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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재발견 현장답사]동편제의 또다른 맥, 고창소리를 찾아서19세기 판소리 중심지 거장들의 소리향 그윽작성 : 2009-07-15 오후 6:33:02 / 수정 : 2009-07-15 오후 8:30:20전북일보(desk@jjan.kr)
2003년 판소리가 세계유네스코위원회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었다. 한국을 상징하는 문화유산, 목소리가 낼 수 있는 최고의 경지(得音)를 추구하며, 음악적으로도 극단의 경지에 이르도록 발전해온 판소리는 바로 우리 고장 전라북도를 무대로 생장(生長)해 왔다.
해마다 열리는 '전주세계소리축제'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의 중심이 판소리이며, '남원 춘향제'를 비롯한 각 시·군의 축제와 각종 국악 관련 대회 역시 판소리가 주종목으로 배치된다.
판소리의 대가닥은 동편제와 서편제로 나뉘는데, 시기적으로 보면 동편제가 앞서고 서편제가 나중이다. 그리고 동편제 중에서도 남원소리가 앞서고 고창소리가 나중이다. 동편제의 시조는 남원 운봉의 송흥록, 서편제는 순창태생으로 나중에 보성으로 이주해 간 박유전, 그리고 동편제의 또다른 맥인 고창소리는 당대 최고의 판소리 학자였던 동리 신재효를 그 비조로 꼽는다.
25일 진행되는 답사 주제는 '소리따라 길따라-동편소리의 또다른 맥, 고창 소리를 찾아'다. 고창은 백두대간이 노령산맥으로 이어지면서 서해와 만나는 끝자리에 있다. 고인돌로 대표되는 동양 거석문화의 중심이며, '방등산가' '선운사가'와 같은 고대가요가 만들어지고 불렸으며, 52개나 되는 관향을 가지고 있는 유서 깊은 문화의 고장이다.
특히 19세기 후반기에 고창은 판소리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앞서 말한 송흥록과 박유전은 무격 출신의 소리꾼인데 반해, 신재효는 중인 출신으로 판소리를 집대성한 인물이자 뛰어난 판소리 이론가였으며 그를 통해 근대 판소리는 새롭게 거듭났다.
신재효(1812~1884)는 구전(口傳) 판소리 사설을 처음으로 문자로 기록했다. 나아가 개작과 판의 분화, 수많은 창작을 통해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의 경계를 그었다. 소리꾼들을 모아 교육했으며, 판소리 이론을 정립하고, 최초의 여류 명창을 배출해 냄으로써 19세기 후반의 격변기에 고창이 판소리 지각변동의 핵으로 작용하게 하였다.
본래 서민예술이었던 판소리의 지위를 일약 고급예술로 끌어올렸고, 국창(國唱)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이날치·박만순·김세종·정창업·김창록·장자백·김찬업·김토산 등 동서편 판소리 거장들을 길러냄으로써 '고창 신재효 문하를 거치지 않고는 어전광대는 될 수 없다'는 말까지 생기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고창은 동편제의 새로운 거점이면서 동시에 동서편을 모두 아우르는 종합적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신재효는 그가 태어난 날인 1884년 11월 6일 73세 나이로 세상을 하직했으며, 그의 유해는 고창군 천북면 옥동(현 성두리) 동남편 내동(內洞) 산기슭 선영에 모셔져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명창 진채선(동편)은 1847년 고창군 심원면 검당포에서 무당의 딸로 태어났다. 신재효의 지침을 받아 음률과 가무에 능하고 판소리를 특출나게 잘했다. 1869년 경복궁 중건 낙성연(落成宴)때 만록총중홍일점(萬綠叢中紅一點)으로 소리를 하여 그 명성이 일세를 경동케 했으며 대원군의 총애를 받았다.
이밖에도 김세종(동편)은 순창 태생이나 오랫동안 신재효의 지침을 받아 고창에서 신재효의 소리를 구체화시키고 후학을 교육시켰으며, 김수영(서편)은 흥덕 출생으로 박만순·이날치와 동배로서 서편의 요령을 잃지 아니하고 중모리를 특수하게 잘했으며, 김창록(동편)은 무장 출신으로 박만순·김세종에게 밀리지 않을만큼 명망이 높았는데, 춘향가 중 '춘향방 8도 담배가'로 유명하며, '산유화가'의 작곡으로 공적이 또한 불선하였다. 김찬업(동편)은 흥덕 출신으로 김수영의 아들인데, 박만순의 문도로 '토끼화상 그리는 대목'을 잘했다. 특히 그는 '김세종판 동편제 춘향가'를 보성소리에 전수시켜 후일 보성소리의 가장 큰 특징으로 자리잡게 하였다.
1964년에는 박녹주·김연수·김여란·정광수·김소희·박초월 등이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기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는데, 여류명창 4명 중 2명이 바로 고창 출신이다. 김여란(1907~1983)은 심원면 고전리 태생으로, 정정렬에게 꼬박 7년에 걸쳐 '춘향가'와 '심청가' '적벽가'를 모두 전수 받았고, 1957년 수도국악예술고를 설립하였으며, 최승희·박초선 등의 제자를 두었다.
김소희(1917~1995)는 흥덕에서 출생했으며, 열다섯에 '제1회 춘향제전 명창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하였다. 진채선이 최초의 여류명창이고, 이화중선이 판소리의 여왕이라면, 김소희는 흔히 '하늘이 내린 소리'라 일컬어진다. 그는 타고난 재능 위에 여성에 맞는 소리로 판소리를 개발하는가 하면 판소리를 여자 명창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로 끌어 올림으로써, 반세기 넘는 세월동안 판소리 창자로서 최고의 지위를 누린 국악계의 큰별이었다.
또한 근래에는 '천추만대에 유전할 절등한 소리'를 흥덕의 김토산(서편)에게 전수받았으나, 제도권의 높은 벽과 거듭되는 삶의 역경으로 불운한 소리꾼으로 마감해야했던 김성수(1929~1993, 심원면 월산리에서 성장)가 있었는데, 그를 끝으로 고창 출신 판소리 대가의 맥이 주춤하게 된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고창군에서는 고창 판소리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해마다 판소리 연구와 교육,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1990년 개관한 동리국악당의 다양한 행사와 교육, 그리고 2001년 개관한 고창판소리박물관의 연구와 다양한 사업 등은 앞으로 고창 판소리의 의미는 더욱 확장되고 밝은 미래로 이끌게 될 것이다.
다만 한가지, 근대판소리의 중심·동편제 판소리의 또하나의 거점·여류명창의 산실이었던 고창소리가 더욱더 큰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의 판소리보다 고창의 정체성을 지닌 고유한 소리를 찾아 그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전승하기 위한 노력이 더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유장영(전북도립국악관현악단장·전북대 겸임교수)
※ 이번 답사는 '소리따라 길따라-동편소리의 또다른 맥, 고창 소리를 찾아'(안내 유장영 전북도립국악관현악단장)
25일 오전 9시 전주역사박물관 출발 김소희생가→진채선생가→동리고택→판소리박물관→동리국악당→고창읍성
출처: 전북일보 http://www.jjan.kr/culture/others/default.asp?st=2&newsid=2009071518330201&dt=20090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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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청포도 익어가는 7월 *^^**^^*고맙습니다반갑습니다 추카 ㅊ*^^*더욱 건강 다복하시기 바랍니다만사형통의 축원과 함께"고창" "<고창>"*^^*
안녕하세요.판소리의 역사적 가치를 함께 인식하고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