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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열광하다
김서령
죽은 윤택수의 박물지를 읽는다. 엊저녁 읽던 것을 아침에 가방에 넣어가지고 왔다.
이 친구의 글만큼 날 격렬하게 만드는 게 없다. 십 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두어 문장만 읽으면 핑그르르 눈물 돈다. 아무리 누선 관리가 안 되는 갱년기의 나라지만
윤택수, 그는 내 정서의 핵심 스팟을 알고 있는 게 틀림없다. 하긴 별것도 아니다.
대단한 내용이랄 게 아무것도 없다. 고작 국수를 먹거나 무밥을 먹는다는 얘기다.
떨어지는 낙숫물을 손등으로 받으면 물사마귀가 생긴다고 했다는 풍문들,
사마귀를 잡아서 물사마귀를 뜯어먹게 하면 그게 없어지더라는 기억들.
국수 빼는 엄마를 따라 방앗간에 가는 걸 좋아하는 이유에 관한 글들이다.
충청도 어느 시골, 임하만한 마을이었을 그 동네의 방앗간 입구 오른쪽 벽에는
작은 바이스가 하나 솟아 있었다. 엄마를 따라가긴 했지만 별 할 짓이 없었던 아이는
손잡이를 돌리면 쇠를 물리는 부분이 좁아졌다 넓어졌다 하는 그 바이스의 입에다
손을 꽉 물리면서 놀았다. 그 놀이가 좋았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쓴다.
“무심코 장난을 치다가 너무 꽉 물려서 쩔쩔맬 때도 있었지만 나는 백 번이고 이백 번이고
손잡이를 돌리곤 했다. 그것은 분명히 초보적인 성행위였다. 나중에 솔리터리 바이스라는
말을 배우게 되었을 때 그 영어단어의 적확함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라고.
그건 물론 성행위 이야기가 아니라 국수 이야기였다. 밀기울과 밀가루가
깨끗하게 나뉘는 동안, 찰랑찰랑 국숫발이 소금냄새를 풍기며 마르는 동안,
아이는 방앗간 뒤쪽으로 가서 엔진을 식히고 나오는 뜨듯한 물을 손으로 받아
세수를 한다. 위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으면 물사마귀가 돋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방앗간의 물을 받는 것은 그 물 안에 석유냄새 비슷한 문명의 냄새가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 고집스러운 우수, 남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내성적인 검은 눈,
낯선 사람이 손을 내밀면 소스라쳐 도망쳤지만 시골 아이들은 세상을 거울처럼
정확하게 반사했다. 그리고 나중에 학교에 입학해 추상명사와 불완전명사와
동사와 부사와 온갖 형용사를 배우면서 <나는 방앗간이 풍기는 문명의 냄새에 매혹되었다.>라고 쓸 줄 알게 된다.
국수 빼는 방앗간에 따라가 혼자 놀던 어린 날을 얘기하다 문득 솔리타리 바이스를
툭 끄집어내는 윤택수, 그의 생전에 나는 그에게 전화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아주 어설픈 전화였다. 작은 책이 있었다. ‘새 책 소식’이란 책이었다. 한 권에
5백 원인가 하는, 오십 페이지쯤 되는 분량의, 얄팍한 팜플렛 같은 책이었다.
발행처를 지금 기억하지 못하겠다. 출판협회였던가. 그런데 그 책 안엔 놀랍게도
그 주일에 나온 신간이 서른 권 넘게 다이제스트 되어 있었다. 날렵하고 예민하게
책의 핵심을 짚어낸 깨끗하고 결백하고 서정적인 문장! 그러나 그 글엔 기명이 없었다.
글을 쓴 장본인이 누군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몇 달 그 책을 받아 읽던 나는
도저히 궁금증을 누를 수가 없었다. 누에알보다 더 작은 전화번호를 책의 어디쯤에서
찾아내 전화를 걸기로 했다. 그 전화의 용건은 찬탄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적확하고
섬세한 글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는 나의 눈부심을 전하고 싶은 게 용건이었겠건만
나는 거의 항의 비슷하게 불만을 쏟아내고 말았다. 글에 왜 기명을 안 하느냐,
이래서야 독자가 글 쓴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서 쓰겠느냐, 글 쓴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
서투르고 어색하게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전화받은 여자는 그 사람 이름은 윤택수라고 하는데 기명하지 않아서 죄송하게 됐다.
