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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정해진 길을 갈 것인가, 내가 길을 열어갈 것인가!
『고미숙의 로드클래식, 길 위에서 길 찾기』는 삶 자체가 ‘길 없는 대지’ 위를 걸어가는 여행이라고 말하는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고전문학 작품들 중 길 위에서 ‘길’을 찾는, ‘길’ 자체가 주인공이자 주제인 고전들을 특유의 현재적 시선으로 새롭게 읽어내는 책이다. 이름하여, 여행기 고전. 《서유기》, 《돈키호테》, 《허클베리 핀의 모험》, 《그리스인 조르바》, 《걸리버 여행기》, 《열하일기》들이 바로 고미숙이 뽑은 ‘로드클래식’ 작품들이다.
고미숙은 ‘로드클래식’ 작품 속 주인공들을 통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기술들을 펼쳐 보인다. 가령 《서유기》의 삼장법사와 아이들을 통해서는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길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그리스인 조르바》 속 조르바를 통해서는 욕망이나 두려움에 휘둘리지 않는 충만한 자유란 무엇이며 어째서 인간은 곧 자유인지에 대해, 고전 텍스트와 현실을 넘나들며 이야기한다. 그야말로 고전을 읽는 것이 어떻게 곧 삶에 대한 탐구로 이어질 수 있는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소개
저자 : 고미숙
고전평론가. 강원도 정선군에 속한 작은 광산촌에서 자랐다. 춘천여자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쳤다. 가난했지만 ‘공부복’은 많았던 셈이다. 다 공부를 지상 최고의 가치로 여기신 부모님 덕분이다. 지난 십여 년간 <수유+너머>에서 활동했고, 2011년 이후 <남산강학원>(KUNGFUS.NET)과 <감이당>(GAMIDANG.COM)에서 ‘공부와 밥과 우정’을 동시에 해결하고 있다. <감이당>의 모토는 몸·삶·글의 일치다. ‘아는 만큼 쓰고, 쓰는 만큼 사는’ 길을 열어가고자 한다. 지금까지 낸 책으로는, 열하일기 삼종세트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전2권)과 달인 삼종세트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동의보감 삼종세트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근대성 삼종세트 『계몽의 시대: 근대적 시공간과 민족의 탄생』, 『연애의 시대: 근대적 여성성과 사랑의 탄생』, 『위생의 시대: 병리학과 근대적 신체의 탄생』 그리고 『윤선도평전』,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 다산과 연암 라이벌평전 1탄』, 『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 등이 있다.
저자의 다른 책
- 고전과 인생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 - 2017.08
- 루쉰, 길 없는 대지 (
길 위에서 마주... - 2017.04
- 나는 누구인가 (인간
의 본질을 밝히... - 2016.05
-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몸... - 2016.05
목차
책머리에
프롤로그 : 디지털과 노마드 ? 길 위에서 ‘길’ 찾기
2008년 가을, 그리고 그 이후 │스마트폰, 천국과 지옥 ‘사이’ │몸 ? 생명과 우주의 교차지대 │통즉불통 ? 소유에서 자유로, 증식에서 순환으로! │유동하는 신체, 노마드 │길 위에서 ‘길’ 찾기 ? ‘로드클래식’의 세계 속으로
The World of Road Classic
1부. 열하일기
열하일기 1. 유목, ‘길 없는 대지’!
정주(머묾)와 질주(떠남)의 이중주 │‘통곡’과 함께 길이 열리고 │은밀하게 유쾌하게 │인생도처유‘반전’! │판타지아 혹은 카오스 ? 길 없는 대지
열하일기 여정도
열하일기 2. ‘말과 사물’의 향연
그림자와 메아리 │‘미시사’의 현장 │‘인정물태’의 파노라마 │사물들과 함께 춤을! │줍고 훔치고 가로채고 ? 글쓰기와 병법 │글쓰기, 그 ‘우주적 통쾌함’에 대하여
2부. 서유기
서유기 1. ‘돌원숭이’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돌원숭이’, 그 출생의 비밀 │‘마음’에 대한 인류학적 탐색 │제국의 팽창 ? 전쟁기계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한 까닭은? │삼장법사의 팔자 ? 기구하고 고귀한! │소승에서 대승으로! │버리고, 떠나라!
