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42년 여름 롬멜의 전성기
1942.1월초 영국군을 토브룩까지 밀어낸 롬멜은 다시 공세를 시작합니다.
1942. 5.26-6.15 [가마솥 전투](전투명은 ebs다큐 근거: 영국군이 그렇게 불렀다 함.)
=> 영국군 8군단 와해되서 이집트 국경까지 후퇴. 엘 알라메인(알렉산드리아에서 조금 동쪽에 위치.)을 최후저지선으로 삼음.
1942. 6.15- 1942. 6.22 토브룩 포위 공격, 토브룩 함락시킴.
'롬멜' 독일최연소 원수로 승진.
*승리 요인*
1.[가마솥전투]는 치열했다고만 다큐에 나올 뿐 구체적 승리전술 등은 안 나와 있습니다.
대신 독일군 슈트카의 맹폭격 지원을 받았다고 하네요. 이 전투는 아프리카군단도 출혈이 무척심한 혈전이었습니다.
2. 토브룩 요새공격은 롬멜의 기만전술의 승리였습니다.
먼저 "남서쪽에 공격할 것이다."라는 정보를 흘린 후. 남동쪽의 방어전력이 그 쪽으로 이동한 틈을 타서
남동쪽을 보병들이 맹공격하여 공격할 틈을 확보하고 그 후 전차가 진군한 식으로 공격하였다 합니다.
전리품으로는 5.000톤의 식량, 2,250,000리터의 석유, 2,000대의 차량 등을 획득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독일은 이 승리를 대대적으로 선전하였습니다.
2. 1942년 롬멜의 좌절
1942.7.1 엘 알라메인 공격에 나섬.
그러나 폭격기의 공습에 아주 큰 손실만 입었고 방어진지에 막힘.
1942. 7.10 사브리나의 이탈리아군 괴멸.
1942. 8.8 '버나드 몽고메리'가 영국8군 사령관에 취임.
이 당시 엘 알라메인의 영국군은 재정비를 완료해서 그 규모가 독일군의 3배가량이었음.
1942.9.29- 10.25 북아프리카에서의 과로로 위장병을 앓고 있던 '롬멜' 독일본국으로 소환됨.
원수계급장을 받음. 그리고나서 즉시 복귀하지 않고 요양함.
1942. 10 몰타에서 출격한 영국군 이태리 남부 항구 맹폭격.
1942.10.23 영국군 총 공세 시작.
'롬멜'은 '히틀러'의 사수 명령을 무시하고 튀니지까지 퇴각
이 때쯤에 롬멜에게 남은 전차는 10여대뿐이었다 합니다.
사실 퇴각한 것도 지뢰등을 이용해서(롬멜은 매우 뛰어난 보병장교 출신입니다.) 퇴각하였다 합니다.
1942. 11 미,영연합군 튀니지 서쪽의 알제리에 상륙 [횃불작전]
롬멜의 군대는 양옆으로 포위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1942.11 북아프리카에서 완전퇴각하기 위해 '히틀러'와 담판 지으러 독일로 날아감.
그러나 독일공수부대와 티거전차만 받고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옴.
*패배원인*
1. 지중해 상공의 독일의 제공권은 어떻게 된거야??
위 내용 중 사브리나의 이탈리아군이 괴멸했다는 것이 보일 겁니다. 또한 이태리 남부 항구가 폭격을 받고요.
'롬멜'은 엘 알라메인 공격 중 "하루종일 계속된 적폭격기의 폭격으로 보병과 전차 모두 큰 피해를 입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ebs다큐)
이 얘기가 전부 맞다면 지중해 상의 독일 전투기들은 없었다는 얘기인데, 그렇담 독일 공군은 어디로 가 있었을까요?
=> 저는 요렇게 판단합니다. 독소전에 전부 가 있었다는 얘기이죠.
2. 롬멜 자신의 패착
2-1. 지나친 전선 확대: 다큐의 영국사가들은 하나같이 롬멜의 보급문제 무관심을 지적합니다.
독일의 보급항 트리폴리에서 엘 알라메인까지는 1.300마일이 넘는 거리였습니다.
도착해서 전차의 연료는 보급트럭으로 싣고 날라야 하는데, 보급트럭의 연료에 20-30%의 석유가 날아갑니다.
또한 북아프리카의 지형은 모래가 굳어진 돌, 자갈, 바위 등지라서 여기에 마모되는 기계류가 엄청났습니다.
탱크는 또 어떤가요? 탱크의 보급은 유럽전선에서는 철도로 실어날라와 진 다음에 거기서부터 탱크가 움직입니다.