지금은 출장 중이지만 오면 이름을 쓰라는 말을 꼭 전하겠다고 말했다.
또 몇 달이 흘렀다. 서평란과 한국, 한국인이라는 문화읽기 난엔 누에씨보다도 더 작게,
윤택수라는 이름이 괄호 안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미리 그 이름을 알고 있지 않았다면
판독하지 못할 만큼 작은 글씨였다. (그때 내 나이는 서른 몇이었고 지금처럼
돋보기 아니면 잔글자를 절대 읽지 못하는 그런 서글픈 시절이 아니었다.)
부재중에 익명의 독자로부터 온 항의전화가 있다기에 억지로 이름을 밝히긴 하겠지만
싫어 죽겠다는 표시가 역력했다. 그의 글은 여전히 날 열광케 했다. 과장하면 거의
오줌을 쌀 지경이었다. 아무리 길어도 그의 글은 모조리 시였다. 음률이 딱딱 맞아
그 리듬을 따라 가다 보면 내 호흡은 어느새 향그럽게 달떴다.
<4월 어느 날 나의 뒤에 그가 와서 앉았다. 4월 어느 날은 현기증이니 요절이니
형벌이니 하는 소년적이고 일상을 할퀴는 관념들에 마음이 쏠리는 시기였으므로
나는 그가 내 뒤에 와서 앉은소리를 들으면서 끈끈한 침을 삼켰다. 그는 귀족이었다.
수학과 과학에 강하고 대체로 과묵한 녀석. 귀족을 귀족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 4월에 알아버렸다. 그것은 지나치지 않은 말이었다. 지나치지 않다는 것은
말의 절대량은 물론 어세와 음량과 어휘력과 수사학에 두루 관계된다. 4월 어느 날
다가온 그를 보는 순간 나는 눈이 부셨고 열등감에 휩싸였고 끝내 불쾌한 자의식에
사로잡혔다. 눈부심이 빗선이라면 열등감은 밑선이고 자의식은 수직선, 그 모든 것을
나는 냄새로써 획득했다. 냄새는 직각삼각형처럼 구체적이고 치명적이었다.
전나무와 그림자 길이와 그림자 끝과 전나무의 높이를 개산槪算하는 일을 지치지 않는
정열로 계속했다는 비트켄슈타인, 때때로 그는 강풍으로 갸웃이 몸을 구부린
전나무의 높이를 계산하기도 했을 것이다…… 보라 나는 말이 지나치다.
지나친 말은 지나친 냄새이고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함이고 곧 천박함이다.
나는 말의 절대량이 많고 어세가 울퉁불퉁하고 음량이 고르지 못하여 끽끽거리고
날카롭고 짜랑짜랑한 어휘를 굳이 찾으려 하고 비유와 예증과 교란과 광채에 탐닉하면서
푸코적 고고학자인 척한다.>를 읽은 날 나는 예전 그 번호를 다시 눌렀다.
윤택수 씨를 바꿔 주십시오, 라고 했다. 여보세요, 라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어세가 울퉁불퉁하지도 않았고 음량이 끽끽거리지도 않았지만 용건이 애매한,
모르는 사람의 전화를 성가셔하는 기색만은 역력했다. 난 별 할 말이 없었다.
약간 떨리기도 했다. 당신이야말로 4월 어느 날 내 뒤에 와서 앉는 귀족 같아요,
그 냄새를 느껴요,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댁이 출장가고 없을 때 글쓴이의 이름을 명기하라고 주장했던 장본인이라고
사무적인 음성을 가장하여 말했다. 아, 예∼라고 그가 말했다. 전화선 사이로
휴지가 흘렀다. 반가워할 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지나치게 심드렁했다. 나는 말하자면
스토커였다. 당신 글을 잘 읽고 있다, 매호마다 책을 초조하게 기다린다, 고
황급히 고백했다. 그는 고맙습니다. 라고 차갑게 말했다. 한심하기 짝이 없군,
별 한가하고 낯 두꺼운 수작을 다 하는군, 식의 경멸이 그 말투에서 묻어났다.
