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계 19:7,8).
구원받은 백성의 유니폼인 이 혼인예복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義)의 표준이 되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극히 존중하여 전심으로 순종하는 한편, 인간의 의로는 신령한 율법이 요구하는 하나님 의(義)를 충족시킬 수 없음을 인정하고, 십자가에서 인간을 대신하여 율법의 의를 넉넉히 이루신 그리스도를 자신의 의(義)로 받아들이는 믿음, 곧 “예수 믿음”을 지키는 백성들에게 입혀지는 것이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그들이 바로 대속죄일의 깊은 의미를 깨닫고 “스스로 괴롭게”하는 통회를 통하여 구속의 은혜를 경험함으로써, 재림 전 심판(Pre-advent Judgment), 혹은 조사 심판(Investigative Judgment)을 은혜로 체험하는 마지막 날의 성도인 것이다. 이와 같이 성소제도가 지니고 있는 심오한 복음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과 같은 지극히 피상적인 비평을 계속하게 되는 불행과 고통을 치르게 된다.
비평:박영관 |
성소제도에 나타난 복음의 기본 원리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이러한 오해와 왜곡된 비평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건전한 신학 풍토가 조성되어야 할 필요를 다시 느낀다.
대속죄일과 초막절
구속의 과정을 표상(表象)으로 드러낸 구약 성경의 일곱 절기 가운데 여섯 번째 인 7월 10일 대속죄일이 지나자마자 7월 15일부터 22일까지 계속되는 마지막 일곱 번째 절기인 초막절(草幕節)이 이르러 온다. 그것은 대속죄일을 “스스로 괴롭게”(레23:29)하는 진정한 통회로써,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레23:28)로 바르게 보냄으로써 심판을 통과하여, “그 백성 중에서 끊쳐”(레23:29)짐을 면한 성도들이 마침내 누리는 경험이다. 대속죄일을 합당하게 보낸 결과로 다시 속죄할 것이 없는 대속죄(大贖罪)를 경험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로부터의 완전함과 정결을 경험한 것이다(레23:16,19,27; 히9:13, 14,23) 속죄는 구속의 내용이며, 구속은 종되었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유가 주어지는 해방(解放)인 것이다. 이러한 자유와 해방은 죄에서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벗어나는 ‘대속죄일“의 경험을 겪은 사람에게만 주어질 수 있는 고유한 특권이다. 그것이 바로 일곱 안식년이 일곱번 지난 후 이르러 오는 완전한 자유와 해방과 회복의 표상인 희년(禧年. Jubilee Year)이 대속죄일의 행사가 끝난 직후에야 시작되는 논리적인 이유요 순서이다.
“7월 10일은 대속죄일이니 너는 나팔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지며, 제50 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自由)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가족에게로 돌아갈 지며”(레25:9, 10)
엄숙한 대속죄일이 지나자마자, 희년이 해당되는 해에 전국에는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는 희년의 나팔이 울려 퍼진다. 빚에 팔려 기업의 땅은 남에게 넘어가고 가족들은 종으로 팔려 뿔뿔이 헤어져 고달프고 슬프게 살던 괴로운 종살이는 끝났다. 범죄한 이후의 인간의 처지이다. 희년과 함께 모든 땅은 본래의 주인에게 다시 돌아오고(레25:23-28) 팔려 간 종들은 해방되어 감격스러운 이산가족의 재회가 이루어진다. 진행되고 있는 하늘의 대속죄일 행사인 조사 심판이 끝난 후 울려 펴지게 될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살전4:16), 곧 재림의 나팔은 바로 이것을 상징한 희년의 나팔 소리인 것이다. 죄에 얽매어 종살이하고 죽음에 갇혔던 성도들이 죄와 죽음의 사슬에서 풀려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7)
공중으로 끌어올리운 후에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것인가? 그것이 바로 대속죄일 직후에 이르러 오는 초막절 행사의 의미요 내용이다.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너희는 칠일 동안 ...초막에 거하리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레23:40-43).
초막절, 혹은 장막절은 출애굽이 끝난 후 약속의 땅에 이르러 과거를 회상하면서 감사에 넘치고. 기쁨이 넘치는 연중 마지막 절기이다. 대속죄일 행사를 통하여 온전한 구속을 경험한 백성들은 전국에 울려퍼진 희년의 나팔 소리를 들으며 오랜만에 재회(再會)한 가족들과 함께 예루살렘 에 이르러 초막을 짓고, 방금 수확한 새 과실을 먹으며 광야에서 마셨던 반석의 물과 광야 길을 인도한 불기둥을 기념하는 성대한 의식을 거행했다. 출애굽과 광야생활은 끝나고 마침내 약속의 땅에 이른 것이다. 출애굽. 곧 구속의 모든 과정 이제야 끝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대속죄일의 조사심판을 끝내고 희년의 나팔소리인 재림의 나팔 소리를 들으며 승천하여,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 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히12:22)인 것이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계7:9) 찬양하고 경배하는 모습이다. 손에 잡은 종려가지, 마시는 생명수의 샘, 먹도록 허락된 하늘의 새 과실인 생명과, 그리고 “보좌에 않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계7:15)시는 것 등 모두 초막절의 정취이다. 그들은 영적 출애굽과 광야 생활을 끝내고 마침내 하늘에서 초막절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시작된 구속의 계획은 마지막이요 완성을 나타내는 일곱 번째 절기인 초막절에 이르러 그 모든 여정이 끝나 복낙원(腹樂園)의 새 아침을 맞게 되는 것이다. 이 아름답고 감격스럽게 짜여진 구속의 역사, 곧 천로역정(天露歷程)이 성경을 꿰뚫고 있는 성소제도에 수놓여진 놀라운 구속의 위대한 청사진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공간적인 성소제도가 시간적인 일곱 절기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아름다운 입체적(立體的)인 진리임을 깨닫게 되면서, 지성소의 봉사가 시작되는 대속죄일이 왜 초막절 직전인 여섯 번째 자리에 와야만 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무시하고, 지성소의 봉사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위한 예시”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대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신 것”23만을 나타내는 막연한 사건으로 국한시키면서, 그 이상의 놀라운 진리를 구체적으로 밝혀 소개하는 안식일 교회를 이단으로 비평하는 인사들에 대해 어떻게 대답해야 적절한지 답답할 뿐이다.
5. 재림과 조사심판
비평:탁명환 |
변증 |
둘째는, 천년기 심판 인데, 대상은 구원받지 못한 악인들로,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승천한 의인들이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시행하는 악인의 조사심판이다(계 20:4, 6). 이 과정을 통해 우주는 사단과 악한 천사들과(고전 6:2,3) 악인에게 불의 심판을 집행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확인하게 된다.
세째는, 천년기 끝에 이루어지는 집행 심판으로 유황불에 의하여 소멸되는 영원한 사망이다(계 20:12~15). 이러한 심판의 세 가지 국면 가운데, 대속죄일에 진행되는 의인을 옹호하는 심판이, 비평에서 왜곡되고 있는 재림전의 조사심판이다.
재림 전의 대속죄일 심판
지금까지 요약해서 살펴본 대로, 하나님께서 일찌기 보여주신 성소제도는 구속의 계획을 공간을 통하여 드러내는 청사진이었으며, 일곱 절기는 구속의 계획을 시간을 통하여 드러내는 시간표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를 다시 아래에 요약해 본다.
@ 유월절- 1월 14일- 십자가
@ 무교절- 1월 15(21)일- 안식일
@ 요제절- 1월 16일- 부활
@ 오순절- 3월 6일- 하늘성소의 위임식, 성령 강림
@ 나팔절- 7월 1일- 다가올 심판 예고
@ 대속죄일- 7월 10일- 지성소 봉사, 성소 정결
* 희년-(대속죄일의 끝)-(구속(救贖)의 집행과 재림)
@ 초막절- 7월 15(22)일- 새 예루살렘 거주
(* 희년은 일곱 안식년이 경과한 뒤 50년째 해임. 레 25:8~11)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련된 사건들을 표상한 처음 네 절기는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서기 31년 모두 정확한 시간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련된 나머지 세 절기는 그 성취가 길고 메마른 팔레스틴의 여름 같은 중세기를 지난 후에 오게 되는 지구 역사의 가을로 표상의 성취가 넘겨졌다. 참으로 지성소 봉사의 시작과 대속죄일의 조사심판을 예고하는 어떤 일이 역사에서 일어났는가? 그리고 재림하시기 전에 있어야 하는 대속죄일은 실제로 이르러 왔는가? 성경은 이 사실을 어떻게 언급하고 있는가?
가. 요한은 계시 가운데, 마지막 때를 알리는 일곱째 나팔을 불 때에 (계11:15),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계11:19)였다고 진술했다. 법궤가 들어있는 성소는 둘째 칸인 지성소를 가리킨다. 하늘 성소에서 여섯번째 절기인 대속죄일의 행사가 시작됨을 알리고 있다. 재림전에있게되는 대속죄일의 심판인것이다. 결과로 대속죄일에 지성소에서 수행되는 구속의 마지막 과정으로, 법궤 위에 희생제물이신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지는 대속죄일의 의식을 영적으로 경험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자들”(계14:12)이 역사에 나타난다(계12:17), 그리고 그들에 의하여,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계14:7)음을 온 세싱에 알리는 사명이 세계적으로 수행된다.
나. 성소제도의 교본(敎本)인 구약성경 레위기를 성소. 지성소 구분없이 대지(大旨)만 요약한 희브리서에는 사람의 죽음과 재림 사이에 있을 심판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한번 죽는것은 사람에게 정하여진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히9:27,28)
다. 구원받은 백성들을 위한 환영연(歡迎宴)인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하늘에서 베풀어지기 전, 합당한 예복,곧 “성도의 옳은 행실”(계19:7, ,8)의 여부를 점검하는 일이 있을 것임이 예시되어있다(마22:10-14)
라 심판하는 권세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위임되었음이 여러번 강조되고 있다(요5:22, 27,30; 행10:42, 17:42)
마. 심판에는 선후(先後)가 있는데, 믿는 사람 곧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벧후4:17)이 먼저 시작되고(계11:1; 겔9:6-9), 그 후에 믿지 않는 사람의 심판이 이른다. 그것은 에스겔의 심판에서도 분명해진다(겔9:5-7). 대속죄일에 베풀어진 지성소에서의 조사심판의 대상도 성소를 출입한 이스라엘 백성이었다(레23:17,19).
바. 구약의 예언서인 다니엘서는 신약의 예언서인 요한계시록과 한 짝이 되어 울바른 요한 계시록 해석을 위한 기초와 배경을 이루고 있다. 요한이 마지막 때를 알리는 일곱째 나팔이 울릴때 시작되는 것을 목도한 하늘 지성소의 대속죄일 행사가 다니엘서에서도 확인되고 있는가? 그렇다 그것이 다니엘서 8장 14절의 배경이 되고 있는 7장 9-14절의 내용이다.
다니엘 7장과 대속죄일
다니엘서 7장은 다니엘 당시인 바벨론 시대로부터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의 역사를, 특성을 가진 짐승들의 상징을 통하여 예언으로 나타내고 있다. 상징이 분명한데다가 다니엘서 자체의 해석까지 첨부되어 있기 때문에 작은 뿔까지의 해석은 논란의 여지없이 종교개혁 이래 근세기까지도 이에 대한 개신교의 해석은 거의 일치하고 있었다.25. 아래는 이러한 내용을 종합하여, 성경의 해석 원칙에 일치하고, 역사에서 그 성취가 확인된 내용과 분문에서 대속죄일 행사로 확인되는 부분을 첨가한 것이다.
[상징과 사건] [나라] [연대]
사자(4절) 바벨론 605-539 B.C.
곰(5절) 페르샤 539-331.B.C
표범(6절) 그리스 331-168 B.C
열뿔가진 짐숭(7, 19. 23절) 로마제국 168-A.D 476
작은 뿔(8, 20, 24, 25절) 교황로마
3년 반 (25절) 1260(일)년 538-1798
대속죄일(조사심판)(9-13, 22, 26절) 1260년 기간 이후(단12:7)
재림과 성도의 통치(14, 18, 22, 27절) 지성소 봉사 (조사심판)가 끝난후
예언된 나라들이 순서를 따라 어김없이 역사의 무대에 나타났다가 자기의 역(役)을 마치고는 사라졌다 서기476년 서 로마제국이 망한 후 같은 자리[로마]에서 정치적 로마제국을 계숭한 종교적 로마제국인 로마 교황권이 탄생했다(533년). 이미 동 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황게로부터 “세계 교회의 머리”라는 인정을 받고 534년 유스티니안 법전에까지 수록됨으로써26 속권(俗權)으로 뒷받침된 교황권이 탄생한 것이다. 열 뿔로 상징된 게르만 민족의 열 부족들 가운데 로마 교황의 지상권(至上權) 확립에 위협을 주는 세 뿔(단 7:8, 20, 24)로 상징된 세 부족인 헤룰리(493년), 반달(534년), 동 고드(538년)가 제거되었다.
이렇게 하여 6세기(538년)로부터 시작된 중세 역사의 주역이 된 교황권은, 부패한 왕권과 타락한 교권에 대한 반발로 프랑스 혁명(1798년)이 일어나 국왕(루이 16세)이 처형되고 혁명기의 교황이었던 피우스 6세(PIUS VI)가 프랑스 군사 정부에 의해 1798년 2월 15일에 체포되어 다음 해 옥사하기까지 1260년 간(538~1798) 계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7:25)이라는 예언은,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임을 자처하는 교황의 신성모독적인 주장과 종교재판 등 가혹한 방법을 동원하여 무수한 개혁자들을 투옥하고, 고문하고, 죽게 한 사실과, 둘째 계명을 삭제하고, 네째 계명 안식일을 일요일로 대치한 행적들을 통해 낱낱이 이루어졌다. 교황권의 세력은 세때 반(계12:6, 11:3, 13:5)인 실제의 중세기 1260년동안 행사할 것으로 예언된 모든 내용의 정확한 성취였음이 더할나위 없이 분명해진 것이다. 예언에 나오는 상징적 1일을 1년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미 성경에 그 원칙이 제시 되었음은 물론(민14:34; 겔4:6), 종교개혁 이래 확인되고 확립된 개신교적인 성경 해석 원칙임을 문헌을 뒷받침하여 재천명한다.27
이러한 해석원칙이 합당한 증거는,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련된 구속사업이 정확한 숫자로 예언된 다니엘서 9장의 70주일(70×7=490일)에 관한 예언에서 (9:24-27), 예언상의 1일은 실제로 1년을 가리킨다는 원칙(Year-Day Princi-Ple)이 적용되지 않으면, 이 예언을 친히 언급하신 그리그도의 해석(마24:15)에도 어긋난다는 사실로도 확인되고 있다. 세대주의를 옹호한 탁명환 씨도 이 점을 인정하여, “다니엘서 9장27절의 1주[7일]라 함은 7년으로 해석함”28 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그러고나서는 .똑같은 성경 본문인 다니엘 9장 24-27절을 해석하면서, 1일을 1년으로 적용한 안식일 교회의 해석을, “숫자 계산 놀음을 하고 있다.”29 고 비평한 후, 아래와 같이 참으로 어리둥절한 표현을 계속한다.
비평 탁명환
“누가 1일을 1년이라고 계산하라고 했는가? 안식교에서는 에스겔 4장 6절에서 1일을 1년으로 본 것은 바로 그 곳에만 해당되는 것이지 모든 경우에 다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30
그것은 이미 확인되고 확증된 예언해석 원칙이기 때문에, 자신의 세대주의적인 입장을 두둔할 때는 기정 사실로 인정하고나서[저서63쪽], 같은 성경 본문을 같은 원칙에 따라 성서적 역사주의로 해석한 안식일 교회를 비평하는 대목에서는, 같은 책 안에서도(249쪽) 입장을 이렇게 표변(豹變)하고 있으니 어디에 신뢰를 두고 변증인들 계속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다시 다니엘서 7장으로 돌아가, 6세기 [538년]부터 18세기[1798년]까지의 중세기를 주도할 것으로 예언한 작은 뿔을 언급한 본문(단 7:8)에 잇달아 그 다음에 있을 사건이 7장 9-14절에 기록돼 있는데, 그것이 바로 대속죄일의 행사에 해당하는 재림 전 심판, 곧 조사 심판의 광경이다.
조사심판의 배경과 속성
“네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 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놓였더라... 내가 또 밤 이상(異像)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9-14)
@ 심판의 시기
연대적인 순서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성경 본문인 7장은 이러한 심판이 작은 뿔로 상징된 중세 교황권의 예언된 활동기간인 3년반 (1260년)이 끝나는 1798년 이후에 있을 것을 분명히 했다(7:8, 24-26). 또한 이러한 조사심판은 본인들이 출석하지 않고 생애의 기록인 “책들을 펴놓고” 행해지는 궐석재판(闕席裁判)인데, 예수께서 “그 권세가 영원한” 망하지 않을 나라를 세우러 오시는 재림 전에 있을(단7:14, 2:44) 예비심판임이 분명하다.
@ 심판의 배경
“인자 같은 이”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성(神性)의 출현을 상징하는 구름을 타고, “옛 적부터 항상 계신 이” 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좌정하신 보좌앞으로 나아가시는 장면이다. 승천 직후부터 시작된 성소(첫째칸)에서의 봉사를 마치시고, 구속사업을 마무리 짓는 마지막 과정인 대속죄일의 봉사를 위해 지성소로 들어가시는 순간이다. 바로 이 장면을 요한도 같은 때에 목도한 것이다(계11:19)
@ 심판의 목적
이렇게 자리를 옮겨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로 나아가시는 까닭은,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하며, 그리스도로 하여금 영원한 권세와 폐하지 않는 나라를 세우실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7:14). 곧 재림의 목적인 것이다(단 2:44).
예수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신 비유를 통하여 당신을,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간”(눅 19:12) 귀인으로, 혹은 포도원을 농부에게 세(貰)로 주고 떠난 주인(마 21:33~43), 달란트를 종에게 맡기고 떠난 주인으로(마 25:14~30) 말씀하셨는데, 돌아오실 때는 부재 기간동안의 그들의 충성과 성실성 여부를 조사하여 충성과 성실성 여부를 가린 후에 행한 대로 갚으시겠다고 하셨다. 즉, 비록 그들이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믿고 기다린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그 나라를 빼앗기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며(마 21:43), “그 나라의 열매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고 하셨다. 그것은 왕이 아들을 위해 베푼 혼인잔치가 시작되기 전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마 22:11)와 합당한 예복입은 여부를 심사한 경우와도 같다. 그리고 “청함을 받는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3)고 말씀하심으로 재림하시기 전에 그 나라에 합당한 백성을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받으시는 일이(단 7:14) 분명히 있게 됨을 확인하셨다.
그러나 다니엘서의 조사심판의 목적은, 성도를 정죄하는데 있지 않고,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伸寃)하”심으로써 “때[재림의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단 7:22)을 수 있도록 하시는 마지막 중보의 과정이다. “성도를 위하여 신원(伸寃)하셨다”는 말의 본 뜻은, 하나님이 주재하시는 “심판에 의하여 합법적인 공의(公義. justice)가 성도들에게 주어졌다”31는 뜻이다. 성도들이 구속의 재판에서 승소(勝訴)한 것이다.
실수한 모세를 부활시키시키 전에 사단의 고소로부터 모세를 옹호하셨고(유 9), 사단에 의하여 불의한 자로 고발된 대제사장 여호수와를 합법적으로 옹호하심같이(슥 3:1~5), 재림 전의 심판인 대속죄일의 조사심판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온전히 회개하고 순종함으로 십자가의 희생을 합당하게 받아들인 모든 사람을 당신이 이루신 완전한 의에 근거하여 합법적으로 옹호하신다(요일 2:1). 그리하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게 하려 하심”(롬 3:26)이다. 그리하여 하나님도 사단의 불의를 우주에 드러내시고, “판단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롬 3:4).
@ 심판의 근거
심판은 언제나 동기를 포함한 행위(行爲)를 심사하는 것이다(마 12:36, 16:27; 계 22:12). 그러므로 재림 전의 조사심판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모든 사람들의 행위에 대한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10)고 명시했다. 의인들 뿐만 아니라, 악인들의 심판에도, 죽은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계 20:12)는다고 확인되어 있다.
먼저 하나님을 끝까지 충성되이 섬긴 구원받을 모든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생명책이 있다(계 20:12~15, 21:27, 13:8, 3:5; 단 12:1; 빌 4:3; 눅 10:20). 다음에는 하나님을 섬긴 사람들의 모든 선한 행실을 기록한 기념책이 있다(말3:16-18). 그 외에도 인간의 모든 행위를 수록한 기록(계 20:12; 시 139:16)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 심판의 표준
심판은 언제나 공의의 기준인 십계명에 의하여 판결이 이루어진다(약 2:8~12; 롬 2:12,16; 전 12:13,14; 마 22:35~40). 그러므로, 대속죄일의 심판도 법궤가 있는 지성소에서 베풀어지고, 계시록에서도 마찬가지이며(계 11:19), 다니엘서에도 법궤 위로 상징된 하나님의 공의의 보좌 앞에서 이러한 심판이 베풀어지고 있다(출 25:20~22; 시 89:14).
@ 심판의 재판장
이처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롬 14:10)게 되지만, 그 심판대는 심판의 권세를 위임받으신(요 5:22,27) “그리스도의 심판대”(고후 5:10)임을 기억할 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가? 바로 그것이 대속죄일에 심판의 표준인 십계명을 넣은 법궤 위와 앞에 대제사장이 일곱번 피를 뿌림으로써 하나님의 백성과 성소를 죄로부터 완전히 정결케 하고 구속의 과정을 모두 끝내는 극적인 장면인 것이다(레 16:14~19). 이 일 후에는 “성도가 나라를 얻”(단 7:22)게 되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른다(단 2:44). 같은 사건을 기록한 요한계시록 11장에도 이 장면과 연관되어, “세상 나라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라”(15절)고 확인하고 있어 두 사건이 평행임을 확신시키고 있다.
@선고와 집행 심판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구속의 과정을 시간적인 순서로 나타낸 일곱절기의 마지막인 초막절 전에 대속죄일이 있어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 괴롭게” 하여 진정한 회개와 거듭남을 경험하지 않으면, “백성중에서 끊쳐져...멸절”(레23:29, 30)되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 재림시에 승천하여 새 예루살렘에 이르기 전에 대속죄일 행사에 해당되는 조사심판을 치르게 되는 일은 당연하고 분명하다. 성경 본문인 다니엘서 7장에는 분명히, “심판을 베푸는데”(10절), 혹은 “심판이 시작된즉”(26절)이란 표현으로 그것을 책의 기록에 근거하여 진행하는 조사심판임을 명시하고 있다. 언제나 재판의 판결을 집행하기 전에 선고(宣告)가 먼저 있어야 하고, 선고에 앞서 필요한 예비적인 재판과정이 선행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실제로, 대속죄일에 해당되는 조사심판이 마쳐질 때, 각 사람의 운명을 영원히 확정짓는 다음과 같은 선고가 내려지고, 이어서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선악간에 상벌이 집행되는 것이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주리라”(계22:11,12).
이와같은 법적인 과정을 거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누구를 구원하실지 모르시기 때문이 아니라, 사단에 의하여 도전받은 하나님의 공의(公義)를 온 우주에 입증하려고 하시는 목적도 포함되어 있다(계12:10,11; 롬3:4, 25, 26). 실제로 인간 구속의 계획은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것”(벧전1:12)이며(고전4:9) 인간의 구속사업이 끝나면 천사들을 포함한 온 우주의 존재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구속에 관한 모든 처사가 공의로우셨음을 인정하고 영원한 찬양을 드리게 되는 것이다(계5:11-14)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승천한 구원받은 성도들은 천년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하”며 “심판하는 권세를 받”(계20:4,6)아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과(계20:5) 심지어 악한 천사들까지도 심판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고전6:2,3). 의인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영원한 보상을 받기 전에 그리스도의 희생에 근거한 구원과 영생이 그에게 합당한 여부를 확증하기 위한 조사심판이 있었듯이(단7:9-14), 악인들이 천년기 끝에 있을 둘째 부활 때에 일어나서 마지막 형벌에 처해지기 전에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이러한 심핀이 공의로우심을 확인하는하늘의 대배심(大陪審)에 성도들이 참여하는 것이다(계20:4, 12-15). 이와같이 이미 운명이 결정된 죽은 악인들이나 형벌이 확정된 악한 천사들을 성도들이 다시 심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모르시는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지구와 우주에서 죄의 문제를 영원히 종결짓는 마지막 단계에서 그렇게 심판하시는 것이 전적으로 공의로우심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주의 의로운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계 15:3,5). 얼마나 자비롭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신가? 이처럼 심판에 나타난, 하나님의 철두철미하신 공의를 깊이 깨닫지 못하면 다음과 같은 촛점이 빗나간 비평에 머물게 된다.
비평: 박영관 |
성경에 그 이유와 근거가 분명한 이 엄숙한 재림 전 조사심판을 이렇게 무시하지 말고, “심판하실 때가 이르렀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계 14:7)는 최후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비평 박영관
“안식교의 조사심판 교리는 다니엘 8장 14절을 그릇 해석한 데서 온 것이다. 안식교는 본 절의 예언을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를 정결케 하는 것으로 보고 1844년 10월 22일 그리스도의 재림 날짜로 말한 것이다.”33
해 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는 1844년 10월 22일을 그리스도의 재림 날짜로 정하거나 말한 역사가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가 1860년 지금의 명칭을 채택하고, 1863년에 교단의 형태인 대총회(General Conference)를 조직한 사실을 감안할 때, 1844년 이전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러한 역사부터 만들었겠는가?
그것은 1830년대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초교파적 재림 운동의 지도자 였던 침례교인 윌리암 밀러(William Miller. 1782-1849)의 경험이었다. 그는 안식일을 지킨 적도 없는 평생 침례교인이었다. 성소에 관한 그의 깨달음 가운데 해석은 올바른 것이었지만 적용이 잘못된 것을 확인하게 된 초교파적인 재림신자들은 십자가로 실망했던 제자들이 주님이 친히 가르치신 성경 연구를 통하여 새로운 확신에 이른 것과 같은 경험을(눅24:45) 한 후에 깨닫게 된 것이 오늘날의 조사심판에 대한 안식일교회의 이해이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잘못된 부당한 편견을 버리고, 진리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하겠다.
다니엘 7장의 해설인 8장
잘 알려진 대로, 다니엘서는 강조점은 달리하지만 내용이 평행을 이루는 사중(四重)구조를 이루고 있어, 상세(詳細)와 강세(强勢)를 더해 가는 한편, 동떨어진 예언 해석의 일탈(逸脫)을 방지하고 있다[다니엘서 예언의 사중 평행 구조 참조].
누가 보아도 일목요연한 사중(四重)의 평행(平行)구조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독자적이고 즉흥적인 예언 해석을 피하고 밝혀진 기준에 따라, 신중하게 성서 해석 원칙을 따라야 한다. 즉 11장을 해석하려 할 때는 8장의 기초를 확인하고, 8장을 바로 해석하기 원하면 7장에서 일치를 찾아야 하고, 7장의 경우 2장의 개요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 8장 14절의 “2.300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는 말씀의 올바른 해석도 이러한 맥락(脈絡)에서 이루어져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원칙에서 8장은 7장의 해설임을 감안하면서 7장과 8장의 중심(中心)을 찾아야 한다.
다니엘서 예언의 사중 평행 구조
2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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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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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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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2장 |
바벨론 (금머리)
페르샤 (은가슴)
헬 라 (놋배)
로마 (철다리)
열국시대 (열발가락)
그리스도의 왕국 (돌나라.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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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사자)
페르샤 (곰)
헬 라 (표범) ※네머리(6절)
로 마 (무섭고 놀라운 짐승) . 열국시대 . (열뿔) 교황로마 (작은뿔) .하나님을 대적 .율법 변경 .성도픽박(25절) .3년반 활동(25절)
재림전(조사)심판 (인자가 나라와 백성을 얻음) (9-14절)
그리스도의 왕국 (성도가 나라를 얻음) (18-22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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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략)
페르샤 (수양)
헬 라 (수염소) ※네뿔8절)
이교 로마 (서쪽에서온 수평적작은뿔) .영화로운땅점령 9절 .하나님의백성 픽박(10절)
교황로마 (수직적 작은뿔) .하나님대적 .제사를 제함 . 성소 훼방 진리 유린 . 성도픽박(11,12.25절) 진노의 끝 (19절)
성소의 정결 (결과로작은뿔이 정죄되어 깨어짐) (13, 14,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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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
페르샤 (2절)
헬 라 (3절) ※남방왕과 북방왕 (5-15) 이교 로마 (와서치는자) .영화로운 땅 점령(16절) .토색하는자(20절) .언약의왕 죽임(22절) 교황로마 (언약을 배반하는자) (32절) .하나님대적 .제사를페하고성소를 훼방함(32절) .성도를 픽박(33절) .작정된 기간(35절) .끝이 이름
미가일 이 일어남 (은혜의 시기 마침과 재 림 12:1-3) |
가. 앞에서의 연구를 통하여, 우리는 다니엘서 7장(9-14)의 심판이 중세기를 주도한 작은 뿔인 중세 교황권이 몰락된 18세기[1798년] 이후, 재림 전에 있을 사건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계시록 11장(19절)의 하늘 성전의 지성소가 열리는 일곱째 나팔이 울리는 때(15절)와 연관되었다는 것도 확인했다. 동시에 그것은 틀림없이 하늘에 이르게 되는 초막절전에 있는 대속죄일의 조사심판인 것도 확인했다. 다니엘서 7장의 중심은 바로 이 작은 뿔의 역할과 재림전 심판에 있음이 문학적 구조(交叉對句法) 에서도 확인되고 있다.34
나. 그러므로 이러한 대속죄일 봉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재림 전 조사심판의 배경도 하나님의 보좌가 차려진 지성소이며(출25:22; 단7:9), 행사의 내용도 7월10일 대속죄일의 봉사와 같은 것이 기대된다.
다. 다니엘 7장에서 조사심판과(9-14절) 연관된 작은 뿔의 무자비한 활동을 보고 다니엘은 “중심이 번민하였으므로 내 낯빛이 변하였”(7:28)다고 기록한 후 끝을 맺었다. 그리고 2년후에 다시 계속된 8장의 계시 내용이 다니엘의 이러한 관심사였음을 이해하게 된다. 즉 다니엘서 7장의 중심부(8-14절)에 작은 뿔의 활동과 조사심판이 나와 있듯이, 8장의 중심부(9-14절)에도 작은 뿔의 활동과 성소의 정결이 나타나 있고, 8장의 끝에도 받은 계시와 내용 때문에 또 다시, “혼절하여 수일을 앓”(27절)게 되는 등 7장의 마지막(28절)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라. 제시된 평행 구조 도표에도 나타났듯이, 정치적 로마제국인 이교(異敎)로마에 이어서 등장한 로마제국인 교황 로마는 실제로 일맥(一脈)으로 상통된 세력임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스스로를 “하나님의 대리자,” “땅위의 하나님,”35 “왕중 왕”36으로 자처함으로 하나님을 대적(對敵)하는 작은 뿔, 곧 중세 교황권의 신원이 7장과 8장은 물론 11장에도 확연히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7장의 작은 뿔과 8장의 작은 뿔의 신원이 같고, 7장의 조사심판(9~14절)과 8장의 성소 정결(13, 14절)도 같은 사건임을 알 수 있다.
