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상 그렇듯, 여행 다녀오고 거의 1주일만에 여행기 올리는 이 게을러터짐-_-;+ 이 여행은 김휴림의 여행편지와 함께했습니다.
꽃무릇과 메밀꽃 보러 고창 다녀온 약간은 시시껄렁한 얘기. -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고창에 있는 선운사라는 절은 동백꽃으로 굉장히 유명합니다만 9월이 되면 절 이곳저곳을 뒤덮는 꽃무릇으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죠. 게다가 가을엔 단풍, 겨울엔 설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다시 말하자면 1년 내내 엄청난 인파로 북적이는 그런 절입니다 (먼산) (제가 가본 절들 중에선 불국사 다음으로 정신없는 동네-_-;) 부산스럽고 번잡한 분위기를 몹시 싫어하는 레여사입니다만, 그런 불편함을 알면서도 선운사는 이번이 벌써 두 번째. 딱히 거창한 문화재가 있는 것은 아니고, 감탄 나오게 하는 풍경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저에게는 어느 여름날 아침,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흐린 날 반쯤 꿈속을 걷는 듯한 기분으로 도솔천을 따라 거닐었던 그 날의 기분이 잊혀지지 않아서 자꾸 발걸음을 향하게 되는, 그런 절입니다. 즉, 내년 봄 동백꽃이 부를 때에 엄청난 인파의 향연을 감수하고서라도 또 갈거란 소리. 쿨럭. - 이번엔 2만원 정도의 경비를 절약하고자-_- 위에 링크한 여행사에서 주최한 여행을 갔습니다. 작년에 광양과 여수로 봄꽃여행 갔을 때 함께 했던 여행사인데, 여행객들을 소떼처럼 몰고 다니는 게 아니라 알아서 풀어놓고 알아서 돌아오게 하는 자유로운 시스템이 마음에 들어서 이번에도 신청했습니다. 전 괜찮은데, 남편은 다음엔 우리끼리만 가자며 투덜투덜. 자기 차 몰고 다니는 게 편하긴 하죠-_-;;; 하지만 주차 걱정과 경비 문제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여행사 편이 싸긴 더 쌉니다;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 - 하여튼 남편이 늦잠을 자버려서 엄청난 쇼를 연출하며 겨우 버스를 집어타고, 탈것에 몸을 실으면 바로 마취총 맞은 야수처럼 곱게 잠드는 레여사인지라 고창까지 가는 길의 대부분을 비몽사몽한 상태로 갔습니다. 휴게소에서 감자칩을 사서 투여한 것 말고는 별다른 기억이;; 하지만 시기도 어느덧 9월 말, 남도의 논은 어느덧 누렇게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선운사 도착한 시간이 11시 15분 쯤. 2년만에 오는데 절 진입로가 많이 바뀌었고 웬 생태공원이 생겼더군요? 2년 전에 한창 공사중이었는데, 제대로 완성해놓고 나니 괜찮데요.
고작 진입로 주제에(?) 꽃무릇이 이렇게 거창하게 피어 있습니다.
클로즈업하면 이렇게 생겼습니다. 우리 나라 정서엔 어딘가 맞지 않는, 지나치게 붉고 화려한 꽃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일본에서 들어온 꽃이라네요. 참고로 꽃무릇을 상사화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꽃이 지고 나서 잎이 나는 점은 똑같지만 꽃 생김새는 전혀 다르답니다. 절 입구에 설치된 간판에 꽃무릇과 상사화의 차이점이 아주 친절하게 적혀 있어요; 하여튼 따로 따로 보면 별로 안 예쁘지만 무리지어 피어 있는 모습은 풀밭에 붉은 물감을 뿌려 놓은 듯 나름 장관입니다.
도솔산 선운사 도착. 재작년에 봤던 그 일주문이 올해에도 반갑게 맞아줍니다.
