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 이름이 일단 보통이다ㅎㅎ 박웅현 <책은 도끼다>에서 극찬한 드 보통의 <프루스트가 우리 삶을 바꾸는 방법들>을 2013년 여름 들고 다니다 177쪽까지 읽고 덮었다. 그 땐 재미가 없었는지 무튼 그리고 잊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독서 밴드 회원님이 알랭드보통 책 소개를 하셔 잊고 있던 <프루스트가 우리 삶을 바꾸는 방법들 >이 떠올랐다. 그리고 도서관에 간 김에 여행의 기술도 빌려왔다.
<여행의 기술>은 어찌나 흥미진진하고 배울게 많은지, 더구나 시크하게 웃기는 문장은 정말 매력이 철철 넘쳤다~~여행을 위한 장소들 - 휴게소, 공항, 비행기 안 기내식, 기차! 생각만 해도 가슴 뛰지 않는가~ 그런데 여기서부터 반전!
새로운 시점은 풍경에 질서와 논리를 부여한다.
우리가 여행의 아름다움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소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소개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참 알차다.
-1925년 중고 차를 타고 미국 전역을 달린 에드워드 호퍼. 그는 무시 당하던, 또 종종 조롱 당하던 풍경들 속에서 시를 발견했다. 1940년 작품 주유소! 너무 좋은 그림이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일화. 플로베르는알랭드보통과 프루스트와 비슷한 인물인 듯. 이 인물을 다룬 줄리안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 란 작품도 있다.
-알렉산더 폴 홈볼트의 이야기. 이 사람의 더 자세한 이야기는 <세계를 재다>를 참고하시길
*인생에서 쓸모 있고 의미 있는 순간을 "시간의 점"을 부여 받았다고 한다. 시간의 점을 나는 언제 부여 받았나 생각해본다. 멋진 말이다. 시간의 점.
특히 이 책에서 눈을 열어주는 미술에 대해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 그림과 존 러스킨의 데생에 대한 소개는 정말 압권이다. 이 글에 자극 받아 나는 꽃을 피우려고 애를 쓰고 있는 다육이, 방울복랑을 그려보았다. 물론 엉망이 되었지만 역시 느낀 바가 크다.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인상을 굳히려면 "말로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왜 어떤 장소가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니 존버거의 <본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메스트로의 <나의 침실여행>을 소개하고 있다. 역시 드 보통이다. 번거롭게 이것저것 챙겨 떠날 생각만 하지 말고 방 여행을 권하는 이 남자!
이 책을 읽으며 어떻게 하면 내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여러 실제적인 방법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매력은 엉뚱하게 웃긴다는 거다. 이런 절묘함은 정영목 번역의 승리다. 이 분의 번역 참 좋다.
나도 가끔은 여행을 계획하고 들뜨기도 한다. 하지만 내 경우 집에 혼자 있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는 게 문제다. 이건 내 어린시절이 원인이다. 우리집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고갔다. 고모네 내외 분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우리 집에서 사셨다. 외할머니는 매번 나와 동침(?)하셨고 형편이 어려운 우리집은 하숙을 했는데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과 부쩍거리며 보냈다. 내 공간은 다락방이었다. 다락방에 대한 환상은 사양한다. 여름의지독한 더위에 겨울 추위의 극함. 싫다ㅠ
하여 나는 지금 혼자 있는 시간을 엄청 열광을 하며 사랑한다. 너무 좋아서 장소를 옮겨가며 환호한다. 거실에서 커피 마시고 2미터 떨어진 앉을뱅이 테이블에 앉아 꼼지락 거리다 괜히 마당을 서성이고 팡이랑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 받으며(팡이는 주로 의성어와 바디랭귀지만 한다. 착하다) 다육이도 보고 풀도 뽑고 데크에 앉아 책도 읽고 폰질도 하고 노래도 듣는다. 그야말로 혼자놀기 대마왕! 이렇게 쓰고 보니 제대로 드 보통 식 여행의 기술을 활용하고 있는 거 같다. 그래서 여행에 대해 절실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여행을 떠나면 주방에서 해방되고 온갖 하찮은 걱정에서 탈출하니 참 좋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