마. 7장의 조사심판(9~14절)이 대속죄일의 봉사 내용이면 8장의 성소 정결(13, 14절)도 대속죄일의 봉사와 배경을 함께 해야 한다. 그런데 대속죄일의 봉사내용이 기록된 레위기 16장의 배경과 다니엘 8장의 페르샤[수양]와 헬라[수염소]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연관이다. 또한 레위기 16장에 기록된 대속죄일 봉사의 목적이,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tahar. 타하르]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정결하게[타하르]”(게 16:30) 하고, 성소 자체를 더러움에서 “정결케[타하르]”(레 16:19)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니엘 8장의 중심인 14절에서도 비록 히브리어로 똑같은 말은 아니지만 뜻이 상통하고, 헬라어[칠십인 역] 번역으로 똑같은 “정결하게 하다”는 말이 쓰여, 결국 대속죄일의 봉사의 목적과 일치하고 있다.
바. 또한 7장의 조사심판 장면에 “인자 같은 이”(13절), 곧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고, 8장의 성소 정결의 대화에서도 같은 분이 나타나셨으며(16, 17절), 동일한 배경을 반복하고 있는 11장 예언의 시종(始終)에도 대제사장의 특수 복장을 하신 그리스도가 나타나심으로(10:5,6; 12:6) 배경의 일치를 나타내고 있다(레 16:4).37
이처럼 일목요연한 역사적 배경과 예언의 조감(照鑑)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서 8장의 작은 뿔을 7장이나 11장의 평행 구조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동떨어진 존재로 분리시켜 적용함으로써 역사와 성경에 다 같이 어긋나는 다음과 같은 해석이 소개되고 있다.
비평 박영관
“그것[작은뿔]은 주전175-164년 수리아를 통치했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를 말한다. 그는 유대인 성소를 헐어 버리고 더럽혔으며(8:11) 매일 드리는 제사를 제하여 버렸고(8:11), 유대인들의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일을 금하고 대신에 이방인들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게 했다.”38
해 설
이러한 해석은 루터, 밀란히톤, 볼링거(Bullinger) 등 종교개혁자들이 다니엘서 7,8장의 작은 뿔을 중세 교황권으로 적용하는 것을39 피하기 위해 스페인의 제수잇 학자인 알카자(Luis De Alcazar . 1554-1613) 가 고안해 낸 예언의 과거주의(Preterism) 해석 구조에 맞춘 것임을 밝힌다.40 한마디로 반(反) 종교 개혁적인 해석이다 그것이 왜 성경에 일치하지 않는 인간적 고안인가?
변 증
가, 이러한 해석은 다니엘서의 확인된 기본 구조인 사중(四重)평행 구조에 전적으로 어긋난다. 특별히 8장은 7장의 연속적인 해설임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사중의 예언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들이 나라를 차지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으며, 8장에도 다른 장의 경우처럼(단 7:25, 11:35, 12:7) 마지막 시대를 가리키는 “정한 때 끝에 관한 일”(단8:17, 18)이라고 거듭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8장의 작은 뿔은 마지막 때까지 이르지 못하고 겨우 알렉산더 대왕의 사후에 분립(分立)한 네장군 가운데 하나인 셀류커스가 세운 시리아의 8대왕 안티오쿠스 4세(Antiochus IV . 175-164 BC)에게41 적용되고 마는가?
나. 뿐만 아니라, 8장을 더욱 상세하게 반복 해설하고 있는 11장에서는 알렉산더 대왕의 네 장군 가운데 셀류쿠스가 세운 시리아를 북방 왕으로, 프톨레미(Ptolemy) 장군이 차지한 이집트를 남방 왕으로(11:5~15) 나타내고 있다. 그런 후에 로마제국이 등장하고(11:16), “동맹[언약]한 왕”(11:22)이신 그리스도가 로마의 군대에 의하여 죽임 당하실 것이 예언되었다. 그런 뒤에야 다니엘 8장의 작은 뿔이 행할 것으로 예언된 성소 훼방과 제사를 폐하는 일, 하나님 백성을 핍박하는 일을 예언함으로써(11:31~39) 그것이 결코 기원전 2세기의 사건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평행 구조에 나타난 로마제국과(8:9,10)중세 로마교황권(8:11, 12) 외에 다른 것으로는 적용할 여지를 없게 한다.42
다. 다니엘서에 나타나듯 상징적인 뿔은 왕국을 상징하거나(7:24, 8:20,22) 새로운 왕조를 시작할 왕을 상징했지(8:21), 한 대(代)로 끝날 개인을 지칭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작은 뿔이 “심히 커지더니, 그것이 하늘 군대에 미칠 만큼 커”(8:10)졌다고 했는데, 에피파네스 4세는 오히려 남방왕 이집트를 쳐내려 갔다가 로마제국의 철수 명령을 받고 황급히 물러섰고, 죽을 때도 쇠퇴한 중에 죽었다. 오히려 그의 부왕이었던 안티오쿠스 3세가 대왕으로 불릴 만큼 땅을 넓혔었다.43
라. 이 작은 뿔이 일어날 때에 대하여, “이 네 나라[알렉산더 사후에 나뉘어진 네 왕국] 마지막 때”(8:23)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안티오쿠스 4세가 속한 시리아의 셀류쿠스 왕조(Seleucid dynasty)는 기원전 311년부터 존속하다가 왕들 가운데 마지막에 속하는 왕이 아니라 8번째 속하는 전반기 왕이었다.44
마. 더욱 심각한 잘못은, 안티오쿠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고[박영관 씨의 비평처럼 성전을 헐어 버리지는 않았다], 제사를 금한 기간을 2,300주야라고 적용하는데 있다. 그 때 당시의 공인된 역사적 기록인 마카비서(Maccabees)에 의하면 안티오쿠스 4세가 실제로 번제단 위에 우상을 세운 것은 셀류쿠스 왕조 시작 145년 9월 15일이었으며(1 Macc 1:54,59), 후에 이 모든 것을 제해버리고 다시 하나님께 바쳐진 것은 3년 10일 후인 148년 9월 25일(1 Macc 4:52,54) 이었다. 그리하여 다니엘서와 계시록 해석에서 예언 상의 1일을 1년으로 해석해야 하는 원칙을 무시하고서 2,300주야[일]를 그대로 이 기간에 맞추려 해도 그것이 6년 4개월 20일이나 되므로 맞지 않게 되자, 박영관 씨가 의존하고 있는 과거 주의자들은 다시 다음과 같은 무리한 시도를 하고 있다.
비 평 “그리고 그 때를 2,300주야까지라고 했다. 이것은 매일 아침과 저녁에 드리는 제사와
박영관 관계가 있다(8:14). 그러므로 두 제사를 매일 드렸으므로 이것은 1,150일을 의미한다.”45
변 증 참으로 무리하기가 이를 데 없는 시도이다. 우선 2,300주야에서, “주야(晝夜)는 우리 말처럼 ”밤낮“의 순서가 아니고, 히브리어 본문 성경에는 “저녁(‘ereb) 아침(boqer)”으로 거꾸로 되어 있다. 그래서 영어 성경도, “저녁들과 아침들”(evenings and mornings)로 번역하고 있고, 헬라어 번역 성경[LXX]에는, “저녁들과 아침들, 2,300날들(days)"로 번역했다.46 그런데 박영관 씨가 의존하는 과거주의 해석은 “2,300주야”를 안티오쿠스 4세가 제사를 폐하고 성전을 더럽힌 기간인 3년 10일과 맞추기 위해, 이 “주야”곧 “저녁과 아침”을 아침과 저녁으로 드리는 상번제(常煩祭)로 해석하고, 아침과 저녁으로 구분하여 2,300÷2=1,150일로 줄이는 인위적인 일을 했다.47 물론 그렇게 하고도 실제의 날짜는 여전히 맞지 않는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제사를 아침, 저녁으로 따로 독립시켜 구분하지 않고 “늘 드릴 번제”('olat tamid. 출 29:42)로 통일해 불렀다. 그리고 언제나 “한 어린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양은 저녁에 드리”(출 29:39)라고 했지, 순서를 바꾸어 저녁에 드리고 아침에 드리라고 명한 기록이 없다(레 6:12,13; 민 28:4; 대상 16:40 등). 그리고 히브리 문법으로 주야를 나눌 때도 “40일[낮] 40야[밤],” 곧 “40주야”(창 7:4,12)로 표현했고, 그것은 20일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40일이었다. 왜 “아침-저녁”으로 하지 않고, “저녁-아침”으로 했는가? 그것이 바로 날 계산을 처음 시작한 창세기에서, “저녁('eaeb)이 되면 아침(boqel)이 되니”(1:5, 8, 13, 19, 23)로 완전한 하루를 표현한 성경적 표현이다.48 이와 같이 2,300주야를 절반으로 잘라 1,150일을 만드는 일은 성경은 물론, 역사에도 전혀 맞지 않는 무리한 인간적 시도이다.
비 평 탁명환 “단 8:14는 다니엘이 본 환상으로, ‘그가 내게 이르되, 2,300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고 기록됐고, 이 2,300주야에 대한 환상을 다니엘 9:25의 예루살렘을 증건하라는 말과 연결시켰으며, 그것을 다시 에스라 7:11~26에 나오는 아닥사스다 왕이 에스라에게 내린 조서와 연결시켰다....단 8:14의 ‘2,300주야 후에 성전이 정결케 된다’는 예언과 단 9:25의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과연 같은 것인가?”49
변 증 다니엘이 본 다니엘서 8장 14절에 관한 계시는 “환상”이 아니고, “이상”(異像. mar'eh)이다. 이 두 말은 원어는 물론이고 국어상으로 뜻이 전혀 다른 말이다. 탁명환 씨는 다니엘서 8장과 9장사이에 존재하는 특별한 관계를 무시하고, 모든 것은 인간적인 시도로 돌리면서, “연결시켰다”는 말을 거듭하고 있다. 이 두 사실이 본래 연결된 것인지, 아니면 억지로 연결시킨 것인지 환상적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알아보자.
다니엘 8장 13절에서, 지금까지 배도의 총체적인 세력은 작은 뿔에 의하여 저질러진 모든 죄(11,12절), 곧 성소가 짓밟힘을 당하고, 성소제도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과 구속의 계획을 훼방하고 거역하는 일에 관한 계시가 “언제까지”(until when?) 이르게 되는 것인지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한 대답이 14절의 “2,300주야까지니(until), 그 때에(then)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는 것이다. 작은 뿔이 얼마 동안(how long) 활동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7장 25절에서 3년 반 곧 1260일[년]이라고 대답되었고, 12장 7절에서 그것을 재확인했다. 계시록에서는 같은 내용을 그대로 반복한 뒤에, “마흔 두달[42×30=1260] 일할 권세”(13:5)를 받았다고 확인하였고, 또 실제로 중세기 1260년을 통하여 그 예언이 낱낱이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하나님의 성소와, 같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작은 뿔에 대한 심판은 직접 또는 간접적인 경로로 더럽혀진 성소를 회복하고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공의와 참 백성을 옹호하는 조사심판의 내용이 된다. 실제로 8장에서 정결히 요청된 조목 중에 포함된 “망하게 하는 죄악”(13절)인 이 “죄악”(폐쇄. pasha)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을 뜻하는 말로서, 대속죄일 봉사가 기록된 레위기 16장에서 정결하게 해야 하는 하나님 백성의 “그 범한 모든 죄”(16절)와 같은 용어로 표현되어 있다.50 전술한 대로, 회개함으로써 희생 제물의 피를 통하여 성소로 옮겨진 죄악은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되고, 그 근본적인 책임은 사단에게 돌려져 책벌됨으로써 영원히 정결하게 되지만(레 16:16,19), 회개하지 아니한 배도, 성소 모독, 우상숭배, 무죄한 피를 흘린 죄인들은(단 7:25, 8:11,12, 11:31; 계 17:5,6) 대속죄일의 조사심판의 결과로 “그 백성 중에서 끊쳐”(cut off)지게 된다. (레16:29,;단7:26, 8:25) 이러한 성소의 정결은 작은 뿔의 심판에 그치지 않고, 이를 계기로 성소 제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도록 계획된 구속을 미칠 수 있도록, 짓밟혔던 하늘 성소의 기능이 회복되고 (restoration),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속죄함을 받은 백성은 물론 그들에게 구속을 베푸신 하나님의 공의도 옹호되며(vindication), 거짓으로 참소되고 왜곡되었던 하나님의 속성과 참 백성의 신분이 정당화되고(justification) 죄의 모든 책임이 장본인인 사단에게 있음을 밝히는 심판(judg-ment)의 근거를 미련함으로써 드디어 구속(atonement)이 완성되는 것이다.51 이러한 과정이 곧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게 되는 의미인데, 그것이 히브리어 “차다크”(sadaq)의 수동태인 “니츠다크”(nisdaq)라는 말로 표현된 “정결하게 되다”의 폭넓은 뜻이다.
이러한 대속죄일의 내용이 이루어질 이상[계시]의 끝을 묻는 질문에 대해 “2.300주야까지니 (until)그때에(then)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8:14)고 대답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논리적 순서는 이미 다니엘7장에서, 작은 뿔의 활동이 소개된 후에(7:8, 25) 조사심판이 열리는 것과 일치하고(7:9, 10, 26), 다니엘 12장에서 마지막으로 8장 13, 14절의 진상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도(5-7절) 재확인되고 있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니엘서 8장의 계시를 받고 난 다니엘의 반응은, “혼절(昏絶)하여 수일을 앓”기까지 했으며 무엇보다도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라”(8:27)였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주어진 것이 9장의 계시이다. 8장 끝에서 깨닫지 못한 (27절) “[2.300 주야에 대한 이상(異像 . mar,eh)”(26절)을 깨닫게 하려고. 일찍이 다니엘 8장의 “이상”(mar. eh)을 설명한 바 있는 가브리엘 천사가(8:16) 다시 보내진 것이다(9:21). 가브리엘 천사는 그 해석을 시작하면서.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mar. eh)을 깨달을 지니라”(9:23)는 말로 8장의 2.300주야 문제를 다시 설명하고 있다 . 누가 보아도 확실한 배경이요 연관이다.
8장 14절에 “2.300주야 까지”(until when)만 제시되었지, 시작인 “부터”(from)는 주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 “부터”를 9장 25절,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의 중건(重建)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에서 찾게 된다. 그런데 이 “부터‘는 그 당시 다니엘이 금식하며 기도 드려 온 황폐한 예루살렘의 재건과 포로로 잡혀 와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과 동시에 시작됨을 깨닫게 되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이레[주일]로 기한을 정하였나니...”(9:24), “정하였다”는 말은 “하타크”(chathak)의 수동태인데 본 뜻은 “분리하다”, “잘라내다”(cut off)의 뜻으로, 보다 큰 것에서 일부를 잘라 내는 것을 뜻한다.52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성을 위한 마지막 은혜의 기간으로 할애(割愛)하신 70주일 [70×7=490일]은 보다 긴 예언 기간인 2.300주야의 일부임을 지적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바벨론에 의하여 기원전 586년에 파괴된 예루살렘이 재건된 것은 페르샤 시대인데, 성소의 짓밟힘과 정결이 주제인(8:9-14절) 다니엘서 8장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것도 수양으로 표상된 폐르샤임을 천사가 확인한 사실은 (8:20절) 직접 관련이 있다. 8장과 9장의 사건이 모두 폐르샤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또한 다니엘 7, 8장과 9장에서 일반적인 “계시”(啓示. vision) 를 뜻하는 “하존”(chazon)이란 말이 자주 쓰이는데, 이러한 계시 가운데서도 특별히 하늘의 거룩한 존재들이 나타나서 전달하는 계시는, “나타남”(appearance), 록은 “이상”(異像)을 뜻하는 “마레”(mar,eh)를 썼다.53 [우리말 번역에는 구분 없이 모두 “이상”으로 번역됨] 다니엘이 8장에서 깨닫지 못한 것은 모든 계시가 아니라 하늘의 두 존재가 나타나 계시한(8:13, 16) 2.300주야에 관한 이상[마레]뿐이었다. 9장에서도 이전 계시(하존) 중에 본 가브리엘이 설명해 준 것도 일반 계시가 아니라, 2.300주야에 관한 “이상”(마레) 임을 가브리엘 자신이 친히 지적하여 획인하고 있어, 2.300주야와 70주일이 같은 배경을 가진 예언적 기간임을 특수 용어로 재확인하고 있다.54.무엇보다도 9장 24절의 내용이 8장 13, 14절의 내용과 상관된 것임은 읽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비평 탁명환
“다시 말하면, 왜 안식교에서는 2.300년의 기점을 성전 건축령이 내려진 B.C. 536년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닥사스다 20년도 아닌, 단지 조서가 내려졌다는 아닥사스다 7년을 기점으로 잡게 되었는가 말이다. 안식교 측에서는 에스라 7:11-26절의 연대는 B.C. 536년이 아닌 B.C. 457년으로 잡게 됨으로 연대 계산에 있어서 자가당착적 모순에 빠지게 된 것이다”55
변 증
다시 밝히 말하지만, 이러한 예언이 연구되던 1800년대에 안식일 교회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초교파적인 재림 신자들과 당대의 여러 학자들이 확인한 것을, 1844년 이후 재확인한 일단의 초교파 신자들이 곧 지금의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 것이다. 역사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을 바로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다. 먼저 기산점이 제시된 25절의 내용을 확인해 보자.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重建)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7이레[주일]와 62이레[주일]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城)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를 것이며”(단9:25)
기억할 것은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령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城)과 거리등을 포함한 예루살렘 성읍의 재건령임을 본문에서 확인해야 한다. 이사야도 예루살렘과 성전의 중건을 구분하여 예언했다. (사44:28, 45:13), 성경에 나타난 네 차례의 페르샤왕의 조서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합당한 지 살펴보자
?고레스(Cyrusll)원년(538/537 B.C.) -유대인 포로의 귀환과 성전 건축을 허용하는 조서를 내림 (1:1-4)
?다리우스 1세(Darius 1) 제2년(520 B.C.)고레스대왕의 조서에 따라 착공한 성전 재건은 주변 민족들의 반대와 참소로 17년간 중단되었다가, 다리우스 제2년에 후속(後續)조서가 내려져(스6:8-12), 재위6년째인 516년 B.C.에 준공됨 (스4:24, 6:15).
?아닥사스다 1세(Artaxerxes1) 제7년(457 B.C.)-학사겸 제사장인 에스라에게 포로 귀환령과 성전 미화 및 최초로 예루살렘의 자치권 을 부여하는 조서를 내림(스7:7-26).
?아닥사스다 1세 20년(444 B.C.)-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 성의 보수(補修)를 허락하는 조서를 내림 (느2:1-9)
그러므로 처음 두 조서는 예루살렘 성전의 중건령이었으므로 다니엘서 9장의 기산점이 될 수 없다. 탁명환씨가 언급한 기원전 536년은, 적용은 몰론 연대도 잘못된 것이다. 예루살렘 성(城)이 아니라, 성전 건축령이 내려진 고레스 원년은 (스1:1-4) 바벨론 . 페르샤 역서(譯書)와 유대 민력(民歷)에 맞출 때 기원전 538년 가을부터 537년 가을에 해당하고 있어, 정확하게는 538/537 B.C.로 표현하고 있다.56 여하튼 기원전 538/537년은 포로 석방 및 성전건출령이 내린 해이므로 , 예루살렘 성의 중건을 언급한 다니엘 9장 25절과는 일단 관계가 없다. 이렇게 사실(史實)을 왜곡하고 사실이 아닌 것으로 비평하면 참으로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므로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아닥사스다 왕 제7년인 기원전 457년이나 제20년인 444년 가운데 한 해가 유대인을 위한 70주일 및 성소 정결이 있게 되는 2.300주야의 기산점(基算點)이 될 수 밖에 없다. 어느 해인가? 아닥사스다 왕 제7년인 기원전 457년이다. 왜 그런가?
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은 소화되었다”(느1:3)는 소식을 페르샤의 궁전에서 듣고 충격을 받아,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여...금식하며 기도”(느1:4)했다는 사실은 그 때 파괴된 성벽이나 성문이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 군사에 의하여 그렇게 된 것이 아님을 말해 준다. 어떻게 150년 전에 파괴된 예루살렘 소식을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이제 처음 듣는 것처럼 그런 극적인 충격을 받았겠는가? 또한 그 당시 바벨론 군사들은 “예루살렘 모든 집을 불살랐으며...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왕하25: 9, 10)다고 했는데 느헤미야가 왕의 조서를 받아 가지고 급히 귀국하여 “성 역사(役事)가 52일만에...끝나”(느6:15)게 되었다는 말은, 그것이 이미 재건되고 있던 것인데 사마리아인들과 같은 주변의 대적들이 훼파한 것을 수리한데 불과함을 드러내고 있다(스4:23). 70주 예언에 암시된 예루살렘 재건 기간은 7주. 곧 49년이다. 그쯤은 걸려야 폐허가 된 성이 재건되는 것이다. 즉아닥사스다 왕 제20년의 조서는 다니엘서 9장의 내용과 전혀 맞지 않는다.
나. 더우기 느헤미야의 귀환은 앞서 있은 고레스 대왕 당시나(537 B.C.) 아닥사스다왕 7년(457 B.C.)의 경우와는 달리 집단적이 아니라 신변의 안전에 역점을 둔 개인적인 것이었으며(느2:7-9) 비밀리에 진행된 것이었다(느2:12).
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기원전 457년에 내린 아닥사스다 왕 제7년의 조서이다. 지금까지의 조서 가운데 가장 긴 내용의 조서(7:11~26)가 주어졌는데, 이 때 상당수의 유대인의 귀환이 허락되었으며(7:13)) 이미 재건된 성전 봉사에 필요한 자재 공급과 함께 예루살렘 자치권이 부여되는 특별한 내용이었다.(7:25,26).
그런데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단 9:25)에서 “중건”(重建)이라는 한 마디로 번역된 우리말 성경은 히브리어 원문의 뜻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원문에는 “슈브”(shub)와 “바나”(banah)라는 두 동사의 부정형(不定形)이 쓰였는데 대부분의 영어 성경들은 이러한 원문의 뜻을 살려,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to restore and to build Jerusalem)는 영이 날 때부터”로 번역하고 있다. 둘째 동사인 “바나”는 “세우다”, “짓다”(build)는 뜻으로 주로 쓰이지만. 첫째 동사인 “슈브”는 “돌아서다”(turn back), “회복하다”(restore), "회개하다“(convert)는 뜻으로 주로 쓰여, ”본래의 상태로 회복되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그리하여 다니엘 9장 25절의 내용을 만족시키는 조서는 예루살렘 성전뿐만 아니라 성읍의 재건은 물론 제사 제도 등 종교의식과 함께 이에 관계된 행정과 사법권의 회복 등도 폭 넓게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슈브”와 “바나”에 함축된 뜻이 충분히 포함된 내용은 에스라 7장의 조서임을 쉽사리 알게 된다.
라. 그런데 에스라 4장 7~23절에는 고레스 대왕(537 B.C.) 이래 아닥사스다 1세(465~423B.C.) 기간 동안 귀환한 유대인들이 성전과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는 동안에 당한 핍박과 곤란을 회상한 것이 연대순이 아닌 이야기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1~5절까지는 고레스와 다리우스 1세 때까지의 사건을 기술하고, 6절에서는 아하수에로스(Xerxes I. 486~465 B.C.) 때의 사건, 그리고 7~23절까지는 그 아들인 아닥사스다 1세 때의 사건을 기록하고, 24절부터는 다시 5절에서 끊어진 다리우스 1세 때의 상황으로 되돌아간다.57
이러한 배경을 기억하며, 기원전 456년에 돌아온 에스라와 그 일행이 겪은 경험이 적힌 4장 7~23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자. 돌아온 에스라가 벌이고 있는 재건 사업에 위협을 느낀 “사마리아 성과 강 서편 다른 땅에”(4:10) 있던 지방 관리들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린 고소 문에 이런 내용이 있다.
“왕에게서 올라온 유대 사람들이 우리의 곳 예루살렘이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 읍(城邑)을 건축하는데, 이미 그 지대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 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며, 그 성곽을 마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집 세와 부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필경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스 4:12,13).
이 고소 문에서, “왕에게 올라온 유대 사람들”(4:12)은 틀림없이 왕의 조서에 따라 기원 전 457년에 귀환한 에스라의 일행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후 13년이 지난 기원전 444년에 귀환한 느헤미야는 일행 없이 홀로 왔기 때문이다.
마. 기원전 586년 예루살렘 성읍이 바벨론에 의하여 훼파된 후 실제로 재건된 최초의 분명한 기록은 에스라 4장 12절이며, 그것은 기원전 457년에 내린 조서의 결과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대공사가 왕의 허락 없이 진행될 수 없었으며, 이미 조서로써 자치권(自治權)을 부여받은 에스라가 국가의 행정 중심지인 예루살렘을 재건한 것은 조서 내용에 일치한 자연스러운 과정이다(스 7:25,26). 또한 고소문이나 왕의 반응에서도 성읍(城邑)을 중건하는 자체를 불법이라고 하지 않았고, 단지 준공한 후에는 반역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일치하게 지적했다.(4:15,19).
이러한 고소 문의 내용에 공감한 왕은, “그 성을 건축하지 못하게 내가 다시 조서 내리기를 기다리라”(4:21)는 명령을 내렸고, 결과로 성읍 재건이 중단되었다(4:23). 이 일로 말미암은 불상사가 느헤미야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느 1:3).
바. 살펴본 대로, 다니엘서 9장 25절에 기록된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의 조건을 만족시킨 조서는 기원전 457년에 내린 페르샤왕 아닥사스다 1세 때의 조서밖에 없음이 불문가지(不問可知)로 확실해졌다. 아닥사스다 왕 7년이(스 7:7) 어떻게 기원전 457년이 되는지는 일찌기 수학자요 천문학자요 신학자인 뉴톤경(Sir Isaac Newton)에 의해서도 확인되었고,58 근년에 발견된 고대 페르샤의 파피루스 문서에도 거듭 확인되는 등 여러 자료에 의하여 확고히 뒷받침되고 있어59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성경 적으로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사실에 대해 아래와 같은 막연하고 애매한 비평은 참으로 삼가야 한다.
비평탁명환 “안식교 측에서 말하는 대로, 성전 건축령이 B.C.536년에 내려져(고레스 왕 원년. 스1:1), 완공된 것이 B.C.516년(다리오왕 6년. 스 6:15~18)이란 주장을 인정한다면, 왜 성 건축령에 대해 그 기점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는 아닥사스다왕 20년(B.C.445)에 느헤미야에게 영을 내린 때는 잡지 않고(느 2:1), 성전 건축령인지 아닌지 분명치도 않은 아닥사스다 왕 7년으로 잡는 것이 문제가 된다.”60
변 증
구속의 역사 일정에서 그토록 중요한 예루살렘 중건에 곤한 예언과 그 성취는, “안식교 측에서 말하는” 견해가 아니고 이미 밝힌 대로 구구절절(句句節節)이 모두 성경에 기록된 사실 그대로임을 양식(良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기원전 457년을 기산점으로 확인한 경우는 안식일교회 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이래 볼링거(Bullinger) 뉴톤경(lsaac Newton) , 벵겔(Bengel) 페트리(Petri) 이에도 다수의 저명한 신학자들이 열거돼 있다.61 만유인력의 법칙 발견으로 우주 시대의 기틀을 놓은 수학자요. 천문학자인 뉴톤경(Sir lsaac Newton . 1642-1727)은 동시에 다니엘과 요한 계시록 연구에도 못지 않은 공헌을 했는데 그는 70주일이 490년을 의미하며 그 시작이 아닥사스다 왕 제7년의 조서 때로 부터 시작함을 이렇게 확인하고 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cut out) .... 여기서 1주일을 7년으로 놓고,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다시 한 백성과 거룩한 도성을 이룬 때로부터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까지 490년이 계산되었다. ”62 ....이제 흩어졌던 유대인은 최초로 행정 체제를 다시 갖추게 됨으로서 한 백성과 도성을 이루게 되었는데 이일은 에스라가 일단의 유대인들과 함께 포로 생활에서 동아온 아닥사스다 제 7년의 일이다.”63
뉴톤경이 아닥사스다 제7년을 기원전 457년으로 환산한 것은, 20개 이상의 일식(日蝕) 기록으로 정확함이 입증된 고대 프톨레미(Ptolemy) 역서(曆書)에 근거한 천문학적 확증이었다.64 19세기 프리도(Prideaux) 스코트(T. Scoff) 클라크(A. Clarke) 커닝함(Cuninghame) 케이트(Keith) 리버모어(River-more) 휠러(Qheeler) 를 포함하여, 현대에도 절 알려진 주석 학자들인 제미슨(Jamieson), 포세트(Rauceff), 브라운(Brown), 태너(Tanner) 블랙스톤(Blacks-tone) 푸시(Pusey)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가운데 대 학자인 제임스 스트롱(James Strung)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 다니엘 9장] 25절의 냉용에 대한 대답이 되고 있는 명령은 아닥사스다 제7년에 내려지고, 에스라 7장에 기록돼 있는 것인데, 프리도(Prideaux)가 충분히 제시했고 많은 비평자들이 동의한 바와 같다,”65
70주일에 관한 예언이 쓰여진 다니엘서 9장 24-27절은, 비평학자 코흐(K, Koch)의 말대로, “신약 성경의 그리스도 사건에 관한 구약 성경의 메시야 예언의 독특하고 절대적으로 정확한 수학적 성취는, 처음 세기들 동안 성경의 진실함에 대한 증거로서 크나큰 역할을 해 왔다.”64 다음은 기원전 457년을 기산점으로 했을 때, 참으로 메시아에 관한 수학적 예언인 9장 24-27절이 그리스도의 생에에서 어떻게 “정확한 수학적 성취”를 갖져왔는지 먼저 성경 본문에 나타난 조항을 열거한 후 도표로 표시해 본다.
다니엘 9장 24-27절
※내용과 구분
?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 성을 위해 70주 [70×7=490]가 할당됨 (24절)
? 70주의 시작은 예루살렘 성읍을 재건하라는 조서가 내릴 때부터임(25절)
?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아가 출현하기까지 7주[7×7=49]와 62주[62×7=434]가 지남(25절)
? 이 기간[7+62=69×7=483]이 지난 후에는 메시아가 갑자기 죽임을 당함(26절)
? 70번째가 되는 마지막 1주[70-69=1]동안에 메시아는 언약을 굳게 하는 일을 행할 것인데 , 그 것은 마지막 1주[1×7=7]의 중간[7÷2=과1/2]에 지금까지 드려 온 옛 언약의 희생 제물을 대신 하여 메시아 자신이 죽임을 당하심으로 새 언약이 비준됨(27절)
70주의 내용과 역사적 성취
※해설
?기원전 457년, 곧 페르샤 왕 아닥사스다 7년에 예루살렘 성읍 중건령이 내림.
