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화 모음
<감사>
화상으로 눈썹을 잃어버린 분이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눈썹이 있을 때는 고마운 줄 몰랐는데 눈썹이 없고 보니 비가 오면 물이 눈으로 다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눈썹이 있을 때는 물이 그곳을 통해서 흘러 나가 버렸기 때문에 눈을 뜰 수 있는데 눈썹이 없으니까 물이 눈으로 들어오므로 눈을 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썹이 있는 것을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냄새맡을 수 있는 코와 맛볼수 있는 혀와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수족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것만으로도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는 충분한 것입니다. 시편 42편 5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을 헤아려 보고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 소망 >
미국에 조니 에렉슨 타다란 여성작가가 있습니다. 그녀는 1967년 다이빙 사고로 사지마비가 되었습니다. 그 뒤, 그녀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가 되었고, 몇 권의 베스트셀러를 지었습니다. 지금도 그녀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 장애인의 인권과 복음사역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그녀에게 누군가 물었습니다. “조니! 당신은 항상 행복해 보이는데, 어떻게 저도 당신이 가진 기쁨을 가질 수 있나요?” 그때 조니가 말했습니다. “사실, 저는 거의 매일 일어날 때마다 탄식해요. ‘오늘도 늘 똑같은 날이구나!’ 그러면 매일이 너무 미칠 것만 같고 답답해요. 만약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저는 하루도 살 수 없었을 거예요.”
그녀는 아침마다 이런 기도를 합니다. “주님! 이제 저를 돌봐주는 친구가 와서 저를 목욕시켜주고, 옷을 입히고, 의자에 앉히고, 머리를 빗질하고, 이를 닦아주고, 저를 문밖으로 보내줄 겁니다. 저는 오늘 한 번 더 이런 똑같은 일상을 마주할 힘도 없고 미소도 없어요. 제게 당신의 미소를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영혼에 힘과 미소를 주시고, 그날 만나는 사람마다 다른 줄 것이 없어서 그 미소를 주면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하늘의 미소를 구하며 사십시오. 지금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 힘든 현실 뒤에서 펼쳐지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우리의 상상을 초월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 은혜를 온전히 깨닫는다는 것은 마치 태평양 물을 양동이로 담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많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의 현실 속에서 힘과 용기를 내어 비전을 향해 달려가십시오.
<소망>
몇 년 전에,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서 인내심에 관한 2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첫째 실험은 들쥐를 욕조에 집어놓고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를 보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 실험에 의하면 쥐들의 평균 생존시간은 7시간이었습니다. 둘째 실험은 첫째 실험과 똑같은 상황에서 쥐가 탈진되어 익사하기 직전에 몇 초간 쥐를 욕조에서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는 실험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실험에서는 쥐들의 평균 생존시간이 20시간으로 늘어났습니다.
몇 초간의 차이가 생존기간의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을 보고 연구원들이 그 이유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런데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어서 마침내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들 사이의 차이는 두 번째 그룹의 쥐들이 더 희망을 가졌다는 차이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즉 두 번째 실험의 쥐들은 한 번의 구조를 경험했기 때문에 다시 구출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더 오래 수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는 한번 구출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 경험은 영원한 경험입니다. 이제 구원받는 성도는 어쩔 수 없이 천국에 가야 합니다.
<신앙>
저는 우리나라는 소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전세계에 선교사를 2만 명이나 파송한 선교대국입니다. 하나님께서 선교하는 이 나라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자원이 없는 이 나라, 에너지 해외의존도가 97%나 되는 나라가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백성들을 보시고 복 주셨기 때문입니다.
<결단>
지금은 목회를 잘하시는 목사님한 분이, 과거에 바둑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매일 서너 시간씩 친구와 함께 바둑을 두었습니다. 하루는 기도를 하는데 눈앞에 바둑판이 왔다 갔다 하더니 “성경을 하루에 한 시간도 못 읽는 네가 바둑은 어떻게 몇 시간씩 하느냐? 이제 그만 두어라”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목사님은 그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즉시 바둑판을 도끼로 패서 불 태워버린 후 바둑 하던 그 시간에 기도하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만약 그 목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바둑과 함께 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수>
어떤 남자가 '전 세계 지도 그림' 모양을 가진 1,500개의 조각 그림 퍼즐을 하나 사게 되었습니다. 어느 우울한 주말에 이 사람은 12살 먹은 자기 아들에게 퍼즐 그림을 주고 나서 이 아이가 이 그림조각을 꿰어 맞추려면 1주일 내내 고생해야 하리라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이 어린 아들은 겨우 3시간이 지난 뒤 아빠의 서재로 들어와 세계 지도의 그림 조각을 다 맞추어 놓았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아빠는 깜짝 놀라서 아들이 어떻게 그 복잡한 퍼즐 그림을 빨리 완성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이가 대답하길, "아빠, 그것은 너무 쉬워요. 세계 지도 그림 뒤에 보면 한 남자의 그림이 있어요. 제가 이 남자의 조각 그림을 다 맞추다 보니까 세계 지도는 저절로 완성이 되었어요."
그렇습니다. 우리의 모든 육신과 정신과 영혼의 병을 고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매우 쉬운 일입니다. 우리 홀로 끙끙거리지 말고 우리 뒤에 있는 주님을 신뢰하면 됩니다. 우리가 주님께 의지하여 주님이 치료의 근원이 되심을 믿고 고백할 때 신유는 오늘도 여러분 삶 한 가운데 그대로 일어나게 될 것입
니다.
<자기 경험과 지식, 편견>
류영모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미국 LA 근교에 있는 조그마한 한인교회의 김집사님 이야기를 했는데 소개하겠습니다. 김 집사님 내외분은 서울에 있는 큰 교회를 출석하다가 그 곳으로 이민을 가서 그 교회를 출석합니다. 교회에 많은 충성과 헌신을 아끼지 않는 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 분이 바로 교회 부흥의 걸림돌이 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분은 교회하면 서울에서 신앙생활 하던 그 교회가 모든 판단의 기준이었습니다. 그분이 섬기던 강목사님이 모든 목사의 판단기준이 되었습니다. 그 강 목사님은 심방 오시면 밥 한 그릇 뚝딱 잡수시고 한 그릇 더 달라고 해서 잡수시기 때문에 밥 해주는 보람이 있었는데, 이곳 젊은 목사님은 한 그릇 밖에 안 드신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전에 계신 목사님은 설교를 하실 때 가운을 입고 설교를 하시는데 지금 젊은 목사님은 양복을 입고 설교를 하기 때문에 목사 같지 않다고 비판을 했습니다. 교회에서 카펫을 깔게 되면 서울에서 신앙생활 할 때는 색깔이 붉은 색이었는데 이 교회는 녹색이기 때문에 은혜가 되지 않는다고 비판을 했습니다. 찬송을 부르는데 강 목사님은 찬송을 느릿느릿하게 불러서 은혜가 되었는데 젊은 목사님은 찬송을 너무 빨리 불러서 은혜가 되지 않는다고 비판을 했습니다. 김집사님이 그 교회에서 은혜를 받으려면 과거에 다니던 교회의 신앙스타일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내 삶 속에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하려면 나의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고후 10:4,5에 보면 영적인 싸움은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 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김행씨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정치에 뜻을 두고 졸업 후에는 민정당에서 10년 중앙일보 기자로 10년을 일한 분인데 학교 때부터 1등을 놓치지 않았고 미모도 갖춘 사람입니다. 나중에 정치할 생각으로 부동산 투기도 안하고 아이들 사교육도 안 시켰답니다. 2002년 대선 때 한 후보의 대변인을 맡아 정치를 시작했는데 자신이 밀던 후보가 다른 후보를 밀게되어 그 후보가 당선되면 홍일점인 자신은 14개장관중에 하나는 당연히 맡게 될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투표일 마감 세시간 전에 자기가 미는 후보가 지지철회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대변인인 자신의 입을 통해서입니다. 그 결과로 김행씨는 완전 실패했습니다. 절망에 빠져있을 때 한 후배가 사업을 같이하자고 해서 같이 하다가 쫄딱 망해 5억의 빚을 졌습니다. 할 수 없이 백화점 좌판에서 티셔츠를 파는데 한 손님이 이렇게 늙은 아줌마가 옷을 팔면 되겠냐고 하더랍니다. 대통령후보 대변인에서 사장으로, 사장에서 늙은 아줌마로 하루아침에 떨어졌습니다. 그때 티셔츠를 세장 팔아준 손님이 고마워서 차를 한잔 대접했는데 그분이 전도를 해서 교회를 나갔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환영하는데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그러자 장사가 잘돼서 좌판이 아니라 백화점에 정식 입점을 했는데 그때부터 안돼서 또 빚을 지고 완전히 망했습니다. 자신의 집은 원래 미신을 믿는 집이기에 예수를 믿어서 벌을 받았다고 처음에는 생각했답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아 교회를 계속 나갔습니다. 그리고 결국 정치에 실패한 것도 장사에 실패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문으로 들어가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인이 된 것입니다. 그녀는 티셔츠 장사를 정리하고 자본금 230억인 부실기업을 인수했습니다. 그때 기업이 보유하고 잇는 재산이 단 1억이었답니다. 그런 회사를 인수해서 50억 유상증자를 발표했습니다. 만약 유상증자가 안되면 지금까지는 빚이 몇 억이었는데 이번에는 수백억 빚을 질 처지가 되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그물을 내렸답니다. 그런데 증자 발표 하루 전에 김행씨가 그 회사를 인수했다는 신문기사가 실리고 그로 인해 하루만에 50억이 모여서 유상증자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다음부터 승승장구하여 230원이던 주가가 1년 만에 3800원이 되고 자본금 6천억 원의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시가총액 1위가 되고 김행씨는 이익의 10%를 주님을 위해 쓰겠다고 공표 했습니다. 전에는 손에 잡힌 것 같은 장관자리, 사업의 사장 자리가 모두 불통으로 끝나더니 여호와의 문으로 들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인이 되자 하나님이 형통의 복을 내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
파주 금촌에 평온교회 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 김국순 집사는 평소에 딸과 월세 방에 가난하게 살기 때문에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섬기는 교회도 개척교회여서 보증금 4천만 원에 월세 80만원을 내고 건물을 임대해서 사용하는데 한달 후에는 월세를 못 내서 이사를 가야하는데 그동안 월세를 못 내어 보증금을 까먹어 7백만 원만 남은 어려운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해 5월 어느 날 담임목사에게 취나물을 뜯어다 드리기 위하여 산에 올랐다가 놀랍게도 산삼 13뿌리를 캐었습니다. 이런 귀한 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생각과 함께 월세를 못내 어렵게 생활하는 목사님 얼굴이 떠올라 집에 가져가면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아 그 길로 교회로 달려가 목사님께 그것을 드렸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세상 적인 방법으로 판매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큰 것 세 뿌리만 남기고 환자와 그 동안 교회에 도움을 준 분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합니다. 물질로 돕지 못하니 나물이라도 뜯어 드리겠다는 아름다운 마음이 하나님의 응답을 이끌어 내는 축복을 이루었습니다. 자신의 생활이 어려운데 그 큰 횡재를 했으니 먼저 자신을 위하여 쓰고 싶은 생각이 어찌 없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조차도 하나님을 생각하는 그 아름다운 마음은 옥합을 깨트린 마리아의 헌신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제가 믿기는 우리 하나님이 분명히 그 교회와 집사님에게 지속적인 응답의 축복을 내려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인내>