현장법사 여정도
서유기 여정도
서유기 2. 삼장법사와 아이들 :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밴드’
그 스승에 그 제자 ? 못 말리는 밴드 │손오공 ? 분노와 정념의 화신 │저팔계 ? 탐욕은 나의 운명! │사오정 ? ‘본투비’ 매니저! │삼장법사 ? 이 ‘충만한 신체’를 보라! │구도와 유목이 마주치면? ? 윤리의 탄생
서유기 3. 요괴의 길, 깨달음의 길!
두 개의 여성성 ? 관음보살과 ‘팜므 파탈’ 요괴들│도가 높아질수록 요괴 또한 강해진다네 │내 안에 ‘요괴’ 있다! ? 정착과 불멸 │저기 두 마음이 싸우고 있구나! ? 가짜 손오공 소동 │요괴 퇴치전략 ? 주인을 찾아라! │‘서천’에선 대체 무슨 일이? │무자경전 ? 여행이 끝나자 길이 시작되었다!
3부. 돈키호테
돈키호테 1. ‘미쳐서’ 살고 ‘정신 들어’ 죽다!
광기에 대한 고고학적 탐색│돈키호테보다 더 ‘팔자 센’ 저자, 세르반테스 │세상은 ‘책’이다! ? 방랑의 시작 │‘음허화동’, 광기의 신체성 │이상과 계몽 ? ‘허공에의 질주’ │‘미친’ 에로스의 화신들 │마르셀라, 유일한 자유인 │객줏집 ? 사건과 서사의 집결지 │대체 저자가 누구야?
돈키호테 여정도
세르반테스 여정도
돈키호테 2.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꿈이 아닌가?
시골양반에서 기사로! │‘짝퉁’의 출현 │내가 책이다! │비상 혹은 추락 ? 허공에서 동굴로! │연극이 ‘판치는’ 세상 │대체 누가 진짜 광대야?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꿈이 아닌가? │용맹한 도깨비, 돈키호테의 죽음
돈키호테 3. 길, 로고스의 향연!
길은 미미하나 말은 창대할지니 │웅변의 고매함 vs 속담의 질펀함 │말 vs 말, 그 어울림과 맞섬 │총명한 ‘미치광이’, 숭고한 ‘멍청이’ │식욕과 잠과 말 ? 존재의 삼중주 │보르헤스의 오마주 ?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4부. 허클베리 핀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1. 야생과 탈주의 연대기
내 안에 ‘잭슨 섬’ 있다?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화폐 따윈 필요 없어! │마크 트웨인, ‘불멸의 이름’ │문명, 규율과 폭력의 이중주 │헉과 짐의 ‘운명적’ 조우 │뗏목, 강물 위의 텐트 │정착민의 숙명 ? 원한과 복수 │미시시피 강의 오디세이아
허클베리 핀 여정도
마크 트웨인 여정도
허클베리 핀의 모험 2. 포획과 탈주의 이중주
‘낭독의 달인’, 마크 트웨인 │텍스트는 유동한다! │뗏목 위의 ‘제국’ ? ‘왕과 공작’의 출현 │문명의 그림자 ? 성령과 에로티시즘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그래, 지옥에 가자!” │내 친구 ‘짐’에게 자유를! │톰 소여, 돈키호테의 ‘악동’ 버전 │그리고 탈주는 계속된다!
5부.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 1. 심해를 탐사하는 고래의 ‘충혈된’ 눈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아주 특별한 여행 ? 앉아서 유목하기 │대지의 사나이, 조르바 │에로스의 향연 ? 먹고 마시고 섹스하고 │쾌락에 대처하는 조르바의 ‘노하우’ │여자란 무엇인가? ? 암컷 혹은 아프로디테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 아니 인간! │곡괭이와 산투르, 그리고 춤 │‘조국과 하느님’으로부터의 도주 │고래의 ‘충혈된’ 눈
조르바 여정도
두목(나) 여정도
니코스 카잔차키스 여정도
그리스인 조르바 2. 생명과 자유, 그 충만한 매트릭스
‘조르바’라는 학교 │‘조르바’라는 텍스트 │‘우상’에서 ‘연민’으로 │‘공동체’ 혹은 ‘혁명’이라는 허깨비 │우물에 빠진 ‘붓다’? 혹은 ‘붓다’라는 우물! │‘과수댁’, 생의 원초적 충동 │글쓰기, 또 하나의 전쟁터 │조르바, 책이 되다!
