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만 기억하는 세상
지난 일요일 KBS <개그 콘서트>를 보다 킥킥 웃게 만들다 왠지 짠하게 만드는 코너를 찾을 수 있었다.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코너가 바로 그 것이다. 샐리리맨인 듯한 박성광이 술에 취해 치안센터에서 툭툭 던지는 말이 재미있다.
“국가가 나한테 해 준게 뭐가 있냐?!!”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런 식이다.
지금까지 나온 말들을 찾아보니 이랬다.
“첫사랑 기억해…? 다섯 번째는~?” “첫 사랑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고소영하고 장동건하고 사겨요~?” “1등끼리 사귀는 더~러~운~ 세상~!!!”
“택시 운전은 1종 면허만 할 수 있는 거에요~” “1종만 택시하는 더~러~운~세상!!!”
“우리 오빠는 박재범이에요~!!!” ”아이돌만 대우받는 더~러~운~세상~!!!”
1등만 기억하는 대표적인 세상은 스포츠와 연예계다.
요즘 교통사고로 불륜설이 확산돼 곤혹을 치르고 있는 타이거 우즈. 그는 지난해 1억1000만 달러(약 1410억원)를 챙겼다. 주요 후원사 중 하나인 뷰익 등이 후원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각종 CF 출연과 골프코스 디자인 등으로 수입을 늘렸다. 하지만 타이거 우즈에 이은 2위의 프로골퍼가 누군지, 그가 얼마나 벌었는지를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피겨요정 김연아는 피겨여왕에 이어 CF퀸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다. 김연아는 삼성 하우젠에어콘을 비롯해 현대자동차, KB국민은행, 롯데 아이시스, P&G위스퍼, CJ푸드빌, 뚜레주르, 매일우유, 나이키 등 CF에 출연하고 있다. 1년 계약 기준 광고료 10억원 수준인 ‘S급’에 올라선 그의 연봉은 100억원대 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김연아에 이은 2위의 피겨선수는 누군지, 그가 얼마나 벌었는지를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이처럼 1등이 싹쓸이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일단 연봉은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먼저 보자.
연봉이 결정되는 것 역시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 풀 수 있다.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금액이 바로 연봉인 셈이다. 예를 들어 삼성과 LG처럼 제조 기업들은 첨단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을 채용하려고 하지만 이 수요를 채워 줄 수 있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전문직 임금이 높아지는 것이다. 반면 공급은 많고 수요는 적은 직종은 낮은 봉급을 받는다. 별다른 기술이 없는 일자리에는 사람들이 많이 지원하지만, 그에 비해 일자리는 적기 때문에 임금 수준이 떨어진다.
같은 전문직이라도 왜 연봉 차이는 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변호사나 의사는 왜 교수나 교사 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다. 소득격차를 설명하는 이론은 여럿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보상적 임금 격차’다. 힘들고 어려운 직업일수록 그 고생을 임금차이로 보상해 더 높은 임금을 주는 것을 뜻한다. 직업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크기 때문에 더 높은 금전적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스포츠선수와 연예인들은 왜 1등과 나머지로 구분되어지는 것일까? 바로 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팬들은 가장 잘하는 사람만을 좋아하고 기억한다. 가장 잘하는 사람은 한명 밖에 없다. 팬들은 2인자를 두 번 보는 것보다 일인자를 한번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평범한 선수 두 명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하는 선수 하나 연예인 하나가 낫다고 생각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최고의 실력을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김연아 선수가 마사다 마오와 경기하는 모습에 흠뻑 빠지며 TV 앞에 선다. 하지만 우리나라 2위의 피겨선수의 경기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솔직히 나도 누구인지 모른다).
연예계도 마찬가지다. 유재석과 강호동이 진행하는 프로그램만 유별나게 본다. 때문에 방송개편 때 마다 피디들은 두 사람을 잡기 위해 경쟁을 벌인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의 몸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오른다.
개방과 기술 발전은 더욱 1등과 그 외 사람들의 격차를 벌여 놓는다. 지금은 음반시장에서 세계 1등 가수의 음악을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공유한다. 낮은 비용으로 복제가 가능한 기술 발전 덕택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각 지역마다 훌륭한 가수들이 그 지역 곳곳에서 활동 할 수 있었다. 1~100등 정도면 괜찮은 수준으로 그 분야에서 이익을 공유할 수 있었다.
문제는 사회 각 분야에서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 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너무 많은 경쟁자를 끌어들이고 경쟁 과정에서 비생산적인 소비와 투자를 불러오게 된다.
연예인 지망생, 운동스타를 꿈꾸는 학생들, 고시생들, 금융계 취업 지원자들 등등등... 많은 사람들은 좁디좁은 1등을 위한 등용문을 향해 힘든 경쟁을 하고 있다.
최근의 통계치는 더욱 '술프게' 한다. 1999년에 자산 보유 상위 5% 계층이 우리나라 전체 순자산의 30.9%를 가지고 있었지만 2006년에는 39.8%로 늘어났다.
우리 사회 역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국가가 나한테 해 준게 뭐가 있냐?!!”이라는 술꾼의 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필통레터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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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1등하기를 바라면서 사는 걸까요
아무리 바라도 되지 않을 일에 목숨 걸고 남 뒤 쫓느라 헤매는 걸까요
그저 내게 주어진대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요
세상만사에 모두 일희일비할 수는 없잖아요
차를 타고 자나가는 복잡한 거리에는 요란한 펼침막들이 시선을 끌어당깁니다
누구네 집안 누가 사법고시에 최종합격했다고,
어느 학교에서 누구 누구를 과고나 외고에 합격시켰다고
어느 골목에 어떤 맛집이 생겼다고 마구 자랑을 해 대는 세상입니다
세세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잠시 눈길이 머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디다
세상 소식도 마찬가지더군요
잠시 눈쌀 찌푸리며 들어야하고, 혀 차면서 보아야 하고, 고개 돌려 외면해야 합니다
12월 첫 주말입니다
아무리 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지만, 2등과 3등이 있어야... 꼴찌가 있어야 그게 귀한 것이지요
언제부터인가 "느리게 느리게"를 내세우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주어진 삶을 여유있게 누리며 살자는 게 그들의 주장입니다
어차피 죽음에 이르기까지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몫이니까요
오늘도 건강 챙겨가며 마음껏 웃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