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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다뉴브의 본고장, 비엔나는 오스트리아의 수도이며 영원한 예술의 도시이다. 1000년 영화의 자취가 깃든 고색창연한 궁전들과 비엔나 숲, 그리고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고전적인 도시 비엔나는 그곳에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행복해지는 곳이다. 도시의 랜드마크인 성 스테판 성당과 케른트너 거리,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시청, 그리고 광장, 수많은 박물관, 국립 오페라 하우스, 하이리겐 슈타트로 잘 알려진 비엔나의 숲은 시의 서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는 1558년부터 1806년까지 신성 로마 제국의 중심지였다. 그 후 1918년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중심지로 합스부르크 왕조가 영화를 누렸던 18, 19세기에 도시가 완성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시대에 동서유럽의 중간에 놓인 교통의 요충지로 부다페스트, 프라하 등 동유럽으로 가는 관문 도시로 발전했다. 현재는 국제기관이 위치한 국제도시이며 동시에 오스트리아의 행정, 금융, 상업의 중심지 역할도 겸하고 있다. 음악에서 수세기 동안 세계적 중심지이자 유럽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음악도시로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이 곳에서 탄생했거나 활약하며 서양 음악가들이 이곳을 본고지로 삼았다. 세계적으로 뛰어난 교향악단 중의 하나인 빈 관현악단(비엔나 필하모닉)의 본거지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드는 파리, 로마, 프라하의 모습은 여유가 없어 보이며 복잡한 도시 그 자체는 무엇에 쫓기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러나 비엔나에선 아주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의 하나로 서열 3위안에 항상 드는 이곳은 비엔나 숲과 도시의 가로수 그리고 도심에 있는 많은 공원들이 있어서 더 한층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인구 약 164만 명의 도시로 알프스의 가장 동쪽 끝과 다뉴브 강 연안에 위치한 중부 유럽의 경제, 문화, 교통의 요지이다. 로마의 군영 위에 세워진 비엔나는 십자군 원정의 통로가 되면서 도시가 번창하였다. 그 뒤 이곳을 차지하게 된 합스브르크 왕가의 640년 간의 통치 흔적들로 가득하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음악의 도시 비인에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요한스트라우스, 슈베르트,브라암스 등 음악가의 기념상이 도시 곳곳에 서 있다. 또한 과거의 화려했던 역사를 대변해 주는 박물관, 오페라 극장 그리고 유서 깊은 대학 등의 웅장한 건물들이 관광객 들을 맞고 있다.
비인의 가장 중심에 위치한 성 슈테판 사원에서 오페라하우스로 빠져나가는 케른트너 거리는 보행자전용 번화가로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쇼핑 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바로크 시대에는 쉔부룬과 벨베데레 궁전이 세워져 사람들은 이 도시를 '영광의 비인'이라 불렀다. 여러 양식의 건축물과 왕궁, 오페라하우스와 많은 극장 등이 있으며 UN산하 국제기관들이 위치한 국제도시이기도 하다.
■ 비엔나 : Center-Map
■ 성 슈테판 성당 (Stephansdom)
빈의 상징인 슈테판 성당은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양식 건물(탑의 높이 137m)로 하늘을 찌를 듯한 웅장한 자태를 자랑한다. 구시가의 중심지이면 번화가인 케른트너 거리 끝에 서있다. 12세기 중엽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었으나 1258년의 화재로 서쪽벽면을 제외한 건물이 전소된 이후 150년에 걸쳐 네이브가 고딕양식으로 건축하였다. 137m 높이에 화살처럼 뾰족한 첨탑이 있는 거대한 이 성당에서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결혼식을 올렸으며 장례식을 치른 곳으로 유명하다.