영국의 수상까지 지낸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경은, 어렸을 때, 그가 태어난 고장에 있는 공립학교에 다녔습니다. 당시 윈스턴 처칠은 학
교 성적이 중간에도 미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말썽꾸러기 학생으로 유명했습니다. 만일
그의 아버지가 그 고장의 지주인 랜돌프 처칠만 아니었으면, 윈스턴 처칠은 졸업은 커녕, 일찌감치 퇴학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던 윈스턴 처칠은 공립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거쳐, 영국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군대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휘하기 시작한 윈스턴 처칠은, 결국 67세에 영국의 수상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윈스턴 처칠의 뛰어난 지도력과 감동적인 연설은, 세계 제2차 대전 내내, 영국 국민에게는 물론, 연합군으로 참전한 전세계 국민들에게 커다란 용기를 부어주었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윈스턴 처칠이 말썽만 피웠던 모교에서 졸업식 연설을 부탁했을 때, 윈스턴
처칠은 어린 학생들 앞에서, 그의 생애에서 가장 짧은, 그리고 가장 진지한 연설을 했습니
다. "학생 여러분,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끝까지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인내입니
다. 인내하는 사람,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마지막 승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하는 비결 또한 인내입니다. 많은 박해와 어려움 속에서도 고난의 길
을 앞서 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인내하는 사람이 결국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하게 되는 것
입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
이나 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8:35) 그러므로 주님의 그
사랑을 믿고 의지하며 인내하는 사람은 결국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망>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Victor. E. Frankle)의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에 보면 독일군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 유대인중 많은 사람이 1944년 성탄절에서 1945년 정초까지 약 2주 동안에 죽었다고 합니다. 사인(死因)은 질병이나 고문이 아니었습니다. 1944년 수용소의 유대인들은 크리스마스 이전에 석방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해 성탄은 가족들과 함께 보낼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탄절이 지났는데도 전혀 석방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너무 절망한 나머지 마지막 살 기력을 잃어버리고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라볼 희망이 사라지고 살아야 할 이유를 잃어버리자 그 어려운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견뎌왔던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 것입니다. 그로부터 4개월 후에 독일은 전쟁에서 패하고 수용소에 갇혀 있던 유대인들은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고 4개월만 참았더라면 그들은 모두 살 수 있었고 해방을 맛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참 소망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살아야 할 진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는 쓰러지지 않습니다. 마침내는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위대한 신앙의 승리자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치유>
양영자라고 하는 유명한 탁구선수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탁구를 시작했는데, ‘테니스 앨보’라고 하는 팔꿈치 통증 때문에 자그마치 6년 동안을 시합에 나갈 때마다 진통제 주사를 맞고 나갑니다. 마지막이다 하고는, 18살 때 동경 세계 탁구 선수권대회에 나갔는데, 놀랍게도 중국선수를 물리치고 우승했습니다. 많은 신문들이 ‘양영자’야말로 한국 탁구계를 이끌만한 인물이라고 하며 얼마나 높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은 엄청난 고통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진통제를 맞아도 소용이 없는 팔꿈치 때문에 더 이상 선수생활을 없다고 생각하고 마지막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합니다. 기도원에 가서 눈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그의 병을 깨끗이 고쳐 주셨습니다. 통증이 없어졌습니다. 그 이후로 양영자의 인생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탁구는 이제부터 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게 해 주시옵소서! 내 자신의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해 주소서.” 선수촌에 가서 훈련을 하는데, 간염이 걸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받아 병을 고쳤는데, 또 간염이 걸린 것입니다. 선수촌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또 기도하니 또 간염이 나았습니다. 다시 선수촌에 들어왔습니다. 86아시안 게임에서 우승하고, 88올림픽에서도 우승했습니다. 88올림픽에선 한경기, 한경기마다 눈물 흘리며 기도하면서 경기를 치루었습니다. “이 금메달은 내 금메달이 아니고 하나님 영광의 금메달입니다.” 그는 그때 이런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소망이요, 힘이요, 기쁨이요, 능력입니다. 인생의 진정한 가치는 탁구의 금메달이 아니고 천국의 면류관,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인도하심의 승리인 줄로 믿습니다.” 인생관이 바뀌었습니다. 그 유명한 이름 가지고 지금 몽골에 가서 선교사 생활 하고 있습니다. 그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변화의 능력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에게는 죄사함의 능력, 문제해결의 능력, 치료의 능력, 부요함의 능력, 변화의 능력이 있습니다. 철저하게 믿으십시오. 그러면 우리에게도 동일한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리이까?”라고 묻는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굳게 믿으면 굳게 설 것입니다. 굳게 믿지 못하면 굳게 서지 못할 것입니다. 능력의 주님을 확실히 믿고 풍성한 승리의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회개>
한 사람이 장마철에 한강에 물 구경을 하러 나갔습니다. 집도 떠내려가고, 돼지도, 통나무도 온갖 것들이 다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여자가 떠내려가면서 “살려 주세요”라고 소리 지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의 손가락에서 금반지들이 반짝 거리고 있었습니다. 손가락마다 금반지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다급하니까 금반지만 모조리 챙기었던 것 같습니다. 그 남자는 여자에게로 생명을 걸고 수영을 하여 들어갔습니다. 그 여자를 구한 것이 아닙니다. 금반지를 빼려고 하였습니다. 손이 물에 불어서 금반지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손가락의 반지는 잘 뺏는 데 어떤 손가락에 낀 반지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손가락을 잘랐습니다. 그리고 금반지 금 목걸이를 다 빼어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 날 밤부터 자리에 눕기만 하면 “으악” 하는 그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금반지 하나씩 팔아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날 밤새도록 술을 마셨습니다. 자다가 깨어 보니 술집이었습니다. 목마르기에 갈증으로 옆에 있는 그릇의 물을 마시고 보니 재떨이에 있는 물이었습니다. 담배꽁초, 술 마시다가 딸아 놓은 술 찌꺼기, 침 뱉은 것 등의 혼합물을 마신 것이었습니다. ‘내가 짐승이지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사실 그런 사람은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지요. 그는 터덜터덜 공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새벽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이었습니다. ‘새벽부터 왠 사람들이 이렇게 모이나?’ 하고 따라 들어가 보았습니다. 교회 새벽기도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앉아서 목사님 설교를 듣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죄를 지었어도 예수님의 십자가만 붙들면 다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시면서 강도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생 강도짓을 하였어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죄사함 받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설교였습니다. 그는 이곳이 바로 내가 평안을 찾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날부터 교회 다니기 시작하여 지금은 그 죄로부터 자유함을 받고 평안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주님에게는 어떤 죄도 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면 어떤 죄도 사함 받는 능력을 받게 됩니다.
<기도 응답>
탤런트 김혜자 권사님의 딸의 간증입니다. 김혜자 권사님은 지금 남대문 교회 권사님으로 계십니다. 권사니까 얼마나 신앙생활이 오래 되었고 인정받았을까요? 그런데도 그 권사님은 방송가에서 유명한 골초였습니다. 심지어는 성경을 읽으면서도 담배를 피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담배 냄새가 싫더랍니다. 그래서 담배를 끊었습니다. 방송가에서는 그 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담배를 끊고 권사님이 미국에 있는 딸한테 전화하다가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얘야, 이상한 일이다. 담배 냄새가 갑자기 싫어졌다. 그래서 담배를 끊었다." 그 얘기를 듣고 딸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알고 보니까 딸이 엄마가 담배를 끊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3개월 작정 새벽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권사인 엄마의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기 싫게 생각한 딸이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김혜자 권사님에게 담배 냄새가 싫어지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IMF 때문에 수많은 부도사태가 났습니다. 정말 심각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사태는 기도가 부도나는 것입니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문제를 당하는 것도 문제인데 더 심각한 것은 문제 속에 있으면서도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문제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데, 문제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지고 교회를 찾아오는 횟수가 줄어들며 영적으로 다운됩니다. 이게 진짜 문제입니다.
<회개>
눈물의 참회록
지금껏 내가 한일이 주를 위한 것이었는지
지나간 세월 돌이켜 주님 앞에 아룁니다.
이한 몸 주를 위하여 목숨 버린다 했으나
주의 영광 뒤로하고 나의 자랑 앞세웠으니
내가 가는 이 길이 주를 위한 것보다
예수 이름을 파는 가룟유다와 같습니다.
<시련이 약 >
캐나다의 해안도시 벵쿠버에서 내륙인 토론토로 물고기를 운반하는 수산회사에서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성공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초기에는 물고기가 서식하는 환경을 모두 다 갖추어 2주일간 기차로 운반하는 과정에서 도착하기도 전에 물고기들이 다 죽어 있었습니다.
