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홍의 영화 속을 걷다 ⑨
날것 그대로의 폭력의 대물림과 악순환
- 양익준 감독의 독립 장편영화〈똥파리〉
작위성을 걷어낸 날것 그대로의 표현
양익준 감독의 독립 장편영화〈똥파리〉가 개봉 보름 만에 10만 관객을 동원하는 이변을 일으키고 있다. 물론 이것은 17개 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해외의 관객들과 비평가들로부터 환호와 찬사를 받은 광고 효과도 있겠지만, 우울하고 섬찟하며 폭력적인 가족의 풍경이 작위성이 배제된 날것 그대로의 형식적 표현과 연기에 힘입어 관객을 숨 막힐 듯이 몰아붙이는 묘한 영화적리듬과 템포 때문일 것이다. 130분이라는 결코 짧지 않는 러닝 타임인 이 영화는 시종일관 연희와 상훈이라는 두 집안의 폭력적인 가족관계를 통해 관객의 감정과 정서를 극한적인 상황까지 몰아붙이는 불편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주인공 상훈이 거침없이 내뱉는 욕설과 휘두르는 폭력이 처음에는 관객들을 불편하게 하지만, 영화적 허구의 세계에 몰입되다 보면 그러한 욕설과 폭력이 어느덧 우리들의 무의식에 맞닿아 어쩌면 그것이 일그러진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하는 인식에 다다르면서 우리 자신과 이웃을 되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 영화는 기존의 상업적 극영화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우선 영화의 표현 형식이 새로우면서 투박하다. 일관된 플롯을 지닌 내러티브보다는 상훈(양익준 분)과 연희(김꽃비 분)라는 두 인물을 축으로 하여 그들의 일상적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극적 환상’의 몰입을 요구하기 보다는 멀찍이 물러서서 폭력으로 가득한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서사극적 ‘소외 효과’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기존의 상업적 극영화에서 볼 수 있는 잘 짜여진 서사로서의 작위적인 플롯이 아닌 일종의 다큐멘터리적인 투박한 형식이 날것 그대로 보여지고 있다.
그래서 인물들의 역할 연기 역시 작위적인 가식이 없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그럴 듯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보여주기 위한 연출의 디렉션이나 상황을 충분히 계산한 배우의 포장된 연기가 아니라, 상황과 정황에 걸맞는 비인공적인 자연스런 연기로 인물의 진실함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표현 형식도 인위적인 작위성을 배제하고 있다. 오브제의 미학적 배치를 통한 미장센의 형식적 상징보다는 현실과 그 현실 속의 투박한 인간의 모습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어 진실성을 획득하고 있다.
폭력의 대물림과 악순환으로서의 암울한 가족 풍경
이 영화의 오프닝 씬은 폭력의 악순환에 대한 상징적인 메타포로 작용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한 남자가 여자에게 잔인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주인공 상훈이 갑자기 나타나 그 남자를 짓이겨 놓으며 “누굴 때리는 씹쌔끼는 지가 안 맞을 줄 알거든. 근데 그 씹쌔끼도 언젠가 좆나게 맞는 날이 있어. 근데 그 날이 좆같이도 오늘이고 때리는 새끼가 좆 같은 새끼네” 라고 비웃적거린다. 그리고는 맞고 있던 여자의 뺨을 툭툭 때리며 왜 맞고 있느냐며 반문한다. 즉, 일방적인 폭력의 부당성과 그러한 폭력의 근원을 종식시키지 못하는 나약하고 어정쩡한 인간관계의 부당성을 아울러 질타하고 있다.
주인공 상훈은 가정 폭력의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으로 누이동생과 어머니를 잃는다. 누이동생의 간절한 도움 요청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비극적인 상처를 가슴 속에 새긴 채 폭력의 대물림으로 용역 깡패로 살아가고 있다. 이따금 그는 15년간 복역하고 나온 아버지를 찾아가 아버지가 어머니와 누이동생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아버지를 폭행하면서 정신적 외상으로서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그리고는 배다른 누나의 집을 찾아가 조카 형인의 방치된 외로움을 보고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며 자신의 트라우마를 잊으려고 한다.
또 하나의 인물인 여고생 한연희 역시 폭력에 노출된 채 삶의 무게를 버거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월남전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아버지는 정신분열증에 걸려 자신의 아내가 바람나서 집을 나갔다며 딸인 연희에게 어서 찾아오라고 억지떼를 쓴다. 연희의 어머니는 포장마차를 박살내는 용역 깡패에게 항의하다 그만 폭력의 제물이 되고 만다. 고등학교를 나온 남동생 한영재(이환 분)는 사사건건 욕설을 퍼부어대며 폭력적인 행동으로 누나에게서 돈을 뜯어가며 소일하고 있다. 영재라는 인물은 이 영화에서 인간이 어떻게 폭력에 전염되어 가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친구 환규의 권유로 상훈이 속한 용역회사에 들어간 영재는 결국 상훈을 살해함으로써 폭력의 대물림과 악순환의 극한적인 상태를 심찟하게 표현한다.