6부. 걸리버 여행기
걸리버 여행기 1. ‘야후’(인간과 문명)를 향해 날리는 유쾌한 ‘똥침’
조너선 스위프트, 아이러니의 달인 │와이드 비전 vs 클로즈 업 │지배와 보호를 넘어 │타자의 시선으로 │천공의 섬, 라퓨타 │여성성, 야생의 원천 │ 언어가 사라진 세상, 디스토피아
걸리버 여정도
조너선 스위프트 여정도
걸리버 여행기 2. 유토피아는 없다!
‘아이러니’를 넘어 ‘똥침’으로 │역사, 윤회의 수레바퀴 │영생, 구원이 아니라 저주 │인간, 그대 이름은 “야후” │문명, 부조리한 너무나 부조리한! │야후의 본성 ? 탐욕과 광기 │흐이늠, 덕성의 화신 │‘야후’와 ‘흐이늠’의 사이에서
에필로그 : 길은 ‘길’을 부른다!
인신사해(寅申巳亥) ? 역마살의 도래 │첫번째 여행 : ‘히토쓰바시’, 역사의 아이러니 │두번째 여행 : 윈난성, 야생과 쾌락의 기이한 공존 │세번째 여행 : 뉴욕, ‘허클베리 핀’을 찾아서 │네번째 여행 : 난징, ‘중중무진’의 매트릭스 │그리고 길은 계속된다…
출판사 서평
지은이의 말
“길을 떠나려면 지도를 그려야 한다. 지도를 그리기 위해선 하늘의 별을 보라고 했다. 우리 시대의 별은 바로 ‘고전’이다. 『열하일기』, 『서유기』, 『돈키호테』, 『허클베리 핀의 모험』, 『그리스인 조르바』, 『걸리버 여행기』 등등. 인생과 우주의 지혜를 담은 책들을 고전이라고 한다면, 고전 자체가 ‘길’에 대한 탐구인 셈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진짜 여행을 다룬 책들이 있다. 길 위에서 ‘길’을 찾는, ‘길’ 자체가 주인공이자 주제인 그런 책들. 이름하여 ‘로드클래식’(여행기 고전)! 위의 작품들이 바로 거기에 속한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겠지만 이 작품들은 각 문명권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그야말로 ‘별 중의 별’이다.”
“만약 이 ‘로드클래식’의 주인공들과 여행을 한다면? 아마 오대양 육대주를 다 넘나들어야 할 것이다. 연암 박지원, 돈키호테, 삼장법사와 그 제자들, 허클베리 핀과 조르바, 그리고 걸리버, 이들은 대체 길 위에서 어떤 삶, 어떤 운명과 마주친 것일까? 그 지도를 탐사하는 것이 이 책의 기본 콘셉트이다.
사족 하나. 길 위에서 ‘길 찾기’를 하려면? 먼저 묵은 것들을 흘려보내야 한다. 버블경제와 성공신화, 스위트 홈의 망상 등은 말끔히 잊으시라. 비우는 만큼 길이 열릴 것이니. 이 ‘로드클래식’과 더불어 그 길을 탐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소유에서 자유로, 증식에서 순환으로 이어지는 ‘천 개의 길’, ‘천 개의 삶’을!”
고미숙의 로드클래식, 길 위에서 길 찾기
저자 인터뷰
1. '로드클래식'이라는 단어가 생소한데요, 어떤 뜻인지 말씀해 주세요.
로드, 길. 클래식은 고전. 길-고전이라고 할 수 있죠. 길에 대한 탐구. 사실 고전은 거의 다 길에 대한 이야기이죠. 인생의 길, 살아가는 길, 길에 대한 이야기인데 특히 여행을 하면서 삶을 탐구하는 고전들, 그런 게 있더라구요. 그래서 그런 고전들을 모아 보니까 너무 멋진 작품들이 쭉 배열이 되었는데…… 이것을 합쳐서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생각하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로드클래식’이라는 이름이 떠오르게 된 거예요.