그러나 북아프리카는 트리폴리에 도착하자마자 최전선 엘 알라메인까지 탱크스스로 움직여야했습니다.
단순히 연료와 탱크 보급만 해도 이 정도로 비효율적입니다. 엄청난 전선확대는 그야말로 독이었지요.
그런데 롬멜 자신은 보급문제는 "자신의 일이 아니다."라며 자신은 전쟁터에서 잘 싸우면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한편, 롬멜이 공세를 준비하던 1941년 초반에는 지중해상에 u-보트의 활동이 증가하기도 하였습니다. 전쟁 초반에 롬멜이 양질의 군대를 가지고 있던 이유 중 하나라 보기도 합니다. 저는. 그리고 1941년 중반에 이집트국경에 도달하기 전까지 북아프리카군단은 열악한 보급품 수송문제로 인해 영국군이 버리고 간 차량을 노획해서(영국군은 1941년 중반까지 대패해서 급하게 도망가느라 탱크까지 버리고 갔습니다.) 보급품을 운송합니다.
[손자병법]에 나온, "적국 내에서는 물자는 적의 것을 쓰라"는 것이지요.
2-2. 위의 내용을 보면 롬멜이 병 요양차 독일로 간 다음(원수계급장 받으러 간 것도 있지만요.)
바로 복귀하지 않았습니다.
=> 한 마디로 전쟁터에 장수가 1달동안 시간을 비워놓았다는 얘기입니다. ㅡ.ㅡ;;
롬멜외 이탈리아군 장성들은 무능력했고 이탈리아군은 사기또한 상당히 의심스러웠습니다.
3. "울트라 시스템"에 의한 이탈리아 보급선의 격침 횟수 증가
전에 제가 "애니그마"해독 얘기 한 거 아시죠?
ebs다큐에서는 "울트라 시스템"이라고 소개되는 게 있습니다. 요게 뭐냐면, "애니그마"의 독일 암호를 단 몇 시간만에 해독하는 시스템이랍니다. (출처:nardly님 블로그.) 사실 다른 글에 나중에 쓰려고 한 내용이지만, 이탈리아 보급선격침 문제는 단순 이 시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북아프리카전쟁내내 있었던 얘기입니다. 몰타섬의 존재때문이었죠.
*몰타섬: 이탈리아 정남부에 위치한 작은 섬. 고대로부터 그 지정학적 위치때문에 군사적으로 중시되왔던 섬이다.(출처: 위키백과)*
=>트리폴리까지 가는 해상보급로는 몰타섬에서 출격한 영국폭격기에 노출되기 쉬운 위치였습니다. 또한 지중해상의 제해권을 영국이 가지고 있던 터라 영국군 잠수함에 걸리기도 쉬웠죠.
참고) ebs다큐 대서양해전, 파란의역사 u-보트 편을 보면, "애니그마"의 해독때문에 u-보트는 점점 연합군에게 위치가 노출되서 작전수행이 어려워집니다.
몰타섬의 두번째 중요한 점은 영국군 항구요새 토브룩에 물자를 퍼다주는 중간보급기지 역할도 겸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토브룩은 북아프리카군단에게 둘러쌓여 고립되어서도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에즈운하 돌파를 노리는 롬멜 입장에서는 이러한 후방의 큰 위협 토브룩을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거지요. 롬멜은 1941년 사령부에 강력히 항의하여 독일공군이 몰타섬 폭격을 하기도 합니다만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고 기록에 전하네요. 이후로도 롬멜의 작전수행에 있어서 토브룩과 몰타는 두고두고 후방의 골칫거리였습니다.
4. '버나드 몽고메리'의 필승 패턴
그는 엘 알라메인에서 보급, 병력 보충등등 모든 준비가 끝나기 전까지 엘 알라메인이라는 방어진지만 구축하고
only 방어전으로 일변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아프리카군단을 칠 때는 영국8군이 아프리카군단 병력의 3배가 넘는 규모였습니다.
또한 엘 알라메인은 가까운 곳에 보급창을 두었다고 하네요. (어딘지는 다큐에 안 나와서 모릅니다. 좀 알려주십시오.)
상대는 보급이 충분치 않고 병력도 많이 소모되었으며, 먼 길을 왔고, 거기다 사령관도 부재 중이며
우리는 병력이 상대의 3배이며, 보급은 충실하고 전투기 지원은 압도적이고 등등
=> 진다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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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12월경의 상황
적색선: 아프리카군단
청색선: 영국군
녹색선: 미1군
*북아프리카 전선의 거시적 전략 목표* (1942년)
1942.3 Operation Blau(청색 작전) : 히틀러
=> 작전 목표: 카프카스 유전지대(석유)
1. 독소전의 남부집단군 : 카프카스 유전지대를 목표로 주공을 돌린다.
