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사
백련사는 신라 문성왕 때 무염국사가 창건하였는데, 당시 사찰 이름은 만덕사라고 불렀습니다. 이후 고려 원묘국사가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풀어나갈 수 있는 불교적 대안을 마련하고, 대중적 기반의 침체된 불교 중흥을 위해 만덕사에 보현도량을 열어 수행교화체계를 세우고, 백련결사운동을 전개하면서 백련사로 사명을 바뀌었습니다. 백련결사운동은 보조지눌의 수선사 결사와 더불어 고려후기 새로운 불교운동의 두 축이었습니다.
백련도량의 수행체계는 당시 교학만을 강조하는 화엄종과 선 수행만을 주장하는 선종과 통합하여 누구든지 쉽게 부처님 가까이에 있게 하였습니다. 새로운 교화체계는 대중들도 쉽게 불법에 귀의하여 자기가 지은 죄를 참회하고 정토에 태어날 것을 발원하는 수행운동을 이끌었습니다. 백련결사를 주창한 요세스님은 지혜력(知解力)을 갖춘 근기를 가진 자만이 수행의 대상으로 삼았던 당시 지식불교를 비판하고 비록 막중한 죄를 지어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탈할 수 없는 범부일지라도 부처님전에 나아가 참회하고 수행하면 해탈할 수 있다고 설하였습니다.
백련결사운동의 중심사찰인 백련사는 8명의 국사를 배출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8명의 대사를 나왔습니다. 백련사 동백림에는 선지식들의 깨달음 설법이 부도라는 형체로 우리들에게 무언의 법문을 하고 계시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자료출처: 전통사찰 관광안내
백련사 입구 천연기념물 동백림
백련사 천왕문
백련사 입구
백련사 전경
백련사 요사
백련사 만경루
백련사 대웅보전
백련사 대웅보전 문살
백련사 대웅보전 외부 벽화
백련사 대웅보전
백련사 명부전
백련사 명부전내
백련사 요사
백련사에서 바라다본 강진만
백련사 응진당과 천불전
백련사 응진당
백련사 응진당내
백련사 천불전
백련사 천불전내
백련사 전경
백련사 삼성각내
백련사 괘불지주
백련사 범종각
백련사 사적비
백련사 사적비
첫댓글 장흥에 근무할 때 영랑생가와 백련사를 자주 다녔습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동백과 백일홍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