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많은 교인들을 무참히 처형하여 장대위에 매달아 둔 순교터
병인박해 당시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된 순교터다. 1860년 경신박해 때는 오치문(또는 오상선)이 이곳에서 백지사형으로 순교하였다는 구전이 있으며, 병인박해 때에는 진목정에서 은거하다가 체포된 허인백, 김종륜, 이양등 등이 체포되어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한 곳이다.
장대벌은 장대(將臺)가 있는 벌판이라는 뜻으로, 장대란 지휘관이 올라가서 군사들을 명령하던 돌로 쌓은 대(臺)를 말한다. 조선 왕조 시대 군영에는 연병장 정면에 장대가 있었고 연병장에서는 군사들의 훈련, 사열, 열병 이외에 간혹 중죄인에 대한 사형, 즉 군문효수(軍門梟首: 군영에서 죄인의 목을 베어 그 머리를 매달아 걸어 두어 군중에게 경계심을 심어 주는 형벌)가 집행되기도 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경상좌도 병마절도사(慶尙左道兵馬節度使, 종2품)가 있었던 이곳은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된 순교터다. 울산 장대벌 첫 번째 순교자는 1860년 경신박해 때 순교한 오치문(1804~1861)으로 언양의 명문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1801년 이곳 언양에 귀양 온 강이문에 의해 이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교인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학자이면서도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신앙을 받아들인 후에는 오로지 교리만을 실천하려고 애썼다.
구전에 의하면, 1860년 경신박해가 경상도 지역을 휩쓸게 되자 오치문은 곧바로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울산 장대로 압송되었고 그곳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순교 당시 그는 얼굴을 한지로 덮은 채 물을 뿌림으로써 숨이 막혀 죽게 하는 백지사형을 받았는데, 무의식중에 혀를 내밀어 물 묻은 한지를 뚫자 군사들이 그 구멍을 막아 질식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전을 뒷받침해 줄 문헌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울산 장대의 두 번째 순교는 1868년에 일어났다. 병인박해가 계속되면서 교우들은 아무도 살지 않는 곳으로 옮겨가야만 했고, 이때 울산 간월산 아래에 살던 허인백(許仁伯, 1822~1868, 야고보), 이양등(李陽登, ?~1868, 베드로), 김종륜(金宗倫, 1819~1868, 루카) 가족 등이 안전한 피난처를 물색하다가 범굴을 찾고 이곳에 가족들을 피신시켰다. 포졸들은 이 깊은 산중에까지 들이닥쳐 이들을 경주로 압송하였다. 그곳에서 형벌을 받고 울산으로 이송되어 장대 앞에서 참수형을 받으니, 때는 1868년 9월 30일이었다.
순교자들의 유해는 허인백의 아내 박조이(朴召史)에 의해 거두어져 비밀리에 사형장 근처에 가매장했다가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어 교인들의 장례가 가능해지자 연고가 있는 월성군 산내면 진목정 안산에 합장되었다. 그러다가 1932년 5월 28일에는 대구시 감천리 교회 묘지로, 1962년 10월 25일에는 다시 묘지 내 성모상 앞의 석함 속에 옮겨졌다가, 1973년 10월 19일에는 대구 신천 복자 성당으로 이장하였다.
▒ 울산 병영성
조선 시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의 영성이며, 조선 시대 성곽 연구에 중요한 유적이다. 사적 제320호로 울산 중구 서동 149-8외에 소재한다. 경상좌도의 병마절도사가 머물던 성으로, 조선 태종 17년(1417년)에 쌓은 해발 45m이하의 낮은 구릉을 이용해 골짜기를 두른 타원형의 성이다.
초기에는 성벽 위에서 담처럼 생겨 몸을 숨긴 채 총이나 활을 쏘는 시설인 여장을 비롯한 기본적인 시설만 갖추었다. 그 후 세종 때에 이르러 국방력 강화를 위해 성을 보호하고 공격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옹성·적대·해자 등 여러 방어 시설을 설치했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당시 성의 둘레는 3,723척(약 1.2㎞)이고, 높이는 12척(약 3.7m)이며, 성 안에는 우물·도랑·창고 등이 있었다고 한다.