파생된 전투: 크림반도섬멸전, 세바스토폴 요새 공방전(만슈타인 작품)
그리고 그 유명한 스탈린 그라드 전투가 이 '청색 작전'때문에 일어납니다.
2. 북아프리카군단
(1941년도에는 그냥 구색맞추기 부대였지만 이후 롬멜의 신화적인 활약에 의해 규모가 커짐. 그리고 거기에 따른 기대도 큰 듯 보임.)
: 이집트, 수에즈운하를 돌파하여 팔레스타인 지방을 돌파, 아랍 유전을 차지하고 코카서스산맥을 통해 카프카스 유전지대에서 남부집단군과 만난다.
3. 이에 따라 터키를 추측국으로 유도한다.(외교전)
이 비현실적 전략을 대체 누가 입안했는지는 전 모릅니다.
북아프리카군단의 역할에 대해서만 얘기하자면
롬멜이 입안했다는 얘기도 ebs다큐에 나오고, 같은 식으로 히틀러가 입안했다고 다른 ebs다큐편에 또 나오고해서요.
이제 왜 1942년도에 롬멜이 그렇게 '진격, 진격'을 외쳤는지 이해되시는지요??
=> 그 사람은 원래 성향 자체가 공격 일변도인 장군이기도 합니다.
p.s)전쟁군수책임자: 괴링
=> 독일의 전투기 생산대수는 오히려 대전초기보다 후반기로 가면 갈수록 떨어졌다. ㅡ,ㅡ;;;
p.s) 괴니히스 티거의 오류를 지적해주신 락 컴페년 오피서님의 애정어린 뎃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제 글의 오류를 고칠 수 있었습니다. ^^;;;
아무래도 티거전차( 1942년말부터 1945년까지 사용되었다.출처: 위키백과)인 듯하여 그리 바꾸어놓았습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책,다큐, 위키백과'내용 다 약간씩 차이가 있군요. 글 쓸 때 이 점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ㅠ.ㅠ);;;
첫댓글 아이러니컬하게도 독일 입장에서는 롬멜이 이기면 이길수록 불리해지네요. 제공권을 장악당한 롬멜의 분투가 안습...
가마솥은 아마 가자라 전투일겁니다. 요새화한 영국 방어라인에 대한 우회공격인데, 초반에 버벅대다가 나이츠브릿지에서 한탕 크게 따고 이깁니다. (역사적으로 영국보병들이 정적인 방어전은 잘하더군요;)
와우~~!!!!! 친절한 뎃글 정말 감사합니다.
그 전투에 대해서는 워키백과나 다른 블로그에서 제대로 설명된 게 없고
오직 ebs다큐내용만 근거로 썼어야했는데........
ebs다큐내용이 괜찮긴 한데, 배경설명하고 있다가 갑자기 전장묘사하고 있고 보급의 문제를 설명하는데, 사가가 그 내용을 보충설명하고 있자면 시점이 1년전으로 돌아와서 설명하고 있고.. 그러다가 롬멜의 지휘스탈일로 넘어가고. ㅡ.ㅡ;;
=> 전체적인 윤곽을 살피기에는 정신없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윗 부분 전투는 어떻게 쓸까 정말 고민많이 하다가 어쩔 수 없이 그 명칭을 집어넣었습니다. 진심으로 내공있는 뎃글에 감사드립니다.
애시당초, 독일이 지휘관을 맞게 파견하려면 독일군부는 밑의 모델을 거기에 파견해야했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님말씀대로 롬멜이 이기면 이길수록 독일은 더 허리가 휘어지게 되는거죠.
이 것을 롬멜은 완전 나몰라라했으니............ 이런 잘못된 전략사고때문에 제가 롬멜을 만슈타인보다 밑으로 봅니다.
이건 롬멜빠인 제 생각이지만, 롬멜 입장에서 엘 알라메인 공격은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가서 전선을 축소하고 방어전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얼마 안되어 막대한 물량이 알렉산드리아에 떨어져 종국엔 필패할 것이고, 해서 모 아니면 도 식으로 알렉산드리아를 노린듯 합니다.
특히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하면 레반트에 제대로 설비갖춘 큰 군항이 있을리 만무하고 해서 영국 해군도 지중해에 체류하며 제해권을 주장하기 힘들게 됩니다. 상당한 요충지이죠.