137m의 남쪽 탑의 별명은 슈테플(Steffl, 작은 스테판)이며, 이 슈테플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 예정이었던 북쪽의 독수리 탑은 1529년 터키 1차 침공 이후에 그 비용을 축소하게 되자 아직까지 미완성인 모습으로 남아 있다. 북쪽 탑은 떠도는 자들의 종인 푸메린(Pummerin)이 있는데 이종은 1683년 터키 군을 몰아내고 수거한 대포를 녹여 만든, 22톤 무게의 종이다.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이용해서 종탑까지 올라갈 수 있다.
성당 입구 좌측 벽면엔 성당 앞 광장이 시장으로 이용 되었었다는 흔적을 확인 할 수 있다. 포목의 길이를 재던 쇠로 만든 중세의 표준 자가 박혀 있고 빵의 크기를 재던 둥근 홈이 남아 있다. 성당 내부는 초기 고딕 양식에 맞게 기둥에 무수히 많은 조각이 되어 있으며 스테인드 글라스 역시 화려하지 않고 수수한 옛모습 그대로이다.
성당 내부의 하이라이트는 16세기 모라비아(현 체코 모라비아 지방) 출신 "안톤 필그림" 만든 설교단이다. 아주 복잡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이 설교 단의 윗 부분엔 기독교를 상징하는 4명의 신부(성아우구스틴, 성그래고리, 성제롬, 성암브로스)가 조각되어 있다. 계단 밑에서부터 설교 단 윗부분 까지 악을 상징 하는 도마뱀과 두꺼비가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윗부분엔 모든 악을 뿌리친다는 개 한 마리가 짖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중세 때 교회에 만들어진 작품들은 실명이 아닌 익명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그러나 안톤 필그림은 유리창 밖으로 얼굴을 내민 자신을 조각해 넣었다. 그는 또 하나의 작품으로 오르간 받침대를 북쪽 벽면에 만들어 놓았다.
성당 맨 앞에 있는 주재단 오른쪽엔 대리석으로 만든 황제 프리드리히(Friedrich)3세의 웅장한 무덤이 있다. 이 무덤엔 로마 알파벳 중 모음인 A.E.I.O.U. 란 미스터리한 글자를 새겨져있다. 프리드리히 3세가 재정한 모음을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을 한다.
Austria Eril In Orbe Ultima(Austria will be the last in the world) 또는 Austria Electa Iovis Omnia Vincit( The chosen eagle conquers all things).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프리드리히 3세는 독일 버전으로 다음과 같이 해석을 했다.
Alles Erdreich Ist Ostrireich Untertan(The whole world is subject to Austria). 하지만 당시의 역사적 상황으로 보았을 때 “In the first place, Austria is lost” 라는 표현이 더 적절 하다는 것이 정론이다. 프리드리히는 그가 오스트리아를 통치하는 것을 매우 힘들어 했었고, 1485년 헝가리의 왕 마티아스(마차시)에게 오스트리아 밖으로 쫓겨났던 사실이 있다.
모차르트가 결혼식을 올리고 장례식을 했던 이 성당은 처음에 러시아, 그 뒤엔 독일에게 폭격을 맞아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지만 그 후 복구를 해서 옛 모습을 찾았다.
■ 카푸치너 교회
노이어마르크트 한 쪽엔 1633년부터 합스부르크 황실 가족들이 잠들어 있는 카푸치너 교회가 있다. 길이 6m, 높이 3m가 넘는 웅장하고 화려한 로코코 장식의 “마리아 테레지아” 쇠 관을 비롯해서 143개의 쇠로 만든 관들은 과거 합스부르크 황실 식구들의 영원한 안식처인 교회 지하에 놓여 있다.
황제의 장례식 때 장례행렬이 이 교회에 가까이 오면 이곳 수도원장이 다음과 같이 물었다. “누가 이곳에 들어 오려 하는냐?”
그러면 황실 상주는 “나는 오스트리아의 황제폐하이며 헝가리 왕이다”라고 대답 한다. 그러면 수도원장은 “난 그 사람 모른다. 누가 들어 오느냐?”라고 다시 물으면, 다음 대답은 더 거창하게 "나는 황제이며 헝가리 왕이면서 보헤미아, 달마치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갈리시아, 예루살렘,…등등의 왕이고, 기타 등등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는 그런 사람 모른다. 너는 누구냐?”라고 또 묻는다.
