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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우리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의 정치/안보문제방에 'yjw23'님이 올린 글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여기에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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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5월 15일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을 통해 개성공단 사업에서 그동안 6.15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남측에 특혜를 줬던 계약들의 무효를 선포하고 관련법과 규정이 개정되는 대로 이를 시행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작년부터 잡음을 내기 시작했던 개성공단은 ‘폐쇄’의 가능성마저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물론 북한이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 보낸 통지문에서 “(우리가 통지한 이상의 사항을) 집행할 의사가 없다면”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남한정부의 태도가 바뀌지 않을 경우 개성공단 폐쇄까지 강행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북한이 이와 같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게 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북한의 뿌리 깊은 불신이다. 이명박 정부가 그동안 6·15 공동선언 및 10·4선언의 불이행, 제63차 유엔총회의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남한의 공동제안, 탈북자 단체의 삐라살포에 대한 미온적 태도, 키-리졸브(Key Resolve) 훈련, 그리고 최근의 PSI 전면 참여 고려 등 북한을 자극할만한 행동을 지속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6.15 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이행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남북교역으로 인한 경제적 이익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북한이 남북교역에서 얻는 이익의 규모가 감소하면서 북한의 행동에도 일정한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먼저 2008년 유형별 남북교역 추이를 월별로 나타낸 [도표 1]을 보자. [도표 1]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3월의 비상업적 거래이다. 3월을 기점으로 비상업적 거래의 전년동월대비 증가율이 (-)로 돌아서는 것을 볼 수 있다. 북한이 남북교역을 통해 얻는 두 가지 축이 ‘대북 무상지원’과 ‘경화수입’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한 축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비상업적 거래 증가율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한다. 한편, 2008년 3월 27일 북한은 개성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의 남측 인력을 추방하였으며, 이후 ‘통민봉관’ 정책으로 당국간 대화는 전면 차단한 채 민간교류에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남북상설연락기구 설치 제의(4.17)는 물론, 현충일 추념사(6.6), 국회개원 연설(7.11), 광복절 경축사(8.15) 등에서 나타난 남한의 제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도표 2]를 보면 남북교역에 따른 북한의 실질교역수지의 전년동월 대비 증가율이 5월부터 (-)로 떨어지기 시작해 7월에는 -47.6%로 급락한 것을 볼 수 있다. 7월은 금강산 특구의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남한의 여성 관광객이 북한초병의 총에 피살된 사건이 있었던 달이다. 당시 북한은 남한정부의 사건진상 조사요구를 묵살함으로써 금강산 관광의 중단을 불러왔다.
이후 실질교역수지 증가율은 (+)로 돌아섰다가 11월 이후 다시 (-)로 돌아섰다. 이 시기 북한은 남북적십자간 연락채널을 단절했고(11월 12일), 11월 24일에는 개성관광과 남북간 철도운행을 중단하고 개성공단 남측 상주인원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이른바 ‘12·1 조치’를 남한에 통보했다.
이러한 경향은 2009년에도 이어졌다. 1월부터 3월까지의 비상업적 거래량은 2,205천 달러, 1,375천 달러, 4,186천 달러로 각각 전년동월대비 -64.4%, -69.9%, -45.1%의 증가율을 보였다. 같은 기간 실질교역수지 역시 3천 3백만 달러, 2천 2백만 달러, 3천만 달러로 각각 전년동월대비 -25.1, -33.1%, -24.9%의 증가율을 보였다.
