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고등학교에서 2학년을 마치면 직업을 갖기 희망하는 아이들이 선택해서 다니는 학교가 있다. ‘각종학교’로 분류되는 이 학교 가운데 아현산업정보학교가 있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자기 꿈을 발견하고, 그 길을 찾아간다. 어떠한 교육이 우리 아이들을 변화시키는지 궁금했다. 아현산업정보학교 교장으로 있는 방승호 선생님을 만나 그 교육 이야기를 들었다. |
최창의 : 교장실에 들어오니 너무 볼 것이 많네요. 벽에 잔뜩 붙어 있는 건
뭔가요? 인형도 여러 가지가 있네요.
방승호 : 그거는 전교생들이 적어 낸 아이들 꿈이에요. 인형은 아이들과
말을 하는 연결고리가 돼요. “선생님, 이거 뭐예요? 왜 있어요?” 뭐 그러면
서 자연스럽게요. 교장실이 거의 놀이터이지요. 하루에 아이들이 한 5, 60
명씩 와요. 많은 날은 100명도 넘게 오고요. 그냥 재미있게 노는 거예요. 애
들 오면 자연스럽게 커피 마시고, 배고픈 애들은 초코파이 꺼내 먹고, 보드
게임하는 애들은 같이 하고. 그렇게 하다가 원하는 애들은 일정을 잡아서
개별 상담해요. 학교 오면 저도 너무 재미있다니까요.
최창의 : 교장실부터 뭔가 다르구나, 생각이 드네요.
방승호 : 아이들 생활 지도가 그냥 돼요. 노래 좋아하는 애들은 마이크가
있으니 여기에서 노래해요. 오늘 오전에도 한 아이가 오더니 노래하고 싶다
고 해요. 그래서 “아, 그래. 그럼 한번 해 봐.” 해서 부르고, 저도 한 곡 불렀
지요.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오는데 점심시간에 가장 많이 오지요.
최창의 : 그냥 자연스런 삶이네요. 그런데 사람들은 ‘방승호 교장 선생님
은 뭔가 다르네’ 이런단 말이에요.
방승호 : 전 그냥 하는 거예요. 이걸 하루이틀도 아니고 어떻게 의식적으
로 하겠어요? 어쩌면 제가 아침에 명상을 한 덕은 있을 거에요. 명상을 한
지 20년 됐어요. 그리고 제가 좀 재미있는 게 좋아요. 웃으면 좋잖아요.
최창의 : 이 학교에는 처음 교감으로 부임했지요?
방승호 : 10년 전쯤인 그때는 선생님도, 애들도, 교장 교감도 이 학교에
일 년 이상 있었던 사람이 없었어요. 힘드니까 왔다 다 간 거죠. 애들 졸업
시키는 게 목표였어요. 직업은 그다음 얘기고요. 그때 여기 와서 피시(PC)방
만들고, 전교생 상담하고 그러면서 한 1년도 안 돼 가지고 학교폭력이 싹 없
어졌지요. 아이들 상담하면서 늘 꿈을 물어봤어요. 아이들은 공부하기 싫어
서 안 하는 게 아닙니다. 마음에 굉장히 큰 상처가 있더라고요. 상처를 상담
해 주고 보듬어 주니까 그 자리에 엄청난 꿈이 들어가는 거예요.
최창의 : 어쩌면 원래 다니던 본 학교가 포기할 정도로 힘든 아이들을 다
시 일으키고 있는 건데, 어떻게 아이들을 만나고 지도하는가요?
방승호 : 학교에 처음 가면 애들하고 친해져야 되는데, 제가 어떤 방법을
쓰냐면요. 애들이 교장 교감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교실 앞에서 “얘들아!”
하고 부르면 쳐다본다고요. 절대 교실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되고, 앞에서 그
렇게 한 10초 있다가 사라져요. 그렇게 2주일을 계속하면 아이들이 제가 누
구인지 알아요. 3주일 째는 교실에 들어가서 명함을 돌려요. “선생님 상담
하는 사람인데 심심하면 교장실로 와. 교장실 오면 초코파이 무한리필이
야.” 하면서 한 명씩 전교생에게 명함을 다 돌려요. 그러면 복도에서 애들이
인사를 하기 시작해요. ‘하이파이브’ 하듯 내가 손바닥을 내밀면 애들도 같
이 내밀어요. 몸을 접촉하는 거, 이게 말이 필요 없는 거예요.
