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7일 범불교도대회는 “대한민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는 평을 받을 만큼 수많은 불자들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낸 역사적 사건이었다. 전국 곳곳에서 각자의 생계마저 내버리고 달려온 사부대중 불자들은 출재가, 나이, 직업 등 모든 것이 다양했다. 이들은 각자 저마다의 가슴에 품은 한마디를 쏟아냈다. 누군가는 대통령을 향해, 누군가는 정부를 향해, 또 다른 누군가는 교계를 향해 쓴소리를 뱉었다. 하지만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요구한 것은 ‘상호존중’, ‘상생’이었다.
특별취재팀
장로 아닌 국민의 대통령 되길
박정희(74·충북 제천·주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왔다. 늙은이가 무슨 힘이 될까싶어 망설였지만 막상 와보니 오길 잘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은 국민을 한 마음 한뜻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큰 숙제이자 임무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것을 모르고 있다. 그는 장로가 아니다. 국민의 대통령이다. 또 종교인의 입장으로 보더라도 타종교에 대한 배려는 자신의 종교를 더욱 빛나게 한다.
이래도 모르는 척 할 텐가
윤광채(64·전북 익산·자영업)
먼저 오늘 이 자리는 불자들이 모여 참회하는 자리이다. 오늘날의 종교차별 역시 우리 모두가 초래한 공업(共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범불교도대회를 통해 불자들의 단합된 힘을 보여주었다.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수장이라면 이 문제에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해야 한다. 이렇게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도 눈과 귀를 닫고 있다면 앞으로 어떻게 대통령을 믿고 따르겠는가.
상대종교 인정은 상식이다
양승현(21·경기 부천·대학생)
불교는 희망이 있는 종교다. 촛불집회에 여러 번 참여했지만 오늘처럼 감동을 받은 적은 없었다. 특히 연세 지긋한 분들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먼 곳에서 참여하는 모습을 보니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젊은이들이 더 많이 참여하지 못한 것이 죄송스럽다. 우리나라 모든 국민에게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 자유가 없는 곳엔 희망도 없다. 이건 상식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대통령만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일방적인 선교행위 규제해야
박덕천(64·경기 광주)
법보신문에서 종교편향의 사례들을 접하면서 참담한 심정이 들었다. 불자들이 참고 이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사실 그동안 개신교인들의 일방적인 종교선교행위는 어린 아이들에서부터 외국인들에 이르기까지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특정종교를 차별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특정종교의 선교행위 규제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찾아야 할 권리이다.
편향 없어야 상생의 길 열린다
대효 스님(제주 원명선원장)
화합과 평화는 상대에 대한 이해와 존중에서 출발한다. 다종교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내 종교가 소중하면 남의 종교도 소중한 법이다. 무조건적인 통합과 전체주적인 획일화를 고집하다보면 평화와 화합이 설 곳이 없다. 특히 공심으로 일해야 할 공직자들이 편향에 앞장서는 것은 스스로 자격이 없음을 고백하는 것에 불과하다. 무조건 참고 지켜보고 있는 것만이 자비는 아니다. 지금은 우리 불자들이 정부의 종교편향을 규탄하고 당당히 외쳐야 할 때다. 그게 진정한 상생의 길이다.