?처음 7주인 49년은 주로 성전과 성읍및 각종 제도 복귀에 소요된 후 , 다시 62주인 434년이 지난 서기 27년에는, “요한 이 그 세례[침례]를 반포한 후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행10:38)신 침례를 받으심으로(눅3:21-23) “기름 부음을 받은 자”(단9:25)를 뜻하는 “메시야”[히브리어] 혹은 “그리스도”[헬라어]의 사명을 시작하심,
?서기 27년 침례를 받으시고 메시야로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지 꼭 3년반인 서기 31년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지금까지 옜언약의 방편으로 제물을 드려온 제사 제도는 폐지되고 그리스도의 피로 새 언약이 비준됨(마26:27; 히10:5-10)
?서기 34년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돌로 쳐죽인 것을 계기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은혜의 시기 는 끝났으며(행7:51-60), 이 때 일어난 핍박으로 “유다 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행8:1) 진 그리스 도인들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어서 바울이 개종함으로써 이방인 시대가 시 작됨.
참으로 신약과 역사에서 입증되는 수학적으로 정확한 성취이다. 만약 탁명환 씨가 소개한 비성서 적이고 비역사적인 논거대로, 13년후가 되는 아닥사스다 왕 제 20년인 기원전444년을 70주일의 시작으로 한다면, 예수님이 서기 44년 [31+14=44] 경에야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되는 당치않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457 B. C]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7이레 [7×7=49년] 와 62이레 [62×7=434년]가 지날 것이요”(단9:25) 라는 말씀대로, 기원전 457년에서 69주일 [69×7=483년] 이 지난 서기 27년에 예수께서는 정확하게 성령의 기름 부음 받으심인(행10:38) 침례를 받으신 것이다(막1:10-11), 곧이어 “때가찾”(막1:14)다고 선언하시고 메시야 로서의 공생애를 시작하심으로 다니엘서 70주의 예언을 자신에게 적용시키심으로 택명환 씨가 비평한 “안식교 측에서 말하는” 사실이 진실임을 확인하셨다.
또한 70주에 대한 다니엘서의 예언이, 기원전 2세기 시리아 왕이었던 안티오쿠스 4세 당시에 이루어진 사건이 아님을 확증할 수 있는 것도, 메시야이신 당신을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들이 장차 당할 재난을 다니엘서 9장의 70주의 예언에서(9:26) 직접 인용하신 (마24:15)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확증하신 것을 끝까지 불신하고 비평한다면 그 이상의 변증이 무슨 필요나 효과가 있겠는가?
이처럼 기원전 457년이 70주일을 시작하는 유일하게 올바른 연대임이 확증되었다면 , 70주일과 시작을 함께 하는 2.300주야 [년] 시작의 정확함도 이미 수학 상의 검산(檢算)을 통하여 확인된 것이다. 시작이 정확하면 동시에 끈도 정확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성경에 나타난 가장 긴 예언인 2.300주야 [년] 기간 속에 다니엘서 7장과 8장의 작은 뿔의 활동 기간이 선후(先後)관게로(단7:8-10, 8:9-14) 연결돼 있음은 이미 확인한 바 있다. 이러한 전체적인 조감을 다음의 도표로 정리해 본다.
이상과 같은 사건과 연대 배열이 성경에 일치한 것임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다니엘서 8장14절의 2.300주야와 성소 정결에 관한 이상(異像 .마레)은 주어질 때부터 “정한 때 끝에 관한 것”(8:17, 19)이라는 통고와 함께, “이미 말한바. [2300]주야에 대한 이상 [마레]이 확실하니 너는 그 이상 [하존]을 간수[shut up]하라. 이는 여러 날 후의 일이니라”(8:26)는 단서가 붙여졌다.
그런데 이 명령은 마지막 장인 12장에서 다시 한번 같은 동사 “사탐”(satham)을 써서 “다니엘아 이 말을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사탐. shut up)이 글을 봉함(封緘)하라”(12:4)고 반복된 후에, 그 예언이 이해되고 성취되는 시대는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4절)고 부연한다. 그리고 다시, 8장에서 2.300주야에 관한 이상 [마레]이 주어질 때처럼 (8:13, 15-17)또 다시 그리스도와 가브리엘 천사로 생각되는(8:16) 하늘의 거룩한 두 존재가 나타나 대화한 가운데, “이기[2.300주야] 사의 끝이 어느때 까지냐?” (12:6)는 8장13절의 질문이 반복되고 그 대답으로, “반드시 한 때, 두때, 반때[3년반=1260일]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12:7)는 말씀이 하나님께 대한 서약 형식을 취하여 확증되었다.(12:7)
분명해진 것은, 2.300주야 [년] 의 끝이 이르게 되고, 그에 관계된 내용이 이해되는 것은 ,
작은 뿔의 활동 기간인 중세기 1260년이 지난 후의 일임이 명시된 것이다.67 이 얼마나 세심하고도 분명한 하나님의 배려(配慮)이신가?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있게 될 대속죄일의 행사 내용이며(레23:26-32), 그것을 다니엘이 계시로 확인한 조사심판이며(단7:9-14) 요한 이 마지막 때의 사건으로 (계11:15) 거듭 목격한 하늘 지성소의 봉사 시작인 것이다(계11:19), 그리고 그 때가 기원전 457년에서 시작되어 2.300년 후가 또는 1844년이 였으며, 그 해의 유대 성력(聖曆) 7월10일이 태양력 10월 22일임을 역사적 확인을 거쳐 확증된 것이다.68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단12:4)는 마지막 때가 되어야 깨닫게 되리라는 단서가 ??은 이토록 중요한 2.300주야에 관한 계시가, 1830년대에 미국에서 일어난 재림 운동을 주도한 침례교 지도자 윌리암 밀러(William Miller)에 의하여 처음으로 이해된 것은 아니다.
서기 200년경의 교회사가(史家)인 아프리카누스(Julius Africanus)는 다니엘 9장의 70주가 “아닥사스다 왕 때로부터 그리스도의 시대까지 이르는 ”69 490 년간으로 정확히 이해했다. 도한 서기 1200년경에는 카톨릭 수도사 요아킴(Joachim of Flora)이 다니엘 7장의 삼년 반은 1260년을 가리킨다는 이해에 이르렀고,70 16세기의 루터는 다니엘서의 작은 뿔은 중세 교황 권이며 1260년간은 중세 로마교황권의 활동기간 으로 단정하였는데 , 그 해석이 종교 개혁의 주류를 이루었다.71 1789년 에 발발해 프랑스 혁명이 10년간 계속된 후, 1798년에 완전히 몰락하게 된 중세 교황 권의 전말을 보면서, 커닝함(W. Cunningham) 메이트런드(Charles Maitland), 케이스(Alexander Keith), 어빙(Edward Ervihg), 하버슨(M. Harbershon), 울프(Joseph Wolff)등 수많은 주석 학자들이 프랑스 혁명의 결과로 1260년 기간이 끝나게 되었음을 깨달았다.72
1260년을 넘어가는 2.300주야 예언은 일찍이 9세기의 유대 학자인 나하웬디(Mahawendi)에 의해 2.300년으로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저명한 유대 랍비들이 이를 지지해 왔다.73 13세기의 학자 아눌드(Arnold)도 이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러다가 독일 개혁 교회의 목사 페트리(John Petri)는 1769년 2300주야의 시작이 70주의 시작과 같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끝이 1840년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74 70주의 시작을 기원전 457년으로 확인한 뉴톤(lsaac Nwton . d. 1727)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으며, 독자적이 연구의 결과로, 1787년 한스우드(Hans Wood)도 페트리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75 1810년 스코틀랜드의 학자 브라운(Aguila Btown)은 2.300주야는 기원전 457년 으로부터 서기1843년 혹은 1844년에 이르는 기산 이라고 가르쳤다.76
바로 이러한 맥락을 쫓아 1830년대의 침례교인 윌리암 밀러도 2.300주야가 기원전 457년에 시작되어 1844년에 마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탁명환 씨의 표현처럼 그것이 “안식교측” 의 돌발적인 발상이 아니라 연원(淵源)이 샘처럼 깊은 진리의 유산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끼지 다니엘서에 나타난 평행 구조에 입각하여 살펴본 70주일과 2.300주야에 관한 예언, 그리고 1260일에 관한 예언을 다음과 같이 도해한다.
나라?G 사건 |
2장 |
7장 |
연대 |
8장 |
연대 |
바벨론 페르샤 헬라 ※(사분된로마) 이교로마
그리스도의초림
분열된로마 교황로마
재림전 심판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의 나라 |
금머리 은가슴 놋배
철다리
???????????
열발가락
산돌이신 그리스도의왕국
|
사자 곰 표범 (네머리) 무서운네째짐승
???????????????
열뿔 작은뿔
(마지막때) 조사심판
그리스도와성도의 통치 (2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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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538 ??? ????? ? ? ? (1260년) ? ? ?????????? A.D1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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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 수염소 (네뿔) 수평적인 작은뿔
???????????????
성소정결 (14절)
작은뿔의 파멸 (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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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7A ??????? ?? ? 7주 408AD ? ?????? ? ? ? ? ? (62주) (70주? ? ? ? ???AD27 ? ? ? ??????? ? ? ? AD31? ? (1주)???????? AD34?? ? ??????? ? ? (2300년)? ? ? ? A.D184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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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300주야 예언의 성취와 결과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 하라”(단 12:4, 9)고 거듭 요청된 2.300주야에 관한 예언이 중세기 1260년 기간인 “한 때 두때 반 때를 지나”(단12:7)면 틀림없이 이루어지리라는 하나님 앞에서의 참으로 엄숙한 맹세가(단12:7) 그대로 지켜졌는가? “봉함하라”고 명령된 이 예언이 언제 열려졌는가? 놀랍게도 다니엘의 후편인 요한계시록에 봉함했던 2.300주야 예언의 개봉 장면이 생생히 소개되고 있다. 그것도 바로 마지막 때가 시작되는 일곱째 나팔이 불기 직전(계11:14), 하늘 성전의 지성소가 열려 대속죄일 봉사가 시작되기 직전의(11:19) 사건이 기록된 요한계시록 10장에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2.300주야에 대한 계시를 설명할 때마다 나타나는 하늘의 거룩한 존재와 특별한 배경이(단8:13, 16, 12:5, 6) 계시록10장에 다시 나타나 그것이 다니엘서에 서의 2.300주야처럼 일반 계시[하존]가 아니라 특수한 “나타남” 인 이상(異像. 마레)임을 확인하고 있다. 계시록 10장에 구름과 무지개를 두른 언약의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난 하늘의 존재는 계시록 1장에 소개된 그리스도의 모습인데(13-16), 그의 손에는 봉함 했다가. 방금 “펴놓은 작은 책을 들고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큰 소리로 외쳐”(계10:2)고 있었다. 그리고 이 언약의 천사 모습으로 나타난 그리스도께서는 ,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세세토록 살아 계신 자, 곧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10:5-7)고 선언하셨다.
“지체하지 아니하리라”의 헬라어 원어 문장은, “크로노스(chronos) 우케티(ouketi) 에스타이(estai)”로 “시간이 더 이상 없을 것이다.”(time no longer shall be)인 “크로노스"(cheonos)는 “연대”(chronology)라는 말에도 나타났듯이, 주로 과정(過程)이나 기간(期間)으로서의 시간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예언적인 시간(prophetic time)을 가리킨다. 무슨 예언적 시간인가?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께 인간이 아닌 하늘의 존재가 손을 들고 서약하는 장면은 두 곳 밖에 없다. 한 곳은 다니엘서 12장에서 2.300주야 기간의 끝을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 로 나타나신 그리스도께서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하”는 장면인데 내용인즉,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들의 권세가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2.300주야]이 다 끝나리라”(7절)는 선언이다. 그리고는 이 선언의 시작과 끝에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닫아두고] 봉함 하라”(12:4, 9)는 특별한 지시가 주어졌다.
또한 다른 곳인 요한계시록 10장에서 언약의 천사로 나타나신 그리스도께서 다니엘서의 봉함된 책을 펴 들고서 꼭 같은 서약의 자세로, “ 세세토록 살아계신자” 곧 창조주 하나님께, 일찍이 2.300주야의 예언으로 약속된 시간 [기간] 이 끝났음과 함께 다시는 그렇게 약속된 시간이 없음을 맹세하고 있다. 재림에 관계되어 예언된 시간의 마지막 정거장을 지난 것이다.
그런데 그 2.300주야에 관한 예언은 본인이었던 다니엘 자신도 끝까지 깨닫지 못한 채(단12:8),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shut up. 덮어두라] 봉함(seal)”(9절)하라고 한 것이었는데, 1260년 기간[538-1798]이 지난 이제 열렸고 이제야 그 뜻을 깨닫게 된 것이다. 깨달은 결과가 어떠하겠다고 예언되어 있는가?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라, 네 배에 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 니, 내입에는 끌 같니 다나 먹은 후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 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에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계10:9-11)
비평 탁명환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초에 이르러 크리스챤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 왕국의 도래에 대한 신앙이 매우 기대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재림 파의 창시자 윌리암밀러(WilliamMiller. 1782-1849)가 예수 그리스도의 절박한 재림을 주장하면서 천년 왕국의 도래를 주장하고 나셨다. [※주 : 윌리암 밀러는 임박한 재림을 기다렸지, 이에 상반되는 지상의 복천년을 조장하지 않았다.]...그렇게 되자 많은 성직자들과 약 1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밀러를 추종했다. 밀러 가 예언한 그 날이 다가왔으나 그리스도는 재림하지 않았다. ...역시 이날도 아무 일이 없이 지나갔다. 그러자밀러를 추종하던 재림 주의 신도들 사이에 큰 실망이 일어났고. 1845년에는 재림파 대회가 열려 자기들 나름대로의 하나의 신앙고백을 만들었다.77 [※주: 단합된 교파도 아니였고 일치된 신조도 없었던 터에 그들은 신앙고백 같은 것은 엄두도 못 내었다.]
변 증
재림 운동 의 그릇됨에 대한 탁명환 씨의 비평이야말로 [내용은정확지 못하지만]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것으로 철석같이 약속된 2.300주야에 관한 예언이 실제로 이해되었을 때 어떤 경험이 이를 것을 예언한 계시록10장 9-11절의 정확한 성취를 실제로 증명하는 냉용이다. 인구가 많지 않았던 당시의 미국에서 10만도 넘는 그리스 도인들이 초교파적으로 참가하였던 윌리암 밀러의 재림 운동은 2.300주야 예언이 끝나는 1844년 10월 22일 예수께서 재림하지 않으심으로 형용할 수 없는 대실 망을 겪었다 그글은앞이 캄캄했으며 헤아나올수 없는 허탈과 좌절의 늪에 빠져 들어갔다.
동시에 하나님과 성경 말씀에 대한 믿음도 극도의 혼란과 시련을 겪었다. 밀러의 중심으로 한 재림 운동의 지도자들이 전해 준 그처럼 정확하고 분명한 재림의 확신은 이것을 받아들인 재림신지들의 마음을 넘치는 기쁨과 황홀한 기대로 채웠었다 이제 곧 죄로 암담해진 인간 역사가 끝나고 고달픈 인생 여정이 마쳐지는 것이다. 이제곧 고대하던 구주께서 천만 천사와 함께 동녁 하늘에 나타나실 것이며,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는 있지 아니”(계21:3,4) 할 영원한 하늘 이 이제 곧 시작되는 것이다. 참으로,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입에는 쓰게 되”는 대실 망을 맛본 것이다. 재림 운동에 앞장섰던 감리교인 에드슨(Hiram Edson)은 그 날의 경험을 이렇게 썼다.
“우리의 기대는 높이 치솟았으며, 시계가 밤 12시를 알리기까지 우리는 우리의 오실 주 짐을 기다렷다. 그러나 그날은 그대로 지나갔으며 실망은 확실해졌다...우리는 날이 새기까 지 울고 또 울었다.”78
그 동안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관망하던 세상 사람들의 조소도 대단 했다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은 풍자 만화는 일간신문을 채웠으며 수치가 그들의 몫이었다.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쓰디쓴 실망의 경험이었다. 그것은 예언된 그대로였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가? 이러한 독특한 대실 망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 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 마지막 주일이 시작되는 일요일, 예수께서는 드디어 구약 성경에 기록된 스가랴서의 예언을 이루시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고 계셨다. “시온의 달아 크게 기뻐할 지어다. 예루살렘의 딸 아 즐거이 부를 지어다. 보라 네왕이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곧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의 새끼니라”(슥9:9). 드디어 예언된 대로 그리고 민중과 제자들의 기대처럼 예수께서 다윗의 왕위에 오르려 하고 계시는 뜻했다. 그러나 닷새 후에 예수께서 모든 기대를 저버리고 십자가에 달려 어이없이 돌아가심으로 터질 듯한 기대를 가졌던 제자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3년 반 동안 왕이 되실 것을 기대하며 주님을 열렬히 좇았던 민중들은 물론 제자들까지도 낙심하여 물러갔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눅24:21)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비록 낙심하고 실망했지만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고 마음으로 방황하는 소수의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셨다 그리고 구약 성경의 모든 약속과 예언이 십자가에서 극적으로 성취되던 그 엄청난 순간에 오히려 확신 대신 불신에 기쁨 대신 슬픔에 희망 대신 실망에 빠지게 된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셨다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공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눅24:25)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것을 사전에 마리 분명히 말씀하셨지만(마16:21), 고난을 회피하는 인간의 본성은 그것을 마음으로 용납치 않았다. 그들은 십자가(cross) 없이 면류관(crown) 만을 원한 것이다. 그들은 성경이 예언하고 예수께서 확신시키려고 하신,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실 메시아가 아니라. 세속적 번영을 가져올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하는 그 세대의 조류에 휩쓸리고 있었다. 떠들썩한 이적을 보고서야 믿는 감각적 신앙, 말씀보다는 인간의 경험에 의존하는 인본주의 신앙. 살아서는 복받고 후에는 천국이나 가려는 기복(祈福)신앙, 이런 것들은 시련을 통하여 교정되고 정화되든지 아니면 탈락될 수밖에 없는 위태로운 신앙이었다.
예고로 십자가 사건은 말씀의 반석 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이 뒤섞인 모래 기반의 신앙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것이다(마7:24-26), 흥분된 감정과 지적인 호기심으로 들든 군중(群衆)은언 제나 의지(意志)가 결여돼 있으며, 의지가 결여된 신앙은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다 십자가 사건으로 군중이 가랑잎처럼 휩쓸려간후 세속적인 복천년(福千年)왕국의 헛된 꿈에서 깨어난 제사들에게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조용히 다시 나타나셨다 그리고 이적 대신 방언 대신 이렇게 차분히 뒷수습을 하셨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모세5경] 과 선지자의글 [대, 소 선지자]과 시편[시편으로 대표되는 그 밖의 서문서들] 에 나를 가 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히마음을 열 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도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3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도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 부터 시작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4-48).
그리하여 십자가 사건으로 빚어진 까닭이 있는 낙심과 실망은 그들이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됨으로 써 마침내 그 이유의 대답을 ?O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오히려 새롭게 태어난 소수의 님은 무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라 인간의 무지와 연약함 때문에 오해했던 십자가를 수치가 아니라 영광으로 삼고 십자가가 중심이 된 참된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즉각적이어서 단시일에 복음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나감으로써 초림(初臨)의 목적이 흔쾌하게 이루어졌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빚어진 대실망에 대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사후 조치였다.
그리스도의 지상(地上)봉사의 중심이요 결말이었던 십자가 사건으로 빛어졌던 이러한 오해와 대실 망은 그리스도의 천상(天上) 봉사의 중심이요 결말인 지성소의 봉사가 시작될 때 같은 이유로 발생했고, 같은 사후 조처가 취해졌으며 같은 결과에 이르게 되었다. 그것은 너무나 도 흡사한 역사의 반복 이였다. 그날 나귀를 타신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入城)은 구약 성경에 그리스도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눅24:44)지는 초림의 목적인 십자가로 세상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퍼레이드였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구속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승리하신 왕으로 개선하실 재림 시의 영광을 미리 드러내신 것이었다.
윌리암 밀러를 주임으로 한 재림 신자들이 겪었던 경험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이 가졌던 신. 구약 성경의 절정이요 결말인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와 세속적인 기대는 시련을 불가피하게 하였다. “2.300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단8:14)는 말씀을 재림 시에 심판하실 왕으로 오시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세상이 죄로부터 정결해지는 것으로 생각한 그 당시의 통속적인 기대를 그들은 벗어나지 못했다. 2.300주야에 관한 밀러의 연대적 해석 자체는 편견 없이 이해하려 하면 지금까지도 고칠 것이 없는 가장 완전한 성경 해석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 당시 밀러의 재림 운동을 비평했던 뉴욕 시립 대학교 히브리 ?G 오리엔탈 문학 교수 조지 부시(George Bush)도 밀러의 2.300주야 해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입장은 가장 완전한 성경 해석법에 의하여 지지되고 있으며 동시에 미드(Mede), 뉴톤경(Sir Isaac Newton), 감독 뉴톤(Bishop Newton), 커비(Kirby), 스카트(Scott) 케이스(Keith) 와 그 밖에도 여러 존경받는 이름들에 의하여 뒷받침되고 있다. ”79
밀러를 비롯한 재림운동자들이 오해한 것은 예수님당시 제자들처럼 그리스도의 거취(去就)에 대한 것이었다 성소의 정결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아니라 재림 전에 있게 되는 대속죄일의 봉사를 의미했으며, 그것은 조사 심판의 과정을 거처 “백성과 나라들을”(단7:14)받기 위해 지성소에 차려진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심을 뜻한 것이었다.(7:13, 14) 인간적인 이해 때문에 성경에 밝혀진 진상을 오해함으로써 낙심과 실망에 빠졌던 제자들에게 친히 나타나셔서 진실을 밝히신 주님은, 1844년 10월22일 직후 같은 일을 하셨다. 성령을 통하여 밝혀 주신 빛을 통하여 마침내 소수의 남은 무리는 하늘의 지성소에서 방금 시작된 대속죄일의 봉사를 깨닫게 되었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 궤가 보”(계11:19)인 것이다. 그리고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신 하늘의 성소 봉사를 마지막 설명하는 히브리서 10장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듯을 행한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 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히10:36-38)
재림 운동을 주도했던 윌리암밀러는 1844년 대실 망 후에 이 사명을 더이상 밀고 나아갈 기력을 상실한 채 5년후인 1849년 언젠가는 분명히 있을 재림을 바라보며 일개 침레교 신자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세상에 전파한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계셔서 십자가 사건 직후 에 그렇게 하셨듯이, 1844년의 대실 망 직후에도 뒷수습을 위해 친히 나서셨다. 가장 기뻐해야 할 부활의 날에 낙심 천만하여 엠마오로 향하던 열두 제자 아닌 다른 두 제자에게 친히 나타나셔서 성경을 가르치심으로 부활의 진상을 밝히심으로 마음을 뜨겁게 하셨던 주님은(눅24:13-32), 1844년의 대실 망이 있은 다음날 좌절의 늪에 빠졌던 재림 신자들 가운데 감리교 출신의 에드슨(Hiram Edson)과 그의 찬구 크로지어(O. R. L. Crosier) 의 마음을 밝히심으로서 다니엘서 7장13절의 올바른 의미를 분명히 깨닫게 하셨다.80 그것은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재림하시기 위하여 이 땅으로 내려오신 것이 아니라 .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아나 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공과 나라를 주”(13:14)신 다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즉 재림 전에 있어야 하는 대속죄일의 봉사가 시작되었고 그 결과로 백성과 나라와 왕위를 얻게 되신 후에야 재림하신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을 때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졸로 생각”(눅19:11)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그러한 오해를 씻기 위해 예수 님이 하신 비유의 의미임을 알게 된 것이다. 즉 장차 재림하실 당신 자신을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떠나갔다가 왕위를 받은 후에야 다시 돌아올 “귀인”으로 나타내신 것이다.(눅19:12,13).
뿐만 아니라 요한 계시록 10장에는 다니엘서에서 인봉되었던 2.300주야에 곤한 이상(異像)을 소화하게 되었을 때의 기쁨은 예언된 대로, “입에는 꿀같이 달”았으나 “먹은 후에는 내 배에서 쓰게 되더라”(계10:10)는 말씀의 의미도 이제는 깨닫게 되었다. 대실 망의 쓴 경험까지도 예언되었으나 아. 이 얼마나 놀라운 진리인가? 그것은 실망의 쓴맛을 잊게 하는데 충분한 확신의 단맛이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말씀으로 가슴이 뜨거웠진 엠마오의 두제자가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눅24:33)그들이 경험한 놀라운 확신을 낙망 중에 있던 열 한 제지들에게 전달하였듯이 에드슨과 크로지어도 그시로 그들의 확신을 낙망의 늪에 빠진 동료 재림 시들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하늘 지성소 를 가리웠던 안개는 걷혀졌고 열려진 하늘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 궤가 보”(계11:19)이 것이다. 대속죄일의 봉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 언약궤 속에든 영원불변한 언약의 두 돌 비가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인 것도 확인했다. 그리고 넷째 계명도 그것을 하나님의 친수(親手)로 쓰셨던 때처럼(출31:18) 여전히 제칠 일 안식일 준수를 명하는 것도 깨달았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영광을 인간에게 돌려 온 중세의 배도, 그리고 인간의 범죄와 무지에 의하여 짓밟히고 더럽혀진 성소가 마침내 옹호되고 정결을 입고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야 이해되고 성취되리라 던(단12:4,9) 2.300주야의 놀라운 예언은 “그 손에 펴 놓인 작은 책을 들고 그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 사자의 부르짖는 것같이 큰 소리로 외치”(계10:2.3)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에 드러난 대로 1844년을 정점으로 힘있게 전파됨으로써 놀랍게 성취되었다. 그것은 나팔 절에 나타난 표상의 성취이기도 했다.
그러나 “꿀 같이 달게” 소화했던 2.300주야의 예언은, “배에서는 쓰게”되리라는 예언 그대로 대 실망을 겪게 되지만 오래 계속된 구속의 역사를 마쳐야 할 숙명적인 운동(Movement of Destiny)인 이 재림둔동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쓴맛을 보리라는 예언으로 끝나지 않았다.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계10:11) 그들이 맛본 쓴맛의 이유를 밝혀 그 기별은 다시 온 세상에 전파하라는, 성취가 보장된 예언적 명령이 주어진 것이다.
과연 다음 장인 계시록 11장에서는 중세기 1260년 동안 베옷을 입고 진리를 증거한 두 증인, 곧 모세와 엘리야로 표상된(계11:5, 6) 신, 구약 성경의 수난의 역사가 소개되고 난 뒤 드디어, “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계10:7)던 약속이 성취된다. 그리하여 중세기 1260년 기간(538-1798)이 자나 심판의 때를 알리는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계11:15) 게 되는 2.300주야의 끝(457B.C-A.D1844)이 이르게 될 때 틀림없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 궤가 보”(11:19) 임과 동시에 구속의 마지막 과정인 대속죄의 봉사가 시작된 것이다.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계10:11)던 그 기별은 무엇이며 누가 전할 기별인가? 그것이 요한 계시록 12장에 소개된 남은 백성 곧 중세기1260년 동안 의 수난을 겪으며(12:6,14) 마침내 형성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12:17)의 출현인 것이다. 그것은 19세기 재림 운동의 결과로 형성된 마지막 남은 백성임에 틀림없다(다음 장의 역사 참조) 그들에 의하여 “다시 예언”되어야 할 기별이 바로 14장에 기록된 마지막 세천사의 개별인 것이다. 그것을 10장의 배경과 내용에 견주어 이해해 보라
다시할 예언
“또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 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14:6, 7)
“영원한 복음”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율법을 범함으로 죽게 된 인간을 위해 화목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피가 법궤 위에 뿌려진(롬3:23-26) 속죄소 곧 시은 좌의 이야기이다.(출25:21,22;레16:14-16). 두 그룹 천사가 날개를 마주 편 채 법궤를 향하여 머리를 속여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에 표시하는 지극한 경외(敬畏), 속죄 소위에 드리운 임재의 빛인 영광의 쉐키나, 이처럼 지극히 거룩한 공간인 지성소에서 베풀어지는 대속죄일의 엄숙한 조사 심판, 그리고 지성소 한 가운데 놓인 법궤의 중심에 비치된 두 돌비. 그 두 돌비 한 가운데 새겨진 네째겨명, 곧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 일에 쉬었음이라”(출20:8,11) 그것이 바로 계시록 14장에 기록된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 [하나님]를 경배 [예배]하라”는 기별의 구체적인 참 뜻이 아닌가? 이 모든 것이 지성소와 대속죄일에 관련된 조항이요 재용임을 누구나 단번에 알게 된다.
이리하여 범죄와 함께 입구가 막힌 “에덴 동산 동편”(창3:24)에 차려졌던 생명 나무로 다시 나아가는 길인 최초의 성소의 실 체기 되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 심오한 의미를 드러냈다. 성소의 실체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승천과 함께 하늘에서 그 기능을 계속하고 있는 성소는 이제 구속의 역사가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 하는 마지막 때에 대속죄일 의 봉사를 통하여 구속을 마무리 직고 있는 것이다. 하늘 지성소의 시은 좌에서 들려 온 복음의 마지막 초청이 세천사의 기별인 것이다 인간의 범죄로 손상된 하나님의 영원한 공의의 율법이 보관된 법궤위에 화목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피가 마지막으로 뿌려져 구속 사업의 모든 과정을 마무리 짓는 하늘 성소의 엄숙한 대속죄일의 의미를 깨닫고 경험하는 백성이 곧 마지막 때의 성도인 것이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14:12)
1844년 대실 망 이후, 이러한 남은 백성의 신분과 역사적 사명을 자각한 백성들이 형성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했던 교파들의 편견을 재림 운동의 깨우침과 충격으로 극복했으며, 밝혀진 모든 진리를 성경의 빛으로 확인했다. 계속된 기도와 밤을 샌 성경 연구, 마음과 듯을 연합시키는 여 차례의 회합을 거친 후,1860년 드디어 예언된 신분(身分)과 역사적 사명을 자각한 무리들은 『제칠 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Sevventh-day Adventist) 의 명칭을 채택했다. 그리고 1863년 22명의 안수 목사와 30명의 전도자를 포함한 3.500명의 재림 시들은 그들이 깨달은 성소와 재림 기별을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계10:11)게 될 세게 적인 조직인 대총회(General Conference)를 구성하기에 이룬다.81
단맛과 쓴맛의 예언과 마찬가지로 이 예언 도한 신속히 성취되어 1989년 말 현대 교인 수가620만에 이른82 제칠 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는 세게 적으로 개신교 가운데서는 가장 많은 교육기관과 으료기관을 운영하며, 미국 성서 공회가 밝힌 통계에 나타난 바와 같이, 바티칸, 아프가니스탄, 네팔, 북한등 극소수의 국가를 제외한 전 세게 곧 가장 많은 국가에 서 선교하고 있는 굴지의 선교 교단으로 성장했다. 그것은 구속의 역사를 종결지을 대속죄일의 기별인 요한 계시록 14장6, 7절의 문 자적 성취인 것이다 .
