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특징
공광규
1. 들어가며
신경림(1935~ )은 1955~6년 <<문학예술>>지에 시 <갈대> 등 여러 시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후 10여 년간 공백 기간을 가지다가 1970년 <<창작과비평>>에 <파장> 등의 시편들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본격화 했다. 지금까지 10권의 시집과 이를 모은 전집 2권, 여러 권의 시선집, 민요기행 및 수필집 등 산문집과 평론집을 냈다.
신경림은 한국 현대시사에서 서정시의 창작을 방법적으로 혁신하고, 서사시의 창작 실천을 통하여 방법적으로 확장하였으며, 현실 문제를 시에 반영하는데 있어서 다양한 방법적 확대를 시도한 중요한 시인이다. 등단기부터 현재까지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에 관한 변화의 흐름을 간단하게 일별하면 다음과 같다.
가. 등단기의 전통적 서정시 방법
나. 70년대를 전후한 민중의 삶을 제재로 한 이야기 요소를 시에 도입하는 방법
다. 70년대 중반 이후 시에서 민요의 율격과 정서를 수용하는 방법
라. 90년대 이후에 서정성을 강화하는 방법
마. 서사시의 창작을 통한 양식적 실험
바. 최근 산문시의 경향
이러한 변화를 보인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상 특징을 요약하면 서정시의 방법적 혁신, 서사시의 방법적 확장, 현실반영시의 방법적 확대이다. 이러한 특징을 시를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서정시의 방법적 혁신
신경림은 당시 전통적 서정시나 난해시 위주의 문단 흐름이 당대 민중현실을 형상화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서정시의 양식적 혁신을 실험한다. 신경림이 기존 서정시의 전형을 혁신하는 방법은 시에 민중 이야기를 삽화적으로 구성하며, 전통적인 민중시가 양식인 민요와 무가를 수용하는 것이었다. 우선, 신경림 시에 도입된 이야기가 인물의 행위 표출과 사건의 연결을 통해서 어떻게 한편의 시로 구성되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 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쌀값 비료값 얘기가 나오고
선생이 된 면장 딸 얘기가 나오고
서울로 식모살이 간 분이는
아기를 뱃다더라. 어떡할거나.
술에라도 취해볼거나. 술집색시
싸구려 분냄새라도 맡아볼거나.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닭이라도 쳐볼거나.
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
색시 젓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
이발소 집 신랑을 다루러
보리밭을 질러가면 세상은 온통
하얗구나. 눈이여 쌓여
지붕을 덮어다오 우리를 파묻어다오.
오종대 뒤에 치마를 둘러쓰고
숨은 저 계집애들한테
연애편지라도 띄워볼거나.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돼지라도 먹여볼거나.
- <겨울밤> 전문
단연 26행의 이 시는 전통적 서정시법인 비유나 상징에 의지하기보다 인물의 행위와 사건을 연결하면서 시를 구성하고 있다. 자조적이고 자괴적인 어조가 두드러지는 이 시에 등장하는 인물을 몇 명일까? 화자를 포함하여 7명이나 된다. 또 장꾼들, 면장 딸, 분이, 술집 색시, 이발소집 신랑 등 등장인물의 면면을 봤을 때 소외되고 피폐한 1960~70년대 농촌의 전형적인 인물들이다.
시에 나오는 화자를 비롯한 인물들은 묵내기 화투를 하거나 쌀값 비료값 얘기, 면장 딸 얘기, 분이에 대한 걱정, 묵 먹기, 술 마시고 물세 시비하기, 젓갈 장단에 유행가 부르기, 신랑 다루러 보리밭 건너가기 등의 행위를 연결하여 시를 구성하고 있다.
신경림은 시에 전통적인 민중시가 양식인 민요와 무가를 수용하고 있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하네”(<목계장터> 부분)라고 민요의 율조를 수용하거나, “편히 가라네 날더러 편히 가라네/ 꺾인 목 잘린 팔다리 끌고 안고”(<씻김굿-떠도는 원혼의 노래> 부분)처럼 무가의 사설 형식을 차용하기도 한다.