실패의 이유를 실무진들이 면밀히 검토해 본 결과, 파도가 치고 서로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이라는 자연적인 바다의 서식환경을 생각하지 못하고 편안하게 과잉보호만 했기 때문이라는 간단한 이유를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그후 탱크 안에 파도가 생기도록 조류를 만들어내고, 물고기들과 함께 상어 새끼와 작은 문어를 몇 마리 집어넣었습니다. 그 결과 물고기들이 이들에게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피해 다니느라 죽지 않고 모두 다 싱싱하게 살아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환경이 편안하면 신앙이 죽습니다. 그래서 가끔 고난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은혜를 구하다보면 기도의 응답을 받고, 믿음이 쑥쑥 자라나며,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기독교 부활 신앙>
이슬람교 경전인 꾸란에 “예수를 믿으라.”는 말이 나옵니다.(43:63) 그리고 꾸란에서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예수님에 관해 설명합니다. 꾸란에 나오는 예수님에 관한 기록은 성경에 나오는 것과 거의 비슷합니다. 동정녀탄생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셨다는 것과 그 복음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놀라운 기적을 베푸셨다고 가르칩니다. 또 주님의 승천과 재림도 말합니다. 이쯤 되면 이슬람교는 유대교보다 우리 기독교에 더 가깝고, 이슬람교와 기독교는 충분히 대화가 가능한 종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3:55). 십자가에서 죽음을 모면한 후 샘이 흐르는 곳으로 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23:50) 그래서 이슬람교는 예수님을 구세주가 아니라 알라가 보낸 위대한 선지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기독교가 예수를 잘못 가르치고 있다고 기독교를 적대시하고 공격합니다.
인도에서 스탠리 존스 선교사가 노방전도를 하고 있는데 이슬람교도 한 사람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는 당신네 기독교인들이 못 가진 것 하나를 가지고 있소” 그래서 스탠리 존스 목사가 물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메카에 가면 마호메트의 시체가 들어있는 관이 있어서 우리는 정말 그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당신네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에 가도 빈 무덤밖에 볼 수 없지 않소?” 이 말에 스탠리 존스는 대답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당신네 이슬람교와 우리 기독교의 다른 점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승천하셨기 때문에 무덤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순교>
초대 교회사에 보면 제자들의 죽음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 가서 전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었고, 안드레는 헬라에서 전도하다가 아가야성에서 엑스자형(X)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고,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헤롯에게 칼로 목 베어 죽었고, 빌립은 서아시아 부르기아에서 전도하다가 기둥에 매달려 죽었고, 요한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모시면서 유대 땅에서 전도하다가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 후 에베소에 가서 전도하다가 그곳에서 핍박을 받아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졌지만 기적으로 살아나 다시 밧모섬으로 귀향 보내졌고 그곳에서 요한계시록을 받아 기록하고 죽었습니다. 바돌로매는 아르메니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고, 도마는 인도에 가서 전도하다가 창에 맞아 죽었으며, 마태는 에티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목 베임을 받아 죽었고,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뜨려 죽임을 당했고, 시몬은 애굽에서 전도한 후 다시 유대에 돌아와서 전도하다가 활에 맞아 죽었습니다. 야고보의 동생 유다는 바사에 가서 전도하다가 활에 맞아 죽었고, 가룟 유다 대신 선출된 제자 맛디아는 에티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소망>
영국 어느 지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갑자기 석탄광 하나가 무너지는 바람에 그 안에서 일하고 있던 164명의 광부들이 생매장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은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 깊은 슬픔을 가지고 사체발굴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체 옆에 판자가 놓여 있었는데 거기에는 놀랍게도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었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같이 하십니다. 우리는 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주여 축복하소서. 우리는 대단히 유쾌한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우리 모두는 영원한 영광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곧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으므로 우리는 이곳에 남지 않고 부활의 생명 가운데 아름답게 꽃 피울 것입니다” 석탄광의 무너지는 흙더미 속에서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영생의 기쁨을 가지고 세상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요즘 교인들은 너무나 약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작은 시험만 있어도 흔들립니다. 시험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부끄러운 일들 앞에서도 신앙이 흔들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요동하지 마십시오. 강하고 담대하게 신앙생활 하십시오.
<친구>
런던 타임즈가 설문조사를 해서 친구의 정의를 내 놓았는데 그 첫째가 모든 사람이, 온 세상 사람이 다 나를 버릴 그때에 나를 찾아오는 사람, 어떤 이유로든지 모든 사람이 나를 배척하고 버릴 때에 나에게 가까이 오는 사람이 친구이며 둘째는 나의 침묵을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나는 너를 안다. 네 억울함을 안다. 네 고통을 안다. 네가 바로 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네 진실을 안다" 고 말하면서 나의 침묵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친구이고 또 하나는 나의 기쁨을 곱해 주기도 하고 나의 슬픔을 쪼개 주는 자라고 합니다. 그와 만나면 기쁨이 제곱으로 커지고 슬픈 마음으로 만나면 슬픈 마음이 자꾸만 작아져서 없어지는 그것이 진정한 친구라고 합니다. 참 훌륭한 해석이 아니겠습니까?
<부활>
그 책은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네폴류도프 공작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그는 겉으로는 근사하나 속으로는 정욕과 안일만을 추구하는 인생이며 그가 어린 하녀를 농락했지만 인간의 죄성, 죄에 대한 불감증으로 아무런 가책을 모릅니다. 그러나 또 하나 부활에서 보여준 위대한 사상은 인간은 그렇지만 또 한편의 구석에는 진실을 향한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입니다. 네풀르도프가 배심원이 되어 한 살인자 여자를 판결하는데, 그 살인을 한 여자가 바로 다름 아닌 자기가 농락하고 버린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저 여자가 그런 사람이 된 원인이 자기에게도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양심이 깨어나서 그는 인생에 U턴을 합니다. 즉 바르게 살겠다고 하여 양심에 모든 것들을 버리고 카츄사와 함께 시베리아로 떠납니다.
< 조크- 여유 >
예~ 저분은 늘 그래요
어느 교회에 행사가 있어 초청을 받고 목사님을 따라간 사모님이 교인들 틈에 함께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그 교회에서 남편 목사님을 설교자로 초청해서 사모님이 함께 간 것이었다.
목사님의 설교가 끝나고, 예배도 모두 끝이 났다. 사모님이 사람들 틈에 섞여서 나오고 있는데 안내 집사님이 못 보던 새 얼굴인지라, 얼른 다가와서 친절하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다음 주일에도 꼭 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주일 설교가 늘 저렇게 시시하다고 생각지 말아 주세요.
오늘 설교하신 목사님은 다른 교회에서 오신 목사님이니까요." 그때 사모님은 웃으며 대답햇다. 예...저 분은 늘 그래요. 제 남편 이거든요."
< 조크-안 죽는 사람 있나? >
겁주는 목사
극성스런 부흥 목사가 시골교회에 찾아와서는 자극적인 한마디로 설교를 시작했다. "이 교회의 사람들은 죄다 죽습니다. 그런데 맨 앞줄에 앉아있는 한 사람이 대놓고 웃는 걸 보고는 목사는 마음이 찝찝해 그 사람에게 물었다. "뭐가 그렇게 좋으십니까?" ."전 이 교회 사람이 아니거든요. 주말이라 누이 집에 내려 왔다가 지금 이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있답니다." 하고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 헌금 -인색 > 아낌없이 바치네
어느 주일날 아침 교회에 가려고 준비하던 구 집사인 남편이 천 원짜리 몇 장만 주머니에 넣고 가방에서 지갑은 꺼내더니 책장 서랍에 넣어 놓고 나갔다. 부인질문: 여보 왜? 친구 만날 땐 챙기는 지갑을 교회 갈 땐 집에 두고 가는겨? 남편대답: 지갑을 갖고 가면 헌금할 때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네"하고 찬송 부를 때 너무 괴롭더라고. 매번 그래 부인질문: 쯧쯧. 예수님도 당신 기도 소리 듣고 안 들어주면 괴로울까봐 응답 주머니 하늘에 묶어 놓고 오시면 어쩌누. 괜찮아?
"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
하시느니라." <고후 9:7>
< 물질 보다 더 귀한 유산 >
어떤 사람이 한평생 모은 재산을 쓰지도 못하고 아들한테 주고 죽었습니다. 그는 죄를 많이 지어서 지옥에 가서 고생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30년이 지나니까 아들도 지옥에 왔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얘, 나는 돈벌어서 다 너한테 주려고 죄를 지었지만, 너는 왜 죄를 지었느냐?” “아버지 때문이에요.” “왜 나 때문이야?” “아버지가 돈만주시고 제대로 쓰는 방법을 안가르쳐 주니까 제가 멋대로 쓰다보니 죄만 짖게 되었습니다” 라고 대답 하더랍니다
재물을 많이 물려준다고 해서 자식이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식에게 가르쳐 줄 것은 어려울 때 힘들 때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을 가르쳐 줘야 합니다.
< 분노 >
우리는 잠간이라도 분을 품거나 남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부인이 목사님께 상담을 했습니다.
자기는 성질이 너무 급해서 고민이라며 말하기를 "목사님, 저는 작은 일에 가끔 폭발을 하지만, 그리고 나서는 뒤가 없습니다.금방 풀어 버립니다.마음에 두고 꿍하고 있지는 않고 그 자리에서 다 툭툭 털어 버리고 끝납니다”
목사님께서 정중히 말했습니다.“총과 대포도 그렇습니다.한 방만 쏘아도 그 결과는 엄청납니다.한 방 쏜 총에 맞은 사람은 바로 죽습니다. 꽝하고 한번 터진 대포로 인해 건물은 무너집니다. 다 박살나지요. 집사님이 한번 터뜨린 분노에 다른 사람은 마음에 상처를 받고 평생 눈물을 흘리고 가슴 아픈 시간을 갖습니다.”