이 영화처럼 욕설이 난무하는 영화는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아마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주인공 상훈은 적의적인 감정 표현으로서의 내면적인 분노와 상처를 드러내든 그렇지 않으면 호의적인 감정을 드러내든 욕설과 폭력을 수단으로 삼고 있다. 그런 그가 여고생 연희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변모하게 되는 모습을 이 영화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카메라 워크로 관찰하고 있다. 연희의 동생 영재는 친구 환규와 함께 상훈을 따라다니며 폭력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용역 깡패 짓을 그만두기로 한 날, 상훈은 영재를 대동하고 빚을 받으러 갔다가 어이없게도 영재에게 살해되어 방치되어 버린다. 어정쩡하게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영재에게 직설적이고 주저함이 없는 폭력을 교사하던 상훈은 결국 폭력의 하수인인 영재에게 어이없게 폭력을 당해 죽음을 맞는 이 영화의 후반부는 관객들에게 연민과 안타까움, 그리고 씁쓸한 여운을 준다.
폭력에 대한 증오를 폭력으로 말하다
이 영화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암울한 현실과 비정한 인간관계를 역설적인 반어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폭력에 대한 증오를 날것의 직설적인 폭력으로 웅변하고 있는 것이 이 영화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 상훈은 폭력의 대물림이 어떠한 부작용을 낳는가를 직설적으로 웅변하는 인물이며, 또 다른 인물인 영재는 인간이 어떻게 폭력에 오염되며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는 주제를 은유적으로 암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폭력 영화미학의 극치를 보여준 바 있는 일본의 감독인 기타노 다케시가 말한 것처럼 “가족은 남들이 보지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폭력에 방치된 가족이 혈연이라는 운명의 끈에 얽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의 현실에 일침을 가하는 동시에, 폭력은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지며 끔찍한 인간관계를 형성한다는 폭력에 대한 증오를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폭력으로부터 멀어지며 인간화되어 가는 주인공 상훈에 대해 감독은 또 다른 무참한 폭력을 가하고 있다. 인간화된 상훈의 모습으로 해피엔딩을 보여 줄 수 있게 시나리오를 수정했더라면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행복한 감정을 안겨주어 상업적으로 더 큰 흥행을 얻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감독은 자신의 명확한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그러한 상업적 선택을 포기하고 있다. 폭력의 대물림과 악순환이 인간관계를 얼마나 파괴하는가를 극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이 영화의 엔딩 씬은 그런 점에서 은유적인 암시를 나타내고 있다. 상훈의 친구이며 용역회사의 사장인 만식(정만식 분)의 개업을 축하해 주고 돌아오는 길에 연희는 포장마차를 박살내는 용역 깡패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무참한 폭력의 현장에서 연희는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는 동생 영재를 발견하고 허망한 표정을 짓는다. 영재의 얼굴이 상훈의 모습으로 변화되는 연희의 착각은 묵시적인 은유로 관객들에게 강한 충격을 선사하고 있다. 폭력의 현장에 살벌하게 서 있는 영재는 인간이 아닌 괴물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영재가 그렇게 된 것은 그 자신의 선택이라기 보다는 상훈의 폭력이 낳은 부작용 때문이다.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폭력의 근원이었던 상훈의 존재를 없애지 않고서는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가 바로 상훈의 죽음이다. 폭력의 근원이 없어지지 않는 한 또 다른 폭력이 횡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엔딩 씬은 폭력에 대한 증오와 함께, 우리의 현실과 인간관계에서는 폭력은 영원히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이라는 것을 아울러 암시하고 있다. 동생의 모습을 무표정한 연민으로 바라보는 연희의 모습이 바로 그런 의도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양익준 감독의 첫 번째 저예산 장편 독립영화〈똥파리〉는 무기력한 영화적 관습에 함몰되어 있는 한국영화의 침체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작위성을 배제한 날것 그대로의 영화적 표현 형식과 포장되어 있지 않는 인위적 가식을 배제한 진솔한 연기의 힘이, 한국영화를 얼마나 새롭게 하며 관객에게 진정한 감동을 얼마 만큼 줄 수 있는가를 이 영화가 가시적으로 예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거칠고 투박한 영화지만, 그리고 끔찍한 인간관계로 얼룩진 암울한 가족의 풍경이 관객을 못내 불편하게 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궁극적으로 폭력이 인간관계와 가족의 풍경을 얼마나 황폐화시키는가를 이처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영화는 전무후무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똥파리〉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폭력 영화가 아니라 따스한 인간관계를 염원하는 지극이 따뜻한 영화일 수밖에 없다. 양익준 감독의 두 번째 영화가 기다려진다. 그의 영화는 한국영화를 새롭게 하고 무한한 힘을 불어넣는 캄플주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2008년, 1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