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치는 잘생기고 멋있는 생선이다. 삼치가 머릿속에서 떠오르면 시네마스코프 화면에 상연되는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같이 등푸른 생선이지만 고등어는 비스타비전 화면 같고 정어리나 꽁치는 환등기 화면처럼 볼품이 없다. 그동안 많은 고기들을 잡아도 보았고 어부들이 정치망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생선들을 뱃전에서 회를 쳐서 먹어도 보았다. 그러나 삼치는 동해바다에서 쉽게 잡히는 고기가 아니어서 만날 기회가 적은 편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기껏 갈치나 고등어와 친할 뿐 삼치는 먹는 방법부터 서툴다. 삼치 맛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익숙하다는 것은 자주 즐긴다는 뜻이다. 반대로 익숙지 못하다는 것은 자주 만나지 못하여 낯설다는 말이다. 우리는 삼치라고 하면 단번에 구이를 떠올린다. 그동안 어시장 목판에 누워 있는 길이 30㎝ 정도의 자그마한 삼치만 봐왔기 때문이다. 이곳 나로도 어시장 사람들은 새끼 삼치를 ‘고시’라 부른다. 이런 새끼들은 맛이 비려 잘 먹지 않는다. 삼치라는 거룩한 이름은 적어도 1㎏이 넘는 보기만 해도 듬직한 놈을 그렇게 부른다. 삼치는 횟감 생선이다. 아주 큰 것은 10㎏이 넘는 대물도 있지만, 보통은 3~5㎏짜리 중치를 골라 생선회로 뜬다. 너무 큰 것은 맛이 없고 너무 작은놈은 여물지 못해 풋맛뿐이다. 이곳 사람들은 “고시가 삼치 축에 끼들 못해유” 하며 아예 거들떠보지 않는다. 횟감 삼치는 두어 시간 얼음에 재워 숙성시켜 먹어야 제맛이 난다. 선도 유지를 목적으로 냉동을 하면 무른 살이 녹아 버려 씹을 게 없다. 와인을 얼음통에서 식히듯 삼치도 얼음으로 다스려야 한다. 삼치는 물의 온도가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남방계 어류다. 찬물에서 자라는 북방계 어류는 살이 단단하지만 남방계는 살이 연하여 흐물흐물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얼음 속에서 숙성과정을 거치면 경직현상이 일어나 쫄깃쫄깃해져 씹을 맛이 난다. 음식은 먹어 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 삼치회는 여수 고흥 순천 보성 등 전남 동부권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부산과 하동 쪽 사람들까지 구이 쪽을 선호하지 회는 좋아하지 않는다. 이곳 나로도 출신 출향인사들은 겨울이 시작되는 삼치 맛나는 계절이 돌아오면 4, 5명씩 그룹을 지어 찾아와 5㎏짜리 정도는 잠시 해치워 버린다. 그들은 삼치회를 먹는 것이 아니라 고향의 추억을 되새김질해 가며 먹어치우는 것이다. 예부터 나로도와 거문도 사이의 바다는 삼치 어장이 형성된 곳이다. 제주의 방어와 자리돔, 울릉도의 오징어, 연평도의 조기, 임자도의 민어 어장처럼 파시 때는 전국에서 작부들이 모여들고 동네 개들이 지폐를 물고 다닐 정도였다. 특히 나로도항은 어장이 가깝고 수심이 깊어 배들이 내왕하기 좋아 일제강점기 때부터 삼치 전초기지였다. 나로도 부근에서 잡히는 물량으론 턱없이 모자라 완도 청산도는 물론 여수의 배들이 삼치를 싣고 와 이곳 어판장에 넘겼다. 현지에서 파는 것보다 집산지에 내다 팔면 훨씬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옛 영화는 한물갔지만 요즘도 나로도 어시장의 삼치들은 비닐을 깐 얼음 침대에 누워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부르고 있다. ‘아름다운 저 바다와 그리운 그 빛난 햇빛 내 맘 속에 잠시라도 떠날 때가 없도다.’ 나는 삼치에 관한 한두 가지 추억을 안고 있다. 바다낚시를 다닐 때였다. 구룡포항에 방어 떼가 밀고 들어와 정부미 포대로 고기를 건져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음날 바로 내려갔다. 값이 오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주식을 사는 것과 같이 나는 역시 막차 손님이었다. 이튿날 아침 끄심발이 낚시채비를 해 다시 바다로 나갔지만 참치다랑어란 몽땅하게 생긴 고기 두 마리만 잡았을 뿐이었다. 마침 커다란 삼치 한 마리를 낚은 어부에게서 헐값으로 사서 아침부터 해장술에 취해 뽕짝 파티를 벌인 적이 있다. 또 한번은 동해의 월포란 바닷가에서 있었던 일이다. 동네 예비군 모임에서 회식 초청이 들어왔다. 저녁을 먹고 술말 값을 봉투에 넣어 마을회관으로 나갔다. 회원들은 그날 아침 정치망에서 건져 올린 삼치를 굵은 소금을 출출 뿌려가며 잉걸불에 굽고 있었다. 배화교 광신도인 나는 오랜만에 멋진 예배를 올렸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예배의 제물은 구운 삼치 한 토막과 막걸리 한 잔. 그날 밤 역시 뽕짝 찬송을 불렀는지 어쨌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