추가적으로 롬멜 회고록에서 알라메인 당시까지 롬멜이 근접항공지원 (CAS) 의 위력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던 듯한 느낌이 듭니다. 뭐, 이게 맞다면 명장평가에서 마이너스가 되긴 하겠네요.
훗날 프랑스방어작전에 투입된 롬멜은 "해안을 요새화하라!"라는 명령에 회의적이었다 하네요. 굳이 롬멜뿐만 아니라 독일사령부와 히틀러도 그들이 성공한 전격전의 한 뼈대인 폭격기 지원의 효과를 그 때는 망각한 듯 합니다.
또한 프랑스 방위전에서 롬멜은 어차피 해안을 요새화해봤자, 후방에 공수부대가 침입해서 양동공격하면 버틸 수가 없으니, 프랑스 내에 정예화기갑사단 1개를 상비시켜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 그렇게 독일 지휘부는 그렇게 하긴 했는데, 다큐에서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그 부대의 지휘관의 판단미스와 상륙지점 예측 실패로 결국 막지 못하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노르망디때의 방어계획은 해안파vs내륙파 둘을 절충한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계획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자세한건 누군가가 알려주시겠 (후다닥)
락 컴페년 오피서님/ 친절한 뎃글 감사드립니다. 동의합니다. 애초에 전선을 공세위주로 해서 확대시킨 롬멜은
거기서 멈추면 죽도밥도 안 되는 상황이 연출될 것은 명약관야했었습니다. => 결과적으로 역사에서는 엘 알라메인에서 패전함으로써 그리 됐지만........
그러기때문에 편지내용인가? "사람들은 아마 날 미X넘으로 여길거요.. 하지만 난 전체적으로 더 큰 것을 보고 있다오."하는 것을 쓴 것으로도 그리 생각되네요.
레반트가 엘 알라메인에 보급을 하였던 곳인가요?? 잘 몰라서요. 보충설명을 해주시면 안 될까요?
지중해에 맞닿은 아랍 지역 있지요? 현재 이스라엘 요르단 등이 있는 지역, 거길 레반트라 합니다 (Levant). 그리 대단한건 아니고 그냥 지역명입니다;
아, 그런데 "괴니스티거" 가 혹시 쾨니히스 티거 를 말하시는 건가요? 쾨니히스 티거는 44년 제품이라 사막에 출연한 적이 없습니다 - 영양가 없는 딴지입니다; 적당히 넘어가십시오.
허걱 그 부분은 바로 수정해야겠습니다.
질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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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8월 8일 버나드 몽고메리가 영국8군 사령관에 취임했다는데,원래 8군 사령관에 몽고메리말고 다른 장군이 취임할려고 했다는 군요(아마 고트 장군인가 뭔가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네요..). 근데 그 장군이 비행기로 오다가 독일 전투기에게 격추되어 전사했고 그 대타로 몽고메리가 온거라는데 맞는지요
..
넵. 오킨레크가 짤리고 1942년 8월 7일 신임 중동 파견군 8군 지휘관 고트 중장이 타고 있던 브리스톨 수송기가 독일 공군에 의해 격추되면서 몬티 중장이 그 후임으로 오지요.
지중해 상공의 독일공군... 몰타를 맹폭격한 독일 10항공군은 롬멜의 맹진격에 의해 일부가 북아프리카로 파병되서 그 수가 뚝 떨어집니다. 또한 그리스-크레타쪽으로도 이동하고 이 부대는 그대로 소련으로... 처칠은 끝까지 몰타를 버리지 않는 집념을 보여주면서 계속 항모->몰타로의 전투기 이동을 시켰으며 시칠리아 메세나-북아프리카 트리폴리 북아프리카 주축국 수송선단의 반정도가 침몰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합니다..
역시, 그렇게 된 거였군요.
처칠의 판단은, 베스트입니다~~!
내공있는 Roiche님의 보충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사실 이집트가 뚫렸으면 당시 독소전쟁도 독일이 유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처칠은 최악의 국면을 맞이했겠죠. 그러고보니 이 즈음에 싱가폴도 허무하게 빼앗겼죠? 북아프리카 전선에 목숨 걸 만 합니다;
42년 5월 가마솥전투.. 5월 말~6월 초는 빌 하르케임전투라고 불립니다. 연합군 저지선이 빌 하르케임이었기 떄문이죠. 이떄 독일공군 남부 총사령관 알베르트 케셀링 장군까지 아프리카로 분부를 옮기는등 대공세에 확실한 지원을 해 줬지요. 그러나 엘 알라메인에서 막히면서 좌절.
흠. 확실히 1942년도 초반부의 승리가 롬멜 혼자의 공은 아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