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1돌…다시 보는 한국현대사]
2차대전 이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
1945년 8·15광복 이후 지난 61년간 한국의 현대사는 정치적 갈등과 혼란을 딛고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경제적 성취를 이뤄냈다.
불과 두 세대 동안의 '압축성장'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지만 5000년 역사상 가장 먹고 살 만해졌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더구나 4000만명이 넘는 인구대국이면서 경제성장에 성공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대만 싱가포르 홍콩의 성공사례가 있지만 이들은 한국 인구의 절반도 안 되거나 인구 400만~700만명 수준의 작은 나라였다.
한국의 성공은 한국인의 탁월한 근면·성실성이 이뤄낸 결과물인 동시에,광복 이후 우리가 선택한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옳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또 신생독립국들에 공통적이었던 군부 쿠데타도 겪었지만 결국엔 안정된 민주 국가를 이뤄냈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기도 했다. 당연히 현대사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하지만 한국 현대사는 해외에서의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정작 국내에서는 이념·세대·계층 간 갈등과 논란 속에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 한국 현대사의 성취
유럽의 산업혁명 당시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1%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경제개발의 본격화된 1960년대 이후 연 평균 6%에 달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이룬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 언론들은 이를 두고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에 빗대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기도 했다.
516혁명후 경제개발에 본격 착수했던 1961년 당시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82달러에 불과한 최빈국이었다.
그해 아프리카 가나의 국민소득이 179달러로 한국의 2배,남미 아르헨티나는 1300달러로 15배를 웃돌았다.
그러나 한국의 1인당 소득은 작년 1만6291달러로 불어났고 오는 2008년쯤엔 2만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반면 가나는 아직 350달러, 아르헨티나는 4000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세기초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이던 아르헨티나가 정쟁과 혼란으로 몰락한 것과 비교할 때 일제 식민지배와 6·25의 참화를 딛고 이룬 한국의 성취는 실로 놀라운 것이다.
◆ 어떻게 이뤘나
광복 이후 남·북한으로 갈리면서 미국과 소련이 3년간 군정을 실시했고 1948년에야 독립된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북한은 소련식 사회주의를 선택한 반면 남한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받아들였다.
경쟁과 사유재산을 토대로 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택한 남한은 초기엔 정치적 혼란까지 겹치면서 미국의 막대한 원조물자에도 불구,여전히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1960년 4·19 혁명에 이어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정치적으론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독재체제를 구축했지만 경제적으론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구호와 함께 본격 경제개발에 착수했다.
정부 주도로 조립가공 수준의 경공업에서 탈피,중화학공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1970년대 들어 고속 성장을 이뤄냈다.
세계를 강타한 두 차례 석유파동으로 인해 휘청하기도 했지만 1980년대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 호황에 힘입어 한국은 수출대국으로 우뚝 섰다.
1990년대에는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민주화에도 성공했지만 3저 호황을 적절히 관리하는 데 실패한 데다 사회 각층의 욕구 분출,경제적 성공에 대한 자만 등이 겹쳐 1997년 외환위기를 맞기도 했다.
'한강의 기적'을 칭송하던 해외 언론들은 당시 한국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외환위기는 확실히 극복했고 기업들의 투자와 기술개발이 결실을 맺어 D램 반도체,휴대폰,선박 등에서 세계 1위로 우뚝 서는 등의 성과도 이뤘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과도한 개방에 따른 후유증과 가계부채,부동산 투기,투자부진 등이 겹쳐 성장 속도가 크게 지체되는 진통을 겪고 있다.
◆ 정치·이념으로 폄하(貶下) 될 경제가 아니다 !
최근 수년 동안 과거 고도성장기에 대한 평가를 놓고 계속 논란을 빚고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 속도에 비해 민주화 속도가 따라가지 못했던 현대사의 엇박자로 인해 그동안 경제발전 성과까지 송두리째 무시되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1970~80년대 경제성장의 성과에 대해 체제 비판세력들은 종속이론을 토대로 비판해왔다.
70~80년대 세계를 풍미했던 종속이론이란 세계경제가 수탈 당하는 주변부 국가와 이들을 착취하는 중심부 국가로 구성돼 있어 한국이나 중남미 같은 주변부 국가에선 진정한 의미의 경제발전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론이다.
즉,외국자본(외채)과 외국기술을 끌어다 이룬 한국의 경제발전은 선진국에 종속된 경제구조여서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 비판 요지다.
그러나 자본도 기술도 전혀 없는 1960년대 한국과 같은 저개발 국가가 경제발전을 이루고 선진국을 쫓아가려면 밖에서 돈을 꾸어오고, 남의 기술을 재빨리 모방해 자기 기술로 만드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있을 수 없었다.
외국 돈을 꾸어왔지만 그 돈에는 이자만 주면 됐다.
대신 외국자본과 기술을 끌어다 효율적으로 쓰면서 경제를 키울 수 있었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경영권이 상당수 외국자본에 팔려 넘어간 상태보다는 덜 종속적이란 이야기다.
특히 한국의 경제발전이 주목받는 것은 신생독립국 가운데 유일하게 선진국형 산업구조를 갖춘 데 있다.
경제의 축이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같은 중화학공업이고,정보통신 분야에서 세계 선두권에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자동차가 선진국 곳곳을 누비고 한국의 휴대폰을 전세계에서 사용하며 한국에서 만든 배가 5대양을 누빈다.
이렇게 이뤄낸 경제성과는 정치적·이념적 목적에 따라 무작정 비판하고 폄하할 것은 아니다.
정치·이념 공세에서 경제를 보호할 때 경제도 살고 나라도 산다는 점을 잊지 말자.
[광복 61돌…다시 보는 한국현대사]
南 개방 vs 北 폐쇄…시장경제가 옳았다 !
