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사지를 복원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오늘은 모처에서 시행하는 역사강좌에 갔다가
자료 사진으로 올려진 공주 대통사지 추정터를 보니
금당(법당:대웅전) 자리로 표시된 부분이
공주시에서 발주한 대형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곳입니다
전반적인 문화재 발굴 조사를 거치고
공사를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국가 보물로 지정된 대통사지 당간지주에서
오십여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다가
대형공사를 하고 있는데 그곳이 금당터라는 얘기입니다
대통사지에 대한 조사와 발굴은
근대에도 시행이 되었다고는 하는데
사지를 발굴해 내는데는 실패하였고
대략 공주사대부고 앞으로 나있는 길의
북쪽 즉 구 공주경찰서 방면이 아니겠는가
하는 추측이 있다고 하는데 오늘 본 도면은
일제시대 공주고등학교 교사를 하던
가루베지온이라는 일본인이
박물관으로 옮긴 대형 석조가 발견된 지점과
당간지주가 있는 지점을 연결하는 정도에서
대통사지와 금당지를 추측해 그려놓았다는 설명입니다
설사 그렇다해도
만약 대통사의 금당지가 가능할수 있는 확률이
다만 50프로만이라도 된다면 공사를 시행하기 앞서
우선 정밀한 발굴 조사가 선행되었어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공주는 백제의 고도로써
국가에서 만든 고도보존법이라는 이름 아래
공산성과 무령왕릉등 사적을 중심으로 하여
제민천을 거슬러 올라 사대부고 자리에는
충청감영과 동헌을 복원하고 대통사를 복원하며
고도 공주가 지니고 있는 문화유산을 최대한 활용하고
나아가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겠다는
중장기적인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강의를 하는 분이나 듣는 분들 가운데는
반죽동 대통사지 금당터로 추정되는 곳에
그와같은 대형 건축물이 들어서고 있는 것을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은 것으로 보아서
공주가 문화를 사랑하는 도시로써의 경쟁력을 갖추자
하는 소리는 말하기 좋아하는 구호에 불과하고
실질적인 구상과 계획은 전무하다고 밖에는
판단이 되지 않을 지경입니다
지난 여름무렵 공주 법원으로 올라가는
우측에 있는 두어채의 집을 시에서 사들여
지금 문화재 발굴 조사를 하고 있다 하기에
한번 일하는 인부들에게 들어보니
청자 파편등 몇가지 유물이 출토되었다 하고
가림막 안으로는 흰색 도료로 구획을 나누는등
조사를 하고 있는 것에 비해서
대통사지와 주변의 발굴에 대한 조사와 관심은
거의 없다 싶을 정도로 말이 없습니다
참고로 대통사지 바로 앞에는 김갑순씨 집자리가 있고
그 옆으로는 충남도지사를 지낸 서덕순씨 집터가 있으며
바로 길건너 지금 공사를 하고 있는 금당터는
사대부고 앞의 담배 인삼 공사건물 뒤에 있는 지역으로
몇해전까지 유림회관에서 명륜당으로 사용하며
지역 주민들에게 한문이나 유학을 가르치던 곳입니다
그곳을 시청에서 사들여서 건물을 짓고자
조립식 건물을 헐었을때는 보다 면밀한 조사를 거쳐서
정말로 아무런 문화재적 가치가 없다거나
대통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감영 복원등에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났을 때에
비로소 공사를 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오늘 공부하고 오다가 가림막 사이로 보니
이미 일층 기초가 완성된 상태입니다
오늘 그곳이 대통사지 금당터라는 지도만 보지 않았다면
굳이 시에서 하는 일에 시시콜콜 토를 달지 않겠지만
정말로 그 자리가 금당터라고 한다면