결국 상주가 무릎을 꿇고 “예 저는 신의 자비를 비는 비천한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한 뒤에야 관이 교회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많은 군중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행해 졌으며 죽음은 모두에게 평등 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합스부르크의 일면이다. 일반인 들에게 공개되어 관람 할 수 있는 이곳은 다른 나라에선 찾아 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곳으로 꼭 찾아 가 볼만 하다.
■ 합스부르크 왕궁 (Hofbourg)
합스부르크가의 대대로 이어진 왕궁으로 현재는 대통령 공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3세기에 착공하여 18세기에 거의 완성된 광대한 건축물로서, 신성 로마제국 왕관을 모아둔 보물관, 민속 박물관, 국립 미술관 별관 등 세계적인 수집품을 자랑하고 있다. 왕실 성당에서는 일요일의 미사에서 빈 소년 합창단의 합창을 들을 수 있고 기마학교에서는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에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곳은 링거리와 접해 있어서 마리아테레지아 광장이 있는 미술사 박물관쪽으로 들어가도 되고, 구시가지 콜마르크트(Kohl Markt, 옛날 석탄시장) 거리가 끝나는 미카엘 광장을 통해서 들어가도 된다. 콜마르크트에서 보면 도심 속에 웅장한 건물이 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압도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콜마르크트가 끝나는 곳엔 미카엘 성당이 있어서 붙여진 미카엘 광장엔 로마 사람들의 건물 일부 파해쳐서 누구나 볼 수 있게 하고있다. 그것은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에 묻어놓은 것을 최근에 일부 발굴한 것이다.
정면 위에 보이는 둥그런 돔은 19세기에 만든 것으로 유명한 건축가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를라흐”(Johan Bernhart Fischer Von Erlach)가 만든것이다. 돔 좌측 부분은 스페인 승마 학교이며 오른 쪽은 왕실 사무국이었다. 현재 왕실 사무국 자리는 합스브륵 왕국의 사용해 왔던 식기, 그릇, 식탁 등 너무너무 화려하고 아름다운 "밥 먹는" 도구들을 전시해 놓은 Imperial Silver Collection이 있다.
입구 기둥 앞엔 4명의 헤라클래스가 서있다. 싸우서 진적이 없었던 그리이스 신화속 영웅이 가장 힘들었던 전쟁에서 승리하는 모습이다. 이것은 합스브륵이 힘과 위용을 나타내려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 돔 안으로 들어가면 역대 왕들이 사용했던 국가 아파트가 나온다. 건물 모습들이 일괄적이지 않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호프부르크라는 이름은 Habsburg(합스브르그)와 발음상 같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다른 여러 나라의 왕궁과 다르게 이곳은 잡동사니 건물 집합장소같이 만들어진 곳이다. 어디가 중심이고 어디가 적절한 출입구인지 구별이 없다.
1918년 합스부르크 왕조가 멸망 할 때까지 7세기 동안 이렇게 복잡한 형태로 건물이 지어진 것은 선(先)왕과 왕비가 사용했던 방은 현재의 통치자가 사용하지 못하는 불문률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시대마다 유행하는 건물을 계속 증축보니 모양이 이상해진 것이다. 현재 국가 아파트 일부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일부 건물은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에서 눈 여겨 둘 것 중에 하나는 가장 오래된 르네상스(1552년) 스타일의 스위스 문이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스위스 용병들로 하여금 이곳을 지키게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문은 초기 합스브르크의 왕궁이 있는 곳이다. 이문을 통과해야 왕실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었기 때문에 문에는 들어 올릴 수 있는 장치가 있었고 쥐위엔 해자가 있었다. 그 흔적으로 도르레 장치가 문의 아치 윗쪽 양옆에 보인다. 문을 통과 하면 왕실 교회가 있으며 합스브륵이 보유하고 있던 보물들을 전시해 놓은 샤츠캄머(보물창고)가 있다. 그리고 왕실 성당에선 빈소년 합창단들의 음악을 둘을 수 있다.