요약과 결론
범죄 함으로 헤어지고 벼려진 인간을 다시 찾아 구원하시려고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출25:8)를 짖도록 명하신 하나님이 마침내,“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居)하”(요1:14)신 그리스도이시다 성소의 그 깊은 의미를 깨달아 분별하지 못한 종교 지도자들의 탐욕으로 어지럽게 짓밟히는 성전을 바라보시며 공분(公憤)을 느끼신 주님은 선언하셨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 그리도 그들은 그 의미가, 예수께서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요2:21)인 줄을 깨닫지 못하고 무모하고 대담하게도 그리스도의 몸을 십자가에 못박음으로서 그 성전을 헐러버렷다 그러나 그분은 말씀하신 대로 3일만에 부활하셨으며 승천하신 후 “대죄 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짖지 아니한” 하늘의 “온전한 장막”으로 들어가셔서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히9:11, 12)신 것이다. 구속의 마지막 과정인 대속죄일 봉사가 이제 방금 후 마쳐질 때 하늘의 지성소 문은 영원히 닫힐 것이며(계15:5-8),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된 백성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대속죄일 다음의 마지막 절기인 초막 절을 하늘의 새 예루살렘에서 지킬 것이다(슥14:16;히12:22; 계7:9-17). 마침내 십자가로 이루어진 구속이 절정에 다한 것이다 그때에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계21:22) 범죄와 함께 시작된 성소는, 구속의 종결과 함께 그제야 그 존재와 기능이 끝나게 될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초막 절을 지키러 올라갔던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가간이 끝나면 자기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마찬가지로, 하늘의 새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초막 절을 보낸 구원받은 성도들은, 천년 기가 지난 후 새 예루살렘과 함께 불 심판을 거친 후 새롭게 된 지구로 되돌아올 것이다(계21:1,2)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 돌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 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계21:3,4)
이것이 죄가 시작된 창세기 3장의 실낙원(失樂圓)으로부터 계시록21장의 복락원(復樂園)까지의 기나긴 역사를 구슬처럼 꿰어 간 사연이 깊은 성소 이야기이며, 신비한 성소에 수놓인 아름답고 놀라운 구속(救贖)의 이야기이다. 이토록 신비한 구속의 사연이 간직된 성소, 영원한 “의와 화평히 서로 입맞춘”(시85:10) 아름다운 구속의 밀실(密室)인 성소, 이 엄청난 구속의 마음 설래는사연을 고통과 슬픔으로 초상집처럼 우울해진 이 세상에 전파하는 백성이 어째서 이단인가 자문(自問)해 보라 그리고 그러한 부질없는 편견의 배후를 성소에서 발산하는 심상찮은 빛으로 성찰(省察)해보라. “너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의 성소를 공경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26:2)
영원한 갈림길
“그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 [그리스도]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백성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고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옮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12:1-3)
진행 중인 하늘 지성소 의 대속죄일 봉사가 끝날 때 있게 될 영원한 갈림길의 운명이다. 독자는 “어린양의 생명 책에 ”(계13:8) 그 이름이 끝까지 남아 있게 될, 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빛날 지혜로운 인생을 지금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하늘의 8 별처럼 분명한 말씀의 진리를 등짐으로써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로 남게 될 것인가? 그것은 지금 선택해야 할 영원한 갈림길의 애타 는 호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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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탁명환
“안식교는 구원을 큰 구원과 영원한 구원으로 나눈다. 큰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나 취소될 수 있는 불완전한 구원이고. 영원한 구원은 율법을 지킴으로 얻어지는 구원으로서 흠도 티도 없어야 받는 구원으로 완전한 구원이라고 한다. 안식교는 두 개의 구원이 있는 것처럼 구원을 이원화(二元化)시켰고, 그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성구들을 열거하고 있다”1 “그러나 문제는 큰 구원을 얻은 후부터 영원한 구원을 얻기 전까지 문제이다. 왜냐하면 속죄 이론에 있어서 안식교가 주장할 수 있는 이론은 둘 밖에 없기 때문이다”2.
변 증
탁명환 씨가 말한 둘 밖에 없다는 큰 구원과 영원한 구원은 교계 안팎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 가르침이다. 내용도 생소하고 표현(用語)도 생소하여, 누구의 착상이며 어디서 나온 말인지 자못 궁금하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구원에 이르는 신앙의 세 과정(過程) 이면서 동시에 국면(局面)이기도 한 칭의(稱義)와 성화(聖化)와 영화(榮化)의 개념은 성경에 기초를 두고 있는 엄연한 진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구약의 성소에 드러났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경험에서도 명백히 드러났다.
구원의 세 과정과 국면
그리스도를 상징한 유월절 양을 잡아 그 희생의 피를 칠한 문을 통하여 출애굽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노예의 신분을 벗고 자유의 몸이 되는 해방, 곧 구원을 받았다(출12:3-13). 그것이 성소의 뜰에서 겪는 칭의의 경험이다. 그러나 구원의 과정은 그러한 일회적(一回的)인 해방으로 마무리 지어진 것은 아니었다. 광야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광야 생활의 목적은 무엇인가?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출20:2)신 후에 하나님께서는 광야 생활의 시작에서 십계명을 주셨다. 그것은 애굽에서 형성된 죄의 속성과 습관에서 그들을 해방시키시려는 구원의 두 번째 과정이었다.
십계명은 구원을 받기 위하여 주신 방편이 아니라,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이 죄의 속성과 세력으로부터 내적 자유를 누려야 할 필요를 깨닫도록 (롬3:20)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약1:25, 2:12)을 주신 것이다. 그것은 성화의 요구이며, 그 필요는 성소의 첫째 칸에 마련된 빵과 기름과 향(香)이 상징하는 영적인 공급을 통하여 채워졌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얻은 구원인 칭의를 유효하게 하는 성화(聖化)의 과정이다.
이처럼 유월절 양으로 죽임을 당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칭의를 경험하고, 성령의 사역(使役)을 통하여 율법에 나타난 거룩함을 경험한(聖化) 사람이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인 “성도”(계14:12)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과 경험을 누린 사람들이 마침내 예수님을 표상하는 여호수아 [예수]의 인도를 받아 십계명이 든 법궤를 앞세우고 요단강을 건너 영광스러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과정이 곧 둘째 칸인 지성소의 경험이 되는 영화(榮化)인 것이다.
비록 애굽에서의 구원은 받았을지라도 약속의 땅에는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가? 있고 말고, 그들은 누구인가? “하나님이 40년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히3:17,18). 탁명환씨가 비평한 내용인, “큰 구원을 얻은 후부터 영원한 구원을 얻기까지 문제”3 는 안식일 교회의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한번 구원을 받으면 영원히 구원을 받은 것”(Once saved, always saved)으로 믿고 시종(始終)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의지하는 대신 자기만족에 빠져 나태해지는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치 아니함이라”(히 4:1.2)
믿는 우리는 구원을 받았는가? 그렇다 “우리는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며”(롬8:24) 과거 시제가 쓰여졌다.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엡2:5) 완료 시제가 쓰여졌다. 이미 이루어진 구원이다. 그 이상의 다른 시제는 없는가?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고전15:2) 현재시제가 쓰여졌다. 지금 얻고 있는 구원이다 .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명령법 현재시제이다. 구원을 위하여 일하라(work for)는 뜻이 아니고, 이미 시작된 구원을(빌1:6) 끝까지 이루어 나가라(work out)는 뜻이다. 지금 경험하고 있어야 하는 구원의 과정이 있는 것이다. 즉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홈없이 보존되”(살전5:23)어야 하는 성화의 경험이다.
구원의 또 다른 시제는 없는가?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24:13) 미래 시제가 쓰여졌다.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더가까와 졌음이라”(롬13:11) 처음 믿을때 보다더 가까워진 미래에 있을 구원은 무슨 구원인가? 같은 로마서에 그 대답이 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롬8:22,23). 이런 일이 시작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원이 가까 왔느니라. (눅21:28) 미래에 있을 구원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고전15:54)어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15:43)게 되는 몸의 구속(救贖)인 영화(榮化)의 경험인 것이다. 구원의 이러한 시제 개념이 잘 드러나 있는 다음의 말씀을 유의해 보자.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니[과거분사]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미래]”(롬5:9). 이처럼 십자가를 통하여 얻은 과거의 구원인 의롭게 된(稱義) 경험이 마지막 날에 있게 될 진노하심으로부터 구원받는데 이르기까지 현재의 성화(聖化)를 통하여 유지되고 성숙되어야 하는 것이다.
구원의 이러한 세 과정과 국면이 곧,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고전13:13)인 것이다. 칭의의 방편이 되는 과거의 경험에 기초한 믿음, 그러한 과거의 믿음에 기초한 미래의 영광스러운 소망, 과거에 기초한 믿음과 미래에 속한 소망을 현재에 경험하는 거룩하게 하는 사랑, 이것이 구원의 시제적(時制的)인 과정이요 참된 신앙의 본질(本質)을 이루는 세 요소인 것이다. “사랑으로 역사 하는 믿음”(갈5:6) “소망으로 얻은 구원을 얻었 ”(롬8:24)음을 확신시키고 있는 것이다. 믿음으로 이어지는 영화(榮化)-이것들이 서로 분리된 구원의 세 과정이 아니요, 성소의 세 부분이 합하여 하나의 성소를 이루듯. 세 가지 본질로 이루어진 하나의 구원인 것이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힌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그리스도를 부인함으로 그 이름이 제외될 수 있는 것이다(마10:32,33). 그러므로 사도 바울처럼,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고전9:27)하여 자신의 “몸을 쳐 복종”(고전9:27)시키고 “날마다 죽”(고전15:31)는 경험을 계속하는 사람, 곧 “이기는 그 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는 것과 같이 하리라”(계3:22)는 최고의 영광이 주어질 것이다 “한번 구원받으면 언제나 구원받은 것” 이라는 막연한 보증을 믿고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1. 교파의 역사와 정통성
2. 배도의 시작과 중세 교회의 성립
3. 중세기의 시작과 로마 카톨릭의 성립
4. 종교개혁의 전주
5. 종교개혁의 발발과 개신교의 시작
6. 청교도 운동과 개혁의 진전
7. 종교개혁의 진전과 안식일 회복
8. 17, 18세기 종교개혁의 진전
9. 19세기 종교개혁의 진전
10.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의 형성과 과정
11. 요약과 결론
비평 탁명환
안식교는 1세기 혹은 1세기 반의 역사를 통해서 성장해 왔다. 그들은 외형적으로는 기독교회와 안식일 문제만 이견(異見)을 갖고 있는 기독교회로 자처하고 있으나, 안식교는 역사적으로도 100년내지 130년 전에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영원 전부터 시작하여 영원 후까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가운데 있는 유일한 기독교이다.1
변 증 박영관 씨는 안식일 교회의 역사적 배경을 취급하는 대목에서 안식일 교회의 근원은 침례 교인인 윌리암 밀러(William Miller)이고, 창시자는 감리교인인 엘렌 화잇(Ellen G. White)이며, 안식일을 제창한 것은 그리스도교 연합 교인인 죠셉 베이츠(Joseph Bates)이고, 하늘에 있는 성소를 소개한 것은 감리교인인 하이람 에드슨(Hiram Edson)이라고 열거했다.2 그리고 나서 안식일 교회는 겨우 130여년 전에 시작되었으나 자신이 속한 장로교회를 염두에 둔 “기독교회는 영원 전부터 시작하여 영원 후까지...유일한 기독교”라고 강변(强辯)하고 있다.
그런데 1,800년대에 일어난 재림 운동의 결과로 이루어진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의 형성에는 실제로 박영관 씨가 열거한 것보다 더 여러 교파의 배경을 가진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이름이 확인된 목사만도 174명에 이르고 있다.3
1. 교파의 역사와 정통성
가. 박영관 씨가 교파로서의 안식일 교회가 지닌 중대한 결함인 것처럼 비평한 길지않은 역사와 함께 여러 창설자를 가진 점이 바로 안식일 교회를 일반 개신교들과 현저히 다른 고유한 개신교로 만든 특성이다.
일반 개신 교회들은 여러 세기 전에 일어난 종교개혁을 주도한 개혁자들이 그 당시에 깨달은 것으로는 최선의 진리라고 생각되지만, 그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분명한 결함도 함께 포함된 신조를 지금까지 거의 고치지 않고 그대로 고수해 오고 있는 현실이다. 반면에 안식일 교회는 16세기 종교개혁이 나름대로 성숙할 만큼 성숙하여 교파의 형태들을 모두 갖춘 19세기 종교개혁을 마무리짓는 고유한 사명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여러 교파에 속한 여러 사람이 교회 형성에 참여한 것은 참으로 건설적인 일로서 얼마나 다행스럽고 마땅한 일인가?
나. 교파의 정통성 여부를 위의 비평처럼 길고 짧음에 둔다면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되는가?
교회 역사가 가장 오랜 로마 카톨릭 교회가 최고의 정통일 것이고, 11세기 서방의 로마 교회와 교리적으로 충돌한 후 갈라져 나온 동방의 희랍 정교가 다음 번의 정통일 것이며, 그 다음은 종교개혁이 선두였던 루터의 뒤를 이은 루터교 그 다음은 조금 늦게 일어선 킬빈의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순이 될 것이다. 가장 오래 된 것이 가장 정통(正統)이라는 생각은 고쳐야 한다. 신학이나 신조가 오래된 것이기 때문에 정통이라는 기준은 보증이 없으며 오히려 대단히 위험스럽다.
다. 자손이 없어 가계(家系)가 끊길 뻔한 집안에 가계를 이을 아들이 태어났다고 또 하나의 성씨(姓氏)가 새로 창씨(創氏)가 되는 것이 아니다. 새로 태어난 아들은 끊어질 뻔한 가계를 이으며 집안의 항렬(行列)에 따라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뿐이다.
정상적인 새로운 교회가 탄생할 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필수적인 성경의 진리들이 기존(旣存) 교회의 배도(背道)와 당대 그리스도인들의 태만과 무관심으로 존폐(存廢)의 위기를 맞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위해 어떠한 희생도 아끼지 않는 개혁자들을 일으키셔서 성서적인 구원의 신앙을 회복시키고 발전시키며, 또 계속 이어가게 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의 이유요, 16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청교도 운동이 일어난 까닭이며, 17세기에 독일에서 경건주의(Pietism)부흥 운동이, 18세기에 영국에서 웨슬리 형제에 의한 감리회 운동이 일어냐야한 까닭이다.
그리고 마침내. 프랑스 혁명(1789년)을 통하여 폭발된 무신론적인 합리주의의 영향으로 무신론적인 공산주의가 소개되고(1848년), 창조를 부인하는 진화론이 발표되며(1859년), 성경의 영감(靈感)을 부인하는 파멸적인 신학인 고등비평(高等批評)이 성서 신앙에 결정적인 도전을 감행하기 시작한 19세기 전반에 미국을 중심으로, 성경에 예언된 마지막 개혁 운동인 재림 운동(Advent Movement)이 일어난 까닭인 것이다.
라. 이러한 역사적인 개혁 운동들이 일어난 때마다. 그 개혁을 추진시켜야 할 책임과 사명을 느끼는 신앙 공동체들이 거의 틀림없이 구성되었다. 그것이 곧 루터교요, 장로교이며, 회중교요, 침례교이고, 또 감리교...등인 것이다. 또한 마지막 때에 있을 것으로 예언된 재림 운동의 결과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계14:12)의 출현이 분명히 예고되었음을 전장에서 확인했다. 이처럼 그 시대의 독특한 필요에 응하기 위하여 일어난 개혁 운동들과 그 결과로 구성된 교파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시대가 지닌 한계를 지날 수 밖에 없다, 루터와 칼빈 등 개혁자들이 그 당시로는 최선의 것을 깨달았다 해도. 그것이 여러 면에서 불완전하고 미흡했음이 시대가 지나면서 드러나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의 가르침을 좇는 장로교는 , “영원 전부터...영원 후까지” 개선의 여지도 없이 완전무결한 “유일한 기독교” 라고 강변한다면, 로마 카톨릭의 교황 무오설(無誤說)과 무엇이 다른가? 그것은 칼빈 자신도 깜짝 놀랄, 엉뚱한 칼빈 무오설이 될 수 있지 않는가?
그때 서울의 유치원 또래 아이들은 저녁 무렵이면 골목길로 몰려나와 한 바탕씩 놀고 들어가곤 했다. 우선 함께 놀아 줄 동무를 불러 모으기 위해 먼저 나온 몇 아이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골목을 누비며 이런 구호를 외쳤다. “여자는 필요 없다. 남자 나와라” 웃음이 터지게 하는 것은 어깨동무를 하고 이런 구호를 열심히 외치는 아이들 중에는 여자아이도 끼어있다는 사실이다. 아동 발달 과정에서 아직도 자신의 성(性) 구별을 하지 못하는 미숙한 나이 탓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그리스도계, 특별히 한국 개신교계의 가장 큰 위기가 무엇인가? 개신교가 개신교로서의 신원(身元)을 상실한 데서 오는 신원 위기(identity crisis)가 아닌가? 현실 참여와 종교 연합의 어깨동무에 여념이 없어 개신교로서의 신분과 사명을 망각 한데서 오는 위기는 심각할 수 밖에 없다 신원 회복의 길은 역사를 아는데 있다. “과거를 의식(意識)할 때만 현재를 이해(理解)하게 된다. ”4 뿌리를 저버린 나무는 서 있는 통나무에 불과하듯 개신교를 탄생시켰고 지금도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가져다 준 종교개혁의 역사를 망각한 개신교회는 더이상 개신교회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카톨릭 신학자 오브린(John A. O. Brien)의 표현처럼 4백여년전에 부질없이 어머니의 집[로마 카톨릭 교회]을 뛰쳐나간 철부지한 “가출 소년”5 에 불과한 것이다 역사에 나타난 구속 사관(救贖史觀)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 감히 이단을 비평한다고 나설 수 있을까? 자신이 속한 교파나 다수 교파가 유지하는 신조와 다르게 믿는 소수를 무조건 이단으로 정죄하는 사시적(斜視的) 사관(史觀)은 버려야 한다. 그 속의 역사에서 방향 감각을 상실한 미아(迷兒)가 되지 않기 위하여 종교개혁의 역사에 심각해져야 한다. 다음은 지면의 제한 때문에 가장 간략하게 정리한 종교개혁까지의 역사적 배경이다.
사도 시대이래 처음 몇 세기 동안 그리스도교에는 요사이 말하는 그런 형태의 교파는 없었다. 1세기말에 쓰인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대로, 교회는 단순히 위치한 지명에 따라, “에베소교회” 서머나 교회, 버가모교회, ...등으로 불리웠을 뿐이다.(계2: 1, 8, 12). 이러한 교회들은 1세기에는 예수님께서 직접 임명하신 사도들이 다스렸고 그 후에는 사도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사도 교부(Apostolic Fathers)들이 일어나서 일종의 종교철학인 영지주의(靈知主義)등 이단의 가르침에서 교회를 지켰다. 2세기에 들어서면서 로마제국의 국신(國神)과 황제 예배가 강요되면서 신흥 유사종교(類似宗敎)로 취급받던 그리스도교에 대한 픽박이 시작되자, 변증 교부(Apologists) 들이 일어나 나름대로 교회를 보호했다.6
가. 2백년 이상 계속된 로마제국의 끔찍한 픽박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그래도 신앙의 순결을 유지하며 순교자들의 피를 씨앗으로 하여 로마제국 전역으로 세차게 번져 나갔다.
나. 핍박에 실패한 로마제국은 정책을 바꾸어 종교 자유를 허락하는 관용 정책을 통하여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313년 콘스탄틴 황제는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는 밀란의 칙령(Edict of Milan)을 내렸으며, 같은 해 그리스도교 성직자들에게는 병역과 납세의 의무를 면제하고 사법상의 특혜를 베풀고, 국고에서 하사금을 지급하는 등 특별 혜택이 주어졌다.7 315년에는 그리스도인이 된 노예는 쉽사리 자유인이 되게 하는 법안을 마련했고 교회가 유산을 증여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교회는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게 했다. 324년 황제는 자신은 미침자이면서도 침례받는 로마 시민에게는 특전을 베풀어 한 해동안 로마에서는 12.000명이 침례받은 것으로 전해진다.8 325년 황제는 신하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도록 조치했다.
다. 이토록 갑작스러운 종교 정책의 변화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급속한 변화를 졸지에 몰고 왔다. 저마다 성직의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속된 야망은 성직 매매를 초래했고, 도시 교회의 감독 임명시에는 거리의 폭력이 동원되기도 했다.9 교회는 온갖 퇴폐와 부정의 온상이 되었고 정치의 시녀가 된 교회는 교리적인 논쟁을 해결하는 일에도 황제의 개입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10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 출신의 장로교 신학자 뵈트너(Loraine Boettner) 박사의 증언은 4세기 그리스도교의 진상에 대한 적절한 요약이다.
“4세기 초 서방을 다스리던 콘스탄틴 황제가 그리스도교에 호의를 베풀기 시작하고...324년 그리스도교를 공식적인 종교로 만들었다. 결과로 신자가 되면 누릴 수 있는 특전을 얻기 위해 수많은 이교도들이 교회로 밀려 들어왔다. 그들은 교회가 미처 가르치고 동화(同化)시킬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숫자였다. 더 화려한 이교 의식에 익숙한 그들에게 단순한 그리스도교 예배는 만족을 주지 못했으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이교적(異敎的)인 신조와 행사들을 끌어들였다. 성경을 소홀히 함과 백성들의 무지를 통하여 교회는 점차적으로 그리스도교의 교회라기 보다는 오히려 이교의 교회가 되기에 이교 사상은 더욱 더 소개되었다. ...이러는 동안 교회 안에는 화려한 복장을 차려입고 제사를 드리는 사제(司祭)와 화려한 의식, 성상(聖像)들, 성수(聖水), 분향. 수사(修士)들과 수녀(修女)들, 연옥의 교리, 구원을 은혜보다는 행함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신앙이 일반에게 나타났다. 로마제국 전역의 교회들에서도 그랬지만 로마에 있는 교회는 더 이상 사도적인 교회가 아니였으며, 하나의 종교적인 기형체가 되었다.”11
이러한 사실은 개신교계 에 널리 알려진 로마 카톨릭 추기경 뉴만(John H. Newman)의 저서 “그리스도교의 발전” 에서도 다음과 같이 확증되고 있다.
증언 뉴만
“성당들, 분향, 등(燈), 봉헌물, 성수(聖水), 성일들과 절기들, 행진(processions), 땅을 축복하는 일, 사제의 복장들, 체발(剃髮), 성상(聖像)들, 이 모든 것들은 이교적인 기원(起源)이다.”12
라. 이러한 분위기에서 이교의 온갖 신조와 관습이 그리스도교에 거침없이 소개되었는데, “어떤 학자들은 로마교회의 의식 가운데 75퍼센트가 이교적인 기원에 속한다”13 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당시 로마제국에 유행한 페르샤의 태양신 미드라(Mithras)숭배에 익숙했던 콘스탄틴 황제는 이러한 분위기에서 321년 3월 7일 그 유명한 “일요일 휴업령”(Sunday Law)을 반포했다. “존경할 만한 이 태양의 날에 모든 판사들과 도시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휴업하도록 하라”14 는 황제의 칙령은 단번에 일요일을 이교도와 그리스도인들의 공동 휴일이 되게 했다.
거듭된 반란으로 로마 제국의 증오와 핍박의 대상이된 유대인들과 구별되기 위한 심리적 부담을 가졌던 당시의 그리스 도인들이 2세기이래 일요일에도 산발적인 모임을 가져온 분위기였다. 그랬으므로 이미 로마제국의 호의에 길들여진 로마 교회의 지도자들을 위시한 그리스도교 성직자들은 거침없이 시세(時勢)에 부응하여 364년 라오디게아에서 열린 종교회의(the Council of Laodicea)에서 안식일 준수를 유대교 신앙 행위로 규정하여 이를 저주하고 일요일 성수(聖守)를 교회의 종규(宗規 . canon)로 정식 채택함으로서 일요일이 안식일을 대신하여 공식적인 성일(聖日)로 확정되었다.,15
마. 354년에는 그 동안 태양의 생일로 축하되던 12월 25일이 최초로 그리스도교의 탄생일로 둔갑하여 로마에서 편집된 달력[Philocalian Cataoigue]에 나타났다. 16 그리고 그 때까지 초대 교회가 그리스도의 수난(受難)과 부활을 기념하여 날짜에 맞추어 지켜 오던 유월절(Pascha)행사가 이교적 배경을 가진 “이스터”. 곧 부활절- 일요일(Easter-Sunday)축제로 날짜를 바꾸어 지키기 시작한 것도 이때이다.17
참으로 급속한 변화였고 신속한 변질(變質)이였다. 백년 이상 계속된 끔찍한 핍박에서 살아남은 교회가 일개 황제의 정책적인 관용과 선심(善心)공세에 세속적 번영에 의하여 단시일 내에 힘없이 정복된 것이다.
3. 중세기의 시작과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성립
가 처음 ?p세기 동안 그리스도교에는 지금과 같은 교파는 없었지만. 그리스도교의 오본산(五本山)으로 알려진 예루살렘, 안디옥, 로마, 콘스탄틴노플, 알렉산드리아의 교회들이 신학을 빙자로 서로 우위를 겨루는 주도권 분쟁은 계속됐다. 그러나 역사는 로마교회의 편에 있었다.
나. 로마는 사도 바울과 베드로의 순교지라는 전통적인 자부심과 함께 대로마제국의 수도라는 정치적 후광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330년 수도가 동방의 콘스탄틴노플로 이전하면서 형성된 정치력의 공백을 로마 교회의 감독에 의하여 채워지고 있었다. 18
다. 곧 이어392년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교(國敎)가 되어 정교(政敎)유착(癒着)이 가속되는 가운데 시작된 게르만 민족의 로마 침입을 외교를 통해 막아낸 로마 교회 감독 레오(Leo I)는 최초로 “아버지”를 뜻하는 오늘날의 교황의 명칭인 “Pope" 라는 타이틀을 451년 공인 받음으로서 최초의 교황이 탄생한 셈이다.19
라. 533년 유스티니안(Juitinian I)황제는 게르만 민족에게 유린된 서 로마를 회복하는 일에 그리스도교의 힘을 이용하고자 서 로마의 정신적 지도자가 된 로마교회의 감독을 전 세계 교회의 머리로 선언하고 이에 장애가 되는 게르만 부족들이 헤룰리(493), 반달(534), 동고드(538)를 각각 제 거함으로서 바야흐로 로마 교회가 주도하는 중세기 역사가 6세기에 시작되어 18세기 프랑스 혁명으로 몰락되기까지 12세기 이상이나 계속된다.
마. 비슷한 때인 서기 622년 아라비아에서 일어난 마호멧의 회회교도, 로마 교회의 주도권 확립에 큰 몫을 했다. 로마 교회 경쟁 상대였던 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등 동방의 3대 본산(本山)교회가 7세기초에 모두 회회교의 수중으로 넘어감으로써 로마 교회 존재는 한층 고유하게 되었다. 또한 732년에는 유럽을 서쪽으로부터 침입하는 회회교 세력을 성공적으로 물리친 전공을 앞세워, 촬스 마텔(Charles Martel)은 게르만 민족이 세운 최대 왕국인 프랑크(Frank)의 왕위를 불법으로 찬탈했다. 그가 이룩한 카롤링기안(Carolingian) 왕가(王家) 출신의 피핀(Pepin)을 도덕적으로 합당한 통치자로 인정하고 왕관을 씌워 준 보답으로, 로마 교황은 756년 이탤리에 있는 동 로마제국의 땅 일부를 기증 받음으로써 오늘날처럼 영토까지 갖춘 최초의 종교 국가가 탄생하기에 이른다.20
바. 오래 동안 주도권을 놓고 다투던 콘스탄틴노플의 동방교회와는 성만찬에 쓰는 빵에 누룩 넣는 여부를 놓고 맞부딪쳐 1054년 서로를 파문(破門)함으로써 회랍정교(Greek Orthodox Church)로 알려진 동방교회가 분리되기에 이른다.21
사. 이처럼 영토와 교권을 확보한 교황권은 11세기에 이르러 중세기 봉건제도에서 정치와 경제의 노른자가 되는 서임권(敍任權)마저 뜻대로 쟁취함으로써 중세기 절대 권력(絶對權力)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논리는 교권(敎權)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이미 4세기에 일어난 배도에 앞장섰던 로마 회는 급속도로 퇴폐와 타락의 길을 치달았다.
아. 이렇게 하여 4세기 이래 성서 신앙의 닻줄이 끊긴 로마 교회는 6세기에 확립된 교황권을 앞세워 세속적 조류에 진로를 맡긴 채, 중세기 영적 암흑시대를 향하여 기나긴 배도(背道)의 표류(漂流)를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중세 교회의 배도는 그 후 중세기 1.200여년 동안 계속되어 그 내역(內譯)을 쌓아 갔다. 다음의 목록(目錄)은 장로교 신학자 뵈트너(Lo-raine Boettner) 박사의 저서에서 간추린 것이다, 깊어질 대로 깊어진 배도의 이 깊은 골짜기를 누가 메울 것인가?
그 대답이 종교개혁이다. 그리고 그것이 종교개혁의 주체인 개신교(Protes-tantism)의 피할 수 없는 책임과 역사적 사명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 자신과 우리가 속해 있는 교회가 이 깊은 배도의 골짜기를 메우기 위해 어떤 역할을 했는가? 그리고 아직도 교파의 전통에 따라 물려받은신조 가운에 어떤 것들이 밝혀진 성서 신앙에 어긋나는 배도의 내역들인지 자세히 살펴보자. 이 깊은 배도의 계곡을 루터와 칼빈과 웨술리가 단번에 모두 메웠다고 생각되는가? 이러나 배도의 내역과 오염에서 완전히 벗어난 교회가 참으로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그렇게 되었는가? 그것이 개신교회를 존재하게 한 종교개혁의 원인과 역사가 아닌가?
중세 교회의 배도의 역사와 내역
<서기> <교리사항>
※364 안식일을 저주하고 그 신성성을 일요일로 옮김(Laodicea 종교회의)
375 천사와 죽은 성자들 숭배, 성상(聖像)사용
431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로 높이기 시작함(Ephesus 종교회의)
500 사제들은 이교 제사장들의 본을 따른 복장으로 집전함.
593 교황 그레고리 1세에 의하여 연옥 교리가 소개됨.
600 마리아나 죽은 성자들에게 직접 기도 드림.
756 프랑크왕 피핀(Pepin)에 의해 교황에게 영토와 세속 권이 부여됨.
786 속죄와 예배의 수단으로 십자가, 성상 및 유물 숭배.
※787 죽은 사람을 위한 기도와 죽은 성자들에게 기도 드리는 일이 인정됨(Micea종교회의)
850 사제에 의해 축성(祝聖)된 성수(聖水)사용
890 요셉 (마리아 남편)숭배.
