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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천상병 시인은 생전에 많은 이야기 거리를 몰고 다니는 그야말로 문학계의 기인 중 기인의 한 분이었다. 그 중에서도 살아있는 시인이면서 '유고시집(遺稿詩集)'을 냈던 사람은 아마 세상에서 천상병 시인 밖에 없을 것이다.
그 사연은 이렇다. 소위 '동백림 사건'으로 떠들썩 했다. 정부에서는 북한과 은밀히 연루되었다고 하여서 죄도 없는 예술인들이나 문인(文人)들을 대거 체포하여, 남산에서 그야말로 덮어놓고 고문부터 해서 사람 병신으로 만들어 더 이상 예술활동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그야말로 우리 현대사의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일이 자행되었다. 그때부터 그의 모습은 고문 당시 얻은 휴유증으로 인해 몸도 마음도 심한 질병을 얻었다. 서울대 상대 동문이자 친구였던 강빈구(姜濱口)라는 사람과 친하게 어울렸는데, 그 강진구가 독일 유학중 동독을 방문했었다는 얘기를 천상병에게 털어놓았다. 강빈구로부터도 막걸리값으로 5백원 또는 1천원씩 받아 썼다. 그런데 당시 중앙정보부 발표문은 이러하였다. 수십여 차례에 걸쳐서 "1백원 내지 6천5백원씩 도합 5만여원을 갈취착복하면서 수사기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70년 겨울 어느 날부터인가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며 떠돌다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자주 다니던 명동이나 종로에서도 그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몇몇 문인들이 연고가 있는 부산에 연락을 넣어봤지만 거기에도 천상병은 없었다.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결국 이야기는 눈덩이 처럼 불어나, '천상병이 죽었다!'라고 소문이 퍼졌다. 그때 시인 민영등이 "요절시인" 천상병의 유고시집을 묶어주기 위해 이리저리 전갈을 넣어 작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잡지에 흩어져 있는 그의 작품 60여편을 모았지만 시집 출간비용을 조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시인 성춘복이 그 시집을 내겠다고 선뜻 나서 시집은 무사히 발간될 수 있었다. 시집출간 소식이 신문과 방송 등을 통해 알려지며 장안의 화제거리가 되었다.
그는 거리에서 쓰러져 있었고 그 것을 사람들은 그를 그저 노숙자나 행려병자로 오인한 탓에 그를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시켜 버렸던 것이다.
얼마 뒤에 천상병은 백치 같은 무구한 웃음을 흘리며, 거짓말 같이 다시 친구들 앞에 나타났다. 이렇게 천상병 시인은 기인답게 버젓이 살아 있으면서 첫 시집을 "유고시집"으로 낸 유일무이한 시인이 되었다.
귀천이라는 시의 시의 미덕은 쉽다는 데 있다. 시라는 것이 괜히 어려워야 맛이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가끔 볼 수 있는데, 이 시는 쉬운 시가 좋은 시가 될 수 있다는 모범을 우리에게 잘 보여 주고 있다.
각 연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라고 시작한다. 하늘로 돌아간다는 것은 물론 죽음을 뜻한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두렵고, 그래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남겨 두고 가야만 하기 때문에, 또는 어떤 이유로든지 삶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시인은 하늘로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간다고 말하고 있다. 돌아간다는 것은 시인이 죽음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 준다. 시인은 죽음이란 원점으로 다시 회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삶에 대해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늘로 돌아갈 때 동행하는 것은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이나 노을 같은 사물들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인가? 그것은 누구도 혼자서만 소유할 수 없고, 그래서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들이다. 화자는 세상을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또한 죽음을 소풍 끝내는 날로 여기고 있다.
이 시를 죽음을 달관한 모습으로만 읽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듯싶다. 다시 말하면, 이 시를 이야기하면서 ‘달관’이나 ‘초극’, ‘죽음을 관조적으로 수용’한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시에 들어 있는 정서는 외로움이나 쓸쓸함, 괴로움 등일 것이다. 지나온 삶의 괴로운 파편들을 뒤적이면서, 그것을 아름답게 인식하고자 노력하고 그것을 쓸쓸하게 다스리는 데서 우리는 깊은 공감을 느끼게 된다.
그는 이승에서의 삶은 짧지만 즐거운 것, 즉 '소풍'으로 인식하고 있다. 우리는 하늘에서 왔으니 생명이 다하면 다시 본원적인 공간인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죽음에 대한 달관 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은 인간의 근원적인 두려움인 죽음을 말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가장 두려운 존재로 인식된다. 하지만 이러한 죽음을 소풍으로 표현하면서 시인은 죽음이 가장 아름다운 끝맺음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삶은 어쩌면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같이 짧은 순간에 찬란하게 반짝이는 모습일 수 있고 "노을빛"처럼 소멸의 순간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수도 있다. 그래서 시인은 이 모든 과정을 아름답다고 말하며 소풍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요즘 이러한 철학은 여러 명상가, 철학자를 비롯해 스티브 잡스의 사생관과도 맥을 같이 한다. 즉, 천상병은 죽음의 철학을 일찍이 달관했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 누구에게나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힘겹고 어쩌면 추할 수 있도 있지만 끝내는 그 시간들도 돌아보면 아름답고 찬란한 순간일 수 있겠구나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시라고 볼 수 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 시의 마지막 연은 그런 점에서 시를 보는 많은 이들에게 반성과 감동을 불러 일으킬만 하다. 죽음 이후 저 세상에 가서 자신의 지난 생전의 시간을 아름다운 세상에서 보낸 소풍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시인의 처연하면서도 소박한 삶에 대한 자세야 말로 이 시가 우리에게 전하는 진정한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가 소풍을 끝내고 받게 된 몇 백만 원의 조의금은 천상병과 그의 가족들이 살아 생전 만져본 적이 없었던 큰 돈이었고 그것을 장모가 제일 안전한 곳에 두기 위해 아궁이에 감추어 두었다.
그런데 시인의 아내가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아궁이에 불을 지펴 재로 만들었다는 일화는 코미디같기도 하고 오히려 단돈 천원밖에 모르던 천상병이라는 시인을 폐부에 뜨겁게 각인시켜 준다. 살아서도 그렇게 돈을 멀리하더니 죽어 저 세상에서도 가장 순수한 시인이 되겠다는 어떤 영감같게도 느껴지니 말이다.
미망인 목순옥 여사는 인사동에 [귀천]이라는 다방을 경영하는데, 좁은 공간 때문에 인테리어가 독특해서 문인들은 물론 유명세를 타서 일부러 찾아오는 분들이 많고 옛날 다방식 소파에 나무등걸로 합석을 해도 되고 다닥다닥 붙어있지만 천상병님의 사진과 선물받은 그림 등등.. 편안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가 정감있는 곳이다.
노년에 목가적인 향수에 젖고 싶다면 한번쯤 들릴만한 곳이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6번 출구에서 인사동길로 들어서 수도약국 방향으로 200미터 가량 가다 보면 달마도가 그려진 간판이 있는데, 그 골목에 있다. 분점도 있는데 수도약국을 끼고 좌회전하면 약간 큰 골목에 '귀천' 간판이 보인다.
천상병이 그토록 사랑했던 막거리에 대한 시를 읊으며 글을 끝내고자 한다.
천상병
-詩人 淸閑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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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몇 번 갔었습니다. 살아 생전 만나 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박재삼 선생님께서도 막걸리와 김치가 밥이셨지요. 아들이 운영하는 허름한 인쇄소 귀퉁이가 작업실이였습니다. 두 권의 시집을 받았지요. 김군자 여사라고 쓴 시집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