여러분 분노는 터지고 나면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
< 맡김 >
잠언 16장 3절에도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생각대로, 내 계획대로, 내 욕심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고 낙심과 좌절가운데 죄짓고 살다가 결국 뒤늦게 후회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하나님은 앞장서서 우리를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앞장서시고 이스라엘 백성이 그 뒤를 따랐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그 뒤를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욕심을 앞세우고 하나님을 따라오시게 합니다.
사고는 자기가 쳐놓고서 해결은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마틴 루터가 어느 날 잠자리에서 기도하는데 그날따라 아주 피곤해서 하나님께 투정하듯이 기도를 했답니다. "하나님, 이 세상이 하나님의 것입니까, 내 것입니까? 하나님, 교회가 내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까, 내 가정이 내 것입니까? 하나님 것입니까? 내가 하는 일이 내 것입니까? 하나님 것입니까?
이제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이니 난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기도했더니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깜짝 놀랐답니다.
< 말씀 >
지난 1992년, 국민일보가 주최한 제1회 성경옮겨쓰기 대회에 아주 인상적인 한 사람이 응모를 했습니다. 그는 사형이 집행된 서울구치소의 사형수 양진순(25)이었습니다. 그는 편지지 4백여 장에 꼼꼼히 옮겨 쓴 성경과 편지 한 통을 국민일보사에 보냈고, 그 며칠 뒤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는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크고 작은 강절도 행각을 벌이다 살인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양씨는 1989년 9월, 살인 등 흉악 범죄를 저지른 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는데요. 당시는 ‘범죄와의 전쟁기간’이어서 법정최고형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양씨가 교도소에 수감된 뒤, 어느 목사님이 성경 말씀을 전하자, 그 말씀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열어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사형이 확정된 이후, 그는 국민일보가 주최하는 성경옮겨쓰기대회에 응모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자신을 변화시킨 말씀의 맛과 능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은혜 속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었습니다. 차가운 바닥에 성경을 펼쳐놓은 양씨는 정성스레 말씀을 써 내려갔습니다. 그가 쓴 편지지 사이사이에는 눈물을 흘린 자국이 배어있었습니다. 비록 그가 성경을 다 옮겨쓰지 못하고 사형을 맞았지만, 그가 함께 보낸 편지에는 감사하다는 말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 실천 >
한 성도가 목사를 찾아와 자랑하듯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이번 가을에 성지 순례를 가기로 했습니다. 시내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십계명을 낭독할 거예요.” 이 말을 듣고 있던 목사는 “성도님, 저는 그보다 더 좋은 것을 성도님께 추천하고 싶군요”라고 말했습니다. 궁금해진 성도는 다그치듯 물었습니다. “목사님, 그게 뭔데요?” “그건 십계명을 낭독하기 위해 그 머나먼 곳까지 가기보다는 댁에서 그 십계명을 실천해 보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고, 암송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읽거나 듣고, 배우고, 암송하는 것에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성경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 저희로 성경 말씀에서 귀한 진리들을 발견하게 하시고, 그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당신은 성경 말씀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계신지요 ?
< 하나님 사랑 >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 가방 회사 샘소나이트(Samsonite)의 회장은 슈와이더(Jesse Shwayder)입니이다. 그의 아버지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뉴욕에서 잡화상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업은 계속 실패했고, 아들 슈와이더가 아버지 대신 채소가게’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슈와이더는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혜를 주십시오.” 그러던 어느 날 한 손님의 가방이 찢어져 물건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찢어지지 않는 가방을 만들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연구 끝에 짐을 많이 넣어도 터지지 않는 튼튼한 가방을 제작했고, 가방 이름을 ‘튼튼하고 힘이 세다’는 뜻으로, 샘소(삼손)나이트(Samsonite)라고 붙였습니다. 이 튼튼한 가방은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결국 세계 각국에 지사를 둔 세계 최대의 가방 회사로 발전했습니다.
<실천하는 신앙 >
어린이들의 심리를 치료하는 어떤 정신과 의사가 자기 집에 새로운 차도--즉, 대문에서 현관까지 차가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길--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여러 시간 최선을 다해 수고한 나머지 드디어 콘크리트를 편편하게 처서 완벽한 수준의 드라이브웨이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바로 이 때 갑자기 이 집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다가 새로 만들어 놓은 시멘트를 밟아서 그만 깊은 발자국을 남겨 놓게 되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버지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아이들을 심하게 나무랐습니다. 이 광경을 옆에서 지켜본 아내가 "여보, 당신은 아이들을 사랑해야 할 아동 정신과 의사예요. 그런 당신이 아이들에게 이렇게 화를 내시면 어떡해요." 부인의 말을 듣고서도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한 남편이 하는 말이 "나는 아이들을 추상적으로 사랑하지 구체적으로 사랑하지 않아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 어느 중년의 고백 >
어떤 중년을 넘긴 분이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 분이 교회에 나오게 된 이유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삶과 자기의 삶을 비교해보고 무언가 심각하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입니다. 그 분의 말로는 예수 믿는 자기 친구는 어릴 때부터 일주일에 하루를 쉬면서 공부도 하고 사업도 했는데, 자기는 일주에 하루도 쉬지 않으면서 악착같이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50이 넘어서 생각해 보니까 그렇게 악착같이 쉬지 않고 살아온 자기나, 7일 중 하루를 쉬면서 살아온 자기 친구나 사는 형편이 별로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친구는 어려워도 늘 감사하며 사는데, 자기는 인생이 점점 더 힘들고 내가 왜 사는가 인생이 무엇인가 회의가 찾아오고 매사에 자신이 없어 이러다가는 자기만 손해를 보는 것 같아 이제야 교회에 나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일주일 다 일하고도 요모양이고 자기 친구는 일주일에 하루를 꼭꼭 쉬고도 저 정도라면 결국 나만 바보 같은 생활을 해 온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인간의 한계 >
일반인들에게 의사는 전능한 존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일반인들의 선망의 대상입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의사의 입지는 대단합니다. 하지만 그런 의사들도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2003년 베스트셀러인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이라는 책은 한 외과의사가 더 나은 의사가 되기 위해 의학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고백한 자전적(自傳的)인 책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소위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아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모르는가를 중심 테마로 잡았습니다. 부제로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라고 이름 지은 이유도 의학계의 무지에 대한 겸허한 표현입니다. 의학이라는 것은 모든 과학을 집대성한 것이지만 병명을 모르는 병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 의사들이 수술을 집도할 때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자기의 유한함과 무지를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것이 복입니다.
< 신앙의 힘 >
전 복싱세계헤비급챔피언 무하마드 알리를 아실 것입니다. 그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는 명언을 남기기도한 사람입니다. 그가 세계챔피언에 도전할 때 상대는 죠지 포먼이었습니다. 스포츠전문가들은 죠지 포먼이 이길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예상을 깨고 무하마드 알 리가 승리했습니다. 그는 주먹 하나로 세계를 재패했습니다. 그의 주먹을 당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도 지금은 자기 주먹을 믿는 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 줄 알 것입니다. 그는 1981년 이후 파킨슨씨병으로 투병중입니다. 그에게 자기 주먹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할 것입니다.
자. 그런데 알리에게 패한 죠지 포먼에게 놀라운 신앙간증이 있습니다. 그의 신앙간증은 1974년 알리에게 패한 후인 1976년 4월 30일 푸에르토리코에서 벌어진 지미 영과의 대결 직후 찾아온 ‘임사 체험(Near Death Experience)’에서 비롯됐습니다. 경기에서 패배하고 녹초 상태로 탈의실에서 쉬고 있던 그는 극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완전히 텅 빈 상태에서 공포와 절망에 빠진 그에게 예수님이 다가와 다시 생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 그에게는 인생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은퇴 후 10년 만인 1987년 링에 복귀했습니다. 복서로서는 할아버지나 마찬가지인 45세 때입니다. 그가 다시 링에 복귀한 것은 죠지 포먼의 부인 메리의 기도응답 때문입니다. 그녀는 하나님께 “주님, 조지가 다시 헤비급 세계 챔피언이 되도록 해주세요”라고 기도했고, 메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그가 그것을 이룰 것”이라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 응답대로 죠지 포먼은 45세의 나이에 하나님의 도움으로 다시 헤비급 세계 챔피언 벨트를 거머쥐게 된 것입니다. 죠지 포먼은 자신의 능력으로 이길 수 있다고 믿었던 때는 챔피언 벨트를 내놓아야 했고 자신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했던 45세에 챔피언 벨트를 다시 찾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성공과 승리는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성공할 것 같아도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반대로 실패할 것 같아도 하나님이 도우신다면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 환난 날에 도움 >
미국 플로리다에서 허리케인으로 호수의 제방이 무너져서 호숫가에 살던 찰스 시어즈 집이 물이 잠겼습니다. 그는 아내와 3명의 자녀와 함께 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물은 점점 불어오고 꼼짝없이 죽게 됐습니다. 남편이 말했습니다. “여보, 이젠 틀렸어. 다 죽게 생겼어” 아내가 대답합니다. “아니에요, 여보 우리는 살 수 있어요.” 그런데 아내가 ‘우리는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순간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생각이 나더랍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잊고 교회를 떠나 살았는데 그래도 예수님이 생각이 나는데 힘이 생기더랍니다. “여보! 우리가 주님을 잊고 있었네요. 주님이 살려주실 거예요.” 그러는 순간에도 물이 점점 차올라서 나무에 매달려 있는 가족들은 겨우 목만 물 밖으로 내 놓고 있었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물속에 잠깁니다. 하지만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 도우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니 힘이 나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432장) 찬송을 부르는데 어디서 그렇게 힘이 나는지 소망을 감당할 수 없어서 찬송을 부르면서 울음을 터뜨렸다는 겁니다. 그 순간 주님이 내려다보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호숫가에 있었던 한 낡은 배 하나가 자기네 쪽으로 가까이 오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가족은 그 배를 타고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앞에서 말한 찰스 시어즈 처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때 도움을 요청할 상대가 없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에게 도움을 구하면 하나님은 가장 선한 방법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이 큰 복인 것입니다.