995 교황 요한 15세에 의해 처음으로 죽은 성자들을 시성(諡聖)함
11세기 예배가 아니라 제사로서 미사가 드려짐
11세기 교황 그레고리 7세에 의하여 성직자의 독신 제도가 확립됨
※12세기 물에 잠그는 침례 대신 물을 뿌리는 세례를 인가함.
1090 은둔 수사인 베드로(Peter)에 의하여 성모에게 바치는 “장미 꽃다발”의 뜻인 “로사리오”즉 묵주 기도[매괴신공]가 고안됨
1184 종교재판(Inquisition)제도가 설정됨(Verona 종교회의)
1190 면죄부(Undulgences)판매
1215 화체설(化體說)이 교황 인노센트 3세에 의해 선포됨
1215 하나님 대신 사제에게 죄를 고하는 고백성사가 교황 인노센트 3세에 의해 선정됨(Lateran 종 교회의)
1229 성경을 금서 목로에 넣어 평 신자들이 접근을 금지함(Valencia 종교회의)
1414 성만찬시 평신도들에게 포도즙 잔을 금지시킴(Constan ce 종교회의)
1439 연옥이 정식 교리로 선포됨 (Floendce 종교회의)
※1513 교황 레오10세는 영혼 불멸의 교리로 확정하고 조건적 불멸 신앙을 이단으로 선언함 (Lateran 종교회의)
1545 교회의 전통이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가진다고 선언함(Trent 종교회의)
1546 영감 받지 아니한 경외 서들을 성경에 포함시킴(Trent 종교회의)
1854 교황 피우스 9세는 성모 마리아는 탄생 때부터 원죄도 없고 해산의 고통도 없었다는 성모무 염시태(聖母無染始胎)를 교리로 선포함
1864 교황 피우스 9세는 로마 교회가 인정치 않는 각종 시민의 자유 (종교, 양심, 언론, 과학, 등)를 정죄하는 교서(Syllabus Errorum)를 발표함(Lateran 종교회의 비준)
1870 교황 무오 설(無誤說)을 선언함 (Vatican 종교회의)
1950 교황 피우스 12세에 의해 마리아는 죽은 직후 육신 그대로 승천했다는 성모 몽소승천(夢召 昇天)을 교리로 선포함 (축일은 8월 15일)
1965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로 선포됨
자료 출처 : Loraie Voettner, Roman Catholicism, (The Prebyterian and Refomed pub-Iishing Co., 1979). 7-9
※표한 사항은 별도로 첨가된 것임
4 종교 개혁의 전주
영적인 암흑이 칠흙같던 12세기, 참다운 길을 제시해야 할 교회의 가르침이 중세 교회의 배도로 심각하게 오염되어, 더 이상 구원의 신앙을 유지할 수 없음이 명백하게 되자 여기저기서 생명의 빵과 물을 구하는 애타는 영혼의 절규가 울려퍼졌다.
언제나 먼저 목마르게 배고픈 것은 평신도였다. “교황권의 대낮은 세계의 한 밤중이었다.”22는 역사가 윌리(J, A, Wylie)의 표현처럼 로마 카톨릭교회의 전성기였던 12세기는 참으로 영적인 한 밤중이었다. 마침내 1170년경 프랑스 남부로부터 그들의 지도자였던 헌신한 상인 왈도(Peter Waldo)이 이름을 따라 왈덴스인(the Waldenses)으로 불리는 일단의 평신도들이 일어나, (1) 로마 교회 전통을 거부하고 순수한 성서 신앙을 제창했으며, (2) 연옥 교리를 부정하고 죽은 사람을 위한 기도를 반대했으며, (3) 성만찬의 빵과 포도즙이 사제의 축성(祝聖)으로 그리스도의 실제의 살과 피로 변형한다는 화체설(化體說)을 부인했다. (4) 로마 교회는 잘못할 수가 없다는 무류설을 반대하고 평신도의 전도할 권리를 요청했다. 23 (5) 이들 가운데 제칠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무리도 일어났음이 역사가들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24
험준한 알프스골짜기를 피난처로 삼고 행상(行商)을 하며 전도한 이들은 로마교회의 혹독한 핍박으로 수 없는 희생자를 내며 유럽의 22개국으로 번져 나갔다.25 1545년에도 4천명이 학살당하는 참변을 치르며 아직도 이탤리에 남아 있는 최초의 개신교이다.26
종교개혁의 새벽 별- 영국의 위클립
왈덴스인의 개혁이 영국에까지 이른 무렵, 14세기 유럽의 최고 명문인 옥스퍼드 대학의 가장 유능한 학자로 국왕의 궁중 사제였던 위클립(John Wyc-Iiffe . d. 1384)이 일어나 왈덴스인의 가르침을 신학적으로 정립하여 선포했다. 그는 (1) 교회의 유일한 머리는 그리스 도시며, 교황은 “적그리스도의 대리자” (the vicar of Anti-christ)라고 선언했다. (2) 연옥을 부정하고 성자 예배와 유물 숭배를 반대했으며, (3) 화체설을 공박했으며, (4) 고백성사와 교회의 무류를 부정하고 ,(5) 구원은 인간 공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는다고 가르쳤다. (6) 1382년 금서(禁書)였던 성경을 라틴어에서 영어로 번역하여 백성들의 영적 시력을 회복시켰으며, (7) 왈덴스인의 본을 따라 롤라드(the Lillards)로 알려진 평신도들을 훈련시켜 전국을 순회하며 전도하게 했다.27
옥스퍼드를 중심으로 번진 위클립의 가르침은 유럽 대륙에도 번져, 지금의 체코슬로바키아의 일부인 보헤미야의 프라하 대학 총장 허스(John Hus . 1360-1415)와 동료 교수 제롬(Jerme)에게 개혁의 불을 붙였다. 그는 위클립의 가르침 외에도 평신자들도 사제들처럼 성만찬 시에 포도즙을 마실 권리를 달라고 요구했다 28. 그는 즉시 이단으로 파문당하였고 개회 중인 콘스탄스 종교회의 (the Council of Constance)에 자진 출두하여 심문을 받은 끝에, 안전 통행을 보장한 황제의 배신으로 교황 사절에게 체포되어 수도원 감옥에서 모진 고초를 겪다가 1415년 7월 완고한 이단이란 죄목으로 화형에 처해졌다.29 동료 교수 제롬도 이듬해 5월에 화형에 처해짐으로써 개혁의 불꽃으로 사라졌다.
한편 로마 카톨릭의 본 고장인 이탤리이 플로렌스(Florence)에서도 의학을 공부한 도미니칸 수도사요 학자였던 사보니롤라(G, Savonarols . 1452-1498)가 일어나 교황의 권위를 부정하고 부정하고 부패한 로마 교회 개혁을 공공연히 주창하다가 이단으로 정죄되어 46세에 화형에 처해졌는데, 로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michelangelo)도 그의 청중 중에 하나였다.30
5. 종교개혁의 발발과 개신 교회의 시작
12세기와 13세기에 걸쳐 유럽의 “왕중 왕”이 된 교황은 미신처럼 된 성지순례를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회회교도로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여러차레의 십자군을 일으켜 엄청난 유혈과 오욕으로 얼룩진 십자군 전쟁을 수행했다. 또한 1184년 이후 잔인한 종교재판(Inquisition)을 실시하여 이단 박멸에 무서운 힘을 드러냈으며, 이 일을 위해 자주 십자군을 동원했다.
성경에는 전혀 근거가 없는 연옥 교리를 소개하여 속죄의 필요를 역설한 중세 교회는 고백성사(告白聖事)와 함께 고행(苦行)을 강조했다. 지금도 가르치는 대로 “고백성사로 일단의 죄의 용서를 받았으나 그 죄에 해당하는 벌을 받아야 하는데, 이 벌을 사후에 받는다면 연옥에서 받아야 할 것이고 세상에서 받는다면 고백성사 후 사재가 훈계를 한 후에 정해 준 기도나 희생 혹은 선행을 하게 되면 받게 되는 것”31을 속죄, 곧 보속(補贖)으로 가르쳤다 . 그리하여 보속의 수단이 된 면죄부는 자신의 죄의 형벌을 감면(減免)할뿐 아니라 연옥에 있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신속히 천국에 보낼 수 있다는 기괴(奇怪)한 가르침으로 발전된 것이다.
이러한 면죄부의 공공연한 판매는 이미 허스가 일으킨 개혁에 자극을 받고 방금 믿음에 의한 구원을 체험한 젊은 신부요 신학 교수였던 루터(Martin Luther)의 신앙 양심의 괴롭혀 이를 성토하는 95개조 논재를 1517년 10월 31일 정오에 위턴베르그 성당문에 게시함으로써 세계를 바꾼 대 종교 개혁의 막이 올랐다. 그는 즉시 이단으로 고발되었으며, 신성로마제국의 국회로 소환이 되어 1521년 4월18일 심문을 받고 그의 주장을 포기하도록 요청받았으나 이를 담대히 거부함으로써 종교개혁의 분수령을 넘었다.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와 신성 로마 제국에 의하여 잡히면 화형에 처해지는 이단의. 선고를 받은 루터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그는,(1) 신앙의 최종 권위는 로마교회의 전통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성경”(sola scirptura)에 있으며, (2)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은 사람의 선행이나 로마교회으 사제가 성레전(聖禮典)을 통해 나누어주는 공덕(功德)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속죄를 전적으로 받다 들이는 “오직 믿음” (sola fides)으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의 의(義)며, (3) 구원은 그러한 믿음을 통해 누리는 “오직 은혜”(sola gratia)로 주신 선물임을 강조했다. (4) 또한 신자들은 사제를 통하지 않고도 직접 하나님께 나갈 수 있다는 만인 사제직(萬人司祭職)을 제창했고, (5) 연옥 교리와 함께 그것을 뒷받침하는 영혼 불멸의 가르침을 부정하고 조건적 불멸을 가르쳐 부활 신앙을 강조했다. 32 루터의 개혁은 개신교 신앙의 기초를 놓으며 칼빈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독일로부터 주로 북 유럽과 동유럽, 영국과 러시아에까지 널리 보급되었다.
가. 독일에서 루터가 개혁을 시도하는 동안 스위스에서는 독일보다 더 철저한 개혁이 별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경건한 로마 카톨릭의 사제요 학자며 애국자였던 쯔윙글리(Uoich Zwingli d, 1531)는 성경을 연구한 결과로 얻은 확신에 따라, 로마 카톨릭의 이교적인 예배의식과 면죄부 제도를 전면 부정하고, 극도에 다한 성직자들의 도덕적 퇴폐를 공박하는 대담한 개혁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화체설을 반대하고, 성만찬의 빵과 포도즙은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기념이라고 가르침으로써 루터의 성체공존설(聖體共存說)을 진일보(進一步)시켰다. 그러나 그의 개혁을 저지하기 위하여 북부 스위스의 카톨릭 자치주들이 외국의 힘까지 빌어 무력으로 대응하자 이를 막다가 전사하았다.33
나, 루터나 쯔윙글리보다 더 철저한 개혁을 원하는 일단의 개혁자들이 스위스의 쮜리히에서 일어났다. 재세레파(Anabaptists) 혹은"형제들“(Breth-ren)로도 알려진 이들은, 그 레벨(Conead Crebel)과 만쯔(Felix Manz)의 지도자 아래, (1) 신앙의 유일한 근거로 깊은 성경 연구를 강조하고, (2) 국가와 교회의 철저한 분리를 주장했다. (3) 죄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할 수도 없는 어린아이들에게 베푸는 로마 카톨릭의 의식인 유아 세례(幼兒洗禮)가 비성경적인 것이므로 무효라고 선언하고, 성인 신자에게 이를 다시 베풀었으므로. 이로써 재세례파의 명칭을 얻었다. (4)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죽음을 수면과 같은 무의식 상태라고 가르치고 부활과 신속한 재림 신앙을 강조했다. (5) 교회로부터 성상들과 이교적 의식들을 일체 제거할 것을 주장하고, (6)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존중하고 맹서를 금했으며,34 (7) 전쟁을 반대하고 무기 사용을 금했으며, 핍박을 받을지라도 대항하거나 원수를 갚지 않았으며, (8) 모든 교회는 신자들이 자율적으로 믿고 다스려 나가는 회중제도(會衆制度)를 택했다.35
다, 이들 가운데는 때로 극단과 광신에 기울어져 물의를 일으킨 분파들도 나타나 혼란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그들의 철저하고도 대담한 개혁은 후에 복음주의 적인 개신교들인 메노나이트(Mennoeites), 아마쉬(Arrish), 후터파 (Hutterites)침례교(Baptists), 퀘이커(Quakers)등을 일으키는 뿌리가 되었다.
“메노나이트나 침례교 도가 재세레파를 자신들의 영적인 조상들 가운데 포함시키는 일 을 부끄러워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자유로운 교회 개념은 독립주의적인 청교도와 침례교, 퀘이커에 영향을 끼쳤다.36
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로마 카톨릭은 물론 획일적인 개혁을 추진한 루터, 쯔윙글리, 칼빈 에 의해서도 이단시되어 가혹한 핍박을 받아 카톨릭 지역에서는 화형에 처해지고, 개신교 지역에서는 물에 빠뜨려 죽였다.
가. 핍박을 받은 많은 재세례파 신자들은 홀랜드[화란]로 도피했는데, 로마 카톨릭 사제였던 메노 시몬스(Menno Simmons)가 화체설에 의심을 품고 성경을 연구하던 중 카톨릭 신앙의 오류를 깨닫고 1536년 재세레파로 개종하여 그들의 유능한 지도자가 되었다.38 재세례파의 모든 가르침과 함께 요한 복음 13장의 교훈에 다라 성만찬 전에 서로 발을 씻기는 세족 예식(洗足禮式)도 시작했다.39 지도자의 이름을 따라 불리는 메노나이트 재세례파 신자들은 당시에 알려진 가장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었으나 40 카톨릭과 개신교 양편으로부터 혹독한 핍박을 받아 많은 순교자를 냈으나 때마침 열린 신대륙으로 건너가 1683년이래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41 같은 계통인 퀘이커 교도들과 함께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옹호하고, 비무장 평화주의, 의료 봉사를 통해 미국의 인권 옹호와 민주 사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나. 본거지인 스위스로부터 내어 쫓겨 모라비아 쪽으로 피난한 또 다른 재세레파 신자들은 경건한 지도자 후터(Jacob Hutter)의 지도 아래 중생과 변화된 생활을 강조하며 80퍼센트나 순교로 끝나는 값비싼 선교를 위해 퍼져 나갔으며, 후터 자신도 1536년 화형에 처해졌다. 42 그 후 신대륙으로 피난하여 옛날처럼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 문명을 등진 농경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다. 또 다른 스위스의 재세레파는 암만(Jacob Ammsn)의 지도 아래 보다 철저한 신앙 개혁을 부르짖으며 분리되어 나왔다. 지도자의 이름을 따라 아미쉬(Amish)로 불리며, 후터파와 함께 현대 문명을 등지고 단순한 생활을 살고 있다. 유럽에서의 핍박을 피하여 신대륙으로 건너온 뒤 시골 생활과 농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43
가. 독일이나 스위스에 앞서 프랑스에서도 빠리 대학의 레퍼브르(Jaques Lefevre d. 1536)교수에 의해 개혁 신앙이 지식인들 사이에 확대되고 있었다.44
나. 루터의 개혁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은 20세를 갖넘은 젊은이 칼빈은 핍박을 피해 스위스로 피난하여 제네바를 중심으로 신정(神政)까지 베풀며 루터의 개혁과 양대 주류를 이루는 개혁을 추진 시켰다. 칼빈은 (1) 신앙은 성서에 기초해야 하고 그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는 성서 신앙을 강조하고, (2) 창조와 구속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主權)과 하나님의 영광(soli Deo Gloria)을 강조했다. 45 (3) 예배 의식에서 중세 로마교회의 우상적이고 이교적인 요소를 일체 배제하여 개신교 예배의 기초를 놓았다. (4) 은총만을 치우치게 강조한 루터와는 달리 의(義)와 성화의 표준으로 율법의 기능을 적절히 강조했다. (5) 교회 행정에서 감독 제도와 회중제도의 중간인 장로 제도를 채택했으며,46 (6) 루터나 쯔윙글리보다 성만찬의 영적 의미를 한층 깊게 했다. (7) 교육을 강조하고 직업을 소명(召命)으로 가르치는 등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한 것으로 평가된다.
칼빈의 기본적인 개혁 신앙은 루터의 사상을 계승한 것이지만, [기독교 요강] 등 저서를 통하여 이를 체게있게 조직하고 철저하게 규명하여 발전시킴으로서 종교개혁의 진전에 있어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칼빈의 개혁 신앙 을 따르는 개신교를 유럽 대륙에서는 “개혁 교회”(the Reformed Churches)로 알려진다. 이렇게 섬나라 영국에 장로교 신앙이 뿌리를 박게 된 데는, 하나님 외에는 두려워하지 않는 스크트랜드의 개혁자 낙스(John knox . 1514-1572)가, 프랑스의 힘을 빌어 카톨릭 신앙을 스코트랜드에 정착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 메리(Stuart)여왕의 시도를 용약(勇躍)분쇄한 데 크게 힘을 입었다.47
가. 16세기 종교개혁이 유럽 대륙에서, 독일의 루터파(Lutheran), 스위스의 재세례파(Anabaptist), 칼빈의 개혁 교회( the reformed Cherch)등 세 주류를 이루며 진전되고 있는 동안 섬나라인 영국에서는 별도의 이유로 별도의 개혁이 전개되고 있었다. 14세기 옥스포드의 학자인 위클립이 일으킨 개혁의 파문은 보헤미아의 개혁자 허스를 통하여 루터에게까지 영향을 미쳤으나 막상 영국에서는 카톨릭 교회가 주도한 정치적 여건으로 개혁이 진전되지 못하였다.
나. 옥스포드 출신의 학자 틴데일(William Tyndale)이 핍박을 피하여 유럽에 은둔하면서 최초로 원어에서 번역한 영어 신약 성경을 출판하여 본국으로 밀수하여 종교개혁에 연료를 공급했다. 그러나 본인은 성경을 번역, 출판한 죄로 카톨릭이 지배한 벨지움에서 체포되어 42세의 젊은 나이로 1536년 화형에 처해졌다. 그는 화형주에 묶인 채 큰소리로 “주님이시여,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소서”48 마지막 말을 남기고 죽었다.
다. 독일에서 일어난 루터의 개혁사상 이 영국에서 문서로 소개되자. 헨리 8세는 이를 글과 힘으로 분쇄하여 교황으로부터 “믿음의 옹호자”라는 칭호까지 얻었다. 그러나 스페인의 왕녀요 죽은 형의 미망인인 황후 캐더린(Cathe-rine)이 아들을 낳지 못하여 이혼하려 했으나 허락하지 않자, 1534년 영국 교회를 로마 카톨릭으로 부터 독립시켜 국왕이 영국 교회의 머리가 된다는 수장령(首長領)을 발표했다.49 이리하여 성공회(聖公會)의 모체인 영국 국교회가 탄생했으나 머리가 바뀐 것 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라. 그러나 루터파 개혁자인 대주교 크랜머(Thomas Cramer)는 헨리 8세와 그의 아들 에드워드 4세를 도와 칼빈의 종교 개혁 신앙을 흡수하여 국교회를 크게 개혁해 나갔다.
마. 그러나 헨리 8세의 카톨릭 황후 캐더린이 낳은 딸 메리(Mary)가 왕위에 오르면서 개혁은 역전되었다. 개혁 신앙을 가진 300명의 학자와 성직자가 화형에 처해졌고 8백명은 대륙으로 피난했으며 10200명의 성직자들은 직분을 빼앗겼다.50 경건한 학자요 감독이었던 리들리(Ridley)와 라티머(Lati-mer)는 카톨릭의 화체설과 예배가 아니라 제사인 미사(Mass)를 끝까지 반대한 죄로 1555년 10월 16일 화형에 처해졌다. 집행전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오래 기억되고 있다. “리들리 선생 용기를 가지고 사내답게 처신합시다. 오늘 우리는 확신하는 바 하나님의 은혜로 결코 꺼지지 않는 불을 영국에 붙이게 될 것이요”51
화형이 두려워 개혁 신앙을 취소했던 크랜머 대주교도 다음 해 자신의 개혁 신앙을 재천명한 뒤 화형주에 올라, “교황은 그리스도의 적이요, 그의 거짓 교리와 함께 적 그리스도로서 그를 거절한다.”고 선언한 다음 지난 날 개혁 신앙 포기를 자술했던 오른손을 먼저 불 속에 넣어 태우면서, “이 손이 범죄하였도다”라고 부르짖으며 불꽃에 사루어졌다. 52
이러한 뼈저린 희생을 치르며 지켜온 한가닥 한가닥 개혁신앙의 귀중함을 망각하고, 성경적으로 명백한 오류임을 깨닫고도 개혁의 의지를 상실한 채, 신앙 양심에 아무 부담도 느끼지 않고, 개혁을 위한 어떠한 희생도 원치 않는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은 진정한 종교개혁의 후예들인가?
6 청교도 운동과 개혁의 진전
그 잔인함 때문에 “유혈(流血)메리”(Bloody Mary)53 라는 별명을 얻은 메리 여왕이 재위5년만에 급서한 뒤 1558년 에 즉위한 그의 이복 동생 엘리자벳(Elixabeth I) 여왕은 자신을 합법적인 후사로 인정치 않는 교황권에 맞서 살아남기 위하여 정치적 이유로 개혁 신앙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지난 날 대륙으로 피신했던 개혁자들이 대부분 칼빈주의 개혁신앙을 가지고 속속 귀국하였다. 그들을 카톨릭 배경에 칼빈과 루터의 개핵신앙을 혼합한 국교회(Ahglican Church) 신앙에 만족하지 않고 이를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철저히 개혁하여 순결하게 (Purity)하려는 칼빈주의 청교도(淸敎徒 . Puritan)들이 일어났다. 1648년 칼빈주의 개혁 신앙의 헌장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Westminster Confrssion)의 구성을 주도한 것도 청교도들이었다.54 그들이야말로 칼빈주의 개혁 신앙의 진수였다.
그들은 이교적인 예배 의식, 사제들의 복장, 성경에 근거가 없는 각종 제일(祭日)들 사제의 면죄(免罪)행위, 십자가 사용, 대부모(代父母) 제도의 폐지와 함께 성일로 간주된 일요일의 철저한 준수들을 요구했다.
그들은 교황 대신 교회의 머리가 된 국왕이 감독들을 앞세워 교회를 다스리는 성공회의 감독 제도를 반대했다 국교회에 남아 있으면서 칼빈의 장로제도만 채택하자는 장로회파(Presbyterian) 청교도에 남아 있기는 하되 외부의 간섭을 일체 받지 않겠다는 독립주의 (the Independents) 청교도도 나타났다.
국왕이 머리로 남아 있는 국교회가 완전한 개혁을 받아들일 전망이 어두워지자, 국교회를 떠나 완전한 분리(分離)를 원하는 보다 철저한 청교도들이 1581년 캠브리지 출신의 지도자 브라운(Robert Browne .d. 1633)에 의하여 국왕이 머리가 된 국교회(聖公會)를 부정하고, 여러 가지 속박을 가져오는 칼빈의 장로제 도도 배제하고,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 아래 언약으로 연합된 회중이 자율적으로 목사 등 지도자들을 선출하고, 성경에 의하여 계발된 신앙 양심에 따라 믿음을 행사하도록 촉구했다. 이리하여 칼빈주의 청교도 신앙의 진수로 골격을 이룬 최초의 회중교회(Congregational Church)가 탄생한 것이다.55 이들 역시 핍박을 받아 홀랜드로 피난했으나 브라운을 계승한 그린우드(John Greenwood)와 바로우(Henry Brrow)는 본국에서 1593년 회중교회 신앙을 싹틔우기 위한 순교의 피를 흘렸다.56
엘리자벳 여왕 이후 영국 황들도 국교 주의를 고집하며 분리 주의 회중파 청교도들[회중교]에 대한 핍박이 계속되자. 대부분이 산 자들은 고국을 떠나 보다 나은 신앙의 자유가 있는 홀랜드로 피난했다 당시 영국의 게인스보로(Gaonsborongh)에 있던 일단의 회중파 청교도들은 국교회의 목사였다가 개종한 스미스(John Smyth . d. 1612)목사의 지도 아래 1608년 홀랜드의 암스테르담에 정착했다 그들은 경건한 생활에 감명을 받았으며, 동시에 카톨릭의 의식인 유아세레가 비성경적임을 깨닫고, 1609년 스미스 목사는 자신을 비롯하여 동료 헬위스(Thomas Helwys)등 36명에게 세례를 줌으로서 세례를 베풀고 회중정치를 하는 최초의 침례교가 홀랜드에 세워졌다.57
그들은 또한 칼빈의 예정론의 모순을 깨닫고 아르미니우스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58 신자들의 일부는 메노나이트 교회로 연합하였으나 휄위스를 따르는 회중은 1611년 영국으로 돌아와 1612년 영국에서는 최초로 런던에 침례교회를 세웠다. 그들은 칼빈주의 신앙은 받아들였지만 유아세레를 반대하고 장로제 도가 아닌 회중제도를 택했으며, 홀랜드에 있을 때 확신한 아르미니우스의 가르침을 따라 칼빈의 예정론을 반대하고, 그리스도의 속죄는 선택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일반을 위한 것임을 믿기 때문에 일반침레교(General Brptists)나 자유의지 침례교(Free Will Baptists)로 불린다. 이처럼 최초의 침레교는 분리 주의 청교도들인 회중교회에서 시작된 것이다.59
1633년 스필즈버리(John Spilsbury)의 지도를 받는 일단의 독립 주의 청교도들이 성경을 연구한 끝에 본 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왔다. 그들 역시 일반 침례교와 같이 회중제도를 유지하며, 유아세레는 물론 물을 뿌리는 세례까지도 비 성경 적임을 발견하고 그리스도의 보존과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물에 잠기는 침례(浸禮)만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그리스도의 속죄는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칼빈의 “제한된 속죄”룰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에 특별 침례교(the Particular Baptisis)라고 부른다.60
이렇게 두단게의 개혁으로 서로의 약점이 보강된 침례교는 17세기 영국의 신앙 부흥과 신대륙에서의 신앙과 양심이 자유등 개신교 신앙 정착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복음을 설교한 죄로 12년간 옥살이를 하며 「철로 역정」(天露歷程)을 쓴 죤 번연(John Bunyan . 1628-1688), 흑암과 빈곤의 대륙 인도 선교를 위해 몸을 사룬 캐리(William Carrey . 1761-1834), 신대륙 미국에 신앙과 양심의 자유의 원칙을 심어 준 로저 윌리암스(Roger William Miller. 1782-1849)등이 모두 자랑스런 침레교인들이다.
오늘날 미국에만도 2.900만의 신자를 가진 최대의 교파인 침례교는 개혁 교회들 처럼 고정된 신앙고백이 없이 신자들이 계발된 신앙 양심에 따라 성경을 해석하고 확신한 바대로 살도록 권장하고 있어 새로운 진리에 대해 개방적이다. 기본적인 교리는 일반 개신교와 같지만. 그밖에도 (1)유아세레와 물을 뿌리는 세례를 비성경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신자(信者)의 물에 잠기는 침례만 을 인정하며, (2)회중제도의 교회 조직과 (3)국가와 교회의 완전 분리, (4)개인의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극도로 존중히 여기는 점들은 루터나 칼빈등이 추진한 개혁을 더욱 진전시켰음을 보여 줌과 동시에 그 근원에 제세레파의 신앙이 포함돼 있음도 분명히 하고 있다. 61 이러한 침례교의 근원으로부터 후에 종교개혁의 절정인 안식일 진리를 발견한 제칠일 침례교가 탄생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1611년 침례교라는 맏아들을 낳은 소수의 분리 주의 회중파 청교도들은 곧 이어 또 다른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다. 영국의 스크루비(Scrooby)에 살던 성실한 평신도인 브루스터(William Brewster)의 집에 모이며, 국교회 목사 였다가 개종한 경건한 지도자 로빈슨(John Robinson)목사의 지도를 받던 일단의 회중파 청교도 [회중교]들은 1609년 핍박을 피하여 홀랜드로 건너가 레이든 에 정착했다.62
그러나 거기서도 자녀 교육 등 생활의 안정이 어려워지자 신앙의 자유를 찾아 국왕도 없고 교황도 없는 땅인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갈 결심을 하고 영국으로 돌아왔다. 어려운 협상 끝에 1620년 9월 평신도 지도자 브루스타(Brewster)의 인도 아래 102명의 신자가 돛배인 메이플라워(Mayfliwer)호를 세내 여 위험한 항로인 대서양을 건너 11월 21일 마사츄세츠주의 플라머스(Pl-ymouth)항에 도착했다. 그들중 절반은 추위와 질병으로 첫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 갔는데 이들이 바로 미국의 건국 조상이 된 “필 그림 파아더즈”(Pilgrim Fathers)들이다. 회중교회가 신대륙에 출가시킨 위대한 맏딸이었다.
16세기 후반에 출현한 청교도들이 창조한 역사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들은 회중교와 침례교의 산모가 되었으며 신대륙에 이룩한 신앙과 양심의 요람인 미국을 건설한 조상을 낳은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청교도들은 “오래 황폐된 곳을 다시 세”우며, “역대의 파괴된 기초”인 안식일을 다시 “수축”(修築)하는(사58:12. 13)역군이 된 것이다.
청교도들은 진지한 성경 연구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언약을 중시하게 되었으며 율법은 언약임을 이해하게 되었다(출19:5.6). 그리고 그 언약의 내용인 십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언약 유지의 수단으로서, 선택이 아니라 의무임을 깨달았다.63 또한 인간의 죄된 본성은 율법을 기뻐하지 않지만(롬 7:19,20)성령으로 거듭난 마음은 율법에 순종함으로 속박이 아니라 참다운 자유를 누릴 수 있음도 깨달았다(약 2:12). 왜냐하면 십계명은, “애굽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출 20:2)후에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64
율법[십계명]을 언약의 내용으로 이해하게 되자, 언약을 보증하는 인(印)곧, “표징”이 되는 안식일의 의미와 중요성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출 31:13,16,17).65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헨리 8세 때 영국 교회가 로마 카톨릭에서 독립한 후, 자제의 예배 의식을 위한 기도서(litany)를 마련하면서였다. 대주교 크랜머(Cranmer)가 1549년과 1552년에 펴낸 [영국 국교회 기도서]에는 십계명이 포함돼 있었는데, 특히 넷째 계명인 안식일을 교창(交唱)할 때 성직자가 먼저 그것을 읽고나면 회중은, “이 율법에 우리의 마음을 기울이겠나이다”라고 응창(應唱)했다.