그걸 느끼면서도 나는 막연하게 조금 더 전화선을 잡고 있었다. 몇 초간의 침묵 후
안녕히 계시라고 말하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끊고 나자 비로소 자존심이 상했다.
그 얼마 후부터 칼럼엔 윤택수의 이름이 없어졌다. 그의 글이 사라진 그 책은
흔하디흔한 팜플렛 중의 하나가 됐을 뿐이었다. 펼쳐보지 않아도 전혀 애석할 게 없는
흔하디흔한 홍보물……. 그렇게 나는 윤택수를 잊었다. 아니 잊을 리는 없었다.
교보에 가면 가끔 그의 이름을 검색해봤고(아직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이었으므로)
또 가끔은 예전 그의 글이 실렸던 잡지를 꺼내놓고 그가 쓴 글을 필사도 해봤다.
교보에선 윤택수라는 이름이 좀처럼 검색되지 않았다. 내 삶은 차츰 복잡해졌고
시시껄렁한 잡지에 날렵한 글을 쓰던 기자? 혹은 작가는 차츰 의식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래도 몹시 눈부신 사람을 새로 만나는 날, 나는 맘속으로 얼른 자의식과 열등감이라는
직각삼각형의 밑변과 나머지 변을 그리면서 윤택수를 기억하곤 했다. 내 책상 위
컴퓨터에 메가 패스가 깔리고도 한참 지난 후 나는 문득 떠오른 옛 이름을 포탈의
검색창에 쳐 넣어봤다.
앗, 있었다! 시집이 한 권 나왔고 산문집도 한 권 나와 있었다. 그런데 유고집이라고 했다.
유고라고? 얼떨떨했다. 분명 그 친구는 나보다 네댓 살 아래였을 텐데? 죽음이
나이순이 아니라는 것쯤이야 모를 내가 아니지만 유고라고?
다시 전화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이렇게 끈질기게 전화하는 건 내 삶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짓이었다. 죽었다고 했다. 출판한 사람은 친한 후배인데 남은 원고를
꾸려 급히 책 두 권을 만들었다고. 뇌졸중이었고 2년을 투병하다 죽었다고!
올여름 담 밑에 한련을 심은 건 윤택수 때문이다. 한련 한 판, 스무 포기를 사다 심었다.
첨엔 잎이 장하게 크더니 꽃이 몇 차례 피었다 지고 나니 잎이 점점 자잘해진다.
남의 집 자잘한 한련 잎을 이쁘다 여겼더니 그건 종자가 다른 게 아니라 꽃 지고 나면
그렇게 작아지는 거였다. 아직 한련 잎으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지는 못했다.
“…… 무를 굵직하게 채 썰어 넣은 무밥은 간장을 넣어 비벼 먹었다.
맵싸하고 달짝지근했다. 맵싸하다는 것은 이를테면 한련의 잎을 따먹을 때
입과 코의 점막이 총체적으로 체감하는 감각을 가리킨다. 나는 한련 잎으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으면 온몸과 마음이 귀족처럼 호사스러워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늙어서라도 뜻하지 않게 작은 집을 사게 된다면 담 밑에 총총하게 한련을 심을 것이다……”
라는 글을 다시 읽었기 때문이다. 늙어서라도! 뜻하지 않게! 작은 집을! 아무렇지도 않고
큰 의미도 없는 그 각 어절들에 내 마음의 현은 쓸쓸하게 퉁겨진다. 팅~소리가 실제로
귀에 들릴 만큼 파장이 크다.
1. 늙어서라도? 그는 늙지 못하고 죽었다. 늙어서라도, 라고 굳이 말하는 이유는
현재엔 도무지 그럴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학원 강사, 출판사 편집장,
용접공, 외항 선원 등으로 척박하게 도시 변두리를 맴돌았던 그에게는 한련 몇 포기를
심을 땅뙈기가 기어코 허락되지 않았다. 그의 가난과 떠돎을 동정해서가 아니라
늙어서라도! 라고 말하는 그의 현재진행형인 소심과 내성이 애틋하게 내게 공명해온다.