이상을 종합해보면, 북한의 이명박 정부에 대해 갖고 있는 정치적 불만이 남북교역수지가 악화됨에 따라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2009년에도 북한의 교역수지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명박 정부가 기다림의 전략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성공단을 둘러싼 남북간의 갈등은 계속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북한은 개성공단을 폐쇄할 것인가? 개성공단과 관련한 북한의 의도는 크게 두 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다. 하나는 북한이 개성공단을 폐쇄할 것이라는 추측이다. 북한은 이미 개성공단 폐쇄를 결정해놓고 토지사용료 지불 유예기간의 단축과 북측 근로자들의 임금재조정 등과 같이 남한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해 개성공단 폐쇄의 귀책사유를 남한측에 떠넘기려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금강산 및 개성관광 사업이 중단된 상황에서, 그리고 남북교역수지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개성공단을 볼모로 하여 보다 많은 현금(달러)을 얻으려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요구사항이 표면적으로 '보다 많은 현금'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지만, 지금과 같은 압박의 배경으로 남한의 '6.15 공동성명 무시'와 '대북 대결정책의 지속'을 거론하고 남한 정부나 기업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을 요구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을 보면 북한의 의도를 쉽게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서 남북교역이 북한경제에 갖는 비중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2월에 쓴 글인 '본격화되는 통미봉남의 실체'에서 북한에게 남북교역은 경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이는 [도표 3]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남북교역은 북한의 가장 중요한 교역상대인 중국과의 교역규모를 늘릴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이 남북교역을 통해 획득하는 실질교역수지 흑자규모와 북한의 대중국 거래규모 사이의 그랜저 인과성 검증(Granger causality test) 결과는, 전자가 후자에 대해 거의 일방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남북교역은 2002년의 제2차 북핵문제와 일본인 납치문제 이후 급격히 감소한 북일교역의 대체효과를 갖고 있다. 남북교역이 갖는 이러한 중요성을 고려해보면, 남북교역수지가 감소할 때마다 북한이 보인 반응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결국 개성공단 폐쇄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은 북한으로서도 쉽지 않은 선택지라고 할 수 있다. 소위 '달러박스'라 불리는 개성공단의 경제적인 측면 뿐 아니라, 개성공단이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 만큼 폐쇄할 경우 김정일의 정치적 권위에도 일정한 손상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남정책의 실세였던 최승철 전 통전부 부부장이 처형되고 대남라인이 대폭 물갈이 된 것은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지금과 같이 '원칙을 견지하면서 현실에 유연하게 대응'하겠다거나 '우리는 항상 대화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만을 반복하면서 입장의 변화가 없을 경우 극단적인 상황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월 18일 오전에 실무회담을 개최하자는 남한의 제의에 북한이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를 비롯한 개성공단 문제를 원칙확립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지만, 사실 이들은 보다 큰 틀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북한은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우선, 2008년 북한의 대외교역규모가 199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중국과의 무역액이 2007년에 비해 대폭 증가했다는 것이다. [도표 4]에서 볼 수 있듯이 북한의 2008년 무역총액은 60억 달러를 넘었으며, 특히 대남무역이 18억 2천만 달러로 전년대비 약 1.3%에 불과한 증가율을 보인 반면 대중무역은 27억 8,700만 달러로 2007년에 비해 무려 41.2%나 증가했다.
문제는 북중무역 규모의 증가가 대단히 비정상적인 양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도표 5]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중무역은 2008년 12월에 급증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의 세관통계에 따르면, 2008년 12월 북한의 대중 수출액은 전월과 거의 차이가 없는 5천만 달러 내외였던 반면, 대중 수입액은 4억 3천만 달러로 전월의 1억 4천만 달러에 비해 4배 가까이 폭등했다. 이로 인해 지난 12월 한 달 동안 북한의 대중무역적자는 전월의 거의 4배에 달하는 3억 8천만 달러로 급증하였으며, [도표 6]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2008년의 연간 대중무역적자 역시 12억 7,900만 달러로 급증했다(2000년 이후 이와 같이 전월에 비해 4배 가까이 수입량이 폭등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시기 급증한 대중수입의상당부분이 소비재라는 점, 그리고 대중국 거래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무역적자를 남북교역에서 벌어들이는 경화수입으로 상쇄하는 구조를 갖고 있는 북한이 대남 실질교역수지 흑자규모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대중수입을 급격히 늘렸다는 점은 재원의 출처와 관련해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부분이다.
