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해남 땅끝공소 교육관. 기름값 아낀다며 불도 안 땐 차디찬 방에 공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여 앉았다. 교육관 한쪽은 김 상자로 가득하다. 두 달 전부터 공소 건축기금을 마련하려 김 판매를 시작한 공소 신자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김 비닐 포장에 한창이다.
"내 칠십 평생 그런 바람은 첨이여. 워메워메~ 장독 뚜껑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는디 저걸 으짜스까 하면서도 무서워서 밖에 나가덜 못했다니께."
"그랑께, 아주 혼이 났당께잉. 성당도 다 날라가 부렀잖여. 그니께 공소가 일케 김 공장이 돼부렸지. 근디 바울라씨가 칠십 밖에 안됐는감. 젊어서 좋겠구먼."
용막녀(바울라, 77) 할머니가 지난 여름 마을을 휩쓸고 간 태풍 이야기를 꺼내자 이제 해 넘기면 팔십 하나가 된다고 걱정하는 고야진(율리안나, 80) 할머니가 맞장구를 친다. 상자 정리를 하던 이동주(바오로, 78) 공소회장도 "태풍 때문에 난리긴 난리였소"하며 한 마디 거든다. 진한 전라도 사투리가 걸쭉하다.
"아따, 수다만 떨지들 말고 얼른 일하랑께. 요놈들 언능 팔아서 내년에 공사해야 할 것 아니요. 나가 선교사가 아니라 완전 김공장 사장이여 사장."
지난해 쓰고 보관해둔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찾으러 교육관에 들른 이성은(프란치스코 하비에르, 56) 선교사가 김 포장을 재촉한다. 그는 "오늘 요놈들 포장 다 마치고 성탄 트리 만듭시다. 성당은 저리됐어도 성탄인데 분위기는 내야 않것소"하며 트리 장식들을 챙겨 나갔다.
▲ 신자들이 성탄트리를 장식하며 기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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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휩쓸고 간 공소
"아직도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우르릉, 꽝. 우지끈 우당탕, 쿵. 태풍 볼라벤의 위력은 엄청났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차마 밖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아니,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새벽 먼 동이 터올 무렵 성당으로 갔습니다. 훤~했습니다. 동이 터서가 아니라 성당이 있어야 할 자리,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당이 사라졌습니다. 벽이며 지붕이며 모두 날아가 버렸습니다…. 어지러운 바닥을 헤치고 급히 감실만 모시고 나왔습니다…."
이 선교사가 광주대교구 공소 소식지에 땅끝공소 태풍 피해를 알리며 쓴 글 일부다.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볼라벤은 지은 지 20년 넘은 조립식 공소 성당을 송두리째 날려버렸다. 이 선교사 표현대로 성당은 '사라졌다'. 이 선교사는 "8월 29일"이라고 했다.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 밤이었다. 같은 조립식 건물인 성당 옆 교육관은 무너지진 않았지만 지붕이 다 망가지고 이곳저곳에 균열이 생겼다.
태풍이 잠잠해지자 한달음에 성당으로 달려온 신자들은 터만 남은 성당을 쳐다보며 눈물을 훔쳤다. 몇 날 며칠 성당은 울음바다였다. 널브러진 잔해를 치울 기력도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속만 태웠다.
▲ 공소 마당엔 아직도 잔해 일부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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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희소식이 들렸다. 나라에서 태풍피해 보상금을 지원해준다는 뉴스 보도였다. 피해 정도에 따라 80~90%까지 지원해준다는 소식에 모두 얼싸안고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희망도 잠시, 종교시설은 정부지원에서 제외 대상이었다. 기운이 쭉 빠져나갔다.
며칠 뒤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가 태풍피해 상황을 직접 둘러보고 신자들을 격려하러 공소에 방문했다. 교구에선 피해 성당과 기관, 신자들을 위해 성금을 모금했다. 어느 정도 교구 지원과 성금을 기대했지만, 광주ㆍ전남 전역에 피해가 워낙 심해 교구가 땅끝공소에만 더 많이 지원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또 다시 힘이 빠졌다. 공사를 하려면 최소한 4~5억 원이 드는데,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50명 남짓한 할머니 할아버지 신자들로는 감당키 어려운 돈이다.
이 선교사는 "울었다 웃었다 울었다 웃었다 아주 난리였다"며 "이럴 바엔 까짓것 예수님 믿고 우리 힘으로 성당 한 번 지어보자고 어르신들과 의기투합했다"고 했다.
#비 온 뒤 굳어진 땅
가장 먼저 힘을 실어준 것은 해남본당 김양회 주임신부와 신자들이었다. 김 신부는 "우리가 만날 '공소는 우리 가족이랑께요'하고 말로만 그랬는데, 어려울 때 진짜 가족의 힘이 뭔지 보여주자"며 본당 신자들에게 공소 신축기금 약정서를 내밀었다. 김 신부도 월급을 통째로 내놨다. 선교사와 공소 신자들은 매일 성당에 모여 대책회의를 벌였다.
일단 성당 텃밭에 심은 늙은호박부터 팔기 시작했다. 겨울엔 무엇을 팔까 고민하던 차에 눈에 띈 것이 김이었다. 김 공장을 운영하는 신자를 통해 곱창돌김 400상자를 일찌감치 사들였다. 곱창돌김은 김 중에서도 'A급'으로 쳐주는 김이다. 10월 초에만 수확하는 데다 수량이 많지 않아 소매상들은 구하기가 쉽지 않다. 신자들은 시간이 날 때면 공소에 들러 김 포장을 했다. 예전 같으면 일주일에 한 번 주일미사에 겨우 참석하던 신자들이었다. 또 자식들부터 사돈에 팔촌까지 동원해 김을 팔았다. 그렇게 조금씩 돈이 모이니 힘이 났다. 어르신들은 베갯잇, 장판 밑에 숨겨 뒀던 비상금을 꺼내 공소로 들고 왔다. "나 죽기 전에 하느님 집 한 번 지어봐야제."
호박 팔고, 김 팔고, 또 신자들이 내놓고, 주위에서 도와준 돈이 벌써 4000만 원이 됐다. 평화신문 독자들도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를 통해 1000만 원을 보내줬다. 성당이 사라진 자리에서 어느 새 희망이 싹을 틔우고 있었다.
▲ 공소 신자들이 김 포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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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성탄
공소는 현재 교육관 방 한 칸을 임시성당으로 쓰고 있다. 올해 성탄 구유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침침한 눈을 비벼가며 쓴 성경필사 공책으로 만들었다. 그 흔한 장식 하나 없이 공책으로만 꾸민 '말씀이 사람이 되신'(요한 1,14) 구유다.
▲ 최앵희씨가 성경필사 공책으로 꾸민 구유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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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쓰는 건 다 내 몫인당께. 나도 허리가 안 좋은디." 크리스마스 트리로 쓸 나무화분을 임시성당 입구로 옮기는데 모두 '제논'씨를 찾는다. 성탄을 앞둔 16일 세례 받은 박현채(제논, 62)씨는 팔팔한 육십대 초반이다. 신자들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하나둘씩 꾸몄다. 흰 솜을 붙이고, 색색의 방울과 종도 달았다. 반짝이는 전구도 빙 둘렀다. 사라진 성당 마당 나무에도 장식을 했다. 전구에 불을 켜니 성탄 분위기가 난다.
"성탄 소원은 뭐 물어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당께. 우리 성당 번듯하게 짓는 거 그것뿐이랑께." 올해 성탄엔 아기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땅끝공소에 들르지 않을까.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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