< 좋은 가정 >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암송하고 보여주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가정에 다른 것은 다 준비되어져 있습니다. 음식을 조리하기 위하여 주방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온 식구가 함께 식사하도록 식탁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함께 음악을 듣거나 텔레비전을 볼 수 있도록 응접실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잠을 잘 수 있도록 침실과 침대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예배하는 예배의 장소나 성경을 읽는 자리는 마련되지 않는 가정이 많습니다. 부모님들은 텔레비전을 보는 부모, 설거지하는 엄마, 일하는 아빠의 모습은 보여주지만 성경을 읽는 부모, 기도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이제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존귀한 사명임을 깨닫고 행하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 말씀의 위력 >
1967년에 6일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집트를 비롯한 13개 국가가 석유를 팔아서 축척한 돈으로 미국과 소련에서 최신식무기를 사서 육해공군이 육지바다 하늘로 쳐들어갔습니다. 이스라엘은 1948년도에 독립한지 20년밖에 안되어서 나라구실을 못할 때 100배도 넘는 군대와 무기로 13개국이 쳐들어갔으니 간단하게 끝날 전쟁이었고 이스라엘이 지구상에서 없어질 줄 알았음. 그때 이스라엘에는 한쪽 눈이 애꾸인 모세 다얀이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이 장군이 전쟁 초기에 기자회견을 했는데 세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첫째 우리는 2500년 기다렸던 이 나라의 독립을 얻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고 싸우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이 전쟁은 빠른 시일 내에 끝날 것이다. 셋째 우리는 최고의 최신식 무기를 전 장병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전쟁은 우리가 승리할 것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자 미국의 CIA, FBI, 소련의 KGB 등 전 세계의 정보망은 유대인이 가지고 있는 최신식 무기가 무엇인지 집중적으로 알아내려고 했습니다. “핵무기인가? 전 장병이 다 가지고 있다면 핵무기는 아닐 것이고 ....”하면서 말입니다.
결국 전쟁은 6일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간단하게 끝났습니다. 그래서 이 전쟁의 이름이 6일 전쟁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 드디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습니다. 모든 유대인 장병이 가진 최신식 무기가 무엇인지 촉각을 곤두세웠는데 드디어 그 무기가 공개된 것입니다. 모든 장병들은 자신의 왼쪽 주머니에서 책을 한 권씩 꺼내어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포켓용 성경이었습니다. 세계는 다시 한 번 놀랬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 속에서 중요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전 세계 사람이 힘을 모아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아무런 승리도 얻을 수 없다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이 이처럼 크고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 일수록 더 의지할 주님>
옛날 중세기에 수도사들이 늘 강조했던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사랑할 대상이지만 신뢰할 대상은 아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을 사랑하라고 했지 믿으라는 말은 없습니다. 사람은 신뢰할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아들이 그를 배반하고 죽이려고 합니다. 신하들과 나라가 그를 배신합니다. 그렇게 믿었던 대상들이 그를 배신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라고 말합니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라는 영화에 한 사병이 일선에서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폭격으로 건물은 다 파괴되었고 가족은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지금까지 자기가 믿고 있던 모든 질서와 가치와 도덕이 와해돼 버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극도의 허탈감에 빠진 그는 어느 날 무거운 마음으로 옛 스승 풀만 교수를 찾아갔습니다. "교수님, 아직도 우리가 믿을 만한 그 무엇이 남아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 때 교수는 "아무렴 남아 있고말고." 그러자 사병은 "그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풀만 교수는 엄숙한 태도로 "그것은 하나님이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교수님은 아직도 신을 믿습니까?"라고 묻자 "이러한 위기와 부조리에 처해 있기 때문에 더 믿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처럼 어려울수록 더욱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사람은 나를 버려도 하나님께서는 버리지 않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돕지 않습니다. 상처만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면 사람도 돕고 국가도 돕고 천지만물도 돕습니다.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도 나타나서 돕습니다.
<격려>
조용기 목사님은 어릴적 과장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한번은 사촌들하고 같이 농장에서 놀다가 “야, 저 대문밖에 나무사이에 보니까 호랑이가 한 마리 앉아 있다. 가보자!”고 말했습니다. 사촌들이 그 말을 믿고 모두다 몽둥이를 들고 가보니 호랑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조용기 어린이를 거짓말쟁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사촌들의 놀림 때문에 울고 있으니까 아버지가 “왜 우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내가 호랑이가 없는데 호랑이가 있다고 말을 했기 때문에 나를 보고 거짓말쟁이라고 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조용기 어린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네가 거짓말쟁이가 아니라 너는 꿈이 많은 애다. 너희 사촌들은 호랑이를 못 봤지만 너는 상상 속에 호랑이를 봤으니 너는 꿈이 많은 애인데 너는 장차 큰사람이 될 사람이다. 꿈을 못 꾸는 사람은 아무 일도 못하지만 꿈을 꾸는 사람은 큰일을 할 수 있다.”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아버지의 그 말이 자신의 일생에 굉장한 도움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장애를 보는 시각>
한 집안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두 팔이 없습니다. 두 다리가 없습니다. 아이를 받아든 간호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의사도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엄마가 이 아이를 보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이를 다른 방으로 옮깁니다. “아이가 황달이 심해서요.” 엄마에게 아이를 한달동안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의논하고 연구한 끝에 엄마에게 이 아이를 보여주기로 합니다. “아이가 조금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어요. 남들이 있는 게 조금 없어서요.” 조심스레 이 엄마를 아이에게 데리고 갑니다. 아이를 보는 순간 엄마가 쓰러질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을 준비하고 병실까지 완벽하게 준비해 두었습니다. 엄마가 이 아이를 보는 순간 엄마의 얼굴이 해처럼 환하게 감격스럽게 아이를 바라보더니 “어머나, 귀여운 내 아이...” 이 아이를 키우면서 “얘야, 너는 남과 다르게 생겼단다. 남들이 가진 것 조금 없을 뿐이야. 너는 개성 있게 생겼어.” 키우는 사이에 10cm정도 두 팔이 자라납니다. 10cm 정도되는 두 팔을 가지고 야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수영도 하고, 컴퓨터도 하고, 붓글씨도 쓰고, 밝고 명랑하게 심지어 골목대장으로 자라납니다. 이제는 어엿한 대학생으로 자라나 명문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에 입학합니다.
그러면서 글을 씁니다. “장애란 특별한 개성일 뿐이다. 나는 남들이 가진 걸 가지지 못했지만 나는 더 많은 것을 가졌다. 나는 유리한 것이 너무나 많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친구가 더 많다.”
<심은 대로>
[멀리 가는 향기]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집에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손자인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소년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간혹 다투더니 갈수록 잦아지고 싸움이 커지는 것입니다. 부부사움의 이유는 할머니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할머니를 모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소년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합의를 하였습니다. 할머니가 묵을 방을 하난 얻어서 내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낙엽이 우수수 지는 날, 온 식구가 달려들어서 할머니의 이삿짐을 꾸렸습니다. 그런데 소년은 종이와 연필을 꺼내 와서 적기 시작하였습니다. “헌 옷장 1, 전기장판 1, 담요 1, 밥통 1...”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너, 왜 그런 것을 쓰니?” 소년이 대답하였습니다. “다음에 어머니를 내 보낼 때 내가 챙겨드릴 품목이에요” 보는 것이 배우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잘해야 나중에 효도 받습니다.
<사랑, 소망>
런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 저녁에 어떤 사람이 오두막집을 지나가는데 거기에 소녀 하나가 추위에 덜덜 떨며 문 밖에 서 있더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서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어린 소녀 하는 말이 "우리 아버지가 나를 때리며 나가라고 내어쫓아서 지금 문 밖에 서 있습니다"하더랍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아버지께서 잠드신 다음에 들어 가려고 해요." 그 소녀는 아버지가 잠든 다음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새벽 일찍 일어나 아침상을 준비해 가지고 아버지 방에 들어갔습니다. 술에서 깨어난 아버지는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때려서 내쫓았는데 너는 왜 오늘 집에 들어 왔으며 또 아침상을 차려서 가지고 오느냐? 이 아버지가 밉지도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소녀는 말하기를 "아닙니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어머니가 세상 떠날 때에 내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의 아버지는 술만 마시기만 하면 저 모양이 된다마는 본심은 착한 사람이다. 언젠가는 좋은 아버지가 될 것이다. 나는 너의 아버지를 사랑한다. 그런고로 너도 아버지를 사랑해라."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이 말을 듣고 아버지는 회개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고려장>
며칠 전 T.V에 보니까 노모를 집에 모시지 않고 컨테이너에 방치한 아들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어머니를 컨테이너에 가두고 문을 잠그고 먹을 것도 잘 주지 않아서 결국 어머니는 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노모는 아들 며느리에게 혹시나 피해가 갈까봐 아들 며느리가 잘해준다고 먹을 것도 잘 준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끝까지 자식을 변호합니다. 이게 부모의 사랑입니다.
고려장 설화를 다룬 김형영의 [따뜻한 봄날]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봄꽃 구경 가자고 꼬여 엎고 산속으로 갑니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혀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핀 봄날 어머니는 좋아라.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멀어지자 어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봄구경 꽃구경 눈 감아버리더니 한 움큼 한 움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하시나요, 꽃구경은 안하시고 뭐하시나요, 솔잎은 뿌려서 뭘 하게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이 걱정이구나, 산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이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부모 공경>
사실 요즘 모든 것의 기준이 돈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돈이 있으면 효도를 받고 돈이 없으면 효도를 받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일직이 섹스피어는 그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비가 누더기를 걸치면 자식은 모르는 척 하지만 아비가 돈 주머니를 차고 있으면 자식들은 효자가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시대상을 잘 아시는 노인 한 분이 자식 이름으로 몇 개의 통장을 만들었습니다. 그 통장을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효도를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노인분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 자식들이 통장을 열어보니 통장에는 2만원씩만 들어있었다고 합니다.