최창의 : 아이들은 명함을 받으니까 뭔가 대접 받는 느낌을 받겠네요. 선
생님 표현대로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거에서 관계가 시작되는군요.
방승호 : 처음 아이가 한 명 왔을 때 잘해야 돼요. 초코파이 주고, 커피 마
시며 도란도란 얘기해요. ‘교육적’이 어떻고 하는 말은 절대 하면 안 돼요.
피곤하면 졸다가 누워 자기도 하고요. 소문이 엄청 나요. 그렇게 3월이 지
나면 애들한테 ‘민원성 문자’가 엄청 와요. 그거 하나하나 해결해 주다 보면
4월 중순이 돼요. 그러면 이제 끊임없이 애들이 상담을 받으러 와요. 상담
을 해 주다 보면 학교가 굉장히 평온해지죠. 그리고 어느 날부터는 제가 탈
을 쓰고 돌아다녀요. 학교가 이제 ‘서울랜드’가 되는 거죠. 재미있는 공간이
요. 그때부터 애들은 우리 학교
는 재미있고 좋다는 생각이 들
어서 오고 싶은 학교가 되지요.
최창의 : 아! 그래서 학생들이
학교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들
게 하는군요. 게임에 빠진 아이
들을 오히려 게임을 잘 시켜서
새롭게 지도하고 있다고 들었어
요. 아까 말씀하신 학교 피시방이 고급이라고 하던데요.
방승호 : 대한민국에 남자아이 있는 집은 게임 때문에 고민 없는 집이 없
을 걸요. 심한 경우는 가정이 정말 파괴될 정도예요. 그런데 해결책은 부정
적으로는 안 돼요. 저는 학교에 쾌적한 피시방을 만들고 프로팀까지 만들
었지요. 쾌적한 환경으로 대한민국에 가장 좋은 피시방을 해 놓으니까 애들
인성이 그냥 좋아져요. 올해는 서울 시내 중학생 가운데 게임만 하는 애들
데리고 재미있는 일을 벌였어요. 게임에 너무 빠져 힘든 아이들 18명을 뽑
았어요. 학과 성적이 평균 40점에서 50점 정도 되는 아이들로요. 9주 동안
토요일마다 지도했지요.
최창의 : 정말 궁금해지는데요, 토요일마다 게임만 했나요?
방승호 : 1교시에는 게임 영어를 했어요. 게임에 관계있는 아주 쉬운 영어
부터 시작한 거예요. 이걸 가르쳐 주니까 애들이 재미있는 모양이에요. 집
에 가서도 영어 자랑했다네요. 2교시에는 대한민국에 아주 유명한 프로게
이머하고 게임 해설가가 와서 설명을 해 주는 거에요. 게임 방송에서나 보
던 사람이 와서 해 주니까 애들이 놀랄 정도로 집중력이 강해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게임이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안 거지요. 그리고 ‘롤’이라는 게임은
캐릭터가 120개 되는데 전부 신화 인물이거든요. 그래서 신화를 조금씩 읽
어 줬어요. 애들이 굉장히 재미있어 합니다. 그다음이 핵심인데, 30분 남겨
놓고 게임에 대한 글쓰기를 했어요. 애들이 써 낸 글을 한번 읽어 보세요.
‘사람이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게 있어서 너무 좋다, 사람에 대한 신뢰감이
생겼다, 게임을 절제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내용이 있네요.
최창의 : 그러면 아이들은 게임을 얼마나 하지요?
방승호 :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요. 우리 학교 프로팀 아이들이 자문 역
할도 해 주고요. 게임을 마음껏 하게 해 주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최창의 :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방승호 : 18명 가운데 11명이 ‘게임 과몰입’에서 ‘일반군’으로 넘어갔어요.
사람들은 게임을 잘하는 애들한테 좋은 환경을 만들어서 게임을 시키면 더
빠지지 않겠냐 생각해요. 그런데 막상 해 보니까 그렇지 않아요.
최창의 : 그건 왜 그럴까요?
