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마할로 가는 길목 후마윤묘
(후마윤묘 주차장에서 본 외부 성곽과 키오스크)
다음으로 가는 곳은 후마윤묘다.
악바르대제의 아버지인 후마윤이 묻혀있는 곳이다.
페르시아 정원양식인 쩌르버그가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어 후에 타지마할을 짓는데 많은 참조가 되었다는 곳이다.
후마윤 묘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두 개의 문을 통과해야하는데 외문에서 중문으로 가는 길에
이곳을 짓기 위해 동원된 페르시아 기술자들이 묵었다는 건물의 구역과 그 곳에 있는 묘가 눈길을 끈다.
(중문)
먼저 후마윤 묘를 보기로 하고 그냥 지나쳐서 중문으로 간다.
중문에는 서점이 있어 인도 고건축학괴에서 발행한 인도유적지 도록을 팔고 있다.
지나온 곳 중 아그라포트 말고는 이런 곳을 본 적이 없어, 지나온 유적지에 관한 도록을 몇 권 산다.
중문이 있는 건물 안에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투각된 창으로 보이는 후마윤묘도 다른 느낌이라 사진을 몇 장 찍는다.
중문 안의 구역은 정확히 4분할 된 구역의 정 중앙에 후마윤묘가 자리하고 있다.
후마윤묘역까지 5분할된 쩌르버그 양식의 장식정원은 지금까지 본 유적 중 가장 크다.
사방 어느 곳에서나 보아도 똑같은 건물은 흐트러짐 없는 완벽성을 추구하고 있다.
자신에 대한 경배와 그 경배에 대한 무차별성의 신성을 나타내는 것 같다.
어디에서 보아도 변함없듯이 그 안에서 나오는 신의 사랑이나 왕의 사랑은 누구에게나 똑같다는 생각에서 만든 것 같다.
건물 안에 들어가니 중앙돔 밑에 정중앙 밑에 후마윤의 관이 놓여 있다.
돔 천장의 울림을 시험하는지 손바닥을 마주쳐 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어 옆에 서 있으니 소리의 반향이 좋다.
여기도 무덤이라 돔 천장이 높아도 빛이 들어오는 창은 낮은 곳에 있고 문을 통해 들어온 빛이 바
닥에 반사되어 실내를 밝히고 있다.
어느 방향이든 다 똑같은 건물인 묘당의 뒤로 돌아가니 관광객이 하나도 없고 정원 잔디에 물을 주는 관리인만 있다.
마당 쪽으로 내려오는 우리 일행을 발견하고는 부리나케 뛰어온다.
우리가 못 들어 올 때를 들어왔나 생각하며 걸어가니 다가와 뭐라고 말을 건다.
“지하에 후마윤 엄마의 묘가 있는데 구경해보지 않겠느냐”
“그래 그거 좋다”
앞서 가더니 지하로 들어가는 문을 열고 전깃불을 치켜든다.
지하 특유의 냄새와 석회석 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불빛에 비친 통로는 마감이 되지 않은 토굴 같다.
10여 미터 내려가니 방 하나가 나오고 중앙에 단을 쌓고 그 위에 관 하나를 놓았다.
지하임에도 천장은 돔으로 되어있다. 빛을 비추니 온 천장과 벽에는 빈틈없이 까맣게 박쥐 떼가 덮여있다.
어딘가에 이들이 드나드는 구멍이 있나 보다.
내 생전 이렇게 많은 박쥐 떼는 처음 본다.
아까 동굴 입구에서 맡았던 냄새가 이들의 것이었나 보다.
영생을 꿈꾸며 잠들고 있는 방이 박쥐 떼의 서식처가 되었으니 삶과 죽음은 언제나 공존하고 있는가 보다.
이방인에 갑작스런 침입에 놀란 박쥐와 관 안에 계신 분에게 미안한 마음을 빌고 돌아 나온다.
관리인의 특별한 행동에 뭐 별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이 분이 특별히 친절하여 저 멀리서 우릴 보자마자
‘아 저분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보여줘야지’
하는 마음이 순간 일어나 한달음에 달려왔을 리는 만무한 일이고,
특별대접을 받았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하는 것은 방문객의 예의니
주머니에 있는 20루피를 꺼내서 건넨다.