3. 서사시의 방법적 확장
신경림은 1,032행의 <새재>(1978년)와 1,341행의 <남한강>(1981년), 그리고 1,661행의 <쇠무지벌>(1985년) 등 세 편의 서사시를 모아서 연작 장편서사시집 <<남한강>>을 낸다. 이 시집에 수록된 각 시편의 역사적 배경은 1920년 한일합방, 1919년 삼일운동, 1945년 해방이라는 직선적 흐름으로 구성된다. 이 세편의 시들은 각각 독립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민중의 투쟁이라는 일관되고 공통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남한강>>은 일제 강점기 민중의 참담한 현실을 형상화한 <국경의 밤>(1925년)과 강렬한 민중의 저항의식을 형상화한 <금강>(1967)을 전통으로 하는 강한 역사의식이 발현된 동일 계열의 서사시이다. 그러나 신경림은 이들 앞선 서사시들이 갖는 서술방법을 새롭게 하고 있다. 시에 이야기와 노래, 놀이를 결합하거나 집단적 인물배치와 대립을 통해 기존의 서사시 서술 방식을 지양하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신경림 역시 서문을 통해서 <<남한강>>을 서구적 의미의 서사시라기보다는 새로운 형식으로서 연작장시로 파악하고 있으며, 세 편 모두 시간과 장소, 기술 방법을 의도적으로 다르게 했음을 밝히고 있다.
민중의 수난과 저항을 서술한 <<남한강>>을 읽어가다 보면 서경, 서사, 서정이 유기적으로 배합되는 가운데 민요나 무가 등 전통 민중시가와 공동체 놀이 등이 시의 진행 과정에서 효과적으로 수용됨을 발견할 수 있다. 또 시에 나오는 인물들이 대립하며 갈등과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이 발견된다.
저기 저게 무슨 소리
줄바위 열두 굽이
다람쥐가 뛰는 소리
저기저게 무슨 소리
정참판네 중대문에
왜놈 청놈 나드는 소리
위에 인용한 부분은 전래되어 내려오는 전승사설이 앞에 나오고 창작자가 직접 만드는 창조사설이 나중에 나오는 것을 반복하면서 흐름을 구성하고 있다. 또 사설은 대화형식으로 구성된다. 문답형식의 대창으로 짜인 민요의 서술원리를 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민요형식이 수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아래 인용한 부분과 같이 한 연 안에 노래와 이야기가 섞이는 경우도 잇다.
비야 비야 오지마라
우리 연이 홑적삼
노랑저고리 다 젖겠다
팔배는 흥얼대는데
하룻밤이 지났는데도 마을은
그냥 시끄러워
저 곳간 속에 썩은 쌀은
우리 것이다
정참판의 집을 습격한 주인공인 돌배와 모질이, 근팽이, 팔배가 헌병보조원과 정참판네 하인들에게 쫓겨서 도망을 가는 부분이다. 창작자는 인물들이 도망을 가면서 전래 동요인 <비야 비야>를 부르는 것으로 민요와 서사, 즉 노래와 이야기를 결합시킨다. 이렇게 신경림은 서사시에 이야기와 노래, 그리고 놀이를 혼합하면서 집단 인물의 대립과 사건을 연쇄시키면서 시를 구성해 간다.
4. 현실반영 시의 방법적 확대
신경림은 시를 현실 삶으로부터 분리시키지 않고 있으며, 현실적 삶의 내용을 다양한 창작방식으로 재현하고 있다. 특히 그의 많은 시편들은 정치적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시와 이데올로기>(1979)라는 글에서 1950년대 이후 우리 시에서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내용으로 수용하거나 주제로 취하는 예가 극히 드물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적 내용을 가진 시들이 이데올로기의 심부름꾼이나 녹음기 같이 전달에 그친다면 시적으로 실패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신경림은 이데올로기의 시적 수용은 사람의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을 취할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정치적 상상과 현실을 서정적으로 형상하여 정서화 하기 위한 방식으로 간결한 암시적 묘사와 인유를 활용하고 있다.