방승호 : 인정해 주는 면이 굉장히 중요한 거지요. 아이들이 게임을 하게
된 동기가 우리 나라 경우는 학업이 부진해서 다른 게 할 게 없어 하는 거예
요. 학교에서 수업을 들어도 뭔 말인지 모르니 들을 게 없고, 집에 가면 복
습을 해야 하는데 복습도 할 게 없고. 친구들이 다 학원 가니 같이 운동할 친
구도 없고. 그러면 애들이 뭐 할 수 있겠어요? 게임밖에 없는 거죠. 진짜 게
임밖에 할 게 없겠더라고요, 우리 아이들이.
게임하면서 가장 나쁜 게 ‘수치심’을 느끼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릴 때부
터 게임하면 ‘하지 마, 하지 마라’ 하는 말을 들으니까 숨어서 하게 되고, 밤
에 하게 돼요. 피시방 가도 약간 그런 느낌이니까 성장에 안 좋은 거죠. 상
담을 해 보니까 가장 나쁜 게 주위 시선이에요. 인간이 자라면서 인정받고,
지지받는 게 그래서 중요한 거예요. 애들이 게임을 밤에 하니까 학교 가면
자요. 이게 악순환이에요. 그런데 애들이 낮에 학교에서 게임 하니까 처음
에는 집에서도 하고, 학교에서도 했지요. 그런데 인간은 체력에 한계가 있
으니까 학교가 시설이 좋은데 밤에 뭐하러 하겠어요. 자동으로 밤에 자지
요. 그러니까 아이들 피부 색깔이 돌아와요. 건강을 찾는 거지요.
최창의 : 본 학교에서 공부가 뒤처지는 아이들이 이 학교에 오는 거지요?
우리 사회는 공부를 못하면 인생 낙오자가 된 것처럼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
는데, 이런 점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방승호 : 제가 우리 학교에 오려면 적어도 일반 고등학교에서 하루 5시간
이상 엎어져 잘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도 제가 못하는
걸 계속 집중해서 시킨다면 도망가요. 애들마다 배움의 속도가 다르고, 좋
아하는 분야가 다르니까요. 그렇게 공부 싫어하던 애들이 동기부여가 되면
공부하는 속도가 엄청 달라져요. 아이들이 미용을 배우다가 일본으로 유학
을 가야겠다 마음먹으면 일본어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요. 우리 애들
이 3, 4, 5월 지나고 자격증 따면서 공부를 하나도 안 했는데도 자신감을 좀
갖는 것 같아요. 육체를 쓰면서 자기 철학을 가지고 살면 더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와야겠지요.
최창의 : 네. 좋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고 싶은 게 없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아이들한테는 어떻게 꿈을 갖게 할 수 있을까요?
방승호 : 저는 꿈이란 어떤 것이 되는 기회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지금 애
들은 대학생이 되는 게 꿈일 수 있어요. 사람마다 다르지요. 상담하면서 그
아이가 꿈이라고 얘기할 때 그냥 그걸 인정해 줘요. 자기 안에 꿈틀거리는
거를 할 수 있게끔 해 주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학교는 무기력
한 아이들도 꿈을 키울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있어요. 올해에도 한 달 만에
전국 30개 학교와 경쟁을 해서 요리 부분에서 우승을 했어요. 제 꿈을 이야
기하자면 히트곡을 내고 싶고, 책도 내고 싶고, 개그맨 시험도 보고 싶고 그
래요. 전 꿈이 많아요.
최창의 : 노래 얘기가 나왔으니 선생님은 노래하는 교장 선생님으로도 유
명하시지요. 3집 앨범까지 내고 지난해에는 ‘노 타바코’라는 금연송이 인기
를 끌었다고 하던데요.
방승호 : ‘노 타바코’는 담배 피운다고 애들 타박하지 말라고, 타박하면 더
담배 피운다는 생각으로 만든 거지요. 제가 교장으로 첫 발령을 받은 학교
는 다른 학교인데, 지각생이 하루에 150명이고 학교 폭력이 서울에서 가장
많았어요. 그런데 6, 7개월 만에 학교폭력이 0으로 떨어졌어요. 학교폭력
이 없어지니까 담배 피는 학생
이 70퍼센트가 줄더라고요. 그
런데 어느 날 여학생 하나가 찾
아왔어요. 화장실에 담배 냄새
나서 양치질을 못 하겠다고요.