2. 뜻하지 않게! 는 더욱 쓰라리다. 집을 살 것을 계획할 수 없다는 항복 선언이
저 말 속에 이미 들어 있다. 뜻하지 않는 행운이 아니고서는 그는 집을 살 수가 없고
따라서 담장 밑에 팔자 좋게 한련을 키울 수가 없다. 그는 나중에 돈 벌어서,라고
기염을 토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기염을 토할 만큼 대단한 일도 아니건만
그는 저렇게나 소심하게 뒤로 물러서기만 한다.
3. 작은 집을! 이다. 앞에 두 가지, <늙어서라도>에서 시간을 먼 나중으로 저만치
물려놓았고 <뜻하지 않게>에서 미리 계획하지 못한다는 결벽증까지 충분히
꺼내 보여 놓고도, 세 번째 어절까지 와서도 고작 그는 작은, 집이라고 말한다.
좋은, 도 아니고 큰, 도 아닌 작은 집이라고 말하는 윤택수여! 크고 좋은 집이라고
미리 실컷 허풍을 떨어놔도 좋고 큰 집을 가지기가 하늘에 별 따기로 어려운 세상에서
이렇게 물러서고 도망가서야 어찌 집과 땅이 그대의 차지가 될까.
내가 알기로 그는 평생 집이라곤 가져보지 못하고 죽었다. 다락도 없고 벽장도 골방도
없어서, 혼자만의 공간, 그 어둑하고 침침한 그늘 속에서 마음속 비밀의 나무에
물을 뿌리면서 자랄 수 없었다고 결핍감을 고백하던, 충청도 어디쯤 있는
새미레의 아버지 집 말고는 그는 지상에서 안정된 자기 집을 가지지 못한 채
다른 세상으로 갔다.
그 집 없음이 슬픈 건 아니다. 집에 대한 그의 예민한 타령들- 나중 집을 지으면
다락과 골방을 많이 만들 거라는 결심, 막걸리 속에 든 효모들이 숨을 쉬면서
밀가루를 발효시키는 평화로운 시간들에 대한 언급, 갓 캐낸 둥근 감자들이 저를 캐낸
쟁기와 나란히 들어앉아 박명 속에서 두런두런 지껄이는 헛간 풍경-이 집 없음에
겹쳐져서 내 마음에 은은한 생채기를 낸다. 그 생채기는 아리고 화끈거리면서
줄곧 제 존재를 내게 상기시킨다.
그는 이렇게 쓴다. <감자의 둥금, 쟁기의 버팀과 휨, 헛간의 으스름-> 별 뜻도 없는
명사형의 겹침이 저렇게 감미롭고 아플 수 있다는 것이 나는 놀랍다.
그는 물론 결혼도 하지 않았다. 포수는 그렇게 금강산으로 갔단다. 민우야 이놈,
벌써 잠들었구나. 굳센 발, 드높은 머리, 매운 무릎, 아빠도 그만 잘란다 민우야, 라고
아들에게 우렁우렁 옛이야기를 중얼거리지만 아들은커녕 그의 삶엔 결혼조차 없었다.
아마 그는 연애조차 실감 나게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저렇게 여리고 섬약해서
어떻게 타인의 단단하게 야문 자아 속으로 밀고 들어설 수 있을까. 그가 능한 건
짝사랑이었다. 꽃다발을 만들어 당신에게 바치려 하지만 창문이 열리지 않아 결국
꽃다발은 시든다. 그 시든 꽃다발을 버리면서 그대에게 바치려던 꽃다발입니다,
그대에게 바치려던 꽃다발입니다,를 반복하는 것이 그의 사랑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의 짧은 산문 하나를 베껴두려 한다. 그는 늘 실한 산문을 쓰고 싶어 했다.