나는 죽은 당숙의 이름을 모른다
구죽죽이 겨울비가 내라는 제삿날 밤
할 일 없는 집안 젊은이들은
초저녁부터 군불 지핀 건넌방에 모여
갑오를 떼고 장기를 두고,
남폿불을 단 툇마루에서는
녹두를 가는 맷돌소리.
두루마기 자락에 풀 비린내 묻힌
먼 마을에서 아저씨들이 오면
우리는 칸델라를 들고 나가
지붕을 뒤져 참새를 잡는다.
이 답답한 가슴에 구죽죽이
겨울비가 내리는 당숙의 제삿날 밤.
울분 속에서 짧은 젊음을 보낸
그 당숙의 이름을 나는 모르고.
- <제삿날 밤> 전문
단연 15행인 위 시에서 시적 시간은 당숙의 제삿날이다. 이 작품의 핵심은 죽은 당숙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과, 당숙이 울분 속에서 짧은 젊음을 보냈다는 것이다. 죽은 당숙의 이름을 모르니 화자가 어렸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름을 모른다는 것을 반복하여 강조하는 것으로 봐서는 이름을 말하기가 석연치 않은 분위기라는 것이다.
또 젊어서 죽은 당숙인데도 마을에서 아저씨들이 오는 것을 보면, 죽을 당시에 젊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부터 어떤 존경을 받을만한 인물의 예사롭지 않은 죽음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거기다가 “울분 속에서 짧은 젊음을 보”냈다는 부분에서 당숙이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현실에 대한 불만이나 사회개혁을 위해 활동을 하다가 일찍 죽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5. 나오며
이상 논의한 신경림의 시 창작방법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가 서정시의 방법적 혁신이다. 신경림은 시에 이야기의 도입과 민요 및 무가의 차용을 통해 기존의 서정시를 방법적으로 혁신하고 있다. 신경림 시에 이야기가 있는 경우에는 민물의 행위와 사건이 확연하게 드러나 있고 시간 및 공간의 질서 역시 뚜렷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주체인 민중의 짤막한 이야기나 사건을 연결하는 삽화적 구성을 하고 있다. 또 민요와 무가 등 전통 민중시가 양식을 시에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민요 율격을 계승하고 민중 정서를 재생하며, 무가 운율의 차용과 어법을 활용하는 창작방법상 특징을 보여준다.
둘째는 서사시의 방법적 확장이다. 신경림은 장편서사시 <<남한강>>의 창작과정에서 민요와 무가를 이야기 속에 적극적으로 결합시키거나 농무 등 집단놀이를 대거 수용하는 실험을 통해 기존의 서사시를 방법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또 인물을 집단적으로 대립시키고 집단 행위의 갈등과 사건의 전개라는 구성방식을 취하고 있다. <새재>, <남한강>, <쇠무지벌> 세 편의 장시는 연작형식이기는 하지만 화자의 변화와 함께 아야기와 노래 및 놀이의 결합 분포를 다르게 하는 창작방법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셋째는 현실반영 시의 방법적 확대이다. 신경림은 시에 개인의 체험이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현실을 반영할 때 다양한 비유방식으로 정서화, 감각화를 시도한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정치적 사건의 암시적 묘사, 역사적 인물과 시사적 사건의 인유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풍유와 우화의 방법도 활용한다. 또한 시에 울음, 통곡, 흐느낌 등 울음과 관련된 어휘의 반복을 통하여 자아 표출의 변화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문학아, 2009 하반기)
-http://blog.daum.net/funandcool(말똥 한 덩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