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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은 중국의 남북을 가르는 진령산맥(秦嶺山脈)의 북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그 주위에 서악(西岳) 화산(華山), 종남산(終南山), 태백산(太白山), 등 한국사람들에게도 이름이 익숙한 명산(名山)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화산을 제일 좋아한다.
명나라 때 유명한 지리학자이며 여행가인 서하객(徐霞客)이 오악(五岳)과 황산(黃山)을 차례로 오른 뒤 현재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산중에서도 제일은 오악이고, 그 오악을 모두 합쳐도 황산만 못하다 (오악귀래불간산 황산귀래불간악, 五岳歸來不看山 黃山歸來不看岳)'라는 말을 남겼지만 내게 있어서는 중국의 그 많은 산중에서도 화산이 제일이라는 말이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토록 화산에 이끌리게 하는지 그동안 알 수 없었는데, 어느 날 번잡한 마음을 추스르느라고 혼자서 화산을 오르다 작은 도관 입구에서 여도사를 만났을 때 난 화산과 나의 연(緣)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잠깐 스쳐 지나간 여도사의 기억이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토록 생생한 것을 보면 홍루몽(紅樓夢)에서 보옥(宝玉)과 대옥(黛玉)이 전생에서 부부의 연이었듯이, 어쩌면 그녀와 난 전생에 화산의 이 작은 도관에서 함께한 도반(道伴)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보면 대옥이 꽃잎 장례식을 하며 인연이 이어지지 않음을 한탄하는 구절이 떠오르곤 한다.
작소정외비가발 (昨宵庭外悲歌發) 어젯밤 뜰 밖에서 슬픈 노래 들렸는데
지시화혼여조혼 (知是花魂與鳥魂) 그것은 꽃 넋과 새 넋의 울음이었네
화혼조혼총난류 (花魂鳥魂總難留) 가는 꽃과 새 넋을 어이 막으랴
조자무언화자수 (鳥自無言花自羞) 새는 말이 없고 꽃은 부끄러워하는구나
[화산에서 만난 여도사]
나와 화산과의 이생(現生)에서의 인연의 시작은 이렇다. 몇 년 전 우연히 알게 된 몇 분의 무협소설작가들과 함께 무림성지순례(武林聖地巡禮)를 한 적이 있다. 그분들은 내게 그동안 책에 의한 지식과 상상력만으로 무협소설을 써왔는데 이제 그 한계에 다다랐다며 무협소설에 자주 나오는 중요한 방파들의 본거지들을 방문하는데 안내를 해달라고 부탁해왔다.
나도 평소에 무협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산들을 가보고 싶었기에 그분들의 제의를 흔쾌히 수락하였다. 그때 우리는 연길에서 만나서 우선 백두산에 들른 다음 화산파(華山派)가 있는 화산, 종남파(終南派)파가 있는 종남산, 소림사(小林寺)가 있는 숭산, 그리고 무당파(武當派)가 있는 무당산 등을 돌아봤었다.
이렇게 서악(西岳) 화산(華山)은 오악 중에서 내가 제일 먼저 오른 산이고, 또 2008년부터 현재까지 6년 동안 화산의 산자락인 서안에서 살고 있으므로 서안을 방문하는 손님들을 모시고 일년에도 몇 차례씩 오르는 산이며, 무엇보다도 내가 힘들 때마다 와서 위로를 받고 가는 산이기에 전생에서뿐만 아니라 이생에서도 그 연(緣)이 면면부절(綿綿不絶) 이어지고 있다. 그 화산이 나를 부르기에, 오늘도 나는 산을 오른다.
화산이 속해 있는 진령산맥은 한국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그 웅장하고 깊은 산세 때문에 옛날부터 중국의 남방과 북방을 나누는 분계선이자 벼농사와 밀농사의 분계선이었다. 진령산맥의 최고봉은 태백산(해발 3,767미터)으로 여름에도 눈이 많이 쌓여 있어서 크게 희게 보인다고 해서 태백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당나라의 시선(詩仙) 이백(李白, 701-762)이 자신의 자(字)를 ‘태백(太白)’이라고 지은 이유가 태백산에 들어가 도를 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화산은 진령산맥의 동쪽 끝에 있으며 서안에서는 동쪽으로 약 120킬로 정도 떨어져 있다. 고속도로가 잘 닦여져 있어서 차를 타고 가도 한 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서안에서 북경까지 5시간 만에 주파하는 시속 30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리는 고속열차의 첫 기착지가 화산인 까닭에 이번에는 고속열차를 타고 화산까지 가기로 했다.
서안에서 화산까지 가는 120킬로미터의 짧지 않은 철길은 진령산맥을 오른쪽으로 끼고 길게 늘어져 있었다. 화산까지 가는 50여 분 내내 차창 밖으로 웅장한 산봉우리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있다. 귀거래한 도연명은 전원생활을 주제로 하여 현묘(玄妙)하고도 유원(悠遠)한 은자(隱者)의 세계를 그린 20수로 이루어진 〈음주(飮酒)>라는 연작시를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제5수가 가장 유명하다. 제5수에는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에 나오는 남산이 바로 진령산맥의
주봉중의 하나인 종남산(終南山)을 가리킨다.