일회성 규탄대회는 안된다
도가 스님(여주 수호사 주지)
대단히 놀랍고 감격적이다. 그동안 우리 불교계가 탄압받고 멸시받았던 분노와 저항의 표출일 것이다. 조계종을 비롯한 각 종단의 지도자 스님들은 우리의 이런 요구가 일회성에서 그치지 않도록 노력해주셨으면 한다. 그럴 때 대통령의 사과 및 종교편향 금지법 마련 등 불자들의 열망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단체를 조직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모임을 통해 모니터링하고 항의하고 시정토록 하는 조직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전통문화 부정 더는 용납할 수 없다
효현 스님(쌍문노인복지센터장)
사실 나는 지금까지 정치나 사회의 일에 무관심으로 일관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은 나로 하여금 ‘모르는 척’하며 살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심지어 요즘은 일제시대에도 없던 문화와 유산을 없애는 자국문화말살정책을 펴고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뿌리 없는 나무는 존재할 수 없다. 불교를 지운다는 것은 우리의 역사를 지우고 뿌리와 문화를 부정하는 행위다. 결단코 우리는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불교 저력 보여준 것 같아 뿌듯
법현 스님(경주 미타사 주지)
어떤 재가불자가 처음 삼천배를 마쳤을 때처럼 오늘 범불교도대회도 감동적이었고 불자로서 큰 자긍심을 느꼈다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나 또한 불교의 저력을 보여준 것 같아 내심 뿌듯했다. 대통령은 특정인의 대통령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다. 그나마 평화롭던 종교간 갈등을 부추기고 조장하면서 어떻게 뿌리 깊은 지역, 빈부, 남북의 갈등 문제를 해결하고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겠나.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불교인들로부터도 존경받는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
시국해결 열쇠 대통령에 있어
황순일(41·서울·동국대 교수)
속이 시원하다. 범불교도대회에 참석한 일원으로써 불교도들의 힘을 보여준 것 같다. 내가 유학했던 영국도 종교 간의 마찰이 적지 않은 나라였다. 주로 가톨릭과 성공회 사이의 마찰이다. 하지만 그 마찰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없다. 같은 기독교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질적인 종교들이 혼재하고 있다. 이런 경우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 결국 열쇠는 대통령이 쥐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종교는 상호 존중 속에 빛나는 것
김태숙(46·미국 뉴욕·주부)
내 것이 소중하면 남의 것도 소중하다. 종교는 상호존중과 배려 속에서 그 본질을 찾을 수 있다. 현 정부의 종교편향 정책을 멀리서 지켜보다 이 자리에서 그간의 과정을 내 눈으로 확인하니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정부의 종교편향도 문제지만 개신교의 안하무인격 선교행위가 나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스님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변화해야 하고 정부는 국민을 위해 화합과 상생의 길을 찾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역사 보여주고파
김민경(41·경남 통영·주부)
범불교도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통영 용궁사에서 왔다. 6시간이나 걸리는 힘든 길이었지만 내 아이들에게 역사의 현장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7살 막내까지 삼남매를 모두 데리고 왔다. 오늘 이곳을 가득 메운 우리 불자들의 목소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달되길 바란다. 그래야 부당한 대우에 항의한 평화적 시위가 사회를 바꿀 수 있었다는 기억을 이 아이들에게 심어줄 수 있지 않겠나.
생계보다 불자 자존심이 중요
오흥석(52·전북 부안·자영업)
우리나라는 다종교국가다.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무작정 차별만 하면 그 차별이 오히려 자신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더구나 국민들을 화합시켜야 하는 대통령이 앞장서서 불교를 소외시키니 불자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하루 돈 안 벌었다고 큰일이 나지는 않는다. 생계보다 불자로써의 내 자존심이 우선이다. 오늘 여기서 아직 한국 불교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불자들 분노는 당연한 결과
민선현(22·서울·대학생)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불교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가만히 앉아 공부만 할 수 없어 친구들과 함께 나왔다. 대통령은 종교와 무관한 자리라고 생각했기에 처음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나름 우호적 입장에서 지켜봤다. 그런데 쉬지 않고 터지는 종교편향적 행태를 보면 이건 명백한 불교 탄압이다. 변명이나 해명조차 확실치 않아 지금 이 사태까지 온 것 아니겠나. 당연한 결과물이다.
내 꿈은 신부…스님들 보기 좋아
김유강(16·서울·중학생)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곧장 왔다. 사실 나는 천주교 신자고, 내 꿈은 신부다. 다른 종교의 생각도 알고 싶어 오늘 참가했다. 불자들이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고, 감동받았다. 개인적으로 종교가 정치 눈치를 보거나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종교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삶 속에서 살아있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 스님들의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
963호 [2008-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