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티아고 로 에스페호 지역 아이들과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필자. |
칠레 수도 산티아고로 부임한 지 2년이 됐다. 현재 내가 사목하는 곳은 산티아고의 '로 에스페호'(Lo espejo) 지역이다. 이곳 빈민들은 수도와 전기를 몰래 훔쳐서 산다. 이들은 조금 가난한 사람들과 판자촌 주민, 종이상자를 집 삼아 사는 극빈곤층 등 세 부류로 나뉜다.
칠레에도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시골 사람들이 대거 도시로 이주했다. 30년 전부터다. 그래서 도시 외곽은 빈민촌이 많다. 길이 좋고 사회간접시설이 다 돼 있는 지역이 있는 반면, 그 옆에는 무허가로 집을 짓는 곳이 있다. 정부는 부수고 빈민은 또 짓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칠레 정부는 무허가 건축을 없애기 위해 무허가 판자촌에 사는 이들을 전원 이주시킬 계획으로 아파트를 짓고 있다. 하지만 판자촌 주민이 판자촌을 떠나면 종이상자에 사는 극빈층 주민이 그 판잣집을 접수하려고 하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아파트는 지었지만 입주를 미루고 있다. 아파트가 다 지어진 다음 한꺼번에 입주시키려 하고 있다.
▲ 길을 걷다 말을 타고 가는 신자를 만나 반갑게 대화하는 필자. |
#무허가 판자촌 공소에서 나는 이곳에서 선교본당 같은 공소 몇 곳을 담당하고 있다. 한 공소는 마을 꼴을 갖춘 곳에 있고, 또 다른 공소는 무허가 판자촌에 있다. 그곳 주민들은 택시 운전을 하거나 가정부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장터에서 일한다. 설탕으로 만든 과자와 빵을 판다. 헌 옷을 깨끗이 빨아 팔기도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생계 유지가 어렵다. 교통비조차 벌기 어려워 그 지역을 벗어날 수도 없다.
공소 가운데 헤수스 데 나자렛(Jesus de nazaret) 공소는 매우 잘 되고 있다. 대단히 자율적인 평신도들이 스스로 이끌어가는 공동체다. 2년 전 부임했을 때 한 공소 사목회의에 참석했다. 1시간 반 정도 회의가 진행됐는데, 공소회장이 새로 온 신부라고 신자들에게 드디어 나를 소개해줬다. 아무리 사제라도 거의 2시간 동안 발언권이 없었다. 전례와 재정, 신자들과의 관계 등 모든 것이 사목회의에서 착착 진행됐다. 사제에게는 소외된 이들의 가정을 방문해주길 원했다. 사제는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재정적으로는 어려웠다. 평소 교리나 교회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교육 기회가 별로 없다. 그래서 칠레교회는 여름인 1월 첫 주부터 2주 동안 모든 신자가 지역 단위로 매일 교육을 받는 '여름 신앙학교'를 연다. 구약성경반과 교리교육반, 기타반, 민속댄스, 심리학, 대화의 기술, 부모와의 관계 등 다양한 주제로 교육한다. 강사들은 성직자와 수도자가 대부분이고, 평신도 전문가들도 있다. 재교육 여건이 부족한 칠레교회에서 여름 신앙학교가 고등학생 이상 성인들을 위한 재교육 장인 셈이다. 물론 젊은이만을 위한 강좌도 있다.
여름 신앙학교에 가려면 교통비가 많이 든다. 칠레 교통비는 왕복 2000원꼴로 한국과 비슷하다. 주 6회 2주 왕복이면 2만 4000원인데, 그 액수가 이들 한 달 수입의 10분의 1이 넘는 큰돈이라는 점이 문제다. 그래서 신자들이 미사 후에 빵을 팔거나 엠빠나다(empanada)라는 칠레식 만두와 닭고기밥 등을 만들어 팔았다. 본당 아주머니들이 이것을 팔아 본당 청년들을 위한 교통비를 마련하는 것이다. 여름 신앙학교에 갈 당사자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기도 했다.
어떤 신자는 피정에 참석하고 싶은데, 당장 돈이 없으니 1년 또는 2년 계획으로 이러한 수익사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런 것을 오래 전에 계획을 세우고 진행한다. 사재를 털어 도와주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들 스스로 자긍심을 갖고 하는 것에 더 큰 의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신자와 사제가 평등해지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다시 눈을 뜨고 싶어요" 가난한 이가 많은 안드레스 하를란 공소에 나오는 열심인 청년이 있었다. 그런데 계응을 잘 못했다. 하지만 틀리면서도 우렁찬 목소리로 하고, 성가도 잘 몰랐지만 열심히 했다. 알고 보니 그는 점점 눈이 멀고 있었다. 그런데 약도 먹지 않고, 몇 년째 방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눈이 더 나빠지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그도 "다시 눈을 뜨고 싶다"고 했다.
청년 부모 동의를 구하려 했지만, 부모 말이 절망적이었다. 집안일도 바쁜데 그깟 눈이 중요하냐는 것이었다. 그 엄마에게 화가 났다. 집에 찾아가 엄마와 누나를 설득시켰다. 나는 "당장 의사에게 가야 하고, 돈이 얼마나 들지도 모른다. 눈 뜨는 데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나도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겠다"고 했다. 다행히도 엄마가 "그러면 해보라"는 식으로 허락했다. 내가 교통비를 대주는 조건으로 겨우 허락을 받았다.
이곳에는 안질환자가 많다. 미사에 오는 30명 중 3명이 시각장애인이다. 모두 정상인이었는데 시력을 잃은 이들이다. 영양부족과 안질환이 겹치면서 시각장애인이 된 것이다. 가난한 지역일수록 앞 못보는 이가 많았다.
이들의 큰 장점 중에 하나는 가난한 삶 속에서도 행복을 찾는 능력이 많다는 점이다. 작은 일 하나에도 행복할 줄 아는 좋은 심성을 가졌다. 그곳에서 일하는 선교사에게 늘 감사했다. 한국과 한국교회 이야기를 하면 놀라곤 했다. 주일미사에 빠지면 고해성사감이라고 얘기하면 '미쳤다'고 할 정도로 놀랐다. 한국교회가 역사가 짧음에도 칠레에 선교사를 보낸 것에 대해 감사하고 놀라워했다. 그러면 나는 "너희도 언젠가 선교사로 살아가야 한다. 서로 꿈을 나누고 살아야 한다"고 말해주곤 한다.
칠레 주민들 삶을 통해 지금 우리 한국인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 알면 좋겠다. 순간순간 밝게 웃을 줄 아는 지혜를 한국 신자들도 깨달으면 얼마나 좋을까.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한국에서 좀 더 많은 선교사가 나와, 한국교회의 활기찬 모습을 해외 다른 곳에서 나눴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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