주어와 서술어가 따뜻하게 마주 보고 있는 산문, 비유와 윤색과 전고가 자제되어 있는
산문, 무심한 돌처럼 놓였어도 우뚝하고 우묵하여 우르릉우르릉 울리는 산문,
산문이란 이래야 한다는 모델을, 그 도달점을 윤택수에게서 배운다. 나의 희망은
카프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루쉰이 되는 것도 아니고 박경리가 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윤택수 만큼만 쓰고 싶다. 아니 어쩌면 윤택수가 카프카보다 더 진지하고
자기완성적인 글을 썼다고 나는 생각한다. <…… 한스 에리히 노사크의 예지는
존중할 만하다. 그의 장서 정리법은 끊임없는 스밈과 짜임의 손길을 거친 정신의
나무이다. 그 흥성거리는 나무의 우듬지를 바라보며 10년 후를 생각한다.
봄이 오면 담장에 사위질빵을 붙여 심으리라. 어린 순을 따서 아내에게 무쳐 달라고 하면
아내는 웃으리라. 10년 후엔 부전고원으로 식물채집을 하러 가리라. 그때쯤이면
아내는 늙으리라. 아내는 바느질을 한다. 그 모습이 그림 같다. 그녀는 사소설 작가
윤후명의 ‘쪽과 쪽물’을 사랑한다. 쪽물 들인 베로 치마를 지어 입는 꿈을 지니고 사는
여인이다. 중학생이 되어서 꺼뭇꺼뭇 콧수염이 잡히기 시작하는 아들놈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어디 빈집쯤에 숨어들어 키와 마음이 그만그만한 녀석들끼리
낄낄거리고 있으리라. 모르는 새에 훌쩍 커버린 놈이 제법 의뭉하다.
차를 우려내기로 한다. 큰맘 먹고 마련한 제 5 공화국 시기의 분청다완을 꺼낸다.
피천득 선생에게 전화를 드려야겠다. 아내를 부른다. 여보 이리 와 봐요,
하고 싶은 일이 있어.>
하하. 윤택수, 저쪽 세상에서 쪽물 들인 베로 치마를 지어 입고 싶어 하는 여자를
만나 콧수염 나기 시작하는 아들을 낳아 길러라. 살아있는 나는 그대 대신
담 밑에 한련을 심고 한련 잎으로 샐러드를 만들어 귀족처럼 호사스럽게 먹고
10년 후쯤 부전고원으로 식물채집을 떠나리라.
수정처럼 맑고 진흙처럼 다정한 사람이 되기는 틀려버렸다고 서른 초반의 너는
자조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는 순간 너는 수정과 진흙의 본질을 관통해나갔다.
너의 생(글)은 한 순간(문장)도 비겁했던 적이 없다. 수정처럼 눈부시고 진흙처럼
따스했다. 수정의 각도처럼 그 자체로 완벽했다. 수정과 진흙을 제 삶 안에
끌어들이는 방법을 너만큼 꿰뚫은 인간이 또 있을까. 난 이제 발밑에 뭉클거리는
진흙을 네 생각 없이 밟을 수 없다. 박물학자라는 낡아빠진 말에 다시금 가슴 뛴다.
동물과 식물과 광물을 종류, 성질, 분포, 특징에 따라 정리하고 분류하는 학문이
박물학이라면 윤택수, 그대는 거기다 시와 인문을 가져와 덧얹었다. 괭이밥과 팽나무와
물봉숭아와 능수조팝나무와 부들과 청미래덩굴과 꽈리와 보리와 뜸부기와 바둑이를
요리해내는 너의 솜씨, 그 섬세함과 현란함과 상쾌함과 따스함과 그윽함, 그 광휘와
쾌감에 내가 자지러지는 것은 이 삶과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사랑할 만한 가치로
가득 차 있는가를 나로 하여금 새삼 깨닫게 만들기 때문이다.
<…… 장쥬네의 ‘장미의 기적’ 한국어판 표지에 에곤 쉴레의 ‘꽈리가 있는 자화상’을
사용한 것은 편집자의 혜안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려나 나는 좋아하는 것도 많다.
…… 우리 마음속의 꽃 첩과 나무 첩에는 별별 꽃과 나무가 다 들어있다. 그 낱낱의
얼굴들에게 아는 척을 하면 그들이 얼마나 좋아할지. 우리는 이름을 모르는 무엇을
사랑할 수 없다. 사실은 우리도 꽃이고 나무이면서 쬐끄맣고 부질없는 무당벌레이면서.>
그래, 우리도 쬐끄맣고 부질없는 무당벌레다. 윤택수의 죄는 하나뿐이다. 수정의 각도처럼
완전하고 무결하기를 꿈꾼 것, 그래서 너무 일찍 느닷없이 죽어버린 것!
