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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1세 때에 성공적인 무역업자 한 사람이 중요한 대사직을 임명받게 되었읍니다. 그는 이 커다란 명예를 베푼 여왕에게 감사했지만 이 직무를 면해 달라고 청하였읍니다. 자기가 외국에 나가면 자기의 사업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게 되고 금전적으로 큰 손실을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읍니다.
여왕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그대는 외국에 나가 나의 일을 돌보시오. 내가 그대의 일을 돌보리다." 그래서 그분은 대사직을 수락하고 외국에 몇년 동안 나가 있었습니다. 다시 돌아왔을 때 여왕은 약속한 대로 그의 사업을 아주 잘 돌봐 준 것을 그는 알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 가운데 주님의 일을 가장 꼭대기에 두도록 노력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어떤 신자들은 그들의 시간과 재능을 그들의 개인적인 즐거움이나 계획에 차질이 없을 때만 주님께 드립니다. 하나님을 첫 번째에 버금가는 중요한 자리에 두려고는 하나 그들의 삶에서 주님과 주님에 대한 봉사를 가장 중요한 자리에 두기를 주저합니다.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으뜸되는 자리에 올려놓아야 하며 그분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보살펴 주신다는 것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모든 것 중에서 우선해서 모시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의 가장 큰축복을 주십니다. 당신은 주님을 당신의 삶에서 첫 번째로 모시고 있습니까? 마 6:33
먼저 구할 일
본 문: 마태복음 6:33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 성경 말씀은 참으로 중요한 말씀이기에 여러분들에게 꼭 기억하라고 부탁을 하고 싶습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이 간단한 말씀 가운데 3가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구하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 이 3개의 단어를 깊이 생각해 보고 그 속에서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진리를 찾아 보려고 합니다.
첫째, `구하라' 입니다.
인간을 깊이 생각해 보면 구하는 존재라고 규정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동물도 구하는 존재이긴 하지만 사람과는 비교가 안 되지요. 인간은 굉장히 복잡하게 구합니다. 동물과 다른 점은 적어도 4가지 영역에서 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육체적으로 구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나 있나 생각해 보세요. 옷을 구해야 하고, 먹을 것을 구해야 하고, 잠잘 곳을 구해야 하고, 등등 아주 많은 것이 기본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만큼 구해야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회적인 영역입니다. 인간은 육체적인 욕구만 가지고는 살 수가 없거든요. 살아 가기 위해선 친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boy friend, girl friend가 필요하게 되고 그래서 이성교제를 하게 되지요. 또한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여러 가지를 구하게 됩니다. 그 다음 구하게 되는 것이 지식적인 영역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이렇게 대학 생활하는 것도 지식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우리는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나 인간은 또한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만 가지고는 늘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 우리는 창조주와 교제를 하고 그 속에서 영적인 만족을 얻게 됩니다.
또한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Want의 차원입니다. 돈, 명예, 권력이 이 세상에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많지 않으니까 서로 차지하려고 애를 쓰지요. 이것은 Want의 결핍에서 오는 것이지요. 둘째는 Need 차원입니다. 살아 가는데 꼭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주거 공간이 필요하고, 먹을 것이 필요하고, 가정이 필요하고 등등 이런것들은 Need 차원에서 구하는 것들이 되겠지요.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이 있는데, 그것은 Hope 차원입니다. 지금은 가지지 못했지만 그러나 언젠가는 갖게 되리라는 희망인 것이지요.
