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춘천에 자리한 '준상이네 집'은 남이섬과 함께 드라마 '겨울연가'를 대표하는 '한류 관광지'였다. 2004년 6월 개장한 뒤 그해 하반기에 1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방문했던 준상이네 집에는 더 이상 길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지 않는다.
무료 관람에서 유료로 전환한 것도 원인이 됐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그다지 '볼 게 없기' 때문이다. 한때 주위에 우후죽순 들어섰던 기념품 상점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남이섬은 달랐다. 춘천과 가평의 경계에 위치한 남이섬은 해마다 새로운 시설을 갖추고, 독특한 축제를 개최하면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지속적으로 제공했다. 그리고 섬을 문화와 생태 공간으로 차별화시켰다. 그래서 한 번 여행했던 사람도 계속해서 찾아오도록 만들었다.
한류를 타고 밀려들어왔던 일본과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이곳에서 젊은 날의 아련한 사랑을 그리며 감상에 젖고는 돌아갔지만, 이제 남이섬은 외국인보다는 철수와 영희처럼 평범한 우리의 청춘남녀가 즐겨 찾는 여행지가 됐다.
최근 남이섬에서 '겨울연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은 듯싶다. 초여름의 녹음이 짙은 메타세쿼이아 길 주변에 준상이와 유진이의 동상과 겨울연가의 사진들이 붙어 있는 전시관이 있을 뿐이다.
외국인들은 반가움에 환호성을 지르지만, 한국 사람들은 그저 슬쩍 쳐다보고는 지나간다. 그들에게 남이섬은 겨울연가의 향수를 떠올리는 곳이 아니라, 그 자체로 아름다운 곳이다.
본래 남이섬은 홍수가 났을 때만 섬이 되는 육지였다. 그런데 청평댐이 건설되면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만 하는, 둘레 5㎞의 완전한 섬이 됐다. 섬에는 조선시대 병조판서에 올랐던 남이 장군 묘와 고종이 아이를 낳지 못하던 명성황후를 위해 지었다는 정관루(靜觀樓)가 위치해 있었다.
개인이 섬을 사들여 1960년대부터 개발했던 남이섬은 IMF 외환위기에 심각한 재정난에 봉착했으나, 2001년부터 다시 명성을 얻었고 지금은 '나미나라 공화국'으로 불리고 있다.
◆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곳
남이섬에서 느껴지는 세 가지 테마는 '환경, 문화, 조화'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잘 보존돼 있는 자연환경 속에서 평소에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 두었던 문화생활을 향유하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 다른 지역과의 상생을 배울 수 있다.
시끄럽게 먹고, 마시고, 노는 '향락'의 장소가 아니라 조용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든, 친구든, 가족이든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어울릴 수 있다.
남이나루 선착장에서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은은한 음악이 흘러 퍼지는 호젓한 잣나무 길이 나온다. 남이섬의 첫인상은 이렇듯 마음 푸근하게 하는 '자연'이다. 이곳에서 연인들은 산책을 즐기고,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노닌다.
'연인의 문' 옆에 난 메타세쿼이아 길은 남이섬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살아 있는 화석'이라는 별명이 붙은 메타세쿼이아는 우듬지가 보이지 않을 만큼 시원스레 뻗어 있다. 우아하고 기품이 있어서 드라마나 영화의 단골 촬영지로 사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남이섬에는 조용하고 평화롭게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곳이 많다. 섬 전체가 수목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수종이 다양하기 때문에 남이섬은 사철 다른 색깔의 옷을 입는다.
타조와 사슴, 청설모와 다람쥐 같은 동물도 남이섬에서 서식하는 또 다른 가족이다. 이들은 사람이 나타나도 피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이곳저곳을 오간다.
남이섬에서는 이렇게 자연 경관을 가꾸고 보살피는 것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 환경의 소중함에 대해 알려주는 환경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나무 액자, 나무 받침대, 손수건 만들기와 재활용 캔으로 미술 작품 창작하기, 생태벨트 탐방하기 등을 배워볼 수 있다.
한편 남이섬에서 문화는 '책'과 '그림'으로 통한다. 이를 위해 남이섬에서는 6월 30일까지 어린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책과 만날볼 수 있는 '세계 책나라 축제'를 열고 있다. 컴퓨터 게임에 익숙해 독서를 하지 않으려는 아이들이 흥미를 갖고 책에 다가설 수 있는 행사이다.
세계 책나라 축제에는 76개국에서 출품한 그림책이 전시되고 있다. 어린이들도 아는 유명한 나라는 물론 아프리카의 수단이나 코트디부아르처럼 낯선 국가도 많다. 아이들은 그림책을 보면서 다른 나라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고, 호기심을 갖게 된다.
책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청계천 헌책방'과 책 판매 대금을 분쟁 지역의 평화 도서관 건립에 쓸 계획이라는 '평화도서관'도 관심을 끈다.
또한 축제에서는 캐리커처를 그려서 액자에 넣어주고, 아이들이 레고 조각을 끼워 맞추며 마음껏 놀 수 있는 곳도 마련된다. 이와 함께 화장실과 섬 내 호텔에도 책이 비치되고 독후감, 그림, 사진 공모전도 진행된다. 세계 책나라 축제가 벌어지는 동안 남이섬은 식물원에 안긴 도서관이 된다.
일러스트나 그림은 갤러리와 카페에서 조우할 수 있다. 남이갤러리에서는 동화책 작가인 일본의 키무라 유이치(木村裕一)의 그림들이 전시 중이고, 카페 '남문'에는 예쁜 회화들이 벽에 다닥다닥 걸려 있다.
남이섬이 여행지로 좋은 결정적인 이유는 아름다운 자연과 인간이 축적한 문화가 서로 다투지 않고, 사유지이면서도 상업적인 냄새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놀이기구들도 대부분 인간의 힘이나 전기로 움직이는 것이어서 환경에 끼치는 영향이 적다. 무엇 하나 튀지 않고 아기자기하게 어울린다. 자연스럽지만 인공적이고, 인공적이지만 자연스럽다.
남이섬에는 인상적인 문구가 두 가지 있다. '남이섬은 오늘이 좋습니다'와 '천천히 걸으세요'이다. 이 말처럼 남이섬에서는 현재에 만족하며, 느긋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집으로 가는 길이 더욱 행복해진다.
◆ 여행 정보
5월부터는 종로 탑골공원에서 남이섬까지 직행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서울에서는 오전 9시 30분, 남이섬에서는 오후 4시에 버스가 출발한다. 버스 요금은 왕복 기준으로 성인이 1만5천 원, 어린이가 1만3천 원이며, 편도는 절반 가격이다.
남이섬에서는 야외에서 야영 및 취사가 금지돼 있으며, 애완동물은 5㎏을 넘지 않아야 섬에 데리고 갈 수 있다. www.namisum.com, 031-580-8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