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종목 중 100m 달리기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선수들은 경주에 앞서 많은 준비를 하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을 가볍게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꼭 필요한 최소한의 착용만을 하고, 그것 조차도 가장 가벼운 소재를 찾기에 골몰합니다. 조금이라도 무거운 것을 몸에 지녔을 때 그 경주는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의 삶을 천국 문을 향한 경주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경주를 할 때, 세상의 것들은 무거운 짐이 됩니다. 육체적 쾌락, 물질에 대한 욕심, 어떤 것에 대한 지나친 집착 등은 무건운 짐이 되어 성도의 경주를 실패로 이끕니다. 보통 때에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을 때 있습니다. 그러나 경주가 시작되면 모든 것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당신의 삶을 무겁게 누르고 당신을 지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당신이 벗어 버리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욕심이 아닌가? 요일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달려갈길을 마치면(딤후4:5-8)
'인생(人生)'을 일컫어 비유하는 많은 어구 가운데, 성경은 '달리기하는 경주(競走)'와 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사도바울은 자신의 인생길을 가리켜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 가지의 은유(metaphor)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그만큼 인생이 빨리 지나간다는 것을 확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달음박질해나가는 경주와 같은 것입니다.
시편 제 90편에서 "우리 인생은 신속히 가니 날아가는 것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아무도 이 빠르게 가는 인생을 멈추게 하거나 더디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혜로워야 할 우리는 세월을 아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은 컴퓨터의 시대입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많이 쓰는 문서작성의 경우, 글을 쓰다가 혹 잘못 썼을 경우에는, 커스(cursor)를 뒤로 옮겨서 다시 쓰면 잘못된 것이 지워지고 새 글이 작성됩니다. 또한 방안에 편히 앉아서 전 세계의 소식을 얻을 수 있는 인터넷(Internet)의 기능을 통해, 각 홈페이지에 들어가 정보를 열람하다가 다시 마우스 하나로 손쉽게 빠져 나올 수도 있고, 또 다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결코 이와 같지 않습니다. 컴퓨터로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서 쉽게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고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인생은 붓글씨를 쓰는 것과 같습니다. 정석껏 먹을 갈고 떨리는 손으로 붓을 잡아 획을 긋습니다. 혹 실수라도 하여 잘못 긋게 되면 그 자국이 그대로 종이위에 선명하게 남습니다. 바로 이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의 달음박질을 하다가 한번 어긋난 길로 가게 되면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바른길로 방향을 수정해 고쳐가기에는 엄청난 어려움과 많은 시간, 그리고 고통스런 인내를 요구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5장15절이하에서 "너희는 세월을 아끼라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품었던 소망과 계획들을 과연 얼마만큼 실천하고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늘 돌아살펴보아야합니다. 인생은 '날아가는 것'과 같기에, 더욱 우리의 삶이 바르고 옳은지, 시간을 내어 항상 점검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나는 선한 경주를 싸워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한 경주'를 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 진리에 거하며 불법을 행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어려운 난국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정신을 잃고 있습니다. 수입이 줄어들고 일자리가 없어지는 불안한 세상살이에서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신만은 살아남고자 하는 본능적 욕구가 생기게 되며,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유혹들을 받게 됩니다. 때때로 달려가야만 하는 인생 경기의 규칙을 어기고 수레에 타고 가거나 자동차를 타고 가는 등의 불법을 자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12장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 말씀합니다.
또한 성경은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속히 쇠잔할 것이니라.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시 39:1-3)고 말씀합니다.
일순 편안해 보이고 능률있어 보이고 성공하는 것같이 보이는 그들을 부러워하거나 그들의 행동에 분노할 것이 아니라, 그럴수록 더욱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며 자신의 인생길이 진리에 거하는 옳은 싸움을 싸우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86년 아시안게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100M 결승에서 어느 외국인이 1등으로 골인했으나 곧바로 실격을 당했고, 그로 인해 2등이었던 임춘애 선수가 1등을 하게 되었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순간적으로는 남들보다 빨리 가는 것 같고 잘 되는 것 같아도, 규칙을 어겨가며 경주한다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인생의 골인지점에 가서는 결국 실격당하고 만다는 것을 잊지말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적극적인 자세로 선한 사업에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에는 여러 종류의 달리기 코스가 있으며, 그 가운데 선한 것을 도모하는 코스를 택해야 합니다.