여행기 고전, 길-고전 그러면 약간 길고양이 같은 느낌이 드니까(^^) 여행기 고전, ‘길 위에서 길 찾기’ 이런 거를 떠올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2. 이 책에 나오는 작품들 중 『그리스인 조르바』는 사실 어떤 '여행'과는 거리가 좀 있는 작품이 아닌가요? 『그리스인 조르바』를 '로드클래식'으로 꼽으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일단 로드클래식을 떠올렸을 때 『그리스인 조르바』도 당연히 들어가는 거였어요, 그런데 나중에 읽어 보니까 이게 여행을 하고 있는 작품은 아닌 거예요. 다른 작품들의 경우에는 엄청 정신없이 돌아다니는데 조르바는 크레타 섬엘 들어가서 거기서 주로 이야기가 진행이 되거든요. 그런데 내가 왜 이걸 ‘로드클래식’이라고 생각을 했을까 이렇게 되돌려 생각해 보니까 이 사람들이 계속 길 위에 있다는 게 굉장히 강렬하게 남았던 것 같아요. 근데 실제로 크레타 섬에 정착을 하러 갔다거나, 여기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겠다, 이렇게 간 게 아니고 여행 중에 크레타 섬에 들어간 거였죠. 조르바와 ‘나’(라는 작중 화자)가. 여기서 한탕해서 전 세계를 떠돌기 위해서 자금을 확보하러 간 거예요, 사실은. 그렇게 하고 실제로 둘이 다 말아먹고 헤어진 다음에 어마어마하게 싸돌아다니잖아요. 그런 이미지가 남아서 당연히 여행기 고전의 최고 중에 하나다 이렇게 생각을 했던 거죠. 분명히 이게 왜 ‘로드클래식’인가 이렇게 질문을 하실 것 같아서 막 생각을 했죠. 그게 뭐냐, 조르바의 인생의 길. 그리고 조르바를 통해서 작중 화자인 젊은이의 인생의 심연에 대한 탐구. 그래서 심연으로의 여행도 여행이 아닌가, 이렇게 우기기로 했는데(^^) 그게 아니어도 읽어 보면 삶이라는 게 어떤 과정 중에 있다라는 것을 아주 잘 보여 주는 ‘로드클래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서유기』는 보통 모험물이나 판타지물로 읽히고, 또 그래서 '사대기서', 그러니까 기이한 이야기에 꼽히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선생님께서는 이 책을 '구법(求法: 부처의 진리를 구함)의 서사'로, 요컨대 대중을 구원하고 스스로를 구원하는 이야기로 읽으신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탐욕의 화신이 저팔계 이야기를 하시면서 저팔계도 갈 수 있는 길이 구법의 길이라면 누군들 가지 못하겠는가, 라고 하시며 "탐욕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구도 또한 '원초적 본능'이다"라고 하신 부분에서 저도 함께 울컥했는데요. 선생님께서 『서유기』를 이렇게 읽으시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그러니까 『서유기』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작품을 읽은 게 아니고 읽으면서 생각이 계속 떠올랐어요. 뭔가 구도의 매트릭스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일단 우리가 그런 생각을 좀 못하는 게 오만 가지 요괴랑 싸우는 모험이 너무 많이 나오고, [날아라 슈퍼보드]의 영향도 있고 이래서, 이게 유쾌한 판타지다 그냥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고 말거든요. 저도 그랬던 것 같은데, 계속 질문이 생성이 되는 거예요. 이렇게 요괴가 많은데 왜 계속 갈까. 그리고 요괴가 괴롭히는 요괴만 있는 게 아니고, 나중에 보면 엄청 잘해주고 막 붙들고, 다 주겠다고, 자기 나라를 다 주겠다고 하는 요괴도 많아요. 이렇게 마음을 비운, 무소유한 요괴도 많거든요(^^). 그런데도, 가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한다’, 이게 일단 너무 강렬했어요. 이렇게 갈 수 있는 게 바로 구도지요. 구도의 길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는 게 감동적이었죠.
