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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현대사 북아프리카군단 전사 : 1942년
Che_GueVaRa 추천 0 조회 501 10.01.22 01:33 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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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1.22 16:09

    첫댓글 아이러니컬하게도 독일 입장에서는 롬멜이 이기면 이길수록 불리해지네요. 제공권을 장악당한 롬멜의 분투가 안습...

  • 10.01.22 17:51

    가마솥은 아마 가자라 전투일겁니다. 요새화한 영국 방어라인에 대한 우회공격인데, 초반에 버벅대다가 나이츠브릿지에서 한탕 크게 따고 이깁니다. (역사적으로 영국보병들이 정적인 방어전은 잘하더군요;)

  • 작성자 10.01.22 17:57

    와우~~!!!!! 친절한 뎃글 정말 감사합니다.
    그 전투에 대해서는 워키백과나 다른 블로그에서 제대로 설명된 게 없고
    오직 ebs다큐내용만 근거로 썼어야했는데........

    ebs다큐내용이 괜찮긴 한데, 배경설명하고 있다가 갑자기 전장묘사하고 있고 보급의 문제를 설명하는데, 사가가 그 내용을 보충설명하고 있자면 시점이 1년전으로 돌아와서 설명하고 있고.. 그러다가 롬멜의 지휘스탈일로 넘어가고. ㅡ.ㅡ;;
    => 전체적인 윤곽을 살피기에는 정신없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윗 부분 전투는 어떻게 쓸까 정말 고민많이 하다가 어쩔 수 없이 그 명칭을 집어넣었습니다. 진심으로 내공있는 뎃글에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 10.01.22 17:52

    애시당초, 독일이 지휘관을 맞게 파견하려면 독일군부는 밑의 모델을 거기에 파견해야했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님말씀대로 롬멜이 이기면 이길수록 독일은 더 허리가 휘어지게 되는거죠.
    이 것을 롬멜은 완전 나몰라라했으니............ 이런 잘못된 전략사고때문에 제가 롬멜을 만슈타인보다 밑으로 봅니다.

  • 10.01.22 17:54

    이건 롬멜빠인 제 생각이지만, 롬멜 입장에서 엘 알라메인 공격은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가서 전선을 축소하고 방어전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얼마 안되어 막대한 물량이 알렉산드리아에 떨어져 종국엔 필패할 것이고, 해서 모 아니면 도 식으로 알렉산드리아를 노린듯 합니다.

  • 10.01.22 17:56

    특히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하면 레반트에 제대로 설비갖춘 큰 군항이 있을리 만무하고 해서 영국 해군도 지중해에 체류하며 제해권을 주장하기 힘들게 됩니다. 상당한 요충지이죠.

  • 10.01.22 17:58

    추가적으로 롬멜 회고록에서 알라메인 당시까지 롬멜이 근접항공지원 (CAS) 의 위력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던 듯한 느낌이 듭니다. 뭐, 이게 맞다면 명장평가에서 마이너스가 되긴 하겠네요.

  • 작성자 10.01.22 18:07

    훗날 프랑스방어작전에 투입된 롬멜은 "해안을 요새화하라!"라는 명령에 회의적이었다 하네요. 굳이 롬멜뿐만 아니라 독일사령부와 히틀러도 그들이 성공한 전격전의 한 뼈대인 폭격기 지원의 효과를 그 때는 망각한 듯 합니다.

  • 작성자 10.01.22 18:07

    또한 프랑스 방위전에서 롬멜은 어차피 해안을 요새화해봤자, 후방에 공수부대가 침입해서 양동공격하면 버틸 수가 없으니, 프랑스 내에 정예화기갑사단 1개를 상비시켜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 작성자 10.01.22 18:09

    실제 그렇게 독일 지휘부는 그렇게 하긴 했는데, 다큐에서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그 부대의 지휘관의 판단미스와 상륙지점 예측 실패로 결국 막지 못하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 10.01.22 18:10

    노르망디때의 방어계획은 해안파vs내륙파 둘을 절충한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계획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자세한건 누군가가 알려주시겠 (후다닥)

  • 작성자 10.01.22 18:03

    락 컴페년 오피서님/ 친절한 뎃글 감사드립니다. 동의합니다. 애초에 전선을 공세위주로 해서 확대시킨 롬멜은
    거기서 멈추면 죽도밥도 안 되는 상황이 연출될 것은 명약관야했었습니다. => 결과적으로 역사에서는 엘 알라메인에서 패전함으로써 그리 됐지만........

