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느님화
오래 전부터 인간은 늘 고민해왔습니다.
한 곳에 정착할 것인가, 또 다른 세상을 향해 이동할 것인가?
편안한 상태에서 안주할 것인가, 힘들지만 변화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정체상태에서 머물 것인가, 아프지만 쇄신될 것인가?
누군가가 “참 사랑은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라고 외쳤는데,
개인적으로 크게 공감했습니다.
때로 있는 그대로 솔직한 나의 모습, 나의 약점, 나의 한계,
어쩔 수 없는 부족함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더 큰 성장을 위해, 더 큰 사랑을 위해 변화의 길을 선택하는 것,
참으로 필요한 노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때로 우리가 하느님 품 안에 머물고 있다할지라도,
때로 우리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큰 ‘인물’로 변화되었다 할지라도,
목숨 붙어있는 한 또 다른 변화와 성장을 위한 새 출발은 필수입니다.
이만하면 됐겠지, 이쯤이면 충분하겠지, 하는 생각은 해서는 안 될 생각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무한히 뻗어나갈 폭발적인 잠재력,
하느님께 아주 가까이 다가갈 큰 힘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갖은 한계를 지닌 나약하기 그지없는 존재가 우리 인간들이지만,
반대로 성장과 쇄신을 거듭하는 어느 순간 하느님에게까지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대단한 존재가 우리 인간입니다.
‘하느님화’될 수 있는 존재가 우리 인간입니다.
때로 우리 인간은 자기를 벗어나지 못해,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발버둥치는 비참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하느님 가까이 서계신 성인(聖人)과도 같이 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때로 악마처럼 표독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때로 하늘의 천사처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가신 스승 예수님이 그러셨고, 성인(聖人)들의 삶이 그랬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나라를 위한 철저한 자기포기, 아버지 뜻에 완벽한 순종,
충만한 아버지와의 일치를 이룬 예수님을.
극단적 가난을 통한 완벽한 자유를 체험한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인간의 눈으로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그 많은 일을 이루어내신 돈보스코 성인을.
일상적인 자기반성, 변화와 성장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
매일의 포기와 매일의 떠남을 되풀이했던 훌륭한 신앙의 선배들을 향해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에게 하셨던 똑같은 말씀을 되풀이 하실 것입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