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의가 만난 전국 교육감>
혁신학교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만들어가는 교육 변화이자 과정입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청 교육감
최창의가 만난 열한 번째 교육감은 경기도교육청 이재정 교육감이다. 2015년 11월 11일에 교육감 집무실에서 대담을 나누었다.
최창의 : 이재정 교육감님 하면 ‘9시 등교’로 많이 기억을 합니다. 정책을 시행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아이들 삶과 학교 현장에 어떤 변화들이 있는지요.
이재정 : 어디 가서 “제가 경기도교육감이에요.” 하면 못 알아들어도 ‘9시 등교’ 하면 학생들이 금방 알아봅니다. 9시 등교를 시행한 1년 되던 때에 의정부여중 학생들하고 얘기를 나눠 보니까 “아침에 여유가 있고 아침밥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하더라고요. 몇몇 여학생들은 전처럼 바쁘게 지내지 않고 여유를 가지니까 신경질도 안 부리게 되고 성격이 바뀌었다고 한 얘기가 퍽 마음에 와 닿았어요. 그리고 집중력이 늘어났고 아침에 졸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최창의 : 한편으로 문제점이나 보완할 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재정 : 가장 어려운 점은 고등학생들은 점심시간이 잘 안 맞는다는 거예요. 선생님들 쪽에서는 “과거에는 학생들하고 조회를 하고 수업을 시작했는데 그럴 시간이 없으니까 좀 어정쩡하다.” 이런 말씀을 하세요. 하지만 9시라는 것에 기계적으로 매이지 말고 앞뒤 시간을 적절하게 활용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최창의 : 교육감님이 강력하게 추진했던 것이 또 하나 있지요. ‘교장, 교감 선생님도 수업을 하자’는 것이었는데 중간에 그만두셨습니다.
이재정 : 제가 교육감이 되고 나서 교육법과 현장 상황을 살펴보니 교장, 교감도 교원이니까 수업을 해야 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또 다른 배경은 2015년에 급격히 교육재정이 줄면서 기간제 교사까지 줄이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교장, 교감 선생님들에게 몇 시간이라도 수업을 해 달라고 말씀드렸지요. 반응은 매우 싸늘하고 반발이 컸습니다. 그래도 교장, 교감 선생님들이 수업으로 감동을 준다면 아마 아이들에게 평생 남을 겁니다. 그 역할을 좀 해 주길 바랐습니다만 제가 강제할 일은 아니구나 생각했습니다.
최창의 : 경기도교육청 하면 혁신학교 정책을 처음 펼친 곳으로 알려져 있고 5년 넘게 혁신학교를 이어 오고 있습니다. 지금 경기도 혁신학교가 어디까지 와 있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요?
이재정 : 혁신학교는 경기도 교육의 최고 가치이고 최고의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2010년에 혁신학교가 시작돼서 현재 383개 혁신학교가 있어요. 지금은 혁신학교를 일반화할 환경과 조건을 만들기 위한 세 가지 방안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혁신학교로 가는 과정의 학교로서 혁신공감학교를 만드는 것인데, 현재 1,732개 학교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혁신학교 교육을 연구하는 선생님들의 학습동아리와 학습공동체를 지원하는 것이고요. 세 번째로는 혁신교육 관련 석사과정을 만드는 것인데요, 지금 다섯 대학과 협약을 맺어서 내년부터 한 학교에 20명씩 석사과정을 진행하게 됩니다.
최창의 : 임기 중에 혁신교육 정책을 통해 이루려는 학교 모습은 어떤 것인가요?
이재정 : 저는 혁신학교를 어떤 틀로 만들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혁신학교는 교실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끊임없이 만들어 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혁신학교가 성과주의로 가면 안 된다고 봅니다. 학생들이 행복하고 학교 문화가 바뀌고 선생님들도 자신감이 생기면 그게 성과지요. 혁신학교는 변화하는 그 자체이고 과정이지 특별한 유형의 학교로 나아가자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창의 : 혁신학교 정책 말고도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을 강조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것을 더 중시하고 있는 건가요?
이재정 : 물론 혁신학교입니다. 잘 아시겠습니다만 혁신학교야말로 학교 문화를 바꾸고 학교의 수업을 바꾸는 결정적인 정책이었지요. 다만 올해 교육예산이 갑자기 줄어드는 바람에 어려움이 있었지요. 혁신학교 학급당 학생 수가 27명으로 늘어나고 예산 지원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혁신학교 자체가 위기 아니냐? 교육감이 정책을 포기한 것 아니냐?” 이런 비판이 많았는데요. 교육재정 위기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최창의 : 마을교육공동체 사업도 사실은 혁신학교의 연장선에서 시작한 것 아닙니까? 그 개념과 내용을 설명해 주시면 좋겠는데요.
이재정 : 우리가 교육 자치 시대에 접어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역사회 전체 학교를 발전시켜서 그 인재들을 키워 갈 것인가 하는 전체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별로 없더라고요. 이런 전체적인 맥락에서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있어겠다는 생각에서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구체로는 학교를 도울 수 있는 협동조합 같은 것이나 교육자원봉사자센터를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최창의 :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의 중심이 ‘꿈의 학교’인 것처럼 흘러가는데요. 꿈의 학교에 집중하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이재정 : 학생들이 즐거워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알게 하는 방법으로 과거의 학교 안 특별활동 또는 방과후학교를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생들 스스로 만들어 가고 운영하는 학교, 여기에 그 지역에 있는 교육 자원들이나 전문가들이 함께 힘을 보태는 학생중심의 학교, 이것이 꿈의 학교입니다. 올해는 51군데 꿈의 학교에서 시범 사업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작곡학교, 사진학교, 골프학교와 승마학교도 있고 개그학교도 있지요.