이렇게 응창하면서 청교도 조상다운 냉철한 지성과 예민한 신앙 양심이 깨우쳐졌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분명한 말씀을 따라 제칠일 안식일로 준수해야 함을 뜻하지 않는가?” “첫째 날인 일요일을 안식일 대신 준수하면서도 성경 말씀을 그대로 순종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러한 의문에 대해 기도 서를 펴낸 크랜머는 칼빈이 그랬던 것처럼, 안식일이 구태여 어느 특정한 날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애매한 대답을 내놓았다.66
그러나 엘리자벳 시대에 이르러 존재와 영향력이 뚜렷해진 청교도들은 진지한 성경 연구를 통하여 마침내 칼빈의 가르침처럼, 주일 중 하루가 특별히 거룩해서가 아니라 “교회 중에서 질서를 보존함에 필요한 방도로서 그 날을 지킨다”66는 해석이 성경에 어긋남을 깨달았다. 조상보다 나은 자손이 태어난 것이다.
이러한 확신은 청교도 지도자 바운드(Nicholas Bownd)의 저술과 가르침에 나타나 있다. 그는 사람이 범죄하기 전인 창조시에,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창 2:3)다는 말씀과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출 20:10)이라고 선언된 십계명의 내용을 상기시켰다. 그는 또한, “주님과 그의 사도들이 스스로 실천함으로 그 날을 일으켜 세웠”67음을 상기시키고, “만약 아담이 범죄 하기 전이라도 안식일이 필요로 했다면 죄로 잃어버린 바된 세상을 더욱 더 필요로 한다”68고 설파(說破)했다.
그리하여 청교도들은 일요일에는 칼빈의 가르침처럼 단순히 예배하는 데 편리한 아무 하루로서가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안식일처럼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거룩한 날로 믿고, 일요일에는 각종 오락을 금하고 속된 일을 삼가는 둥 성수(聖守)규정까지 마련했다.69 안타깝게도 그들은 인간의 전통에 따라 주일로 부르는 일요일이 성경에 명시된 제칠일 안식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보수적인 경건한 고신 계통의 장로교 신자들의 일요일 성수와 흡사하다. 그러나 자신들이 깨달은 만큼의 진리를 옹호하고 실천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 청교도들은, 개신교라는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계3:1)였던 종교개혁 시대를 나타낸 “사데[교회]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3:4)임에 틀림없다. 지금받은 빛과 진리에 충성하는 사람에게만 더 크고 온전한 빛과 진리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리하여 16세기의 청교도들은 칼빈의 한계를 벗어나. 회중교회를 통하여 그들의 가문을 잇는 또 다른 자손인 침례교에서 17세기에 참된 제칠일 안식일을 쉽사리 싹틔울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하였다.
7. 종교개혁의 진전과 안식일 회복
4세기이래 1천년 이상 중세의 암흑 속에 갇혔던 안식일 진리에 새벽을 가져다 준 것은 12세기에 일어난 왈덴스인들이었다. 13세기에 이르러 유럽의 22개국에 확신된 일부 왈덴스인들의 개혁의 숨결 속에서 이미 안식일의 모습이 나타났음을 역사가들은 확인하고 있다.70
이러한 역사는 청교도와 함께 침례교의 영적 조상이 되고 있는 16세기의 충성스럽고 철저했던 개혁자들이었던 재세례파에게서 한충 뚜렷해졌다. 성경만을 신조로 삼으며 유아세례를 비롯한 중세 카톨릭의 모든 의식과 전통을 철저히 배격한 재세례파 가운에는 안식일을 준수하는 무리들이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지도자들로는 카톨릭 사제였다가 루터의 개혁신앙으로 깨우침을 받고 재세례파에 연합한 글레이트(Oswald Glait)와 피숴(Andreas Fischer)부부였다.
다니엘서를 깊이 연구한 끝에 그들은 안식일이 변경될 수 없는 계명이었음을 깨달았고. 그것이 일요일로 바뀐 것은 다니엘서(7:25)에 예언된 대로, “때와 법의 변개”하고자 한 작은 뿔인 교황권에 의한 것임을 확신했다. 피숴는 이렇게 글로 증언 했다.
증언 피숴
“성경에는 안식일에 대하여 그토록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만약 일요일에 관하여도 그만큼 언급한 구절들이 있으면 나는 안식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겠다.71... 모세와 선지자들과 신약 성경은 십계명의 준수를 명령하고 있으므로 안식일도 포함해야 한다. 야고보나 바을에 의하여 율법이 언급되었을 때, 그 율법은 안식일을 포함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믿음은 율법을 세우기 때문에[롬3:31] 안식일도 세우는 것이다.”73
이러한 가르침은 당시의 로마 카톨릭이나 개신교 이란에게 모두 위협적인 것으로서 피숴부부는 1529년 즉시 이단으로 체포되어 부인은 산 채로 익사시켰고, 피숴는 1539년 성곽에서 떨어뜨려 죽였다 글레이트는 1546년 풀려나는 안식일의 광복을 위해 값비싼 희생을 치뤘다.74
마침내 아침이 밝아왔다. 일요일을 제칠일 안식일로 믿고 성수하는 등 받은 바 빛에 충실하며 최선껏 살아온 청교도들에게 참빗이 이르러 온 것이다. 국교회(聖公會)를 떠나 회중파 청교도 목사로 활약하던 트레스크(John Tra-ske . 1583-1636)는 1616년 런던의 「밀 야드」(Mill Yard)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던 중 그를 따르던 회중 가운데 한사람인 잭슨(Hamlet Jackson)에게서 제칠일 안식일 을 소개받고 상당수의 회중과 함께 안식일을 준수하게 되었다. 결과로 1617년 밀 야드 교회는 회중제도를 유지하며 유아세례를 부인하고 제칠일 안식일을 준수하는 최초의 제칠일 침례교(Seventh Day Baptists)가 된 것이다. 75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극히 중시하고, 각 사람이 성령의 인도로 계발된 양심을 따라 자유롭게 성경을 연구하고 스스로 의 믿음을 지켜 나가며. 신자에게 물에 잠기는 침례를 베푸는 등 정통 침례교의 모든 신조에 충실하면서 성경상의 제칠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제칠일 침례교야말로 침례교가 낳은 장한 맏아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단으로 고발된 트레스크 목사는 혹독한 고문과 해상 감옥에서의 고통을 견딜 수 없어 신념을 굽혔으나 그의 회중은 흩어지지 않았다. 그의 아내(Dorothy Traske)는 16년간의 옥고를 치르면서 참으로 고결한 신앙을 지키다가 옥사하고 말았다.76
역사의 기록에 남아 있는 밀 야드 제칠일 침례교의 두 번째 목사는 영국의 새 국왕, 제임스1세와 찰스1세와 2세의 궁중 의사였던 챔불린(Peter Chamberlin)이었다.77 제3대 목사는 제임스(John James)였는데, 그는 1661년 10월 19일 안식일 설교 중에 체포되어 다음달 26일 교수형에 처해진 뒤 목을 잘라 장대에 꽂은 뒤, 시무하던 밀 야드 교회 뜰에 전시하여 안식일 준수의 대가로 위협했다.78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선 (계12:17)사단의 분노가 표현된 것이다.
다음 해인 1662년 개혁 신앙 때문에 투옥되었던 국교회 목사 뱀필드(Francis Bampfield)는 개인적인 성경 연구 끝에 제칠일이 성경적인 안식일임을 깨닫고, 9년간의 복형기간 동안 계속 전도하여, “제칠일 침례교 도르체스터 감옥 교회”를 세우기에 이르렀다. 출감 후 또 다시 안식일을 가르친 죄목으로 세 차례나 투옥된 후 1684년 70세의 고령으로 춥고 습한 뉴게이트(Newgate)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79
순교자의 죽음은 언제나 진리의 씨앗이 되어 더욱 불어나게 마련이다. 뱀필드 목사가 목회하전던 교회로부터 나온 열성 있는 신자인 멈포드(Stephen Mumford)일어나 인식일 기별을 가지고 1664년 미국의 로드아일랜드로 건너갔다. 80 그는 그곳에 있는 침례교에 나가며 십계명의 불변성과 제칠일 안식일 준수를 열심히 가르친 결과 몇 명의 청교도 신자들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 곳의 침례교회마저 그들을 이단으로 규정하여 핍박하자 1671년 12월 23일 멈포드 내외를 비롯한 7명의 신자들이 거기서 나와 신앙 공동체의 언약을 맺고 신대륙에서 첫 번째가 되는 제칠일 침례교를 로드아일랜드의 뉴포트(Newport)에 세웠다. 마침내 신대륙에 안식일의 진리가 뿌리를 내린 것이다. 81
1802년에 9명의 목사와 10130명의 신자로 총회를 구성한 제칠일 침례교는 곧 일어날 초교파적인 재림 운동의 결과로 형성된 일단의 재림신자들에게 그들이 목숨을 바쳐 수호한 안식일 진리를 전달함으로써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의 출현을 뒷바라지 한 것은 16세기에 일어난 미완성의 종교개혁을 마무리하시라는 섭리였음이 구속의 역사에서 자명해진다.
8. 17, 18세기의 종교개혁의 진전
16세기 각국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은 초반에 기선(機先)을 잡는 듯 했으나 개혁자들이 예배의식, 성만찬, 예정론등 교리 문제에 이견을 드러내고, 재세레파에 대한 자체 핍박을 가하는 등 분파주의에 기울어져 중심을 잃고 있었다. 반면 개혁의 최기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로마 교황권은 잠시 자성(自省)의 빛을 보였으나, 재빨리 태도를 바꾸어 반(反)종교개혁(the Counter - Reformation)의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 일이 바로 1545년에서 1563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열린 역사적인 트렌트 종교회의(the Council of Trent)에서 이루어졌다. 이태리와 스페인의 강경론자들이 압도한 이 회의에서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한 면죄제도, 연옥, 화체설, 성자 및 유물 숭배동 모든 교리들은 재확인되었고, 전통(傳統)은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가진다는 결의와 함께 상당수의 외경(外經)이 인가되었다. 그리고 루터, 쯔윙글리. 칼빈등 개혁자들은 박멸되어야 할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82
이러한 종교회의의 결과를 행동으로 실천하도록 선택된 단체가 바로 스페인의 전상(戰傷) 퇴역 장교인 로욜라(Ignitions Loyala)가 성모 마리아에 대한 개인적인 충성을 다짐한 후 1534년 8월 15일 6명의 다른 회원 과 함께 창립한 예수회(the Society of Jesus)였다.83 “선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방법이 악해도 무방하다”84 는 위험한 도덕관에 기초하여 교황과 로마 카톨릭 교회를 위하여는 무슨 일이 든지 불사하겠다는 서약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들에 의하여 각처에 고등교육 기관이 설립되었고 개신교에 앞서 아시아. 남미. 캐나다 등지에 카톨릭 신앙을 성공적으로 전파했다.
로마 카톨릭교 회의 반종교개혁이 유럽과 신대륙, 아시아를 휩쓰는 동안 개신교에는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가?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지 백년이 못되어, 30년에 걸친 종교전쟁(1618-1648)을 치르는 동안 산만해진 루터교는 오직 성경만을 신앙의 전부로 삼겠다는 본래의 대의 명분을 망각하고 새로운 빛을 거절한 채 냉담한 형식주의에 빠져 영적으로 죽어 가고 있었다. 이에 경각심을 가지고 일어난 것이 루터교 목사였던 스패너(Philip Saner . 1635-1705)와 프랑케(A. H. Fran-cke . 1663-1727)교수가 독일의 할레(Halle)대학교를 중심으로 일으킨 경건주의(Pietism)부흥 운동이었다. 평신 자들이 중심이 된 소그룹 성경 연구와 기도회를 통하여 실생활의 경건을 강조하여, 각종 오락을 금하고 절제를 강조하여 당시의 편 만한 악을 견책했다. 단순한 예배 의식과 속죄의 필요를 강조하는 복음이 중심이 된 설교로 죽은 듯했던 교회에 새 생명이 넘쳐 들어왔다.
이러한 경건주의 부흥은 지적 기반의 결함으로 불행하게도 유럽을 휩쓴 파멸적인 영국의 자연신론 [이신론(理神論. Deism)과 대륙의 합리주의(合理主義)를 막지 못하고 휩쓸렸지만 경건주의의 중심지였던 할레(Halle)대학에서 교육받고 부흥을 체험한 독일 색슨(Saxony)출신의 루터교신자 진젠돌프(Zinzendorf. 1700-1760)백작이 그 결과로 1727년 모라비아교회(the Moravians)를 탄생시킴으로서 그 역사적 사명을 다했다.
진젠돌프 백작은 자신의 넓은 땅을 로마 카톨릭의 핍박으로 내어쫓긴 보헤미야인들과 모라비아인들, 그리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나선 개신교도들에게 피난처로 제공했다. 1727년 서로 주장이 다른 각 파의 신자들은 성령을 하나가 되게 하여 형제 연합(Unity of the Brethren)이라 부르는 모라비아 교회를 조직했다. 88 처음에는 6백명으로 시작한 이 작은 교회는 평신도 선교사를 양성하며, 1727년 8월 26일 부터 24시간 계속하는 기도를 백년간 계속했는데, 그후 150년간 2,170명의 선교사를 신대륙을 비롯하여 서인도 제도, 그린 랜드 등으로 파견하여 개신교로서는 최초로 세계 선교를 시작했다. 89 자신은 루터교인이면서 보헤미아의 개혁자 허스의 후예들인 보헤미아-모라비아 형제회 감독의 안수를 받고 모라비아 교회를 조직함으로써 루터교의 진수인 경건주의와 허스파 신앙의 진수인 보헤미아-모라비아 형제회 의 신앙이 진젠돌푸 감독에게서 결집되어, 루터교의 양자(養子)격인 모라비아 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90.
더욱 놀라운 사실은, 보헤미아에 거주했던 왈덴스인들(Bohemian Walden-ses)의 상당수가 14세기 이전에 사도 시대의 안식일을 지켰다는 것과 함께,91 보헤미아 형제회에도 안식일을 지키는 무리들이 있었는데, 이들과 접촉한 진젠돌프 감독이 1738년 이전부터 30년 가까이 제칠일을 안식일로 지켰다는 역사적 확증을 제공하고 있어,92 안식일이 그리스도인 신앙 양심의 시금석(試金石)이요 종교개혁의 극치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다.
진젠돌프 백작이 이끌어 간 경건하고 능력이 넘치는 모라비아 교회가 개신교에 끼친 영적 감화는 헤아릴 수가 없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John Wesley. 1703-91)의 회심이다. 당시 옥스퍼드 출신의 영국 국교회 신부였던 웨스리가 미국의 인디언을 위한 선교사로 부름 받아 동생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와 함께 대서양을 항해하던 중 심한 풍랑을 만나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대 배에 함께 탔던 모라비아 평신도 선교사들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에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
인디안 전도에 실패하고 돌아온 웨슬리는 자신의 진정한 회심을 위해 고민하던 중, 1738년 5월 24일 저녁 런던의 올더스게이트(Aldersgate)거리에 있는 모라비아 교회의 집회에 참석하여 마침내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마음으로 뜨겁게 체험하고 회심(回心)과 신생(新生)을 경험했다.
이리하여 성령으로 충만해진 웨슬리 형제와 친구 휫필드(George Whitefield)의 지칠 줄 모르는 헌신으로 영국은 일대 부흥을 경험했고 웨슬리 형제에 의하여 교회 역사를 바꾼 감리회가 조직되었다. 처음에는 모라비아 교회에 부속되었다가 1740년 최초의 자립 감리회 (The Methodist Society)가 런던에 형성되었다.93
웨스리가 감리회 운동을 일으킨 18세기 전반의 영국은 영적인 일대 위기를 겪고 있었다. 종교개혁의 진수였던 청교도 정신은 신대륙으로 자리를 옮기고 영국 국교 회는 생명이 없는 형식주의로 퇴화한 데다가 성직자들의 퇴폐는 극에 달했다. 94 남아 있던 장로교와 침례교는 개혁의 의지를 상실한 채,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정하는 유니테리안(Uniterian)신학에 잠식당하고 있었으며, 때마침 영국에서 일어나고 있던 자연신론(自然神論), 곧 하나님의 인간과 약사에서 분리시켜 불필요한 존재로 만든 파멸적인 철학 사조에 휩싸여 있었다 이것이 유럽 대륙에서는 무신론적인 계몽주의(the Enlighten-ment)로 나타났고, 인간 위주의 합리주의(Rationalim)로 발전하여,95 마침내 프랑스에서는 현대 무신론 탄생한 혁명으로 표현되었다. 18세기의 영국을 프랑스와 같은 무신론적 혁명에 서 벗어나게 한 것은 웨슬리의 감리회 운동에 힘입은 바 크다.96
웨슬리 형제가 이룩한 감리회는 대부분의 신조를 일반 개신교와 함께 하지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진리와 함께, ① 성령의 역사에 의한 중생(重生), 곧 성화(聖化)와 성결(聖潔)을 특히 강조했다. ② 웨슬리의 경험과 가르침에 따라 킬빈의 절대적인 예정론을 거부하고 아르미나우스의 예지 예정(豫知豫定)을 따르며 ③ 신자의 세례와 함께 유아세례도 인정하고, ④ 감독 제도의 교회 행정을 영위한다. ⑤ 칼빈주의 교회들처럼 다른 신조를 가진 사람들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일이 거의 없는 반면,97 현대에 글에서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크게 받아 본래의 성서적 신앙에서 크게 멀어진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중생과 성결을 강조해온 감리회로부터 다른 성결파 교회들이 나타났는데, 사회사업과 구제를 강조하는 구세군(救世軍)교회가 1865년 부드(William Booth)에 의해 설립되었고, 성화된 생애와 성령의 충만을 강조하며 물에 잠기는 침례와 세족 예식을 수행하는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가 몇 분파와 함께 19세기말에 나타났다. 98 1895년 미국에서 형성된 나사렛 교회(Church of Nazarene),99 1914년 역시 미국 [Arkansas] 에서 형성된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로 대표되는 오순절파 교회(Pentecostalism)들도 모드 웨슬리의 성결 운동과 침레교적 배경에 직접, 간접으로 근원을 둔 변형된 성결파 교회들이다.100
9. 19세기 종교개혁의 진전
종교개혁으로 치명상을 입었던 중세 카톨릭 교회가 제수잇(Jesuit)이 주도한 반(反)종교개혁으로 세계 각처에서 승승장구하는 동안, 개혁 신앙이 거의 죽어 가던 18세기 독일에서는 경건주의 부흥 운동이 일어났으며 결과로 1727년 세계 선교의 문을 연 모라비아 교회가 탄생했다. 그리고 청교도의 개혁 정신이 낡아져 버리고, 유니테리안(Unitarian)신조와 파멸적인 자연신론[理神論]마저 번져 형체만 남은 성공회는 물론 장로교와 침례교가 모두 개혁의 의지를 상실한 채 심각한 영적 침체에 빠졌던 18세기의 영국에서 101웨슬리 형제들이 일으킨 부흥 운동은 1740년 감리회를 탄생시켰으며, 같은 때 신대륙에서는 대 각성 운동(the Great Awakening)이 일어나 개신교의 일대 확장과 부흥을 초래했다. 102
그러나 같은 18세기에 무신론적인 합리주의에 노출된 프랑스는 영적 부흥 대신 1789년 공포와 유혈의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오히려 19세기를 휩쓴 무신론과 회의론의 요람이 되었다. 그것은 프랑스 지방의 요람이 되었다. 그것은 프랑스의 카톨릭 세력이 1545년 남 프랑스 지방의 왈덴스인들 4천여 명을 집단 학살하고103 1572년 8월 24일 성 바돌로매 제일(祭日)밤, 화해를 모색한 프랑스의 개신교도들인 위그노(Huguenots)들을 속임수로 모은 뒤 파리에서 2천명, 지방에서 2만 명을 무참히 학살한 사실과204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혁명 직전까지 계속된 비인도적인 핍박으로 대부분의 위그노들은 국외로 추방하는 등 개혁을 거부하고 신앙 양심을 짖밝은 행동의 열매를 거둔 것이 였다. 인간인 이성(理性)을 위주로 한 무신론적인 프랑스 정신을 바탕으로 한 근세(近世)의 시작인 19세기가 펼쳐지면서 1848년에는 칼맑스(Karl Marx)는 이념적 무신론인 공산주의 선언을 했고, 1859년에는 다윈 (charls Darwin)이 과학적 무신론인 진화론을 발표했다. 그리고 각각 1844년 태어난 벨하우센 (Julius Welhausen)은 성경의 영감을 부정하는 신학적인 무신론인 고등 비평(Higher Criticism)내놓았으며, 니체(Friedrich Nietzzsche)는 철학적인 무신론인 초인 주의(超人主義)를 소개하였다. 모두 성서 신앙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조들이 였다.
게다가 1848년 3월 31일 뉴욕주 하이데스빌 (Hydesville)의 외딴 곳에 있는 감리교인 존 폭스(John Fox)의 집에서 그의 두 딸과 죽은 사람의 영혼으로 위장한 사단의 거짓 영과의 영계(靈交)가 시작되어. 사단의 태고의 속임수인 영혼 불멸 신앙을 진실인 것처럼 위장한 현대의 심령 과학, 즉 강신술(降神術 . Spiriualism)까지 문을 열었다.105 바야흐로 면면이 이어온 성서 신앙은 세상과 교회 안팎으로부터 근본을 위협하는 일대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방금 종교개혁의 정신을 등져 버린 현대 신학 사조가 밀물처럼 교회에 넘쳐 들러 온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자유주의 적인 현대 신학 사조에 영향을 받지 않은 신학교와 교회가 있는가 둘러보라.
이 비상(非常)한 시기인 19세기에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대책을 강구하셨는가? “저희가 주의 법을 페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니이다.”(시119:126)
가 성경의 영감(靈感)과 역사성을 불신하는 파멸적인 현대 신학이 고등 비평에 맞서 이를 반증하는 성서 고고학의 열쇠인 고대 이집트의 상형 문자가 1822년에,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설형[쐐기]문자가 1847년에 각각 판독(判讀)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역사적 진실을 증거 하도록 “돌들이 소리지르게”(눅19:40)하셨다.
나. 1864년 세균의 아버지인 프랑스 학자인 파스테르(Lois Pasteur)는 실험을 통하여 기원전 4세기 희랍의 아리스토텔레스이래 믿어 온 생명의 자연발생설이 거짓임을 입증하고, 생명은 생명에의해서만 발생된다는 창조 신앙을 뒷받침했다.
다. 1865년에는 진화론이 비과학적임을 드러내는 멘델의 법칙이 발표되어, 다윈이 무질서한 것으로 관찰한 종(種)의 변이(變異)가 결코 전혀 새로운 종(種)을 만들어 낼 수 없도록 법칙에 의하여 통제되고 있음이 입증되었다.
라. 1804년에는 대영(大英)및 해외 성서공회가 발족되고 1816년에는 미국 성공회가 발족되어 세계 적인 성경 보급이 촉진됨으로써 개인적인 성경 연구, 특별히 예언에 관한 연구가 고조되었다.
1800년으로부터 1830년 사이에 다른 나라말로 번역된 성경의 수 (86개 말)는, 그 이전의 1800년 동안 번역된 수(71개 말)보다 더 많았다는 놀란 운 사실이다.106
마. 18세기 전 후반에 걸쳐 일어난 부흥과 대각 성은, 19세기에 이르러 세계 선교의 열정으로 이어져 온 세상에 복음이 급속히 전파되었다. 이 일을 위해 미국의 해외 선교 위원회가 조직되었고 (1810년)잇달아 회중교 총회(1810년)침례교 선교 연합회(1814년)장로회(1837년)등도 세계 선교를 위한 조직을 갖추었다. 107
바, 이러한 분위기에서 19세기초 미국을 비롯한 유럽, 남미, 아시아 등 복음이 전도된 세계 각 곳에서는 세상의 종말과 그리스도니 재림이 가까웠음을 알리는 재림 운동(the Advent Movement)이 일제히 일어났다. 영국에서는 웨이(Lewis Way)와 드루먼드(Henry Deummond)등이 일어 낫고, 독일 태생 유대인 울프(Joseph Wolff)는 8개국 언어를 구사하며 근동 지방과 중앙 아시아, 인도에 이르러 재림 기별을 전했고 1837년에는 미국 상원에 초빙되어 기별을 전했다. 108 스코틀랜드의 어빙(Edward Urving)과 커닝햄(William Cuninghame), 스위스의 가우센(Francois gausen), 독일의 리히터 (Johann Richter). 호주의 플레이 포드(Thomas Playford),특히 저술을 통해 스페인 과 남미에 재림 기별을 전한 전직 예수회 신부 라쿤자(Manuel de Lacunza), 미국 전역에서 10만 이상 이참 여한 재림 운동을 주도한 침례교 신자[ 후에 목사 가됨] 윌리암 밀러(William Miller)등은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온 세상에 전한 기수들이 였다.109
이러한 재림은 동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앞에서 언급되었듯이, 마지막 심판을 알리는 일곱째 나팔이 불기 적전에 (계11:15)있을 것으로 예언된 (계10장)숙명적인 운동(Movement of Destiny)이었다. 예언을 통하여 이들에게 주어진 다음의 기별은 근세를 시작한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발판을 굳힌 무신론 적인 합리주의 풍조가 넘쳐 온 세상과 교계에 얼마나 시의 적절한 하나님의 대응이었는가?
하나님의 대응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 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14:7)
18세기말 (1789-1799)의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정치적, 철학적, 종교적 발판을 굳힌 파멸적인 무신론적인 합리주의에 대한 하나님의 대응은 즉각 적이고도 단호한 것이었다. 10년간이나 계속된 프랑스 혁명의 결과로 정치적 구체제의 상징이었던 루이 16세 부처가 1793년 로마의 시스틴 성당에서 제위 23주년 기념식을 거행하던 중 프랑스 혁명 군사 정권에 의하여 체포되어 교황직은 박탈당하고 치욕적인 굴복을 당한 후, 그 이듬해 8월 29일 발렌스(Valence)감옥에서 옥사함으로써 중세 교황 권이 몰락함과 동시에 기나긴 중세기도 끝나고 근세사(近世史)로 접어든다.110
그것은 6세기(538년)교황 권의 확립으로부터 18세기(1798년)몰락까지 정확히 1798-538=1260년간의 기간으로써, 열 뿔 가진 짐승으로 상징된 로마제국(단 7:8, 23~25; 계12:2)을 이어서,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쓴 여인으로 상징된 하나님의 참 백성을 핍박한 중세 로마 교회를 정확하게 예언하고 잇다.(단 7:25 ; 계12: 6, 13).
그 동안 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종교 개혁으로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를 공동으로 개혁하려 나섰던 개신교는, 내분과 함께 카톨릭의 반(反)종교개혁 공세와 영국 등의 국교(國敎)정책 에 부딪혀 고전을 계속하다가 때 마침 개방된 신대륙 미국에서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받는 피난처를 찾았다. 이 사실에 관하여, 요한 계시록 12장은 중세 교회에 의한 1260년간의 핍박을 예언한 후에 (6, 14절),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16절)켰다는 정확한 예언을 구사하고 있다. 또 다시 계시록 13장은 여자를 도와 준 땅이 바로 “42개월”(계13:5)에 해당하는 중세기 1260년간 (42×30=1260일)활동하던 중세 교황 권의 몰락을 전후하여(계13:5-10), “땅에서 올라”온 “새끼 양같이 두뿐이 있”는 짐승으로 상징된 북미 합중국의 출현을 가리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예언이다.
역사상 최초의 개신교 국가인 미국이 이전의 다른 나라들처럼 (단7:2-7)맹수라 아닌 그리스도교 국인 “새끼 양”같은 나라로 상징된 것과, 기존 국가가 없는 신대륙인 “땅”에서 전쟁을 상징하는 “바람”도 없이 (단 7:2)올라올 것으로 묘사한 것과 함께,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혁명이 실제로 교호작용(交互作用)을 했다는 사실은 이 예언의 역사적 성취를 뚜렷하게 하고 있다 이렇게 예언에의하여 섭리된 나라 미국에서, 역시 계시록 10장에 예언된 재림 운동이 일어났으며, 그 결과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둘” (계12:17)이 출현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1800년대 초반에 신속히 보급된 성경과 미국을 중심으로 확신된 선교의 열정, 그리고 1800년에 1700만에 이르게 된 일대 변화는 111 미국 개신교 세력의 신속한 확장을 가져왔다. 1800년부터 1830년까지 30년동안 미국의 회중교,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는 110만의 신자가 증가하였고 특히 1826년부터 1830년동안 20만이 증가하였다. 112
바로 이러한 분위기에서 성경의 예언 연구에 몰두했던 미국 동부의 성실한 침례교 신자 윌리암 밀러(William Millier. 1782-1849)는 1816년 진정한 회심을 경험한 후, 113 더욱 깊은 성경 연구에 전념하였다, 1818년 그는 다니엘서 연구를 통하여, “2.300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8:14)는 말씀의 뜻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그 기간이 기원전 457년에 시작되어 1843년경에 끝나게 되며 그 때에 그리스도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이 이르게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성경과 역사에서 예언 해석의 근거와 타당성을 거듭 확인한 후, 그의 신념은 더욱 확고해졌으며, 1831년부터 그는 결딜수 없는 사명감을 가지고 말과 글로 그의 깨달음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즉시로 큰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1833년 그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격을 인정받아 침례교의 지방 목사로 인준을 받았으며, 1835년에는 초교파적으로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로서의 심임 서를 받았다.114 조직적이고 빈틈없는 다니엘서의 예언들에 기초한 밀러의 가르침은 각 교회들로부터 대대적인 호응을 얻어, 이름이 확인된 숫자만도 174명이나 되는 목사들이 재림 운동의 지도자로 참가했는데 감리교와 침례교 개혁 교회 퀘이커교 출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115 밀러는 이들과 함께 13년간 (1831-1844)지칠 줄 모르고 재림의 임박함을 전파한 결과 최고 13만 5천명으로 추산되는 재림 신자들의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116
그러나 그들이 거듭 확인했던 1844년 10월 22일에 그리스도께서는 재림하지 않으셨으며 그 결과는 예언된 대로,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서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계10:10)는 쓰디쓴 대실 망이었다. [자세한 배경과 해석은 전장의 성소 제도와 구속의 계획, 6, 7참조] 그러나 그것은 쓰디쓴 실망으로 끝날 성질의 우발적인 운동이 아니 였고,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백성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계10:11)는 숙명적인 운동 이였기 때문에 역사는 다시 계속되었다.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 때문에 빚어진 십자가에 대한 오해는 예수 님의 제자들로 하여금, 다니엘서의 70주에 관한 예언에 포함되어 연대까지도 정확히 알려진 (단9:25-27)진리요 수천년 동안을 가다려온 구속의 약속이 영광스럽게 이루어진 극적인 순간에 기쁨과 희망 대신 쓰라린 실망을 경험하게 했음에도 전 장에서 확인했다. 그리고 같은 다니엘서에 숫자로 표현된 2300주야에 관한 예언이 성취되었을 때에도 꼭 같은 경험이 똑같은 이유로 1844년의 재림을 기다렸던 신자들에게 일어났음도 확인했다. 십자가 사건으로 낙망한 제자들을 깨우쳐 다시 예언하게 하시려고 뒷수습에 친히 나서신 예수께서, 1844년의 대 실망 후에도 같은 일을 행하셨다.