에릭 프롬이 쓴 <The Revolution of hope - 희망의 혁명>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보면 젊을수록 희망이 많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니까 희망이 줄어드는 것 같아요. 내 나이 정도 되면 가지는 희망이란 것이 자녀들이 잘 되는 것 정도이니, 여러분들이 가지는 희망의 차원하고는 많이 다를 겁니다. 어째든 인간은 누구나 나이가 많건 적건, 많이 배웠건 적게 배웠건 희망을 가지게 되지요. 다만 그 희망하는 내용이 다를 뿐입니다. 사람에게는 많은 소원이 있는데, 그것을 셀 수 있다면 몇 가지나 될까요? 서양 사람들이 계산해 봤더니 인간이 80살을 산다고 가정하고 일생에 구하는 것이 약 6,000가지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아직 어리니까 한 300가지 정도 될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많은 욕구, 소원들이 있는데, 동시에 이런 욕구나 소원 등을 다 충족시킬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리 부자라도, 아무리 권력을 높이 가진 사람일지라도, 아무리 많이 배운 사람일지라도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지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지혜가 필요한 겁니다. 어떤 지혜가 필요할까요? 보통 사람들은 대개 그 모든 욕구들이 한꺼번에 충족될 수 없다는 것을 알지요.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꺼번에 다 가지지 못해서 아우성치는 사람들은 대개 정신병원에 갑니다. 그래 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한꺼번에 가지지 못해서 아우성치는 현상들이 많이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한탕주의라는 거지요. 이런 사람들이 많으니까. 우리 나라에서 제일 잘 되는 병원은 정신병원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둘째, `먼저' 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은 구하는 존재이지만 구하는 데도 순서가 있다는 겁니다. 지혜가 뭐냐하면 바로 먼저 구할 것, 나중에 구할 것을 옳게 판단하는 거예요. 먼저 구해야 될 것을 먼저 구하라는 것, 이것이 성경 말씀 속에서 `먼저'라는 의미입니다. 인간에게는 가지고 싶은 것이 많이 있는데, 그것을 한꺼번에 다 가지지 못하니까 순서를 두어서 구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순서를 두고 구해야 하는데 제일 먼저 구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가장 가치있는 것 아니겠어요? 가장 가치있는 것을 제일 먼저 구하고, 그 다음에 두번째 가치있는 것, 세번째 가치있는 것 이렇게 순서대로 가치를 정해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알렉산더 솔제니친이 쓴 <암병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을 보면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병원에 환자들이 죽 누워 있어요. 사람들이 심심하니까 이야기를 해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한 사람이 "돈이야" 하니까 다른 사람이 "돈보다 더 큰 것을 권력이야. 권력만 있으면 돈도 생기고 다 생기는지 몰라?" 옆에 있던 사람이 "돈, 권력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아. 정작 중요한 것은 고상한 것이야." 하니까 그 옆에 있던 소녀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연애인데, 딴 소리하고 있어."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 모두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건강 아니겠어요? 암병동에 있으면서도 자기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처럼 우리 사회에도 돈이 중요하고 권력이 중요하다고 하며 엉뚱한 것만 찾아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구하는 데는 가장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이 있기 마련인데 이것을 위계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위계화라고 하는 것은 피라미드와 같은 형태로 밑에서부터 차곡차곡 중요한 순서대로 쌓아 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앞으로 인생을 더 살다보면 알겠지만 인간이 구하는 것 가운데 제일 하차원적인 것은 육체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구하는 것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이 중요하지요. 인간이 일생동안 얼마나 먹겠는가 계산해 본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계산한 것을 보면 80가마니쯤 먹는다는 겁니다. 또 고기는 500근 정도 먹는다고 합니다. 쌀 80가마니와 고기 500근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 가겠어요? 아니면, 어떤 사람처럼 로렉스 시계 40개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데 그와 같은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겠습니까? 이런 것에 인생의 목표를 두고 살아 간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의외로 그런 하차원적인 것에 목표를 두고 살아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은 모두 하차원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보다 조금 더 높은 차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안전을 구하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돈이 생기면 더 많이 가지고 싶고, 지위가 생기면 더 높이 앉고 싶고, 명예가 생기면 더 구하려고 하는데, 이런 것들은 결국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보다 조금 더 높은 차원은 사회에서 자기의 위치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지요. 우리집 애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지금 서울에 와서 처음으로 대학 교단에 서게 되는데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더라구요. 선배 교수에게 인사해야지, 학생들과 잘 사귀어야지, 지금 그 아이는 사회 속에서 자기의 위치를 잡는 데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높은 차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에이브라함 머슬로가 이야기한 것처럼 자기 자신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 자신을 구현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그저 아무 뜻없이 무가치하게 태어나는 것은 아니거든요. 누구든지 가치를 지니고 태어나지만 그 가치는 손금이 다르듯이 다 달라요. 이처럼 가치, 다시 말하면 재능이 다 다른데 이 재능을 개발하여 극대화시키는 것이 가장 보람 있는 일이지요.
사실 생각해 보면 한 사람이 모든 재능을 다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어요. 물론 팔방미인이라고 해서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특별한 경우이고, 보통은 한두 가지 정도 가지고 태어나지요. 재능이 많다고 해서 일생동안 그 모든 재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개 한두 가지 정도 잘 개발하여 자기 가치를 구현하면 그 사람은 인생을 성공으로 산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대로 재능이 다 있을 것인데 그것을 잘 개발해서 극대화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TV를 봤더니 미국의 어떤 큰 회사 사장이 아들에게 "너는 내 후계자가 되어 앞으로 이 회사를 경영해야 할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Business School에 가서 경영학을 공부하라." 고 한단 말이지요. 그런데 아들은 회사 경영에 대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러나 아버지가 하라니까 어쩔 수 없이 하버드 Business School에 가서 공부합니다. 공부한 후에 아버지 회사의 중역으로 일하다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다음 회사의 사장이 됩니다. 사장에 취임하고 난 며칠 후에 사표를 내고 시골로 떠나더군요. 그곳에서 이 사람은 꽃을 가꾸는 겁니다. 꽃은 극진히 사랑하며 가꾸는데 그 결과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 내더군요. 새로운 품종이 사람들에게 너무 인기가 있으니까 자연 돈도 많이 벌게 되어 아버지가 경영했던 회사보다도 더 큰 회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처음에 돈을 벌려고 꽃을 가꾼 것은 아닌데 자기의 재능을 극대화시킨 결과가 훌륭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자신을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고 삶의 보람을 가져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나라와 의' 입니다.