최창의 : 경기도는 4·16 세월호 참사로 수많은 학생들이 숨진 단원고가 있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어느 지역보다도 4·16 참사를 교육에 반영하기 위해서 ‘4·16 교육 체제’를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재정 : ‘4·16 교육 체제’라고 이름 붙인 건 “4·16 참사를 기억하면서 우리 교육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를 찾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자.”는 구상에서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4·16 교육 체제는 현장중심 교육 체제로서 협동과 창의적인 것들을 만들어 내는 교육 체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민주주의, 지역별 특성화, 교육의 다양성을 통해 개인의 잠재력과 역량을 길러 내는 교육 체제이지요. 지금 연구가 거의 완성돼서 분야별로 검토하고 의견을 듣고 있습니다.
최창의 : 전국 교육감들이 부닥친 가장 큰 어려움이 내년도 교육예산을 어떻게 편성할 것인가이겠지요? 어린이집 누리과정 무상보육비 때문에 지방교육재정이 파탄나는 것 아닌가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재정 : 경기도교육청은 현재 어린이집 누리과정 지원금인 5,400억 원을 편성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대통령의 공약이고 국책사업이기 때문에 국가가 감당할 일이지 시행령을 고쳐서 교육청에다 떠맡길 일이 아닙니다. 교육재정교부금이라는 것이 학생들과 학교의 교육비로 나가는 돈 아니겠습니까? 경기도의 경우에 2014년 기준으로 학생 한 명당 교부금이 615만원입니다. 다른 시도 평균에 비해서 187만원이 적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유아 보육비를 감당하려면 615만원에서 또 66만원을 덜어 내야 합니다. 이 문제야말로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는 한 교육감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일이지요.
최창의 : 정부는 아마 지방채를 또 발행하거나 유치원 예산을 나눠 쓰라고 할 것 같은데요. 해마다 되풀이되는 문제에 대해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지 않겠습니까?
이재정 : 영유아 무상보육사업 자체는 좋은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육부는 이미 교부금 속에 다 반영시킨 거니까 거기서 내라는 일방적인 얘기만 하고 아무런 해결 의지를 보이질 않아요. 게다가 어린이집은 허가 관청도 도지사고 지도, 감독도 도지사입니다. 저희가 하는 일이라곤 원아 한 명에 29만원씩을 그대로 도지사에게 넘겨주는 겁니다. 도대체 이런 행정이 어디 있어요. 근본적으로는 내국세의 20.27%에 묶여 있는 교육재정교부율을 25% 이상으로 높여야 합니다.
최창의 : 교육부가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발표했고 많은 반발 속에서도 확정고시 했습니다. 경기도 학교 교육을 총괄하는 교육감으로서 어떤 방침을 갖고 계신지요?
이재정 : 국정화 계획을 취소하는 길 말고 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과정부터 교육적이지 않았고 정상적인 절차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쓰는 교과서는 2009년 교육부 지침에 따라 만들어졌고 그 지침에 어긋난 책이 하나도 없습니다. 경기도 같은 경우는 역사 교사의 91.58퍼센트가 국정화를 반대합니다. 공식적인 정부 집계로도 반대가 찬성의 2배가 넘는데 이것을 일방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절차상에 하자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고시 자체가 원천적으로 무효라고 생각합니다. 내일이라도 교육부가 고시 철회하면 되는 겁니다. 입법사항도 아니고 대통령 결제사항도 아닌데 왜 못 뒤집습니까?
최창의 : 성직자, 대학총장, 정치인 등 여러 길을 거쳐서 교육감이 되셨는데요. 교육감님의 어린 시절 성장 과정과 학창 시절은 어땠나요?
이재정 : 저는 6.25 전쟁이 일어난 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중학교 때 서울로 유학을 왔는데 학교가 참 힘들었어요. 우리 반 지방에서만 지내다가 서울에 처음 온 촌놈은 저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별명도 ‘빅토리촌놈’이었습니다. 서울에 유학은 왔지만 집안은 가난하고, 학력 차이도 2년 이상 나더라고요. 그러다 3학년 때부터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싶어 책도 많이 읽고 하다가 고등학교 가서 도서관위원이 되었습니다. 도서관 운영을 맡아 했는데, 그것이 굉장히 좋은 인생의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해요.
최창의 : 대학 입시에 떨어지면서 아픈 시련을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이재정 : 제가 체력장 점수 때문에 대학교 입시에 떨어졌어요. 저한테는 엄청난 충격이라 고향에 내려가서 한 3년을 이런 저런 일 하면서 지냈지요. 중학교를 못 가는 고향 아이들을 위해 학원을 만들기도 했어요. 그러다 나중에 대학을 갔는데 그때 겪은 여러 가지 경험들이 인생의 자양분이 됐던 것 같아요. 만약에 안 떨어지고 그냥 대학을 갔다면 인생은 더 편했을지 모르지만 의미 있는 삶을 살기는 어려웠다고 생각합니다.
최창의 : 새해를 맞아 경기도 학부모와 교직원들에게 경기교육의 새로운 구상과 방향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재정 : 저는 2016년도 경기교육의 중심 과제를 ‘함께’라는 말에 두고 싶습니다. ‘함께’라고 하는 것이 좁게는 이웃과 친구 사이, 넓게는 남북, 더 넓게는 국제사회 속에서 서로 협동한다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 교육의 가치를 협동에서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고요. 구체적으로는 2016년을 학교 민주주의의 토대를 확실하게 닦는 한 해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것이 돼야 혁신교육이나 혁신학교도 그 위에서 발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