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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전쯤, 제 게시판에 그림 한 점이 올라 왔습니다. 그림의 제목과 화가를 알고 싶다는 내용이었는데,
널리 알려진 화가의 것이라면 쉽게 찾아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아주 곤혹스럽습니다. 연말이고
해서 그 분의 요청에 대해서 찾아 보겠노라고 말씀을 드리고는 잊어 버리고 있다가 며칠 전 그 작품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영국화가 프레데릭 모건 (Frederick Morgan / 1847~1927)의 작품 ‘사과 따기’였는데
혹시 공감하실지 모르겠지만, 잊고 지내던 첫사랑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사과 따기 An Apple-gathering / 1880
남자 어른들은 보이지 않고 여인과 아이들뿐입니다. 나름대로 모두들 자기 역할이 있습니다. 사과 나무 위에
올라가서 가지를 흔드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큰 보자기를 펼치고 있는 아이들이 있고, 앞치마에 사과를 담아
광주리에 담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길은 햇살처럼 따뜻하고 아이들 웃음소리는
사과나무 숲으로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른쪽 두 모녀는 같은 식구가 아닌가 봅니다. 떨어진 사과를
줍는 모습이나 이마에 손을 대고 있는 아이의 표정이 나머지 인물들과 구별됩니다. 눈처럼 흰 보자기는 햇빛
아래 빛이 나고 있는데 두 모녀의 등에는 그늘이 앉았습니다. 할 수 있다면 저라도 도와주고 싶군요.
행복한 어린이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는 당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은 모건은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
역시 화가였는데 아버지 존은 파리에서 그림을 배우고 귀국해 역사화와 풍속화에서 이름을 날렸고 어머니
앨리스는 풍속화와 풍경화로 유명했는데 국제적으로 알려진 화가였습니다. 모건이 화가가 안 되었으면 이상할
뻔 했습니다.
이민 떠나는 길 The Emigrant's Departure / 1875
새로운 생활을 찾아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일은 지금 가진 것을 버리는 일부터 시작됩니다. 그래도 버릴 수
없는 인연과 사랑과 사람들은 가슴에 담았습니다. 떠나는 사람은 끝이 없이 이어지는 길 위에 점으로 남았고
떠나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사람들은 언덕 위에서 석상이 되었습니다. 다시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화면은 온통 어두운 붉은색이고 그림 속 인물들의 슬픔은 두 배가
되었습니다.
모건의 아버지는 그림 교육은 어린 나이에 시작할수록 좋다는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건이
14세가 되자 아버지는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직접 아들에게 그림을 지도합니다. 그 외 미술 수업은 다른 곳
에서 받도록 했는데 모건의 작품에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사람은 당연히 아버지였죠.
‘그림 그리는 법을 아버지에게서 배웠다’라고 모건이 확실하게 말한 것을 보면 능력 있는 아버지였습니다.
학교의 얼짱들 The School Belles / 1877
최고 미인이라는 고상한 말이 있지만 ‘얼짱’ 이라는 말이 더 빨리 와 닿는 시대입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돌아 가는 길, 얼짱들이 다리를 건너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남자 아이들이 말을 걸어 보는데 여학생들은
본 척 만 척입니다. 모자까지 벗고 아는 척 하던 남학생의 손이 쑥스러워졌습니다. 얼마나 무안한지 저 아이의
마음, 제가 압니다. 돌아가고 싶습니다. 까까머리 고등학교 2학년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제는 무안
당하지 않고 잘 해 볼 자신 있습니다. 도대체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뭘까요?
아버지에게서 그림을 배우던 모건은 16세가 되던 해 로얄 아카데미에 ’리허설’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출품
합니다. 시골 합창단을 위해 연습하는 두 노인 음악가를 그린 작품이었는데, 모건 자신도 놀랐지만 이 작품이
전시회에 걸렸습니다. 더구나 20파운드라는 금액에 팔리기까지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대단한 성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이른 성공이 모건에게는 독이 되었습니다.
여자친구 Sweethearts
꼬마 녀석들이 본 것은 있어서 ---. 꽃을 가슴에 달아주면서 사내 아이는 여자 아이의 얼굴을 살피고 있는데,
살짝 치켜든 여자 아이의 팔과 치마 한 쪽을 잡고 있는 손 그리고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쳐 흐릅니다.
사내 아이가 여자 아이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옷에 꽃을 달아 줄 때 저 깊은 가슴 속에 또 하나의
꽃이 달린다는 걸 저 아이들은 모르겠지요. 19세기 영국에서는 농촌의 가족들, 노는 어린 아이들 모습 같은
주제가 풍속화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분야였고 그 정점에 모건이 있었습니다.
