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 시 창작법 강의 13
상징적 이미저리
우리는 ‘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선 떠오르는 생각은 ‘아름답다’라든가, ‘화려하다’든가, ‘행복하다’든가 하는 의미들입니다. 왜 그런 의미가 꽃에 내포되어 있을까요. 소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물질세계가 연상의 힘에 의하여 불가시의 세계, 곧 정신세계와 일치하게 되는 표현양식입니다. 그런 생각들이 바로 꽃이라는 사물이 가진 상징성일 것입니다.
여기에서 어떤 시인이 꽃을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사용하였는데 다른 어떤 시인은 꽃을 슬픔의 상징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보편적인 공감대를 획득할 수 있다면 그것은 훌륭한 상징적 이미저리가 되는 것입니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까치’는 ‘반가운 손님’을 상징하는 사물입니다. 그 외 여러 가지 예를 들 수 있습니다. ‘가시’가 고난을 상징한다든가, ‘김칫국’이 헛물을 켜는 것으로 상징된다든가 하는 것들입니다. 특히 광고에서 이미지 광고가 상징적인 이미저리를 차용하여 그 효과를 높이고 있다할 것입니다.
어떤 단체의 심볼 마크나 어떤 행사의 심벌 엠블렘은 그 단체의 성격이나 행사의 의미를 단6순화 시켜 가장 강한 이미지로 부각시키려 할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원과 삼각형, 또는 문자를 시각화하여 그 단체나 행사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상징입니다. 의미를 보고 상징을 생각하기보다는 상징을 보고 그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훨씬 용이합니다. 오륜마크를 보았을 때, 올림픽에 얽힌 많은 내용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은 그 오륜마크가 가진 상징성이 그만큼 널리 공감을 느낄만큼 형상화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길’이라는 낱말에 내포된 의미는 참으로 많습니다. 대상인 현실체의 ‘길’이 아닌 의미로써 ‘인생길’ ‘인생항로’ ‘운명’ ‘하는 일’ 등 많은 의미-즉 상징성을 가진 낱말입니다.
‘까마귀는 우리나라에서는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행운을 가져다 주는 새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상징은 이렇듯 민족이나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으며 개인에게도 사람마다 경험 차이에서 오는 차별성이 있게 마련입니다. 상징은 단순한 생각과는 달리 복잡성을 가지며 고착적인 것이 아니라 변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푸른/ 햇빛꽃이 피어난 날
키 작은 나무에 잠긴 바람이
흐르는 물결에 받쳐
뻐꾹 노래를 보내오면
아이는/구름의 그림자 따라
풀빛 용궁 속으로/ 헤엄쳐 간다
파래 낀/ 돌 틈에 피리가 숨고
하늘거리는 물풀의 간지러움에
오무려지는/ 하얀 발가락
물방울이/튀어 오른 손바닥에
쏟아지는 파란 하늘 사이로
아이는/ 무지개빛 풍선을 띄운다
여울너머 창포 숲엔
할머니가/ 앉. 아. 있. 고…
독자의 시 <유년> 전문
위 시에서 ‘푸른 햇빛 꽃은’은 유년의 시절 아름다운 추억을 나타낸 상징이며, ‘키 작은 나무’는 유년의 친구들을, ‘풀빛 용궁’은 어릴 때 뛰놀았던 공간을, ‘무지개빛 풍선’은 어릴적 미래에 대한 푸른 꿈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상징적 이미저리를 차용하고 있지만 시적 깊이를 전달해 주지 못하는 것은 이런 이미저리가 유기적인 결합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개별적인 공간에 머무르거나 이미지의 중첩을 통해 신선함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의 <풀> 전문
위 시는 풀과 바람의 상관관계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 있지만 독자들은 풀이 그냥 일반적인 사물로서의 풀이 아니고, 바람이 자연만의 바람이 아님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풀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이미저리 때문에 풀이 가진 속성이 그것에 국한되어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람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는 대상(범위를 좁혀 사물에 국한 시켜도 좋습니다)을 바라볼 때 우선 1차적으로 외형(겉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다음에 그 대상의 효용성(쓰임새)에 관심을 갖게 되며 그 뒤 그 사물의 상징성에로 발전합니다.
시가 대상의 본질에 접근해 가는 방편으로 상징적 이미저리를 차용하고 있으며 사물이 가진 상징적인 이미저리에 많은 부분을 의존해야 함은 명백한 일입니다.
불은 아름답다
바람을 불태우고
남쪽 언덕에 재를 남겼다
봄은 거기에서 움텄다
위의 시행에서 느낄 수 있는 이미저리는 여러 가지로 중첩되고 있습니다. 불의 이미지와 바람의 이미지, 재의 이미지, 봄의 이미지들이 그것입니다.
‘불은 아름답다’고 했을 때 여기에서 불이 나타내는 비유적 이미저리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불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또는 공통적인 상징이 있게 마련입니다. ‘뜨겁다’ ‘정열적이다’ ‘파괴적이다’ 등등입니다. 그런 이미저리가 ‘아름답다’라는 수식어와 결합하여 그 의미를 되살려 주게 됩니다. 어떤 사물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를 되살려 표현함으로써 폭넓은 사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비유적 이미저리가 의미의 폭을 넓히고 의미의 다양성을 가져다준다면 상징적 이미저리는 의미의 깊이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버크에 의하면 시란 시인이 자신의 정서적 긴장과 갈등을 변장된 형식, 곧 상징적 형식으로 극화함이며 따라서 그의 생애에 있어서 이러한 갈등과 긴장의 일부가 형식화됨으로써, 독자는 그 상징적 외양에 주의하게 됩니다. 이러한 동기적 구조의 개념은 어디까지나 시인의 생애가 환기하는 갈등의 구조로 이해됩니다. 반면 상징적 이미저리는 개인적 생애가 아니라, 프라이처럼 다른 작품이나 신화 속에서 발전되는 보다 커다란 유형이라고 파악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의식적 유형, 혹은 신화적 구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비유와 더불어 상징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논의하기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