1950년대와 196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의 경제력은 남한보다 우위에 있었다.
일본이 남기고 간 공장시설들이 대부분 북한에 있었던 데다 6·25 한국전쟁이 끝난 뒤 강제노동 동원으로 빠른 속도로 전쟁의 피해를 수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후 성장의 동력을 상실한 채 정체와 후퇴를 거듭했다.
반면 남한은 1960년대부터 고도성장기로 접어들었고 이제는 선진국의 문턱까지 다가갔다.
출발 초기에는 남한보다 여러가지 면에서 우위에 있었던 북한이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 북한과 남한의 경제력 격차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1950년대에 20%,1960년대에는 10% 이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서서히 쇠락하기 시작했다.
1975년부터 1985년까지 북한의 연평균 성장률은 4% 안팎이었고 1980년대 후반에는 2%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후 급속히 나빠져 북한은 1990년부터 1998년까지 9년 연속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보였다.
이로 인해 1990년대 말 북한의 국민총소득은 10년 전과 비교해 절반 정도로 줄었다.
1999년 이후에는 남·북 경제협력사업이 진행되면서 북한의 경제성장률이 상승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남한과의 격차를 줄이기에는 너무 많이 벌어졌다.
예컨대 제조업 생산지수는 1990년을 100으로 놓고 봤을 때 남한은 2004년에 293.9로 세 배 규모로 늘어난 반면 북한은 53.3으로 반토막이 났다.
2004년 남한의 조강생산량은 4752만t으로 북한의 45배,자동차 생산량은 346만9000여대로 북한의 771배에 달했다.
무역규모(수출입 합계액)는 남한이 4783억달러로 북한의 167배였고 국민총소득은 북한의 32.8배, 1인당 국민소득은 15.5배였다.
북한과 남한을 비교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을 정도로 그 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졌다.
◆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체제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북한이 고도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중앙집권적인 계획경제에 따라 노동력을 강제로 동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옛 소련이 1930년대 세계 대공황기를 맞아서도 강력한 농촌인구의 도시이주 정책과 강제적인 중공업 발전전략으로 매우 높은 성장률을 달성했던 것과 같은 이유다.
노동력을 강제로 동원하면 단기적으로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신규로 투입할 노동력이 고갈되고 나면 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북한은 소련을 포함한 사회주의 국가들 가운데 가장 확고한 중앙집권적 명령경제체제를 유지했다.
국유화된 기업이나 협동농장의 자율권이 극히 미미했고 노동자들에 대한 인센티브 역시 매우 취약했다.
시장이 아닌 중앙의 계획(plan)에 따라 경제가 작동됐는데,공장마다 당위원회가 생산량 등을 결정했다.
국영농장과 협동농장으로 나뉘어 있는 농업도 농장관리위원회에서 목표생산량 등을 정했다.
반면 한국은 박정희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뒤 수출주도형 발전전략을 채택하고 민간기업을 육성하는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더 좋은 제품을 값싸게 생산해야 했고,이를 위해서는 생산성을 지속적으로 높여야 했다.
1980년대 노사분규가 터지면서 임금이 급등하자 기업들은 더욱 더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에 매달렸다. 정부는 간섭을 줄여나갔고 민간기업들은 기술 개발과 마케팅으로 경쟁력을 계속 높여갔다.
노동력에 의존했던 북한은 더 이상 신규 투입할 노동력이 없어 한계에 직면한 반면 생산성 향상을 이룬 남한의 주력 기업들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 폐쇄적 경제체제 유지
북한은 원자재 조달에서부터 기술개발,생산에 이르기까지 폐쇄적인 자립형 경제발전 전략을 선택했다.
주체사상의 자주·자립 정신에 따라 외국과의 교역을 가능한 한 줄이고 자체적으로 모든 것들을 생산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북한은 어느 사회주의 국가보다 폐쇄적인(자주적인?) 경제체제를 유지하게 되는데,이는 국제분업 전략에 따라 비교우위 개념을 도입한 한국의 개방경제와는 극명히 대조되는 부분이다.
옛 소련의 붕괴는 북한의 대외무역을 더욱 감소시켰다.
예컨대 1990년 교역량이 25억7000만달러로 북한의 전체 교역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옛 소련과의 교역은 1998년에는 6000만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소련으로부터 원유와 코크스 등을 수입했던 북한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북한의 현재 에너지 공급량은 1980년대 말과 비교할 경우 석탄과 원유는 55~60%, 발전량은 35% 정도 감소했다.
반면 남한은 개방정책을 계속 확대해왔다.
경제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자동차 철강 등 정부가 키우려는 기간산업 분야에서 외국 선진기업들의 국내 진입을 제한했고 수입통제 정책을 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개방형 경제구조를 정착시켜갔다.
그 결과 한국의 대외무역 규모는 세계 10위권을 유지할 정도로 커졌다.
◆ 북한의 개방·개혁정책의 한계
북한이 폐쇄적인 경제체제와 중앙집권식 계획경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이제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북한 스스로도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을 받아들여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추진하고 있다. 선진국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합영법을 제정했고,나진과 선봉에 경제무역지대를 설치했다.
남북교류사업으로 진행 중인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사업 등도 대표적인 개방·개혁 정책이다.
그러나 최근 있었던 미사일 발사실험 등은 북한에 새로운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북한을 제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일방적인 대북지원 사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북한 내 군부 등 강경파들은 자본주의의 물결이 북한으로 유입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북한이 진정한 개혁과 개방 체제로 접어들기는 아직 멀었다는 얘기다.
<사진 : 굶주림에 지친 북한 어린이>
(플래시 그림 : 교동마님 작, 글 : 한국경제 2006-08-14 11:19 기사 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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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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