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감태준
떠날 때가 왔다.
이 집에서 가장 먼 곳에
너의 집을 지어라.
새는 둥지를 떠날 때 빛나고
사람은 먼 길을 떠날 때 빛난다.
외투를 입어라.
바람이 차다.
길 곳곳이 얼음판이다.
겁 없이 미끄러지고
외투에 흙 남기지 마라.
외투란 먼지만 묻어도 누더기다.
앞이 어둡고 한기 들 땐
사람의 집을 찾아라.
마음이 불어가는 쪽에 있다.
마음이 불어가지 않으면
마음에 들어가 쉬어라.
길은 시련 속에 있다.
이제 도도히
갈 수 있는 데까지 멀리 가
너의 집을 지어라.
ㅡ시집『역에서 역으로』(문학수첩,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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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김명인
풍랑에 부풀린 바다로부터
항구가 비좁은 듯 배들이 든다
또 폭풍주의보가 내린 게지, 이런 날은
낡은 배들 포구 안에서 숨죽이고 젊은 선단들만
황천(荒天) 무릅쓰고 조업 중이다
청맹이 아니라면
파도에게 저당 잡히는 두려운 바다임을 아는 까닭에
너의 배 지금 어느 풍파 갈기에 걸쳤을까
한 번의 좌초 영원한 난파라 해도
힘껏 그물을 던져 온몸으로 사로잡아야 하는 세월이니
네 파도는 또박또박 네가 타 넘는 것
나는 평평탄탄(平平坦坦)만을 네게 권하지 못한다
섬은 여기 있어라 저기 있어라
모든 외로움도 결국 네가 견디는 것
몸이 있어 바람과 맞서고 항구의 선술로
입안 달게 헹구리니
아들아, 울안에 들어 바람 비끼는 너였다가
마침내 너 아닌 것으로 돌아서서
네 뒤 아득한 배후로 멀어질 것이니
더 많은 멀미와 수고를 바쳐
너는 너이기 위해 네 몫의 풍파와 마주 설 것!
―시집『꽃차례』(문학과지성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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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최하림
영원할 것만 같았던
시간들을 본다
아무 생각 없이, 고통스럽게
지나가버린 시간들
다시 잡으려 해도 소용없는
시간 속으로
나는 되돌아갈 수 없으며
잃어버린 시간들을 다시 찾을 수도 없다
변해버린 사람과 깨어진 사랑
속에서 나는 걸음을 옮겨야 한다
남루한 저고리를 걸치고 모자를 쓰고
물푸레나무 우거진 길로, 물 속으로,
이슬비 내리는 둑에서 나는 보아야 한다
세상이란 좋은 것이다
서로 잘 어깨동무하고
서로 잘 조화를 이루며 산다
비 내리는 둑에서
나뭇잎들은 푸르고
산색은 살아나고
새로운 사람들이 슬픔 기쁨
으로 밤을 걸어가고 가끔 불켜진
창을 올려다보며 그리워하기도 한다
날이 깊어간다 모든 것이 변하고
모든 기억이 희미해지고 모든
사랑이 딱딱한 사물로 변해간다
내 손에서 따스했던 네 손이 사라진다
이제 나는 잃어버리게 될 시간들
을 생각하고 시간들을 그리워하며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물푸레나무가
우거져 있다 시간들이 우거져 있다
ㅡ시집『속이보이는 심연으로』(문학과지성사, 2001)
한고조 유방은 항우와 백번 싸워 아흔아홉번을 지고 한번을 이겼다고 한다. 그 한번을 이긴 것이 마지막 싸움에서 이겨 천하를 얻었다고 한다. 이런 전력이 말하듯 유방은 항우와는 싸움에서 수많은 고초를 겪는다. 한번은 부모가 항우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항우는 유방에게 항복을 하지 않으면 네 부모를 팽형을 시킨다고 했다. 팽형은 솥에 물을 끓여 삶아 죽이는을 말한다. 이 말을 받은 유방은 끓이면은 나도 한 그릇을 퍼 다오 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항우는 유방에게 인질이 안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한번은 또 전세가 불리해져 자식들을 마차에 싣고 쫓기게 되었다. 뒤에서는 항우의 기병들이 점점 가까이 추격을 해오고 마차는 속력이 나지 앉자 다급해진 유방은 마차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자식들을 밖으로 던져버렸다고 한다. 그 것도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씩이나. 내던져졌던 자식은 나중에 유방의 뒤를 이어 왕이 되지만 유방은 단순히 저 혼자 살기 위해 자식을 버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어깨엔 수많은 백성과 대의라는 보다 큰 명제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가들이 그른 비난하지 않는 것은 당시의 시대적 사상이 자식을 중히 여기지 않았기 대문일 것이다.
시대상황이 다르고 제왕이 전장에서 겪어야하는 불가피한 상황을 보통 시대에 평범한 아버지와 자식에게 비교하는 자체가 무리이긴 하지만 유방은 패륜의 불효자이며 박정하고 매정한 아버지임에는 틀림이 없다. 오죽하면 항우가 유방의 모진 성격을 가족들을 인질로 잡아보고서야 알았을까. 그렇다면 오늘날 아버지의 자식들 사랑은 어떠할까. 시대가 강한 아버지를 만들기도 하고 약한 아버지를 만들기도 하겠지만 이 시대는 좋은 아빠는 넘쳐난다고 한다. 다음이나 네이버 포털사이트의 검색에서 좋은 아빠를 한번 쳐보라.
“좋은 아빠가 되는 법, 좋은 아빠의 자격, 좋은 아빠의 모임, 좋은 아빠가 되기육아 스쿨, 좋은 아빠 도전하기, 좋은 아빠 10계명, 좋은 아빠가 되었던 사례, 좋은 아빠의 7가지 비밀, 좋은 아빠 되기 프로젝트, 좋은 아빠 학교, 좋은 아빠 보고서, 좋은 아빠 테스트,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1분 혁명” 등 등... 수도 없이 많다.
