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거북과 절름발이 자라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곳에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오래된 인용문헌을 고르라면 벽암록 제12칙 설두스님의 게송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이 등장합니다.
벽암록 제12칙
어떤 스님이 동산수초화상에게 질문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동산 화상이 말했다. “삼 세근(麻三斤)이다.” 擧. 僧問洞山, 如何是佛. 山云, 麻三斤.
여기에 대해 설두스님은 다음과 같은 게송을 합니다.
금까마귀는(金烏)는 급하고, 옥토끼(玉兎)은 빠르다.
멋지게 근기에 응수 했으니 어찌 경솔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삼 세근(麻三斤)이라는 말로서 학인을 상대했다고 동산의 안목(견해)을 파악하려 한다면,
절름발이 자라와 눈먼 거북이 빈 골짜기로 들어가는 꼴이다(跛鱉盲龜入空谷)
꽃은 만발하고 비단은 눈부시다
남녁에는 대숲, 북녁에는 나무숲 문득 생각이 나네,
장경과 육대부 도를 아는 이들이라 울지 않고 웃었다네.
그리고 위에 올린 글 (눈먼 거북, 절름발이 자라, 시끄러운 거리에서 못을 끊고 쇠를 끊는 내용)은 1967년 성철스님께서 백일법문을 시작하실 적에 서문으로서 읊은 게송입니다.
원문을 옮기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댓글 미소님 자료 덕분에 다시 보고 갑니다.()^^
미소님의 정성이 지극하오 ()^^
"절름발이 자라와 눈먼 거북이 빈 골짜기로 들어가는 꼴이다(跛鱉盲龜入空谷)" 와 "쉬어버리고 쉬어버리니 절름발이 자라요 눈먼 거북이로다." 를 풀이해 보시죠^^
구절초님 저를 테스트 하시는지요? 아직 저는 그럴만한 실력이 없으니 전달하는 것만으로 만족하겠습니다.()
사량과 분별로 안목이 어두워진 이는 공적한 근본에 이를수 없다는 뜻입니다. 성철스님은 반대로 금강정안을 갖춘이를 절름발이 자라와 눈먼 거북이로 비유했군요.()
좋은 해설 감사합니다.()
앞 구절은,답 없는 뜻에 공연히 사량해보아야 헛수고라는 뜻이고요.뒷 구절은,절름바리 자라와 눈 먼 거북이가 오히려 지극한 도를 잘 나타내고 있다는 뜻 같습니다.()
()^^
코메디언 소질이 풍부 하군요 ()^^
코메디언만 칭찬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