그리고 절 안에는 북미 대평원 버팔로 무리같은 인파들이 버글버글버글버글버글-┌ 전국의 모든 데세랄 유저들이 '오늘은 선운사다 음화홯홯' 이라고 모의라도 한 듯, 대포같은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버글버글버글버글버글-┌ 게다가 선운사 안에서 웬 청소년 축제를 하는 바람에 파릇한 고딩들도 버글버글버글버글버글-┌ 등산객들도 버글버글버글버글버글-┌ 들끓는 인파를 보고 잠시 정신줄에의 접속을 종료했다가 정신을 차렸습니다. 지난번에 가지 못했던 도솔암을 이번에는 오르겠다는 나름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었거든요-_-
사람이 많든 적든 개의치 않는 도솔천 검푸른 물은 오늘도 조용히 흘러갑니다.
선운사에는 동백부터 복분자에 풍천장어까지(;;) 많은 명물이 있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 도솔천과 그 주변의 짙푸른 나무들이랍니다. 사실 이걸 보러 선운사에 오는 것 같기도.
절 내부 사진은 찍지 않겠습니다. 이미 재작년에 찍어둔 사진들도 있는데다가, 사람들이 진짜 끄악 소리나게 많아서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가 없었거든요-_-;; 그냥 운 좋게 만세루 앞에서 차 한잔 얻어마시고 왔다는 것으로만 마무리. 재작년에 찍은 사진들은 아직 친정 컴퓨터에서 안 옮긴 고로... 뇌입원에서 검색하세요-┌;;; (앗 이런 불친절한 블로거 같으니)
도솔암 가는 길은 울긋불긋한 카펫이 깔린 듯 예뻤습니다. 나무 사이로 햇살이 들어와 꽃무릇을 비출 땐 더욱 멋집니다. 제 비루한 사진 내공으로는 그 신비스런 모습을 제대로 담아낼 수가 없네요 ㅠ.ㅠ
총천연색 카펫!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카펫도 자연의 색감을 따라오지는 못하겠지요 :D
그나저나, 여행사에서 집합까지 준 시간은 두 시간인데 도솔암은 너.무.나 멀었습니다ㅠ_ㅠ 헥헥거리며 등산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곳까지 갔더니만 거기서부터 도솔암이 40분! ㅠ 도저히 집합시간에 맞출 수 없었기에, 포기가 빠른 우리 부부는 '게임 오버, 다음 기회에' 를 중얼거리며 과감히 하산, 그냥 부도밭이나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_- 이런 것이 단체 여행의 단점. 차를 몰고 왔으면 도솔암까지 꾸역꾸역 갔을 텐데 말이죠.
그래도 이런 느낌, 참 좋지 않습니까 '-'b (사진 제공 : 남편)
남편은 사진을 참 잘 찍는데, 군대에서 얻었던 보직이 사진 관련 일이라 군 생활 내내 항공 사진만 들여다보며 살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명. 제대하기 전엔 로모 들고 다니면서 곧잘 사진 찍어댔는데, 제대한 후에는 사진찍는걸 몹시 귀찮아하더라구요-┌ 찍기도 많이 찍고, 보기도 많이 보고, 현상도 많이 해서 결국 질려버린 듯; 하지만 구도를 정말 잘 잡기 때문에 사진이 잘 나올 만한 포인트를 척척 알아냅니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_ _) 그러니까 귀찮아도 사진 좀 찍지..-┌ (결국 원망? <-)
같은 꽃을 제가 찍은 사진인데, 차이가 확 나죠? 저는 찍고자 하는 사물을 중시하는 반면 남편은 전체적인 구도와 분위기를, 저는 정보의 전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남편은 사진의 느낌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서로 찍어놓은 걸 비교하면 많은 차이가 나요. (그래요 제가 더 못 찍어요 흑흑)
부도밭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막상 가보니 부도밭 공사중 출입금지 .... 아악 부처님, 저에게 이런 번뇌를 주시다니요! 그래서 약간 남는 시간동안 선운사 앞에 생겨난 생태공원 비슷한 것을 구경하러 갔습니다.