    그러기때문에 편지내용인가? "사람들은 아마 날 미X넘으로 여길거요.. 하지만 난 전체적으로 더 큰 것을 보고 있다오."하는 것을 쓴 것으로도 그리 생각되네요.

    레반트가 엘 알라메인에 보급을 하였던 곳인가요?? 잘 몰라서요. 보충설명을 해주시면 안 될까요?

  • 10.01.22 18:06

    지중해에 맞닿은 아랍 지역 있지요? 현재 이스라엘 요르단 등이 있는 지역, 거길 레반트라 합니다 (Levant). 그리 대단한건 아니고 그냥 지역명입니다;

  • 10.01.22 18:09

    아, 그런데 "괴니스티거" 가 혹시 쾨니히스 티거 를 말하시는 건가요? 쾨니히스 티거는 44년 제품이라 사막에 출연한 적이 없습니다 - 영양가 없는 딴지입니다; 적당히 넘어가십시오.

  • 작성자 10.01.22 18:12

    허걱 그 부분은 바로 수정해야겠습니다.

  • 10.01.23 17:05

    질문있습니다..ㅎㅎㅎ..1942년 8월 8일 버나드 몽고메리가 영국8군 사령관에 취임했다는데,원래 8군 사령관에 몽고메리말고 다른 장군이 취임할려고 했다는 군요(아마 고트 장군인가 뭔가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네요..). 근데 그 장군이 비행기로 오다가 독일 전투기에게 격추되어 전사했고 그 대타로 몽고메리가 온거라는데 맞는지요?..

  • 10.01.23 23:08

    넵. 오킨레크가 짤리고 1942년 8월 7일 신임 중동 파견군 8군 지휘관 고트 중장이 타고 있던 브리스톨 수송기가 독일 공군에 의해 격추되면서 몬티 중장이 그 후임으로 오지요.

  • 10.01.23 23:22

    앗!!!..답변 감사드립니다..ㅎㅎㅎ

  • 10.01.23 22:56

    지중해 상공의 독일공군... 몰타를 맹폭격한 독일 10항공군은 롬멜의 맹진격에 의해 일부가 북아프리카로 파병되서 그 수가 뚝 떨어집니다. 또한 그리스-크레타쪽으로도 이동하고 이 부대는 그대로 소련으로... 처칠은 끝까지 몰타를 버리지 않는 집념을 보여주면서 계속 항모->몰타로의 전투기 이동을 시켰으며 시칠리아 메세나-북아프리카 트리폴리 북아프리카 주축국 수송선단의 반정도가 침몰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합니다..

  • 작성자 10.01.24 05:01

    역시, 그렇게 된 거였군요.

    처칠의 판단은, 베스트입니다~~!

    내공있는 Roiche님의 보충설명에 감사드립니다.

  • 10.01.27 18:49

    사실 이집트가 뚫렸으면 당시 독소전쟁도 독일이 유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처칠은 최악의 국면을 맞이했겠죠. 그러고보니 이 즈음에 싱가폴도 허무하게 빼앗겼죠? 북아프리카 전선에 목숨 걸 만 합니다;

  • 10.01.23 23:15

    42년 5월 가마솥전투.. 5월 말~6월 초는 빌 하르케임전투라고 불립니다. 연합군 저지선이 빌 하르케임이었기 떄문이죠. 이떄 독일공군 남부 총사령관 알베르트 케셀링 장군까지 아프리카로 분부를 옮기는등 대공세에 확실한 지원을 해 줬지요. 그러나 엘 알라메인에서 막히면서 좌절.

  • 작성자 10.01.24 05:04

    흠. 확실히 1942년도 초반부의 승리가 롬멜 혼자의 공은 아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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