<부모 공경>
옛날 시골 가난한 집에서 아들 하나를 키웠습니다. 생활이 어려워서 생선을 먹으면 어머니는 머리만 발라먹고 아들에게는 몸통을 주었습니다. 아들이 “엄마는 왜 머리만 드세요?”라고 물으면 어머니는 “나는 머리가 맛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사실은 몸통에 살이 많으니 아들에게 살을 먹이고 싶어서 어머니가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후에 아들이 공부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가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선물을 보냈는데 그 선물이 어머니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선물꾸러미를 풀어보니 커다란 상자 안에 생선 머리가 가득한 것입니다. 미련한 아들이 어머니의 마음을 모르고 어머니가 생선 머리를 좋아하시는지 않고 몸통은 지가 먹고 머리를 상자에 잔뜩 담아서 보낸 것입니다.
<까마귀의 봉양>
예로부터 까마귀를 효조라 합니다. 까마귀는 어렸을 때에는 어미 새가 그 새끼를 키운답니다. 일반적인 말입니다. 그런데 어미 까마귀가 늙어 기력이 없어지면 그 새끼가 늙은 어미 까마귀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새끼 까마귀들은 자기 어미 까마귀가 앉은 가지 위에 앉는 법이 없답니다.
그래서 자기 부모를 봉양할 줄 모르는 사람은 까마귀 보다 못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
불란서 혁명 시 어떤 어머니가 세 아들과 함께 집에서 쫓겨나 며칠 동안을 산 속과 들판을 헤매었습니다. 부인과 아들들은 나무뿌리와 풀잎을 먹고 연명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군인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덩굴 속에 숨었습니다. 군인상사는 덩굴 속에 인기척이 잇는 것 같으니 찾아보라고 병사에게 명령했습니다. 한참 후에 어머니와 아이들이 끌려나왔습니다. 군인상사가 그들을 본 순간 그들이 굶어 죽기 직전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군인 상사는 너무 측은해서 빵 한 덩어리를 어머니에게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굶주린 이리처럼 그 빵을 얼른 받아 세 조각으로 나누더니 아이들에게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것을 본 군인 상사가 말했습니다. "애들에게만 주고 자기는 안 먹는구나!" 그 옆에 있던 사병이 "아마 배가 안 고픈가 보죠"라고 말하자, 다시 상사가 하는 말이 "아니다. 어머니라서 그렇지"라고 말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는 먹지 않고 배고픈 자기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다 준 것입니다. 이것이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사랑은 항상 아낌없이 주려하고 또 사랑은 항상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눕니다.
<환난 중에 만난 주님>
한국 교회 초기 교인 중의 한 분인 서상륜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13살 때 부모님을 여위었답니다. 삶의 여건이 좋은 부모 만나지 못했습니다. 가난합니다. 고아가 된 이 사람은 살길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개성에서 나는 고려인삼을 사 가지고 만주에 가서 팔았답니다. 인삼장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장사를 하다 31살에 장티푸스에 걸렸답니다. 열이 오르고 쓰러지고, 헛소리를 했답니다. 아무도 그를 돌보아 주지 않았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스코틀랜드에서 파송 된 메킨타이어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그분은 정성을 다해 치료해 주었습니다. 죽어 가는 그를 살렸습니다. 서상륜에게는 메킨타이어가 생명의 은인이었습니다. 선교사는 그에게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는 가장 고귀한 만남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일 년 만에 세례를 받고 그의 인생은 변했습니다. 이제 가난이나 질병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 번역인 로스 성경을 로스 선교사님과 함께 번역했습니다. 황해도 장면에 있는 송천(솔내, 소래)에 가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전합니다. 최초의 교회인 '송천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를 만나 서울에 새문안 교회를 세웠습니다. 처음 14명이 세례를 받습니다. 모두 서상륜이 전도한 사람들입니다. 황해도, 평안도 할 것 없이 부산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평생 평신도로 살며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집을 헌납하여 교회를 지었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가난하였습니다. 그래서 언더우드 선교사님께서 그가 헌납한 집과 똑같은 기와집을 노년에 사주었다고도 합니다. 어떤 가정환경일지라도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맡겨준 사명을 이루어 나에 대하여 소문을 듣는 가까운 일가친척들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하신 좋은 소문을 듣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격려>
몇 해 전, 런던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5분 38초라는 경이적인 세계기록으로 우승한 모로코의 할리드 하누치(Khalid Khannouchi)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그의 우승에는 아내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무명선수 시절, 하누치는 모로코에서 미국으로 마라톤 유학을 왔지만 기록이 좋지 않은 그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한 산드라라는 여성이 그에게 다가와 격려했습니다.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틀림없이 훌륭한 선수가 될 겁니다.” 그녀의 말을 듣고 하누치는 용기를 가졌습니다. 훈련 중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산드라는 항상 그의 곁에서 그를 격려해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되었고, 결혼 후 더욱 마음의 안정을 찾은 하누치는 코치 겸 매니저 역할을 하는 산드라의 격려를 통해 날로 실력이 향상되어 결국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라>
어느 성도가 길을 가다가 횡단보도에서 한 어린 아이가 차들이 질주하는 길을 건너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아이는 지나가는 그 성도를 보고 “아저씨 나 좀 도와주세요”라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성도는 그 아이를 안고 길을 건넌 후 아이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리들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닥쳤을 때에 “주여! 나를 도와주소서”하면 주님이 도와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고 안정되게 사는 어느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친구 보증을 서주고 잘못되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처음에는 대단히 낙심하며 하루하루 소망 없이 살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하나님께 매달리기로 작정했습니다. 새벽마다 저녁마다 교회에 나와서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 사람 주위에 있는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 사람을 보면서 “만약 저 가정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면, 진짜 하나님은 계신 거야!”라고 말할 정도로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 분이 기도하다가 감동이 와서 자기 집 하나를 개조해서 인형가게를 만들었습니다. 너무나 초라한 2평도 안 되는 작은 가게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동네에 있는 여자아이들이 구름 떼같이 몰려오고 나중에는 다른 동네 아이들까지 몰려왔습니다. 그 가게에 몰려온 아이들이 무슨 인형을 사간 줄 아십니까? 굉장히 못생긴 배추머리 인형입니다. 그때까지 인형 하면 머리 길고 피부가 곱고 늘씬하고 옷을 잘 차려입고 뾰족 구두 신은 백설공주 타입의 인형을 생각했는데, 그러한 기준이 하루아침에 변해버린 것입니다. 결국 망했던 그 집은 배추 머리 인형의 총판권 덕분에 금방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저 가정은 하나님의 은혜로 일어섰다. 아마도 배추머리가 유행한 것은 저 집사님의 기도 때문일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집사님이 엎드려 기도하니 하늘의 문이 열리고 땅의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땅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므로 해결 받기를 바랍니다.
<도둑의 회개>
스펄전목사님이 성전을 완공하고 육성 설교가 뒤에까지 잘 전달 될 것인지 시험해보려고 강단에 서서 큰소리를 질렀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하고 세 번 외쳤을 때 천장에서 한 사람이 벌벌 떨면서 내려오더니 무릎을 꿇고 빌며 “용서하여 주십시오!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기에 스펄전 목사님은 “당신 누구요?”라고 묻자, “예 사실 도둑질 하려고 들어와서 천장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두려워 내려 왔습니다.
<믿음의 힘>
세계 제2차 대전 중에 ‘해롤드 럿셀’이라는 청년이 공수부대 요원으로 참전하였다가 불행하게도 포탄에 맞아 두 팔을 잃은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두 팔을 잃었으니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는 이제 ‘나는 쓸모없는 고기 덩어리가 되었구나’하고 절망하던 중에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는 설교를 듣고 그의 마음에 새로운 힘이 솟아났습니다. 그 후에 그는 무엇인가를 하여야 하겠다는 계획을 하던 중에 그를 돕고자 하는 의사로부터 쇠붙이로 된 손(의수)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손으로 글씨도 쓰고, 나중에는 타자까지 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우리 생애 최고’라는 영화에 출연하여 영화계 최고상인 ‘아카데미’ 주연상까지 받았습니다. 절망 중에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사람이 교회에 나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살다가 그렇게 영광스러운 자리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능력입니다.
<G의 군사>
어느 날 알렉산더 대왕에게 사랑하는 친구가 사냥개 두 마리를 선물했습니다. 내친김에 토끼 사냥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 사냥개가 땅에 뒹굴뒹굴 뒹굴기만 하고 토끼 잡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겁니다. 홧김에 산에서 내려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사슴 사냥을 떠났습니다. 저 만큼 사슴이 나타났는데도 두 마리의 사냥개는 전혀 좇아가 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활을 쏘아 사냥개 두 마리를 죽여버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두 마리의 사냥개를 준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토끼 한 마리, 사슴 한 마리 잡지 못하는 그 놈의 개를 사냥개라고 내게 선물을 했느냐고?”고 말했더니 친구가 “대왕, 그 사냥개는 대왕을 위하여 사자와 호랑이를 잡을 때 쓰도록 특별히 훈련된 개들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사자나 호랑이를 잡도록 훈련된 사냥개의 실력을 모르고 그 사냥개들로 토끼나 잡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잘 모르고 엉뚱한 싸움에 에너지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병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싸워서 잡아야 할 적은 주변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 감정을 건드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의 상대는 악한 영들입니다. 우리는 사단과 귀신 즉 악한 영들과의 싸우는 영적인 군사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소망>
안젤라는 열한 살에 신경계통을 포함한 신체무력증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걸을 수도 없었고 몸의 움직임도 한정된 부분만 가능했습니다. 의사들도 그녀에게 별로 희망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평생 휠체어에서 보내야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열한 살의 소녀는 의지를 잃지 않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자기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나는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걷게 되리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는 시각화 요법을 실시했습니다. 자신이 걸어 다니는 모습을 머리속으로 그려보고 상상해 보는 방법입니다. 치료에 도움이 된다기 보다는 적어도 상상하는 그 시간 동안만큼은 그녀에게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열심히 상상 속에서 걷고 걷고 또 달리는 꿈을 매일 꾸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안젤라가 침대에 누워 최선을 다해 자신의 두발을 움직이고 있는 생각을 하는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침대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침대가 이리저리 그 방을 움직여 다녔습니다. 안젤라는 소리쳤습니다. "이것 좀 봐요. 드디어 해냈어요. 난 해냈다구요. 내 몸이 움직였어요." 그런데 이 순간 병원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대피소로 갔고,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습니다. 장비들은 바닥에 굴러다니고, 유리제품들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바로 그 날이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 일어난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절대로 이 사실을 안젤라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이 해내고야 말았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해가 지난 다음에 그녀는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물론 자신의 두 다리로 걸어서, 목발이나 휠체어 따위는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후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라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 일대의 대지를 뒤흔들 만큼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 하찮은 병 따위를 정복할 수 없겠는가?”