얼라려? 여기 상당히 괜찮잖아? 싶은 공원입니다. 수생식물이 자라는 연못과 습지 위에 나무 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그 위를 걸으며 산책을 하고 자연 관찰을 할 수 있게 해 두었습니다. 일전에 갔던 수타사랑 비슷한데, 연꽃이 없는 대신 규모가 더 크다고 생각하면 될 듯.
거울같은 연못에 비친 구름을 찍는데, 개구리 한 마리가 눈치 없이 방해공작을 펼쳤습니다-_- 사진 자체의 느낌이 좋아서 그냥 놔두었습니다. 데크를 따라 걷는데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참 좋더라구요. 결과적으로는 여기가 부도밭보다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부도밭을 구경했으면 여기를 못 보고 돌아가야 했을 테니, 오오 이것은 결국 부처님의 큰 뜻? (바로 마음이 바뀌는 간사한 인간)
선운사 올 때마다 벼르곤 하는 도솔암과 부도밭은 이번에도 못 봤지만-_-;;;; 텍사스 소떼같은 인파들과 번잡함 속에서도 얻어온 건 쏠쏠한 여행. 이래서 선운사를 찾게 되지 않나 싶어요. 다음에는 꼭 도솔암 올라가고 말테야! 크릉!
목적은 이루지 못했으나 아쉬움은 없었던 선운사 여행을 마치고 밥을 먹으러 갑니다.
메뉴는 육회비빔밥!! 이건 과감히 육회에 도전한 남편의 밥. 저는 육회를 못 먹으므로 익힌 쇠고기 비빔밥; 남도 음식답게 간이 세고 맵긴 했지만 맛있었습니다.
같이 갔던 일행분들 중 선지국을 드실 수 있는 분들은 이 선지국을 극찬했는데, 입이 극도로 짧아서 나노미터 수준에 육박하는 저는 선지국엔 손도 못 댑니다-_-;;; 그래서 선지국 한 뚝배기를 용맹과감하게 비우고 '추가요' 를 외치던 옆 테이블 분들께 과감히 증정. 남편은 '나 선지국 먹는데..' 라며 뒤늦게 아쉬워했다가 제 잔소리를 듣고 조용해졌습니다-┌ 그러게 빨리 먹을 것이지! (흥)
점심식사를 마치고, 봄에는 청보리밭 - 가을엔 메밀밭으로 유명한 고창 학원농장으로 갑니다.
메밀밭보다 우리를 먼저 맞이한 것은 한들한들 흔들리는 코스모스들과
따가운 가을햇살에도 방긋 웃는 해바라기들 ㅇ_ㅇ)/
선운사에서 봤던 데세랄 군단들이 제대로 날 잡은 듯, 여기에도 우르르 출몰-_-;; 하긴 고창으로 여행가는 정석 코스는 선운사 - 학원농장이 되게 마련이죠. (여기서 시간이 남으면 고창읍성과 고인돌 유적까지?) 그러나 사진 찍는 건 좋은데, 제발 꽃을 짓밟고 다니지 말라고 한 소리 해주고 싶었습니다. 꽃무릇 찍을 때에도 들어가지 말라고 줄 쳐진 곳을 막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가서 꽃을 다 헤집어놓고, 코스모스도 밟고, 메밀꽃도 밟고... 식물을 키우는 저는, 인파에 밟혀 으스러진 꽃들이 너무너무 불쌍해서 마음이 영 편치 못했습니다. 사진찍는 분들! 예쁜 사진을 얻겠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여러분들이 밟고 있는 것들도 여러분이 찍고 있는 것과 똑같은 생명이라는 생각은 안 하시나요. 제발 줄 넘어서 들어가 마구 밟아놓지 맙시다 진짜 ㅠㅠ
어쨌거나, 소금을 뿌린 듯 새하얀 꽃이 끝이 안 보이게 펼쳐진 메밀밭은 역시 장관이었습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으로 유명한 봉평의 메밀밭보다 학원농장의 메밀밭이 더 넓답니다. 전국 최대규모라죠. 이곳을 보고서야 '메밀꽃 필 무렵' 의 그 유명한 장면을 눈 앞에 완벽히 그려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와, 이효석씨가 정말 메밀꽃에 대한 묘사 하나는 끝내주게 잘 하셨네요. 그 '향기같이 애잔한' 붉은 대궁까지.