빈 소년 합창단
황제 프리드리히 3세가 1440년대 후반에 새운 고딕성당 Brugkapelle(왕실교회)에서 빈 소년 합창단이 일요일 오전 9시 15분에 공연한다. 1498년 황제 막시밀리안 1세가 창단해서 황제 가족들을 위해 노래 하도록 하였다. 초창기 합창단들은 미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거세를 하였다. 그 유명한 '하이든'과 '슈베르트'도 젊은 시절 생계를 위해 빈 소년 합창단에서 활동을 했었다. 1918년 합스부르크가 망하면서 활동이 중지 되었다가 1924년 부활하였다. 그 뒤 선원 복장과 선원 모자를 쓰고 공연을 하였고 오스트리아 주 수출항목이 되어 왔다.
모두 4개의 합창단이 있으며, 번갈아 가면서 합창단의 임무를 수행한다. 한 팀은 세계를 돌며 공연하고 또한 팀은 일요일과 종교 휴일에 관광객을 위해서 공연한다. 그 들은 오르간 위쪽에서 공연을 하기 때문에 공연 동안 합창단원들의 모습은 보지 못한다. 공연 뒤 사진 찍는 시간에 모습을 볼 수 있다.
■ 새 왕궁(일명 하얀 코끼리)
스위스문이 있는 쪽에서 국가 아파트를 빠져 나가면 넓은 뜰이 있는 영웅광장이 나온다. 사보이의 왕자 유진장군과 나폴레옹과 전투에서 승리를 했던 카를대공의 말을 탄 동상이 있는 곳이다.
여기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활처럼 휘어진 건물인 새 왕궁(일명 하얀 코끼리)으로 1913년에 만들어 졌는데 무슨 이유인지 합스부르크 왕실에선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지금 이 건물의 1층은 국립 도서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2층은 악기박물관과 무기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출신 히틀러가 1938년 어느 날 이곳 새궁 테라스에서 합병연설을 했던 장소이다.
다른 많은 것 중에서 비엔나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두 가지인 "빈 소년 합창단"과 "스페인 승마 학교"를 이 왕궁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외에 황제 아파트, 보물창고(샤츠캄머Schatzkammer), 바로크 양식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국립도서박물관(프룬크쌀 Prunksaal) 식기 박물관, 소묘와 스케치가 2만점 이상 소장되어 있는 알베르티나(Albertina) 박물관 등이 있다.
시간이 촉박한 사람은 보물창고(Schatzkammer)와 국립도서관(Prunksaal) 두 곳을 찾아보면 된다. 스페인 승마학교와 빈 소년 합창단 공연은 특정 일에만 하고, 많은 시간과 적지 않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
■ 쇤브룬 궁전 (Schloss Schonbrum)
유럽에서 장식이 화려한 궁정 중의 하나. 17세기 중반기경 마리아 테레지아의 명에 의해 외관은 바로크양식, 실내는 여왕들이 좋아하던 로코코 양식으로 여름의 별궁으로써 지어졌다. 정원은 바로크풍정원의 전형적인 곳이다.
아름다운 분수’라는 뜻을 지닌 쉔브룬 궁전은 1744년부터 1750년까지 피가시에 위해 완성된 신성 로마 제국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궁으로 베르사유 궁전에 견주어서 만들어진 화려한 왕궁이다. 총 1,441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실내 천장에는 프레스코화, 크리스텔 샹들리에와 금박 장식은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궁전 건물을 지나면 약 1.7㎢에 달하는 왕궁 정원이 있는데, 이 궁전 안의 공원은 고전과 결합한 로코코 양식의 아름다운 바로크 정원으로 툰의 생과 로마 유적 그리고 그리풍의 글로리에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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