그가 남긴 글에 밑줄 긋는다. <나는 감각의 창녀이다>. 굵은 밑줄은 내 흉곽 어느 부분에
와서 덜커덩 걸린다. 아프고 괴롭다. 그렇지만 이 아픔이야말로 나의 실존이다.
나 또한 기어코 감각의 창녀여야 한다. 몇 해 전부터 갱년기가 오는 듯하지만 결격 사유는
별반 없다. 오히려 창녀로서의 관점과 시야가 넓어졌다.
살아 있는 한 인간은 꽃과 나무의 순청과 심홍에, 물관과 부름켜에, 제 핏줄과
피톨을 정밀하게 연결해낼 수 있다. 청춘을 넘겨버린 피톨들이 소슬하게 도드라질 때
내 감각의 층위와 차원은 아연 정밀하고 깊어진다. 젊은 날엔 모르던 관점이다.
나이 든 윤택수의 박물지가 더 좋을 게 확실하다. 그렇지만 우린 그를 영 잃어버렸다.
다시 만날 수 없다. 그가 남긴 말만 남아 놋쇠처럼 아름답게, 뜸부기 새끼처럼 순정하게,
여기 내 앞에서 빛난다.
김서령/ 그에게 열광하다/ 全文
첫댓글 방앗간 집 둘째 딸 이 초등학교 시절 소풍 가는 날 방송실에가 노래를
한곡 부르고 왔습니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열광을 ........
가을 추수를 하여 곡식을 방앗간에 가져가
가공하여 소달구에다 가득실고 집으로 옴니다
가족들은 겨울먹을 양식에 열광을 합니다
많은 글에 감동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젤로 잘 쓴 글은,
여행기를 읽다가 문득 그곳에 가고 싶어 행장을 꾸리게 만드는 것처럼,
문득 윤택수 씨의 글이 마구마구 읽고 싶어집니다.
잘하면 이번 필사기간에, 그의 산문도 한자락 끼일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필사기간, 그것도 기간을 정해놓고 쓰시군요.
어쩌면 이 글, 먼 바다님을 정해놓고 올린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윤택수 씨의 다른 글이 마구마구 읽고 싶어집니다.
김서령 - 둘인데, 포항 출신 소설가 김서령은 1974년 생이고, 안동 출신 김서령의 글인 것 같습니다.
지평 샘 확인해 주십시오. 고향의 서령이인 것 같습니다. 경북 안동 출생. 칼럼니스트. 매일경제신
문과 잡지 ' 샘이깊은물'에서 일하면서 인물 인터뷰에 재미를 들였다. 이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살아온 내력을 들으며 개인사가 뿜어내는 힘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왔다. 저서로는 사람 이야기를
다룬 '김서령의 가', '여자전', '안동 장씨, 400년 명가를 만들다' 등이 있다.
안동의 김서령입니다. 윤택수를 무척 애지중지한 사람이지요. '훔친 책, 빌린 책, 내 책' 보라 하여서
거금 주고 샀는데 글쎄요. 김서령이 지를 속이지는 않았을 것이고, 글쎄요. 지가 책을 옳게 읽지 못했지요.
이렇게 해서 죽었어도 죽지 않은 사람을 만납니다.
죽은 사람과 죽지 않은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사람이 있어
살아생전 그를 모르던 사람의 가슴 속에서도 그는 다시 살아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언감생심 '나도 더 늙어서라도 뜻하지 않게 짧은 글 한 편을 쓸 수 있다면 이와 닮은 글을....'하고 생각해 봅니다.
지성인의 약간은 시니컬한 인물상을 상상으로 그려봅니다. 그 윤택수란 분을....
여류수필가의 펜놀림 하나로 이렇듯 잊혀져갈 한 인간군상을 재현해내는군요
거창하지 않은 작은 바램조차도 이루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 한 문학인에 대해 저 역시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