인간은 자신의 지적 한계를 초과하는 기대 이상의 엄청난 사건에 부딪힐 때 언제나 충격과 시행착오를 통하여 진상을 깨닫고 교훈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지상 봉사의 중심 이였던 십자가 사건 때 그랬고, 천상 분사의 중심인 지성소 봉사가 시작될 때 또한 그랬다. 모두가 사건을 치른 후에야 그 진상을 깨닫게 된 것이다.
1844년의 대 실망으로 충격을 겪고 난 감리교 출신의 열렬한 재림 신자 에드슨(Hiram Edson)과 그의 친구 크로지어 (O. R. L. Crosier),의사였던 한(F. B. Hagn)등은 실망 직후부터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몇 달 동아의 성경 연구를 통하여 2300주야 끝인 1844년부터 하늘의 지성소에서 시작된 대속죄일 봉사의 진상을 깨닫게 되었다.117 그 때 그리스도께서는 세속적인 기대대로 지상으로 재림하신 것이 아니라, 재림 직적의 단계로서 나라와 백성을 받으시기 위해 지성소에 보좌를 차리신 (출 25:20-22)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신 것을 깨달았다.(단7:13, 14).
이제 그들은 십자가의 진상을 깨달은 예수 님의 제자들처럼, 실망한 이유를 찾게 되고 “다시 예언할”(계10:11)사연과 기별을 확신하게 되었다. 중세의 암흑에 가려졌던 하늘 성소에 관한 진리가 마침내 회복된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인도하신 성경 연구를 통하여 실망에서 벗어나 수치스럽게 여겼던 십자가를, 이제는 영광스러운 구속의 성취로 다시 가르친 제자들은 환영 대신 온갖 조소와 핍박을 겪어야 했다. 십자가의 영공과 승리를 “다시 예언해”던 스데반은 기성 종교인 유대교 지도자들에의해 즉시 이단으로 고소되었고 그들이 선동하여 던진 돌에 맞아 죽는 비극을 치렀다.(행7:54-60). 그들은 스데반 처럼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행7:55)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비극의 장본인들이 된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의 우편에서 대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깨닫고 바라보지 못하면 그 떼에 슬픈 역사를 다시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의 중추인 성소 제도를 통하여 드러난 엄숙한 심판과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구속의 완성인 그리스도의 재림을 오해하고 아래와 간이 무분별한 비평의 돌을 던지는 것은 얼마나 큰 손실이며 비극인가?
비 평 박 영관
“안식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분명히 믿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1차 재림은 1844년에 했고 지금은 이제 제2차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118
비평 김 순명
“저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였다고 확실히 믿기 때문에 재림 교파라고 한다. 예수 님의 1차 재림은 1844년에 했고 지금은 제2차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119
사실 이 무근(無根)한 이러한 비평들에 대해 변증하는 일조차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과거에] 재림하였다고 확실히 믿기 때문에” 재림 신자가 되었고, 또 다시 “제2차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 사람이, 성경을 알고 있는 재림 신자 중에는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씁쓸하게 일러줄 뿐이다.
하늘 성소에서 시작되는 대속죄일의 심판을 알리는 마지막 일곱째 나팔이 울리면서(계11:15)열려진 하늘 성전의 지성소에서, 요한 은 십계명의 두 돌 비가 보관된 언약 궤를 분명히 목도했다. (계11:19). 그리고 잇달아 12장에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그 여자의 남은 자손”(17절)의 출현을 확인했다. 이러한 예언이 어떻게 재림 운동을 통하여 이루어졌는가?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준수했고, 성경과 역사가 확인한 제칠일 안식일이 4세기이래 어떻게 유린되었고 종교개혁이래 어떻게 회복되었는지를 이미 앞서의 III장에서 낱낱이 밝힌바 있다. 종교개혁의 진전에 따라 중세 교회에의하여 짓밟혔던 구원의 진리들은 잇달아 회복되었어도, 배도의 세력에의하여 단단한 전통의 굴레가 씌워진 네째 계명인 제칠일 안식일의 회복은 가장 힘겹게 이르러 왔다. 왈덴스인→위클립→허스→루터와 재세레파→개혁[장로]교→[청교도]→회중교→침례교→제칠일 침례교로 이어지는 종교개혁의 정통적인 진로를 따라 힘겹게 회복된 제칠일 안식일이, 마침내 1800년대에 일어난 재림 운동에 합류하게 된다.
1844년의 실망이 있기 전인 1844년 3월 제칠일 안식일 침례 교인인 라헬 오우크스(Rachel Oakes)부인이 제칠일 안식일에 관한 진리를 재림 운동에 참가한 감리교 목사 휠러(Frederick Wheeler)에게 전함으로써 안식일 을 지키는 최초의 재림 교회가 뉴햄프셔 주에 출현했다.120 프레블 목사의 안식일 에 관한 기사를 읽은 재림 운동의 또 다른 지도자 죠셉 베이츠(Joseph Bates)는 즉시로 확실한 전리를 받아들였으며, 이를 출판물을 통해 광범위하게 선포하기 시작했다. 성경에 기초한 확신으로 가득찬 그의 가르침으로 재림 운동의 또 다른 지도자였던 제임스 화잇(Jsmes White)내외와 하늘의 지성소 봉사를 가장 먼저 깨달은 에드슨(Hiram Edson)이 1846년에 안식일 진리를 받아들였다.122 이리하여 일곱째 나팔이 물 대에 하늘 성전의 지성소가 열리고 십계명이 보관된 언약 궤가 공개된 장면처럼(계11:17), 재림 운동을 통하여 밝혀진 하늘 성소의 진리와 회복된 안식일의 진리가 극적으로 합류하게 된다.
재림 운동과 예언의 은사의 회복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그 아침에 오히려 슬픔에 잠겨 무덤을 찾아왔던 젊은 여인, 보잘것은 업으나 참으로 주님을 사랑했던 막다라 마리아에게 주님은 친히 나타나셔서 부활을 확증시키시고, 낙망한 제자들에게 보고들은 것은 전하라는 메신저(使者)의 직분을 주셨었다. 1844년 실망 직후 주님은 보잘것은 없었으나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고대했던 감리교 출신의 재림 신자로, 결혼 후에는 엘렌 화잇(Ellen G. White)으로 불린 엘렌 하몬(Ellen Hamon)양에게 꼭 같은 일을 하셨다.
전장에서 언급했듯이 그것은 신약 시대의 교회를 세우며 온전하게 하기 위하여 약속하신 성령의 은사 가운데 선지자와 예언의 은사였다. (고전14:1-5 ; 엡4:8-12). “모세와 선지자”(눅16:29-31), 곧“[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증거와 말씀”(사8:20)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을 인도해 오신 하나님께서는 (롬3:21), 마지막 대에도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계12:17)를 통하여 남은 백성을 인도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다.
특별히 “예수의 증거는 대언[prophecy. 예언]의 영[the Spirit. 성령]이 라”(계19:11)는 천사의 확인을 통하여,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께로 부터 받은 기별을 백성에게 전달하는(계1:1)선지자의 직분(계22:9),곧 “예언의 은사”(the gift of prophecy)임을 재확인하게 된다.(고전12:10 ; 엡 4:11 ; 요15:26), 실제로 신약 시대의 교회에 선지자와 예언의 은사를 받은 여러 사람들이 일어나 필요한 때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일에 힘쓴 사실은 이를 명백히 입증하고 있다.(행11:27, 13:1, 15:32., 21:10).
이리하여 구속의 역사를 매듭짓는 대속죄일의 봉사가 시작된 2300주야의 끝(단8:14)이 이른 1844년을 계기로, 중세기 이래 가려지고 짓밟혀 온 하늘의 성소가 회복되고(계13:5,6)중세 로마교회의 배도에 의하여 일요일로 대치되었던 안식일이 그날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로 마침내 되돌아옴으로써(막2:28; 마12:8) 오랫동안 황폐되었던 진리의 터가 복구된 것이다(사56:1,2, 58:12-14). 그리고 사도 교회 시대이래 끊겨졌던 예언의 은사가 마지막 시대의 백성을 위하여 약속된 대로 (계12:17, 19:10)온전히 회복되어 이 무든 것이 한데 융합(融合)된 것은 얼마나 놀라운 예언의 성취인가? 이러한 융합이 가능하도록 개혁과 회복의 용광로가 된 것이 곧 재림운동 이었음이 역사에서 자명해진다.
마지막 교회의 산실
수난 주일 첫날, 예수께서 왕의 개선을 상징하는(슥9:9)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제 막 이 땅에 수립되는 것으로 오해한 제자들과 군중들의 기대는 산산이 깨뜨려졌으며 구름처럼 몰려들었던 대중은 순식간에 흩어졌고 제자들은 깊은 낙망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뒷수습에 나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는 낙망에 빠진 보잘것없는 십여 명의 제자들과 몇 여인들에게 몇차레나 나타나셨으며 또 친히 성경을 가르치심으로 십자가의 진상을 밝히시고 부활의 확신을 주신 후에 온 세상에 다시 복음을 전파해야 할 위대한 사명을 위임하셨다(마28:16-20). 그리하여 십자가 사건으로 실망한 지 오십 여일, 승천하신 지 십여 일만에, 부녀들을 포함한 120명의 무리가 모인 예루살렘의 자그마한 다락방에서는 인류를 위한 구속의 역사를 이루고 세상의 운명을 바꾼 그리스도의 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행1:12-15, 2:1-5)
흡사한 역사가 십자가로 이루어진 구속을 마무리 짓는 온 세상의 대속죄일이 시작된 1844년의 대실 망 후에 재연되었다. 재림을 기대하던 10여 만 명의 재림 신자들이 대 실망과 함께 흩어진 후 성령께서 인도하신 성경 연구를 통하여 하늘 지성소 봉사의 진상을 깨닫게 된 소수의 재림 신자들은 다시 모였으며, 1848년 한해 동안에 여섯차레, 1849년에 여섯 차례, 그리고 1850년에 는 열 차례나 다락방의 모임을 밤을 샌 기도와 성경 연구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하여 중세기 1260년 기간이 지난 후 (단 12:7)입에는 꿀 같이 달았으나 배에서는 쓰게 되는 영적인 경험을 거치면서 (계10:10), 하늘 성전의 지성소 봉사가 시작되는 때쯤에 (계11:19)나타날 것으로 예언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계12:17)의 탄생을 위한 산실(産室)이 마련된 것이다.
각각 다른 교파의 배경과 신앙 경험을 가진 50명 안팎의 재림 신자들이 모였던 이 모임들에서,123 그들은 대 제사장 이신 그리스도 께서 하늘의 지성소에서 수행하고 계시는 대속죄일의 봉사를 확인했으며, 제칠일 이 성경만을 신앙의 기준으로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유일하고 참된 안식일임을 재확인했다. 아울러 엘렌지 화잇을 통하여 주신 말씀의 빛이, “율법과 증거의 말씀”(사 8:20)에 일치한 예언의 은사인 것도 확신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모임에서 는 종교개혁의 진전에 따라 출현한 모든 개신 교회들의 입장이 성경의 빛 가운데 철저히 검토되고 수용되었다. 실제로 1848년 붐부터 열린 일련의 성경 연구 대회(Sabbath Conferences)의 결과로 124 1860년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Seventh-day Adventist)의 명칭을 채택하고, 1863년에 22명의 안수 목사와 8명의 전도자, 3.500명의 신자로 「대총회」(Ge-neral Comfernce)를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125 이들 재림 운동의 후예들은 실제로 모든 개신 교회들을 대표하고 있었다.126 그동안 두터운 장벽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나누어 놓았던 교파적인 편견은 재림 개별의 열정과 잇달은 대 실망의 총격으로 모두 녹아지고 무너져, 교파라는 것이 성경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데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 결과로 응고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는 어떠한 성서적 신앙을 결집(結集)하게 되었는가?
실제로 윌리암밀러의 재림 운동으로부터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가 형성되기까지, 그 이름이 알려진 숫자만도 174명의 개신교 목사들이 재림 운동에 참여했음을 언급했거니와 이보다 훨씬 많은 평신도 지도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신학적 구성과 역사적 과정을 거처서 교회가 탄생한 경우가 일찍이 있었는가? 그것은 참으로 16세기 종교개혁이래 개혁자들과 그들의 개혁을 이어받은 각 교파들이 단편적으로 발견하고 회복한 성서적 신앙을 한 데 묶어 녹여, 마침내 종교개혁을 마무리 짓고 완성시키시려는 하나님이 섭리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인 제칠일 안식일 예수제림교회는 마침내 어떠한 성서적 기본 신앙을 가지기에 이르렀는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의 27개 사항의 공식적인 신앙 내용은 127 성경에 그 전말(顚末)이 구체적으로 예언된 재림 운동에 의하여, 16세기이래 진행되어 온 종교개혁이 드디어 집대성(集大成)되어 마무리 지어졌음을 보여준다. 종교개혁의 어떠한 유산들이 결집되어 있는가?
다음은 재림 운동을 통하여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에 전수된 종교개혁의 유산과 그 여부(與否)를 본서에서 제시한 논증을 근거로 정리한 것이다.
?루터를 비롯한 개핵자들의 가르침에 일치하게,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신, 구약 성경을 절대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며 교회의 전통이 아니라 오직 성경 만이(Sola scriptura)신앙과 실천의 유일한 규범임을 믿는다.
?루터를 비롯한 개혁자들처럼, 사람의 구원은 인간의 행위나 공덕(功德)에 의하여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sola gratia)로 말미암는 선물임을 믿는다. 이러한 구원의 경험은 성령께서 말씀을 통하여 역사 하심으로써, 예수를 주(Lord)와 그리스도(Christ)로, 죄인을 위한 대속주(代贖主)와 온전히 본받아야 할 모본으로 믿는 믿음(sola fides)에 의하여 가능하게 된다.
?왈덴스인들과 위클립이 밝혔고 루터가 재 천명한 것처럼, 인간의 행위나 교회가 제공하는 공덕 대신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중세 교회가 주장한 전통(傳統)대신 성경을, 교권(敎權)대신 그리스도를 교회의 유일한 머리로 인정한다. 만인 사제직을 제창하며 루터나 틴데일의 가르침처럼, 연옥 교리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고대 이집트와 헬라의 사상인 영혼의 불멸을 성서적 신앙으로 믿지 않으며, 신, 구약 성경, 특별히 그리스도의 가르치심과 부활로 입증된 조건적 불멸과 부할 신앙을 확신한다. 그러나 종세교회의 미사제도로 부터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루터의 어중간한 예배 의식과 성만찬에서의 성체 공존설, 의와 심판의 표준인 율법의 복음적 기능에 대한 경시 등은 그가 처한 세대적 제한 을 고려함으로써 이해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중세 카톨릭과 루터, 칼빈 등 개혁자들에 게 다 같이 가혹한 핍박을 받은 재세레파의 개혁 신앙이 일부에서 극단적이고 신비적인 경항을 드러내어 물의를 일으킨 바는 있지만, 성서 신앙의 회복을 위한 대다수의 건전한 제세레파의 기여는 지대한 것으로 평가한다. 신앙의 유리한 근거로 삼은 성경의 열심 있는 연고와 실천적인 경건을 강조한 것, 정치와 종교의 철저한 분리를 주장한 것. 유아세레를 비성경적인 것으로 부정하고 성인(成人)신자의 세례를 가르친 것, 죽음의 무의식적인 상태와 보활 신앙,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옹호한 것과 핍박 자들에 대한 관용, 평화 애호,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재림을 강조하고 고대한 그들의 신앙은128 개신 교회가 받아들여야 할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으로 믿는다.
?루터와 함께 종교개혁의 양대 주류를 이룬 칼빈의 역할을 개혁의 과정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높이 평가한다 루터의 개혁의 계승하고 보완하면서 하나님의 주권(主權)을 강조하고, 성서 위주의 철저한 신앙과 그 권위에 복종할 것을 가르친 성서적 신앙,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본질과 의의 표준이 되는 율법의 기능을 균형 있게 가르친 것, 성서적인 개신교 예배의 확립, 상징으로서의 성만찬의 영적 의미를 강조한 것, 장로 제도를 확립한 교회 조직과 개신교 교육제도의 기반을 놓은 일 등은 개신교의 신앙과 구성에 참으로 요긴한 요소들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치우체게 강조한 결과로 신학과 신앙의 조화를 상실하게 한 칼빈의 이중 예정, 제한된 속죄, 무조건적인 선택, 불가항력적인 은혜 등은 성경과 인간의 경험에 어긋나는 것으로 판단한다. 웨슬리에 의하여 순화된 아르미니우스의 가르침을,보다 성서적인 것으로 이해하며, 칼빈이 취한 배타적인 입장 대신 성경에 일치한 여러 원칙들을 합당하게 선별(選別)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믿는다.
?칼빈은 십계명의 복음적 기능을 바르게 이해하고 이를 하나님의 의의 표준으로 적절히 제시했다. 그러나 유독 넷째 계명인 안식일에 대해서는 “교회 중에서 질서를 보존하는 ” 방편으로, “이레에 한번씩 모”이는 편리한 날 정도로 가르친 것은 성서 신앙에 전적으로 어긋나는 임의적인 해석이다. 결과적으로, 안식일은 일주일 중 아무 날이나 될 수 있다는 왜곡된 신앙을 일반 신자들로 갖게 한 것은 그의 성서 주의 신앙이 지닌 일대 모순으로 판단한다.
?아울러 칼빈이 어거스틴의 영향을 크게 받은 운명론적인 예정설을 제창하고 플라톤을 통하여 소개된 중세 교회의 영혼 불멸 사상을 개혁 교회의 신앙으로 전수시킨 것과 개신교의 연옥에 해당하는 중간 상태(Intermediate State)의 개념을 소개한 것은 개혁 신앙의 진전에 크나큰 부담을 남긴 것으로 밝힌다. 또한 신학이나 신앙에 서 이설(異說)이나 이견을 가진 사람들을 화형과 추방등 혹독한 방법으로 대응한 것에 동의하지 않으며, 제네바의 신정(神政)에서 보여진 바와 같은 정교(政敎)의 관계는 신약 성경의 교회 관에 크게 어긋나는 것으로 간주한다.
루터를 이어 종교개혁을 진전시킨 칼빈의 역할은 필수적이 였지만, 루터와 마찬가지로 그도 종세교회의 영적 오염으로부터 단번에 모든 것을 벗어날 수는 없었던 “그 시대의 아들” 로서의 한계는 이해한다. 그러나 비성서적인 가르침은 밝혀진 빛에 의하여 철두철미하게 교정되고 보완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회중파 청교도들이 보여준 바 성경에 일치한 철저한 신앙과 경건한 생활. 성령의 지배를 받는 개인의 양심과 판단에 따른 자유로운 신앙과 성경 해석, 정교(政敎)의 철저한 분리 원칙들을 성서적 신앙으로 받아들인다.
?회중파 청교도로부터 성립된 침례교 개혁자들이 가르친 대로, 유아세레는 비 성경 적인 의식으로 돌리며, 오직 신자(信者)인 성인(成人)이 물에 잠기는 침례(浸禮)만을 성경이 인정하는 참된 거듭남의 의식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침례교의 영적 뿌리가 되고 있는 재세레파의 메노나이트 신자들이 실천한 바, 요한 복음 13장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모본에 따라 성찬식 전에 서로의 발을 씻기는 세족(洗足)예식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행하여야 할 합당한 의식으로 받아들인다.
?웨슬리 형제가 성결 운동을 통하여 깨우친 중생(重生)과 성화(聖化)에 관한 강조와 예정에 관한 아르미니우스 가르침을 받아들여 이를 진전시키고 체험하게 한 사실은 성서 신앙의 소중한 유산으로서 더욱 강조되어야 할 그리스도인 의 경험임을 확인한다. 감리회운동의 지엽(枝葉)인 구세군의 자선과 사회 봉사는 “사랑으로 역사하는믿음” 의 열매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실천해야 할 덕성으로 받아들인다.
?감리회 운동에 불을 붙인 모라비아 향제회의 세계 선교의 이상과 열정은, “모든 족속” 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위대한 사명(마28:19)을 실천한 본보기로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계14:6)진 남은 백성의 귀감으로 받아들인다.
?마침내 왈덴스인과 재세레파, 모라비아 형제 회와 회중파 청교도의 맥락을 타고 집대성된 침례교의 개혁 신앙에서 돋아난 제칠일 안식일의 회복은, 종교개혁을 마무리짓는 성서 신앙이 가장 순수한 결정(結晶)이며 가장 성숙된 결과(結果)로 확신한다.
이와 같은 재림 운동의 과정의 비유하건대 완전히 순수하지는 못하지만 귀중한 광물질(鑛物質)이 섞인 광석(鑛石)을 융합(融合)시켜서 한 덩이로 만드는 용광로의 역할을 한 것이다. 그 시대의 신앙 분위기를 호흡해야 했기 때문에 단번에 완전할 수 없었던 개혁자들의 단편적 인 개혁의 진리가 재림 운동을 통하여 한데 녹여지고, 중세 교회의 배도(背道)에 의한 성서 신앙의 불순물이 제거됨으로써 마침내 종교개혁이 마무리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처 출현한 것이,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계12:17)이며, 그들의 특성이, “성도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계14:12)로 적절히 표현된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 으로 요약된 구속의 역사를 종결짓는 성도의 이러한 신앙은 제일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의 독자적인 창안이나 산물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遺産)이며 결산(決算)인 것이다. 그것은 중세의 교권(敎權)과 속권(俗權)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고 손상된 성서 신앙의 회복은 위해 고난과 희생을 치르고 끝내는 불에 사루어지고 물에 던져지며, 칼에 목베임을 당한 수십만, 수백만 성도들의 회생의 대가인 것이다.
이 위대한 구원의 신앙을 회복시켜 유산으로 물려주기 위해 개혁자들이 당한 고난과 희생을 돌이켜 볼 때, 회복된 진리 하나 하나가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치러진 그 엄청난 희생을 헛되게 하지 말아야 할 부담과 책임을 아울러 절감한다. 그러한 대가를 치름으로써 회복된 성경의 진리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거기서 일치하게 살아가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 인의 마땅한 도리요 특권인 것이다.
그리하여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는 개혁자들과 그들의 신앙을 보존해 온 신앙 공동체들이 물려준 귀중한 유산을 빚진 마음으로 받아들여, 아래와 같이 종교개혁을 결집시킨다.
?루터의 개혁의 핵심인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의 개혁 신앙을 실천하며, 교회의 머리로서 오직 그리스도만을 인정하고 조건적 불멸과 부활 신앙을 받아들인다.
?제세레파 개혁의 유산 인 성인(成人)신자의 침례, 정교 분리(政敎分離), 신앙과 양심의 자유 수호, 죽은 자의 무의식, 재림을 고대하는 그리스도 인의 경건한 생활, 평화 애호의 신앙을 받아들여 실천한다.
?메노나이트 재세레파의 세족 예식을 성서적 의식으로 받아들이며, 그들의 열성적인 평화 애호 신앙에 입각한 의료 봉사를 본받으며, 나아가 심령의 성결과 함께 육신의 성결을 위한 건강 생활을 위한 성경 적인 위생 법칙과 금주, 금연 등 모든 분야의 절제를 강조한다.
?칼빈의 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성경 적인 예배, 성경의 권위에 대한 절대복종, 율법의 복음적 기능, 장로 제도들을 확인하며 수용한다.
?회중파 청교도[ 회중교]들의 값진 유산 인 성경에 일치한 신앙과 경건한 생활, 정교 분리, 성령의 지배를 받는 신앙 양심을 존중하며 실천한다.
?침례교의 유산인 성인(成人)의 물에 잠기는 침례(浸禮)를 실천하고, 회중의 교회 행정 참여를 대의제(代議制)를 통하여 반영한다. 특히 윌리암밀러 등 침례교 재림 운동의 지도자들에 대한 큰 빚을 언제나 상기하며, 성경에 입각한 속죄와 인간 의지의 기능을 정립한 일반 침례교(General Baptist)와 자유의지 침례교(Free Will Baptist)의 유산을 존중한다.
?제칠일 침례교의 값비싼 유산인 제칠일 안식일과 함께 물에 잠기는 신자의 침례를 그대로 실천한다.
?웨슬리의 감리회 운동의 유산인 중생과 성결을 필수적인 구원의 진리로 받아들이며, 성령의 사역 강조와 칼빈의 모순된 예정론을 성서적 신앙으로 대웅한것에 동감하며, 엘렌화잇. 하이람 에드슨 등 성서적 신앙이 철두철미한 지도자들을 공급 한데 대한 큰 빚을 실감하고 있다.
?구세군의 구호 봉사와 자선사업을 통한 사회 참여를 본받는다.
?모라비아 형제회 의 선교 신앙을 받아들여 지역의 제한이 없는 세게 선교 사업을 추진한다.
?사도 시대이래, 중세 교회를 거쳐 정통 개혁 신앙으로 이어진 바, 하나의 통일체(unity)이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三位)께서 영원히 함께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종교개혁을 마무리짓는 재림 운동의 유산 을 성서적으로 받아들여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대속죄일 봉사를 확신하며, 지성소 봉사의 종결과 함께, 공개적으로 단번에 있게 될 그리스도의 재림을 인류의 마지막이고 유일한 소망으로 확신한다.
?구속의 역사를 종결시키기 위하여 일으키신 재림 운동을 인도하기 위하여, 주시기로 약속하신 예언의 은사를 남은 교회에 주신 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예언된 대로 복음의 확실한 승리와 구속의 신속하고도 영광스러운 종결을 확신한다.
이 얼마나 놀라운 종교개혁 결산인가?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성서 진리의 모자이크 작품인가? 4세기이래 깊어만 지던 배교의 골짜기, 16세기이래 의 종교개혁으로 조금씩 조금씩 메워져 온 그 깊게 패인 배도의 골짜기가 감격스럽게도 다시 메워져, 마침내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맞이할 수 있는 왕의 대로(大路), 곧, “킹스 하이웨이”(The King s Hghway)가 마련되지 않았는가? 이러한 왕의 대로를 수축(修築)하는 일이 진정한 안식일의 회복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은 얼마나 이미 심장 한가?
“네게서 날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修補)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修築)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만일 안식일에 네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 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기 여호와의 안 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기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조상 야곱의 업(業)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이 말이니라”(사58:12-14).
본문이 기록된 이사야 58장은 참다운 신앙의 개혁과 부흥을 촉구하는 강력 한기별, 곧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같이 날려 내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사58:1)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사람에게 드러내기 위한 외형적이고 위선적인 신앙을 행사하지 말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내면적이고 진실한 신앙의 부흥을 촉구하고 있다. 바벨론의 포로에서 벗어나게 될 백성들은 오랜 세월 동안 무너진 채로 남아 있던 예루살렘 성의 기초를 다시 쌓아 복구해야 했다.(사53:12)
마찬가지로, 바벨론의 포로 기간 동안 짓밟혀 무너지고 잊혀졌던 옛 신앙, 곧 진정한 신앙의 기초인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명시한 안식일의 신속하고도 철저한 회복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사53:13. 14). 그것이 바로 영적인 바벨론의 통치로 비교된 중세기 동안 유린되고 훼손된 하나님의 계명과 하늘의 성소를 (계13:5,6)다시 회복하여야 할 마지막 날의 성도,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계14:12)의 특권과 사명인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살펴본 그리스도교 역사의 증언이요, 이제 곧 종결에 이르게 될 구속 사의 절정(絶頂)인 것이다.
11. 요약과 결론
역사의 증언
지금까지 거의 2천년에 걸쳐 진행된 교회사(敎會史)의 진행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역사의 조명(照明)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이의 없이 도달하게 된 이해와 결론은 무엇인가?
첫째로, 4세기에 정치적, 종교적 기초가 놓이고 6세기부터 정식 출범한 중세 교회는 다니엘서와(단7:25, 8:10-12, 11:31-40) 요한 계시록에(12:6, 13-15, 13:5-9) 정확히 예언되었고, 사도 바울도 생생하고 분명하게 예고한 (살후3:3-7) 배도(背道)의 세력이었음을 성경과 역사에서 확인하게 되었다.
둘째로,12세기부터 태동했고 16세기에 폭발된 종교개혁은 중세 교회의 극(極)에 달한 배도와 타락에 대하여 신앙 양심과 성서 신앙이 일으킨 당연한 반응이며,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친히 이끄신 개혁 운동이었음을 동시에 확인하였다.
셋째로, 중세 교회의 배도가 1천년 이상이나 계속된 뒤에 일어난 16세기의 종교개혁은 겨우 개혁의 시작이었지 개혁의 완성이 결코 아니였음을 상식으로도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16세기 종교개혁의 기수들이었던 루터,쯔잉글리, 재세레파, 칼빈등의 개혁 역시, 위기를 당한 구원의 신앙을 회복하기 위한 위대한 시작이었지 찬란한 완성이 아니었음도 명백해졌다. 따라서 16세기의 종교개혁은 불가불 완성을 향하여 계속적으로 진행(進行)되고 발전(發展)되어야 할 성질의 운동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개혁의 진전과 함께 새롭게 밝혀진 진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를 거절한 채, 16세기적인 형상에 고착돼 버리는 것은 종교개혁의 정신과 목적에 전적으로 어긋나는 또 하나의 반(反)종교개혁이다. 이러한 사실은 최초의 분리 주의 청교도로 회증교 목사였던 로빈슨(John Robinson)이 1620년 자신이 목숨을 바쳐 목양하던 일단의 신자들을 메이프라워호에 태워 신대륙 미국으로 뗘나보내던 때의 고별 설교에 잘 드러나 있다.
증언 로빈슨
“저로서는 개혁 교회들의 상태에 대해 참으로 비탄을 금치 못합니다. 그들을 한 때는 신앙적이었지만, 현재는 그들의 개혁자들 이상으로 더 나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루터교 신자들도 루터가 깨달은 것 이상을 넘어설 수가 없고....칼빈주의 신자들도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모든 것을 깨닫지는 못한 사람[칼빈]에 의하여 이르게 된 자리에 단단히 고착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슬퍼해야 할 불행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그들[개혁자들]이 그 당시에는 타면서 빛을 발한 빛이었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속속들이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 살아있다면, 그들이 처음에 빛을 받아들였던 것처럼 그 이상의 빛도 기꺼이 받아 였을 것입니다.” 129
넷째로, 살펴본 종교개혁의 역사에서 분명히 드러났듯이, 16세기에 일어난 루터나 쯔윙글리, 재세래파, 칼빈등의 개혁이 결코 완전하지 않았을 뿐더러 완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리를 고수(固守)한다는 명분으로 그것을 현상태로 고착(固着)시키는 것은 건전한 성서 신앙이 아니라 한낱 종교적 아집(我執)이 되고 만다.
그것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하시고 이제는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엡4:13, 14)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도 전적으로 어긋나는 신앙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6세기 이후의 개신 교회가 바로 이러한 현상에 고착되었음을 불가불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현실이다, 장로교가 로마 카톨릭교로부터 분리되어 나온데 대해 신학자 거트리(Thomas Guthrie)박사는 강한 부정을 표시하고 있다.
