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 시 창작 강의 (6)
시어의 구분
시는 언어에 의해 몸을 드러내는 유기체라 할 수 있습니다. 옷을 입기 전에는 하나의 생각에 머무를 수밖에 없고 매개체를 통하여야 그 의미가 살아나올 수 있습니다. 시에 사용된 언어가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시를 창작할 때 어떻게 언어를 써야 하는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언어를 밖으로 드러난 형태에 따라 갈음해 보면 다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과학적 언어> 의미와 언어가 1:1의 상관관계를 지니는 언어로 실제적 효용성을 나타내는 언어입니다. 여기에는 상상력의 개입을 절대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배추 무게는 3킬로그람이며 부피는 780cc이다.’
‘나무는 불에 타는 성질이 있다.’
‘책상 위 종이는 선풍기 바람에 날아갔다.’
이처럼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며 산술적인 언어는 말의 여백을 허용하지 않는 언어입니다. 논리학이나 과학, 그리고 학문적인 용어로 사용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는 시의 언어와는 먼 거리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과학적 언어로 만들어진 작품을 예로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불볕더위 속
타는 목마름
한잔 시원한 냉커피로 식힌다.
아삭아삭 씹히는 얼음 조각에
미진한 근심의 잔사들은
침전시키고
세상과 내 인생에 대한
깊은 애정을 삼킨다
갈증을 삼킨다.
독자의 시 <갈증> 1, 2연
이 시가 과학적 언어를 사용한 부분은 1연에 해당됩니다. 불볕더위 속에서 목이 타는 현상은 바로 당연한 이치이며 그것을 시원한 냉커피를 마시거나 음료를 마시면서 갈증을 해소시키는 것도 상식적인 내용이며 논리적인 행동에 다름 아닙니다. 2연도 충분한 객관적인 형상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어떠한 감흥을 전달해 주지 못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것은 시에 나열된 관념적인 말들--미진한 근심의 잔사, 침전, 세상과 내 인생, 애정, 갈증--로 추상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상적 언어> 기존의 언어체계와 상관없이 사용되는 언어이며 일상회화에 쓰이는 언어입니다. 거기에는 논리성이 배제될 수도 있고, 주어, 술어, 토씨 등이 생략된다든가 하여 언어의 규칙이나 법칙으로부터 벗어나 있습니다. ‘어, 아’와 같이 의미 없는 소리로서 의미를 대신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젖먹이 어린애들의 옹아리를 엄마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언어 외 소리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언어입니다.
‘했어? 가기로,’/ ‘아니’/ ‘왜 ?’/ ‘그냥, 됐어, 그래’/ ‘어떡하니’/ ‘뭐 잘되겠지’/‘섭섭할 텐데’/ ‘지치겠지. 늘 그래’/ ‘알았어. 그렇게 하지’
위 대화는 글로 읽어서는 그 내용을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대화자 사이에는 어떤 의미의 교감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구체적인 진술이 생략되더라도 의사소통이 이루어 질 수 있는 언어체계입니다.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일상 언어는 비약, 생략이 심하고 논리성 없이 소통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대화도 객관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라면 시에 차용해도 되는 것이며 실제 몇몇 시인에 의해 대화체가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상적인 언어가 시가 되기 위해서는 변용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일상어를 쓰되 일상어와 그 쓰임새를 달리해야 시가 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떠난 뒤/ 그 빈자리에/ 조용히 앉아/눈을 감습니다.//
무수히 많은 時空의/흐름 속에서/소중했던 은빛 추억들이/하나 두울/전개되어 갑니다//
수수하지만 결코/촌스럽지 않은/ 당신의 모습이//
이젠/ 나 - /마음 속 한 곳에/ 자리 잡아 옴을 느낄 때// 조용히/ 눈을 뜹니다.
독자의 시 <이별> 전문
위 시는 1연에서 일상적인 의미가 일상적인 언어에 의해 평범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결코 표현되어 있다고 할 수 없는 각 행들은 어느 일기장의 한 부분을 옮겨 놓은 것처럼 산문성이 강합니다. 언어가 달리 일상적인 표현에서 벗어 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문학적 언어> 문학적인 언어라고 하지만 실은 시의 언어로 분류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산문에 씌여지는 언어는 실제로 모든 범주의 언어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며, 문학적 언어라고 할 때 그것은 시어에 국한된 의미로 사용 된다할 것입니다. 문학적 언어는 시인에 의해 선택되고 의미와 상징, 이미저리 등 복잡한 의미구조를 지닌 언어이며, 상상력의 언어라고도 합니다. 이는 전달을 목적으로 하면서 정해지지 않은 다수의 낯선 독자들에게 그 의미를 전달함으로서 공감대를 넓혀야 하는 목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일상적인 언어와는 달리 어느 정도 논리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언어)은 사회적 약속을 담은 기호라고 볼 때 일상 언어와 같이 생략, 축약을 통해 의미전달이 이루어지는 경우와는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지와 상상력을 통해 공감대의 폭을 최대한 넓히기 위한 이 언어는 그러므로 비유적 언어, 연상적 언어를 본질로 하고 있습니다.
1) 비유적 언어/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세계를 토대로 합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가능케 하는 언어이기도 합니다.
바람으로 물들은 잎이 젖었네/ 옹이 박힌 세월은/ 머물러 있고/ 좀체 흔들리지 않는/
짙은 뿌리 색으로 남아/ 담장 향하는/ 긴 발자국 소리에/ 여러 겹의 그리움을 품은/
꽃잎을 보았네
독자 박복남 씨의 <장미> 부분
이 시에서 ‘바람으로 물들은 잎이 젖었다와 ‘옹이 박힌 세월’ ‘담장 향하는 긴 발자국 소리’ ‘그리움을 품은 꽃잎을 보았네’와 같은 표현은 논리에 어긋나는 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잎이 바람으로 물드는 것이 아니고, 나무에 박히는 옹이가 세월에 박히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긴 발자국 소리가 있을 수 없습니다. 꽃잎이 그리움을 품는다는 말도 일상에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언어는 논리 이전에 말이 가진 의미 폭에 의해 연결되고 있습니다. 이런 언어체계는 시인이 원하는 세계이며 그것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내용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표현이 바로 시의 언어가 추구하는 표현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시는 비유를 통하여 형상화, 구체적 이미지 창출, 관념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시의 언어는 비유법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이는 연상적 언어와 복합적으로 혼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2) 연상적 언어/두 세계의 비교 혹은 두 사물의 유사성을 연상하는 것입니다. 연상은 상상력에 의해 구축되는 것입니다.
진작 구렁이가 아닌 줄은 알아
독 품은 실뱀 정도 꿈꾸었지
웬걸 지렁이 한 마리 기어가네
뼈도 없고 살도 없이
오로지 피 뿐인 몸뚱어리
눈 멀고 귀 멀어
피멍 든 몸으로 더듬더듬
기어가야만 할 길
아득하구나
독자 박선희 씨의 <실개천>전문
위 시는 실개천을 지렁이에다 비유하여 서로의 유사성에 의해 실개천을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시인은 실개천을 보고 지렁이를 떠올렸고 독자들은 지렁이의 모습을 보면서 실개천을 떠올릴 것입니다. 여기에서 지렁이와 실개천은 동등한 의미를 가지고 같은 세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현실의 세계에서는 전혀 이질적인 사물끼리라도 시의 세계에서는 이들의 결합에서 서로의 동질성을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첫댓글 감상잘하고갑니다요......
첫댓글 감상잘하고갑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