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유사(逸士遺事) 라고 하는 우리나라 고전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한양에 김학성씨라고 하는 유명한 분이 살았는데 그의 어머니는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과부가 되어서 삯바느질을 하면서 두 아들, 형제를 서당에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여느 날과도 같이 그날도 집에서 삯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이 비오는 날 처맛물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주룩주룩,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울림같은 여운이 나서 '이상하다' 여겨서 처마 밑을, 땅 밑을 파보았더니 커다란 가마솥이 있고, 그 솥뚜껑을 열어보니까 그 속에 은이, 은전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아마도 잦았던 난리로 인해서 누군가가 이 은을 이렇게 가마솥에 넣어서 땅에 묻어놓고 피난을 갔다가 못돌아오고 그 어디선가 죽어버렸던가봐요. 이렇게 생각을 하고 이 가난한 어머니는 재빨리 그 뚜껑을 덮고 그리고 되묻어서 흙으로 다 묻어서 그 집을 팔고 조그마한 오막살이로 옮겨가서 어머니는 여전히 삯바느질을 하면서 두 아들을 애써 가르쳐서 훌륭한 사람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어머니가 임종을 앞두었을 때 두 아들을 불러놓고 그 옛날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땀흘리지 아니한, 또 갑작스럽게 얻은 재물이라는 것은 곧 재앙을 부르는 것이다" 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여러분, 저는 이 글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오늘같은 날 이런 일이 있었으면 축하파티를 했습니다. 신문에 났을 겁니다. 재수 좋은 사람이라고 lucky라고, 팔자 고쳤다고, 이제 삯바느질 할 필요없다고 너희들 공부 걱정할 것 없다, 우리 운명이 이렇게 열렸고 복을 받았다고 기뻐하고 축하했을 것입니다. 공짜, 횡재, 그리고 불로소득, 이것을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일확천금, 속성 부흥전략 교회안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당신은 이것을 거부하고 정도를 걸을 수 있는가? 호 11:3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을지라도 내가 저희를 고치는 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고난을 통한 축복 (본문:욥5:17)
세상에서 축복을 받으며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소망일 것입니다. 이는 풍요롭게 사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 욕망일 것입니다. 좀더 풍요롭고, 좀더 안락하고, 보다 더 큰 권세를 누리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성도라고 할지라도 이같은 욕심이 없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성도는 더욱 더 창성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이만큼 임했노라고 자랑하고 싶을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축복으로 창성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으로 지금까지 복된 삶을 누린 것은 묻혀버리고 고난받은 것이 더 부각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이에 반해 악인이 번영하는 것이 크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구약에서 욥의 경우일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많은 복을 누렸으나 한 순간에 고통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그때 욥의 친구들이 찾아와 욥의 고난을 놓고 왈가왈부하였습니다. 그들은 욥을 정죄하고 회개할 것을 종용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욥의 고난을 통해서 혹 우리들에게도 닥칠지 모르는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그리고 고난을 통해 우리가 이루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1. 고난을 통해 단련하심(욥23:10) 1) 믿음을 굳게 함 욥은 난데없는 고통 속에서 고난의 원인이 무엇인지, 고난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몰라 당황하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고난을 통해서 자신을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는 욥의 고백은 고난받는 자의 바른 태도를 보여줍니다. 욥은 고난받는 중에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을까 걱정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고난이 와도 걱정 없다는 믿음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시련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해결해 주신다면 시련은 시련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더욱 큰 믿음으로 하나님을 붙잡을 것입니다. 욥은 바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더욱 굳게 하실 하나님의 연단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때로 불가해한 고난을 당할 때 당황합니다. 그러나 고난 속에 묻혀버리고, 고난받는 것만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고난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 그것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를 상고하고, 고난이 하나님께서 연단하시기 위해 주신 것임을 알 때, 우리는 능히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고난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소망하는 가운데 더욱 굳은 믿음을 몸에 익혀야 하겠습니다(벧전1:8,9). 2) 하나님을 의지하게 함 고난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합니다. 고난 가운데 처함 사람은 무엇인가를 의지하여 자신에게 임한 고난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알 수 없는 병으로 시달리던 사람이 무속의 힘을 빌어 악귀를 쫓아 버리겠다고 하는 경우를 보기도 합니다. 