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동문동성당
서산 동문동성당 서산 지역 신앙 공동체는 합덕 본당 산하 공소로 출발했다. 1908년 폴리 신부가 서산 지구 본당을 홍성군 구항면 공리에 설립한 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본국으로 돌아가자 다시 합덕 본당에 합병되었다. 1917년 안학만 신부가 서산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여 본당을 팔봉면 금학리로 옮겼다가 제1차 세계대전 후 폴리 신부가 다시 주임으로 부임하여 1919년 현재의 상홍리 공소 자리에 강당 및 사제관을 신축했다. 두 차례의 본당 이전 후 1932년 바로 신부가 현 부지를 매입하여 1937년 10월 성당을 신축 완공했다. 2007년 본당 설립 9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했던 서산 동문동 성당은 2008년 10월 100주년 감사미사를 봉헌했다. 1년 만에 10년이나 거슬러 올라간 이유는 본당의 설립 시점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반영된 것으로, 기존에 안학만 신부가 금학리에 부임한 1917년을 설립 연도로 지내오다가 1908년 5월 9일 공리에 설립된 수곡 본당이 본당 역사의 시작임을 공식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2008년 본당 설립 100주년을 맞아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성당 소제대에 안치하고, 1937년 현 성당 준공 당시의 옛 제대와 옛 감실을 복원하여 축복했으며, 100주년 기념비도 세웠다. 서산 동문동성당 바실리카 평면 구조에 입면은 장식을 지극히 간략화한 고딕 양식의 교회건축물인 서산 동문동 성당은 2007년 4월 30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32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그해 7월에는 바로 신부의 신심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성당 뒤편에 ‘바로 동산’을 조성해, 십자가의 길과 바로 신부의 묘비 및 콜랭 신부 추모비를 세웠습니다. 서산 동문동성당 서산 동문동성당 2007년 4월 30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321호 명패 2007년 4월 30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321호 명패 서산 동문동 성당 뒤편 바로 동산에 설치된 바로 신부 묘비와 콜랭 신부 추모비1950년 6 · 25 전쟁 중에는 콜랭 신부가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대전으로 압송 도중 폭격을 당해 행방불명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순교자의 후손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는 서산 동문동 본당은 1935년 해미 하천변에 생매장되어 있던 병인박해 순교자들의 유해와 유물을 발굴하여 상홍리에 있는 순교자 묘지에 안장했다. 해미 본당 설립 이후 상홍리에 임시 안장된 해미 무명 순교자 유해는 1995년 9월 해미 성지로 이장되었다. 바실리카 평면 구조에 입면은 장식을 지극히 간략화한 고딕 양식의 교회건축물인 서산 동문동 성당은 2007년 4월 30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321호로 지정되었다. 그해 7월에는 바로 신부의 신심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성당 뒤편에 ‘바로 동산’을 조성해, 십자가의 길과 바로 신부의 묘비 및 콜랭 신부 추모비를 세웠다. 바로 신부 묘비와 콜랭 신부 추모비 바로 신부 묘비와 콜랭 신부 추모비 성모상 성모상 동문동 성당 앞마당 해미 순교자 기념비 앞에 있는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비 이 자리는 병인박해 때 형구로 사용된 해미 자리개 돌(1956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가 1986년 원위치로 다시 옮김)이 있던 곳으로 현재는 기념비와 형구돌,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비가 있다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비 동문동 성당 앞마당 해미 순교자 기념비 앞에 있는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비 앞마당 해미 순교자 기념비 앞에 있는 형구돌 성당 마당의 본당 주보인 수호천사상 본당 주보인 수호천사상 성당 사무실과 교육회관 성당 사무실과 교육회관 성당내부 성당내부 성당내부 출입구 성당 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