이와 함께 지난 4월 9일에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 회의에서 밝힌 2009년 예산수입 계획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표 7]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2008년 북한의 결산수입액은 4,586.7억 원, 결산지출액은 4,512.2억 원으로 74.5억 원(북한원)의 재정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산된다. 2000년대에 들어서 처음으로 재정흑자가 발생한 것이다. 또한 2009년 예산수입 계획이 작년도 결산금액보다 5.2% 증액됐다고 밝혀 약 4,832.9억 원으로 추산된다.(북한은 예산규모와 관련해 전년도 대비 %로 발표하므로 액수는 조사기관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난다.)
이러한 움직임들을 놓고 보면, 한편으로 북한은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경제를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최근 평양에서는 창광거리, 봉화거리 등의 외부단장사업을 비롯해 건설 붐이 한창이고 주민들의 소비 생활 역시 나아지고 있는 것으로 관찰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상당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만성적자 교역국인 북한이 남북교역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대중수입을 어떻게 한 달 만에 급작스럽게 끌어올렸는지,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남한을 대신할만한 경제협력 파트너가 있는지, 북한경제는 실제로 나아지고 있는 것인지 등의 질문들이 제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정확한 답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당국이 그 동안 외부세계가 파악하지 못한 상당량의 자원을 축적해 놓았을 수도 있으며, 공식경제 밖에서 개인 혹은 기업소가 보유한 상당량의 달러가 소진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또는 평양과 같은 특정지역에서만 이런 모습이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북한에 대한 남한의 영향력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과 북한은 북중수교 60주년인 2009년을 ‘우호의 해’로 지정하고 각 영역에서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23일에는 왕자루이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친서를 전달하고 김정일의 중국방문을 요청했으며, 김정일도 이를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2월 5일 장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정부의 대북 무상원조 결정을 공식 보도하였다. 이는 북한의 산업시설지원 및 현금지원 형태로 실시될 것으로 보이며, 2009년의 원조규모는 예년에 비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북한은 중국과 한국 외에도 제3의 시장개척 노력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EU와의 교역 및 경제협력 시도이다. 유럽기업들로 구성된 대북사업단이 5월에 북한을 방문하기로 했고, 대북투자펀드인 ‘조선펀드’(영국인 콜린 맥아스킬이 설립)가 5천만 달러 규모로 광산, 에너지 프로젝트를 위해 북한 파트너들과 합작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유럽연합 역시 올해부터 총 3,500만 유로 규모의 식량지원사업에 착수하고 3년간 2백만 유로 규모의 식수 및 위생지원사업을 시작할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북한측은 이에 대해 유럽기업들에게 무역 관세를 비롯한 영업세, 수익세 등의 세금을 0%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는 등의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이 얼마나 실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북한은 세계경제위기와 남북관계 경색이라는 상황을 맞아 나름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 이명박 정부는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을 ‘퍼주기’와 저자세 외교였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입장을 고수하다가 개성공단이 폐쇄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퍼주기’가 될 것이다. 그동안 개성공단에 들어간 엄청난 노력과 자원을 고스란히 북한에 넘겨주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국내정치 뿐 아니라 대북정책에 있어서도 ‘소통’없는 ‘원칙주의’는 공멸적인 결과만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 역시 잘한 것은 없지만, 기존에 있던 대북 대화채널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최고정책결정자의 ‘무능함’으로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최근에 남한을 방문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보즈워스 대북특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난 것도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다. 6.15공동선언의 이행과 관련한 북한의 반응을 보면 오히려 북한을 쉽게 다룰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지난 2월 18일 북한의 리종혁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영국의 데이비드 앨튼 상원의원 일행과의 만남에서 6.15 공동선언과 10.4 남북정상선언과 관련해 “일부 조항은 이행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보도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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