처음에는 손오공이 아주 눈에 띄죠. 손오공이 워낙 화려하고 스펙터클하고 하니까. 그리고 대부분의 사건 사고도 다 손오공이 수습을 해요. 진짜 얘는 너무 부지런하고 다이내믹하고 능력을 무한하게 발휘를 해요. 그래서 여기에만 주로 시선이 가는데 어느 날 문득 저팔계가 가슴에 딱 와 닿는 거예요. 손오공하고는 동일시가 진짜 안 되지. 손오공하고 동일시되면 그 사람은 정말 슈퍼맨이죠. 그러면 이제 우리가, 일반 독자가 동일시할 수 있는 건 저팔계와 사오정인데 사오정은 많이 활동을 하지 않아요. 많이 드러내질 않아. 매니저 역할을 하니까. 저팔계는 시도 때도 없이 들이대는데 하는 짓이 너무너무 지질해. 그리고 식욕과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니까 폼을 잡을 수가 없어. 얘는 기본적으로 포즈나, 이미지로 남한테 사기를 칠 수가 없어요. 심지어 변신을 해서 예쁜 여자로 바뀌어도 거의 뚱뚱하게 돼지의 외모를 가진 소녀로 바뀌기 때문에 유혹을 할 수도 없는 거야. 그러니까 재능이 있다고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 쉬지 않고 간다, 이게 뭘까? 이게 너무너무 신기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손오공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지만 저팔계보다는 내가 낫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나만 그런가요?(^^) 물론 저팔계보다 내가 나은 것 같은데 그럼 저팔계도 갈 수 있는데 나는 당연히 이 길을 가야 되지 않나이런 생각이 딱 든 거예요. 어떻게 보면 대회전이 일어난 거죠. 그렇게 해서 저팔계의 행동을 보니까 진짜 저팔계가 크게 변신하는 대목이 있어요. 삼장법사 일행이 만난 고난 중에 ‘천년 똥길’이라는 게 있어요. 똥으로 덮여 있는 길이 무한히 이어지는. 이건 손오공이 치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저팔계만 이걸 할 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 갖고 밤새 이걸 치워요. 그리고 잘한다 그러니까 더 열심히 치워요. 우리가 럭셔리한 요괴들하고만 싸우는 게 아니거든요. 할리우드 영웅이 알래스카를 뒤덮고 있는 똥을 치워야 된다. 이런 게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나요? 그런데 인생사에는 나오잖아요. 이건 분명히 있는 거죠. 근데 그걸 할 수 있는 존재가 저팔계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게 진짜 굉장히 뭉클했어요. 그리고 정말 외모가… 외모가 누구도 호감을 가질 수 없는 외모이다 보니 아무도 유혹을 안 하는. 자기는 늘 유혹을 받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데 정말 단 한 명의 여성도 유혹을 하지 않아요. 오로지 다 시선은 삼장법사한테 쏠려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래서 그냥 성욕은 저절로 잦아들었고, 그 다음에 식욕은 계속 움직여야 되니까. 더 먹고 싶은데 손오공하고 삼장법사가 빨리 가자고 하니까, 이 스승과 사형을 따라가야 되니까 덜 먹고 가고, 덜 먹고 가고. 이러면서 자기 욕망을 제어하는 과정이 특별하지도 않고 신비롭지도 않고 너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인 거죠. 우리가 우리 자신의 탐욕이나 우리 자신의 충동을 보면 너무 한심하고, 이건 도저히 가능성이 없어 다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나는 구도, 구법 이런 거하고는 거리가 멀어, 그냥 틀렸어, 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저팔계를 본다면 아, 누구든 갈 수 있다! 그리고 자기 욕망과 충동을 부정하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이, 계속 움직이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어서 정말 저의 롤모델로 삼게 되었습니다.
4.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나 『그리스인 조르바』에 특히 주요하게 나오긴 하지만, 어쩌면 전 편에 걸쳐서 선생님께서 '로드클래식'을 통해 가장 많이 말씀하신 키워드 중 하나가 '자유'가 아닌가 합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자유'란 어떤 것인가요?
