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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정호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죽음과 친해지는 일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과제다.
서른 셋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포크가수 김정호는 죽음과 서서히 친해지면서 짧지만 뜨거웠던 청춘의 한 때를 불사른 가수였다.
1952년생, 서울 성동고 졸업, 본명은 조용호. 그의 성장기가 어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판소리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아버지는 성이 조씨였다는 것 밖엔.....
70년대 초반 통기타 한대 들고 명동에 왔을 때 사람들은 "신동(神童)에 가까운 작곡가가 나타났다"고 했다.
어머니 덕분에 일찌감치 익힌 판소리를 바탕으로 그는 5음계만을 사용하여 심금을 울리고 폐부를 찌르는 처연한 노래를 만들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가수로 만든 건 "애플프로덕션 김웅일 대표"
74년 데뷔앨범 <이름 모를 소녀>를 내놨을 때 시장의 반향은 폭발적이었다. 밤을 새워 앨범을 찍어내도 모자랄 정도였다. 단조(短調)에서 오는 처연함과 애수를 느끼게 하는 그의 목소리는 듣는 이의 가슴을 후벼팠다.
<이름 모를 소녀>는 물론 <사랑의 진실><하얀 나비> <작은 새> <빗속을 둘이서>에 이르기까지 어느 곡 하나 버릴 것 없는 꽉 찬 앨범이었다. 당시 김정호의 매니저였던 이상기씨(현 상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이름 모를 소녀"의 주인공은 훗날 결혼한 부인 이영희씨였다고 술회한다.
75년 잇달아 <하얀나비>를 내놓으면서 한(恨)이 느껴지는 포크가수로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인기가 오를수록 그는 서서히 죽음 곁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대마초와 폐결핵. 그 두 단어가 결정적으로 그의 발목을 잡았다.
"곡을 쓸 때면 수유리 그린파크 호텔이나 변두리 여관에 장기 투숙했어요.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곡이 나올 때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매일 피워대던 줄담배로 그의 폐는 빠르게 썩어 들어 갔죠” 이상기씨의 회고다.
75년 겨울은 당대의 다른 가수가 그러했듯이 김정호에게도 불행한 계절이었다. 인기듀오그룹 멤버였던 ㅇ씨가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와 대마초를 피우다 발각되어 대마초 가수들에게 철퇴가 내려졌다.
당시 김정호를 담당했던 조모검사는 딸이 열렬한 팬이라면서 훈방 조치했다.
그러나 다시 내려진 재수사 지시에 김정호는 모진 고문에 시달린 뒤 가수활동이 금지됐다. 이상기씨는 그의 폐병치료를 위해 인천의 요양소에 수용시켰다.
그러나 김정호는 감시가 느슨할 때면 어김없이 서울에 올라와 통기타 업소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이상기씨는 “그의 노랫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에 대한 애틋함을 갖고 있던 가수”라고 회고한다.
당시로서는 꽤 많은 돈을 벌었음에도 그는 집에 한 푼도 가져가지 못했다. 살림이 어려운 선배가수 집에 쌀을 보낸 미담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고, 배고픈 음악 동네 후배들의 용돈은 거의 그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77년 부인 이영희씨와의 사이에 쌍둥이 딸이 태어났다. 그러나 폐결핵은 그의 생명을 시나브로 단축시키고 있었다.
81년 활동금지가 풀리면서 ‘인생’을 내놨다. 83년 유작앨범이 된 ‘님’은 그가 남긴 유언인 셈이었다.
"간다 간다 나를 두고 떠나간다"라는 절규가 담긴 노래를 녹음하면서 그는 삐쩍 말라 뼈만 남은 몸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가 부른 노래에는 국악과 가요를 접목하여 새로운 리듬과 멜로디를 만들어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내 죽거든 앞이 툭 트인 곳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그는 85년 11월 서울대 병원에서 세상을 떴다. 서른셋이었고 겨울이었다.
그는 지금 경기 파주의 기독교 공원묘지에 잠들어 있다. ‘이름 모를 소녀’의 주인공이었던 부인 이영희씨는 재가도 하지 않은 채 쌍둥이 딸을 키웠고, 큰딸 정선씨(25)는 곧 작곡가로 데뷔한다.
한 시인은 그의 노랫말을 가리켜 "한국적인 정서가 물씬 묻어나는 울림이 담겨있다"고 평했다.
하늘과 바람, 새와 꽃잎-무엇보다도 인간을 사랑할 줄 알던 가수 김정호는 지금 우리에게 없다. 그러나 그의 노래는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살아있다.
배호, 차중락, 하수영의 요절에 이은 김정호의 죽음. 가요계서는 “슬픈 노래를 부르면 요절한다”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였다.
살아있을 때 유난히도 살갑게 가요계 선.후배들과 어울렸던 김정호의 죽음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특히 ‘밤에 떠난 여인’의 가수 하남석은 가장 아끼던 후배의 죽음에 가장 슬퍼했다.
서울대 병원 영안실을 지키던 하남석에게 ‘향수’의 가수 이동원이 그의 음악세계도 조명하고 유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헌정앨범을 만들자고 제의했다.
이래서 나온 ‘김정호 추모 앨범’은 헌정 앨범의 효시였다. 김범룡이 ‘이름 모를 소녀’를, 김현식이 ‘님’을 불렀다. 송창식(잊으리라), 윤시내(하얀나비), 한마음(빗속을 둘이서), 서수남·하청일(사랑의 진실), 윤승태(작은새) 등이 그가 남긴 주옥같은 노래들을 불렀다.
이들 외에도 전영록, 김학래, 홍민, 이정선 등 후배들이 앞 다퉈 선배가수의 추모앨범을 만드는 데 열과 성을 다했다.
당시 각자 다른 소속사에 적을 두고 있었지만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KBS 음반기획상’을 받는 등 높이 평가받았다.
33세에 비운에 요절한 천재 작곡가이며 가수인 김정호, 그가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우리 가요계의 판도는 엄청나게 달라져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삼가 조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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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 애틋합니다. 노래 잘하는 가수였는데, 너무나 빨리 갔어요. 가족이 있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총각인 줄 알았네요. 부인이 고생을 많이 했겠어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지요. 이름모를 소녀....부인을 위한 사랑의 세레나데네요*^^*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