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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만 여는 고물상
우리 동네에는 아주 오래된 고물상이 있다. 상권 한가운데 떡 버티고 서 있는 이 고물상 탓에 도시 미관도 좋지 않고, 상권 형성에 방해가 된다며 근처 상인과 주민들의 불평이 대단했다. 이상하게도 고물상 문은 항상 닫혀 있었다. 쌓여 있는 고물의 양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장사를 하는 것은 분명한데 말이다. 새해를 맞아 집 정리를 하다가 창고에서 상당한 양의 헌책들을 발견한 나는 고물상에 그것들을 팔기로 했다. 굳게 닫힌 고물상 문에 쓰인 연락처로 전화를 걸자 무뚝뚝한 말투의 주인 할아버지가 한마디만 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내일 새벽에 와!” 이튿날 새벽, 헌책을 들고 낑낑대며 고물상 앞에 가 보니 폐지며 고물을 수레에 잔뜩 싣고 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보였다. 잠시 후 고물상 문이 삐거덕 열리더니, 주인 할아버지가 반갑게 사람들을 맞이했다. 나는 어서 헌책들을 팔고 추운 이곳을 벗어나려는 생각에 제일 먼저 입구로 향했다. 주인 할아버지는 내가 가져 온 책들의 무게를 재고는 때 묻은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었다. 무거운 것을 들고 이곳까지 왔는데, 단돈 만 원이라니... 문득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얼마나 받을지 궁금했다. 아까 보았던 할머니께 여쭈어 보니, 천 원짜리 세 장과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내밀었다. 할머니는 활짝 웃으시며 그래도 오늘은 삼천오백 원이나 벌었다며 기뻐했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나는 새벽에만 고물상을 여는 이유를 주인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는 한참을 침묵한 뒤 말문을 열었다. “요즘은 개발붐이 불어서인지 이 고물상 부지를 사려는 사람들이 낮에 너무 많이 찾아와. 나도 힘들 때면 그냥 이 땅 팔고 편히 쉬고 싶은데, 열심히 사는 저 사람들 생각하면 그렇게 못해. 저 사람들에겐 이곳이 단순한 용돈벌이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희망이거든.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나는 몰랐다. 그저 보기에 흉한 이 고물상이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임을.... 새벽부터 몸은 꽁꽁 얼어 움츠러들었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온기로 가득했다. (김제국, ‘행복한 동행’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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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내게는 작은 것이 다른이에게는 하루를 사는 소중한 희망일 수 있다. 의미있는 좋은 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