로얄 아카데미에서 뜻밖의 성공을 거둔 모건의 작품은 별다른 진전 없이 멈추고 맙니다. 건강도 아주 좋은
편은 아니었고 마땅히 경쟁할 만한 대상도 없었으며 성공이 가져다 준 어린 나이의 허영심이 그의 열정을
사위게 한 것이죠. 그렇게 3년 정도 지난 어느 날 모건은 아버지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됩니다.
나눔 Charity
‘자선’이나 ‘자비’라는 말로 제목을 삼기에는 그림이 내용이 너무 유쾌합니다. 잘 사는 집 아이들이 소풍을
나온 자리에 동네 아이들이 지나갔던 모양입니다. 가장 어린 여자 아이가 빵을 접시에 담아 두 손으로
건넵니다.
‘빵, 같이 먹자’
주는 얼굴이나 받는 얼굴이나 즐겁습니다. 가난함과 부유함을 돈이 많고 적음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성공과
실패로 인식하는 천박한 사회에서는 말 그대로 그림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우리 사회는 싸구려의
그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건의 아버지는 그에게 화가로서의 자질이 보이지 않으니까 다른 직업을 알아보라고 말하고는 5파운드를
손에 쥐어주고 런던으로 보냅니다. 런던에 온 모건은 이런 저런 일들을 알아봤지만 일자리를 얻는 데는 실패
했습니다. 할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온 모건은 다시 화가로서 성공하겠다고 결심을 새로이 합니다.
아들의 재주를 확실히 알아보고 그 길을 걷게 하는, 참 대단한 아버지였습니다. 고수의 냄새가 느껴집니다.
한 낮의 휴식 Midday Rest / 1879
화가들의 작품을 보다 보면 이 작품처럼 3대가 그려진 것이 많습니다. 화가들마다 표현 방법은 다르지만
흐르는 주제는 ‘따뜻함’입니다. 빵을 달라고 손을 내민 아이와 살짝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자애로운 눈으로
빵을 건네시는 할머니 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버릇 없이 ---–‘ 하는 듯한 엄마의
눈매도 무서운 것만은 아닙니다. 그런데 거친 들 일 때문일까요, 엄마의 팔뚝과 손이 저의 것보다 훨씬 더
다부져 보이고 큽니다. 아버지 손을 붙여 놓은 듯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모건은 에일즈버리에서 3년간 사진회사와 계약을 맺고 초상화가로 일을 합니다. 사진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가족사진을 찍었던 고객들이 사진에 만족하지 못할 경우 초상화를 그려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
모건은 런던에 초상화 견본을 보냈고 그의 작품을 본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양의 주문을 받았습니다. 물론
충분한 수입이 뒤따랐지요.
엄마의 사랑 Motherly Love
엄마의 목을 끌어 안은 아이의 입에 엄마의 입술이 닿았습니다. 입술을 통해서 전해지는 것은 생명이고
영혼입니다. 예전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를 그릴 때 하느님이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 넣는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고민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입을 대고 있는 장면은 설득력은 있지만 보기에 좀 ----.
그래서 오늘 날의 그 유명한 손가락이 닿은 모습이 탄생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시도
때도 없이 나와 뽀뽀를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뽀뽀를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저에게서 받아 들일
것이 없다는 뜻이었을까요? 속상했던 한 때였습니다.
이 작품은 제작 연도가 나와 있지 않지만 전기 작품으로 생각됩니다. 섬세한 묘사나 자세를 보면 사진을 보고
그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즐거운 어부 A Jovial Fisherman / 1896
오늘 고기 많이 잡으셨나 봅니다. 파이프 담배를 쥐고 싱긋 웃는 초로의 멋진 어부입니다. 어구를 온 몸에
걸고 집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에서는 당당하고 여유 있는 삶이 느껴집니다. 뒤로 보이는 바다에서 평생을 살아
왔을 어부의 얼굴에는 세월이 남겨 놓은 흔적들이 가득합니다. 세월은 그 사람이 주로 짓고 있는 표정대로
얼굴을 만들어 놓습니다. 수술한다고 감춰질 얼굴이었다면 애초 세월은 손도 대지 않았겠지요.
‘세밀하게 관찰하는 법을 배웠고 미세한 부분도 매우 중요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라고
한 것을 보면, 사진을 보고 초상화를 그리는 시간이 결과적으로 모건에게 복이 되었습니다.
이 무렵부터 모건은 행복하게 노는 아이들 모습과 시골 풍경, 농부들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홍수 The Flood / 1897
사다리를 밟고 지붕으로 올라갔지만 밀어 닥치는 물은 발 밑까지 올라왔습니다. 한 손으로는 어린 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은 몸을 지탱하기 위해 굴뚝을 잡은 여인의 눈은 멀리서 다가오는 배에 닿아 있습니다.
엄마의 치마를 잡은 아이의 동작도 간절합니다. 그림을 보는 저도 배가 어서 와서 이 사람들을 구했으면
하는 생각뿐입니다. 그림 속에서 거친 물소리와 숨소리가 들려옵니다. 이 극적이고 역동적인 작품은 1897년
로얄 아카데미에 출품 되어서 수 많은 갈채를 받았습니다.