사람은 어떤 조건 안에서 태어나잖아요. 이 우주, 자연, 대한민국, 그 다음에 서울, 그 다음에 몸이라는 조건. 그래서 몸은 사실 굉장히 구속된 상태로 태어나요. 그래야 형체를 가지니까. 그런데 마음이나 무의식이나 이런 영역은 구속되질 않잖아요. 이 두 가지가 사람인 것 같아요. 무한과 연결되어 있는 그런 지평이 하나 있고, 그리고 모든 게 제한이 되어 있는 조건. 그래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태과불급을 갖죠.
책속으로
손오공은 인간이 겪는 번뇌의 원천인 ‘탐진치’(貪瞋癡) 가운데 ‘진심’(嗔心)을 대표한다. 진심은 ‘분노’다. 분노는 정의감과 의리 등을 주관하는 마음이다. 그것은 주체성과 리더십, 책임감 등의 원천이지만 지나치게 되면 지배욕과 공격본능으로 나아가게 된다. 손오공이 바로 그런 경우다. 처음 원숭이왕이 된 이후, 그의 자존심은 하늘을 찌른다. 제국이 확장될수록 교만도 더더욱 높아져 마침내 옥황상제 앞에서도 ‘고개만 까딱’할 정도로 기고만장이다. 하늘을 뒤집어 놓은 것도 이 욕망을 멈추지 못해서다. --- 「서유기」중에서
이때 혼찌검이 난 탓에 [저팔계의] 성욕은 좀 잦아들었으나 식욕만은 도무지 제어가 안 되어 가는 곳마다 물의를 일으킨다. 게다가 그걸 채우기 위해 쉬지 않고 ‘잔머리’를 굴린다. 그 과정에서 손오공과 삼장법사를 이간질하는 게 다반사다. 식탐에다 여색을 밝히는 건 기본이고, 게으르고 비열하고 덜떨어지고……, 저팔계의 악덕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그래서 몹시 의아했다. 어떻게 이런 인물이 구법의 길을 갈 수 있는가 하고. 하지만 문득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저것이 바로 중생의 실상이 아닌가. 이런 중생도 구할 수 있어야 비로소 대승이라 할 수 있을 터, 저팔계도 갈 수 있다면 대체 누군들 가지 못하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울컥!’ 하고 감동이 밀려왔다. 온갖 추태를 저지르고 갖은 망신을 다 겪으면서도 꿋꿋이 나아가는 모습을 보라. 탐욕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구도 또한 ‘원초적 본능’이다! --- 「서유기」중에서
돈키호테는 기사도의 이상에 눈멀고, 산초는 총독이 되겠다는 욕망에 맛이 갔다고 치자. 그럼 다른 이들은 어쩌다 이 어릿광대 짓에 빠져들었는가? 예술적 상상력? 지적 호기심? 다 아니다. 그냥 달리 할 일이 없어서다! 먹고살기 위해 아등바등할 것도 없고, 열렬히 추구해야 할 시대적 소명도 없다. 그러면 태평성대 아닌가? 그렇다. 황금세기가 있다면 바로 이런 시절이리라. 그때 비로소 사람들은 진리를 탐구하고 지혜를 연마할 수 있으리라, 고 생각하지만, 단언컨대, 착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부터 사람들은 권태에 빠진다. 권태는 망상을 낳고, 망상은 허깨비를 낳는다. 그래서 사랑에 미치고 오락에 미친다. 아니, 뭔가에 ‘미치고 싶다’는 꿈을 꾼다. 그 결과, 세상은 온통 연극판이 되었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광대가 되어 버렸다. --- 「돈키호테」중에서
인간이라는 종족은 구제불능이라고 여기면서도 인간에 대한 말걸기를 멈출 수 없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이보다 더 깊은 애정이 어디 있으랴. 걸리버가 쉬지 않고 여행을 떠난 것도 이 때문이다. 삶을 한없이 사랑하지만 도저히 이 부조리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래서 떠난다. 어딘가 또 다른, 더 나은 세계가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하지만 그런 세계는 없다! 거인국이건 라퓨타건 흐이늠이건 모순과 부조리가 없는 세계는 없다. 어쩌면 세계는 부조리함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걸 터득하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전혀 다르게 사유할 수 있으므로.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살아갈 수 있으므로. 그래서 떠나야 한다. --- 「걸리버 여행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