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처음 인사동 나들이를 했습니다.
오늘 따라 하늘도 맑고 기온도 올라 집을 나서 지하철을 타고 30여분을 달려 안국역에 도착해
인사동 거리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먼저 한식당 '선천집'을 찾았습니다.
선천집에는 오래전부터 다니던 기억이 있지만 골목길을 들어서니 '사천집'을 비롯하여 '귀천' 같은
몇몇 낯익은 집들이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歸天'은 아시겠지만 천상병(1920~1993) 시인의 부인이 운영하던 찻집으로 원래는 더 아래 골목에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 골목으로 이전해 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선천집은 대문의 간판부터 一中 김충현선생의 글씨지만 옛날에는 집안에 一中의 글씨가 많았던 기억이
나서 마담에게 물어봤더니 이젠 대부분 딴곳으로 옮기고 多孫室에만 선생의 글씨가 있다고 해서 손님이
빈 틈을 타서 잠시 들어가 보니 아래 글씨가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감히 소감을 말하기가 주저스럽지만 제 소견으로는 아마 선생의 만년의 작품인듯, 필력이 많이 쇠해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같이 자식 많이 낳기를 권장하는 세태에는 맞는 글귀 같기도 합니다.
이제 발길은 오늘의 목적지인 '가나인사아트홀'로 향합니다.
인사아트홀에서는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고 메스컴을 통해 알게 된데다
아내가 가자고 했던 곳이라 오늘 큰 마음 내어 같이 나왔던 것입니다.
박수근 화백(1914~1965)은 생시에는 화가로서 어렵게 살았고 일반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후에 더 평가를 받은 화가로 '서민화가'라는 렛텔이 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선호하여 많이 팔렸고 70년대에는 그의 작품이 모자라 화상들이 미국에 가서 소장자들에게
애걸하다싶이하여 사오는 통에 그의 그림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던 얘기를 들은 기억이 아직 제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70년대 중후반부터 그의 그림 값은 이중섭 화백의 그림값을 추월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도 그의 작품은 국내작가로는 가장 비싼 가격으로 거래가 되고 "빨래터"라는 작품은 2007년 경매에서
45억2천만원에 낙찰되어 사상최고가를 경신하였다가 한동안 위작시비에 걸려 메스컴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었지요.
아래는 화제작' 빨래터'입니다.
아트센터 건물 1층에서 4층까지 총 120여점의 작품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박수근 화백의 고향 양구에 있는 '박수근 미술관'에는 그의 진품을 보기 힘들다고
들었는데 주최측에서 어떻게 해서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작품을 모와 전시하게
됐는지 놀랄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입장료로 10,000원씩
(경로 8,000원) 받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3월 16일까지 전시한다고 합니다.
그림과 함께 전문가 몇 분의 감상에 도움이 될만한 글도 전시돼 있기에 옮깁니다.
관람을 마치고 돌아오는 인사동 길 바닥에 아래와 같은 김삿갓의 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첫댓글 사진 보니 부인이 미인 이시네요 ! 잘 모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