공주는 천오백년의 역사를 지닌 훌륭한 문화적인 가치를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을 사용해 뭉개버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참고로 1930년 매일신보에 실린 기사를 적어봅니다
"백제시대의 석불소상
공주군청 구내에 보존
충남 공주 제민천 제방
(고녀교전高女校前)에 위치하여 있는 불상을
지난 25일 공주군청 구내로 옮겨보존케하고
공주 서혈사에 있는 석불을 동처로 옮겨 보존케하고
일반의 고고학 자료로 열람케 한다는데
제민천제방에 있는 불상(고가 1장 6척 폭이 6척)은
지금부터 약 1500년전 백제시대에 조성한 것인데
동처에 매몰되어 있는 것을 당지 김갑순씨가 건립하여
금일까지 보존하여 오던 것이라는데
씨의 승락을 얻어서 옮기게 된것이라 한다
매일신보 1930.07.28"
기사에서 보듯
고녀교전이라는 것은 구 공주여고 건물로
지금의 담배인삼 공사 건물과 주변에 해당하고
김갑순씨가 제민천변에서 석불을 발굴해 모시고 있다가
공주군청으로 옮겨져 갔다면
지금 공주 박물관이나 어디엔가는 있어야 하고
그렇다면 분명 대통사지의 위치는
지금의 당간지주 주변이 더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고가 1장 6척이라고 하는 것은
장륙존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요즘 말로 하면
4.85미터에 해당하는 큰 석불상을 말합니다
신라의 대표적인 3대 보물을 꼽는다면,
진흥왕 때 만들어진 황룡사의 장륙존상과
진평왕의 허리띠인 옥대,
그리고 선덕 여왕 때 만들어진 황룡사 9 층탑인데
만약 백제의 보물을 몇가지 이야기할때
대통사지에서 나온 장륙존상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대통사지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가 될것입니다
이미 터를 파고 기초공사를 끝낸 상태에
철골 구조물이 올라가려고 하고 있으니
차 지나간 뒤에 손 흔드는 것과 마찬가지일지는 몰라도
이런 사실을 알고도 모르는체 공사를 진행하는
공주시의 안이한 행정력에 책임을 묻지 않을수 없습니다
얼마전 대통사지 당간을 살피러 가까이 가보니
보수공사를 하느라 하얗게 바른 재질들이 박리되어
떨어져 부서질 지경에 처해 있기에
말로는 백제의 고도요 문화도시라고 하며
공주는 문화를 팔아서 먹고 살수있는 기반이 있다
하면서도 정작 우리가 무엇을 돌아보고 어떻게 보존하며
어떤 방식으로 복원할것인가에 대해서는
행정가나 학자들이 주먹구구식 탁상행정만 하고 있다 여겨집니다
백제와 고려 조선과 연관된 공주는
알면 알수록 진국이 우러나는 설렁탕 같은 동네인데
정작 그 영양가 있는 보배 창고가
근시안적인 눈을 가진 이들로 인해
한순간에 깨져 흐트러져버리니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수 없듯이
훼손해버린 후에 복원이란 말은 말만 있을 뿐
대통사 복원의 실체는 공허하기만 한 것입니다
눈밝은 사람들의 관심과 행동을 바라며...
이 모두가 부처님 덕분입니다 나무석가모니불 ()()()
원효사 심우실에서
나무아미타불
첫댓글 '근세 공주 불교 이야기' 198번을 참조해보면 2008년 12월 14일 특급뉴스
오희숙 기자가 쓴 기사에서 - 윤여헌 공주향토문화연구회장은 "공주시가
당간 지주 부근의 사유지를 수용, 가옥을 철거하고 발굴조사를 실시한 후에
대통사 복원을 계획하기도 했지만, 대통사는 가옥을 철거한 면적보다 훨씬
그 규모가 컸기에 사찰을 복원하기에는 장소가 시가지 중앙이라는 점에서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했다.-
2008년 기사임을 감안할 때 현재 금당터라고 추정되는 장소에 시행되고
있는 건물 공사는 이미 '대통사 복원 불가능'이라는 결론을 공주시에서
내린 후에 오랫동안 계획된 공사인 것 같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실질적인 복원과 보존이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