미국인 해리(Harry)라는 사람은 방광암에 걸려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는 처음 좌절감에 사로잡혀 자포자기 했는데 말씀에서 새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마 19: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막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말씀을 붙잡고 마음에 영상을 뚜렷하게 그렸습니다. 백혈구가 폭포 같은 힘찬 위력으로 암세포를 파괴시키고 있다는 영상으로 하루에도 수백번 그렸는데 몇 달 후에 그는 완전히 건강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무지>
1945년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도 종전의 소식을 듣지 못하여 29년 동안 이나 필리핀 루방 섬 정글에 은신해서 짐승처럼 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본군 중위 '오노다 히루씨'입니다. 그는 일본군 장교로 22세 때 필리핀에 파견되어 29년이 지난 1974년 그의 나이 52세 때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전쟁이 끝났고 일본이 경제적 대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나이 52세 되기까지 깊은 동굴에 숨어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보다 더한 비극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와 사망에서 자유케 하는 복음을 잘 알지 못하여 고통 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예수가 이겼습니다. 우리는 이제 죄로부터 자유합니다.' 이 소식을 전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치열한 전투에서 이겼다는 '승전의 소식' 이것을 '유앙겔리온'입니다. /할/
<한 마디 말이>
전 연세대 총장이었던 백낙준 박사는 한국 교회사에서 유명한 인물입니다. 그 아버지는 점쟁이였습니다. 길거리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 관상을 봐주고 돈을 벌었습니다. 어느 날 길을 지나가던 한 집사가 백낙준의 아버지를 보고 한마디를 했습니다. '여보시오. 그런 짓 하다가 당신도 망하고 자식들도 망할 텐데 그 짓 빨리 그만두고 예수나 믿으시오' 그때 그는 눈을 흘기면서 '너나 잘 믿어라 재수 없게 왜 떠들고 가'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잠을 자려고 누워있는데 그 집사님이 한마디 던진 말이 계속 귀에서 맴돕니다. '그런 짓 하다가 당신도 망하고 자식들도 망해' 잠을 자도 그 소리가 들립니다. 드디어 그는 그 모든 것을 다 청산해버리고 예수를 믿었는데 그 아들이 연세대 총장이 되었습니다. 지나가는 말 한마디로 그렇게 위대한 인물을 낳았습니다.
<가짜와 진짜>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중년 부부가 서울로 이사를 왔습니다. 이 부부가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참기름을 먹어보고는 통탄을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가짜 참기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짜 참깨로 참기름을 짜서 그것도 가짜 참기름과 같은 가격으로 팔았습니다. 소문이 나면 장사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손님이 오지 않아 몇 달 후 가게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 집 참기름 맛이 이상하다고 소문이 났기'때문입니다. 오랜 동안 가짜 참기름을 먹고 살아온 사람들이 진짜 참기름 맛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참된 복음의 진리가 가짜 참기름과 같이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너무도 오랜 동안 왜곡되고 빛 바랜 잘못된 가르침에 젖어서 참된 복음을 멀리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이야기하면 기독교를 너무 과격한 것으로 받아드립니다. 죄와 죽음과 심판과 지옥을 이야기하면 시대에 뒤진 설교자로 여깁니다. 그런 것말고 듣기 좋고 평안을 주며 위로하는 설교를 듣고 싶어합니다.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상처받고 당하며 살았는데 교회 와서는 좀 위로를 받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참 복음을 깨달으려면 죄와 죽음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체험하려면 심판과 지옥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려면 죄와 죽음과 심판과 지옥에 대해 들어야 합니다.
<말씀의 능력>
오래 전에 고재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육군 중령 일가족 4명을 도끼로 쳐죽인 무서운 살인자입니다. 그가 교도소에 들어오니까 그 옆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합니다. 간수도 접근하지 못합니다. 누구든지 죄수들끼리 만나서 '나 고재봉이야' 하면 모든 죄수가 '형님' 했습니다. 사람 셋 죽인 사람도 '나 고재봉이야' 그러면 '형님' 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소포 하나가 고재봉한데 왔습니다. 열어보니까 성경이 들어있었습니다. '재수 없다'고 성경을 던졌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화장실 휴지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것을 뜯어 가지고 화장실에 가서 무슨 내용이 쓰여 있나 보다가 복음이 그 심령 속에 들어왔습니다. /할/
어느 날 한 감방 안에 시국사범으로 와 있던 이인수 대령이 보니까 눈에 살기가 빠졌는데 하루는 그르더랍니다. '대령님,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받아줄까요?' 이 말을 들은 이인수 대령이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무슨 트집이나 잡힐까봐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차츰 차츰 태도가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목'에게 '목사님, 저 사람 신상에 변화가 온 것 같으니 와서 확인 좀 해주시죠' 확인해보니 달라졌습니다. '목사님, 나 예수 믿으면 용서받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가 예수 믿고 영접해서 그때부터 전도를 하는데 2천명의 죄수 가운데 1800명이나 전도를 했답니다. 그가 전도하는 내용은 '이 앞길이 구만리 같은 놈들아 너희가 이렇게 살다가 갈 거냐? 이 감방에서 다시 나 같은 사람을 안 만나려면 너희들도 예수를 믿어야 한다' /할/ 그런 그가 마지막 죽으면서 한 말은 '내가 좀 더 일찍이 하나님을 알았다면 이렇게 악한 자가 되지 않았을 것을, 나에게 일찍 복음을 전해준 사람이 있었다면 이렇게 죽지는 않았을 텐데...'
그는 '하늘가는 밝은 길이' 이 찬송을 하면서 하나님께 갔습니다. 그렇습니다. 고재봉과 같은 악한 사람에게 복음이 들어가니 순한 인간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감옥을 변화시켰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
원 브란트' 목사님은 시베리아 감옥으로 끌려가서 18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밥도 조금 주고 물도 조금 주었습니다. 죽지 않을 정도로 주었습니다. 갇힌 자들이 모두 배고파하고 목말라했습니다. '원 브란트' 목사님은 같이 갇힌 자들에게 자기 밥에서 10분의 1을 떼어 나누어주면서 기뻐했습니다. 자기에게 준 물에서 10분의 1을 덜어 갇힌 자들에게 주면서 즐거워했습니다. 그래서 감옥 전체가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카라'의 기쁨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기쁨입니다. 이것이 2차원적인 기쁨입니다. /아멘!/
▶아프리카 선교사 '폴 칼슨'이라는 의사는 아프리카 흑인들을 치료해 주면서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아프리카는 본래 의료 시설이 부족하여 의사가 왔다니까 구름 떼와 같이 몰려들었습니다. '폴 칼슨'은 도무지 쉴 시간이 없었습니다. 날마다 격무에 시달렸습니다. 피곤이 겹쳐서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가 물었습니다.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이 때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기를 '나는 항상 환자들을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대하기 때문에 보람과 기쁨을 느끼기에 피곤을 전혀 느끼지 못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만큼 보람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전도하는 것만큼 큰 일이 어디 있습니까? 온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살리고 천국으로 보내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습니까?'
<말의 위력>
어느 날 정태기 교수의 사무실에 한 스님이 찾아 왔답니다.
“교수님의 도움이 필요해서 왔습니다.”교수님은 어안이 벙벙해서 물었습니다. “도움이라니, 무슨 말씀인가요?”
“지금 제 방에 아이 하나가 와서 죽으려고 하는데, 제 힘으로는 달리 방법이 없어서 교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죄송하지만 저와 함께 가서 아이를 도와주실 수 없습니까? 교수님이 이 방면에 전문가라는 얘기를 듣고 찾아 왔으니 중생의 목숨 한 번 살려 봅시다.”
그 수님은 신학교 근처에 위치한 큰 절의 스님이었는데 그 수님의 말에 의하면 어느 날 그 절에 이 학생이 찾아 왔답니다. 그 학생은 며칠 간 청소하며 잡일을 하면서 그 절에 머물렀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의 행동거지가 몹시 수상쩍었습니다. 마치 무엇에 쫓기는 것처럼 몹시 불안해 보였고, 사람을 바라보는 눈동자나 얼굴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답니다.
그들은 그 학생을 다그쳤습니다. 어디서 왔느냐,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느냐고 다그치자 그 학생이 죽겠다고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그 학생은 죽을 결신을 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은 며칠 동안 달래도 보고 야단도 치면서 학생을 집으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학생의 결심을 돌리지 못한 그들은 고민 끝에 교수님을 찾아 온 것입니다.
그 스님과 함께 절에 가 보니 그 학생은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먼저 학생의 마음을 열기 위하여 먼저 이런저런 이여기를 나누었습니다. 마침 그 무렵이 예비고사(요즘은 대학 수능시험) 발표가 있었기 때문에 교수님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능시험을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보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몇 점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170점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학생의 문제가 이것과 연관되어 있으리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런데 왜 여길 들어왔어?”“예비고사를 망쳤으니까요. 나 같은 건 죽어버려야 해요!” “예비고사 때문에 죽어버리겠다고?”
“서울 대학 못 갈 바에야 죽는 게 나아요.”당시 서울대학에 들어가려면 예비고사에서 적어도 295점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다시 물었습니다.“170점으로 어떻게 서울대학교를 가겠다는 거니?”“아무튼 난 서울대학교에 못 가면 죽어야 해요.”