선한 일을 행하는 코스에는 많은 장애물들이 있고, 그 짐이 더욱 무거울 수도 있습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아갈 때 그만큼 속도가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인생의 승리의 모습은 선한일을 행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과 같이 우리들도 인생 말년에 후손들과 사람들 앞에 '선한 사업을 의해 힘썼노라' 고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빨리 가도 열매 없이 쭉정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 느리고 더딘 듯이 보여도 골인지점에서 많은 열매를 담을 수 있는 자가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인 것입니다.
오늘, 해외 선교를 위한 선교 헌금을 작정하려고 합니다. 이것 역시 선한 사업의 하나인줄 압니다. 우리가 직접 해외에 나가 복음을 전하지는 못하더라도, 명예와 부를 버리고 일선에 뛰어드신 선교사님을 물질과 기도를 돕는 이 선한 사업에 함께 하셔야 할 것입니다.
선한 싸움에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말씀합니다.
필연적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고자 할 때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지하 동굴, 카타콤에서 순교 했습니다.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믿음을 지키다가 사자 굴에 들어가기도 하고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지기도 했습니다.
비단, 믿음의 조상들의 예를 굳이 들지않더라도, 오늘날 선한 싸움을 살아가고자 하는 자들에게 결부되어 지는 고난은 참으로 크고 고통스럽기조차 합니다.
「밥 퍼주는 시인, 밥 퍼주는 사랑」이라는 책을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자인 최일도 목사님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올바르게 사는 것일까?'를 생각한 끝에 속칭 '588'이라고 불리워지는 서울의 사창가에 몸을 던집니다.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노인들과 젊은 여인들에게 라면을 끓여주고 밥을 해주면서 그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경제력이 없는 신학생으로 그 자신이 돌보아야할 노모와 가정이 있고, 남들이 매몰차게 손가락질을 해대도, 그는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자신의 경주를 완수하는 중에 있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영웅적 삶이 요구되어 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평범한 범인으로서 가정과 교회와 직장을 지키며 살아간다 할찌라도, 진리에 거하고 의롭게 살며 바른 선한 삶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믿음'이 없이는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이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오늘 새벽에 묵상한 것처럼, 이스라엘백성들이 극심한 고통이 수반되는 고역 중에 있을때에 하나님이 친히 찾아오셔서 "너희는 나의 백성이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하신 것을 기억합시다. 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우리 인생의 어렵고 힘든 경주 가운데 우리를 든든히 하고 지탱케하는 궁극적인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어려운 전환기에 놓여져있다는 불안한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릅니다.
이럴때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장농속에 수북히 쌓인 돈도, 수백억이 든 통장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머릿속의 실핏줄 하나만 건드리셔도 마비가 되어버리고 마는 우리의 건강은 더더욱 아닙니다.
인생길 달려가는 순간순간, 나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토록 지키시고, 밤에도 낮에도 주무시지도 졸지도 아니하시며, 눈동자같이 살피시고 임마누엘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을 확실히 믿는 믿음안에 거해야만, 인생의 경주를 끝까지 지켜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인생 경주의 최종 심판관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시고 골인지점에서 기다리신다는 사실을 믿고 확신 중에 거할 때에, 우리의 인생길을 주저하지 않고 달음박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나라가 정의롭지 못할때에, 그것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예가 있었습니다. 바로 땀흘려서 정직하게 일한 사람들이 그 대가를 정당하게 받지 못하는 현상이 그것이었습니다. 불한당(不汗黨)들이 가만히 앉아서 버는 검은 돈으로 떵떵거리고 사는, 그런 정의롭지 못한 사회였던 것이었습니다.
인류 역사 가운데 100% 완전히 정의로운 사회는 없습니다만, 상대적으로 '정의롭다'고 인정받는 나라는 미국을 비롯한 유럽지방의 나라들입니다. 그곳에서는 부자가 존경을 받고 군인들이 존경을 받습니다. 극소수의 예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불의한 방법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고 명예로와질 수 없는 사회구조 때문에 그들은 건실하고 성실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하물며 사람사는 곳이 이럴진대, 하나님의 나라는 어떠하겠습니까? 가장 완벽하며 가장 공의로운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그에 걸맞는 정의로운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이 나를 실망시키고 세상이 나의 가슴을 멍들게 할 찌라도,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다 갚아주시고 그에게 의로운 면류관을 예비해두실 것입니다. 인생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화살과 같이 날아가서 의의 재판관 앞에 설 날이 곧 다가올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때에 의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달음박질 하면서 선한 싸움의 승리자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