어린이를 묘사한 작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모건의 인기도 올라갔습니다. 그의 작품이 수 천 점이나
복제되고 다 팔려 나갔습니다. 비누 광고에나 잡지의 뒷면을 장식하는데도 사용되었다고 하니까 그가 그린
작품들의 인기를 알 수 있습니다. 에밀 뮤니에르 작품도 비누 광고에 사용되었다고 말씀 드렸는데 아이와 비누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할아버지 생일 Grandfather's Birthday
꼬마들이 동네 할아버지 생일을 축하하러 왔습니다. 손에 든 것이라야 들 풀 한 묶음, 감자 몇 개와 과일
그리고 쿠션이 전부이지만 세상 어느 선물보다 풍성해 보입니다. 할아버지는 이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걸까요? 아이가 하는 소리를 듣기 위해 손을 귀 가까이 가져갔습니다. 그림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럽고 그리고 고마운 녀석들입니다. 세상이 항상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시소 놀이 Seesaw / 1898
아이들이 세 명이나 올라섰지만 엄마는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가운데 선 녀석이 제 딴에 중심을 잡는다고
가운데로 왔으니 왼쪽의 두 아이로는 아무것도 할 수 가 없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우리 아이들 데리고
저 놀이를 많이 했습니다. 저러다가 벌떡 일어나면 아이들 쪽으로 시소가 기울면서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났었죠. 이제는 아들과 일대 일로 시소를 타도 안될 겁니다. 이미 키와 몸무게에서 한참 밀리기
시작했거든요. 그것은 세월이 가르쳐주는 기쁨이기도 합니다.
모건의 아이들 묘사는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에 있어서 다른 화가들과 구별이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꾸준하게 유지했습니다. 아이들이 있는 곳이 모건에게는 성지였습니다.
해변에서 On the Beach
가마 태운 언니들이나 가마에 앉은 동생이나 즐겁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배경이 어두워서 아이들의 웃음이
더욱 환하게 떠 있습니다. 오른쪽에 개가 한 마리 보입니다. 이 작품에도 적용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모건은
동물을 그릴 때 동물 전문 화가와 협업을 많이 했습니다. 마치 루벤스가 정물 화가, 동물 화가와 협업을 통해
작품을 완성한 것과 같은 방법이었습니다.
모건이 아이들만 그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보어전쟁과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전쟁에 참여하는 장병들을
묘사한 작품을 많이 그렸습니다. 기록에는 ‘잘 생긴 군인’들을 그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잘 생긴 군인이
전쟁터에서도 용감한가요?
시장에 가요 Off to the Fair
이거 큰 일 났습니다. 근처에 조그만 장이 선 모양인데 아이들이 할아버지를 졸라 시장에 가자고 야단이
났습니다. 손을 잡아 끄는 녀석들이야 그렇다 쳐도 제일 꼬맹이는 뭘 알고 할아버지를 밀고 있는 걸까요?
시장에 가자고 하는 아이들의 속셈을 알고 있는 할아버지는 아주 난처한 얼굴이지만 표정은 행복합니다.
기분 좋으시죠, 어르신?
모건은 세 번이나 결혼을 했습니다. 이혼인지 사별인지 이유를 찾지 못했지만 어느 쪽이든 순탄한 결혼생활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첫째 아내 앨리스 하버스와의 사이에 세 아이를 두었는데 큰 아들이 화가가 되어
아버지처럼 정기적으로 로얄 아카데미에 풍경화와 인물화 전시회를 개최합니다. 그런데 이 아들은 아버지의
성을 따르지 않고 어머니의 성을 따라 발 하버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습니다.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요.
둘째 아내와의 사이에서도 두 아이를 두었는데 그 중 한 명은 화가가 되었다고 하니까 모건을 중심으로 위와
아래, 3대에 걸쳐 화가 집안을 이룬 셈입니다. 유전 인자는 역시 --- 무섭군요.
작은 이방인들 The Little Strangers / 1899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은 처음 이방인으로 이 땅에 발을 내 딛습니다. 그리고 세상과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쳐 다시 이방인으로 다른 세상을 향해 떠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세상을 옮길 때마다 새로운 세상에서
환영을 받는다는 것이죠. 그림 속에는 새로운 작은 이방인들이 많이 등장했군요. 아이들이 재미 삼아 들고
오는 소쿠리에 강아지들이 있습니다. 쳐다보는 개의 눈에 걱정이 살짝 어렸군요.
모건은 평생 수 많은 전시회를 통해 200점 이상의 작품을 전시했다고 합니다. 적은 양이 아니었죠. 그의 그림
속 아이들은 늘 즐거운 얼굴입니다. 아이들과 여인들이 웃음을 잃지 않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그런 사회를 누릴 수 있겠지요.