물론 관리인은 '에게 이게 뭐야' 이런 표정으로 투덜거리지만 일단 건넸으면 뒤 돌아 보지 않는 것
이 시간 없는 여행자의 상책이니 얼른 그 자리를 뜬다.
후마윤묘에서 나가는 길은 들어온 중문이 아닌 페르시아 기술자들의 숙소 쪽으로 난 길로 잡는다.
이곳으로 가는 곳에 장식정원의 수로와 연못에 물을 대는 샘이 하나 보인다.
아그라포트에서 본 양식과 같다. 무슬림의 상징인 꺽쇠무늬가 비스듬히 경사져있는 곳으로 흘러내린다.
무슬림의 신성한 율법과 진리의 말씀이 하늘에서 땅으로 흘러내리듯.
페르시아 기술자들의 집과 그들의 모스크는 후마윤묘와 달리 많이 허물어져 있다.
묘당이 완성된 후 기술자들이 떠나 그들이 머물고 생활하든 숙소였던 이곳이 더 이상 필요 없었겠지.
죽음의 집이야 주검이 있는 한 필요하겠지만 삶의 집이야 사람이 떠나면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이니
버려지고 훼손되고 결국 무너져 버린다.
저 집처럼 저 곳에 살았던 사람들도 사라졌겠지만 그들이 남긴 후마윤묘는 남아 지금도 많은 사람 입에 오르내린다.
역사를 받쳐주고 완성해간 수많은 민초의 삶과 이들 앞에 서서 혹은 이들 위에 군림하던 영웅과 군주들의 삶의 모습이 투영된다.
부처님이 그 밑에서 해탈했다는 보리수 두 그루만이 모두를 알고 있다는 듯 입구에 서있다.
마지막으로 이샤칸의 묘를 본다.
독립된 공간에 페르시아 양식의 장식 정원 안에 있는 이샤 칸의 팔각형 묘는 규모는 작지만 팔각
건물을 감싸고도는 회랑의 기둥이 아름다워 눈길을 끈다.
코발트블루의 타일이 영원한 하늘을 꿈꾸었던 이들의 심성을 말해주는 것 같다.
후마윤묘 앞 잔디밭에서 점심으로 김밥을 먹는다.
사르나트에서 먹는 김밥보다는 맛이 좋았지만 양이 너무 적다.
델리 물가가 바라나시 물가보다 비싸서 그런 것인지 인도쉼터에서 만든 김밥은 어제 저녁의 그 푸짐함은 어디로 가고
우리 아들 어린이집 소풍 때 싸주던 애기 김밥이다.
오늘 떠나는 것을 알았음인가 뜨내기 상대하는 역 앞 식당이 생각난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아님 호기심에 그런지 일부는 음식을 싸가지고 놀러온 인도 가족의 도시락을 얻어먹기도 한다.
주변을 둘러봐도 주전부리 파는 행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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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후마윤의 묘^^; 그의 위상을 보는듯 합니다...엄마의 묘가 지하에 있다는건 몰랐네요.따라갔을지라도 박쥐때문에 보지도 못했을거지만..ㅎㅎㅎ 시간없는 여행자가 아니라 시간이 많았다면 흥정을 했을까요??
혼자 돌아다니다가 모이는 시간 다돼서 문으로 가니 문이 잠겨있고 사람들은 잔디밭에서 오수를 즐기는 분위기...ㅠㅠ 지나가는 사람붙잡고 저문은 언제 열리냐고하니 열리지 않는다고... 헉~~ 나중에 보니 정 반대편 문이었어요 첫날에 이어 마지막날에도 미아가 될 뻔한 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일행에게 돌아왔다는... ㅠㅠ
애써 발놀림을 서두르지 않고 그냥 천천히 발을 옮기던 곳, 첫날 밟은 델리의 느낌과는 또 다른 델리를 맛보게 한 휴식처였던 이곳, 연인드레게 어울리던 곳, 나도 연인이 되어 왔지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