먼저 구하는데 무엇을 먼저 구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사람이 자기의 재능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한데 그 목적을 자기의 이익과 안전만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가치없는 일일 뿐입니다. 여러분들이 데이트해 봐서 잘 알겠지만 제 자랑만 하고 제 이익만 챙기는 사람은 별 볼일 없잖아요? 사람이 좀 바보스럽게 생긴 것 같지만 남을 이해하고 위해주는 사람이 훨씬 믿음직스럽지요. 그런 사람은 친구가 많아지고 결국 나중에는 성공하게 되는데, 이것이 역설의 진리입니다. 역설의 진리는 성경에 가득차 있습니다. 사랑하라 그러면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백을 사랑하면 백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백이 더 생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입니다.
내가 존경하는 분은 김구 선생님인데, 그 분은 일생동안 자기를 희생하면서 나라를 위했거든요. 김좌진 장국이나 윤봉길 의사같은 분들이 왜 존경받는가? 그 분들은 자유를 희생해서 나라와 민족의 자유를 구했거든요. 왜 마더 테레사 수녀가 세계적으로 존경받습니까? 그 분은 여자지만 이쁘지 않아요. 유고슬라비아 사람인데 못생겼어요. 그렇지만 인도의 빈민촌 캘커타에 와서 자기의 자유를 희생해서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구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슈바이쳐를 왜 좋아합니까? 아프리카에서 자기 자신을 희생했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닙니까?
그러면 어떻게 자기의 재능을 자신만을 위해서 쓰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쓸 수 있을까? 여기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으며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하는 물음에 해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Why was I born?" 나는 왜 태어 났습니까?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사람 누구 있습니까? 한국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고 태어난 사람 있으며 손들어 보셔요. 남자가 되겠다고 한 사람? 김씨가 되겠다고 한 사람? 그 이유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 자신이 왜 태어 났는지 알 수 없고 하나님을 믿을 때에만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 뜻없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 뜻이 무엇인가? 그게 바로 사명이라는 거지요. 사명이란 것은 내게 주어진 텔렌트를 통해 과학자가 되고, 기술자가 되고, 문학인이 되고 하는 것인데, 그런 것들을 통해서 이 땅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미국에서 오래 살았지만 영주권을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한국 땅에 태어나게 한 것은 한국에서 뭔가 이루어 보라는 뜻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북해도 대학에 가면 그 곳 캠퍼스에 흉상이 하나 세워져 있습니다. 크아크 박사라는 사람이 흉상인데 그는 캐나다 사람이지요. 그는 19C 에 그곳에 와서 "청년이여 대망을 품어라! Boys, BE Ambitious!" 고 역설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북해도 사람들은 너무 좌절하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들은 희망을 가졌고, 이름있는 문인들이 배출되고, 우찌무라 간죠오 같은 학자도 배출된 것입니다. 크아크 박사가 북해도에서 얼마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느냐 하면 6개월입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학생들에게 큰 뜻을 심어 주었기 때문에 그런 훌륭한 사람들이 배출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여러분들의 미래 이력서를 써보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이력서는 자주 쓰지만 미래의 이력서는 쓰지 않거든요. 그러나 미래의 이력서를 쓰게 되면 자기 삶에 책임감을 갖게 됩니다. 확신하건데 미래의 목표를 세워두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북이처럼 목표를 향해서 하루하루의 삶을 진지하게 살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그 목표를 달성할 때가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집중력입니다. 이 Concentration. 집중력을 가지게 되면 죽음의 자리에서도 삶의 목표를 다시 한번 돌아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죽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2000년에 죽든 2050년에 죽든 다 죽게 되는데, 자기의 죽음 앞에서 오늘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생활하는 동안 삶의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자기의 능력을 최대로 극대화 시키는 데 힘을 쏟기 바랍니다. 이렇게 생활할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여러분의 앞날에 축복이 넘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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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잘읽었습니다^^
케빈 형제님 오늘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