증언 거트리
“3백년 전에 우리 교회는 펼쳐진 성경을 근거로 삼고, ‘성경을 탐구하라’는 표어를 내걸고 로마교의 문들로부터 행군하여 나왔다. 그러나 그들이 바벨론으로 부터 말끔히 나왔는가?”130
칼빈주의 회중교 신학자인 홉킨스(Samuel Hopkins)박사는 「천년기」에 관한 그의 논문에서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증언 홉킨스
“적 그리스도적인 정신과 행사가 지금 로마교라고 불리는 교회에만 국한되어 있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개신 교회들도 자체 안에 적 그리스도의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으며... 부패함과 죄악됨에서 온전히 개혁된 것과는 먼 거리가 있다.”131
점진적인 개혁
종교개혁의 역사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은, 중세 교회의 배도(背道)에서 돌이켜 구원에 필수적인 성서 신앙을 회복하는 일은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단계적(段階的) 이고 점진적(漸進的)인 과정을 통하여 발전(發展)되어 나아갔다는 사실이다.
가. 12세기 왈덴스인들의 개혁은 위클립을 거쳐 허스와 제롬에게로 이어졌고, 이것은 다시 보헤미야. 모라비아 개혁자들을 통해 진젠돌프 백작에게 전달되어 모라비아 교회를 탄생시켰다, 모라비아 신자들의 영향으로 회심한 요한 웨슬리에 의해 감리교가 구성되었음은 주지의 사실 이다 모라비아 교화가 개신교 세게 선교에 끼친 영향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나. 루터의 종교개혁도 칼빈을 비롯한 당대의 개혁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깨지고, 17세기 말 독일에서 일어난 경건 운동으로 정화(淨化)되면서 진젠돌프 백작을 통해 모라비아 교회를 탄생시키는 일에 기여했다.
다. 그레벨, 만쯔등에 의해 추진된 재세레파의 개혁도 홀렌드에서의 메노나이트의 개혁 운동으로 정립(定立)된 후에 당시 거기에 피난와있던 회중파 청교도들에게 깊은 감화를 끼쳐 침례교의 교리적 기초를 놓는 일에 기여했다.
라. 기초적인 단계에서 루터의 영향을 크게 받은 칼빈의 개혁은 영국의 칼빈주의 개혁자들인 청교도에 의하여 재세레파의 신앙이 첨가된 침례교가 형성된 것은 참으로 놀라운 개혁의 지닌 것이다. 19세기 미국의 재림 운동을 지도한 윌리암 밀러 자신도 침례 교인이었다. 이처럼 그 이전이 어느 교회보다도 성서 신앙이 급진전한 침례교의 성서 신앙에서 다시 진일보(進一步)한 제칠일 침례교(Seventh Day Baptists)가 탄생하여 4세기이래 짓밟혀 온 성경의 올바른 안식일을 회복시킨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세계 비교 종교 학계의 권위인 옥스퍼드 대학 출간의 「세계 그리스도교 백과」(World Christian Encyclopedia)의 도해에 예시된 대로, 16세기 종교개혁의 진수요 정통 주류인 침례교를 계승한 자리에 놓은 것은 그리스도교 역사를 바르게 알고 있는 학계의 상식을 드러낸 것이다. 안식일 교회의 이러한 역사적 신원 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왜곡된 편견에 갇혀 있는 몇 몇 비평적인 인사들은 차제에 그리스도교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마. 종교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로마 카톨릭교에서 떨어져 나온 영국 국교회 [성공회]는 루터와 칼빈의 개혁 신앙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좀처럼 갱생하지 못하다가 18세기 전반에 웨슬리 형제가 주도한 성결 운동을 계기로 모라비아 교회의 신앙과 칼빈의 예정설을 반대한 아르미니우스의 가르침을 정화시켜 감리교를 탄생시킨 것은 천만 다행한 일이다. 19세기 미국의 재림 운동에 침례교. 회중교와 함께 감리교 지도자들이 절반이나 되는 자리를 차지한 것은 괄목할 일이다.
개신(改新)이 필요한 개신교
이러한 역사의 명백한 교훈과 진상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개신 교회들이 16세기 당시에 루터나 칼빈 등 개혁자들이 가르친 것 이상은 더 깨달으려 하지도 않고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보수라는 명분을 내세워 옛것만을 고수하면서, 새로운 빛은 무조건 배척하고 함부로 이단으로 정죄해서야 되겠는가 곰곰히 생각해보라. 앞에서 인용한 청교도 지도자 로빈슨 목사의 권면처럼. 루터나 킬빈 등이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모든 것을 깨닫지는 못한 사람” 이 아닌가? “그들이 그 당시에는 타면서 빛을 발한 빛이었지만.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속속들이 깨닫지는 못”하지 않았는가?
전기가 없던 시대에는 등잔이나 촛불이 가장 밝은 빛이었지만, 지금은 고전적인 예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더 밝고 안전한 전등을 쓰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에디슨이 처음으로 발명한 원시적인 백열등도 그 때는 눈부신 빛이었지만 지금은 그 생산을 중단하고 원리를 발전시켜 더 밝고 더 안전한 광열기구를 만들어 내어 지금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고 있지 않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발명왕 에디슨을 무시하거나 불명예롭게 하는 일인가?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이외에는 어떠한 인간의 어떠한 고안이나 깨달음이나 가르침도 완전하지 않음을 왜 인정할 수 없는가?
1870년 교황 무오설(無誤說)을 교리로 선포한 로마 카톨릭 교회는, 과거에 제정한 교리나 전통이 아무리 잘못되었어도 결코 바꾸거나 취소할 수 없게 되어 근본적인 개선(改善)이 제도적으로 불가능한 불행한 종교가 되고 말았다. 헬라의 천체 사상인 천동설(天動說)을 교의(敎義)로 선포한 중세 카톨릭 교회가,132 이처럼 명백한 과학상의 과오를 간접적으로나마 시인하는데 3백년이 훨씬 더 결렸음을 기억할 때 암담한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물며 신앙에 관한 일이랴. 개신교는 그렇지 않고 그럴 수가 없으며 그래서도 안된다.
루터나 칼빈, 웨슬리. 윌리암 밀러 등의 무오(無誤)가 입증되어야 성서 신앙이 확립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 개혁자들은 모두 “그 시대의 아들들”로서 그 시대를 위해 자신이 받고 깨달은 빛을 밝히기 위해 자신을 태우면서 힘껏 빛을 발한 사람들이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다음의 말씀을 유의하자.
“너희가 침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였느니라.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일시(日時)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증거 하는 것이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치 아니하느니라”(요 5:33-40)
실제로 한 때 침례 요한의 기별을 따라 침례를 받고 그 빛을 즐거이 따랐던 사람들이 후에 사도 바울이 전해준 더 밝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꺼이 받아들여 다시 침례 받는 일을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교훈을 그대로 따르는 참다운 모본을 보이지 않았는가? (행19:1-7) 비록 16, 17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중세의 영적 암흑을 가까스로 벗어나 일시적으로 루터나 칼빈 등 개혁자들의 빛에 즐거이 머물렀다 해도, 언제까지나 그 빛으로만 만족한다면 틀림없이 또 다른 영적 암흑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혼란을 거절한 오늘날 개신교의 일그러진 모습이 아닌가?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길은 어떠해야 하는가?
“의인의 길은[새벽에] 돋는 해와 같아서 더욱 더 밝아져 [대낮의 ] 충만한 광명에 이르게 되거니 와 악인의 길은 흑암과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느니라”(잠4: 18, 19)
개신교인가 열교(裂敎)인가
거의 대부분의 개신 교회들이 종교개혁이 시작된지 5백년이 가까워지는 데도 중세의 영적 흑암과 중세 교회의 비성서적인 잔재를 여전히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잘 알려진 카톨릭 변증 서인 「다수의 신앙」(The Faith of Millions)의 저자인 카톨릭 신학자 오브린 (Jonn A. O. Brien)의 논증 가운데도 이 사실이 잘 드러나 있다.
증언 오브린
“어째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에 언급된 날 대신에 일요일을 준수하는가?... 그런데 성경에 명시된 날은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신앙을 교회로부터가 아니라 성경으로부터 직접 취한 것이라고 공언하는 비 카톨릭 신자들이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준수하는 것은 우습지 않은가” 몰론 우습고 일관성이 없는 일이다.... 이러한 변경이 성경의 어떤 구절에도 명백히 드러나 있지 않고 카톨릭교회의 권위에 의한 것인데도 그들은 이 관습을 계속 따르고 잇다. 일요일 준수야말로 비 카톨릭 분파들이 떨어져나온 어머니 교회의 유물(遺物)로 남아 있는 것인데 그것은 마치 집을 뛰처 나간 구출 소년이 아직도 그의 주머니 속에 그의 어머니 사진이나 어머니의 머리카락 한 타래를 가지고 다니는 것과 같다.”133
오브린의 말처럼 성경에는 한 군데도 준수하도록 언급된 바도 없는 일요일에 예배하면서, 십계명의 엄연한 넷째 계명일 뿐더러 신 구약 성경에 걸쳐 그 준수가 확립된 체칠일 안식일 을 고의로 유린하는 한 개신교는 결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원칙을 따른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것은 개신교가 아직도 전통(傳統)을 성경의 권위 이상으로 중시하는 중세 카톨릭 교회로부터 철저히 개신(改新)된 명실상부한 개신교(改新敎)가 아니라 한낱 열교(裂敎)로서 부질없이 어머니 교회를 뛰쳐나간 가출(家出)소년 이 취급을 받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못지 않게 심각한 것은 루터로 하여금 목숨을 내걸고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한 면죄부 제도를 뒷받침한 연옥 제도, 그리고 연옥의 신앙을 뒷받침한 영혼 불멸의 신조이다. 앞장에서 이미 확인 한대로, 그것은 신구약 성경과 지난날의 교회 역사에 분명히 드러났듯이 죽은 사람과의 거짓된 영교(靈交)를 조장해 온 구태의연한 강신술(降神術)과 심령 과학의 근거가 되었음은 물론, 성서 신앙의 기초가 되는 조건적 불멸과 부활의 신앙을 파괴해 온 두려운 속임수인 것이다. 그 근원이 성경이 아니라 헬라를 거쳐 로마제국과 당시의 유대교 및 그리스도교에 소개된 이집트의 영혼 불멸 사상이었음을 확인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 장본인을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요8:44)된 사단의 원천적인 속입수 였음도 (창3:4)확인하지 않았는가? 신, 구약 성경은 룰론, 루터의 종교개혁 등 지난날의 교회 역사에서 이미 그 계보가 확실하게 드러나고,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쿨만(Oscar Cullmann)등 성서학자들의 의해서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졌는데도 어찌하여 아직까지 중에의 흑암을 헤메야 하는가? 플라톤의 영혼 불멸 사상에 젖었던 어거스틴 등 교부들의 영향으로 중세 교회의 교리가 되고 어거스틴 의 신학에 심취한 칼빈이 카톨릭에서 개신교 신앙으로 공식적인 개종을 한지 겨우 2년만인 25세 되던 해에 섣불리 썼던 최초의 논문인 「혼수론」에 나타난 영혼 불멸의 가르침이 성경에 크게 어긋나고 있는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한데도 어찌하여 지금까지 그것을 붙잡고 있어야 하는가? 결과로 개신교의 도 다른 연옥인 중간 상태(Intermediate Stste)까지 창출되지 않았는가?
요즈음 교계를 휩쓰는 “냉동 아줌마” 의 “내가 본 천국”이며 00권사의 “내가 본 지옥” 철부지한 아이들이 앞을 다투어 간증하는 “내가 본 천당과 지옥”은 도대체 어떻게 된 셈인가? 그것을 마치 몸을 떠나 존재하는 영혼이 있는 증거로 가르치고 있으니, 이 무슨 성서 신앙의 걷잡을 수 없는 대 혼란인가? 하나님의 교회로 하여금,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중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 (계18:2)지 않도록 지도자들은 참으로 각성해서 명실상부한 성서 신앙을 철저히 확립해야 한다. 왜냐하면.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이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주릴 것” (사8:20 21)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성서적임이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해진 중세 교회의 유산인 유아세레는 왜 아직도 포기하지 못하는가? 무죄하신 하나님의 아드님께서도, “이와같이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3:15)고 말씀하시고 친히 물에 잠기심으로 본을 보이신 물에 잠기는 침례(浸禮)는 차치(且置)하고, 어찌하여 대부분의 교회들이 아직도 증세 교회의 유산인 물 뿌리는 세례(洗禮)를 계속하고 있는가? 이 모든 것들은 밖으로 드러난 형식에 관한 것들이지만, 내적으로 이루져야 하는 영적인 개혁의 필요는 더욱 더 광범위하고 시급하고 심각한 것이다.
호소와 진언
이제 장장 2천년 가까이 진행되어 온 신약 시대 교회의 우여곡절이 많았던 역사를 함께 답사해 온 독자 여러분과 지면에서 헤어지려 하면서, 1620년 미국의 국부(國父)인 필 그림 파아더즈들을 길러내어 떠나 보낸 존경받는 회중교 청교도 목사 로빈슨 의 고별설교를 상기하게 된다.
증언 로빈슨
“형제들이여 우리는 이제 곧 헤어지게 됩니다. 제가 여러분들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을 지는 주님만이 아십니다 주님께서 그러한 책임을 부과합니다. ... 하나님께서 그분이 쓰시는 다른 방편을 통하여 무엇이든 여러분에게 드러내시고자 하시는 때는. 일찍이 나의 봉사를 통하여 드러난 진리를 여러분이 받아들였던 것처럼,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십시오 왜냐하면, 제가 확신하는 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말씀으로부터 터져나올 더 많은 진리와 빛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135
“여러분에게 이미 알려졌거나 장차 알려지게 될 주님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동의한 바 여러분의 교회의 서약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으로부터 여러분에게 알려지게 될 빛과 진리가 무엇이든지 그것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나님께 서약하고 또 서로간에 약속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더욱 조심하도록 간청하기는, 여러분이 진리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은 사전에 그것을 성경의 다른 진리들과 비교하고 달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계는 극히 최근에야 그처럼 두터웠던 적(敵)그리스도적인 암흑에서 나왔으므로, 단번에 완전한 지식이 모두 터져나오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136
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려 깊은 개혁자의 신앙인가? 교파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오직 성경”에 얽매인 성서 신앙, 새롭게 밝혀진 성경의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편견을 팽개치고 마음을 활짝 연 의로운 신앙, 인간 개혁자들에게 고착(固着)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에게 고착된 구원의 신앙, 이러한 개혁 신앙을 우리는 가졌는가?
루터와 칼빈의 개혁 이후, 얼마나 더 새로운 진리, 얼마나 더 밝은 빛, 얼마나 더 놀라운 깨우침이 성경으로부터 쏟아져 나왔는가? 우리는 그러한 새빛에 정직하게 반응해 왔는가? 고난이나 죽음도 불사하게 만든 루터의 “하나님의 말씀에 얽매인 양심” 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짓밟힌 성서 신앙을 한치 한치 회복하기 위하여 옥에 갇히고 목베임을 당했으며, 몰에 던져지고 불에 사루어진 무수한 개혁자들이 희생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을 참으로 바르게 평가한다면 지금의 우리가 해야 할 일일은 무엇인가?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못하였으니....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심이라”(히11:14)
그렇다 여기에 마지막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가 할 일이 있다. 우리만 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파와 땀과 눈물과 목숨을 바쳐 싸워 온 진리의 선한 싸움을 어서 속히 끝내야 할 역사적인 사명과 특권이 마지막 세대의 성도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래야 그 지긋 지긋한 죄의 통치가 끝나고 몸서리쳐지는 고난과 죽음도 끝날 것이다.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모든 약속의 일대 성취인 것이다.
이처럼 오래 게속된 진리의 선한 싸움을 마침내 승리로 끝낸 마지막 날의 하나님의 백성인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의 증거를 가진 자들”(계12:17)이 되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특권이며 형용할 수 없는 영광인가? 그것은단 한번 살다가 결국은 죽게 될 모든 인간이 누려 불 수있는 가장 보람되고 값진 삶이 아닌가?
지금까지, 믿음과 불신, 충성과 배신, 진실과 위선, 순종과 불순종, 용감과 비겁, 자만과 겸손, 구차한 삶과 떳떳한죽음이 어지럽게 교차된 선과 악의 싸움터인 그리스도교 역사의 현장을 함께 답사하며 그 결말을 확인한 독자들이 끝없는 어두움 대신 영원한 새벽을 알리는 진리의 밝은 새 빛을 선택하기를 마지막으로 탄원한다.
어두음은 별도로 택할 필요가 없다 빛을 거절한 결과가 어두움이기 때문이다.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요3:21)게 마련이며,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요7:17)게 되기 때문이다.
지면을 통하여 마음으로 깊이 사귀며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 됨을 확인한 독자들이, 깨달은 바 빛과 진리를 위하여 “죽도록 충성” 함으로써 가치를 깨닫게 된 “생명의 면류관”(계2:10)을 마침내 누리게 되기를 재삼 탄원한다. “이것들을 증거 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 지어다 아멘”(계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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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K. A. Strand(ed.), The She Sabbath in the Scripture ahd History(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n., 1982), 233.
64. Ibid., 234.
65. Ibid.
66. Calvin Institues 2. 8. 32-33. 전경연, 칼빈 의 생애와 신학 사상, 복음주의 총서 제27권(한신 대학 출판부, 1984), 122
67. N. Bowmd, The Doctrine of the Sabbatn, Plainely Layed Forth, and Soundly Proved...(London, 1595), 6, 9.
68. A. H. Lewis, A Critical History of the Sabbath and the Sunday in the Christian Church, 2d ed.(plainfield, N. J., 1903), 276.
69. Ibid., 273.
70. The Seventh Day Baptists in Europe and in America, 32, 33, 36, 37.
71. Strand(ed.), 221.
72. G. F. Hasel, "Sabbatarin Anabaptists of the Sixteenth Century," AUSS 6(1967), 26.
73. Ibid.
74. Maxwell, Tell, it to the World, 71.
75. Thomsen, 13.
76. Ibid., 15.
77. Seventh Day Baptists in Europe and america, 40.
78. Thomsn, 14.
79. Ibid., 16.
80. J. N. Andrews and L. R. Conradi, History of the Sabbath and First Day of the Week (Wash., D. C.:Review and Herald, 1912), 734.
81. Seventh Day Baptists in eutope and America, 124.
82. Qualben, 342, 343.
83. Ibid., 340. Renwick, 148.
84. Renwick, 148.
85. Ibid., 148, 149.
86. Ibid., 164. Qualben 346.
87. Walker, 451.
88. Seventh day Aventist Bidle Commentary vol. 7, 67, 68. Walker,451-453.
89. Ibid. renwick, 176.
90. Newman, 538.
91. R. Cox, the Literature of Sabbath Question, 201, 202.
92. A. J. Weamer, Fundamntals of Bidle Doctrine(Takoma Park, Wash, D. C:Review and Herald, 1945), 135.
93. Mead, 173, 174.
94. S. H. Turner, Outlines Studies in the book of Revelation, 13.
95. Renwick., 164.
96. Mead, 174.
97. ibid., 176.
98. 기독교문사 기독교 대백과 사전 8, 1246. Mead, 86,87.
99. 기독교 대백과사전 3, 369, Ibid., 8, 1248.
100. Mead, 197-202.
101. Renwick,165.
102. Cairns, 366-368.
103. renwick, 124.
104. Qualben, 344, 345.
105. Froom, The Prophetic Faith of Our Fathers, Vol. IV, 1001.
106. L.E. Froom, Movement of Destiny(Wsh., D. C:Review and Herald, 1961), 57.
107. Ibid.,54.
108. A. W. Spalding, Origin and History (Wash., D. C.:Revoew and Herald, 1961),17.
109. C. M. Maxwell, God Cares, Vol. 2(Boise., ID:Pacufuc Press, 1985),354, 355.
110. Ibid., 328, 329.
111. Froom, Movement of Destiny, 48.
112. ibid.
113. Seventh-day Adventist Encdopedia, 889.
119. 김순명 43.
120. Thomsen, 40, 41.
121. SDA Encydopeda, 1144.
122. Froom, 81, 82.
123. SDA Encydope dia, 1255.
124. Ibid., 1255.
125. Ibid, 1326.
126. Froom, 146, 147.
127.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대총회, 제칠일안식일 예수?逅? 기본교리27(서울시조사,1989).
128. Renwick, 116.
129. D. Neal History of the Puritans, Vol. I, 269, Great Controversy, 292.
130. Thomas Guthrie, The Gospel in Ezekiel, 237, Great Controversy,348.
131. Samuel Hopkins, "s Treatise in Millennium, " Works, Vol. 2, 328, Great Controversy, 384.
132. 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1978), 545.
133. O, Brien, 464, 465.
134. Ibid., 396, 397.
135. Maetyn, Vol. 5, 70, Great Controversy, 292.
136. Ibid.
부록 김순명 저 「이단 종파들의 정체」에 관하여
몇 년 전부터 국내외의 종교서점들에는, 박영관 씨나 턱명환 씨, 그리고 안토니 훼케마 씨의 소위 이단종파 비평 서적들과 나란히 심순명씨의 「이단종파들의 정체」라는 표제의 또 다른 책이 소개되어 배포되고 있다. 자신을 세계 월드 홉 선교회 선교사요, 미주 크리스?? 신문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 소개하고 있는 김순명 목사는, 자신의 책을 비롯하여 각종 집회와 미주에서 발행되는 소위「크리스챤 신문」을 통하여 안식일 교회에 대한 왜곡된 비평을 해오고 있다. 다음은 김순명씨의 책에 진술된 이러한 무고의 내용이다 .
무고 김순명
“초기 재림주의자 들은 여호와 증인들의 영향을 받은 탓으로 예수는 피조물이며 성령은 거룩한ㄴ감화력이라는데 동조하였다. 그러나 화잇부인은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후 19세기 말에 이르러 삼위일체를 완전 부정하는 신관이 정립되었다. 일반적인 신앙에 의하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간의 구세주이기는 하지만 아버지 하나님과 대등한 영원한 존재는 아니였다. 또 성령은 신성의 위격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거룩한 감화력으로 간주되고 있다.”(재림교회사. p113)
“ 다시 말하면 안식교는 성령을 하나님의 감화력으로 믿기 때문에 재론할 가치도 없다”(이단종파들의 정체, 24.)
첫째로, 초기 재림주의 자들이 여호와 증인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가? 재림운동은 1830년대 초반에 시적되어 1844년에 절정에 이르렀다. 그런데 초기에는 창시자의 이름을 따라 럿쎌파(Russe-llites)로 불리워진 소수의 여호와의 증인들(Jenovah, s Witnesses(이 럿셀(Cha-rles T. russell)이 인도한 첫 모임을 가진 것은 1872년 미국 종부의 피츠버그에서 였으며, 공식적인 조직은 1884년에야 비로소 가능했다.(F. S. Mead, Handbooks of Denominations, 145).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초기 재림주의 자들이 여호와의 증인들의 가르침을 받아 그들의 비성서적인 신관(神觀)을 받아들일수 있었겠는가 상식으로 판단해보라. 비평도 좋지만 최소한 상식에 맞아야 하지 않겠는가?
둘째로, 19세기 말에 이르러 안식일교회가 삼위일체를 완전히 부정하는 신관을 정립했다는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이야기 인가? 금시초문(今時初聞)이란 말이 있기는 하지만, 참으로 듣느니 처음인 이야기를 김순명씨 에게 듣게된다. 말로 개인을 무고(誣告)해도 사회의 지탄을 받는 부도덕한 처가사 되거든, 하물며 촐판문화를 이용하여 진실을 생명으로 여기는 신앙공동체를 이처럼 매도(賣渡)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진실을 밝히기 위한 건전한 비평은 얼마든지 환영한다. 그라나 무고나 매도는 그리스도인의 신앙 표준에는 물론 건전한 사회 풍토 조성에도 크게 어긋나는일이 아닌가? 나무나 새삼스러워 그럴 필요 조차도 느끼지 않지만, 김순명 씨의 이러한 부당한 글을 읽고서 이문제를 오해하고 있을 일반을 위하여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의 하나님에 관한 공식적인 믿음을 소개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곧 동일하게 영원하신 세 신격(神格)의 통일체(A Unity of Three co-eternl Persons)이신 한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은 불멸이시며, 전능하시고 전지하시며, 만유위에 계시고 항상 계신다. 그분은 무한하시고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시는 분이시면 서도, 그분의 자기 계시(Self-revelation) 를 통하여 알려지신다. 그분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영원히경배와 숭배와 섬김을 으시기에 합당하시다."(seventh-day Adventists bbelieve...27, 16.).
세째로, 안식일 교회가 삼위일체의 신관을 부정한다는 무고(誣告)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김순명 씨는 삼유대학 교수인 오만규 박사가 저술한 「재림교회사」를 인용하고 있는데, 이 점에서 김순명 씨의 양식(良識)과 지성(知性)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재림교회사」의 저자인 오만규 씨는, 본래 윌리암밀러 의 재림운동에 참여했던 재림 신자들로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의 형성에 크게 이바지한 여러 다른 교차들의 배경을 가진 초기의 지도자들 가운데, 당시 크리스챤 커넥션(Cheistian connection)으로 알려진 교파의 배경을 가진 죠셉베이츠(Jo-seph Bates)나 제임스 화잇(James White)과 같은 사람들이 포함돼 있었음을 가술하고 있다. 그런데 이 크리스챤 커넥션 게통의 교회는 반(半) 아리우스적인 견해(Wemi-Arianism)를 가지고 있었음에 대해 오만규 씨는 아래와 같이 기술(記述)하고있다.
기술 오 만규
“그리스챤 커넥션 계통의 일반적인 신앙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간의 구주이기는 하지만, 아버지 하나님과 대등한 영원한 존재(Co-eternal)는 아니었다. 또 성령은 신성이 일(一) 위격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거룩한 감화력’ 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오만 규,재림교회사,102)
기술(記述)이 너무나 분명하여, 어린 아이라도 오해하지 않을 내용이다. 모두가 아는 대로, 문장에는 주어(主語)와 그것의 수식어로 이루어진 주부(主部) 가 있고, 술어(述語)와 그것을 수식어로 이루어진 술부(述部)가 있다. 위의 문장의 주부의 주어는 안식일 교회가 아니고, 엄연히 크리스챤 커넥션 교회이다. 따라서 술부에 표현된 그리스도와 성령에 관한 그릇된 모든 신조도 크리스챤 커넥션의 신조이지 안식일 교회의 신조가 아니다.
그런데 김순명 씨는, 안식일 교회를 비평하는 자신의 책에 이문장을 인용하면서, “크리스챤 커넥션 계통” 이라는 명백한 주어를 생략하고 그것을 안식일 교회를 의미하게 만든 것이다. 인용문의 길이를 줄이기 위해 주부나 술부의 수식어의 일부는 평의상 생략할 수 있어도 주어를 생략할 수는 없을 뿐더러, 그것을 다른 것으로 바꾸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비평에서는 상대방과 의견은 달리할지라도 논증의 객관성과 신빙싱은 유지되어야 한다. 게다가 김순명 씨는 그리스도인 양심(良心)과 양식(良識)을 생명으로 해야 하는 크리스챤 저널리스트로 자처하고 있고 실제로 「미주 그리스챤 신문」의 편집인 겸 발행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우리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에 관하여 김순명 씨가 말한 것과 같이 믿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교의 근본적인 신앙에서 크게 밧나간 교회일 수 밖에 없다. 앞 장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이름이 알려진 목사만도 2백명 가까이 참여한 초교파적인 재림운동의 결과로 형성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초기 구성원들 가운데는 거의 모든 교파들의 모든 교리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에언의 은사를 따라 성경만을 신앙의 표준으로 삼으려는 끈질긴 성경연구를 통하여 일요일 준수나 영혼불멸 신앙, 그리고 유아세레등 그들이 이전에 고수했던 신조들이 성경에 어긋나는 것임을 깨닫고 조만간 성서 신앙으로 연합된 것이다.
이 얼마나 명괘한 그리스도인의 베뢰아 신사도인가? 행(17:11)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종교개혁을 통하여 단편적(斷片的)으로 발견되고 회복된 성서 진리가 체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에서 총집(總集)된 지금의 신조를 갖기에 이른 것이다. 재림운동이나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역사에서 크리스챤 커넥션의 그리스도에 관한 그릇된 신조가 공식적인 신앙으로 받아들여진 때는 전혀 없었다.
네째로, 김순명 씨는 “안식교는 성령을 하나님의 감화력으로 믿기 때문에 재론할 가치도 없다” 는 말로 삼위일체의 논증을 마무리 짓고 있다. 김순명 씨에게 지면을 통하여 요청하기는, 안식일교회 신조 어디에 성령을 신성의 위격(位格)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화력으로 믿는다고 가르친 데가 한 곳이라도 있는지 출처를 분명히 밝히기 바란다. 다음은 성령 하나님에 괸한 안식일 교회의 공식적인 신앙이다.
“영원하신 성령 하나님은 창조와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그리고 구속사업에 있어서 성부와 성자 하나님과 더불어 역사혀셨다. 성경께서는 성경의 기자들에게 영감을 주셨다. 그 분은 그리스도의 생애를 능력으로 채우셨다. 그분은 인간을 이끄시고 죄를 깨닫게 하시며 이에 반응하는 사람들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시키신다. 하나님의 자녀들 과 항상 함께 계시도록 성부와 성자 하나님 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으신 성령께서는, 교회에 영적인 은사들을 부여하시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도록 능력을 베푸시며, 성경고 조화 되게 교회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Seventh-day Adventists Be-lieve...27, 58).
다섯째로, 그리스도인 저널 리스트인 김순명 씨의 이러한 무책임하도 비 지성적인 활동은 재고의 기회도 무시된채, 사직 당국의 종용이 있기까지 개선의 뜻을 표시하지도 않다가, 1986년 동호 탁명환 씨를 「재림교회사」의 저자 오만규 씨에게 보내여, 타인의 저서를 직접적으로 오용(誤用)한데 대하여 사과의 뜻을 표하고 가까운 시일 안에 이를 바로잡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체의 시정 사항이 없었으며 3판을 넘고있는 그의 책에도 이에 대한 변화가 없다. 누구나 책을 저술하다 보면, 블가피한 사소한 실수나 과오가 있을 수 있음은 피차 이해하지만, 이처럼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과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고하고 자책이나 일체의 부담조차 느끼지 않고 요즈음도 여전히 왜곡된 비평을 계속하고 있는 김순명 씨의 현실에 대해 크게 실망하고 좌절을 느낀다. 이러한 현실에 머물고 있는 김순명 씨의 저서를 본서에서 비평의 대상으로삼는 것조차 건전한 비평의 분위기를 손상시키는 것으로 여겨져서, 정식으로 취급하지 않았음을 밝히고자 한다. 김순명 씨의 여러 다른 비평도 그 내용 자체가 대부분 신빙성이 없어 교려에 넣지도 않았다. 그리?느? 저널리스트임을 공언하는 김순명 씨가 자신의 신분에 일치하게 그리스도인의 양식(良識)과 지성(知性)의 혼괘한 일신(日新)을 보여주여 국내의 교회의 낭보(朗報)가 되기를 진심으로 회망한다. 결과에 상관없이 그리스도인 형제 사이에 모든 허물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미 수용되고 간과(看過)되었음을 차제에 기꺼이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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