▒ 가슴 붉게 뜨는 (울산 장대벌에서) <김영수> ▒
동천강 옆 장대벌에서
나는 하늘의 틈 비집으며
죽는 시늉 해봅니다
강언덕 달리며 환호하는 아이들
나는 아이들이 일구는
싱싱한 바람 한 입 물고서
해질녘 하늘 바라봅니다
가슴 붉게 뜨는 대지에는
아직도 블꽃 튀지 않는 나의 사랑
곱게도 낯선 놀은
분명 나의 생애 아닙니까
내가 쪽빛 하늘 닿는다며
기껏 허공에 머물렀을 뿐입니까
무딘 기도로 서성였을 뿐입니까
밤 되면 나는
어느 별들의 사이에서
한 점 투명한 빛 펼칠까요
■ 순교자
◆ 이양등 베드로 ( ? ∼1868년) <하느님의 종 125위>
이양등 베드로는 경상도 울산의 죽령 교우촌(현 경남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회장이었다. 본래 성품이 선량하였던 그는 꿀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열심히 수계 생활을 하였다. 그 후 그는 1866년의 병인박해를 피해 죽령 교우촌으로 이주해 온 허인백(야고보)과 김종륜(루가)을 만나 서로 권면해 가면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2년 뒤인 1868년 포졸들이 마침내 죽령 교우촌을 찾아내게 되었고, 베드로는 그곳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는 몸이 되었다. 그는 경주 진영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게 되자 굳건하게 신앙을 증거하였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울산으로 이송되어 장대(將臺, 현 경남 울산시 병영동)로 끌려 나가 허인백, 김종륜과 함께 1868년 9월 14일(음력 7월 28일)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순교 당시에 그는 십자 성호를 긋고 예수 마리아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고 하며, 그의 시신은 형장까지 따라온 허인백의 아내 박조이에 의해 거두어져 비밀리에 안장되었다.
◆ 김종륜 루가(1819∼1868년) <하느님의 종 125위>
김종륜 루가는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 충청도 공주에서 천주교에 입교한 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본관은 경주요, 족보 이름은 ‘경희’(敬熙)이다. 루가는 평소에 특히 화목함을 강조하였고, 어느 누구와도 화목하게 지내려고 노력하였다. 1866년에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부모를 모시고 경상도 상주 멍에목(현 경북 문경군 동로면 명전리)으로 피신하였다. 다시 언양 간월(현 경북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을 거쳐 울산 죽령(현 경남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교우촌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죽령 교우촌에서 그는 이양등(베드로) 회장과 허인백(야고보)을 만나 서로 권면해 가면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1868년에는 그는 그곳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는 몸이 되었다. 그는 경주 진영에서 굳건하게 신앙을 증거하였다. 이어 루가는 동료들과 함께 울산으로 이송되어 장대(將臺, 현 경남 울산시 병영동)로 끌려 나가 이양등 회장과 허인백과 함께 1868년 9월 14일(음력 7월 28일)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50세였다. 순교 당시에 그는 십자 성호를 긋고 예수 마리아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고 하며, 그의 시신은 형장까지 따라온 허인백의 아내 박조이에 의해 거두어져 비밀리에 안장되었다.
◆ 허인백 야고보(1822∼1868년) <하느님의 종 125위>
허인백 야고보는 1822년 경상도 김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언양으로 이주해 살았다. 그러다가 25세 때 천주교 신앙에 대해 듣고 입교하였으며, 이후로는 아주 열심히 수계 생활을 하여 교우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다. 그는 아내 박조이와 자식들에게도 열심히 교리를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정결을 지키기 위해 아내와 남매처럼 살았으며, 고신극기와 애긍에 힘써 가난한 이와 병든 이들을 많이 도와 주었다.
1860년 경신박해가 일어난 뒤 그는 체포되어 무수히 매를 맞고 언양으로 끌려가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천주교 신자임을 떳떳하게 고백하였다. 옥에 갇혀 50여 일을 지낸 뒤 경주로 이송되었으며, 8개월간 옥에 갇혀 지내다 박해를 중단하라는 임금의 명에 따라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후 그는 울산의 죽령(현 경남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산중으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양등(베드로) 회장과 김종륜(루가)을 만나 함께 신앙생활을 하였고, 나무 그릇을 만들어 팔아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는 묵상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자주 순교 원의를 드러내곤 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 2년 뒤인 1868년에 죽령 교우촌에서 체포되어 경주로 끌려가게 되었다. 경주 진영에서 문초 후 동료들과 함께 울산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이곳 장대(將臺, 현 경남 울산시 병영동)로 끌려 나가 이양등 회장과 김종륜과 함께 1868년 9월 14일(음력 7월 28일)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47세였다. 순교 당시에 그는 십자 성호를 긋고 예수 마리아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고 하며, 그의 시신은 형장까지 따라온 아내에 의해 거두어져 비밀리에 안장되었다.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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