“왜. 누가 너더러 꼭 서울대학교에 가야 한 대?” “엄마, 아빠가요. 그리고 주변 사람 모두가요.”“이해하기가 좀 어렵구나. 대부분 실력에 맞게 기대를 하는데, 170점을 받는 아이한테 어떻게 서울대학교에 가기를 바란단 말이냐?”“실은 내가 다니던 재수학원에서 모의고사를 칠 때마다 295점 아래로 받아본 적이 없어요. 항상 그 이상이었죠. 그래서 모두들 내가 서울대학교에 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거예요. 학교 다닐 때도 그랬고요. 그런데 막상 예비고사만 치르면 170점을 넘지 못하는 거예요.”
학생의 말인즉, 학생이 예비고사를 앞둔 3일 전부터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합니다. 잠만 못 자는 것이 아니라 먹지도 못했습니다. 미치지 않는 것이 다행일 정도였습니다. 이런 지경이니 시험이라고 제대로 치를 리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3년이나 계속되었는데도 평상시 성적이 너무 좋아서 포기를 못하고 매번 기대를 걸어 보는데 결과는 번번이 마찬가지였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학생에게 매번 이 같은 처참한 결과를 불러오는지, 그의 마음속에 들어앉아서 항상 그를 실패로 몰고 가고 있는 무엇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다행이도 말문을 터진 학생은 교수님의 질문에 고분고분 답을 했습니다. 이야기 끝에 그 해답을 찾았답니다.
학생의 마음속에 실패를 몰고 가게 하는 것은 중학교 1학년 무렵이었습니다. 학생은 중학교 1학년 때 병으로 고생하여 시험을 제대로 보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 학생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었던 담임선생님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새로 부임한 담임선생님은 자기 학급을 전교에서 가장 우수한 반으로 만들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임한지 며칠도 안 된 어느 날 담임선생님은 이 학생을 불러서 학생들 앞에 세우고 “이 새끼야, 시험으로 네 인생이 꽃피우기는 애초 글러먹었어” 하면서 주먹으로 이 학생의 이마를 툭툭 쳤습니다. 며칠 동안 병을 앓아 중심을 제대로 잡을 수 없었던 학생은 선생님의 가벼운 주먹질에도 힘없이 뒤로 넘어졌고 그 모습을 본 학생들은 다같이 ‘와’ 하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이 때 학생은 평생 잊지 못할 심한 모욕감을 느끼고 그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가뜩이나 내성적이던 이 학생에게 그 사건으로 입었던 상처는 유령처럼 늘 따라다녔습니다. “시험으로 네 인생을 꽃피우기는 애초 글러먹었어!”
이 학생은 결국 그의 인생을 좌우할 만한 중요한 시험 때마다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워낙 머리가 좋기 때문에 평소에는 탁월한 실력을 보이다가도 예비고사 같은 중요한 시험일자가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진땀을 흘리고 잠을 자지 못하고 시험 당일에는 중환자가 되다시피 했던 것입니다. 중학교 때 선생님에게 들은 모욕적인 말 한마디가 학생의 가슴속에 들어앉아서 집요하게 이 학생을 괴롭혀 온 것입니다. 말이란 이렇게 무섭습니다. 무심코 쏟아내는 그 수많은 말들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순간에 다른 사람에게 평생 아물지 않을 상처를 만들기도 하고, 절망에서 일으키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말의 무서움을 가장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2장 36-37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판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말의 위력>
말 한마디는 비수가 되어 한 사람의 삶을 괴롭게 합니다. 아홉 살짜리 사내아이가 동네 우물가를 지나다가 동네 아낙이 자기를 가리키며 옆 사람에게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쟤는 왜 저렇게 비쩍 마르고 눈만 커다랗다니, 정말 보기 싫다!” 동네 아낙의 이 말 한마디는 아이의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습니다. 그날 이후 28년 동안 아이는 한 번도 기를 펴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집이 부유했기 때문에 별다른 고생은 하지 않았지만,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는 취직도 하지 않았고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보다 못한 그의 아버지가 그들 미국에 유학을 보냈습니다. 당시 유학생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유학을 다녀오면 혹시 아들의 앞길이 열릴까 해서였습니다. 미국에서도 그는 온전한 사람 구실을 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4,5년이면 마치는 공부를 13년이 넘도록 마치지 못했고, 폐를 잘라낼 만큼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그런 상태로 그는 미국에서 세월만 보내고 있었습니다.
스물네 살에 들어간 미국에서 서른일곱이 되도록 별 볼일 없이 지내던 그에게 어느 날 생명의 손길이 뻗쳤습니다. 그가 다니던 학교의 한 기독교 서클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서클은 모두 여학생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다섯 명쯤 되는 여학생들이 언제나 주눅 들어 있는 그의 모습을 측은히 여겨 그에게 용기를 주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마침 그를 위해 기도하던 여학생들이 그를 도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그들은 그의 장점을 찾아서 표 안 나게 칭찬하기로 했습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제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찾아보면 한두 가지 장점쯤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여학생들은 그를 면밀히 관찰하면서 그의 장점을 찾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에게서 금세 많은 장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발견한 그의 장점을 자연스럽게 칭찬했습니다. 이런 여학생들의 행동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그러자 차츰 그의 태도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서 이전에 찾아볼 수 없었던 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몇 달이 지나자 그의 행동에 자신감과 당당함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학 여학생이 그를 붙들고 집중적으로 공략을 했습니다. 두 시간이 넘도록 교정 벤치에 앉아 그가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또 그의 장점이 그들을 얼마나 기쁘게 했는지 말하면서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었습니다. 그 여학생과 헤어져 기숙사로 돌아온 그는 더 이상 이전에 그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기쁨으로 충만했고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그는 벽에 걸린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았습니다. 거울 속에는 180센티미터의 훤칠한 키에, 완벽한 이목구비를 잘 갖춘 잘 생긴 청년이 웃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준수한 청년이 28년 동안이나 자신을 못난이로 생각하고 주눅 든 인생을 살아왔다니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그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면서 받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너무 분하고 억울했습니다.
그날부터 그는 열심히 공부하여 마흔 살에 박사 학위를 받고 조국으로 돌아와 교수로 재직했고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준 여학생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이처럼 말은 한 사람의 인생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할 만큼 위력적입니다. 실제로 죽이는 한 마디 말이 28년 동안 한 사람을 끌고 다니며 그를 비참하게 했고, 살리는 한 마디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던 한 사람을 중요한 인물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발상의 전환>
탐험가 ‘콜럼부스’는 1451년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가난한 옷감짜는 직공의 아들로 태어나 탐험의 큰 공적을 세우고 1506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콜럼부스의 인기가 너무 좋아지자 시기하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하루는“당신이 이번 탐험을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 꼭 다른 사람이 했을 것이니 그리대견스러운 일이 아니지 않소”하고 면박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콜럼부스’는 아무 말없이 듣고 있다가 테이블 위에 있는 달걀을 보고 그 달걀을 집어 들어“여기 어느 분이 달걀을 책상 위에 똑바로 세울 수 있습니까? 라고 말하자 이 사람 저 사람 달걀을 세우려고 했으나 아무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콜럼부스는 달걀을 들어 한쪽을 깨뜨려서 평평하게 한 다음 책상 위에 세워 보였습니다.”“이렇게 하면 누구나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하지 않았을 때 그것을 생각해 내고 맨 먼저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하고 말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자원>
어느 날, 스코틀랜드에 사는 한 여인이 목사님을 찾아와 말했습니다. “목사님! 돈이 없어 너무 살기 힘들어요.” 그때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집사님! 인도에서 근무하는 아들에게 아무 소식도 없나요?” 여인이 대답했습니다. “가끔 엽서를 보내요. 그 엽서들을 제 성경책 안에 모아놓고 있어요,”
목사님이 그 엽서들을 보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엽서는 영국 은행에서 발행한 환전 엽서였습니다.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집사님! 집사님은 부자입니다! 이 엽서는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엽서입니다.” 그 여인은 자신의 성경책 안에 큰 돈이 있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처럼 자신 안에 있는 큰 축복의 가능성을 모르고 어렵게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안에는 이미 큰 축복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축복의 가능성을 어떻게 진짜 축복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본문을 통해 축복의 가능성을 진짜 축복으로 만드는 몇 가지 원리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속눈썹 하나도>
미국에서 최근 새로 개발된 속눈썹 이식 수실이 화젯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눈 한 개당 3천불, 한국 돈으로 약 3백만원 정도 드는 성형 수술인데,
머리 뒷부분에서 머리카락을 채취해서 눈꺼풀에다가 옮겨 심는 수술입니다.
속눈썹이 없는 분들에게는 희소식이 틀림없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이식한 속눈썹이 머리카락이 자라나듯이 계속해서 자라나고 색깔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식한 속눈썹을 머리카락 자르듯이 자주 손을 봐줘야 하고 세어서 흰색으로 변할 경우 염색도 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
헬라의 어느 철학자가 비가 많이 쏟아지는데 일부러 우산을 스지 않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하늘을 향해서 "오! 신이여, 감사하나이다"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던 사람이 "대체 무엇이 감사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생각해 보세요. 콧구멍이 밑으로 뚫렸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만약 그렇지 않고 위로 뚫렸다면 이렇듯 비오는 날에 내가 어떻게 밖에 나오겠습니까?"--이것이 철학적 감사입니다.
<감사>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가장 강한 자는 자신을 제어하는 자요, 가장 참된 자는 모든 것에서 배우는 자요, 가장 행복한 자는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만족함이 없는 사람, 그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습니다. 만사를 부정적으로 보면 끝도 없는 것입니다. 똑같은 장미를 보고도 마음이 좋은 사람은 '가시나무에 장미꽃이 피었구나'하고 아름답게 봅니다. 그러나 마음이 부정적인 사람은 '왜 장미꽃에는 가시가 있지?'합니다. 이런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장미를 멀리서 보기만 하고 즐기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장미를 겪으려고 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가시가 있으니까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은혜로운 사람만이 항상 마음깊은 곳에서부터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