이는 무엇인가 의지하고자 하는 심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허탄한 세상의 미신이 아니라, 전능하시고 도움이 되어 주시기로 약속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욥은 자신에게 임한 고난의 의미를 알 수는 없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믿음의 진일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고난도 연단이 되어 자신을 정금같이 나오게 하리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관건은 바로 누구를 의지하여 고난을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역시 부족하고 제한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의지할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미신도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성도는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의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하나님에게서로다(시121:1,2)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고난이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였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의 진일보를 이루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고난을 통해 말씀을 지키게 함(시119:67) 1) 말씀을 귀히 여기게 함 하나님의 계시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을 때 욥은 하나님 앞에서 순전한 자, 정직한 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귀한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욥이 고난받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는 고난 가운데서 나온 탄식이었습니다. 그것은 엄밀히 불순종에서 나온 원망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욥은 자신의 고난을 하나님의 연단으로 인식한 후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곧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론이나 학설로 발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그래도 드러나야 할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고난 속에서 욥은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는 마치 다윗이 고난 중에 주의 율례를 배웠노라고 고백한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시119:71). 그렇습니다.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를 깨닫는 자의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비록 고난 중에 처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이것이 곧 고난 중에 성도가 누리는 축복입니다. 2)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게 함 욥은 고난이 극에 달했을 때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겠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고난이 연단이 되어 욥의 신앙을 강건하게 했음을 의미합니다. 욥의 처지를 되돌아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욥의 고백이 신앙의 고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사에서 사람들은 조금만 어려움을 겪어도 낙심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욥은 고난 가운데서 더 이상 자기 변명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있습니다. 이것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첩경입니다. 고난이나 슬픔이나, 그 어떤 인생의 문제에 있어서 해결책은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할 때 문제의 해결책을 얻을 것입니다. 특별히 욥처럼 불가해한 고난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복하여 고난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3. 고난을 통해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게 함(히12:11) 1) 의롭게 함 히브리서 기자는 고난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곧 히브리서 기자는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신다'(히12:6)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징계란 문자 그대로 악한 행실에 대한 형벌이 아니라 '고난을 통한 교육과 양육'이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이는 고난이 개인의 잘못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라는 성격보다는 성도를 양육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교육적 성경이 더 강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개인의 잘못에 대한 하나님의 꾸짖음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부모가 아이의 그릇된 행실을 꾸짖는 것처럼 하나님도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징계하사 바르게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징계는 사랑의 표현이요, 그 목적은 성도를 의롭게 하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 모든 사람이 받는 고난 가운데서도 성도가 누리는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함께 하시는 고난이야말로 정결하고 거룩케 하는 것으로서 축복이 아닐 수는 없습니다. 2)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함 물론 고난을 즐거워할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고난은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보다도 이같은 사실을 잘 알고 계시다는 사실이 성도에게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이 괴로운 일인 줄 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를 연단하시는 것은 사랑하는 당신의 거룩한 자녀들을 헛된 길에서 바르게 인도하고, 온전히 선하고 의로우신 당신의 뜻에 순복하여 성령의 거룩한 열매를 맺고, 장차 영원한 참생명에 참예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고난은 당장에는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결과는 풍성하고 영화로운 영생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고난에 참예하는 것을 즐거워하라고 하였습니다(벧전4:13). 결론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늘 가나안을 향해 가는 성도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결코 안전하지 못합니다. 고난이 따르고, 위협과 도전이 있습니다. 시인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니는 처지를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푸른 추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있는 것입니다(시23:1-6). 그러나 그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성도에게 축복입니다. 이 연단 후에 받을 축복이 또한 풍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처하여 고난을 만날지라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놀라운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다 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