좋은 아빠에게 권위란 것이 있을까, 예로부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지만 오늘날의 아버지들은 아들을 이길 수가 없다. 직장 상사 같은 명령 하달식의 아빠는 이제 나쁜 아빠일 뿐이다. 아들을 위해 가진 것 다 내어주고 온갖 수발을 다하지만 아들이 보험이 아닌 시대에 더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분신 같으면서도 분신이 아니어서 애증이 교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은 나이가 들어도 물가에 내 놓은 아이처럼 염려스럽고 바라보는 뒷모습은 애잔하기만 하다.
아들에게
문정희
아들아
너와 나 사이에는
신이 한 분 살고 계시나보다
왜 나는 너룰 부를 때마다
이토록 간절해지는 것이며
네 뒷모습에 대고
언제나 기도를 하는 것일까?
네가 어렸을 때
우리 사이에 다만
아주 조그맣고 어리신 신이 계셔서
사랑 한 알에도
우주가 녹아들곤 했는데
이제 쳐다보기만 해도
훌쩍 큰 키의 젊은 사랑아
너와 나 사이에는
무슨 신이 한 분 살고 계셔서
이렇게 긴 강물이 끝도 없이 흐를까?
―시선집『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09』(국립공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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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뒤에서
―아들에게
서정윤
전생의 사랑을 지우려
오래 잠자고
또 다른 미움을 잊으려
울부짖는다.
그래도 나와는 인연이 있어
내 품에 안겨서는
뜻모를 웃음을 웃는다.
이제 시작된
사랑의 삶을 위해
나는 너의 뒤에 섰다.
고통과 아픔의 삶보다는
기쁨과 희망의 날이
더 많은 삶, 살기를
나는 바라고 있다.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건
용기와 믿음 뿐
나는 너의 삶을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나에게 남은 마지막 사랑을
너의 삶에 보낸다.
―시집『홀로서기 3』(문학수첩,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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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들에게 주는 시
랭스턴 휴즈
아들아, 난 너에게 말할 게 있다.
내 인생은 수정으로 된 계단이 아니었어.
계단에는 못도 떨어져 있었고
가시도 있었다.
그리고 판자에는 구멍이 있었지.
바닥엔 양탄자도 깔려 있지 않았다.
맨바닥이었어.
그러나 난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계단을 올라왔다.
층계참에 도달하고
모퉁이도 돌고
때론 전깃불도 없는 캄캄한 곳까지 올라갔지.
그러니 아들아, 너도 돌아서지 마라.
주저앉지 말아라
왜냐하면 넌 지금
조금 힘든 것일 뿐이니.
너도 곧 그걸 알게 될 거야.
지금 주저앉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애야, 너는 아직
그 계단을 올라가고 있단다.
나는 아직도 오르고 있어.
그리고 인생은 내게
수정으로 된 계단이 아니었지
―신현림 엮음『딸아,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걷는나무, 2011)
첫댓글 감사히 봅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요.
감사합니다.
아들에 대한 시들을 읽어 나가면서
왜 눈물이 핑 돌까요.
어미의 아들에 대한 깊은 마음으로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부녀와 모녀 사이 다르듯 부자간의 정과 모자간의 정과 의미 또한
다를 것입니다. 보통 보면 남편이 기대에 못 미치면 아들에 대한
기대가 더 남다른 가정을 본 적도 있습니다.
칠남매 팔남매 사이에서 북적거리며 자란
'베이비 부머' 세대 입장에서 읽어보는 '아들에 관한 시'는
그 느낌이 또한 각별합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
아들이 있으면 든든하다는 말도 노후 보장과 보험의 성격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들보다 딸이 낫다고도 합니다만...
아들은 불안한 믿음이요 희망인것 같습니다
내 생애에 아들에게 얼마나 의지할지 모르지만
죽어가는 그날까지는 아들에게 부담이 안되는 인생이 되었쓰면 하는 생각 입니다
아들의 진로에 조금이나마 기둥역활을 해야 될 삶이되어야 할터인데
불러봄니다 아들아 바르게만 살아가렴
좋은글 감사합니다
절대적인 권위가 사라진 지금 아버지의 역활이라는 것이
많이 축소가 되었지요.
권위라는 것이 현대에 와서는 물질적인 것으로 변질이 되기도 했군요.
아들놈에게 난 화가 아직도 사그라지지않는데 시들을 읽으며 마음을 추스립니다.
이땅의 애비로 산다는 것이 이다지도 힘든 일이 되버릴 줄 몰랐던 그때 그 시간들이 그리워집니다.
뜻의 충돌은 어느 집에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구 저 편에
음악한다고 떠난 자식 생각이 굴뚝 같네요.
부모 되기는 쉬웠어도, 부모답기는 어렵구요.
유학 간 자식은 돌아오지만 아예 이민 간 자식들도 많더군요.
나이든 세대는 남편을 섬기는 것으로 알고 살았는데 요즘 어미들은 아들이 불쌍하네요. 시녀` 이러해야 집안이 평화롭다고 말 하려는지 티 브이에서도 아들들 육아모습이 인기프로군요.
양성평등 아니 여성우위 딸은 나 처럼 살지마라 고학력으로 산업사회 역군이니 이 어미들의 아들은
또 다른 딸들의
아들 어미들은 아들이 불쌍하니 어쩌나요..
저는 그런 프로들을 안 봅니다만 시류와 세태가 그러하니
어쩔 수가 없겠지요.
이야기가 너무 많으니
시가 지루해 지는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