결려재인경 (結廬在人境) 초막을 짓고 사람들 속에 살아도
이무거마훤 (而無車馬喧) 말과 수레 소리 시끄럽지 않구나
문군하능이 (問君何能爾) 묻노니 어찌 그럴 수 있는가
심원지자편 (心遠地自偏) 마음이 속세를 떠나면 저절로 그렇다네
채국동리하 (採菊東籬下)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꺾어 들고
유연견남산 (悠然見南山)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네
산기일석가 (山氣日夕佳) 산 기운은 황혼에 곱고
조비상여환 (飛鳥相興還) 날던 새들 짝지어 돌아오네
차중유진의 (此中有眞意) 이 가운데 참뜻이 있으리니
욕변이망언 (欲辨已忘言) 하고자 하는 말을 잊었노라
많은 화가가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을 인용하여 그림으로 남겼는데 그 중 겸재 정선(1676-1759)의 두 폭 부채 그림(扇畵)이 유명하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동리채국’와 ‘유연견남산’ 두 폭의 부채 그림을 본 기억이 난다.
[겸재 정선의 동리채국도와 유연견남산도]
화산은 만장절애(萬丈絶崖)라는 말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험준한 바위산으로 산 중앙에 조양봉(동봉, 2,090m), 연화봉(서봉, 2,080m), 낙안봉(남봉, 2,160m), 운대봉(북봉, 1,614m), 옥녀봉(중봉, 2,038m)의 다섯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화산의 각 봉우리들은 그들만의 특색을 자랑하는데 서봉은 절벽(西峰绝壁),동봉은 일출(东峰日出), 남봉은 소나무(南峰奇松),그리고 북봉은 운해(北峰云雾)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산이 악명을 떨치는 것은 각각의 산정에 이르려면 험준한 산길과 가파른 계단길, 철난간이 걸려 있는 위험하고도 아슬아슬한 곳을 무수히 지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화산은 그 웅장한 산세로도 유명하지만 우리 남정네들에게는 김용(金庸, 1924~)의 소설 영웅문(英雄門)의 배경이자 무협소설 속의 수많은 고수가 자웅을 겨루던 무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화산에 처음으로 올랐을 때 함께 간 무협소설작가 중 한 분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대부분의 무협소설에서는 화산파를 대표하는 검법이 매화검법인지라 화산에는 당연히 매화나무가 많이 있고 매화꽃이 만발하리라고 상상해 왔었는데 막상 화산에 올라보니 매화나무가 없군요…”
정말 그랬다. 그 화려했던 화산파의 성세까지는 느낄 수 없었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도관도 있었고, 또 도사들도 볼 수 있었는데 정작 화산파를 대표한다는 매화나무는 거의 볼 수 없었다. 화산파를 대표하는 것은 분명 매화나무인데 왜 화산에는 매화나무가 없을까? 그 대답은 아직까지 찾을 수가 없다.
서안에서 출발한 지 정확히 50분 만에 화산 입구인 화음역에 도착하였다. 우선 화음역에서 택시를 타고 매표소까지 간 후 다시 매표소에서 케이블카가 출발하는 동문까지 셔틀버스를 타고 갔다. 동문에서 북봉까지 가는 길은 두 개로 하나는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돌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것이다.
동문에서 북봉까지 이어진 긴 돌계단은 그 수가 무려 3,999개에 이른다고 한다. '화산을 오르는 길은 하나이다'라는 옛말에서 알 수 있듯이 돌계단을 걸어서 화산을 오르는 길은 무척 가파르고 험하다. 그동안 몇 번 일출을 보느라고 저녁에 학생들과 함께 돌계단을 걸어 올라갔지만, 오늘은 시간이 충분치 않아 북봉(北峰)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북봉까지 도착하는 시간은 단 8분, 수직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 옆으로 칼로 반으로 자른 듯한 모습의 바위산들이 장엄하게 늘어서 있다. 화산을 보고 나면 옛사람들이 산수화를 왜 그렇게 그렸는지 이해할 수 있다.
[화산의 다섯 봉우리]
북봉을 돌아본 뒤 화산을 대표하는 동, 서, 남, 북 중 다섯 봉우리 중 제일 높은 남봉으로 향했다. 아찔한 낭떠러지 사이로 난 공중다리를 건너고, 거의 90도 경사의 바위를 기어 올라가느라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열심히 올라가는데, 어디선가 구성진 목소리로 이태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을 노래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여하사서벽산 (問余何事棲碧山) 왜 청산에 사느냐고 물었더니
소이부답심자한 (笑而不答心自閑) 웃으며 대답하지않으니 마음 절로 한가롭네
도화유수묘연거 (桃花流水杳然去) 복사꽃 흐르는 물에 아득히 흘러가니
별유천지비인간 (別有天地非人間) 인간 세상이 아닌 별천지일세
잠시 쉬는 동안 땀을 훔치면서 목소리의 진원지를 알아보니 북봉서부터 남봉까지 그 위험하고도 가파른 길을 따라 물건을 실어 나르는 지게꾼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험한 길을 몇 시간을 걸려 짐을 날라도 한국 돈으로 약 4,000원 정도밖에 못 받는단다.
그들의 수고에 비해 턱없이 낮은 보상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서 마침 내 곁에서 쉬려고 자리 잡는 지게꾼에게 노래 잘 들었다며 돈을 건네니 고맙다고 환하게 웃으며 받는다. 그는 감사하다는 의미인지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검게 탄 얼굴과는 다른 미성의 구성진 목소리, 그리고 그의 고단한 삶과는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산중문답의 내용이 언뜻 부자연스럽게 다가왔지만, 이것 또한 내 편견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산을 올랐다.
그렇게 차근차근 한 시간여를 더 올라가자 오후 늦어서 남봉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정상에 서니 멀리 위하평원(渭河平原)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감격을 누리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산을 오르나 보다.
[화산의 정상 남봉에서]
산은 여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오늘도 변함없이 나를 감싸주었다. 나는 오늘도 산에서 위로함과 힘을 얻고 다시 세상으로 나간다. 산에서 내려오며 우리네 삶을 다시 한 번 바라본다. 진정 한가로운 마음(心自閑)을 누리며 사는 것은 나일까 아니면 그 지게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