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학 소식】
別辭
— 책 머리에
주간 정진규
《現代詩學》25년을 떠납니다. 사뭇 비장해지는 바가 없지 않습니다만 유별난 소회를 적어 그 비장함에 또 다른 췌언을 더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 간의 歷程 그 자체가 제 삶이요 詩業이었음을 그 자체로 오롯이 남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를 무슨 별다른 수식어나 상투적인 절망의 몸부림 같은 것으로 누더기가 되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1988년 8월부터 2013년 12월 오늘까지입니다. 그 자체일 뿐입니다. 새해 1914년 甲午年 1월부터는 내 시와 삶에 나는 甲午更張이라 할 내 생애 마지막 새로운 詩業의 詩誌를 나의 시와 함께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함께했던 지극했던 분들, 시인들과 독자들게 드리는 것은 5백 37권의《現代詩學》일 뿐입니다. 나는 우리 1900년대의 12년, 2000년대의 13년을 우리 현대시와 함께 했으며, 그 곁에 늘 여러분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또한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오늘까지 50여 년간의 내 시력도 우리 현대시문학사와 함께했음을 감히 분명하게 기록해 둘 따름입니다.
한 편의 제 시를 여기 옮겨 別辭에 대신합니다. 드릴 것이 없는데 제 빈손을 이것으로 잡아 주신다면 여러분의 손등 위에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을 떨구겠습니다. 또다시 여러분과 함께하는 새 길이 우리 시의 幢竿支柱가 될 것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12월 정진규 절
이별 • 알詩 63
어제는 안성 칠장사엘 갔다 잘생긴 늙은 소나무 한 그루 羅漢殿 뒤뜰에서 혼자 놀고 있었다 비어 있는 자리마다 골고루 잘 벋어나간 가지들이 허공을 낮게 높게 어루만지고는 있었지만, 모두 채우지는 않고 비어 있는 자리를 비어 있는 자리로 또한 채우고는 있었지만, 제 몸이 허공이 되지는 않고 허공 속으로 사라지지는 않고 허공과 제 몸의 경계를 제 몸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허공이 있고 늙은 소나무가 있었다 서러워 말자
—정진규 시집『알詩』(1967. 세계사)
——《現代詩學》2013년 12월호. 통권 537호
*시 전문 월간지《현대시학》은 전봉건 시인이 1969년 4월호로 창간. 이후 사재를 털어가며 19년 동안 잡지를 간행하던 중 전봉건 (1928년 10월 5일 ~ 1988년 6월 13일, 향년 59세) 시인이 1988년 여름에 타계하였습니다. 그 뒤를 정진규 시인이 이어받아 1988년 8월호부터 오늘까지 25년간 《현대시학》을 간행해 오다가 2014년 1월호부터 다시 창간인 고 전봉건 시인의 유족 손에 발행권을 넘기게 됐다 합니다. 새롭게 펴낼《현대시학》의 주간으로는 이재무 시인이 맡게 됐다는 소식, 그리고 정진규 시인은 따로 계간 시지《현대시인》을 새로이 선뵐 예정이라 합니다.
첫댓글 선생님 감사히 옮겨갑니다.
선생님, 안타까운 마음으로 스크랩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