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한 역사의 무덤에서, 아우성치는 원혼들의 땅에서
그 울음을 파먹고, 그 상처를 깎아먹으며 우리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주님!
사람이 사람일 수 없고, 목숨이 목숨일 수 없고 겨레가 겨레일 수 없었던 무참한 역사.
사람이 아귀가 되고, 피 뭍은 짐승이 되고
모두가 늑대의 골짜기를 지나는 한 밤중 어린아이처럼
숨죽이며 목숨 연명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주님!
온 세계의 상처와 고름과 탐욕이, ‘좌’와 ‘우’라는 이념의 우상들이
검은 연기처럼 스며들어와
이 땅의 혼을 뺏고, 우리의 넋을 앗고, 우리네 정신을
너덜거리는 누더기처럼 난도질하였던 시절.
마침내 사람이 사람일 수 없고, 인간이 인간일 수 없고,
양심도 눈물도 시궁창의 피고름으로 썩어 흐르며,
그 상처를 핥는 파리떼들로 그 주검의 밭을 파먹는 까마귀 떼로
가득 뒤덮였던 땅 - 이 역사의 무덤더미 위에서
우리가,
지금,
예배합니다!
“엘리,엘리,라마,사박다니...”
단말마처럼 외치시는 당신의 외침이- 유채꽃 아득한 섯알오름 골짜구니에서,
새파랗게 눈부신 함덕 백사장 벌판뜰에서,
정방폭포 아득한 언덕위에서, 성산일출의 그 장대한 어깨쭉지 아래 ‘툭-’ 터진 골짜구니에서
울려왔습니다.
그 때 우리는
얼굴을 가리우고 피해갔고, 어느 때는
덩달아 저들을 찌르며 업신여겼습니다. 우리는 저들이
천벌을 받는 줄로만 여겼고
당신께 매를 맞아
학대 받는 줄로만 여겼습니다.
저들을 찌른 것은 우리의 비겁과 탐욕,
저들의 뼈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광기와 마성, 저들을 역사의 무덤 속에 짓 묻어버린 것은
우리의 침묵과
회칠한 무덤 같은 거짓 믿음 이었건만,
주께서는 이 땅 우리들의 ‘죄악’을 저들에게 지우셨습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을 깎이는 어미 양처럼,
“살암시민 살아진다” 넋두리로 읊조리며,
죽어가며,
죽임당하며 기어온 역사.
다시 4월의 문턱입니다.
그리스도여, 당신의 골고다 언덕과 4·3의 쓰라린 상처가 다시금 되살아오는
3월의 끝자락입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역사의 꽃샘추위로, 이라크 바그다드의 섬광 번쩍이는 하늘아래에서 팔레스틴 ‘가자지구’ 무너진 벽돌더미에서, 쾡한 두 눈의 압록강· 신의주· 신탄진 마을
텅 빈 아침밥상 머리에서 그리고
이 땅의 제1, 제2, 제3의 용산 - 아우성 치는 불길더미 속에서
당신은 여전히 봄 날의 붉은 동백꽃 낙화처럼....
뚝·뚝 떨어져 밟히우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당신의 핏 자죽을, 아우성을, 그 아벨의 울부짖음을
꽃잎 즈려 밟듯 밟고 지나갑니다.
그 제사장의 옷매무새로, 그 레위인의 총총걸음으로
우리는 당신을 비껴갑니다. 그 신음소리를 아득-히 두고 갑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
주여, 내가 정의와 자비와 신의는 바치지 못하였으나
박하와 희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어김없이 바쳤나이다.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저 조상들이 예언자들을 죽이는 데에는
가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여, 보십시오! 우리가 여기 우리의 손을 씻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피 묻은 손, 우리시대의 ‘돈 때’ 뭍은 손을
여기 이렇게 세월의 강물에 씻습니다. 그러하오니,
저들의 피에 대해서는, 역사의 피고름에 대해서는,
용산의 아벨과 바그다드의 모하메드의 피 흘린 책임을
우리에게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저들의 피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 없음을 알아 주십시오.』
이것이 우리의 내심의 기도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알량한 믿음입니다.
어느 노인네의 고백처럼,
“어릴 땐 떨어지는 감꽃을 세고,
전쟁 중엔 죽은 병사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침 발라 돈을 센다··· ”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우리의 무지한 눈을 뜨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의 강퍅한 가슴을 열어 주옵소서!
하나님이여,
우리 안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우리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옵시며 주의 성령을 우리에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부디 주의 구원의 ‘참 기쁨’을 우리게 회복시키시고,
‘회개하는 심령’을 주사 우리를 새롭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의 이 부끄러운 예배를 통하여
이 땅의 아픈 역사가 치유되게 하시며
역사의 상처 입은 이들이 위로 받게 하옵시고,
우리의 ‘부끄러운 신앙’이 온전해지며
생명과 평화 - 사람사이의 도타운 정(情)과
살가운 사람다움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되살아나게 하옵소서.
부디, 여기 제주선교 2세기의 ‘첫걸음’을 내딛는 이 봄날에
우리 안에 주님의 ‘남은 고난’을 채우며 ‘참된 평화’의 의지를 드높이게 하시고
상처 입은 이 땅 역사 속에 -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웃 생명들 속에 녹아지는 ‘소금과 빛!’
되게 하옵소서.
부디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로,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십자가의 좁은 문(門)’으로!
당신 따라 한걸음씩 내딛는 ‘새 발걸음’··· ···
마침내 ‘부활의 소망’에 까지 이르게 하소서.
- 사순절의 한 복판, <제주 4·3> 무참한 역사 터 위에서
오늘도 홀로이 역사의 골고다를 오르시는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