제가 다음 날 점심시간에 기타
하고 앰프 들고 화장실 앞에서
노래를 했어요. ‘금연 콘서트’
를 한 거지요. 그런데 그걸 한 60명이 보고 돌아서면서 하는 말이 “우리 학
교 재미있지 않냐” 하더라고요. 표정도 너무 재미있어 하고요. 그날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린 걸 보고 ‘금연송’을 한번 만들어 보자 해서 나온 게 ‘노 타바
코’예요. 가사는 제가 학교에서 겪은 일을 토대로 썼어요. 기타를 치면서 한
번 불러 볼 테니 들어 보세요.
“(줄임) 다 되는데 담배는 안 되는 것 같다/ 등나무 밑에 가면/ 하얀 담배
꽁초가/ (줄임) / 도망가는 너희들의 그 뒷모습/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거
였을까/ 어른들이 해 주지 못했던 일/ 그건 바로 사랑일 거야/ (줄임)”
그러고 나서 진짜 담배가 싹 사라졌어요. 교실마다 돌아다니며 노래 불러
주고, 걸리면 나하고 하루 종일 교장실에서 노래해야 된다니까 애들이 신기
해해요. 아이들이 자기를 혼내는 노래가 아니라는 걸 다 알아요.
최창의 : 만약 다른 교장 선생님들도 선생님처럼 노래 부르면 그 학교도
담배 피는 아이들이 줄어들까요?
방승호 : 사람은 재능이 다 달라요. 자기 재능을 써야지요. 글쓰기 잘하면
글쓰기를 해야지요. 노래 대신 바이올린을 연주해도 멋있을 것 같아요. 아
이들이 춤을 춰도 좋고요. 어떤 방법이라도 상관없어요. 아이들끼리 “우리
학교 재미있지 않냐?”, “이제 우리 학교 아무나 못 와.” 할 수 있는 문화가
되면 아이들한테 훨씬 각인이 되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최창의 : 아이들이 재미있어 한다는 걸 강조하시는데, 삶에서 재미를 중
요하게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틈틈이 봉사하면서 사는 이야기도
들려주시지요.
방승호 : 아유, 재미가 최고지요. 재미있는 학교, 재미있는 삶, 학교 와서
재미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저는 어디서 연수 와 달라고 해도 수업 시간에
는 절대 학교를 비우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만나야 하기 때문이지요. 전 ‘예
약’ 명패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아이를 기다려요. 하지만 토요일에는 재능
기부를 해요. 전국에 공부방이 4천 개가 있는데 인연이 되는 곳에서 노래와
모험놀이 상담을 합니다. 저는 그것 때문에 사실은 인생이 바뀌었다고 봐
요. 저도 보람을 느끼고,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고 기다리니까 제가 하는 모
험놀이를 놓지 않고 다음에 또 준비해서 가고 하지요.
최창의 : 사실 방승호 선생님 하면 ‘모험놀이 상담’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야기를 끝으로 오늘 만남은 마무리하겠습니다.
방승호 : 음, 암벽 타는 모험도 있지만, 인간은 자기 마음에 모험을 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봐요. 자기 수치심을 건들이면 칼로 베는 것보다 더 아프
거든요. 그래서 저는 상담하러 오는 아이들과 먼저 놀아요. 이를테면 팔씨
름을 해요. 그러고 나서 기분을 물어봐요. “처음 왔을 때는 별로 안 좋았는
데 지금은 괜찮아진 것 같아요.” 이제 자기 마음에 모험할 준비가 된 거죠.
그러면 “지금 기분은 어떠니?” 하고 물으면 재미있대요. 종이에 동그라미를
그려 주고, 그 안에 재미있는 기억을 쓰라고 해요. 그다음에 “재미의 반대는
뭐니?” 하고 물으니 짜증이래요. 그러면 짜증났던 일을 적어 보게 해요. 이
종이에 아이 인생이 다 들어 있어요. 그런 다음에 살면서 가장 도움 받은 사
람을 물어요. 할머니래요. 그러면 할머니에 대해 글을 쓰지요. 그다음에 꿈
을 물어요. 이 아이는 꽃가게, 옷가게 사장이 꿈이래요. 방해요소가 뭐냐고
물으니까 돈이 없는 것하고, 담배 피는 거래요. 방해요소를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할 일 한 가지를 정해요. 그렇게 ‘모험놀이 상담’을 하며 재미있게 아이
들 꿈을 키워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