여기선 메밀꽃을 '팝콘' 같다고 묘사했지만, 우리 정서엔 아무래도 굵은 천일염을 뿌려놓은 것 같다는 표현이 더 걸맞겠죠?-_-;; 소설의 영향 때문인지 메밀꽃이 팝콘보다는 김장용 소금처럼 보이더군요; 그래도 멋있으면 장땡 :D
메밀꽃은 이래 생겼습네다. 꽃무릇과 마찬가지로, 한 송이 한 송이가 아름답다기 보다는 널리 피어 있는 모습이 장관인 그런 꽃이죠. 작고 수수하지만 귀여운 맛이 있는, 아무리 봐도 안 질리는 그런 꽃입니다.
하늘은 푸르고, 메밀꽃은 하얗고, 햇살은 따갑고, 그늘은 춥고, 다리는 아프고..(음?)
그래서 매점에서 메밀와플-_-! 을 사먹으며 쉬었습니다.
뭐랄까, 참 애매모호하고 거시기하면서도 아스트랄한 맛인데 그렇다고 해서 맛이 없는 것도 아닌 복잡미묘한, 와플같지는 않은데 와플이기는 한 그런 맛입니다. 1500원밖에 안 하니까 한번 드셔 보세요(...그리고 절 원망하진 마세요; 입맛은 취향이니 존중해주시죠?)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억지로 강행한 여행인지라 이 정도로 구경을 마치고 버스 안에서 쉬었답니다. 사진 찍을 기력 따윈 당연히 없었고;; 가져갔던 감기약 먹고 차에서 뻗은 상태로 집에 무려 6시간 걸려서 왔어요ㅠ_ㅠ 아놔 교통체증 어찌하나염ㅠ_ㅠ (아악 다시 악몽이 떠오른다) 정말, 우리나라는 주말은 피해서 여행가야 해요. 그런데 주말 아니면 갈 시간이 없는 직장인의 비애. 어떨 때엔 일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휴가 내고 그냥 어디론가 멀리, 한적한 날에 떠나고 싶답니다. 그런데 아픈 거 아니면 휴가도 못 내는 그런 직업 ㅋㅋ 인생이 이런 거죠. 그래도, 돌아올 일상이 있기에 여행이 아름다운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설렁설렁한 여행기를 마무리짓습니다 :D
(펌)
첫댓글 작년 이맘때는 이곳을 갔었는데 아쉽게 올해는 가지를 못했습니다^^;;
누가 찾아오면 가려고 기다리는데.....오지 않아서 ㅡ.ㅡㅋ
한번 하루 다녀 왔었는디요 기회가 되면 1박 2일로 다녀오고 싶은 곳이네요 ^^
1박 2일 좋습니다. 아들 제대하면 그렇게 하시지요 ㅡ.ㅡ;;
"하늘은 푸르고, 메밀은 하얗고, 햇살은 따갑고, 백로 추분의 9월 *^^**^^*고맙습니다반갑습니다 추카 ㅊ*^^*더욱 건강 다복하시기 바랍니다만사형통의 축원과 함께"고창" "<고창>"*^^*
지난 금욜날 울엄니49제 모시러 도솔암에 댕겨왔네요
신고 안허고 퍼갑니다. (겁나 지송허요)
지도 지송해용 가지고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